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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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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Henri-Frédéric Amiel, 1821-1881)은 스위스의 철학자, 시인, 비평가로, 특히 사후 출판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로 유명하다. 그는 제네바 대학교에서 미학과 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시, 역사 연구, 철학 에세이를 저술했다. 아미엘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으나, 사후 출판된 그의 일기는 사상의 깊이와 자기 성찰적인 면모로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서 중에는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로 시작하는 어록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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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의 초상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c. 1888
본명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출생1821년 9월 27일
출생지제네바, 스위스
사망1881년 5월 11일
사망지제네바, 스위스
국적스위스
직업철학자, 시인, 비평가
활동 시기19세기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의 서명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의 서명

2. 생애

1821년 제네바에서 태어난 아미엘은 낭트 칙령 폐지 이후 스위스로 이주한 위그노 가문의 후손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공부했으며, 특히 베를린에서 독일 철학을 깊이 연구했다.

1849년 제네바 아카데미미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1854년에는 철학 교수가 되어 평생 재직했다. 교수 임명 과정에서의 정치적 상황은 그를 다소 고립시켰으나, 이는 그가 후대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일기''(''Journal Intime'') 집필에 몰두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일기''는 그의 사후 출판되어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학자 마크 패티슨의 제안으로 영국 작가 메리 오거스타 워드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1]

''일기'' 외에도 여러 권의 집을 출간했으며, 에라스무스, 마담 드 스탈 등 여러 인물에 대한 연구서를 저술했다. 그의 뮤즈였던 루이즈 와이더(에제리)와의 방대한 서신도 보존되어 2004년에 출판되었다.[2]

아미엘은 1881년 5월 11일 제네바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클라랑스에 묻혔다. 그의 ''일기''에 나타난 내성적인 성찰은 후대 프랑스 철학자 루도빅 뒤가가 탈인격화 개념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3]

2. 1. 초기 생애

1821년 제네바에서 상인인 아버지 앙리 아미엘과 어머니 카롤린 브란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미엘의 가문은 낭트 칙령 폐지 이후 스위스로 이주한 위그노 가문의 후손이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 프레데릭 아미엘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다. 태어난 제네바에서 학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유럽 여러 나라를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지적 경험을 쌓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9개월간 머물렀고, 1844년부터 1848년까지는 베를린에 체류하며 독일 철학을 깊이 공부했다. 베를린에서는 셸링에게 철학을, Friedrich Eduard Beneke|프리드리히 에두아르트 베네케eng에게 심리학을 배웠으며, 신학 등 다른 학문도 접했다.

1849년 제네바로 돌아와 ''Du Mouvement littéraire dans la Suisse romane et de son avenir'' (스위스 프랑스어권의 문학적 운동과 그 미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평가를 바탕으로 같은 해 제네바 아카데미미학 및 프랑스 문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1854년에는 철학 교수가 되었다. 이 교수직 임명은 당시 민주당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도시의 귀족당으로부터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2. 2. 학문적 여정

1821년 제네바에서 태어난 아미엘은 낭트 칙령 폐지 이후 스위스로 이주한 위그노 가문의 후손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 프레데릭 아미엘의 보살핌을 받은 그는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유럽 각지를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9개월간 머물렀으며, 1844년부터 1848년까지는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 철학을 깊이 연구했다. 이 시기 셸링에게 철학을, Friedrich Eduard Beneke|프리드리히 에두아르트 베네케eng에게 심리학을 배웠으며, 신학 등 다른 학문도 공부했다.

1849년 제네바로 돌아온 아미엘은 ''Du Mouvement littéraire dans la Suisse romane et de son avenir'' (스위스 프랑스어권의 문학적 운동과 그 미래)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의 좋은 평가에 힘입어 제네바 아카데미(현 제네바 대학교)의 미학 및 프랑스 문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1854년에는 철학 교수가 되어 사망할 때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이 교수직 임명은 당시 제네바의 민주당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도시의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귀족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립은 그가 후대에 ''일기''(''Journal Intime'') 집필에 몰두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1]

2. 3. 교수 임용과 갈등

1849년 제네바 아카데미의 미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1854년에는 윤리학 교수가 되었다. 이러한 임명은 당시 제네바민주당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도시의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귀족당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립된 상황은 아미엘이 그의 대표작이자 사후에 출판되어 유럽 전역에 명성을 안겨준 ''일기''(Journal Intime프랑스어)를 집필하는 배경이 되었다.

