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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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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에 있는 건축물로, 통일신라 시대에 원효와 의상대사가 머물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425년 중창되었으며, 정유재란으로 피해를 입은 후 1605년에 중건되었다. 하앙식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조건축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 형태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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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극락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완주 화암사 극락전
완주 화암사 극락전
문화재 정보
국가대한민국
유형국보
이름완주 화암사 극락전
번호316
지정일2011년 11월 28일
해지일해당사항 없음
주소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
소유자화암사
수량1동
시대조선 시대
문화재청 ID11,03160000,35
보물 지정 (해지) 정보
유형 (과거)보물
이름 (과거)완주 화암사 극락전
번호 (과거)663
지정일 (과거)1980년 6월 11일
해지일 (과거)2011년 11월 28일
문화재청 ID (과거)12,06630000,35
유형문화재 지정 (해지) 정보
유형 (과거)유형문화재
이름 (과거)화암사극락전
번호 (과거)68
지정일 (과거)1974년 9월 27일
해지일 (과거)1980년 6월 11일
문화재청 ID (과거)21,00680000,35

2. 역사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작은 절이다. 화암사중창비에 따르면 통일신라원효의상이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25년(세종 7년) 성달생이 절을 다시 지었고, 이때 지은 3칸 불전이 극락전으로 전해진다.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은 후 1605년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되었다.[1]

2. 1. 창건과 초기 역사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작은 절이다. 화암사중창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때 원효의상이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25년(세종 7년) 성달생이 절을 다시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화암사중창비를 작성했다. 이때 3칸의 불전을 매우 웅장하게 짓고 승당(僧堂), 조성전(祖聖殿) 등 여러 건물들을 완성했는데, 당시 지은 3칸 불전이 극락전으로 전해진다.[1]

2. 2. 조선시대의 중건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서 현존하는 유일한 하앙식 건물로 유명하다.[1]

3. 구조 및 특징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식이라는 독특한 구조와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극락전 내부는 고주 없이 하나의 공간(통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칸 뒤쪽에 큼직한 불단을 만들고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모셨다. 불단 위는 화려한 닫집으로 장엄하였는데, 닫집은 불단 위에 네 기둥을 세워 亞자형 지붕틀을 구성하였다. 닫집 안에는 커다란 비룡(飛龍)을 중심으로 비천상, 동자상, 연꽃 봉오리를 문 봉황 등을 나무로 조각하여 매달아 놓았는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유형이다.[1]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중도리 안쪽을 한 단 높게 하여 층을 만들었는데, 반자에는 구름, 학, 연꽃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1] 1981년에 지붕 부분 보수가 있었고, 2002년에 해체 수리하였다.[1]

3. 1. 하앙식 구조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포의 형상과 구조이다. 외2출목, 내3출목의 구조지만 그 위에 하앙 부재가 빗걸려있기 때문이다. 하앙은 보통 내단(內端)은 보나 도리에 고정시켜 지붕의 하중을 받게 하고 외단(外端)은 처마를 받치게 하여 두공을 중심으로 서로 균형을 이루는 구조이다. 일찍이 중국에서 발전된 이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된 구조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건물이 알려지기 전까지 유물 등을 통해서만 그 존재의 가능성을 추정해왔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시대 청동제소탑편과 간송미술관의 금동불감에서 하앙 구조를 볼 수 있고, 또한 백제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알려진 일본 법륭사의 금당과 5중탑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보다는 백제에서 성행했던 하나의 양식으로 추정되어 왔다.[1]

그러나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재와 일부 하엽주두 외에는 전체적인 형상이 다포계 공포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초제공과 이제공은 살미의 끝만 살짝 들린 앙서형으로 강건한 힘이 느껴지는 중기 이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정유재란에 전소되지 않고 건물 일부만 불탄 것을 옛 모습을 따라 중건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의주를 쥐고 있는 용의 발 모습을 투각한 전면 하앙과 주간포의 하엽주두, 연화 당초를 조각한 내부 살미 모습에서는 전 시대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장식화 경향을 보여준다.[1]

공포는 전면과 후면부가 차이가 있다. 뒷부분의 하앙은 그 끝이 위에서 사절된 날카로운 삼각형의 모습이고, 하앙재 위에 당초문이 돋을새김된 벼개목을 끼워 넣어 장여와 처마도리를 받치고 있다.[1]

3. 2. 건축 양식

극락전은 자연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윗부분만 평평하게 다듬었고, 기둥은 민흘림 형태의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가운데 칸의 기둥 간격을 양쪽 칸보다 2자 정도 넓게 하여, 가운데 칸에는 4분합, 양쪽 칸에는 3분합의 세살문을 설치하였고, 측면에는 앞쪽에만 외짝문을 달았다. 공포는 앞면과 뒷면에만 배치했는데, 기둥 위에 각각 1구씩, 기둥 사이에도 1구씩 공포를 배치하였으며, 앞면 가운데 칸에는 주간포 2개를 설치했다.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포의 모양과 구조이다. 바깥쪽으로 2출목, 안쪽으로 3출목의 구조인데, 그 위에 하앙 부재가 비스듬히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앙은 보통 안쪽 끝은 보나 도리에 고정시켜 지붕의 무게를 받게 하고, 바깥쪽 끝은 처마를 받치게 하여 두공을 중심으로 서로 균형을 이루는 구조이다. 중국에서 발전된 이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이 건물이 알려지기 전까지 유물 등을 통해서만 그 존재 가능성을 추정해 왔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시대 청동제소탑편과 간송미술관의 금동불감에서 하앙 구조를 볼 수 있고, 백제 장인들이 만든 건물로 알려진 일본 법륭사의 금당과 5중탑에서도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보다는 백제에서 유행했던 양식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재와 일부 하엽주두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모양이 다포계 공포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초제공과 이제공은 살미의 끝만 살짝 들린 앙서형으로, 강건한 힘이 느껴지는 조선 중기 이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불타지 않고 건물 일부만 불탄 것을 옛 모습대로 다시 지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의주를 쥐고 있는 용의 발 모습을 조각한 전면 하앙과 주간포의 하엽주두, 연꽃 덩굴을 조각한 내부 살미 모습에서는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장식적인 경향을 보여준다.

공포는 앞면과 뒷면이 다르다. 뒷부분의 하앙은 그 끝이 위에서 잘린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이고, 하앙재 위에 덩굴무늬를 돋을새김한 벼개목을 끼워 넣어 장여와 처마도리를 받치고 있다. 극락전의 내부는 높은 기둥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가운데 칸 뒤쪽에 큼직한 불단을 만들고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모셨으며, 그 위를 화려한 닫집으로 장식하였다. 닫집은 불단 위에 네 기둥을 세워 亞자형 지붕틀을 구성하였다. 안에는 커다란 비룡을 중심으로 비천상, 동자상, 연꽃 봉오리를 문 봉황 등을 나무로 조각하여 매달아 놓았는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유형이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중도리 안쪽을 한 단 높게 하여 층을 두었는데, 반자에는 구름, 학, 연꽃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981년에 지붕 부분 보수가 있었고, 2002년에 해체 수리하였다.[1]

4. 국보 지정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식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조건축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1]

4. 1. 지정 사유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조건축으로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으로 국보의 가치가 충분하다.[1]

4. 2. 지정 현황

구분내용
규격 및 형식정면 3칸, 측면 3칸, 1층, 맞배지붕, 바닥면적 61.66m2
지정구역1필지 152m2
보호구역2필지 4198.6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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