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순양함 하미디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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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만 제국 순양함 하미디예는 1904년 취역한 오스만 제국의 방호순양함이다. 1902년 영국 암스트롱 휘트워스 사에 의해 건조되었으며, 1907년 하미디예로 개명되었다. 발칸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 여러 전쟁에 참전했으며, 특히 발칸 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25년 터키 해군에 이관되어 근대화 개장을 거쳤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퇴역 후 헐크로 사용되다 1964년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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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순양함 하미디예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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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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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 하미디예 |
함명 유래 | 압둘 하미드 2세 술탄 |
함종 | 방호순양함 |
기공 | 1902년 4월 |
진수 | 1903년 9월 25일 |
취역 | 1904년 4월 (오스만 제국) 1925년 (튀르키예) |
퇴역 | 1947년 |
최종 운명 | 1964년 9월 10일, 고철로 매각됨 |
함선 훈장 | 순양함 하미디예 메달 1913 |
제원 | |
배수량 | 3,904톤 (정상) |
전장 | 전체 길이: 112m 수선간 길이: 103.6m |
전폭 | 14.5m |
흘수 | 4.8m |
추진 | 기계: 증기, 3축 엔진: 2 × VTE 4기통 엔진, 12,000마력 (지시마력), 호손 레슬리 앤드 컴퍼니 보일러: 16 × 니클라우스 수관 보일러 |
속력 | 22.2노트 (최고 속력, 시험 운행 시) 16노트 (정상 순항 속도) |
승조원 | 400명 (1904년) 355명 (1915년) |
무장 | |
초기 무장 | 2 × 150mm QF L/45 포 8 × 120mm QF L/45 포 6 × 47mm QF L/50 포 6 × 37mm QF 포 2 × 457mm 어뢰 튜브 70 × 기뢰 |
1차 세계 대전 이후 교체 무장 | 5 × 15 cm SK L/35 포 |
역사 | |
건조 | 발주: 1900년 제작: Sir W. G. Armstrong, Whitworth & Co. Ltd., 뉴캐슬 야드 번호: 732 |
소속 | 오스만 제국 해군 1918–1925년: 영국 통제 1925년 이후: 튀르키예 해군 |
기타 | 1940년에서 1947년 사이에 사관 생도 훈련에 사용됨 |
2. 설계
함의 구조는 함수부터 살펴보면, 수면 아래에 충각이 설치되어 있고, 수선부에는 45.7cm 수중 어뢰 발사관이 장착된 함수가 있다. 그 위 갑판에는 방패가 달린 단장 포가에 주포인 15.2cm 포 1문이 배치되었다. 주포 뒤로는 상부 구조물이 시작되며, 양쪽에 함교(브리지)를 갖춘 조타 함교가 있고, 그 뒤로 1단의 망루를 가진 전부 마스트가 세워져 있다.
선체 중앙부에는 등간격으로 3개의 굴뚝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연통 형태의 통풍탑들이 늘어서 있다. 굴뚝 사이의 빈 공간은 함재정 보관 장소로 활용되었고, 함재정은 2개 1조의 보트용 다비트가 양 현측에 2조씩, 총 4조 설치되어 운용되었다.
좌우 현측에는 부포인 12cm 속사포가 방패가 달린 단장 포가 형태로 등간격으로 4문씩, 총 8문이 배치되었다. 후부 갑판 위에는 전부와 같은 형태의 후부 마스트와 후부 망루로 상부 구조물이 마무리되고, 그 아래 후부 갑판에는 뒤쪽을 향하도록 주포 1문이 배치되었다.
