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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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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후기》는 819년(고닌 10년) 사가 천황의 명으로 편찬이 시작되어 841년(조와 7년)에 완성된 일본의 역사서이다. 792년부터 833년까지의 간무, 헤이제이, 사가, 준나 천황 시대를 다루며, 《속일본기》를 잇는 육국사 중 하나이다. 총 40권으로 기획되었으나 현재는 10권만 남아있으며, 15세기 오닌의 난과 분메이의 난으로 인해 다수가 소실되었다. 훙전(薨伝)을 통해 인물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담고 있으며, 벚꽃 개화 기록을 통해 하나미의 기원을 보여주는 등 일본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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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후기
개요
제목일본후기
원어 제목日本後紀 (니혼코키)
종류역사서
편찬일본
완성 시기840년
시대헤이안 시대
언어한문
분량40권
이전 작품속일본기
다음 작품속일본후기
편찬
편찬 주체칙명에 의한 편찬
총재후지와라노 후유쓰구
주요 편찬자미나미치노 미네오
오에노 오토도
시노노부노 미쓰네
후지와라노 요시후사
하루스미노 요시쓰구
내용
시대 구분간무 천황부터 준나 천황까지
시대781년 ~ 833년 (52년간)
내용 요약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역사 기록

2. 편찬

고닌(弘仁) 10년(819년) 사가 천황(嵯峨天皇)의 명으로 후지와라 후유쓰구(藤原冬嗣), 후지와라 오쓰구(藤原冬嗣), 후지와라 사다쓰구(藤原貞嗣), 요시미네 야쓰요(良岑安世) 등이 편찬을 시작했다. 그러나 후지와라 오쓰구를 제외한 세 명이 사망하면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쥰나 천황(淳和天皇)과 닌묘 천황(仁明天皇) 대에 걸쳐 여러 학자가 참여하여 조와(承和) 7년(841년)에 완성되었다. 21년간의 편찬 작업에서 후지와라 오쓰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2. 1. 편찬 과정

弘仁일본어 10년(819년), 사가 천황은 후지와라 후유쓰구, 후지와라 오쓰구, 후지와라 사다쓰구, 요시미네 야쓰요에게 편찬을 명하였다. 그러나 후지와라 오쓰구를 제외한 세 명이 사망하면서 편찬 작업은 중단되었다. 이후 쥰나 천황은 가요하라 나츠노, 나오요오, 사카노우에노 이마쓰구, 후지와라 요시노, 오노 미네모리, 시마다 기요타에게 편찬을 계속하게 하였다. 닌묘 천황 대에 이르러 다시 후지와라 오쓰구, 미나모토 토키와, 후지와라 요시노, 후지와라 요시후사, 아사노 가토리에게 편찬 작업을 계속하도록 명하였고, 하루타카니와와 야마다 후루쓰구가 추가로 참여하여 841년 1월 5일에 완성되었다.

이처럼 『일본후기』는 21년 동안 3대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후지와라 오쓰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편찬 작업을 주도하였다.

2. 2. 편찬 배경

고닌(弘仁) 10년(819년), 사가 천황(嵯峨天皇)은 속일본기(797년 완성)에 이은 역사서를 편찬하도록 명했다. 이는 헤이안 시대 초기 왕권 강화를 꾀하고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루어 국가적 기틀을 다지려는 목적이었다.[1] 사가 천황은 후지와라 후유츠구(藤原冬嗣), 후지와라 오츠구, 후지와라 사다츠구(藤原貞嗣), 요시미네 야쓰요(良岑安世)에게 편찬을 명하였다.[1] 그러나 이들 중 후지와라 오츠구를 제외한 세 명이 사망하면서 작업은 미완성으로 남았다.[1]

이후 쥰나 천황(淳和天皇)이 가요하라 나츠노(清原夏野), 나오요오(直世王), 사카노우에노 이마쓰구(坂上今継), 후지와라 요시노(藤原吉野), 오노 미네모리(小野岑守), 시마다 기요타(島田清田)에게 편찬을 계속하게 하였다.[1] 닌묘 천황(仁明天皇) 시대에는 후지와라 오츠구, 미나모토 토키와(源常), 후지와라 요시노, 후지와라 요시후사(藤原良房), 아사노 가토리(朝野鹿取)가, 이후에는 하루타카니와(布瑠高庭)와 야마다 후루쓰구(山田古嗣)가 추가로 참여하여 조와(承和) 7년 12월 9일(841년 1월 5일)에 마침내 완성되었다.[1] 21년에 걸쳐 3대 천황대에 걸쳐 진행된 이 사업에서 후지와라 오츠구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였다.[1]

3. 내용

속일본기에 이어 간무 천황 치세 도중부터 헤이제이 천황, 사가 천황, 쥰나 천황의 치세를 기술하였다.

