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시 일일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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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나시 일일 신문은 1872년 야마나시 현령의 명령으로 창간된 야마나시현 최초의 신문이다. 신문지 조례 위반, 사설 표절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야마나시현에서 유일한 일간지로서 발행 부수 1위를 기록하며, 2019년에는 창간 이래 50,000호를 달성했다. 현재 야마나시 방송을 포함하는 야마니치YBS 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TV/라디오 프로그램 가이드, 인터넷/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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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 일일 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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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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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일간지 |
크기 | 블랭킷 판 |
사업자 | 야마나시 일일 신문사 |
본사 | 고후시 |
대표자 | 이사회 회장 겸 사장 노구치 에이이치 |
창간 | 1872년 7월 1일 |
폐간 | 해당 없음 |
이전 명칭 | 협중 신문 고후 신문 고후 일일 신문 |
1부 가격 | 180엔 |
월 구독료 | 3,900엔 |
언어 | 한국어 |
발행 부수 | 17만 4481부 (2022년 하반기, 일본 ABC 협회 조사) |
공식 웹사이트 | 야마나시 일일 신문 공식 웹사이트 |
회사명 | 주식회사 야마나시 일일 신문사 |
영문 회사명 | 해당 없음 |
우편 번호 | 〒400-8515 |
본사 소재지 | 야마나시현고후시기타구치 2-6-10 |
사업 내용 | 해당 없음 |
설립 | 1872년 |
자본금 | 해당 없음 |
매출액 | 해당 없음 |
총 자산 | 해당 없음 |
종업원 수 | 해당 없음 |
결산기 | 해당 없음 |
주요 주주 | 해당 없음 |
주요 자회사 | 해당 없음 |
관련 인물 | 해당 없음 |
외부 링크 | 해당 없음 |
특기 사항 | 야마나시현에서의 구독률은 공칭 약 70%로 높음 |
2. 역사
야마나시 일일 신문은 1872년 7월 1일 창간된 "교추 신문"을 전신으로 하며, 이후 "고후 신문", "고후 일일 신문"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1881년 현재의 제호로 변경되었다. 1940년에는 신문 통제로 다른 신문들과 통합되었고, 1945년 고후 공습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마이니치 신문과의 협력으로 발행을 계속했다. 전후에는 야마나시 시지 신문과의 경쟁을 거쳐 현내 유일의 일간지가 되었으며, 2007년 사설 표절 문제, 2019년 지령 50000호 달성, 2022년 창간 150주년 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 1. 창간과 초기 발전 (1872년 ~ 1945년)
1872년 7월 1일, 현령 도히 사네마사의 명령에 따라 고후의 서점 온고당의 서적상 나이토 덴에몬[2](1844-1906)이 "교추 신문"을 창간했다. 이 신문은 야마나시 최초의 신문이라고 한다.[3][4] 처음에는 목판으로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었으며, 현청 학무과 직원이 집필한 현청 홍보지였다. 다이쇼 소동으로 발행이 불가능하게 되기도 했으며, 유식자들에 의한 신문 해설회가 열렸다. 다음 해에는 현령 후지무라 시로가 발행권을 나이토에게 양도하고 "고후 신문"으로 개칭했다. 활판 인쇄가 도입되었고 논설도 추가되었다. 1876년에는 "고후 일일 신문"으로 개칭하고 나카무라 게이우 문하의 노구치 히데오를 맞아 나이토로부터 경영권을 획득하여 사내 개혁을 단행했다.신문지 조례 위반으로 자주 처벌받아 발행 정지에 이르렀고, 노구치가 현청파이며 야마나시 보수당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민권파의 "교추 신보"에 밀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정쟁에서 멀어져 뜻있는 사람들의 지원으로 경영을 유지했다. 제1822호로 일시 종간했고, 1881년 1월부터 현재 제호로 변경했으며, 다이쇼 시대에는 『야마나시 마이니치 신문』을 따돌리고 발행 부수 1위를 차지했다. 쇼와 초기에 중앙선 단축으로 중앙지가 성장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1922년에 사장에 취임한 노구치 지로는 문화·스포츠 사업에도 열심이었고 스스로 야마나시 향토 학회 회장도 역임했으며, 1936년 8월부터 1967년까지 연재된 "여름 풀 길"은 현지에서 현장 연구를 실시하여 향토의 사적을 조사한 것으로, 발견된 문화재도 많아 향토사 연구에 기여했다. 또한 1923년에는 지면에 투고 문예를 선정·평론하는 "선데이 문단"(후에 "학예란")을 설치했다. 현내에는 6개의 신문이 발행되었지만, 1940년에는 신문 통제로 "교추 일보", "야마나시 민보" 등을 통합하고, 다음 해인 1941년에는 『야마나시 마이니치 신문』도 합병했다. 1945년 고후 공습으로 사옥과 인쇄소를 소실하고, 자재와 인력 부족으로 발행이 어려워졌지만, 『마이니치 신문』과 협력하여 도쿄에서 발행을 계속했다.