2. 1. 일반 제원
''하미디예''는 전체 길이 112m,[3] 수선 간 길이 103.6m,[3] 함폭 14.48m, 흘수 4.88m의 크기를 가졌다.[3] 통상 배수량은 3904ton이었다.[3] 방호 갑판은 크루프 강철로 제작되었으며, 선체 중앙부 수평 부분은 약 3.81cm 두께였고, 수면 아래로 이어지는 측면 경사 부분은 약 10.16cm 두께였다.[3]추진 기관으로는 2축 수직 삼단 팽창 기관을 탑재했으며, 원통형 보일러에서 증기를 공급받았다. 이 추진 시스템은 12,500 지시 마력의 출력을 내어 최고 속도 22.2노트를 낼 수 있었다.[3][4] 이 함선은 오스만 제국 해군이 자국 연안 방어를 위해 1901년 계획에 따라 영국에 발주한 것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인해 기관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구식 보일러를 탑재하게 되었다.
2. 2. 무장
''하미디예''는 건조 당시 다양한 중구경 및 소구경 함포로 무장했다. 주포는 약 15.24cm/45 구경 암스트롱 속사포 2문으로, 각각 개방형 후면 방패가 있는 중앙 회전식 포좌에 장착되어 함교 앞과 함미에 1문씩 배치되었다.[4] 이 포는 약 45.36kg 포탄을 분당 5~7발의 속도로 발사했으며, 포좌는 최대 20°까지 고각을 허용하여 최대 사거리는 약 13350.24m에 달했다.[5] 포가의 부각 능력은 7도였으며, 선회 각도는 300도였다. 포의 선회, 포신 상하 조절, 포탄 장전은 모두 인력으로 이루어졌다.부포로는 약 11.94cm/50 구경 암스트롱 속사포 8문이 탑재되었다. 이 포들은 함의 양 측면에 4문씩, 단일 방패가 있는 중앙 회전식 포좌에 장착되었다.[4] 이 포는 22.7kg의 포탄을 최대 앙각 20도에서 10940m까지 발사할 수 있었고, 발사 속도는 분당 10발이었다. 포가의 부각 능력은 10도였으며, 선회 각도는 이론상 360도였으나 실제로는 상부 구조물에 의해 제한되었다. 부포 역시 모든 조작이 인력으로 이루어졌다.
그 외 무장으로는 47mm 속사포(3파운더) 6문과 37mm 기관포(1파운더) 6문이 각각 단일 포좌에 장착되었다. 또한, 함교 아래에 2개의 조준 가능한 포좌에 약 45.72cm(45.7cm) 어뢰 발사관 2문을 탑재했다.[4]
1915년에는 12cm 속사포 2문, 47mm 속사포 4문, 37mm 기관포 4문이 철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5년부터 1926년에 걸쳐 근대화 개장이 이루어지면서 무장이 변경되었다. 기존의 주포는 제거되고 15 cm SK L/45(크루프 약 14.99cm/45 구경 포) 2문으로 교체되었다.[4] 부포의 경우, 일부 자료에서는 크루프 약 7.62cm/50 구경 포로 교체되었다고 하며,[4] 다른 자료(일본어 위키백과 원본 소스 등)에서는 카네 7.5cm/50 구경 속사포 8문으로 갱신되었다고 한다. 45.7cm 어뢰 발사관 2문은 유지되었으며, 추가로 기뢰 70발을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3. 함력
오스만 제국 해군의 순양함 ''하미디예''는 1901년 해군 증강 계획의 일환으로 영국의 암스트롱 휘트워스 사에 발주되어 1904년 준공되었다. 초기 함명은 술탄 압뒬하미트 2세의 이름을 딴 '압둘 하미트'(Abd-ul-Hamid|압둘 하미트tr)였으나, 1907년 '하미디예'로 변경되었다. 취역 초기에는 1908년 사모스 섬 봉기 진압, 1909년 3월 31일 사건 진압 지원 등 국내외 작전에 투입되었다.
