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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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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한복음 5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이로 인해 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는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증거로 세례 요한, 자신의 행적, 성경, 그리고 모세의 증언을 제시한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로 드러내는 방식을 공관복음서와 비교하여 다루며, 안식일 논쟁과 예수의 자기 계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3절b-4절의 삽입구 논란과, 예수가 자신을 '아들'에 비유하며 영생과 심판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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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성경 정보
복음서요한복음
5
이전 장요한복음 4장
다음 장요한복음 6장
내용 개요
주요 내용예수께서 베데스다 못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하시다.
핵심 주제예수님의 신성과 권위
등장 인물
주요 인물예수
기타 인물병자, 유대인
지리적 위치
장소예루살렘, 베데스다 못

2. 예루살렘에서의 명절과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

예수는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한다.[26] 이 명절이 정확히 어떤 명절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요한복음 2장6장에서 유월절이 언급된 것을 바탕으로, 이 명절도 유월절이거나, 신명기 16장에 나오는 칠칠절 또는 초막절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27] 요한 알브레히트 벵엘은 여러 문헌을 인용하며 이 날이 칠칠절, 즉 현재의 성령강림주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27]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28]

이스라엘 박물관의 베데스다 연못 모형


예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병을 앓던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한다.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는 예수의 말에 병자는 즉시 나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병자를 나무라고 그를 고친 사람을 찾으려 했다.[29] 예수는 군중 속으로 사라져 찾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 병자를 다시 만나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며, 죄를 지으면 더 심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후 병자는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예수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알린다.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은 현재 예루살렘에 남아있다.

2. 1. 명절의 종류에 대한 논의

요한복음 5장이 시작하면서, 예수는 "어떤 절기"를 지키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간다. 이 복음서가 예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건을 요한복음 2:13에서 기록하고 있으며, 또 다른 유월절이 요한복음 6:4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주석가들은 5:1 또한 유월절을 언급하는 것인지 (요한복음 2-6장의 사건이 최소 3년에 걸쳐 일어났음을 암시), 아니면 다른 절기를 의미하는지를 추측해 왔다. 신명기 16장 16절에 따르면, "너희 중 모든 남자는 1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오순절(샤부오트)과 초막절에 주 너희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즉, 예루살렘)에 나타나야 한다".[5] 벵겔의 '그노몬'은 언급된 절기가 오순절이라는 주장에 대한 여러 권위자들을 나열한다.[6] 설교단 주석은 "불확실한 ἑορτηel는 주석가들에 의해 달력의 모든 절기와 동일시되어 왔으며, 따라서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언급한다.[7] 9절에서는 그것이 안식일로 여겨진다.[8]

2. 2. 베데스다 연못의 위치와 역사적 배경



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에 위치한 연못으로, 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중풍병자 치유 기적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9] 예수는 이 연못에서 38년 동안 병을 앓던 중풍병자를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로 고쳤다. 이 사건은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중풍병자는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예수라고 말했지만, 예수는 군중 속으로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예수는 중풍병자를 다시 만나 "더 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했다.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은 현재 예루살렘에 남아있다.

2. 3. 38년 된 병자의 치유와 안식일 논쟁



예수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는 말로 38년 동안 앓던 병자를 고쳤다. 그러나 그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병자를 나무라고, 그를 고친 이를 찾고자 하나 군중 속으로 사라진 예수를 찾지 못한다. 예수는 이후 병자를 만나 죄를 짓지 말라고 하며, 죄를 지으면 더 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후 병자는 자신을 고쳐준 이가 예수였다고 유대인들에게 말한다.[9]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중풍병에 걸린 한 사람을 고치시며, "자리를 들고 걸어가시오!"라고 말씀하신다. 이 일은 안식일에 일어났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 사람이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율법을 어겼다고 말한다. 그 남자는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하고, 그들은 누구인지 묻는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키려 했지만, 예수님은 군중 속으로 사라지셨다. 예수님은 나중에 그에게 찾아오셔서 "더 심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그 남자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고쳐준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말한다. Do not sin anymore, so that nothing worse may happen to you.영어[9]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은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다.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10 유대인들은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자리를 들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소." 하고 말했다.''[13]

예수께서 안식일에 일했다는 비난을 받기 전에, 그가 고친 사람이 비난을 받았다. 그의 자리는 아마도 단지 돗자리나 깔개였을 것이지만, 성경 주석가 알프레드 플러머는 그의 유대인 비난자들이 "율법의 조항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했다"고 언급하며, 모세 율법의 여러 구절(You shall keep the Sabbath, therefore, for it is holy to you. Everyone who profanes it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for whoever does any work on it, that person shall be cut off from among his people.|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영어), (Six days may work be done, but on the seventh is the sabbath of rest, holy to the Lord. Whoever does any work on the Sabbath day, he shall surely be put to death.|엿새 동안은 일할 수 있으나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영어), (Six days shall work be done, but the seventh day is a Sabbath of solemn rest, a holy convocation. You shall do no work on it; it is the Sabbath of the Lord in all your dwellings.|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영어), (Now while the children of Israel were in the wilderness, they found a man gathering sticks on the Sabbath day.|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영어)을 인용했지만, 특히 (Thus says the Lord: "Take heed to yourselves, and bear no burden on the Sabbath day, nor bring it in by the gates of Jerusalem;|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영어)를 인용했다.