2. 4. 죽음

아미엘의 묘


아미엘은 1881년 5월 11일 제네바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스위스 보 주 클라랑스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6장 8절의 구절이 프랑스어로 새겨져 있다: "CELUI QUI SEME POUR L'ESPRIT MOISSONERA DE L'ESPRIT LA VIE ETERNELLE." 이는 한국어 성경에서 "자기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로 번역된다.

프랑스 철학자 루도빅 뒤가는 아미엘의 사후 출판된 ''일기''("Journal Intime")에서 탈인격화라는 용어를 가져와 새로운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뒤가는 아미엘이 "모든 것이 나에게 이상하다. 나는 내 몸 밖, 개인으로서의 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탈인격화되고, 초연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쓴 부분을 문자 그대로의 심리 상태 묘사로 보았다. 그러나 아미엘 자신은 몇 단락 뒤에 "나에게 이러한 정신적 경험(변형 정신)은 철학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3]

3. 사상

아미엘의 사상은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는 생전에 다수의 시집과 역사 및 철학 연구서, 철학 에세이 등을 출간했다. 이 시기 작품 중에서는 애국적인 내용을 담은 시 ''Roulez, tambours!프랑스어'' (1957)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아미엘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계기는 사후에 발견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Journal Intime", 1839년-1881년)였다. 이 일기는 사상의 명료함, 깊은 자기 성찰, 정확한 현실 인식, 그리고 실존에 대한 다소 체념적인 시각과 날카로운 자기 비판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특징은 레프 톨스토이를 포함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유럽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고노 요이치 등의 번역을 통해 오랫동안 읽혀 왔다.

아미엘의 성찰적 사상을 보여주는 유명한 경구는 다음과 같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3. 1. 『일기』("Journal Intime")

제네바 아카데미 교수 임명은 민주당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 도시 문화를 장악하던 귀족당의 반발을 사 아미엘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고립은 아미엘이 사후에 출판되어 유럽 전역에 명성을 얻게 된 유일한 저서, 바로 ''일기''("Journal Intime")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학자 마크 패티슨의 제안으로 영국 작가 메리 오거스타 워드가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1]

아미엘의 ''일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출판되었지만, 생전에 얻지 못했던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839년부터 1881년까지 쓰인 이 방대한 기록은 총 17,000 페이지에 달하며, 사상의 명료함, 깊은 자기 성찰, 정확한 묘사, 그리고 실존에 대한 체념적인 시각과 자기 비판적인 성향 등으로 주목받았다.

''일기'' 외에도 아미엘은 여러 권의 집과 에라스무스, 마담 드 스탈 등 여러 작가에 대한 연구서를 남겼다. 그의 뮤즈였던 루이즈 와이더(에제리라는 애칭으로 불림)와의 방대한 서신도 보존되어 2004년에 출판되었다.[2] 생전에 출판된 작품 중에서는 애국적인 내용을 담은 시 ''Roulez, tambours!'' (1957)가 가장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그의 명성은 주로 사후에 발견된 ''일기''에 기반한다.

이 ''일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스위스는 물론 유럽의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중에는 레프 톨스토이도 포함된다. 일본에서도 전쟁 전부터 번역되어 고노 요이치 번역(이와나미 문고 전 4권)이나 도이 히로유키 초역(하쿠스이샤) 등으로 오랫동안 읽히고 있다.

또한 프랑스 철학자 루도빅 뒤가는 새로운 심리 현상을 설명하면서 아미엘의 ''일기'' 중 "모든 것이 나에게 이상하다. 나는 내 몸 밖, 개인으로서의 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탈인격화되고, 초연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라는 구절에서 탈인격화라는 용어를 가져왔다. 뒤가는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했지만, 아미엘 자신은 몇 단락 뒤에 "나에게 이러한 정신적 경험(변형 정신)은 철학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3]

3. 2. 탈인격화 개념

프랑스 철학자 루도빅 뒤가는 새로운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미엘의 ''일기''("Journal Intime")에 나오는 탈인격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미엘은 일기에서 "모든 것이 나에게 이상하다. 나는 내 몸 밖, 개인으로서의 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탈인격화되고, 초연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적었다. 뒤가는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의 심리 상태 묘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미엘 자신은 몇 단락 뒤에 "나에게 이러한 정신적 경험(변형 정신)은 철학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이며, 이것이 철학적 사유의 한 형태임을 분명히 했다.[3]

4. 영향

아미엘은 생전에 여러 시집, 역사 연구, 철학 연구 저작, 철학적 에세이를 간행했으며, 이 작품들은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살아있을 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애국적이고 전쟁 찬가적인 시 ''Roulez, tambours!'' (1957)이다.

