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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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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건방은 1861년에 태어나 1939년에 사망한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그는 《난곡존고》 13권 4책을 저술했으며, 이 문집에는 '일진무가'를 주장하는 원론과 속원론이 포함되어 있다. 이건방은 허위의 학문을 배척하고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진가(眞假)의 논리를 폈으며, 당시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주자학의 폐단을 비판했다. 그의 학문은 제자인 정인보에게 계승되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학문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건방은 강화학파의 대표 인물로, 양명학뿐만 아니라 서양의 학문까지 연구한 선각적인 유학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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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방
기본 정보
한자李建芳
백강(伯剛)
난곡(蘭谷)
생애
출생1526년 (중종 21년)
사망1598년 (선조 31년)
가족
아버지이언침(李彦침)
어머니정부인 안동 권씨(貞夫人 安東權氏)
부인숙부인 평산 신씨(淑夫人 平山申氏)
아들이시직(李時稷), 이시발(李時發), 이시채(李時采)
학문과 사상
스승이황
사상적 위치성리학
관력
과거문과 급제
관직예조좌랑(禮曹佐郞)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사인(舍人)
성주목사(星州牧使)
동래부사(東萊府使)
사후이조판서(吏曹判書) 추증
저서
주요 저서난곡집(蘭谷集)
기타
관련 문화재난곡선생묘(蘭谷先生墓)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

2. 주요 저작


  • 간찰 ([http://blog.daum.net/gihac/474 강화역사문화연구소 블로그 문헌자료])
  • * 1893년에 작성된 영재 선생의 간찰과 1930년에 작성된 경재 선생, 난곡 선생의 간찰이 전해진다.
  • 난곡존고(蘭谷存稿)》 13권 4책
  • * 원론(原論)과 속원론(續原論) - 일진무가(一眞無假) 주장.
  • * 허위의 학문을 배척하고 진실과 진리의 학문을 추구하는 진가(眞假)의 논리를 펴고 있다. '''진(眞)은 사람의 정(情)에 합당한 것이고, 사람의 정에 합당한 것이 성현의 도(道)에 합당한 것이며, 성현의 도가 곧 양지(良知)이고, 양지에 합당한 것이 바로 자신의 도라는 것'''이다. 이처럼 허(虛)를 배척하고 진과 실을 추구하는 가운데 당시 조선사회를 이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주자학자들의 폐단을 비판했다. 이러한 학문적 성격은 제자인 정인보에게 계승되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학문으로 발전되었다.

2. 1. 간찰

1893년에 작성된 영재 선생의 간찰과 1930년에 작성된 경재 선생, 난곡 선생의 간찰이 전해진다.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조선의 학자

분류:1861년 태어남

분류:1939년 죽음

분류:강화군 출신

2. 2. 난곡존고(蘭谷存稿)

《난곡존고(蘭谷存稿)》는 13권 4책으로 구성된 이건방의 문집이다. 이 책에는 원론(原論)과 속원론(續原論)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서 이건방은 '일진무가(一眞無假)'를 주장한다. 즉, 허위의 학문을 배척하고 진실과 진리의 학문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방은 참된 것(眞)은 사람의 정(情)에 합당하고, 성현의 도(道)에 합당하며, 양지(良知)에 합당하고, 자신의 도에 합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주자학의 폐단을 비판하였다.

이건방의 학문적 특징은 제자인 정인보에게 계승되었고,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학문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1893년에 작성된 영재 선생의 간찰과 1930년에 작성된 경재 선생 및 난곡 선생의 간찰이 전해진다.

