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랑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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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그랑프리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자동차 경주 대회로, 1963년 스즈카 서킷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투어링카와 그란 투리스모 경주가 주를 이루었으며, 1966년부터는 후지 스피드웨이로 장소를 옮겨 스포츠카와 2인승 레이싱카 경주로 변화했다. 1976년에는 F1 세계 선수권 대회에 편입되어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경쟁으로 유명해졌으며, 1987년 스즈카 서킷에서 부활하여 현재까지 개최되고 있다. 일본 그랑프리는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라이벌 관계, 2014년 태풍 판폰으로 인한 사고 등 주요 사건과 논란을 겪었으며, 루이스 해밀턴, 미하엘 슈마허 등 유명 드라이버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2024년부터는 4월에 개최되며, 2022년에는 3년 만에 개최되어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하는 등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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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일본 그랑프리는 악천후 속에서 루이스 해밀턴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쥘 비앙키의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 경기이다. - 일본 그랑프리 - 스즈카 서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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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랑프리 | |
---|---|
일본 그랑프리 개요 | |
명칭 | 일본 그랑프리 |
원어 명칭 | 日本グランプリ (일본어) |
로마자 표기 | Nihon-guranpuri |
대회 정보 | |
개최 서킷 | 스즈카 서킷 (간헐적 개최: 1966–1976, 1987–현재) |
![]() | |
랩 수 | 53 |
서킷 길이 (km) | 5.807 |
서킷 길이 (mi) | 3.608 |
레이스 길이 (km) | 307.471 |
레이스 길이 (mi) | 191.053 |
첫 개최 | 1963년 |
총 개최 횟수 | 49회 |
최다 우승 드라이버 | 미하엘 슈마허 (6회) |
최다 우승 컨스트럭터 | 맥라렌 (9회) |
2024년 일본 그랑프리 | |
폴 포지션 드라이버 | 막스 페르스타펜 |
폴 포지션 팀 | 레드불 레이싱-혼다・RBPT |
폴 포지션 기록 | 1:28.197 |
우승 드라이버 | 막스 페르스타펜 |
우승 팀 | 레드불 레이싱-혼다・RBPT |
우승 시간 | 1:54:23.566 |
2위 드라이버 | 세르히오 페레스 |
2위 팀 | 레드불 레이싱-혼다・RBPT |
2위 시간 차 | +12.535 |
3위 드라이버 | 카를로스 사인츠 |
3위 팀 | 페라리 |
3위 시간 차 | +20.866 |
패스티스트 랩 드라이버 | 막스 페르스타펜 |
패스티스트 랩 팀 | 레드불 레이싱-혼다・RBPT |
패스티스트 랩 | 1:33.706 |
2. 역사
1963년 5월, 나고야에서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스즈카 서킷에서 첫 번째 일본 그랑프리가 스포츠카 경주로 개최되었다.[6] 이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모터 레이싱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스즈카 서킷이 완공된 후, 1963년 5월에 "제1회 일본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자동차 경주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시판차를 개조한 투어링카와 그란 투리스모를 중심으로 배기량별 클래스를 나누어 경주가 진행되었다. 1966년 제3회 대회부터는 후지 스피드웨이로 장소를 옮겨 스포츠카와 2인승 레이싱카 경주가 되었으며, "TNT" (토요타, 닛산, 타키 레이싱)의 대형 머신 대결 등이 큰 화제를 모았다.
1970년, 닛산은 "배기가스 대책 개발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일본 그랑프리 참가를 중단했고, 토요타도 이에 동참하면서 일본자동차연맹(JAF)은 이 해의 일본 그랑프리 개최를 포기했다. 이로써 대배기량 레이싱카를 이용한 일본 그랑프리는 막을 내렸다.
1971년부터 일본 그랑프리는 포뮬러카 레이스로 다시 시작되어, 1973년부터 전일본 F2000 선수권 시리즈의 한 경기로 개최되었다. 1974년에는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중단되었지만, 1976년까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976년,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일본 최초의 F1 레이스인 "F1 세계 선수권 인 재팬"이 개최되었다.[7] 몬순(monsoon) 기간에 열린 이 경기는 제임스 헌트(James Hunt)와 니키 라우다(Niki Lauda)의 우승 경쟁으로 유명해졌다. 라우다는 경주에서 기권했고, 헌트는 3위로 경주를 마쳐 챔피언이 되었다.