원래 40권이었으나 15세기 초엽 소실되어 현재는 10권만 전해진다. 하나와 호키노이치의 문인이었던 이나야마 교쿄가 산죠니시 가에서 10권 분량의 사본을 발견하여 간행하였다(다른 설로는 야나기하라 노리미쓰의 교정본이라고도 한다). 현존하는 부분은 5・8・12・13권(간무 천황 시대), 14・17권(헤이제이 천황 시대), 20・21・22・24권(사가 천황 시대)이다. 쥰나 천황 시대의 기록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육국사 발췌판인 『일본기략』과 항목 분류서인 『유취국사』에서 인용된 부분을 통해 일부 복원할 수 있으며, 소실된 내용을 수집한 『일본일사』, 『일본후기일문』 등이 있다.

후지와라노 오쓰구의 의견이 가장 짙게 반영되었다고 전해진다. 천황과 조정 신료들의 사망 기사에 붙인 짧은 전기(훙전)는 『속일본기』의 형식을 따랐으나, 일방적인 예찬이나 비난 대신 독자적인 비평과 감상을 더해 흥미로운 기술이 많아 육국사 중에서도 비판 정신을 잘 견지한 편이다.

다른 육국사 사서들에 비해 와카를 비교적 많이 수록하였다.

3. 1. 구성

『일본후기』는 원래 총 40권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10권만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부분은 간무 천황 시대(5, 8, 12, 13권), 헤이제이 천황 시대(14, 17권), 사가 천황 시대(20, 21, 22, 24권)에 해당한다. 쥰나 천황 시대의 기록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15세기 초엽까지는 40권 모두 전해졌으나, 이후 소실되었다. 하나와 호키노이치의 문인이었던 이나야마 교쿄가 산조니시 가에서 10권 분량의 사본을 발견(혹은 야나기하라 노리미쓰의 교정본이라는 주장도 있음)하여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소실된 부분은 『일본기략』과 『유취국사』에 인용된 부분을 통해 일부 복원할 수 있다. 이러한 소실된 부분을 모은 것으로 『일본일사』, 『일본후기일문』 등이 있다.

3. 2. 주요 내용

간무 천황 치세 도중부터 헤이제이 천황, 사가 천황, 쥰나 천황의 치세까지, 792년부터 833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1][2] 천황과 조정 신료들의 사망 기사에는 훙전(薨伝)을 붙여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렸는데, 이는 『속일본기』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본서의 훙전은 공식적인 칭찬이나 비난뿐 아니라 독자적인 비평과 감상을 더해 흥미로운 기술이 많으며, 육국사 중에서도 비판 정신을 잘 견지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와카(일본 전통 시가)를 많이 수록하여 당시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812년에 교토황실에서 벚꽃 개화를 처음으로 관찰한 기록은 하나미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교토의 벚꽃 시즌은 12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기후 변화 연구에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1][2]

헤이안쿄 천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활약 등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9] 약코의 변으로 인해 양위한 사가 천황과 헤이안쿄 궁정 측과의 갈등으로 인해 헤이제이 천황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6][7][8] "토목(土木)"이라는 단어가 일본 국내 현존 자료 중 처음으로 등장한다.

3. 3. 훙전(薨伝)의 특징

『일본후기』의 훙전(薨伝)은 천황이나 조정 신료들의 사망 기사에 덧붙이는 짧은 전기 형식이다. 속일본기의 형식을 따랐지만, 단순한 사망 기록을 넘어 인물에 대한 독자적인 비평과 감상을 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공식적인 찬양이나 비난 외에 개인적인 평가를 추가하여, 육국사(六国史) 중에서도 비판 정신이 강한 편으로 평가받는다.[6] 그러나 편찬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헤이제이 천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약코의 변으로 인한 사가 천황과의 갈등이 반영된 결과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7][8]

4. 소실과 복원

15세기 초까지 40권이 모두 갖춰져 있었지만, 오닌의 난의 영향으로 흩어져 소실되었다. 잃어버린 부분이 많아 발견을 기다리는 가운데 근세 시대에는 위서까지 만들어졌다.[3] 에도 시대 중기, 하나와 호키이치의 문인 이나야마 교쿄가 산조니시 가문에서 10권 분량의 사본을 발견하여(산조니시 사네타카와 공조 부자가 필사한 것[4], 이설로는 야나기하라 노리미쓰의 교정본 설도 있다)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현존하는 부분(텐리 도서관 소장, 중요문화재)은 권5·8·12·13(간무 천황), 14·17(헤이제이 천황), 20·21·22·24(사가 천황)의 10권으로, 준나 천황 시대는 완전히 빠져 있다.