2. 2. 전후 발전과 독점 (1945년 ~ 현재)
종전 후, 히가시야쓰시로군 이사와초(현 후에후키시)에 소개시켜 놓았던 윤전기를 운용하고, 외관이 남아 있던 고후 시내의 쇼린켄 백화점에서 자체 인쇄를 재개했다. 사장 노구치는 고후 시장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직 추방을 당했다. 전후에는 통제령도 해제되어 자유 발행이 가능해졌고, 한때 후지 급행이 대주주로 아마노 히사시를 지지하는 『야마나시 시지 신문』과 발행 부수를 경쟁했지만, 1967년 (쇼와 42년) 야마나시현 지사 선거에서 지지하는 다나베 구니오가 당선되자, 같은 해 3월에 후지 급행으로부터 『야마지』의 소유 주식을 취득하여[5], 동 신문을 폐간・흡수했다. 이후 현내 일간지는 야마나시 일일 신문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야마니치』 1개 신문에 의한 지역 신문의 독점 상황에 대해, 현민들 사이에서는 "야마나시에 지역 신문이 1개만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6]。2007년 (헤이세이 19년) 1월 31일, 사설의 표절이 외부로부터의 지적으로 발각되었다. 그 후의 조사에서 표절이 2001년부터 15건이나 더 있었던 것이 발각되어, 사장 노구치 에이이치는 책임을 지고 사임했지만, 얼마 후 사장직에 복귀했다[7] (이 표절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의 『기사・사설 표절 문제』를 참조).
2019년 (레이와 원년) 12월 3일, 전신인 "교추 신문"으로부터의 통산으로, 일본의 지방 신문으로는 처음으로 지령 50000호를 달성했다.
2022년 (레이와 4년) 7월 1일, 전신인 "교추 신문"으로부터의 통산으로 창간 150주년을 맞이했다.
2. 3. 표절 문제와 그 이후
2007년 1월 31일, 후생노동대신(당시) 야나기사와 하쿠오의 발언에 관한 사설에서, 이 신문 논설위원장(당시)이 고베 신문과 니시닛폰 신문의 사설 내용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외부 지적을 통해 발각되었다. 도용된 사설은 두 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된 1월 30일자 사설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었다.[13]야마나시 일일 신문사 간부들은 사과하고 조사 보고서를 게재했다. 2007년 2월 20일에 이 논설위원장을 징계 해고 처분, 상무를 강등 처분, 이사 편집국장을 감봉 처분하고, 당시 사장이었던 노구치 에이이치도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야마나시 일일 신문의 조사 보고서에는 도용 기사 소개에 그쳤고, 논설위원장의 도용 경위에 대해서는 일절 밝혀지지 않았다.