1977년에는 정식으로 F1 일본 그랑프리가 개최되었으나, 질 빌뇌브(Gilles Villeneuve)와 로니 피터슨(Ronnie Peterson)의 충돌로 인해 관중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7] F1 일본 그랑프리는 10년 동안 중단되었다.
1987년, 스즈카 서킷에서 "후지텔레비 일본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F1 일본 그랑프리가 부활했다.[59] 이후 F1 일본 그랑프리는 여러 차례의 명승부와 사건, 사고를 겪으며 F1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다.
2022년, 3년 만에 스즈카 서킷에서 F1 일본 그랑프리가 재개되었다.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총리대신이 스타트 세레모니에 참가했는데, 이는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78][79]
2024년부터 F1 일본 그랑프리는 봄(4월)에 개최되고 있다.[61]
연도 | 개최 서킷 | 주요 내용 및 결과 |
---|---|---|
1976년 | 후지 스피드웨이 | F1 세계 선수권 인 재팬 개최, 헌트와 라우다의 챔피언 경쟁[7] |
1977년 | 후지 스피드웨이 | 관중 사망 사고 발생, F1 개최 중단[7] |
1987년 | 스즈카 서킷 | 후지테레비 일본 그랑프리 부활, 피케 챔피언 등극[59] |
1988년 | 스즈카 서킷 | 세나, 첫 챔피언 획득 |
1989년 | 스즈카 서킷 | 세나-프로스트 충돌, 프로스트 챔피언 |
1990년 | 스즈카 서킷 | 세나-프로스트 재충돌, 세나 챔피언 |
1991년 | 스즈카 서킷 | 세나, 3번째 챔피언 획득 |
1993년 | 스즈카 서킷 | 세나-어바인 언쟁 |
1994년 | 스즈카 서킷 | 힐, 슈마허와의 타이틀 경쟁 연장 |
1996년 | 스즈카 서킷 | 힐, 첫 챔피언 등극 |
1998년 | 스즈카 서킷 | 하키넨, 첫 챔피언 획득 |
2000년 | 스즈카 서킷 | 슈마허, 페라리 이적 후 첫 챔피언 |
2003년 | 스즈카 서킷 | 슈마허, 6번째 챔피언 결정 |
2004년 | 스즈카 서킷 | 원데이 그랑프리 개최 |
2005년 | 스즈카 서킷 | 라이코넨, 극적인 우승 |
2006년 | 스즈카 서킷 | 알론소 우승, 챔피언십 경쟁 유리 |
2007년 | 후지 스피드웨이 | 해밀턴 우승 |
2010년 | 스즈카 서킷 | 고바야시, 7위 입상 |
2011년 | 스즈카 서킷 |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초청 |
2012년 | 스즈카 서킷 | 고바야시, 3위 포디엄 |
2014년 | 스즈카 서킷 | 비앙키, 사고 후 사망[72] |
2015년 | 스즈카 서킷 | 알론소, "GP2 엔진" 발언[73] |
2017년 | 스즈카 서킷 | 해밀턴, 코스 레코드 갱신 |
2019년 | 스즈카 서킷 | 메르세데스,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 6연패[75] |
2020년, 2021년 | -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 중지 |
2022년 | 스즈카 서킷 | 3년 만에 개최,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참석[78][79] |
2023년 | 스즈카 서킷 | 레드불, 컨스트럭터즈 타이틀 획득 |
2024년 | 스즈카 서킷 | 봄 개최, 쓰노다 유키 모국 첫 입상 |
2. 1. 초창기 (1963-1975)
1963년 5월, 나고야에서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스즈카 서킷에서 첫 번째 일본 그랑프리가 스포츠카 경주로 개최되었다.[6] 1964년에도 스즈카에서 경주가 열렸으며, 이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모터 레이싱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8번의 대회 동안 비챔피언십 그랑프리는 요코하마에서 서쪽으로 40km, 도쿄에서 서쪽으로 66km 떨어진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이 서킷에는 다이이치라는 개방형 뱅크드 턴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하여 1974년에 제거되었다.1962년 스즈카 서킷이 완공되고, 1963년 5월에 "제1회 일본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자동차 경주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제2회 대회까지는 시판차를 개조한 투어링카와 그란 투리스모를 중심으로 배기량별 클래스를 나누어 경주가 진행되었다. 1966년 제3회 대회부터는 후지 스피드웨이로 장소를 옮겨 스포츠카와 2인승 레이싱카 경주가 되었으며, "TNT" (토요타, 닛산, 타키 레이싱)의 대형 머신 대결 등이 큰 화제를 모았다.
