시모야나기 쓰요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시모야나기 쓰요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활약했다. 게이호 고등학교, 야와타 대학을 거쳐 1990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하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한신 타이거스를 거쳐 2012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05년에는 한신 타이거스 소속으로 다승왕을 차지했으며, 통산 1000탈삼진, 500경기 등판, 100승 등의 기록을 세웠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야구 지도자 자격을 취득하여 지도자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나가사키시 출신 - 가즈오 이시구로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소설가로 활동하며,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2017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나가사키시 출신 - 다치바나 다카시
다치바나 다카시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르포 작가로서 다나카 가쿠에이 폭로 기사로 명성을 얻었으며, 정치,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술 활동과 방송, 강연, 성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 일본의 로마 가톨릭교도 - 카와카미 토모코
카와카미 토모코는 1994년 성우로 데뷔하여 여러 작품에서 톰보이 및 코믹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마법기사 레이어스》의 장숙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아 《소녀혁명 우테나》의 텐죠 우테나 역으로 이름을 알렸고, 2011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 일본의 로마 가톨릭교도 - 다나카 고타로
다나카 고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판사로,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상법 연구와 정치 활동을 거쳐 최고재판소 장관과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했으며, 1974년에 사망했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선수 - 와다 쓰요시
와다 쓰요시는 2024년 은퇴한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NPB와 MLB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신인왕, 다승왕, MVP 등을 수상하고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도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선수 - 가도타 히로미쓰
가도타 히로미쓰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70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1988년 MVP를 수상하고 1992년 은퇴했으며, 2006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시모야나기 쓰요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시모야나기 쓰요시 |
일본어 표기 | 下柳 剛 (しもやなぎ つよし) |
출생일 | 1968년 5월 16일 |
출생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
신장 | 184cm |
체중 | 95kg |
종교 | 가톨릭 |
포지션 | 투수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게이호 고등학교 |
대학교 | 규슈 국제 대학교 (중퇴) |
실업팀 | 신닛테쓰 스미킨 가즈사 매직 |
프로 입단 | 1990년 드래프트 4순위 |
소속 구단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1년 ~ 1995년) 닛폰햄 파이터스 (1996년 ~ 2002년) 한신 타이거스 (2003년 ~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2년) |
NPB 경력 | |
첫 출장 | 1991년 8월 9일 |
마지막 출장 | 2012년 4월 25일 |
승-패 | 129승 106패 |
평균 자책점 | 3.92 |
탈삼진 | 1,418개 |
세이브 | 22개 |
홀드 | 0개 |
유튜브 채널 정보 | |
채널 이름 | 柳に風【下柳剛公式チャンネル】 (야나기에카제【시모야나기 쓰요시 공식 채널】) |
채널 URL | 柳に風【下柳剛公式チャンネル】 |
개설일 | 2022년 2월 7일 |
장르 | 야구 |
구독자 수 | 5.78만 명 (2023년 6월 30일 기준) |
총 조회수 | 11,512,865회 (2023년 6월 30일 기준) |
2. 선수 경력
프로 선수로서 활동한 팀은 다음과 같다.
소속팀 | 활동 기간 |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1991년 ~ 1995년 |
닛폰햄 파이터스 | 1996년 ~ 2002년 |
한신 타이거스 | 2003년 ~ 2011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012년 |
2. 1. 프로 입단 전
게이호 고등학교 시절에는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1985년 추계 현 대회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카이세이 고등학교에 패했다. 다음 해인 1986년 여름 현 대회에서도 준준결승에서 시마바라 중앙 고등학교에 패배하며 고시엔 무대는 밟지 못했다. 게이호 고등학교에는 시모야나기가 직접 만든 연습용 마운드인 '시모야나기 마운드'가 남아있다.고교 시절부터 프로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감독의 권유로 고교 야구 지도자를 목표로 삼아 당시 야와타 대학(현 규슈 국제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프로 입단을 위해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의 입단 테스트에 응시하고자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했다. 테스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야구부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규정상 다음 해 입단 대상에서 제외되어 프로 입단은 무산되었다. 잠시 동안 고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토바이를 타는 등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다.
