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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발 트로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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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니발 트로일로(Aníbal Troilo)는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탱고 음악가로, 반도네온 연주자, 작곡가,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20세기 탱고 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1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트로일로는 '피추코'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10세에 반도네온을 시작하여 평생 이 악기를 연주했다. 1937년 자신의 악단을 결성하여 1975년 사망할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로베르토 그렐라,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과 협연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특징으로 하며, '수르'와 '마리아' 등의 곡은 탱고 팬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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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발 트로일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71년의 아니발 트로일로
1971년의 트로일로
별칭피추코
출생일1914년 7월 11일
출생지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망일1975년 5월 18일(60세)
사망지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적아르헨티나
직업
직업악단 지휘자
작곡가
반도네온 연주자
악기반도네온
장르탱고
활동 기간
활동 기간1926년 - 1975년

2. 생애

아니발 트로일로는 1914년 7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75년 5월 18일 뇌졸중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피추코"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울보"를 뜻하는 나폴리 방언에서 유래했다.[1]

10살 때 첫 반도네온을 구입하고, 11살에 첫 공연을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30년대 엘비노 바르다로,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등과 6중주단에서 활동했고, 후안 다리엔조 등 유명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했다. 1937년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발탁하는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탱고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1951년,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오메로 만치가 사망하자, 트로일로는 깊은 슬픔에 빠져 1년 넘게 우울증을 겪었다. 그는 친구를 기리기 위해 탱고 "레스폰소"(Responso)를 작곡했다.[1]

트로일로는 라 차카리타 묘지에 묻혔으며, 아르헨티나 국회는 2005년 그의 생일인 7월 11일을 반도네온의 날로 선포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2]

2. 1. 어린 시절과 음악적 성장

아니발 트로일로는 1914년 7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바스토에서 펠리사 바뇰리와 아니발 트로일로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피추코"(Pichuco)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울보"를 뜻하는 나폴리 방언 "피치우소"(picciuso)에서 변형된 것이다. 그는 남매와 함께 형제자매를 두었다.

어린 시절, 트로일로는 동네 술집에서 반도네온 연주를 들었다. 10살 때 어머니를 설득하여 첫 번째 반도네온을 샀고, 평생 그 악기를 소중히 간직하며 연주했다.

1925년 11살의 나이에 첫 공연을 했고, 14살 때 첫 5중주단을 결성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서 가장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인 카를로스 페예그리니 상업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공부했다.

1930년 12월, 트로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엘비노 바르다로, 피아니스트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바이올리니스트 알프레도 고비, 반도네온 연주자 미겔 후라도(나중에 시리아코 오르티스로 교체), 더블 베이스 연주자 루이스 아데소로 구성된 유명한 바르다로-푸글리에세 6중주단에 합류했다. 이후 트로일로는 후안 "파초" 마글리오, 훌리오 데 카로, 후안 다리엔조, 앙헬 다고스티노, 후안 카를로스 코비안을 포함한 수많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

2. 2. 다양한 악단 활동과 명성

1930년 12월, 트로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엘비노 바르다로, 피아니스트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바이올리니스트 알프레도 고비, 반도네온 연주자 미겔 후라도(나중에 시리아코 오르티스로 교체), 더블 베이스 연주자 루이스 아데소로 구성된 유명한 바르다로-푸글리에세 6중주단에 합류했다.[1] 이후 후안 "파초" 마글리오, 훌리오 데 카로, 후안 다리엔조, 앙헬 다고스티노, 후안 카를로스 코비안을 포함한 수많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1]

1937년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라이브와 스튜디오에서 거의 끊임없이 연주했다.[1] 1953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기타리스트 로베르토 그렐라와 듀엣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트로일로-그렐라 4중주단이 되었다. 1968년, 그렐라와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앙상블인 아니발 트로일로 4중주단을 결성했는데, 여기에는 전자기타의 우발도 데 리오, 피아노의 오스발도 베를링기에리, 더블 베이스의 라파엘 델 바뇨가 추가되었다. 베를링기에리는 나중에 호세 콜랑헬로로 교체되었으며, 그는 말년에 아니발 트로일로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했다. 이 외에도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함께 반도네온 듀엣으로 "엘 모티보"(El motivo)와 "볼베르"(Volver) 두 곡을 녹음했다.[1]

아니발 트로일로 (중앙, 반도네온 연주). 왼쪽부터: 오스발도 프레세도, 호세 라자노, 프란시스코 카나로 그리고 엔리케 산토스 디스체폴로, 1944년.