1970년, 닛산은 "배기가스 대책 개발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일본 그랑프리 참가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토요타도 이에 동참하면서 일본자동차연맹(JAF)은 이 해의 일본 그랑프리 개최를 포기했다. 이로써 대배기량 레이싱카를 이용한 일본 그랑프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71년부터 일본 그랑프리는 포뮬러카 레이스로 다시 시작되었다. 1973년부터는 전일본 F2000 선수권 시리즈의 한 경기로 개최되었다. 1974년에는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중단되었지만, 1976년까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 2. F1 세계 선수권 편입 (1976-현재)
1976년,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일본 최초의 F1 레이스인 "F1 세계 선수권 인 재팬"이 개최되었다.[7] 몬순(monsoon) 기간에 열린 이 경기는 제임스 헌트(James Hunt)와 니키 라우다(Niki Lauda)의 우승 경쟁으로 유명해졌다. 라우다는 챔피언십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경주에서 기권했고, 헌트는 3위로 경주를 마쳐 라우다를 1점 차로 꺾고 챔피언이 되었다.1977년에는 정식으로 F1 일본 그랑프리가 개최되었으나, 질 빌뇌브(Gilles Villeneuve)와 로니 피터슨(Ronnie Peterson)의 충돌로 인해 관중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7] 이 사고로 인해 F1 일본 그랑프리는 10년 동안 중단되었다.
1987년, 스즈카 서킷에서 "후지텔레비 일본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F1 일본 그랑프리가 부활했다.[59] 스즈카 서킷은 독특한 8자형 레이아웃과 도전적인 코스로 인해 드라이버와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특히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와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의 라이벌 관계는 F1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을 연출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으나, 2009년부터 다시 스즈카 서킷으로 복귀하였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F1 일본 그랑프리가 개최되지 못했다.
2022년, 3년 만에 스즈카 서킷에서 F1 일본 그랑프리가 재개되었다.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총리대신이 스타트 세레모니에 참가했는데, 이는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78][79]
2024년부터 F1 일본 그랑프리는 봄(4월)에 개최되고 있다.[61]
연도 | 개최 서킷 | 주요 내용 및 결과 |
---|---|---|
1976년 | 후지 스피드웨이 | F1 세계 선수권 인 재팬 개최, 헌트와 라우다의 챔피언 경쟁[7] |
1977년 | 후지 스피드웨이 | 관중 사망 사고 발생, F1 개최 중단[7] |
1987년 | 스즈카 서킷 | 후지테레비 일본 그랑프리 부활, 피케 챔피언 등극[59] |
1988년 | 스즈카 서킷 | 세나, 첫 챔피언 획득 |
1989년 | 스즈카 서킷 | 세나-프로스트 충돌, 프로스트 챔피언 |
1990년 | 스즈카 서킷 | 세나-프로스트 재충돌, 세나 챔피언 |
1991년 | 스즈카 서킷 | 세나, 3번째 챔피언 획득 |
1993년 | 스즈카 서킷 | 세나-어바인 언쟁 |
1994년 | 스즈카 서킷 | 힐, 슈마허와의 타이틀 경쟁 연장 |
1996년 | 스즈카 서킷 | 힐, 첫 챔피언 등극 |
1998년 | 스즈카 서킷 | 하키넨, 첫 챔피언 획득 |
2000년 | 스즈카 서킷 | 슈마허, 페라리 이적 후 첫 챔피언 |
2003년 | 스즈카 서킷 | 슈마허, 6번째 챔피언 결정 |
2004년 | 스즈카 서킷 | 원데이 그랑프리 개최 |
2005년 | 스즈카 서킷 | 라이코넨, 극적인 우승 |