2. 4. 삽입구 논란 (3b-4절)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참조한 킹 제임스 성경에는 3b절에서 4절의 내용이 등장하나, 대부분의 사본에는 적혀져 있지 않다.[30] 따라서 대부분의 본문비평가들은 이 구절이 요한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31]

이 장의 본문을 포함하는 초기 사본에는 다음이 있다.

사본연대현존하는 구절
파피루스 75서기 175–225년
파피루스 66c. 200년
파피루스 953세기26–29절, 36–38절[2][3]
바티칸 사본325–350년
시나이 사본330–360년
베자 사본c. 400년
알렉산드리아 사본400–440년
에브라임 사본c. 450년1–16절



요한복음 5장 3b–4절은 요한의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10] 킹 제임스 성경(텍스투스 레셉투스에 기반함)에는 나타난다. 대부분의 현대 본문 비평가들은 요한복음 5:3b–4절이 삽입이며, 요한복음 본문의 원래 부분은 아니라고 믿는다.[11]

새로운 영어 번역과 개정 영어 성경은 이 구절을 완전히 생략했지만, 새 국제 버전과 같은 다른 번역본에서는 주석으로 언급하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와 유대인들의 반발

요한복음 5장 16절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일부 사본에는 '죽이기로 모의했다'는 내용도 추가되었다.[32] 그러나 이 표현은 18절의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는 구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33]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예수가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이고,[34] 둘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34]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35]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가 자신이 하나님과 같다고 한 것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서술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36]

예수는 자신을 아들에, 하나님을 아버지에 비유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37]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하며, 30절에서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아들이 자신임을 밝힌다.[38]

이후 예수는 아멘을 두 번(αμην αμην|아멘 아멘grc) 사용하여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로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24절에서는 자신을 보낸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말하고, 25절에서는 죽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날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선포한다.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학자 D. A. 카슨은 24절을 시작된 종말론의 강력한 근거로 보며, 신자들이 부활을 기다리며 말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39] 루터교 신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 "때"가 예수가 처음 온 때부터 재림하기까지의 시간이므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석한다.[40]

3. 1.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름과 그 의미

유대인들은 16절부터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일부 사본에는 그를 죽이기로 모의했다는 내용도 있다.[32] 그러나 '죽이기로 모의했다'는 내용은 18절의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는 서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33]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한 근거는 첫째로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이고,[34] 둘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34]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한다.[35]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같다고 한 것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서술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36]

예수는 자신을 아들에, 하나님을 아버지에 비유하며,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하는 일만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한다.[37] 30절에서 예수는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아들이 자신임을 밝힌다.[38]

이후 예수는 아멘을 두 번(αμην αμην|아멘 아멘grc) 사용하여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로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24절에서는 자신을 보낸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말하고, 25절에서는 죽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날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말한다.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학자 D. A. 카슨은 24절을 시작된 종말론의 강력한 근거로 보며, 신자들이 부활을 기다리며 말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39] 루터교 신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 "때"가 예수가 처음 온 때부터 재림할 때까지의 시간이므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40]

3. 2.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비유

예수는 자신을 아들에, 하느님을 아버지에 빗대어 이야기한다.[37] 예수는 우선 아들이 아버지와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한 뒤, 30절에서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느님이고 아들이 자신임을 밝힌다.[38]

이 비유 이후에 예수는 아멘을 두 번(αμην αμηνgrc) 사용하며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아멘 두 번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진실로 진실로"로 번역되었다. 24절에서는 자기를 보낸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말하고, 25절에서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날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이야기한다.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 신학자인 D. A. 카슨은 24절을 시작된 종말론에 대한 강한 근거로 받아들이며, 신자들이 부활을 기대하며 말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39]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 "때"가 예수가 처음 온 것으로부터 재림하기까지의 시간이므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고 본다.[40]

3. 3. 영생과 심판에 대한 가르침

예수는 자신을 아들에, 하나님을 아버지에 빗대어 이야기하며,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없고 오직 아버지가 하는 일을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30절에서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하나님이고 아들이 자신임을 밝힌다.[38]

이 비유 이후에 예수는 아멘을 두 번(αμην αμηνgrc) 사용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24절에서는 자기를 보낸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말하고, 25절에서는 죽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날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이야기한다.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D. A. 카슨은 24절을 시작된 종말론에 대한 강한 근거로 보며, 신자들이 부활을 기대하며 말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39] 루터교 신학자인 하인리히 마이어는 이 "때"가 예수가 처음 온 것으로부터 재림하기까지의 시간이므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고 본다.[40]

4. 사중 증언을 통한 자기 변호

예수는 31절부터 47절까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네 가지 증언을 제시한다. 예수는 자신의 말만으로는 증언이 참되지 못하다고 말하며, 다음의 네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41]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지만, 정작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오기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너희가 서로에게서 영광을 취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다.

