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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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윈저가는 빅토리아 여왕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자 앨버트의 결혼으로 시작된 영국 왕가이다. 1차 세계 대전 중 반독일 감정이 고조되자 1917년 조지 5세가 왕실 명칭을 윈저로 변경했다. 윈저가는 현재 영국을 포함한 여러 영연방 왕국의 왕실이며, 찰스 3세는 현재 윈저 왕가의 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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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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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국기 | 영국 및 기타 영연방 왕국 |
창립일 | 1917년 7월 17일 |
창립자 | 조지 5세 |
현재 수장 | 찰스 3세 |
구성원 | '구성원 목록 (영문)' |
본가 | 삭스-코부르크-고타 가문 (베틴 가문의 분가) |
분가 | 마운트배튼-윈저 가문 |
역사 | |
설립 배경 | 반독일 감정 |
참고 사항 | |
설명 |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의 자녀 및 남성 후손은 계보학적으로 글뤽스부르크 가문을 통해 올덴부르크 가문에 속함 |
2. 역사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에른스트 1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아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와 결혼함에 따라 그녀의 자손은 베틴 가에 속하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4] 빅토리아의 아들 에드워드 7세와 손자 조지 5세도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일족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4]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국민 사이에 반(反) 독일 감정이 무르익어가자 왕실은 국민 감정을 고려해 신속히 독일식 칭호를 영국식 칭호로 바꾸고, 독일 안에 가졌던 모든 직함을 버렸다.[4] 1917년 7월 17일 조지 5세의 어명에 따라 윈저라는 명칭을 제정함과 더불어 빅토리아 여왕의 모든 남자 후예는 윈저 왕가의 일원 자격을 얻는다고 규정되었다.[4] 윈저라는 명칭은 영국 왕족과 긴 연고를 가진 윈저타운과 윈저 성에서 유래하였다.[4]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 황제는 자신의 사촌 조지 5세가 영국 왕실의 명칭을 윈저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빗대어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보겠다는 농담 섞인 비평을 하였다.[7]
에드워드 7세와 그의 아들 조지 5세는 하노버 가문의 마지막 영국 군주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베틴 가문의 작센코부르크고타 분파의 일원이었다.[4]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제국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진 반독일 감정[4]은 1917년 3월에 절정에 달했는데, 고타 G.IV가 런던을 직접 폭격하기 시작했고, 이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같은 해 3월 15일, 조지 5세의 사촌인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는 퇴위를 강요받았고, 이는 유럽의 모든 군주제의 폐지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왕과 그의 가족은 독일 왕관 아래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칭호를 포기하고, 독일식 칭호와 가문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변경하도록 설득되었다.[4] 이에 따라 1917년 7월 17일, 조지 5세가 발표한 왕실 선언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5]
이 이름은 윈저 (버크셔)와 윈저 성을 통해 영국 군주제와 오랫동안 연관되어 있었는데, 이 연결은 윈저 성의 둥근 탑이 윈저 가문의 문장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암시된다.[3] 이 이름은 아서 빅, 스탬퍼드햄 남작에 의해 제안되었다.[6] 사촌이 영국 왕가의 이름을 윈저로 변경했다는 소식을 듣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언급하면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농담했다.[7]
조지 5세는 또한 영국 왕자의 칭호 사용을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제한했고,[8] 1919년에는 1917년 칭호 박탈법에 따라 그의 독일 친족 3명의 영국식 칭호와 작위를 박탈했다.[9]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의 자녀 및 남계 후손은 필립 공이 태생적으로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으므로, 계보상으로도 올덴부르크 가문에 속한다.[10][2]
'''윈저 왕가''' (House of Windsor)의 원래 가문명(왕조명)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ouse of Saxe-Coburg-Gotha)였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국서) 앨버트의 가문명(그 영어형)이었다. 앨버트는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에른스트 1세의 아들이었으며, 이 가문에서는 벨기에, 불가리아, 포르투갈의 왕가도 배출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조지 5세는 적국 독일의 영방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이름을 딴 가문명을 피하고, 왕궁이 있는 윈저 성에서 이름을 따 윈저 왕가로 개칭했다. 또한, 왕가는 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깨고 윈저를 동가의 성으로 정했다. 그 때문에, 1917년 이후 현재 국왕 찰스 3세에 이르기까지를 윈저 왕조라고 칭하며, 또한, 그 구성원(조지 5세의 직계 및 생존한 삼촌 코넛 공 아서의 계통)은 (필요한 경우에는) 윈저의 성을 사용한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의 혈통이 단절된 것은 아니므로, 어느 쪽이든 하노버 왕가의 연속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 하노버 왕조 이래 역대 왕위 계승자의 배우자는 독일인이나 독일계 왕족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여성 월리스 심슨과의 결혼 문제로 퇴위하고, 대신 왕위에 오른 조지 6세의 비 엘리자베스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성립 이후 최초의 동국 출신 왕비가 되었다. 그 손자인 현 국왕 찰스 3세의 전 왕비 다이애나, 현재 왕비 카밀라 또한 동국 출신이다.