2006년 | 스즈카 서킷 | 알론소 우승, 챔피언십 경쟁 유리 |
2007년 | 후지 스피드웨이 | 해밀턴 우승 |
2010년 | 스즈카 서킷 | 고바야시, 7위 입상 |
2011년 | 스즈카 서킷 |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초청 |
2012년 | 스즈카 서킷 | 고바야시, 3위 포디엄 |
2014년 | 스즈카 서킷 | 비앙키, 사고 후 사망[72] |
2015년 | 스즈카 서킷 | 알론소, "GP2 엔진" 발언[73] |
2017년 | 스즈카 서킷 | 해밀턴, 코스 레코드 갱신 |
2019년 | 스즈카 서킷 | 메르세데스,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 6연패[75] |
2020년, 2021년 | -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최 중지 |
2022년 | 스즈카 서킷 | 3년 만에 개최,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참석[78][79] |
2023년 | 스즈카 서킷 | 레드불, 컨스트럭터즈 타이틀 획득 |
2024년 | 스즈카 서킷 | 봄 개최, 쓰노다 유키 모국 첫 입상 |
2. 3. 주요 사건 및 논란
1976년 첫 포뮬러 원 일본 그랑프리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되었는데,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챔피언 경쟁으로 유명해졌다. 라우다는 시즌 초 독일 그랑프리에서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십 경쟁을 이어갔으나,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경주를 포기했다. 헌트는 3위로 경주를 마쳐 라우다를 1점 차이로 꺾고 챔피언이 되었다. 마리오 안드레티가 우승했고, 패트릭 드파이예르가 그 뒤를 이었다.[7]1977년 일본 그랑프리에서는 질 빌뇌브와 로니 피터슨의 충돌 사고로 관중 2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7] 이 사고로 인해 일본 그랑프리는 10년 동안 포뮬러 원 캘린더에서 제외되었다.
1987년, 일본 그랑프리는 스즈카 서킷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나이젤 맨셀이 연습 주행 중 사고로 부상을 입어 넬슨 피케가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게르하르트 베르거가 페라리에게 오랜만에 우승을 안겨주었다.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의 라이벌 관계는 스즈카 서킷에서 여러 차례 명승부를 연출하며 F1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특히 1989년과 1990년의 충돌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프로스트-세나 라이벌 관계 하위 섹션 참조)
- 1991년: 세나가 챔피언십을 확정지은 후 팀 동료 게르하르트 베르거에게 우승을 양보했다.
- 1994년: 폭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고 2개 레이스 합산 시간으로 순위가 결정되었다.
- 1996년: 데이먼 힐이 챔피언십을 확정지었다.
- 1998년: 미카 해키넨이 첫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 2000년: 미하엘 슈마허가 페라리 이적 후 첫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 2005년: 키미 라이코넨이 마지막 랩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 2006년: 슈마허가 엔진 고장으로 리타이어하며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챔피언십을 내주었다.
- 2014년: 쥘 비앙키가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72]
- 2022년: 폭우로 인해 경기가 단축되었지만, 규정에 따라 풀 포인트가 부여되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2024년부터 일본 그랑프리는 봄에 개최된다.