3. 학문적 영향 및 평가

3. 1. 난곡 이건방 이후

하곡으로부터 소론 가학으로 내려오는 양명심학인 '강화소전'을 정인보(위당 정인보)에게 빠짐없이 전수한 난곡은 위당에게 '내 생애에 남길 일이란 오직 그대 하나 때문일 뿐(一生惟汝在)'이라는 글을 보내 제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위당 또한 스승을 공경하여,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서대문 네거리에서 전차를 타려다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보고 황망히 달려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 노인이 바로 난곡 선생이었다.[3]

정인보1849년 강화도령 원범(조선 철종)을 모시러 온 정원용 대감의 증손자이며, 종조부 정기세는 강화유수를 역임하였다. 정인보는 일제시대에 지행일치의 〈양명학연론 陽明學演論〉(1933, 동아일보)을 연재하여 조선 500년 학문에 주자학뿐 아니라 하곡으로부터 비롯하는 양명심학의 전통이 있었음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또한 '자모사 慈母思’ 등의 시조 작품으로 뛰어난 당대의 문사였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 오랫동안 한학과 역사학을 강의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특히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가사를 쓴 업적이 있다. 정인보 선생은 하곡으로부터 이건방에 이르기까지 강화학파 학맥의 적자(嫡子)이며, 우리는 광복절 등 국경일에 그가 쓴 가사를 외고 부르며 '강화학파'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정인보 선생은 1950년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하였다.[3]

서여 민영규는 그의 논문 『李建昌의 南遷記』에서 "일찍이 하곡과 원교 이광사, 신재 이영익, 초원 이충익, 그리고 대연 이면백, 사기 이시원 등이 이 벽진 곳에서 양명학을 가꾸어 오기를 무릇 250년, 나는 그것을 온통 <강화학 江華學>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계산지학('''稽山之學'''[3]), 정백자성명지학('''程柏子性命地學''')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실학’이라고 부를 경우도 있다."라고 언급했다.[3]

3. 1. 1. 위당 정인보

난곡 이건방 선생은 30여 년 동안 하곡으로부터 소론 가학으로 내려오는 양명심학인 '강화소전'을 정인보(위당 정인보)에게 빠짐없이 전수하였다.[3] 난곡은 위당에게 '내 생애에 남길 일이란 오직 그대 하나 때문일 뿐(一生惟汝在)'이라는 글을 보내 제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위당 또한 스승을 공경하여,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서대문 네거리에서 전차를 타려다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보고 황망히 달려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이 노인이 바로 난곡 선생이었다.

정인보1849년 강화도령 원범(조선 철종)을 모시러 온 정원용 대감의 증손자이며, 종조부 정기세는 강화유수를 역임하였다. 정인보는 일제시대에 지행일치의 〈양명학연론 陽明學演論〉(1933, 동아일보)을 연재하여 조선 500년 학문에 주자학뿐 아니라 하곡으로부터 비롯하는 양명심학의 전통이 있었음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또한 '자모사 慈母思’ 등의 시조 작품으로 뛰어난 당대의 문사였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 오랫동안 한학과 역사학을 강의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특히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가사를 쓴 업적이 있다. 정인보 선생은 하곡으로부터 이건방에 이르기까지 강화학파 학맥의 적자(嫡子)이며, 우리는 광복절 등 국경일에 그가 쓴 가사를 외고 부르며 '강화학파'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정인보 선생은 1950년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3. 1. 2. 서여 민영규

"일찍이 하곡(정제두)과 원교(이광사), 신재(이영익), 초원(이충익), 그리고 대연(이면백), 사기(이시원) 등이 이 벽진 곳에서 양명학을 가꾸어 오기를 무릇 250년, 나는 그것을 온통 <강화학 江華學>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계산지학('''稽山之學'''[3]), 정백자성명지학('''程柏子性命地學''')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실학’이라고 부를 경우도 있다."[3]

4. 참고 내용

1971년 청구문화사에서 이건방의 유고 『난곡존고』가 간행되었다. 『난곡존고』는 본래 필사본 13권이었으나 영인되어 양장본 1책으로 출간되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난곡 이건방은 강화학파의 대표 인물로서 정인보가 그에게 사사하여 학통을 이었다. 묘표에 의하면 이건방은 양명학뿐만 아니라 서양의 국헌, 재정, 형률, 외교까지 연구하였으며, 현실 문제의 타개를 주장하고 신학문을 권장한 선각적인 유학자였다. 또한, 이건방은 아(雅)와 건(健)을 겸비한 문장가로 평가받았다. 『난곡존고』는 양명학실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참조

[1] 문서 송시열
[2] 문서 정주
[3] 웹사이트 계산서원(稽山书院) http://baike.baid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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