한편, 1960년에 엘리자베스 2세와 남편 필립 공의 남계 자손의 성을, 필립의 가문인 마운트배튼 (Mountbatten)을 반영하여 마운트배튼-윈저 (Mountbatten-Windsor)로 하는 추밀원령이 발령되었다. 다만, 가문명(왕조명)이 변경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찰스 3세가 즉위한 후에도 그 왕조명은 "윈저(House of Windsor)" 그대로이다[26]。
2. 1.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에른스트 1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아들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와 결혼하였다. 이에 따라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은 베틴 가에 속하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빅토리아의 아들 에드워드 7세와 손자 조지 5세도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일족으로서 영국을 다스렸다.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국민 사이에 반(反) 독일 감정이 고조되자, 왕실은 1917년 7월 17일 조지 5세의 어명에 따라 왕가 명칭을 윈저로 변경하였다.
2. 2. 윈저 왕가로의 개칭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내에서 반독일 감정[4]이 고조되자, 1917년 7월 17일 조지 5세는 왕실 명칭을 독일식인 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윈저로 변경했다.[3] 영국 왕자의 칭호 사용을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제한했고,[8] 1919년에는 1917년 칭호 박탈법에 따라 그의 독일 친족 3명의 영국식 칭호와 작위를 박탈했다.[9]윈저라는 명칭은 윈저타운과 윈저 성에서 유래했으며, 영국 왕실과의 오랜 연관성을 상징한다.[3] 아서 빅, 스탬퍼드햄 남작이 이 이름을 제안했다.[6]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 황제는 조지 5세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빗대어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보겠다는 농담 섞인 비평을 하였다.[7]
2. 3. 엘리자베스 2세 시대
1952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추밀원에서 “나와 내 아이들이 윈저 왕가의 일족으로 명명되어 알려지고, 결혼한 내 후손들과 그들의 후손들 역시 성(姓)을 윈저로 할 것을 명령한다.”라고 공식 선언하였다.[11] 하지만 1960년 2월 8일,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의 성(姓)을 윈저로 유지한다고 재차 확인하면서, 부계(父系) 쪽 후손들에게는 남녀 모두 전하(''His/Her Royal Highness'')라는 칭호를 부여한다고 선포하였다. 또한, 작위나 전하라는 경칭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계 쪽 후손들에게는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라는 성(姓)을 지닐 것을 명령하였다.[11] 마운트배튼은 필립 공이 결혼하기 전에 선택한 것으로, 그의 외가인 바텐베르크를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1947년, 조지 6세 국왕의 추정 상속녀인 엘리자베스 공주(후일 엘리자베스 2세)는 올덴부르크 왕가의 분파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손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인 필립 마운트배튼(본명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 공)과 결혼했다.[2] 필립은 결혼 몇 달 전, 공작 칭호를 포기하고 외삼촌이자 멘토인 버마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채택했다.[2]
엘리자베스가 1952년 여왕이 된 직후, 마운트배튼 경은 결혼한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므로 이제 ''마운트배튼 가문''이 통치한다고 언급했다. 엘리자베스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는 이 말을 듣고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알렸고, 처칠은 나중에 여왕에게 왕가는 윈저 가문으로 계속 알려지도록 선언하는 왕실 포고령을 발표하도록 조언했다. 필립은 사적으로 "나는 피투성이 아메바일 뿐입니다. 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 나라의 유일한 남자입니다."라고 불평했다.[12]
1960년 2월 8일, 메리 여왕의 사망과 처칠의 사임 몇 년 후, 여왕은 1960년 2월에 태어날 왕실 아이가 아버지의 이름(마운트배튼) 대신 어머니의 처녀 이름(윈저)을 사용한다면 "사생아의 표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해럴드 맥밀란과의 조율을 거쳐, 자신과 자녀뿐만 아니라 전하의 경칭과 공작 또는 공주 칭호를 누리는 모든 직계 남성 후손(남성 계승, 즉 부계를 통해)도 "윈저 가문"으로 계속 알려질 것임을 확인했다.[11][13]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또한 그 경칭과 칭호를 갖지 않은 자신의 직계 남성 후손은 마운트배튼-윈저라는 성을 사용할 것이라고 포고했다.[11]
요크 공작 앤드루는 11일 후인 1960년 2월 19일에 태어났다. 미래의 군주는 유사한 왕실 포고령을 통해 왕조의 이름을 변경할 수 있다.[14]
3. 역대 군주