처분을 발표한 같은 날, 이 논설위원장이 북한의 핵 실험이나 방위성의 성 승격, 지방 분권 등에 대해 언급한 사설의 도용이 추가로 15건이나 있었다는 것을 공표했다. 사설 도용은 2004년 1월부터 이루어졌다. 도용에 이용된 보도 기관은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니케이 신문 등 전국지와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등 지방지, 총 5개 신문의 사설뿐만 아니라 기사까지 도용했다. 또한 『포린 프레스 센터 재팬』에서도 도용을 했다. 모두 홈페이지로부터의 도용이었다.[15]
사설 도용이 발각되면서 독자들로부터 "현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16] 사설을 도용당한 마이니치 신문 등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사설"은 2007년 2월 21일부터 중단되었지만,[16] 몇 달 후 "논설"이라는 형태로 부활하여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도용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노구치 에이이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직에 복귀했다.[7]
3. 시설
소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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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현 고후시 기타구치 2초메 6번 10호 (본사) |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 시모요시다 9초메 4번 12호 (후지요시다 총지사) |
도쿄도 주오구 긴자 8초메 3번 7호 시즈오카 신문・시즈오카 방송 도쿄 지사 빌딩 내 (도쿄 지사) |
오사카부 오사카시 도지마 2초메 1번 31호 게이한 도지마 빌딩 내 (오사카 지사) |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스루가구 토로 3초메 1번 1호 시즈오카 신문 방송 회관 내 (시즈오카 지사) |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오테 3초메 1번 1호 마쓰모토 빌딩 내 (나가노 지사) |
모든 본사, 총지사, 지사는 야마나시 닛니치 신문사와 야마나시 방송의 사업을 겸임한다.
4. 서비스
신문 휴간일에는 TV 편성표를 4페이지로 늘리고, 다음 날의 프로그램도 게재하여 휴간일 전날에 배달한다.[9]
휴간일 당일에는 웹 버전의 업데이트도 뉴스 속보를 제외하고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2008년 1월부터 휴간일 한정으로 PDF 형식의 전자판을 공개했다. 전자판은 전면 풀 컬러이며, 동영상 배포와 야마나시 방송의 뉴스 캐스터에 의한 낭독으로 음성 뉴스에 링크도 연결되어 있었다. 2011년 4월부터 이 휴간일 호외는 폐지되었다.
'''야마나시 방송''' - 보도국을 야마나시 일일 신문사와 통합하고 있다.
;'''라디오 (YBS 라디오)'''
- '''YBS 라디오 뉴스와 날씨 예보''' (구: 야마나시 일일 신문 뉴스 및 날씨 예보, ※ 편성 사정에 따라 방송 시간이 변경될 수 있음)
월요일 ~ 금요일 | 6:50 ~ 6:58, 8:52 ~ 8:58, 9:52 ~ 9:58, 10:52 ~ 10:56, 12:00 ~ 12:09, 13:52 ~ 13:56, 14:52 ~ 14:56, 15:52 ~ 15:56, 16:54 ~ 16:59, 17:50 ~ 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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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 7:55 ~ 7:59, 8:49 ~ 8:53, 10:52 ~ 10:56, 11:52 ~ 11:56, 12:54 ~ 12:58, 13:55 ~ 13:59, 14:55 ~ 14:58, 15:55 ~ 15:58, 16:55 ~ 16:58, 17:54 ~ 17:58 |
일요일 | 7:55 ~ 7:58, 8:54 ~ 8:59, 17:54 ~ 17:58 |
;'''텔레비전 (YBS 텔레비전)'''
- YBS 뉴스 (구: 야마니치 YBS 뉴스)
월요일 ~ 금요일 | 11:38:50 ~ 11:45 |
---|---|
토요일 | 17:20 ~ 17:30 |
화요일 ~ 토요일 | 20:54 ~ 21:00 |
일요일 | 17:20경 ~ 17:25경 (야마나시 스피릿 내) |
- YBS 와이드 뉴스 (구: 야마니치 YBS 와이드 뉴스, 월요일 ~ 금요일 18:15 ~ 19:00)
'''일본 네트워크 서비스''' (※ 재방송 포함, 고교 야구 야마나시현 대회 중계일은 변경·단축될 수 있음.)
- 야마나시 일일 신문 NEWS (자체 방송 11채널 (111ch와 112ch): 매일 13:00 ~ 13:10, 월 ~ 토 10:10 ~ 10:20 · 14:00 ~ 14:10, 평일 · 일요일 23:20 ~ 23:30, 월 ~ 목 22:30 ~ 22:40, 112ch: 매일 22:00 ~ 다음날 6:00)
'''FM 고후'''
- 야마니치 YBS 뉴스 (평일 8:03 ~ 8:10, 10:00 ~ 10:06, 13:00 ~ 13:05, 14:00 ~ 14:05, 17:00 ~ 17:05, 18:00 ~ 18:05, 일요일 14:00 ~ 14:05)
4. 1. TV/라디오 프로그램 가이드
매일 2페이지로 구성된다. 신문 휴간일에는 각각 1페이지의 TV 가이드가 1장의 뒷면에 게재되고, 2페이지 게재분은 본지에 게재된다[9]。2014년 1월 30일 인쇄 센터 준공에 맞춰, 2월 1일부터 TV·라디오 가이드는 2페이지의 TV 가이드로 변경되었고, 라디오 가이드는 본지에 게재되게 되었다.
