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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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워드 피셔는 17세기 영국의 신학자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교회 역사와 고전 언어에 능통했다. 그는 왕당파로서 청교도에 반대했으며,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은둔 생활을 했다. 피셔는 특히 그의 저서 《현대 신학의 정수》를 통해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 논쟁에 참여했으며, 칭의와 성화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했다. 그의 사상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었으며, 한국 교회에도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의 균형을 강조하는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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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피셔 | |
---|---|
기본 정보 | |
이름 | 에드워드 피셔 |
설명 | 잉글랜드의 기독교 작가 |
사망 | 1655년 |
2. 에드워드 피셔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에드워드 피셔는 17세기 잉글랜드 종교 개혁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청교도와 성공회를 지지하는 왕당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피셔는 왕당파의 일원으로서 청교도 사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특히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고, 교회가 정한 축일들을 옹호했다.[1]
2. 1. 초기 생애와 교육
피셔는 글로스터셔 주 미클턴 기사였던 에드워드 피셔 경의 장남이었다.[1] 1627년 옥스퍼드 대학교 브레이즈노즈 칼리지에 젠틀맨 코머너로 입학하여 1630년 4월 10일에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1] 그는 교회 역사와 고전 언어에 대한 지식으로 유명했다.[1]2. 2. 왕당파로서의 활동
피셔는 청교도에 맞서 교회의 축일을 옹호했으며, 주일을 순전히 교회의 권위에 근거하여 규정하고 안식일로 간주하는 것을 거부했다.[1]2. 3. 재정적 어려움과 은둔
피셔는 1654년에 부친의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빚이 많아 1656년에 리처드 그레이브스에게 재산을 매각했다.[1] 빚에 시달리던 그는 카마던으로 은퇴하여 학교를 운영했지만, 채권자들에게 발각되어 아일랜드로 피신했다.[1] 사망 날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시신은 런던으로 운구되어 매장되었다.[1] 그는 결혼했지만, 아내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1]3. "현대 신학의 정수"와 율법주의-율법폐기론 논쟁
1645년에 출판된 《현대 신학의 정수》에 대해 팀 켈러는 자신의 저서 《센터 쳐치》에서 이 책이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을 다루고 있다고 언급했다.[7] 에드워드 피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율법폐기론 논쟁이 책 발간 18-2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당시 이 논쟁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했다고 밝혔다.[8]
이 책의 옹호자들은 '매로운 맨'이라고 불렸지만 율법폐기론자로 오해받았고, 반대자들은 신율법주의자로 여겨졌다.[9] 싱클레어 퍼거슨은 저서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매로우 논쟁을 다시 소개하며, 율법폐기론과 신율법주의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모습일 뿐이며, 진정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고 주장했다. 퍼거슨은 토머스 보스톤을 지지했는데, 보스톤의 반대파가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스톤은 알미니안주의를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3. 1. "현대 신학의 정수"의 저자 문제
팀 켈러는 그의 저서 《센터 쳐치》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를 언급하며, 이 책이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7] 이 책의 서문에서 에드워드 피셔는 1645년 책 발간 시점으로부터 18-20년 전에 율법폐기론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8] 당시 율법폐기론에 대한 반발은 매우 컸으며, 이 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매로운 맨'(Marrow-men)이라 불리며 율법폐기론자로 오해받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율법주의자로 여겨졌다.[9]토마스 태너는 앤서니 우드의 1721년 판 ''Athenae Oxonienses''에서 에드워드 피셔를 ''Marrow of Modern Divinity'' (현대 신학의 정수)의 저자인 E. F.와 동일 인물로 보았고, 필립 블리스, 존 힐 버튼 등도 이를 따랐다. 그러나 조지 그럽은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Marrow''의 저자는 '무식한 이발사'로 묘사되었고, 런던의 '가난한 주민'이라고 자신을 칭하며 시장 존 워너에게 헌사한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동일 저자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퓨리턴 검열관의 인가를 받은 대화 형식의 출판물은 다음과 같다.
-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 . by E. F.,'' 1645년; 4판 1646년에는 예레미야 버로우즈, 윌리엄 스트롱, 조슈아 스프리그, 사무엘 프리티의 추천서가 포함되어 있다.
- ''A Touchstone for a Communicant ... by E. F.,'' 1647년 (조셉 캐릴의 인가).