발칸 전쟁 기간 동안 함장 라우프 오르바이의 지휘 아래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불가리아 항구를 포격하고 칼리아크라 해전에서 어뢰 공격을 받아 손상을 입었으나[7][9], 수리 후 에게해로 진입하여 그리스 해운을 교란하는 통상 파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시로스 섬에서 그리스 무장 상선 '마케도니아'를 격침시킨 것은 유명한 전과이다.[10][11] 이후 지중해와 홍해를 넘나들며 활동하며 오스만 제국에 큰 사기 진작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주로 흑해를 무대로 활동하며 야부즈 술탄 셀림, 미딜리와 함께 러시아 해군과 교전했다. 여러 차례 러시아 항구를 포격하고 해전에 참가했으며, 수송선 호위 임무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다.[13][14]
전쟁 후 세브르 조약에 따라 연합국에 인도될 뻔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끈 터키 독립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로잔 조약에 따라 신생 터키 공화국 해군 소속이 되었다.[15] 그리스-터키 전쟁에도 참가했으며, 이후 근대화 개장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 1947년 제적되어 헐크 상태를 거쳐 이스탄불에서 잠시 박물관 함선으로 전시되기도 했으나, 1964년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3. 1. 건조 배경 및 초기 활동 (1908-1909)
오스만 제국 해군은 연안 방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901년 해군 증강 계획의 일환으로 영국에 순양함 1척을 발주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기관(보일러)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다소 구식의 보일러가 탑재되었다.1902년 4월, 영국의 암스트롱 휘트워스 사 엘지크 조선소에서 기공식을 가졌고, 1903년 9월 25일 진수되었다. 1904년 4월에 최종 준공되었으며, 처음에는 술탄 압뒬하미트 2세의 이름을 따 '압둘 하미트'(Abd-ul-Hamid|압둘 하미트tr)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1907년 소규모 개조를 거치면서 함명을 '하미디예'로 변경했다.
개명 후 하미디예는 1908년 사모스 섬에서 발생한 그리스계 주민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듬해인 1909년에는 마흐무트 세브케트 파샤가 이끄는 '행동군'(Hareket Ordusu)에 배속되어 이스탄불로 진격했다. 이 부대는 압뒬하미트 2세의 전제 정치 복귀 시도에 반발하여 일어난 3월 31일 사건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하미디예는 당시 예실쾨이에 정박하여 작전을 지원했다.
3. 2. 발칸 전쟁 (1912-1913)
''하미디예''는 발칸 전쟁 기간 동안 함장 라우프 오르바이의 지휘 아래 참전했으며, 이 전쟁에서 활약한 유일한 오스만 제국 해군 함선으로 평가받는다.[6]1912년 10월 19일부터 20일까지 불가리아의 항구 도시인 바르나와 카발라에 함포 사격을 가했다. 이후 11월 21일, 제1차 발칸 전쟁 중 불가리아군 진지를 포격하던 ''하미디예''는 칼리아크라 해전에서 불가리아 해군의 어뢰정 드라즈키로부터 어뢰 공격을 받았다.[7] 이 공격으로 함선 우현 선수에 약 3.05m 크기의 구멍이 뚫리고 8명이 사망했으나,[9] 함장은 신중한 조함으로 5 노트의 속도로 퇴각하여 이틀 만에 콘스탄티노플에 도착, 수리를 받을 수 있었다. 라우프 오르바이 함장은 이 과정에서 다른 어뢰정 2척을 격침했다고 주장했다.[8]
수리를 마친 ''하미디예''는 1913년 1월 14일 밤, 그리스 해군의 다르다넬스 해협 봉쇄망을 뚫고 에게해로 진입하여 그리스 선박에 대한 습격 작전을 시작했다. 다음 날인 1월 15일, 시로스 섬에 정박 중이던 그리스 무장 상선 순양함 '마케도니아'를 격침시키고 에르무폴리 마을을 포격했다.[10][11] 이후 베이루트와 포트사이드에 기항했다. ''하미디예''의 이러한 단독 작전은 지중해를 누비며 그리스 해운을 방해하고 여러 선박과 시설을 파괴하는 등 혼란을 야기했으며,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능력은 오스만 제국에 큰 사기 진작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주된 목표였던 게오르기오스 아베로프 순양함을 유인하여 오스만 함대가 나머지 그리스 해군과 교전할 수 있도록 하려던 계획은 레므노스 해전의 결과로 실패했다.