1페이지에는 야마나시현과 NHK BS1, BS 프리미엄, tvk, NNS의 각 방송국 프로그램란이 게재되어 있다. 그룹 회사인 야마나시 방송은 노란색 바탕으로, 자사 프로그램은 프로그램명만 굵은 글씨로 게재되어 있다. 독립 텔레비전 방송국 중에서는 현내 대부분의 케이블 TV에서 디지털 방송이 재송신되고 있는 tvk와 TOKYO MX가 게재되어 있다.
지상파 게재 순서는 2011년 4월 1일부터 NHK 고후종합, NHK 고후 교육, YBS 야마나시 방송, TV 아사히, UTY TV 야마나시, TV 도쿄, 후지 TV 순이다. 후지 TV 오른쪽에 하프 사이즈의 4개 방송국란이 실려 있는데, 상단에는 NHK BS1과 BS 프리미엄, 하단에는 tvk와 NNS가 게재되어 있다.
2011년 4월 이후, 테레토가 현내 케이블 TV 각사에서 디지털 방송 재송신이 순차적으로 시작되면서, 2011년 4월 1일부터 위와 같은 채널 순서가 되었다. 테레토 오른쪽 하프 사이즈 4개 방송국란에는 상단에 닛테레와 TBS, 하단에 NHK BS1과 NHK BS2가 게재되어 있었다.
2010년 7월 1일부터 2011년 3월 31일까지는 NHK 종합·NHK 교육·YBS·테레아사·UTY·후지·테레토 순이었다. 이는 2010년 7월 당시, 현내 대부분의 케이블 TV에서 디지털 방송이 재송신되지 않았던 테레토를 제외한 리모컨 키 ID 순이었다.
2010년 6월 30일까지는 오랫동안 NHK 종합·NHK 교육·YBS·UTY·후지·테레아사·테레토 순이었다. 이는 현내국 (개국 순) → 도쿄 키국 순서이며, 키국에서의 아날로그 방송 채널 순이기도 하다.
현내에 YBS=NNN·NNS와 UTY=JNN 계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본 텔레비전과 TBS 텔레비전 프로그램표는 2005년 봄부터 하프 사이즈로 변경되었고, 2011년 7월 24일 이후 게재되지 않았다.
2페이지는 BS 디지털 방송, 제2 텔레비전 면으로서 TOKYO MX[11], CATV 후지 5호[12]의 프로그램표가 게재된다.
라디오 면은 「TV 가이드」에 수록했을 당시에는, NHK 고후 방송국 라디오 제1·2·FM, YBS 라디오, TBS 라디오, 분카 방송, 닛폰 방송, 라디오 일본, FM FUJI, TOKYO FM, J-WAVE, FM 고후 (cFM)를 수록했지만, 2010년 6월경 텔레비전 수록국 변경에 맞춰 현내 6개국으로만 축소하여 게재하고, 재경국은 심야 프로그램 안내를 포함하여 수록이 생략되었다.
4. 2. 인터넷/모바일 서비스
2014년 9월 2일까지 '''Miljan'''(미루잔)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판을 공개했으나, 다음 날부터 '''산니치 Eye'''라는 완전 유료판으로 전환되었다.- ~ 2006년 12월: '''Miljan'''을 통해 전국 뉴스 속보와 1주일 분량의 주요 뉴스(1일 5개 항목)만 볼 수 있었다.