1917년 조지 5세가 왕가의 이름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에서 윈저가로 개칭하면서 윈저 왕가가 시작되었다. 1922년 남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영국(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 왕국)에서 분리되었고, 1927년 이후 영국의 정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
초상화 | 이름 | 출생 | 재위 | 대관식 | 배우자 | 사망 |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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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5세 | 1865년 6월 3일 말보로 하우스 |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27] | 1911년 6월 22일 | 텍의 메리 | 1936년 1월 20일 샌드링엄 하우스 (70세 231일) | 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의 아들 |
![]() | 에드워드 8세 | 1894년 6월 23일 화이트 로지, 리치몬드 공원 |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 취소됨 | 없음 | 1972년 5월 28일 4 루 드 샹 데트르네망 (77세 340일) | 조지 5세와 텍의 메리의 아들 |
![]() | 조지 6세 | 1895년 12월 14일 요크 코티지 | 1936년 12월 11일 ~ 1952년 2월 6일 | 1937년 5월 12일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1952년 2월 6일 샌드링엄 하우스 (56세 54일) | |
![]() | 엘리자베스 2세 | 1926년 4월 21일 17 브루턴 스트리트, 메이페어 |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1953년 6월 2일 |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 | 2022년 9월 8일 발모랄 성 (96세 140일) |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딸 |
![]() | 찰스 3세 | 1948년 11월 14일 버킹엄 궁전 | 2022년 9월 8일 ~ 현재 | 2023년 5월 6일 | 카밀라 샹드 | 생존 | 엘리자베스 2세와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의 아들 |
1960년의 추밀원령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의 남자 후손은 마운트배튼-윈저의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3. 1. 윈저 왕가의 군주 목록
1917년 조지 5세가 왕가의 이름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에서 윈저가로 개칭하면서 윈저 왕가가 시작되었다. 1922년 남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영국(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 왕국)에서 분리되었고, 1927년 이후 영국의 정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초상화 | 이름 | 출생 | 재위 | 대관식 | 배우자 | 사망 |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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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 1865년 6월 3일 말보로 하우스 |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27] | 1911년 6월 22일 | 텍의 메리 | 1936년 1월 20일 샌드링엄 하우스 (70세 231일) | 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의 아들 | |
에드워드 8세 | 1894년 6월 23일 화이트 로지, 리치몬드 공원 |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 취소됨 | 없음 | 1972년 5월 28일 4 루 드 샹 데트르네망 (77세 340일) | 조지 5세와 텍의 메리의 아들 | |
조지 6세 | 1895년 12월 14일 요크 코티지 | 1936년 12월 11일 ~ 1952년 2월 6일 | 1937년 5월 12일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1952년 2월 6일 샌드링엄 하우스 (56세 54일) | ||
엘리자베스 2세 | 1926년 4월 21일 17 브루턴 스트리트, 메이페어 |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1953년 6월 2일 |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 | 2022년 9월 8일 발모랄 성 (96세 140일) |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딸 | |
찰스 3세 | 1948년 11월 14일 버킹엄 궁전 | 2022년 9월 8일 ~ 현재 | 2023년 5월 6일 | 카밀라 샹드 | 생존 | 엘리자베스 2세와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립의 아들 |
1960년의 추밀원령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의 남자 후손은 마운트배튼-윈저의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3. 2. 윈저 군주들의 수명
4. 구성원
1917년 선포에 따르면 왕가의 이름과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남계 후손인 모든 영국인은 윈저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하며, 다른 가문으로 시집간 여성은 제외된다고 명시했다.