이후 고교 시절 감독의 소개로 사회인 야구 팀인 신닛테츠 키미츠에 입사했다.[2][3] 1988년에는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제59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 등 체력 단련에 힘썼고, 경기에서 완투한 뒤에도 200개 가까운 공을 더 던질 정도로 당시부터 강인한 체력을 보여주었다.[3] 1990년 제61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예선에서는 36이닝을 던지며 3번의 완투를 기록했다. 본선 대회 1회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닛산 자동차에게 대량 실점하며 패배하여 도시 대항 첫 승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시모야나기는 은퇴 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당시 팀에 '카시쿠라 씨'라는 뛰어난 유격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신닛테츠 키미츠의 주장이었던 카시쿠라 타케시는 강한 어깨를 가진 선수로 프로 입단이 유력했지만, 팀 내 다른 선수들이 프로에 지명되면서 지명 쿼터 문제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59]
1990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 본인은 사회인 야구팀에 입단하게 된 경위를 생각하여 팀을 도시 대항 첫 승리로 이끌 때까지 남고 싶었지만, 주변의 권유로 프로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2. 2. 프로 선수 시절
사회인 야구팀 일본제철 가즈사 매직에서 활동했다.[2][3] 1988년에는 팀 창단 후 처음으로 제59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출전에 기여했으며, 1990년 제61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예선에서는 36이닝을 던지며 3번의 완투를 기록했다.[3]1990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본인은 사회인 야구팀을 도시 대항 첫 승리로 이끌 때까지 남고 싶었으나, 주변의 권유로 프로 입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로서 활동한 팀은 다음과 같다.
소속팀 | 활동 기간 |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1991년 ~ 1995년 |
닛폰햄 파이터스 | 1996년 ~ 2002년 |
한신 타이거스 | 2003년 ~ 2011년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012년 |
2. 2. 1.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절
1996년에는 전반기는 전년도 사고의 영향으로 아직 얼굴에 플레이트가 들어간 상태였던 점도 있어 2군 조정이었지만, 후반기에 1군에 승격되었다. 중간 계투로 23경기에 등판하여 방어율 3점대 후반을 기록, 프로 입문 후 처음으로 방어율이 4점대를 밑돌았다.1997년에는 216타석 연속 무삼진을 기록하던 이치로를 삼진으로 잡아내 '이치로 킬러'로 화제가 되었다. 그 해에는 1경기에 선발 등판한 외에는 모두 구원 등판하여 다이에이 시절 최다 등판 기록인 65경기에 등판하여 9승을 거두었고, 개인 첫 규정 투구 이닝을 달성했다.
1998년에는 개인 최다인 66경기에 등판했으며, 방어율 3.07로 안정감을 더했다.
1999년에도 62경기에 등판하여 3년 연속 60경기 등판을 기록했다. 같은 해 방어율은 3.61로 다소 안정감이 떨어졌다.
2000년 이후에는 팀 사정 및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선발 투수로 전향했다. 같은 해 8월 26일 다이에이전에서 프로 10년 만에 첫 완봉 승리를 거두었다[8]。 최종적으로 등판한 36경기 중 1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4패, 방어율 4.52의 성적을 남겼다. 시모야나기는 "그대로 매년 60경기 가까이 던졌다면 은퇴가 빨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2000년에 선발 전향을 권유해 준 투수 코치 모리 시게카즈 씨에게 정말 감사하다."[9]라고 회고했다. 시즌 종료 후 연봉 갱신에서는 일본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리인 교섭을 실시했다[10]。
2001년에는 규정 투구 이닝에는 미달했지만 9승 8패, 방어율 5.06의 성적을 남겼다.
2002년에는 부진으로 17경기 등판에 그쳐 2승 7패, 방어율 5.7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22일, 야마다 가쓰히코·다테 쇼지와의 복수 트레이드로 나카무라 유타카와 함께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동시에 발표된 쓰보이 도모야와 노구치 도시히로의 트레이드와는 별건으로 오랫동안 알려졌지만, 시모야나기는 2020년에 가타오카 아쓰시의 유튜브 채널에서, 본래 이 트레이드는 노구치와 쓰보이도 포함한 3대 3으로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시모야나기 본인이 연봉 삭감액 등의 불만으로 구단과 마찰을 빚어 발표의 시간 차이가 생겼다고 말했다[11]。) 8월을 마쳤을 때 1승 7패로 6연패 중이었고, 당시 1군 투수 코치 아사노 게이지로부터 "이제 전력 외나 트레이드 요원은 확정되었으니 2경기 줄 테니 (선발 등판시켜) 다음 구단에서의 생존 방식을 모색해라"라는 말을 듣고, 이후 한신 시절의 주무기가 되는 변화구 위주의 투구 스타일을 시도하여 좋은 결과를 냈다[5][12]。
2. 2. 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2. 2. 3. 한신 타이거스 시절
제공해주신 원본 소스에는 시모야나기 쓰요시 선수의 한신 타이거스 이적 사실만 언급될 뿐, 한신 타이거스 소속 시절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청하신 '한신 타이거스 시절'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2. 2. 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내용 없음)2. 3. 은퇴 후
시모야나기는 현역 은퇴 후 "구속은 허상"이라고 주장하며, 공이 느려도 활약하는 투수가 있는 반면 구속만 쫓아 다른 기술 연마를 소홀히 하는 투수도 있다고 설명했다.[43]2022년 3월 25일 공개된 '후루타의 방정식'에서 후루타 아츠야는 시모야나기의 연구 열심인 모습에 대해 "이런 연구 열심인 사람으로 안 보이네", "다이에이 시대나 니혼햄 시대는 더 거칠었어"라고 평가했다.[5] 상대 타자였던 이시이 타쿠로는 시모야나기를 심리전에 능숙했던 투수로 기억하며, 상대의 표정을 읽고 던지는 타입이었다고 말했다.[41] 스즈키 켄은 2022년 1월 '후루타의 방정식'에서 시모야나기를 최고의 슈트 구사자로 꼽으며 스트라이크와 볼 경계선에 슈트를 제구하는 능력을 칭찬했다. 마나카 미츠루 역시 사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쪽으로 던지는 그의 강한 정신력을 높이 평가했다.[42]