아니발 트로일로의 작곡 및 편곡은 화려하고 중후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 작곡의 「반도네온의 탄식」에서의 트로일로 악단의 정교한 반도네온 변주가 알려져 있으며, 트로일로 악단의 대표곡이 되었다. 1948년에 작곡한 「수르」와 1956년에 작곡한 「마지막 술잔」은 탱고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또한, 노래도 중시하여, 「마리아」나 「수르」의 노래가 들어간 녹음이 지금도 탱고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은 1975년까지 지속되었고, 다작의 녹음을 남겼으며, 유명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1940년대 SP 시대에는 속도를 중시한 단정한 테이크로 알려졌지만, 1960년대 LP 시대부터는 탱고의 현대화에 발맞춰 화성이나 텍스처에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보였다. 1970년대는 트로일로의 기교 쇠퇴도 느껴지지만, 마지막까지 탱고의 보수 본류를 의식한 테이크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가수로는 로베르토 고예네체, 에드문도 리베로가 있었다. 트로일로 악단의 연주로 리베로가 부른 탱고 「수르」는 지금도 자주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연주자로는 오를란도 고니와 호세 바소가 있었다.

반도네온 연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어느 날 병결한 토토 로드리게스를 대신해 아니발 트로일로 앞에서 반도네온 실력을 선보이고 즉석에서 트로일로 악단에 채용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 3.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 결성과 활동

1930년 12월, 트로일로는 엘비노 바르다로,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알프레도 고비 등과 함께 유명한 바르다로-푸글리에세 6중주단에 합류했다.[1] 이후 후안 "파초" 마글리오, 훌리오 데 카로, 후안 다리엔조, 앙헬 다고스티노, 후안 카를로스 코비안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1]

1937년,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라이브와 스튜디오에서 거의 끊임없이 연주했다.[1] 1953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기타리스트 로베르토 그렐라와 듀엣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트로일로-그렐라 4중주단이 되었다. 1968년에는 자신만의 앙상블인 아니발 트로일로 4중주단을 결성했는데, 여기에는 전자기타 연주자 우발도 데 리오, 피아니스트 오스발도 베를링기에리, 더블 베이스 연주자 라파엘 델 바뇨가 추가되었다.[1] 베를링기에리는 나중에 호세 콜랑헬로로 교체되었으며, 그는 말년에 아니발 트로일로 오케스트라에서도 연주했다. 트로일로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함께 반도네온 듀엣으로 "엘 모티보"(El motivo)와 "볼베르"(Volver) 두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1]

아니발 트로일로의 작곡 및 편곡은 화려하고 중후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 작곡의 「반도네온의 탄식」은 트로일로 악단의 정교한 반도네온 변주로 유명하며, 트로일로 악단의 대표곡이 되었다. 1948년에 작곡한 「수르」와 1956년에 작곡한 「마지막 술잔」은 탱고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한, 「마리아」나 「수르」처럼 노래를 중시한 녹음도 탱고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은 1975년까지 많은 음반을 녹음하며 유명 인재들을 배출했다. 1940년대 SP 시대에는 속도를 중시한 단정한 연주로 알려졌지만, 1960년대 LP 시대부터는 탱고의 현대화에 발맞춰 화성과 텍스처가 풍부한 작품을 선보였다. 1970년대에는 트로일로의 기교 쇠퇴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탱고의 보수 본류를 의식한 연주를 계속했다.

트로일로 악단의 가수로는 로베르토 고예네체(Roberto Goyeneche), 에드문도 리베로(Edmundo Rivero)가 있었다. 특히 리베로가 부른 탱고 「수르」는 지금도 자주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연주자로는 오를란도 고니(Orlando Goñi)와 호세 바소(José Basso)가 있었다.

어느 날, 반도네온 연주자 토토 로드리게스가 병으로 결근하자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가 아니발 트로일로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즉석에서 트로일로 악단에 채용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 4. 말년과 죽음

트로일로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시인 오메로 만치 (1907–1951)의 죽음으로 1년 넘게 깊은 우울증을 겪었다. 그는 시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탱고 "레스폰소"(Responso)를 작곡했다.[1]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최고 반도네온"은 1975년 5월 18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탈리아 병원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라 차카리타 묘지의 "유명 인사들의 구역"(Rincón de los Notables)에 아구스틴 마갈디 및 로베르토 고예네체 옆에 묻혔다.[1] 2005년, 아르헨티나 국회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명을 기념하기 위해 7월 11일 (트로일로의 생일)을 반도네온의 날로 선포했다.[2]