2. 3. 1. 프로스트-세나 라이벌 관계

1988년 레이스는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 (맥라렌 팀 동료) 사이의 세계 챔피언십 결정전이었다. 당시 포인트 시스템은 상위 11개 결과만을 합산했기 때문에 세나가 챔피언십 우승 가능성이 더 높았다. 세나는 프로스트보다 한 번 더 그랑프리에서 리타이어했고, 프랑스인보다 다소 일관성이 떨어졌지만, 이는 브라질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포인트 시스템 방식 때문에 득점할 여지가 더 많았던 것이다. 맥라렌은 윌리엄스로부터 우수하고 연비가 좋은 혼다 엔진을 확보했고, 다른 어떤 차보다 훨씬 뛰어난 차를 보유했으며, 이탈리아 그랑프리를 제외하고 시즌 모든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맥라렌은 이 시즌에 단 한 번만 더블 리타이어를 기록했다. 세나는 스타트에서 시동이 꺼졌지만, 경사가 완만한 피트 스트레이트에서 차를 밀어서 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그는 14위로 떨어졌고, 프로스트가 선두를 차지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궂은 날씨의 전문가 세나는 트랙을 질주하며 여러 번 최고 속도 랩을 기록했고, 한 대씩 차를 추월하며 2위 버거를 따라잡은 뒤 프로스트를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선수의 기어박스는 고장 나 있었고, 브라질 선수는 꾸준히 후미 주행자 데 체사리스 때문에 지연되던 프랑스 선수를 추월하며 따라잡았다. 세나는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첫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프로스트는 전체적으로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2위를 기록했다.[7]
1989년 레이스는 매우 기대되는 레이스였고, 터보차저 엔진을 금지하는 새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맥라렌-혼다 조합은 여전히 우세했으며, 시즌 14경기 중 10경기에서 우승했다. 이 레이스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레이스 중 하나가 되었다. 1989년 다시 한번 맥라렌 팀 동료가 된 프로스트와 세나는 시즌 두 번째 레이스에서 시작된 격렬한 개인적인 불화에 휘말렸고, 레이스 주말이 되자 그들의 관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다. 레이싱 팀 동료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프로스트와 세나 사이에는 거의 의사소통이 없었고, 맥라렌 팀은 사실상 두 개의 별개 팀으로 운영되는 수준이었다. 세나 주변에는 프로스트보다 4~5배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세나가 프로스트보다 혼다 엔지니어와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나의 전력 질주 주행 스타일 덕분에 일본 대중의 인기가 높아져 혼다에 여러 가지 이점을 가져다주었고, 맥라렌은 다른 모든 엔진보다 뛰어난 엔진을 보유한 혼다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원했다. 세나와 프로스트 모두 레이스 주말에 각자의 목표를 알고 있었다. 프로스트는 세나보다 16점 앞서 있었고, 브라질 선수는 거의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다음 레이스에서도 우승해야 했기 때문에 챔피언십 경쟁에 남을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즈카에서 우승해야만 했다. 세나는 프로스트보다 1.5초 앞서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프로스트는 이미 예선에서 레이스 설정을 하고 있었다. 세나의 설정은 코너에서 더 빠르게 만들었고, 프로스트는 직선에서 더 빠르게 만들도록 설정을 선택했다.[7]
레이스 당일, 두 맥라렌은 그리드의 첫 번째 줄에 있었고, 두 맥라렌 드라이버의 감정은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스타트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프로스트는 훌륭한 출발을 했고, 세나보다 앞서 빠른 첫 번째 코너로 진입했다. 두 맥라렌 드라이버는 즉시 다른 선수들과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고, 프로스트와 세나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속도로 선두를 달렸다. 47랩, 초고속 130R 코너를 지나면서 브라질 선수는 카시오 시케인으로 진입하며 야심 찬 추월을 시도했다. 세나는 팀 동료의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추월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프로스트를 제치려고 했지만, 프랑스 선수는 세나와 맥라렌 사장 론 데니스에게 했던 말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전과 같이 기회를 주지 않고 단순히 맥라렌이 더블 리타이어로 망신을 당하도록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스트는 정확히 그렇게 했다. 시케인의 첫 부분을 이루는 오른쪽 코너로 진입하면서 세나를 들이받았고, 프랑스 선수의 차는 브라질 선수의 차와 뒤엉켜 두 차 모두 트랙을 이탈하여 시케인의 이탈로 가는 길로 미끄러졌고, 두 차의 혼다 V10 엔진은 시동이 꺼졌다.[7]
