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에가미 이에타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에가미 이에타네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으로, 히젠국의 다이묘 류조지 다카노부의 아들이자 에가미 다케타네의 양자이다. 아버지의 명으로 각지를 전전하며 오키타나와테 전투에 참전했고, 1589년 하스이케 성의 성주가 되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아들인 나베시마 가쓰시게를 양자로 맞이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조선으로 건너갔으나, 이듬해 부산에서 사망했다. 그는 무용에 뛰어났으며, 류조지 다카노부의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에가미씨 - 나베시마 가쓰시게
    나베시마 가쓰시게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으로 전향, 사가 번주가 되어 번정의 기틀을 다지고 나베시마 가문으로의 정권 이양을 추진했으며, 오사카 전투, 시마바라의 난 참전, 간척 사업 추진, 사가성 축성 등으로 사가번의 통치 기반을 강화했다.
  • 미즈가에 류조지씨 - 류조지 마사이에
    류조지 마사이에(1556년 ~ 1607년)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류조지 다카노부의 아들이며, 가독을 이었으나 실권은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넘어가고, 히젠 7군을 영지로 받았으나 불만을 품었으며, 병약하여 나베시마 나오시게를 양자로 삼아 류조지 본가가 단절되었다.
  • 미즈가에 류조지씨 - 류조지 다카노부
    류조지 다카노부는 센고쿠 시대 히젠국의 슈고 다이묘로, 몰락했던 류조지 가문을 재흥시키고 히젠 대부분을 정복했으나,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시마즈 씨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 임진왜란 참전 군인 사망자 - 신립
    조선 중기 무장 신립은 무과 급제 후 북방 방어에 공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여 자결하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임진왜란 참전 군인 사망자 - 김성일 (1538년)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이황의 제자이며,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하여 임진왜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병사, 경상도 초유사,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에가미 이에타네
기본 정보
씨명에가미 씨
이름에가미 이에타네
이명또시로 (유명)
이에타네
곤베에노조 (통칭)
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출생불명
사망분로쿠 2년 2월 2일(1593년3월 4일)
관위무사시노카미
씨족류조지 씨, 에가미 씨
가계
부모아버지: 류조지 다카노부
어머니: 류조지 이에카도 딸
양아버지: 에가미 다케타네
형제류조지 마사이에
류조지 다카히라
이에타네
고토 이에노부
다마쓰루히메
배우자오무라 스미타다 딸
자녀도모코
사노 시게미
가쓰타네
양자: 나베시마 가쓰시게
기타 정보
특기 사항없음

2. 생애

류조지 다카노부의 아들로 태어나 에가미씨에 입적되어 에가미 다케타네의 후계를 이었다. 아버지 류조지 다카노부의 명으로 각지를 전전하며 덴쇼 12년(1584년) 사쓰마 시마즈씨와의 결전인 오키타나와테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위풍당당한 체격으로, 특히 무용에 뛰어났다고 하며, 형제들 중에서 가장 아버지 류조지 다카노부의 재능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다.

2. 1. 출생과 가독 상속

1529년 류조지 다카노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1] 에가미 다케토모의 양자가 되어 에가미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으며, 아버지로부터 히젠국 간자키군 세후쿠지성의 성주로 임명되었다.[2] 아버지의 명으로 각지를 전전했으며, 1584년 (덴쇼 12년) 오키타나와테 전투에도 참가했다.[2]

2. 2. 아버지의 명으로 전전

히젠센고쿠 다이묘 류조지 다카노부의 삼남으로 태어나 에가미씨에 입적되어 에가미 다케타네의 후계를 이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각지를 전전하며 덴쇼 12년(1584년) 사쓰마 시마즈씨와의 결전인 오키타나와테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2. 3. 하스이케 성주

1589년 나베시마 나오시게사가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에타네는 하스이케성의 성주가 되었다.[1] 이 무렵 나오시게의 장남 나베시마 가쓰시게를 양자로 맞이했다.[1] 이후 가쓰시게는 나베시마 가문으로 복귀하였다.[1]

2. 4. 임진왜란 참전과 죽음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조선으로 건너갔다.[1] 이듬해인 1593년 부산에서 병사하였다.[1]

3. 족보

관계이름비고
부친류조지 다카노부1529년 ~ 1584년
모친류조지 이에카도의 딸류조지 가문 출신
양부에가미 다케타네
정실오무라 스미타다의 딸
생모 불명의 자녀
장녀아키야마 사토도모코, 나베시마 다다시게의 정실
장남사노 시게미
차남에가미 가쓰타네
양자
양자나베시마 가쓰시게1580년 ~ 1657년,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장남



이에타네는 에가미 성을 버리고, 장남 시게미 (사노 우쿄노스케)는 사노씨를 칭했으며, 차남 가쓰타네 (가쓰야마 오쿠라)는 가쓰야마 성을 칭했다. 시게미의 자손은 사가 번사 사노 씨의 조상이 되었다. 가쓰타네는 류조지 하쿠안을 옹립하여 막부에 류조지 가문의 부흥을 호소했지만 패소했다. 쇼호 원년 (1644년)에 아이즈 번 호시나 가문에 맡겨져 에가미 씨로 복성했다. 게이안 원년 (1648년)에 아이즈 번에 채용되었고, 자손은 아이즈 번사로 이어졌다.

4. 사후

이에타네의 장남 시게미(사노우쿄스케)는 사노씨를 칭했으며, 그의 자손은 사가 번 번사 사노씨의 조상이 되었다.[1] 차남 가쓰타네(가쓰야마 대장)는 가쓰야마 성을 칭했다.[1] 가쓰타네는 류조지 하쿠안을 옹립하여 막부에 류조지 가문의 부흥을 호소했으나 패소했다.[2] 쇼호 원년(1644년)에 아이즈 번 호시나 가문에 맡겨져 에가미 씨로 복성했다.[2] 게이안 원년(1648년)에 아이즈 번에 채용되었고, 자손은 아이즈 번사로 이어졌다.[2]

참조

[1] 서적 葉隠 三教書院 1937
[2] 서적 엽은 삼교서원 193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