3. 주요 작품

제목작사가발표 연도
내 평생(Toda mi vida)호세 마리아 콘투르시1941년
내가 가진 모든 목소리로(Con toda la voz que tengo)1941년
그래서 내가 쓸모가 없다(Total pa’ qué sirvo)1941년
탱고의 거리(Barrio de tango)오메로 만지1942년
얘들아 춤추라고(Pa’ que bailen los muchachos)엔리케 카디카모1942년
당신을 기억하며(Acordándome de vos)1942년
작은 왈츠 친구(Valsecito amigo)1942년
가루아(Garúa)엔리케 카디카모1943년
한밤중(Media noche)헥토르 갈리아르디1944년
나이페(Naipe)1944년
가라스(Garras)1945년
마리아(María)카툴로 카스티요1945년
셋과 둘(Tres y dos)1946년
내 개와 함께(Con mi perro)1946년
나의 슬픈 탱고(Mi tango triste)1946년
거리의 로맨스(Romance de barrio)1947년
수르(Sur)오메로 만지1948년
체 반도네온(Che, bandoneón)오메로 만지1950년
라 트람페라(La trampera)1951년
디세폴린(Discepolín)오메로 만지1951년
레스폰소(Responso)1951년
페드로 마피아에게(A Pedro Maffia)1953년
세레나데가 돌아온다(Vuelve la serenata)1953년
노래 하나(Una canción)카툴로 카스티요1953년
나의 안뜰(Patio mío)1953년
마요랄의 밀롱가(Milonga del mayoral)1953년
라 칸티나(La cantina)1954년
새로운 경비대에(A la guardia nueva)1955년
마지막 취기(La última curda)카툴로 카스티요1956년
그들은 당신을 말레보라고 부른다(Te llaman Malevo)오메로 알도 에스포시토1957년
오메로에게(A Homero)카툴로 카스티요1961년
그래서 나는 어떻다고?(¿Y a mí qué?)1962년
데젠쿠엔트로(Desencuentro)1962년
코플라스(Coplas)1962년
나는 삼십년대 사람(Yo soy del treinta)헥토르 멘데스1964년
슬픈 밀롱게로(Milonguero triste)1965년
달 탱고(Dale tango)1966년
우리 동네의 야상곡(Nocturno a mi barrio)1969년
라 파르다의 밀롱가(Milonga de La Parda)1969년
마지막 가로등(El último farol)1969년
페초리아(Fechoría)1970년
노래 하나(Una canción)1971년
라 파트라냐(La patraña)1972년
당신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탱고(Tu penúltimo tango)1975년


4.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은 1975년까지 매우 많은 음반을 녹음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1940년대 SP 시대에는 빠른 속도와 단정한 연주로 유명했지만, 1960년대 LP 시대에는 탱고의 현대화 경향에 발맞춰 화성과 텍스처가 풍부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70년대에는 트로일로의 기교가 다소 쇠퇴한 것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탱고의 보수적인 본류를 지키려는 연주를 계속했다.[1]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은 많은 유명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음반명발매 연도협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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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모든 목소리로1959프란시스코 피오렌티노
추억이 아로새겨질 때1959알베르토 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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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피추코1966
피오렌티노에게 헌정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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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의 밀롱가1966
오늘과 영원한 탱고1966오스발도 푸글리에세
트로일로 – 리베로1966에드문도 리베로
아니발 트로일로의 최고1967
수출용 아니발 트로일로 (2권)1967
말 없는 피추코 (2권)1967
더도 말고 덜도 말고1968
우리의 부에노스 아이레스1968
우리 동네를 위한 야상곡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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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부에노스 아이레스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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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호메로1972
살타로 돌아가다1973디노 살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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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의 탄식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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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추억1978알베르토 마리노
40년대의 트로일로1979
탱고 프랑 아르헨티나1983


4. 1. 주요 단원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에서 활동했던 주요 단원들은 다음과 같다.

  • 가수
  • 로베르토 고예네체(Roberto Goyeneche)
  • 에드문도 리베로(Edmundo Rivero) : 리베로가 부른 탱고 「수르」는 현재까지도 자주 들을 수 있다.[1]
  • 피아노 연주자
  • 오를란도 고니(Orlando Goñi)
  • 호세 바소(José Basso)[1]


어느 날, 반도네온 연주자 토토 로드리게스가 병으로 결석하자,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가 아니발 트로일로 앞에서 반도네온 실력을 선보였고, 즉석에서 트로일로 악단에 채용되었다는 일화가 있다.[1]

5. 평가 및 영향

2005년 아르헨티나 국회는 아르헨티나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명인 아니발 트로일로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7월 11일을 반도네온의 날로 선포했다.[2]

참조

[1] 웹사이트 Buscan convertir en museo la casa de Troilo http://www.parlament[...] parlamentario.com 2007-05-17
[2] 웹사이트 El día del bandoneón https://www.pagina12[...] pagina12.com 2005-07-13
[3] 문서 http://www.elort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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