현역 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격투기 등으로 신체와 기술을 단련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선호하지 않는 하리모토 이사오로부터는 그 연습 방법에 대해 자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모야나기는 고관절 움직임은 킥복싱으로, 투수로서의 움직임은 복싱 연습으로 길렀다고 밝혔다.[43]
3. 투구 스타일
프로 입단 초기에는 구속 150km/h가 넘는 공을 던질 수 있었지만, 제구력이 부족하여 성적이 좋지 않았다.[39] 한신 시절에는 "느릿느릿 투구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완급 조절을 이용한 투구를 선보였다.[39] BS-TBS(구 BS-i)의 프로그램 '초·인' 분석에 따르면, 2006년 전체 투구 중 직구 비율이 8%에 불과할 정도로[40]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다. 한신 시절에는 구속보다는 변화구를 타자에게 최대한 가까운 지점에서 꺾이게 하는 데 집중했다.[5] 시모야나기는 현역 은퇴 후 "구속은 허상"이라고 말하며, 공이 느려도 활약하는 투수가 있는 반면, 구속만 추구하다 다른 기술 연마를 소홀히 하는 투수도 있다고 지적했다.[43]
한때 글러브 틈새로 보이는 슬라이더 그립 때문에 구종이 간파당하자, 이를 계기로 구종에 상관없이 슈트나 포크볼 그립을 기본으로 잡고, 팔의 스윙이나 공을 채는 방식에 변화를 주어 구종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투구 메커니즘을 수정했다.[5]
2022년 3월 후루타 아츠야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후루타의 방정식'에서 시모야나기가 기교파 투수로 거듭나기까지의 연구 과정을 듣고 "이렇게 연구에 열심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다이에이 시절이나 니혼햄 시절에는 더 거칠었다"고 평가했다.[5]
젊은 시절의 많은 투구 훈련 덕분에 힘 조절 능력을 익혀, 현역 시절 동안 눈에 띄는 큰 부상은 없었다.[5]
상대 타자였던 이시이 타쿠로는 시모야나기를 심리전에 능한 투수로 꼽으며, 칠 의사가 없어 보이는 타자에게는 과감히 한가운데로 던지고, 칠 의사가 강한 타자에게는 슈트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는 등 상대의 표정을 읽고 투구하는 유형이었다고 평가했다.[41]
스즈키 켄은 2022년 1월 '후루타의 방정식'에서 최고의 슈트 구사자로 시모야나기를 언급하며,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선상으로 슈트를 정교하게 제구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마나카 미츠루 역시 사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쪽 승부를 거는 강한 정신력을 칭찬했다.[42] 이 슈트를 경기에서 처음 던진 것은 이치로의 연속 타석 무삼진 기록을 저지했던 바로 그 타석이었다.[5] 시모야나기는 당시 취재진에게는 "직구였는데 손가락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훗날 방송 인터뷰 등에서는 "사실 그해부터 던지기 시작한 슈트였고, 이후의 대결을 생각해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58]
현역 시절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격투기 등으로 신체와 기술을 단련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선호하지 않는 하리모토 이사오로부터는 이러한 연습 방식에 대해 자주 비판을 받았다. 고관절의 유연성은 킥복싱 훈련으로, 투수로서의 몸 움직임은 복싱 연습을 통해 길렀다고 한다.[43]
한신 시절 1군 투수 코치였던 쿠보 야스오는 시모야나기를 "교재"로 삼아 다른 투수들이 그의 투구 기술을 보고 배우기를 바랐다. 에다 히로키나 후쿠하라 시노부는 "시모야나기 씨가 있었기에"라며 감사를 표할 정도로 그의 존재가 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53] 당시 팀 동료였던 라이언 보글슨은 "투구 폼, 변화구 그립, 배합. '시모'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감사하다. 그는 상대를 제압하는 강속구는 없었지만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이게 내 공이니 쳐보라'는 식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던졌다"며 타자와 맞서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했다.[54]
4.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논란 및 사건 사고' 섹션에 직접적으로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해당 소스는 시모야나기의 개인적인 훈련 방식, 멘탈 관리, 좌우명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위 섹션인 '글러브 투척 사건'은 별도로 존재하지만, 이 섹션의 원본 소스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4. 1. 교통사고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교통사고'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4. 2. 글러브 투척 사건
이 경기는 한신의 클라이맥스 시리즈(CS) 진출이 걸려 있었고, 선발 투수로 등판한 시모야나기에게도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가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또한, 당시 주전 유격수였던 토리타니 타카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2군에서 막 올라온 슈타가 4년 만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한신이 5점 앞선 5회말 1사 1루 상황, 9번 타자 고모토 시게노리의 내야 땅볼을 2루수 세키모토 겐타로가 처리하여 2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슈타에게 송구했다. 슈타는 포구 타이밍 자체는 아웃이 될 수 있었으나, 공을 잡기 직전 발이 2루 베이스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2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이어 슈타는 다음 타자 히토시 토시히사의 땅볼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하며 1군 공식 경기에서는 5년 만의 실책을 기록했다.