그러나 아미엘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사후에 발견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은밀한 일기」, 1839년-1881년, 17,000 페이지) 덕분이다. 이 일기는 발견 직후 2권으로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기 속에 담긴 사상의 명석함, 내성의 성실함, 개개의 정확성, 그리고 실존에 대한 체념적인 시선과 자기 비판적인 성찰 등이 높이 평가받았다.

이 일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스위스는 물론 유럽의 여러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레프 톨스토이가 있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번역되어 고노 요이치가 번역한 이와나미 문고판(전 4권)이나 도이 히로유키가 처음 번역한 하쿠스이샤판 등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문구는 아미엘의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5. 어록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6. 작품 목록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시, 역사 및 철학 연구, 그리고 그의 사후에 큰 명성을 안겨준 방대한 분량의 일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생전에 출판된 시집과 연구서, 그리고 사후에 정리되어 출판된 일기로 나눌 수 있다. 상세한 작품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1. 시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여러 편의 시집을 출판했다. 그의 주요 시집은 다음과 같다.

  • ''수수'' (Grains de Milfra) (1854)
  • ''일 펜세로소'' (Il Penserosoita) (1858)
  • ''라 클로슈'' (La Clochefra) (1860)
  • ''꿈의 부분'' (La Part du Rêvefra) (1863)
  • ''이방인'' (Les Etrangèresfra) (1876)
  • ''날마다'' (Jour à Jourfra) (1880)

6. 2. 역사 연구 및 철학 연구

아미엘은 문학 비평 외에도 역사 연구와 철학적 사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학문적 탐구는 제네바스위스의 역사, 그리고 유럽의 주요 사상가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연구로 나타났다.

역사 분야에서는 특히 자신의 고향인 제네바의 역사적 사건과 교육 제도에 주목했다. ''1848년 봄의 베를린''(1849)은 동시대 유럽의 역사적 격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며, ''1602년 제네바의 에스칼라드''(1875)는 제네바의 중요한 역사적 방어전을 다룬다. 또한 ''1559년 6월 5일 아카데미 설립 이후 제네바의 고등 교육''(1878)을 통해 제네바 아카데미의 역사를 조명했다.

더 나아가 샤를 용담공(1876), 제르멘 드 스탈(1876), 요하네스 칼뱅(1878), 장 자크 루소(1879) 등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이들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루소에 대한 연구는 제네바 출신으로서 그의 사상적 유산과 영향을 탐구하는 의미를 지닌다.

아미엘의 철학적 성찰은 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생전에는 ''Il Penseroso|일 펜세로소it''(1858)와 같이 사색적인 성격의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그의 깊은 내면과 철학적 사유의 정수는 일기에 담겨 있다. 이 일기는 1839년부터 사망 직전인 1881년까지 기록되었으며, 자기 분석, 문학 및 철학 비평, 종교적 성찰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 처음에는 파니 메르시에(Fanny Mercier)에 의해 ''어느 내밀한 일기의 단편''(1882-1884)으로 발췌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메리 어거스타 워드 등에 의해 영역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베르나르 가느뱅(Bernard Gagnebin)과 필리프 M. 모니에(Philippe M. Monnier)에 의해 12권의 완역본 ''내밀한 일기''(1976-1994)가 출판되어 그의 사상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미엘의 주요 역사 및 철학 관련 저작은 다음과 같다.

연도원제한국어 제목비고
1849(제목 불명)1848년 봄의 베를린역사
1849Du mouvement littéraire dans la Suisse romande et de son avenir로망스어 스위스의 문학 운동과 그 미래에 관하여문학/사상
1858Il Penserosoit일 펜세로소사상/시
1875'LEscalade de MDCII''1602년 제네바의 에스칼라드역사
1876Charles le Téméraire샤를 용담공역사 소설
1876(연구 제목 불명)제르멘 드 스탈에 관한 연구인물 연구
1878'Lenseignement supérieur à Genève depuis la fondation de lcadémie le 5 juin 15591559년 6월 5일 아카데미 설립 이후 제네바의 고등 교육역사/교육
1878(연구 제목 불명)요하네스 칼뱅에 관한 연구인물 연구
1879'Jean Jacques Rousseau jugé par les Genevois daujourdui오늘날 제네바인들이 평가한 장자크 루소인물 연구/사상
1882-1884Fragments d’un journal intime어느 내밀한 일기의 단편사후 출판, 일기 발췌
1976-1994Journal intime내밀한 일기사후 출판, 일기 완역 (12권)


6. 3. 일기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생전에 여러 시집과 역사 및 철학 연구서를 출간했지만,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사후에 발견된 방대한 분량의 『일기』(Journal intimefra)였다. 이 일기는 1839년부터 1881년까지 약 42년간 기록된 것으로, 총 17,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이다.