프로스트와 세나는 모두 멈춰 있었고, 프로스트는 세나가 퇴장한 것으로 보이자 챔피언십 우승을 확신하고 즉시 차에서 내렸다. 세나는 스즈카 트랙 마샬 그룹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들은 두 대의 뒤엉킨 차로 달려왔다. 두 대의 차를 분리하기 위해 마샬들은 세나의 차를 트랙 뒤쪽으로 밀어 위험한 위치에 놓았다. 그런 다음 마샬들은 세나가 엔진을 시동 걸고 출발할 수 있도록 그의 차를 앞으로 밀었다. 30초 이상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프로스트가 달렸던 맹렬한 속도 덕분에 두 선수 모두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기 때문에 세나는 여전히 베네통 드라이버 알레산드로 난니니 앞에서 편안하게 레이스를 선두하고 있었다. 세나의 프런트 노즈 콘이 손상되었고, 데그너 벤드를 지나면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노즈 콘을 교체하기 위해 피트에 들어갔다. 난니니는 브라질 선수가 피트에 있는 동안 세나를 추월했고, 세나가 피트에서 맹렬하게 나온 후, 이전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운전했고, 2랩 만에 랩당 2.5초씩 난니니를 따라잡아 카시오 시케인에서 이탈리아 선수를 깨끗하게 추월했다. 세나는 체커기를 받았지만, 시상식은 연기되었다. 세나, 프로스트, 맥라렌 경영진, 장 마리 발레스트르를 포함한 FIA 관계자 간의 회의가 레이스 직후 열렸다. 세나가 규칙에 위반되는 외부 비팀 지원을 받아 실격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그 규칙에는 허점이 있었다. 규칙에는 드라이버가 위험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밀어서 시동을 걸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포뮬러 원 패독의 놀라움과는 달리, 세나는 시케인을 통과하고 서킷 경계선에 있는 이탈로를 따라 이동한 후 표시된 트랙을 우회했기 때문에 실격당했다. 시케인을 자르는 것은 사실상 이점을 얻기 위해 트랙을 우회한 것이었고, 이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이 규칙은 시행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레이스에서의 순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드라이버의 경우 무시되었다 – 세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선수 세나는 이 결정에 격분했고, 나중에 자신이 오랫동안 일어난 일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난니니는 세나의 실격으로 인해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고, 맥라렌은 세나의 실격에 대해 항소했지만, 발레스트르와 FIA는 항소를 기각했을 뿐만 아니라 10만 달러의 벌금과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고, 결국 이 모두는 취소되었다. 프로스트는 세 번째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지만, 이는 2주 후 세나가 호주 그랑프리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맥라렌의 항소가 기각된 후에야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7]
1990년 대회는 1989년 대회만큼이나 논란이 많았다. 세나와 프로스트는 다시 한번 챔피언십에서 1위와 2위를 다투었다. 두 선수는 지난 46번의 포뮬러 원 챔피언십 레이스 중 37번을 우승했다. 그러나 역할이 바뀌었다. 프로스트의 챔피언십 상황은 전년도 세나의 상황과 같았다. 프랑스 선수는 타이틀을 방어하기 위해 마지막 두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해야 했다. 이 레이스에는 헬리콥터 추락 사고 후 며칠 만에 경력이 끝난 전년도 챔피언 난니니가 없었다. 레이스 전 드라이버 브리핑의 비디오에 나와 있듯이,[9] 드라이버들은 카시오 시케인에서 차가 위험한 위치에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세나는 생각 없이 만들어진 규칙에 대한 어리석은 해석이라고 생각한 것에 경악했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를 떴다. 세나는 프로스트보다 0.3초 앞서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프로스트는 이 해에 맥라렌 다음으로 경쟁력 있는 차를 보유한 페라리에서 출전했다. 