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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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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보는 삼국지 시대 인물로, 중랑장을 지냈다. 동탁의 심복으로, 백파적 토벌에 실패하고 반동탁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주준을 막기 위해 이각, 곽사, 장제에게 군사를 주어 격파하게 했다. 동탁 사후에는 이숙의 공격을 물리쳤으나, 공포심에 재물을 챙겨 도주하려다 호인들에게 살해당했다. 성품은 겁이 많고 미신을 숭상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 사후 이각 등과 함께 장안으로 쳐들어가다 여포에게 패하고 호적아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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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삼국지)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우보
한자 표기牛輔
사망일192년
사망지홍농군
사망 원인타살
국적후한
직업군인
경력중랑장
친척동탁(장인)
관련 활동동탁 토벌전
관직
관직명중랑장
임기 시작189년
임기 종료192년
군주헌제
재상동탁
가족 관계
배우자동씨

2. 생애

우보(? ~ 192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동탁의 사위이다. 영제 (168년~189년 재위) 치세에 동탁 휘하에서 활동했으며, 동탁은 그를 신뢰하여 자신의 딸과 결혼시켰다.

189년, 동탁이 낙양을 점령하고 한나라 중앙 정부를 장악한 후, 우보를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우보는 동탁의 심복으로 활동하며 여러 전투에 참여했지만, 192년 동탁이 여포에게 암살당한 후 혼란 속에서 부하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었다.

2. 1. 동탁의 심복

189년(중평 6년), 서하군에서 봉기한 백파적(白波賊)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하동군을 약탈하자, 정권을 장악한 동탁의 명을 받고 토벌하러 갔으나 격퇴에 실패하였다.[3] 190년(초평 원년)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였다. 191년 연합군의 일원인 손견이 낙양까지 진격해오자, 동탁은 우보를 안읍현(安邑縣), 동월(董越)을 홍농군 민지현(黽池縣), 단외를 화음현(華陰縣)에 배치시키고 장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우보는 섬현(陝縣)으로 이동하였다.

192년[4] 주준이 낙양 동쪽의 중모현(中牟縣)에 주둔하며 동탁을 칠 군사를 모았다. 우보는 이각, 곽사, 장제에게 수만 명을 주어 주준을 막게 했다. 이각 등은 영격해 온 주준을 격파하고 진류군영천군을 초토화하였다.[5]

2. 2. 동탁 사후

192년[4] 주준이 낙양 동쪽의 중모현(中牟縣)에서 동탁을 칠 군사를 모으자, 우보는 이각, 곽사, 장제에게 수만 명을 주어 주준을 막게 했다. 이각 등은 영격해 온 주준을 격파하고 진류군영천군을 초토화하였다.[5] 그동안 동탁이 왕윤여포에게 주살당하면서 정권이 엎어졌다. 우보는 자신을 토벌하러 온 이숙을 물리쳤음에도 공연히 겁을 먹고 금은보화를 챙겨 도망치기로 하였다. 평소 극진히 대했던 복호적아[6] 등 호인(胡人)들이 의 북쪽에 을 준비하고 우보에게 줄을 매달아 내리다가 미처 에 닿기도 전에 한 장(丈)쯤을 남겨두고 놓치고 말았다. 호인들은 부상을 입어 거동이 어려운 우보를 베어 재물을 취하고 그 머리를 장안으로 보냈다.[7]

3. 성품 및 평가

우보는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늘 병부(兵符)를 쥐고 작두를 곁에 두어 강해 보이는 척했지만, 실상은 미리 관상가에게 손님의 관상을 보게 하고 을 쳐본 이후에야 만났다. 어느 날 동월이 우보를 방문했는데, 우보에게 좋지 않은 일을 꾸몄다는 점쟁이의 말만 듣고 바로 죽이기도 하였다.[8] 《헌제기》(獻帝紀)에서는 동월에게 편형(鞭刑)을 당한 점쟁이의 복수라고 한다.[9]

우보는 겁이 많고 미신을 믿어 항상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부적을 사용했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를 지니고 다녔다. 그는 방문객들을 만나기 전에 항상 점술가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점치게 하여 신분을 파악한 후 만남을 가졌다. 동월은 분열의 점괘를 받았는데, 점술가들은 동월에게 자주 핍박을 받았고, 그는 반역을 꾀한다는 구실로 그를 모함하여 우보에게 죽임을 당하게 했다.[2] 우보는 평소에 병사 소집의 할부(割符)를 꽉 쥐고 있었으며, 형벌용 도끼와 참수대를 옆에 둠으로써 스스로를 격려했다. 또한 미신을 숭상하여, 손님을 만날 때 먼저 관상가에게 점을 쳐서 반역의 기미가 없는지 판단하고, 게다가 점대(筮竹)로 길흉을 점친 후에야 겨우 면회했다고 한다.

4.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삼국지연의》에서는 동탁하진의 부름에 응해 낙양으로 갈 때 섬서(陝西)를 수비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동탁 주살 후 양주에서 장안으로 쳐들어가는 이각, 곽사, 장제, 번조 4인방에 합류하여 그 선봉이 된다. 여포에게 패하고 재물만 챙겨 전선을 이탈하다가 심복 호적아에게 살해당한다.[1]

참조

[1] 문서 Sanguozhi indicated that Niu Fu died soon after Dong Zhuo, who died in May 192. Thus, Niu Fu's death date should be circaJune 192
[2] 서적 魏書
[3] 서적 《후한서》9권 본기 제9 효헌제 유협
[4] 서적 《자치통감》
[5] 서적 《후한서》71권 열전 제61 주준
[6] 서적 《삼국지》
[7] 서적 《헌제기》
[8] 서적 《위서》
[9] 서적 《헌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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