윈저 왕가 가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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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빨간색 테두리 인물은 생존해 있으며, 검은색 테두리 인물은 사망했다. 굵은 테두리는 영국 군주의 자녀를 나타낸다. |
윈저 왕가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후손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재 찰스 3세와 그의 자녀들까지 이어진다. |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가계에서 시작된 윈저 가는, 에드워드 8세의 퇴위 후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왕위를 이어갔다.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는 에든버러 공작 필립과의 사이에서 찰스 3세를 낳았다. |
현재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와의 사이에서 웨일스 공 윌리엄과 서식스 공작 해리를 두었으며, 이후 카밀라와 재혼하였다. 웨일스 공 윌리엄은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웨일스의 조지, 웨일스의 샬럿 공주, 웨일스의 루이를 두었다. 서식스 공작 해리는 메건과의 사이에서 서식스의 아치와 서식스의 릴리벳을 두었다. |
4. 1. 윈저 왕가 가계도
- 빨간색 테두리 인물은 생존해 있으며, 검은색 테두리 인물은 사망했다. 굵은 테두리는 영국 군주의 자녀를 나타낸다.
윈저 왕가는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후손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재 찰스 3세와 그의 자녀들까지 이어진다.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가계에서 시작된 윈저 가는, 에드워드 8세의 퇴위 후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왕위를 이어갔다.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는 에든버러 공작 필립과의 사이에서 찰스 3세를 낳았다.
현재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와의 사이에서 웨일스 공 윌리엄과 서식스 공작 해리를 두었으며, 이후 카밀라와 재혼하였다. 웨일스 공 윌리엄은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웨일스의 조지, 웨일스의 샬럿 공주, 웨일스의 루이를 두었다. 서식스 공작 해리는 메건과의 사이에서 서식스의 아치와 서식스의 릴리벳을 두었다.
5. 통치 국가
윈저 가문이 창설되었을 때, 그 수장은 대영 제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치령들이 독립 국가로 부상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1926년 발포어 선언,[15][16] 1927년 왕실 및 의회 칭호법,[17][18] 그리고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서[19][20] 인정되었다. 윈저 가문은 여러 독립 국가의 왕실로 인정받았으며, 일부 자치령이 공화국이 되고 왕령 식민지가 다른 군주국 아래 왕국, 공화국 또는 군주국이 되면서 그 수는 수십 년에 걸쳐 변동했다.[21] 1949년 이후, 윈저 가문의 세 군주,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찰스 3세는 이전 대영 제국의 대부분 지역과 일부 비영국령 국가를 포함하는 국가 연합의 국가 연합 수장이기도 했다.[22][23][24]
국가 | 기간 |
---|---|
앤티가 바부다 | 1981년–현재 |
오스트레일리아 | 1917년–현재 |
바하마 | 1973년–현재 |
바베이도스 | 1966년–2021년 |
벨리즈 | 1981년–현재 |
캐나다 | 1917년–현재 |
실론 | 1948년–1972년 |
피지 | 1970년–1987년 |
감비아 | 1965년–1970년 |
가나 | 1957년–1960년 |
그레나다 | 1974년–현재 |
가이아나 | 1966년–1970년 |
인도 | 1947년–1950년 |
아일랜드 자유국 | 1922년–1936년 |
자메이카 | 1962년–현재 |
말라위 | 1964년–1966년 |
몰타 | 1964년–1974년 |
모리셔스 | 1968년–1992년 |
뉴질랜드 | 1917년–현재 |
뉴펀들랜드 자치령 | 1917년-1949년 |
나이지리아 | 1960년–1963년 |