병살타를 기대했던 시모야나기는 이 실책으로 1사 만루의 위기가 초래되자 격분하여 마운드 위에 주저앉아 자신의 글러브를 땅에 강하게 내던졌다.슈타는 다음 타자 아이카와 료지의 평범한 땅볼을 침착하게 처리했지만, 병살 플레이로는 이어지지 못해 요코하마는 1점을 만회했다. 하지만 시모야나기가 5회까지 내준 점수는 이 1점뿐이었고, 자책점은 기록되지 않았다. 경기는 한신이 9-7로 승리하며 CS 진출을 확정지었다. 시모야나기는 6회초 도중까지 무자책점으로 호투하며, 만 39세의 나이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달성했다.
5. 개인적인 삶
현역 시절 시모야나기는 경기를 마칠 때마다 자신의 글러브를 반드시 깨끗하게 닦을 정도로 야구 도구를 소중히 다루었다. 하지만 때로는 동료 야수의 실책이나 상대 타자의 안타에 대한 분노로 경기 중 글러브를 땅에 내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팬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켰고, 야구계 선배들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모야나기 본인은 '''"어린이는 따라 하지 마세요. 도구를 소중히 합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31].
한 경기에서 베이스 커버 실책 후 글러브를 내던진 사건에 대해, 시모야나기는 은퇴 후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실책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헛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경기 전부터 팀 분위기가 느슨하다고 느껴져 프로 선수로서 짜증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터뜨리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멘탈 트레이닝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는 침착했다. 다음 플레이에 분노를 이어가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글러브를 던졌다"고 설명했다[63]. 하지만 해당 경기 5회말 종료 후, 당시 팀 동료였던 아카호시 노리히로에게는 벤치 뒤에서 "(글러브를 던진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66].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해당 섹션에 대한 원본 소스 내용이 없어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
6. 1. 타이틀
- 다승왕 : 1회 (2005년)
6. 2. 수상
- 월간 MVP : 2회 (2000년 8월, 2005년 9월)
7. 주요 기록
연도 | 소속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1991 | 다이에 | 1 | 0 | 0 | 0 | 0 | 0 | 0 | 0 | -- | ---- | 7 | 0.2 | 1 | 0 | 4 | 0 | 0 | 0 | 0 | 0 | 4 | 4 | 54.00 | 7.50 |
1993 | 50 | 10 | 1 | 0 | 0 | 4 | 8 | 5 | -- | .333 | 423 | 98.0 | 92 | 10 | 55 | 3 | 1 | 69 | 5 | 1 | 49 | 45 | 4.13 | 1.50 | |
1994 | 62 | 1 | 0 | 0 | 0 | 11 | 5 | 4 | -- | .688 | 473 | 105.2 | 111 | 5 | 53 | 0 | 2 | 89 | 7 | 0 | 54 | 53 | 4.51 | 1.55 | |
1995 | 24 | 5 | 1 | 0 | 0 | 2 | 3 | 0 | -- | .400 | 202 | 46.2 | 47 | 2 | 18 | 0 | 2 | 26 | 4 | 1 | 24 | 21 | 4.05 | 1.39 | |
1996 | 닛폰햄 | 23 | 0 | 0 | 0 | 0 | 1 | 2 | 2 | -- | .333 | 181 | 43.0 | 32 | 3 | 20 | 3 | 0 | 39 | 0 | 0 | 19 | 18 | 3.77 | 1.21 |
1997 | 65 | 1 | 0 | 0 | 0 | 9 | 4 | 0 | -- | .692 | 630 | 147.0 | 140 | 13 | 62 | 10 | 6 | 136 | 7 | 0 | 61 | 57 | 3.49 | 1.37 | |
1998 | 66 | 1 | 0 | 0 | 0 | 2 | 3 | 5 | -- | .400 | 400 | 93.2 | 74 | 8 | 47 | 4 | 3 | 71 | 3 | 0 | 37 | 32 | 3.07 | 1.29 | |
1999 | 62 | 2 | 0 | 0 | 0 | 1 | 4 | 6 | -- | .200 | 332 | 77.1 | 62 | 9 | 47 | 2 | 2 | 79 | 4 | 0 | 31 | 31 | 3.61 | 1.41 | |