-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the Second Part ... by E. F.,'' 1649년.
- ''London's Gate to the Lord's Table,'' 1647년; 표제는 익명이지만, 판결관 헨리 롤과 그의 아내 마가렛에게 헌사하는 끝 부분에 'E. F.'라는 서명이 나타난다.
- . . . by E. F., a Seeker of the Truth,' 1650년.
3. 2.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의 정의와 대립
팀 켈러는 저서 《센터 처치》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를 인용하며 율법주의의 두 가지 측면, 즉 믿음과 행위가 섞여 구원의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것과 도덕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또한 율법폐기론도 언급했다.[7]에드워드 피셔는 이 책 서문에서 1645년 책 발간 시점으로부터 18~20년 전에 율법폐기론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율법폐기론에 대한 반발은 매우 컸다.[8]
이 책 옹호자들은 '매로운 맨'이라고 불렸지만, 율법폐기론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역할을 강조하며 율법폐기론에 반대하는 신율법주의자로 여겨졌다.[9]
3. 3. 매로우 논쟁 (The Marrow Controversy)
팀 켈러는 그의 저서 《센터 쳐치》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가 율법주의의 두 가지 측면, 즉 믿음과 공로가 혼합되어 칭의의 해석을 불명확하게 하는 것과 도덕주의의 정신과 태도의 문제를 거론하였고, 율법폐기론을 언급하였다고 평가했다.[7]에드워드 피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책이 발간된 1645년의 18-20년 전에 율법폐기론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율법폐기론에 대한 저항은 매우 강했다.[8]
이 책의 옹호자들은 '매로우 맨'이라고 불렸으며, 율법폐기론자로 오해받았다.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율법주의자로 여겨졌다.[9]
싱클레어 퍼거슨은 그의 저서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매로우 논쟁을 다시 소개하면서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를 소개하였다. 그는 율법폐기론과 신율법주의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닌 같은 모태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라고 주장하며, 근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퍼거슨은 매로우 논쟁에서 토머스 보스톤의 입장을 지지하였는데, 보스톤의 반대파가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머스 보스톤은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을 강조한다고 오해를 받았다.
4. "현대 신학의 정수"에 나타난 신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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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 신학자들의 재조명
싱클레어 퍼거슨은 저서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매로우 논쟁을 다시 소개하면서 이것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율법폐기론과 신율법주의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닌 같은 모태에서 나온 이란성쌍둥이라고 주장하며, 근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퍼거슨은 매로우 논쟁에서 토머스 보스톤의 입장을 지지하였는데, 보스톤의 반대파가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머스 보스톤은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을 강조한다고 오해를 받았다.
5. 1. 팀 켈러의 "센터 처치"
팀 켈러는 그의 저서 《센터 처치》에서 《현대 신학의 정수》에 나타난 율법주의의 두 가지 측면, 즉 믿음과 행위가 섞여서 칭의에 대한 이해를 흐리게 하는 것과 도덕주의적인 정신과 태도를 언급하였다.[7] 또한 율법폐기론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7]5. 2. 싱클레어 퍼거슨의 "온전한 그리스도"
싱클레어 퍼거슨은 그의 저서 《온전한 그리스도》에서 매로우 논쟁을 다시 소개하면서 이것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를 소개하였다. 그는 율법폐기론과 신율법주의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닌 같은 모태에서 나온 이란성쌍둥이라고 주장하며, 근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퍼거슨은 매로우 논쟁에서 토머스 보스톤의 입장을 지지하였는데, 보스톤의 반대파가 예정론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머스 보스톤은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을 강조한다고 오해를 받았다.
참조
[1]
서적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1645
[2]
서적
Richard Baxter and the Millennium
1979
[3]
DNB
[4]
기타
Online text
http://www.johnbunya[...]
[5]
기타
[6]
웹인용
개혁 신앙의 정수 : 부흥과개혁사
https://rnrbook.com/[...]
2020-04-17
[7]
서적
팀 켈러의 센터 처치
http://worldcat.org/[...]
Duranno
2016
[8]
서적
The theology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 historical context and theological insights
https://www.worldcat[...]
Wheaton, Illinois
[9]
웹인용
온전한 그리스도 (율법과 복음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https://mall.duranno[...]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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