예수는 유대인들을 고발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 희망을 걸어온 모세라고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오르기 얼마 전부터 자신이 메시아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요한복음에서만 특별하게 등장한다.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을 짧게 서술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이 내용이 모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

4. 1. 세례자 요한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며 네 가지 증언을 제시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다. (33~35절)[41]

예수는 유대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진리에 대한 증언을 들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않으며, 다만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도록 이 말을 한다고 밝힌다. 세례자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었고, 유대인들은 잠시 그 빛 가운데서 즐거워하기를 원했다.[42]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오르기 직전에야 자신이 메시아임을 직접적으로 밝히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가 메시아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42]

4. 2.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공부하였으나, 성경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모세가 그들을 고발할 것이라고 말한다.[41] 이는 모세가 예언한 '너와 같은 예언자'가 바로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알버트 반즈는 고대 교부들과 현대 신학자들이 모두 신명기에 언급된 예언자가 예수라는 데 동의한다고 말한다.[41]

예수는 47절에서 "모세의 글(Γράμμασιν|그람마신grc)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ῥήμασι|레마시grc)을 믿겠느냐?"라고 묻는다. 여기서 '글'과 '말'을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가 대조를 이룬다는 점을 강조한다.[42]

이러한 가르침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오르기 직전에야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을 짧게 서술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이 내용이 모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

4. 3. 성경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지만,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오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으로 설교하는 사람은 받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너희가 서로에게서 영광을 취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다.[41]

예수는 유대인들을 고발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 희망을 걸어온 모세라고 말하며, 신명기 18장 18절을 인용한다.

알버트 반즈는 고대 교부들과 현대의 신학자들이 모두 신명기에 언급된 예언자가 예수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말한다.[41]

47절에서 "모세의 글(Γράμμασιν|그람마신grc)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ῥήμασι|레마시grc)을 믿겠느냐?"라고 하며 "글"과 "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가 대조를 이룬다는 점을 강조한다.[42]

이러한 가르침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십자가에 오르기 얼마 전부터 자신이 메시아라고 몇 번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만 특별하게 등장한다.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을 짧게 서술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이 내용이 모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둔다.

4. 4. 모세의 증언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공부했지만, 정작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는 모세가 그들을 고발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모세가 신명기 18장 18절에서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줄 것이다."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신학자 알버트 반즈는 고대 교부들과 현대 신학자들이 모두 이 구절에 언급된 예언자가 예수라는 데 동의한다고 설명한다.[41] 그는 또한 요한복음 5장 47절의 "모세의 글(Γράμμασιν|그람마신grc)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ῥήμασι|레마시grc)을 믿겠느냐?"에서 '글'과 '말'을 나타내는 헬라어가 대조를 이룬다고 강조한다.[42]

5. 공관복음서와의 비교

알버트 반즈는 교부들부터 현대의 신학자들이 모두 신명기에 언급된 예언자가 예수라는데 동의한다고 말한다.[41] 47절의 "모세의 글(Γράμμασιν|그람마신grc; his letter)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ῥήμασι|레마시grc)을 믿겠느냐?"에서 "글"과 "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가 대조를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42]

이러한 가르침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오르기 얼마 전부터 자신이 메시아라고 몇 번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하게 등장한다.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가르침을 짧게 서술하는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이 내용이 모두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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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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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Vincent's Word Studies on John 5 https://biblehub.com[...]
[10] 문서 Texts lacking this passage include Papyrus 66, Papyrus 75, Codex Sinaiticus, Codex Vaticanus, Codex Ephraemi Rescriptus, Codex Borgianus, and Minuscule 821 (Gregory-Aland)
[11] 서적 Jesus and the Gospels Apollos
[12]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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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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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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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웹사이트 Wesley's Notes on John 5 http://biblehub.com/[...] 2016-03-05
[20] 간행물 Homilies or Tractates of St. Augustin on the Gospel of John https://www.ccel.org[...]
[21] 웹사이트 Jamieson-Fausset-Brown Bible Commentary on John 5 http://biblehub.com/[...] 201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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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웹사이트 Meyer's NT Commentary on John 5 http://biblehub.com/[...] 2016-03-08
[24] 웹사이트 Barnes' Notes on the Bible on Deuteronomy 18 http://biblehub.com/[...] 2016-03-10
[25] 문서 According to traditional attribution of the writing of the Torah to Moses
[26] 성경
[27] 웹사이트 Bengel's Gnomon of the New Testament on John 5 http://biblehub.com/[...] 2016-03-06
[28] 웹사이트 Pulpit Commentary on John 5 http://biblehub.com/[...]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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