2000 | 36 | 11 | 3 | 1 | 0 | 8 | 4 | 0 | -- | .667 | 403 | 93.2 | 79 | 11 | 49 | 1 | 2 | 82 | 4 | 0 | 50 | 47 | 4.52 | 1.37 | |
2001 | 21 | 21 | 3 | 1 | 0 | 9 | 8 | 0 | -- | .529 | 529 | 121.0 | 114 | 24 | 50 | 1 | 9 | 89 | 1 | 0 | 73 | 68 | 5.06 | 1.36 | |
2002 | 17 | 9 | 0 | 0 | 0 | 2 | 7 | 0 | -- | .222 | 228 | 51.2 | 49 | 10 | 25 | 0 | 4 | 44 | 2 | 0 | 34 | 33 | 5.75 | 1.43 | |
2003 | 한신 | 26 | 24 | 3 | 1 | 0 | 10 | 5 | 0 | -- | .667 | 573 | 137.2 | 138 | 20 | 25 | 0 | 7 | 135 | 3 | 1 | 63 | 57 | 3.73 | 1.18 |
2004 | 22 | 21 | 0 | 0 | 0 | 7 | 5 | 0 | -- | .583 | 513 | 116.0 | 143 | 13 | 28 | 0 | 10 | 76 | 1 | 0 | 68 | 66 | 5.12 | 1.47 | |
2005 | 24 | 24 | 1 | 0 | 0 | 15 | 3 | 0 | 0 | .833 | 531 | 132.1 | 125 | 11 | 25 | 1 | 6 | 90 | 0 | 0 | 44 | 44 | 2.99 | 1.13 | |
2006 | 25 | 25 | 1 | 0 | 0 | 12 | 11 | 0 | 0 | .522 | 642 | 150.1 | 154 | 11 | 55 | 1 | 9 | 86 | 3 | 0 | 61 | 53 | 3.17 | 1.39 | |
2007 | 25 | 25 | 0 | 0 | 0 | 10 | 8 | 0 | 0 | .556 | 582 | 129.1 | 145 | 11 | 52 | 4 | 3 | 74 | 5 | 0 | 68 | 59 | 4.11 | 1.52 | |
2008 | 27 | 27 | 1 | 0 | 1 | 11 | 6 | 0 | 0 | .647 | 668 | 162.1 | 154 | 9 | 41 | 1 | 9 | 89 | 2 | 0 | 60 | 54 | 2.99 | 1.20 | |
2009 | 22 | 22 | 1 | 1 | 0 | 8 | 8 | 0 | 0 | .500 | 524 | 119.1 | 127 | 10 | 42 | 1 | 8 | 64 | 2 | 0 | 57 | 48 | 3.62 | 1.42 | |
2010 | 19 | 19 | 0 | 0 | 0 | 7 | 8 | 0 | 0 | .467 | 441 | 100.0 | 110 | 13 | 33 | 3 | 6 | 58 | 3 | 1 | 54 | 48 | 4.32 | 1.43 | |
2011 | 6 | 6 | 0 | 0 | 0 | 0 | 2 | 0 | 0 | .000 | 122 | 28.0 | 29 | 1 | 12 | 0 | 1 | 18 | 1 | 0 | 13 | 11 | 3.54 | 1.46 | |
2012 | 라쿠텐 | 4 | 4 | 0 | 0 | 0 | 0 | 2 | 0 | 0 | .000 | 80 | 17.0 | 27 | 0 | 1 | 0 | 3 | 4 | 0 | 0 | 10 | 10 | 5.29 | 1.65 |
통산:21년 | 627 | 258 | 15 | 4 | 1 | 129 | 106 | 22 | 0 | .549 | 8484 | 1970.2 | 1953 | 194 | 744 | 35 | 93 | 1418 | 57 | 4 | 934 | 859 | 3.92 | 1.37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7. 1. 첫 기록
기록 | 날짜 | 상대팀 | 구장 |
---|---|---|---|
첫 등판 | 1991년 8월 9일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16차전 | 니시쿄고쿠 구장 |
첫 탈삼진 | 1993년 4월 23일 | 오릭스 블루웨이브 1차전 | 그린 스타디움 고베 |
첫 세이브 | 1993년 5월 1일 |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3차전 | 후지이데라 구장 |
첫 승리 | 1993년 5월 6일 | 오릭스 블루웨이브 6차전 | 후쿠오카 돔 |
첫 선발 | 1993년 6월 12일 | 지바 롯데 마린스 10차전 | 후쿠오카 돔 |
첫 선발 승리 | 1993년 6월 22일 | 세이부 라이온스 전 |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
첫 완투 승리 | 1993년 9월 29일 | 닛폰햄 파이터스 25차전 | 도쿄 돔 |
첫 완봉 승리 | 2000년 8월 26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2차전 | 도쿄 돔 |
7. 2. 기록 달성 경력
- 통산 1000투구회 : 2003년 9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2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역대 294번째.