라우프 오르바이는 이후 ''하미디예''를 이끌고 알바니아 해안의 그리스군과 세르비아군 진지를 포격했다. 1913년 3월 12일, 알바니아의 산 조반니 디 메두아 항구에서 세르비아군을 하역하던 그리스 상선 13척을 공격하여 6척을 격침시키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이 과정에서 중립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선박에도 피해를 주었으며, 세르비아 군사 주둔지도 포격했다. 그러나 상선 '트리피미아' 갑판에 설치된 세르비아 산악포 2문이 반격을 시작하자, 오르바이는 수리할 수 있는 우호적인 항구가 근처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교전 거리를 벌렸다.[12] 오스만 측의 미숙한 포술과 제한된 포탄 보유량 때문에 연합군은 더 이상의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이 사건으로 세르비아는 그리스 해군이 수송선 보호에 소홀했다며 강하게 항의했고, 그리스는 이후 장갑함 프사라를 동반하여 추가 호송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다.
한편, ''하미디예''는 추격을 위해 파견된 그리스 구축함들을 따돌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크레타 남쪽 해상에서 또 다른 그리스 상선을 나포하기도 했으나, 로도스 인근에 그리스 군함이 있다는 보고와 보일러 손상으로 속도가 느려진 문제 때문에 홍해로 피신했다.[11] 이후 몰타 섬에서 보급을 받은 뒤 다시 홍해로 돌아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그리스에 대한 통상 파괴 활동을 계속했다.
3. 3. 제1차 세계 대전 (1914-1918)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하미디예''는 주로 흑해에서 활동하며 러시아 해군과 교전했다. 야부즈 술탄 셀림 및 미딜리와 함께 오스만 제국의 흑해 항로와 항구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해상 전투에 참여했으며, 여러 차례 피격되기도 했다.
''하미디예''는 ''야부즈'', ''미딜리''와 함께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다. 1914년 9월 23일에는 ''야부즈''와 함께 수송선 3척을 트라브존까지 호위했다.[13] 10월 29일에는 크림반도의 페오도시야를 포격하고, 얄타 항구에서 러시아 선박 2척을 침몰시켰다. 11월 20일에는 러시아 항구 투압세의 군사 시설을 포격했으며,[13] 12월 25일에는 바투미를 포격했다.
1915년 1월, ''하미디예''는 ''미딜리''와 함께 다시 출격했다. 1월 9일, 두 순양함은 얄타 부근 해상에서 러시아 함대와 마주쳤다. 이 짧은 교전에서 ''미딜리''는 러시아 제국 해군 전함 Evstafi에 명중탄을 기록했다. 오스만 함대는 기지로 귀환하던 중 러시아 함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에 최근 수리를 마친 ''야부즈''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출격하여 ''하미디예''와 ''미딜리''의 귀환을 엄호하고 추격하는 러시아 함대를 몰아냈다.[14] 이후 ''하미디예''는 주로 수송선 호위 임무에 투입되었다.
3. 4.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전쟁은 1920년 8월 10일 세브르 조약의 서명으로 종결되었다. 조약 조건에 따라, 하미디예는 야부즈와 여러 다른 군함과 함께 전쟁 배상금으로 영국에 양도될 예정이었다.[15]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끈 터키 독립 전쟁으로 새로운 터키 국가가 수립되었고, 세브르 조약은 폐기되었으며, 그 대신 로잔 조약이 서명되었다. 이 조약 조건에 따라, 새로운 터키 공화국은 함대의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15] 그리스-터키 전쟁에도 참가하였다.1925년, 이 함선은 터키 해군으로 이관된 최초의 오스만 제국 군함이 되었다. 1925년부터 1926년에 걸쳐 코자엘리 주 괼쥐크(Gölcük)에서 근대화 개장이 이루어져 무장을 일신했다. 1930년, 비커스 암스트롱 사에 의해 노후화된 기관을 석탄·중유 혼소 수관 보일러로 교체하여 속력 22.26노트를 발휘했다.