일본기략, 유취국사 등에 인용된 일문을 통해 『일본후기』 결락 부분을 개략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 카모 스케유키의 『일본일사』, 사에키 아리요시의 『일본후기일문』[5]이 이러한 일문을 수집한 자료이다. 이를 바탕으로 슈에이샤 역주일본사료 및 코단샤 학술문고가 출판되었다.

4. 1. 소실

15세기 오닌의 난과 분메이의 난을 거치면서 『일본후기』 대부분이 소실되었다.[3] 에도 시대 중기, 하나와 호키노이치의 문인이었던 이나야마 교쿄가 산조니시 가문에서 10권 분량의 사본을 발견하여 간행하였다.[4] 현존하는 부분은 5・8・12・13권(간무 천황 시대), 14・17권(헤이제이 천황 시대), 20・21・22・24권(사가 천황 시대)을 합친 10권으로, 준나 천황의 시대를 다룬 분량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육국사 등의 발췌본인 『일본기략』과 육국사의 항목 분류인 『유취국사』 등에 인용된 부분(일문)이 있어, 『일본후기』에서 소실된 부분의 개략을 복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문을 수집한 것으로, 카모 스케유키가 편찬한 『일본일사』, 사에키 아리요시가 편찬한 『일본후기일문』[5]이 있다.

4. 2. 복원 노력

『일본후기』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기 위해 『일본기략』, 『유취국사』 등 다른 문헌에 인용된 『일본후기』의 내용을 참고하였다.[3] 카모 스케유키가 편찬한 『일본일사』와 사에키 아리요시가 편찬한 『일본후기일문』[5]은 소실된 부분을 모아 정리한 자료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본후기』의 내용을 최대한 복원하려는 연구가 현대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슈에이샤의 역주일본사료와 코단샤 학술문고 등이 출판되었다.

5. 현대어 번역 및 연구


  • 구로이타 가쓰미 편, 사카모토 타로 교정, 『신정증보 국사대계 3 일본후기』, 요시카와코분칸, 초판 1934년, 보급판 1975년 외[1]
  • 구로이타 노부오, 모리타 테이 편, 『일본후기 역주 일본사료』, 슈에이샤, 2003년[2]
  • 모리타 테이, 『일본후기 전 현대어역』, 고단샤 학술문고 (상・중・하), 2006년[3]

6. 의의 및 평가

『일본후기』는 간무 천황 치세부터 헤이제이 천황, 사가 천황, 준나 천황 치세까지를 다룬 역사서이다. 15세기 초까지는 40권이 모두 전해졌으나, 현재는 10권 분량만이 전해지고 있다. 준나 천황 시대를 다룬 부분은 소실되어, 『일본기략』과 『유취국사』등의 인용을 통해 일부 복원할 수 있을 뿐이다.[1][2]

내용에는 후지와라노 오쓰구의 의견이 짙게 반영되어 있으며, 천황과 조정 신료들의 사망 기사에 훙전(薨伝)이라는 짧은 전기를 첨부한 것이 특징이다. 훙전에는 예찬이나 비난뿐 아니라 독자적인 비평과 감상도 담겨 있어, 육국사 중에서도 비판 정신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다른 육국사에 비해 와카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812년 교토 황실에서 벚꽃 개화를 처음으로 관찰한 기록은 하나미의 기원을 보여주며, 12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교토의 벚꽃 시즌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계절 변화와 기후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1][2]

한국사 관점에서 『일본후기』는 발해와의 관계, 신라와의 교류 등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문화 교류 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편찬자의 정치적 성향과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사료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참조

[1] 간행물 Human influence increases the likelihood of extremely early cherry tree flowering in Kyoto https://iopscience.i[...] 2022-05
[2] 웹사이트 Cherry blossom phenology and temperature reconstructions at Kyoto http://atmenv.envi.o[...] 2024-08-20
[3] 서적 六国史
[4] 서적 六国史
[5] 서적 六国史 https://www.dl.ndl.g[...] 朝日新聞社 1930
[6] 서적 六国史
[7] 서적 六国史
[8] 서적 六国史
[9] 서적 六国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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