- 통산 1000탈삼진 : 2005년 8월 25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역대 116번째.
- 통산 500경기 등판 : 2006년 4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역대 116번째.
- 통산 100승 : 2007년 7월 6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7차전(나고야 돔). 역대 122번째.
- 통산 1500투구회 : 2007년 8월 1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역대 158번째.
- 통산 600경기 등판 : 2010년 4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3차전(나고야 돔). 역대 35번째.
- 월간 MVP: 2회 (2000년 8월, 2005년 9월)
7. 3. 기타
; 첫 기록:* 첫 등판: 1991년 8월 9일,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16차전(니시쿄고쿠 구장), 4회말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3이닝 4실점
:* 첫 탈삼진: 1993년 4월 23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1차전 (그린 스타디움 고베), 7회말에 켈빈 토베로부터
:* 첫 세이브: 1993년 5월 1일,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3차전(후지이데라 구장), 7회말 2사에서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2와 1/3이닝 무실점
:* 첫 승리: 1993년 5월 6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6차전(후쿠오카 돔), 7회초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3이닝 무실점
:* 첫 선발: 1993년 6월 12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10차전(후쿠오카 돔), 5와 2/3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
:* 첫 선발 승리: 1993년 6월 22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10차전(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7과 0/3이닝 2실점
:* 첫 완투 승리: 1993년 9월 29일,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25차전(도쿄 돔), 9이닝 1실점
:* 첫 완봉 승리: 2000년 8월 26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22차전(도쿄 돔)
:* 첫 안타·첫 타점: 2003년 4월 1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차전(도쿄 돔), 4회초에 우에하라 고지로부터
; 이정표 기록
:* 1000 투구 이닝: 2003년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22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5회말에 노무라 겐지로로부터 헛스윙 삼진으로 2아웃을 잡아 달성 ※역대 294번째
:* 1000 탈삼진: 2005년 8월 2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6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2회말에 마이크 로마노로부터 ※역대 116번째
:* 500경기 등판: 2006년 4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선발 등판으로 6이닝 무실점·승리 투수 ※역대 116번째
:* 100승: 2007년 7월 6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7차전(나고야 돔), 선발 등판으로 6이닝 3안타 무실점 ※역대 122번째
:* 1500 투구 이닝: 2007년 8월 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1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2회초에 세스 그라이싱어를 투수 땅볼로 잡아 달성 ※역대 158번째
:* 600경기 등판: 2010년 4월 4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3차전(나고야 돔), 선발 등판으로 7이닝 1실점 ※역대 35번째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5회(1994년, 1997년, 2001년, 2005년, 2008년)
:* 규정 투구 이닝 미달에서의 최다승 ※역대 2번째
참조
[1]
웹사이트
ハイタイド
http://www.hightide.[...]
[2]
문서
勤務先は協力会社の[[太平工業]]だった(かずさ市民応援団会報の記事より)。
[3]
뉴스
下柳剛のシモネタ発見 22年間のプロ生活 礎となったは新日鉄君津での3年間
https://web.archive.[...]
スポニチアネックス
2014-01-10
[4]
서적
もっと投げたくはないか 権藤博からのメッセージ
日刊スポーツ出版社
2014
[5]
Youtube
球速ダウンでクビ回避!? 下柳剛『遅い球で打ち取る』投球術【ピッチャーズバイブル】
https://www.youtube.[...]
2022-03-29
[6]
웹사이트
防御率54.00、交通事故で罰金700万円、クビ寸前の左腕が最年長最多勝に…「アイアン・ホーク」下柳剛【逆転野球人生】
https://column.sp.ba[...]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23-08-21
[7]
Youtube
【交通事故が…】福岡ダイエーホークス時代の不仲同僚との意外な仲直り!超タフさからアイアンホークと呼ばれたが… - YouTube
https://www.youtube.[...]
[8]
서적
2000年度主要記録集「10年目で初の完封勝利」より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9]
웹사이트
"35歳で殴られたくねぇな" 阪神へのトレードを拒否した一因は星野仙一さん【下柳剛連載#15】
https://note.tokyo-s[...]