- 2006년 12월 ~: 47NEWS 웹사이트 개설과 함께 대폭 개편되었다. 뉴스 속보와 현내 주요 뉴스 외에 현내 각지의 소식(1일 5개 항목), 현내 경제 뉴스(1일 3개 항목), 현내 스포츠 뉴스(1일 3개 항목)가 추가되었고, 보존 기간도 2주로 늘어났다. 특집·기획 기사, 사진·동영상 갤러리도 추가되어 다른 지방 신문 웹사이트 수준으로 발전했다. 47NEWS에서 제공하는 전국 뉴스도 함께 게재했다.
- 2008년 10월 ~: 다시 한번 개편을 통해 전국 뉴스의 비중이 커졌다. 반면 현내 뉴스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오전 10시까지는 주요 5개 뉴스만 게재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화제, 경제, 스포츠 뉴스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2010년 11월 ~: 휴대 전화 및 아이폰용 뉴스 사이트 "NEWSmart"(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사 상세 내용을 생략하고, 자세한 내용은 본지 지면이나 휴대폰 사이트에서 확인하도록 안내했다.
- 2014년 9월 ~: 완전 유료제로 전환되었다. 무료로는 제목과 처음 몇 줄만 볼 수 있다. 야마나시 일일 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 2011년 4월 ~ 2014년 9월 2일: 2011년 4월부터 휴간일 호외 폐지를 대체하여 '뉴스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조간 지면의 전자 신문 배포와 석간 전자 신문 발행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신문과 전자판을 함께 구독할 수 있는 "야마나시 디지털 플러스" 서비스를 실시했다. (조간 전자 배포는 야마나시현 내 이용 불가, 구독료 지불은 1개월 단위 외에 3개월, 6개월 선납 코스가 있었다. 1개월 단위의 경우 별도 갱신 절차 중단이 없으면 자동 갱신되었다.)
-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Windows XP 이후, 브라우저가 Internet Explorer 7 이상), 및 iPod touch, iPhone, iPad의 애플리케이션(wi-fi 권장)에서 이용 가능했다.
- 야마나시 디지털 플러스는 지면판 정기 구독자 한정 서비스(야마나시현 거주 여부 무관)였으며, 조간 전자 배포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서만 가능했다(일반 데스크톱 컴퓨터·노트북 컴퓨터 시청 불가). 지면판과 전자판의 월정액은 별도로 지불해야 했다(지면판은 기존처럼 신문 판매점 직접 지불 또는 지정 은행 계좌 자동 인출, 전자판은 신용 카드 또는 편의점<3개월, 6개월 선납만> 결제).
- 2014년 9월 3일 이후: 전자판 서비스가 2014년 9월 3일에 대폭 개편되어, 기존에 단독으로 판매하던 "전자 석간"을 폐지하고, "조간 전자 배포"를 개칭한 "전자판 단독 코스"(월정액 3348JPY), "야마나시 디지털 플러스"를 개칭한 "지면 병독 코스"(지면 구독료 월정액 3093JPY + 전자판 월정액 756JPY)의 두 가지 코스로 변경되었다.
- 전자판 신청자는 가입 후 2개월까지 무료였다. (무료 기간 중 탈퇴는 자유이며, 구독료는 부과되지 않았다. 단, 한 번 탈퇴 후 재가입하면 재가입 1개월간은 구독료가 무료지만, 1개월째 탈퇴는 불가능하며 최소한 유료인 2개월째까지 가입해야 했다.)
- 전자판에서는 지면 이미지를 뷰어로 볼 수 있고, 웹판의 유료 기사 열람이 가능했다. 전자판 단독의 경우 희망자에 한해 지면판 7일분 시험 구독이 가능했다.
- "데이터베이스 코스"(2006년 7월 이후 기사 검색 가능. 개인 스탠다드 플랜 = 월 150건까지 5400JPY, 개인 라이트 플랜 = 월 50건까지 2160JPY. 법인 코스도 있음)가 제공되었다. 전자판 단독 또는 지면 병독 코스 이용자는 별도로 과거 1년분·월 50건 열람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열람이 기본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이 서비스는 가입 1개월간 무료였지만, 1개월째 탈퇴는 불가능하며 최소한 유료인 2개월째까지 가입해야 했다.
- 전자판 단독·데이터베이스 코스의 지불은 신용 카드만 가능하며, 편의점 선납은 폐지되었다.