파키스탄 자치령 | 1947년–1956년 |
파푸아뉴기니 | 1975년–현재 |
세인트키츠 네비스 | 1983년–현재 |
세인트루시아 | 1979년–현재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1979년–현재 |
시에라리온 | 1961년–1971년 |
솔로몬 제도 | 1978년–현재 |
남아프리카 공화국 | 1917년–1961년 |
탕가니카 | 1961년–1962년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2년–1976년 |
투발루 | 1978년–현재 |
우간다 | 1962년–1963년 |
영국 | 1917년–현재 |
5. 1. 영연방 왕국
윈저 가문은 1917년 창설 당시 대영 제국을 통치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치령들이 독립 국가로 부상하면서 변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는 1926년 발포어 선언,[15][16] 1927년 왕실 및 의회 칭호법,[17][18]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서[19][20] 인정되었다. 윈저 가문은 여러 독립 국가의 왕실로 인정받았으며, 일부 자치령이 공화국이 되거나 왕령 식민지가 다른 군주국 아래 왕국, 공화국 또는 군주국이 되면서 그 수는 수십 년에 걸쳐 변동했다.[21]윈저 가문은 현재 영국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 여러 영연방 왕국의 왕가이다. 1949년 이후, 윈저 가문의 세 군주,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찰스 3세는 이전 대영 제국의 대부분 지역과 일부 비영국령 국가를 포함하는 국가 연합의 국가 연합 수장이기도 했다.[22][23][24]
국가 | 기간 |
---|---|
앤티가 바부다 | 1981년–현재 |
오스트레일리아 | 1917년–현재 |
바하마 | 1973년–현재 |
벨리즈 | 1981년–현재 |
캐나다 | 1917년–현재 |
그레나다 | 1974년–현재 |
자메이카 | 1962년–현재 |
뉴질랜드 | 1917년–현재 |
파푸아뉴기니 | 1975년–현재 |
세인트키츠 네비스 | 1983년–현재 |
세인트루시아 | 1979년–현재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1979년–현재 |
솔로몬 제도 | 1978년–현재 |
투발루 | 1978년–현재 |
영국 | 1917년–현재 |
다음은 과거 윈저 가문을 왕가로 두었던 국가들이다.
국가 | 기간 |
---|---|
바베이도스 | 1966년–2021년 |
실론 | 1948년–1972년 |
피지 | 1970년–1987년 |
감비아 | 1965년–1970년 |
가나 | 1957년–1960년 |
가이아나 | 1966년–1970년 |
인도 | 1947년–1950년 |
아일랜드 자유국 | 1922년–1936년 |
말라위 | 1964년–1966년 |
몰타 | 1964년–1974년 |
모리셔스 | 1968년–1992년 |
뉴펀들랜드 자치령 | 1917년-1949년 |
나이지리아 | 1960년–1963년 |
파키스탄 자치령 | 1947년–1956년 |
시에라리온 | 1961년–1971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 | 1917년–1961년 |
탕가니카 | 1961년–1962년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2년–1976년 |
우간다 | 1962년–1963년 |
5. 2. 국가 연합 수장
윈저 가문은 1926년 발포어 선언,[15][16] 1927년 왕실 및 의회 칭호법,[17][18]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서[19][20] 인정되었다. 1949년 이후, 윈저 가문의 세 군주,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찰스 3세는 국가 연합의 국가 연합 수장이기도 했다.[22][23][24]6. 한국과의 관계
6. 1. 한국전쟁 참전
6. 2. 엘리자베스 2세 방한
6. 3. 더불어민주당의 입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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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ジョージ5世は、[[1917年]][[7月17日]]に王室名をウィンザーに改めるまで、[[ザクセン=コーブルク=ゴータ家]]の一員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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