[10]
웹사이트
第11回「印象に残る契約更改」名鑑
https://yakyutaro.jp[...]
[11]
Youtube
阪神タイガースは衝撃の連続!?「今のままでは勝たれへんなぁ〜」下柳剛さんが語るセ・リーグで勝てる投手になる秘訣とは!?
https://www.youtube.[...]
[12]
문서
9月15日対オリックス26回戦6回5安打2失点で勝ち負け無し、9月22日対ダイエー27回戦6回2安打無失点で勝利投手となった。
[13]
문서
最初に規定投球回をクリアした1997年の時は先発1試合のみで残りは全てリリーフ登板で、今回初めて先発登板だけで規定投球回をクリアした
[14]
뉴스
史上初40代バッテリーも惑ってシモた…
http://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09-07-21
[15]
웹사이트
阪神・下柳、最後のマウンドで虎党に別れ
http://www.sanspo.co[...]
サンケイスポーツ
2011-09-24
[16]
웹사이트
【阪神】下柳、桜井ら8選手に戦力外通告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1-10-09
[17]
웹사이트
下柳が50球でアピール!楽天入団テスト
http://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12-02-02
[18]
뉴스
【楽天】下柳3失点降板「自分のミス」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04-01
[19]
뉴스
楽天下柳粘投、無念2敗も43歳持ち味全開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04-09
[20]
뉴스
【楽天】下柳3失点降板「申し訳ない」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04-15
[21]
뉴스
【楽天】未勝利の下柳2軍で再調整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04-26
[22]
웹사이트
来季の選手契約に関して
http://www.rakutenea[...]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オフィシャルサイト
2012-10-02
[23]
간행물
背番号にまつわるエトセトラ察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12-02
[24]
뉴스
本邦初公開 下柳氏が楽天入団時に背番号「91」選んだ理由
https://web.archive.[...]
2014-02-10
[25]
뉴스
下柳マイナー不合格 今後は「じっくり」
http://iw2.nikkanspo[...]
日刊スポーツ
2013-03-01
[26]
문서
現役引退直後の同月23日には、朝日放送([[朝日放送テレビ]])の『[[虎バン|虎バンスペシャル]]』で、トライアウトへの密着取材の模様を放送した。
[27]
웹사이트
皆様へ
http://shimoyanagi.t[...]
2013-03-20
[28]
웹사이트
下柳が現役引退を発表
https://web.archive.[...]
MSN産経ニュース
2013-03-20
[29]
문서
同日の『ABCフレッシュアップベースボール』[[オリックス・バファローズ]]対阪神タイガースのオープン戦中継(関西ローカル放送)において、阪神時代にバッテリーを組んだ矢野とのダブル解説で、解説者としての活動を本格的に開始。
[30]
문서
"[[FLASH (写真週刊誌)|FLASH]]"2013年6月4日号でのインタビューなどより。
[31]
간행물
惜別球人
2013-05-06
[32]
웹사이트
下柳氏「楽しく笑って終わりたい」母校で同級生と引退試合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3-12-01
[33]
웹사이트
スポニチアネックス「下柳剛のシモネタ発見」
http://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34]
웹사이트
元阪神・下柳氏 アマ指導者は「コミュニケーション能力が求められる」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5-12-21
[35]
웹사이트
学生野球資格回復に関する規則第4条による適性認定者
http://www.student-b[...]
[36]
웹사이트
金本体制へ組閣着手 片岡氏、矢野氏、下柳氏候補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5-10-20
[37]
웹사이트
阪神OB下柳氏 来春キャンプで臨時コーチに 伸び悩む若手左腕指導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5-10-31
[38]
웹사이트
「孤独のグルメ」
http://shimoyanagi.t[...]
下柳剛オフィシャルブログ
2017-04-07
[39]
서적
日本プロ野球偉人伝 vol.14 2000→2005編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14
[40]
웹사이트
『超・人』過去の放送
https://web.archive.[...]
[41]
뉴스
【告白】試合中「スゲェだろ」と自慢された衝撃の変化球!?2432安打の石井琢朗さんが嫌いだった4人の投手【いやらしい捕手も明らかに】【マシンガン打線とお義父さんSP
https://www.youtube.[...]
2022-01-28
[42]
Youtube
打者も恐れる攻めの変化球・シュート 最高の使い手は?【フルタの方程式AWARDS】
https://www.youtube.[...]
[43]
Youtube
星野・下柳・渡辺俊が明かす 遅い球でも打者を打ち取るテクニック【ピッチャーズバイブル】
https://www.youtube.[...]
[44]
웹사이트
元阪神・下柳剛氏 親戚・吉田麻也とW杯中もずっとLINE!ドイツ戦後「優勝や!」と送ると吉田は…
https://www.sponichi[...]