5. 야마니치YBS 그룹
야마나시 일일 신문을 발행하는 주식회사 야마나시 일일 신문사(야마니치)와 (YBS)을 중심으로 야마니치YBS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야마니치YBS 그룹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6. 논란
2007년 1월 31일, 야나기사와 하쿠오 당시 후생노동대신의 발언에 관한 사설에서, 야마나시 일일 신문 논설위원장(당시)이 고베 신문과 니시닛폰 신문의 사설 내용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외부 지적을 통해 발각되었다. 도용된 사설은 두 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된 1월 30일자 사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해당 논설위원장은 "생각이 부족했다. 도용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신문사는 동지'와 같은 의식이 있었다. 도용이라는 인식은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저작권 측면에서 신경 쓰였다"라고 언급하여 저작권 침해를 인식하고 도용했음을 시사했다[13]。
6. 1. 사설 표절 문제
2007년 1월 31일, 야나기사와 하쿠오 당시 후생노동대신의 발언에 관한 사설에서, 야마나시 일일 신문 논설위원장(당시)이 고베 신문과 니시닛폰 신문의 사설 내용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외부 지적을 통해 발각되었다. 도용된 사설은 두 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된 1월 30일자 사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해당 논설위원장은 "생각이 부족했다. 도용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신문사는 동지'와 같은 의식이 있었다. 도용이라는 인식은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저작권 측면에서 신경 쓰였다"라고 언급하여 저작권 침해를 인식하고 도용했음을 시사했다[13]。야마나시일일신문사에 따르면, 고베 신문 사설의 "대신은 '즉시 취소하고 말을 바꿨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물론 그것으로 끝날 실언이 아니다. 하필이면 저출산 대책과 육아 지원을 선두에서 추진해야 할 후생노동대신이 이런 발언을 한 것에 어이가 없다. 대신의 적격성을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다"라는 부분을 야마나시일일신문사는 "후생노동대신은 '즉시 취소하고 말을 바꿨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끝날 실언이 아니다. 후생노동대신은 저출산 대책・육아 지원을 선두에서 추진하는 것이 일이다. 발언과 같은 인식으로는 대신으로서의 적격성을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다"라고 도용했다.
또한 니시니혼신문 사설의 "저출산으로 인해 사회 보장 제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발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 보장 정책을 재정적인 면만으로 생각하고 아이의 수를 늘리는 것밖에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는 부분을, 야마나시일일신문사는 "저출산이 진행됨에 따라 사회 보장 제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발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재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아이의 수를 늘리는 것밖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씁쓸하다"라고 도용했다[14]。
야마나시 일일 신문사 간부들은 사과하고 조사 보고서를 게재했다. 2007년 2월 20일 논설위원장은 징계 해고, 상무는 강등, 이사 편집국장은 감봉 처분되었고, 당시 사장 노구치 에이이치도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러나 야마나시 일일 신문의 조사 보고서는 도용 기사 소개에 그쳤고, 논설위원장의 도용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날, 이 논설위원장이 북한의 핵 실험, 방위성 승격, 지방 분권 등에 대한 사설 15건을 추가로 도용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2004년 1월부터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니케이 신문,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등 5개 신문과 『포린 프레스 센터 재팬』의 사설 및 기사를 홈페이지에서 도용했다[15]。
사설 도용이 발각되면서 독자들로부터 "현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16], 사설을 도용당한 마이니치 신문 등도 비판했다. "사설"은 2007년 2월 21일부터 중단되었지만[16], 몇 달 후 "논설"이라는 형태로 부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논설"은 "사설"과 달라지지 않았고[17], 재개 시 독자에게 설명도 없었다[17]。
도용 문제로 사임했던 노구치 에이이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직에 복귀했다[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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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2年下半期ABC部数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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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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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藤伝右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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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甲州見聞記 (一〜三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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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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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NHKから地元テレビ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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読売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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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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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梨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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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간행물
山日YBSグループ創業百十年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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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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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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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2012-12-01
[12]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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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뉴스
毎日新聞
2007-02-21
[14]
뉴스
山梨日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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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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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梨日日新聞
2007-02-20
[16]
뉴스
山梨日日新聞
2007-02-21
[17]
뉴스
山梨日日新聞
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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