아미엘 사후, 그의 친구였던 파니 메르시에(Fanny Mercier)가 일기 내용을 발췌하여 1882년부터 1884년 사이에 『어느 내밀한 일기의 단편』(Fragments d’un journal intimefra)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사상의 명료함, 깊은 자기 성찰의 진솔함, 세밀한 관찰력, 그리고 존재에 대한 체념적 통찰과 날카로운 자기 비판으로 인해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885년에는 험프리 워드 부인(Mrs. Humphry Ward)이 영어로 번역하여 『아미엘의 일기』(Amiel's Journal: The Journal Intime of Henri-Frédéric Amieleng)를 출판했으며, 1905년에는 로자 샤피레(Rosa Schapire)가 독일어로 번역본을 내기도 했다. 아미엘의 일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스위스는 물론 유럽의 많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역시 그의 일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아미엘의 일기가 소개되어, 고노 요이치가 번역한 이와나미 문고판(전 4권)이나 도이 히로유키의 초역본(하쿠스이샤) 등이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특히 일기 속에 담긴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구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널리 인용되고 있다.

일기의 전체 내용은 베르나르 가느뱅(Bernard Gagnebin)과 필리프 M. 모니에(Philippe M. Monnier)에 의해 편집되어, 1976년부터 1994년까지 총 12권의 『내밀한 일기』(Journal intimefra) 완역본으로 출판되었다.

6. 4. 기타


  • ''1848년 봄의 베를린'' (1849)
  • ''로망스어 스위스의 문학 운동과 그 미래에 관하여'' (1849)
  • ''수수'' (Grains de Mil프랑스어, 1854)
  • ''일 펜세로소'' (Il Penseroso프랑스어, 1858)
  • ''라 클로슈'' (1860)
  • ''꿈의 부분'' (La Part du Rêve프랑스어, 1863)
  • ''1602년 제네바의 에스칼라드'' (1875)
  • ''샤를 용담공'' (Charles le Téméraire프랑스어, 1876) - 역사 소설. 독일어 제목 Karl der Kühnede.
  • ''이방인'' (Les Etrangères프랑스어, 1876)
  • 제르멘 드 스탈에 관한 연구 (1876)
  • ''1559년 6월 5일 아카데미 설립 이후 제네바의 고등 교육'' (1878)
  • 요하네스 칼뱅에 관한 연구 (1878)
  • ''오늘날 제네바인들이 평가한 장 자크 루소'' (1879)
  • ''날마다'' (Jour à Jour프랑스어, 1880)
  • ''일기'' (1839-1881)
  • ''어느 내밀한 일기의 단편'' (1882-1884) - 파니 메르시에(Fanny Mercier)가 사후에 발췌하여 출판하였다. 로자 샤피레(Rosa Schapire)의 독일어 번역본은 1905년 파이퍼 출판사(Piper Verlag, 뮌헨 및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다.
  • ''아미엘의 일기: 앙리-프레데릭 아미엘의 일기'' (Amiel's Journal: The Journal Intime of Henri-Frédéric Amiel영어, 1885) - 메리 어거스타 워드가 번역하여 맥밀란(Macmillan) 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 ''청춘 시절의 편지'' (1904)
  • ''필린'' (1927)
  • ''에세이, 비평'' (1931)
  • ''내밀한 일기'' (1976-1994) - 베르나르 가느뱅(Bernard Gagnebin)과 필리프 M. 모니에(Philippe M. Monnier)가 12권으로 완역하여 출판하였다.

참조

[1] 서적 Eve's Renegades: Victorian Anti-Feminist Women Novelists St. Martin's Press 1996
[2] 간행물 Louise Wyder, " Égérie ", est l'une d'entre elles. Proche ou lointaine, elle a accompagné Amiel pendant près de trente-trois ans. 2004
[3] 논문 Depersonalization: a conceptual history https://journals.sag[...] 199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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