2022-12-15
[45]
문서
週刊ベースボール誌の記事より。
[46]
뉴스
下柳剛のシモネタ発見
http://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4-05-05
[47]
문서
楽天から戦力外通告を受けた直後(2012年10月)には、金本の引退記念特別番組『猛虎ファイル|withタイガース ラストスイング〜さらば金本知憲』(引退試合翌日の同月10日に毎日放送で放送)で人生初のナレーションに挑んでいる。
[48]
웹사이트
下柳が小学校でぶっちゃけトーク
https://www.nikkansp[...]
[49]
웹사이트
藤川球児オフィシャルウェブサイト | 素晴らしい先輩達(下柳さん編)
http://kyuji22.tblog[...]
[50]
문서
『ガンバレ日本プロ野球!?』(J SPORTS)2011 - 2012シーズン・第6回
[51]
뉴스
42歳下柳が20代女性と結婚!!!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0-06-15
[52]
문서
日本ハムに移籍した1996年は、広島東洋カープから加入した秋村謙宏投手(現:NPB審判員)が24番を着けたため、岡本透投手の引退で空いていた11番を着けた。翌1997年、秋村が00番に変更する形で24番を譲り受けた。
[53]
뉴스
阪神、下柳の抜けた“穴”デカかった!
http://www.zakzak.co[...]
ZAKZAK
2012-01-30
[54]
뉴스
日本で学び米で復活2人の大リーガー
朝日新聞
2015-07-23
[55]
웹사이트
虎OB始球式 下柳氏「照れくさかった」&矢野氏「シモらしい」
https://web.archive.[...]
2015-06-29
[56]
웹사이트
「3番勝負」は金本監督に軍配 下柳臨時コーチから右前打
https://www.sponichi[...]
2016-02-11
[57]
웹사이트
金本監督「変わったと言わせたい」
https://www.daily.co[...]
2016-02-14
[58]
문서
2月27日放送分、テーマは「連続記録」。
[59]
Youtube
【名ショートBEST3 !!】 下柳が選ぶ“消えた天才”「最悪のセカンドならすぐ言える」
https://www.youtube.[...]
[60]
웹사이트
スキートレに初挑戦した夜、金縛りになって見たのは…
https://web.archive.[...]
2014-01-27
[61]
웹사이트
牧歌的だった日本ハム時代のキャンプ 桜庭和志と“競走”も
https://web.archive.[...]
2014-02-17
[62]
웹사이트
『朝だ!生です旅サラダ』Facebook公式アカウントに2017年3月22日付で掲載された記事
https://ja-jp.facebo[...]
[63]
웹사이트
動画再生なんと63万回!今だから話す「秀太事件」その真相は…
https://web.archive.[...]
2014-12-15
[64]
웹사이트
グラブ叩き付け激怒「おどりゃあ!」は照れ隠しだった? 下柳剛氏、阪神時代に起きた“秀太事件”の裏側を告白 (2020年4月13日)
https://www.excite.c[...]
2022-11-11
[65]
뉴스
下柳氏があの事件の後日談「みんなビクビク」 「ケタが違う」阪神金銭事情も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2-01-23
[66]
Youtube
【きっと好きになる❤️】年下リーダー赤星を支えた⁉️金本&下柳の男気🔥グローブ叩きつけ事件の㊙️裏話「ただ、ひとつ不満なのは…」【第4話】
https://www.youtube.[...]
2022-11-11
[67]
웹사이트
ルーキーの“危ないネタ”に笑う、金本新監督の豪快なムードづくり。(鈴木忠平)
https://number.bunsh[...]
2022-11-11
[68]
웹사이트
秀太スカウトポロリ…金本VS下柳ガチ対決で“伝説の珍場面”再現
https://www.sponichi[...]
2016-02-11
[69]
뉴스
ノー・モア「グラブ叩きつけ」 阪神・田中二軍コーチ、“あの事件”をいじられ苦笑い
https://www.sponichi[...]
2022-11-11
[70]
웹사이트
こいぬたち
http://shimoyanagi.t[...]
2007-07-30
[71]
웹사이트
"『下柳剛のシモネタ発見』2014年3月17日付記事"
https://web.archive.[...]
2014-03-17
[72]
블로그
下柳剛オフィシャルブログ2014年2月24日付記事「ペットへの感謝状」
http://shimoyanagi.t[...]
2014-02-24
[73]
웹사이트
社会福祉法人 日本聴導犬協会公式サイト
http://www.hearingdo[...]
[74]
웹사이트
下柳剛公式サイトチャリティーオークション
http://www.shimoyana[...]
[75]
웹사이트
"シモ'Sキッチン! GAORA"
https://web.archive.[...]
[76]
Youtube
"シモ'S キッチン"
https://www.youtube.[...]
[77]
웹사이트
"シモ'Sキッチン! 無料動画GYAO!"
https://web.archiv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