1937년 10월 23일, 하미디예는 베식타시에서 오르두(Ordu) 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오르두 호는 침몰하고 선원 두 명이 사망했다.[16]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연습함으로 활동했지만, 1945년에 제적되어 1947년까지 헐크 상태가 되었다. 이후 이스탄불에서 1949년부터 1951년까지 박물관 함선으로 전시되었으나, 1964년 10월 9일에 해체를 위해 매각되었다.
4. 평가
''하미디예''는 발칸 전쟁 당시 함장 라우프 오르바이의 지휘 아래 참전하여, 이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일한 오스만 제국 함선으로 평가받는다.[6] 제1차 발칸 전쟁 중인 1912년 11월, 불가리아군 진지를 포격하던 중 칼리아크라 해전에서 불가리아 어뢰정 드라즈키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었다.[7] 어뢰 공격으로 함선 우현 선수에 약 3.05m 크기의 구멍이 났고 8명이 사망했지만,[9] 오르바이 함장은 오히려 다른 어뢰정 2척을 격침했다고 주장했다.[8] 선수 부분이 침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미디예''는 수리를 위해 귀항하는 데 성공했다.
수리 후 1913년 1월 14일, ''하미디예''는 야음을 틈타 그리스 해군의 다르다넬스 해협 봉쇄망을 뚫고 에게해로 나아가 그리스 선박을 습격했다. 다음 날 시로스에서 그리스 무장 상선 순양함 마케도니아를 격침시키고 에르무폴리 마을을 포격했으며, 이후 베이루트와 포트사이드까지 항해했다.[10][11] ''하미디예''의 이러한 단독 습격 작전은 지중해를 누비며 혼란을 야기하고, 연합국의 해상 운송을 방해하며 여러 선박과 시설을 파괴하는 등 추격자들을 성공적으로 따돌렸다. 이는 오스만 제국에게 큰 사기 진작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오스만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강력한 게오르기오스 아베로프를 유인하여 나머지 오스만 함대가 교전할 기회를 만들려던 주된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오르바이 함장은 함선을 이끌고 알바니아 해안의 그리스군과 세르비아군 진지를 포격했다. 1913년 3월 12일에는 알바니아 산 조반니 디 메두아 항구에서 세르비아군을 하역하던 그리스 상선 13척을 공격하여 6척을 격침시키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중립국인 오스트리아 선박에도 피해를 주었으며 세르비아 군사 주둔지를 포격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산악포 2문이 상선 갑판에서 반격을 시작하자, 오르바이 함장은 수리할 우호 항구가 근처에 없다는 점과 포탄 부족 등을 고려하여 교전을 중단하고 거리를 벌렸다.[12] 이 사건으로 세르비아는 그리스 해군의 호송선 보호 미흡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리스는 장갑함 ''프사라''를 동원하여 추가 호송대를 호위하게 되었다. 한편, ''하미디예''는 추격해 온 그리스 구축함들을 따돌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크레타 남쪽에서 다시 한번 출격하여 그리스 상선을 나포하기도 했으나, 로도스 인근에 그리스 군함이 있다는 보고와 보일러 손상으로 인한 속도 저하 문제로 결국 홍해로 피신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11]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흑해에서 러시아 해군과 교전하며, 야부즈 술탄 셀림 및 미딜리와 함께 흑해 항로와 항구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차례 해상 전투에 참여하여 피격되기도 했다. 1914년 9월 23일에는 ''야부즈''와 함께 수송선 3척을 호위하여 트라브존으로 항해했으며,[13] 11월에는 러시아 항구 투압세의 군사 시설을 포격했다. 1915년 1월에는 ''미딜리''와 함께 출격하여 1월 9일 얄타 부근에서 러시아 함대와 조우했다. 짧은 교전 중 ''미딜리''가 러시아 전함 예프스타피를 명중시켰으며, 귀환 중 러시아 함대의 추격을 받자 최근 수리를 마친 ''야부즈''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출격하여 이들을 엄호하고 러시아 함대를 격퇴했다.[14]
이처럼 ''하미디예''는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의 해군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함선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발칸 전쟁에서의 단독 작전은 오스만 제국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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