세나는 레이싱 라인이 있는 도로의 깨끗한 왼쪽으로 폴 포지션을 옮기기 위해 그리드 위치를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허가되었지만, 발레스트르가 개입하여 그리드 위치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즉, 폴 포지션은 포뮬러 원 차량의 타이어에서 튀어나온 타이어 고무 조각이 모두 있는 트랙의 더러운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는 세나가 레이싱 라인에서 벗어나 더 나은 출발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좌절하고 화가 난 세나는 전년도 프로스트의 발언을 따라 첫 번째 코너에서 프로스트가 추월하려고 하면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나는 폴 포지션에서 출발했고, 프로스트는 두 번째(레이싱 라인에 있었지만)였다. 프로스트는 세나보다 앞서 나갔지만, 세나의 맥라렌에 장착된 더 강력한 혼다 엔진 덕분에 약간의 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프로스트는 레이싱 라인을 차지하기 위해 자리를 비켰지만, 세나는 그를 추월하기 위해 프로스트의 오른쪽으로 코너에 진입했고, 그 결과 프로스트의 페라리 측면을 들이받았다. 두 차량 모두 직진했고, 두 드라이버 모두 160mph의 속도로 자갈 함정을 지나 달렸고, 유출 지역 끝의 타이어 벽에 충돌했다. 세나와 프로스트는 모두 다치지 않았고, 두 드라이버 모두 다른 드라이버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 사고로 세나는 두 번째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이 사고는 다소 의심스러워 보였지만, FIA는 세나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89년 세나와 충돌했을 때 프로스트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돌이 결국 "레이싱 사고"로 선언됨에 따라 세나에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격분하고 혐오감을 느낀 프로스트는 나중에 세나를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묘사했다. 두 드라이버 모두 상대방을 고의로 충돌시켰다는 비난을 받았고, 따라서 두 상황과 두 사건 이후의 발언은 대부분의 팬들의 눈에는 두 드라이버의 명성을 더럽혔다.[7]
2. 3. 2. 기타 주요 사건
- 1977년: 질 빌뇌브(Gilles Villeneuve)와 로니 피터슨(Ronnie Peterson)의 충돌로 빌뇌브의 페라리 경주차가 제한 구역으로 날아가 관중 2명이 사망했다.[7]
- 1994년: 폭우로 인해 경기가 적기로 중단되었고, 2개 레이스의 합산 시간으로 순위가 결정되었다.
- 2014년: 쥘 비앙키(Jules Bianchi)가 던롭 코너(ダンロップコーナー)에서 스핀하여 다른 사고 차량 제거 작업 중이던 중장비(크레인)에 심하게 충돌하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여, 경기는 적기 중단되었다. 의식불명이 된 비앙키는 2015년 7월 17일에 사망했다.[72]
- 2022년: 폭우로 경기 시작이 지연되었고, "3시간 규정"에 따라 28랩 만에 종료되었다. 75% 미만의 단축 레이스였지만, 규정에 따라 3시간 경과 후 레이스가 종료되었고, 포인트 감산에는 해당되지 않고 "75% 미만에서 풀 포인트 부여"된 F1 사상 최초의 GP가 되었다.
3. 역대 우승자
F1으로 개최된 이후, 미하엘 슈마허가 6회로 최다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루이스 해밀턴이 5회, 세바스티안 페텔이 4회, 막스 페르스타펜이 3회 우승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컨스트럭터 부문에서는 맥라렌이 9회로 최다 우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페라리와 레드불이 각각 7회, 메르세데스가 6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엔진 제조사 부문에서는 메르세데스가 11회로 최다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드라이버별 우승 횟수
횟수 | 드라이버 | 우승 연도 |
---|---|---|
6 | 미하엘 슈마허 | 1995, 1997, 2000, 2001, 2002, 2004 |
5 | 루이스 해밀턴 | 2007, 2014, 2015, 2017, 2018 |
4 | 세바스티안 페텔 | 2009, 2010, 2012, 2013 |
3 | 막스 페르스타펜 | 2022, 2023, 2024 |
2 | 스나코 요시카즈 | 1966, 1969 |
쿠로사와 겐지 | 1969, 1973 | |
게르하르트 베르거 | 1987, 1991 | |
아이르통 세나 | 1988, 1993 | |
데이먼 힐 | 1994, 1996 | |
미카 해키넨 | 1998, 1999 | |
페르난도 알론소 | 2006, 2008 |
- '''굵은 글씨'''는 2024년 F1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인 드라이버.
컨스트럭터별 우승 횟수
횟수 | 제조사 | 우승 연도 |
---|---|---|
9 | 맥라렌 | 1977, 1988, 1991, 1993, 1998, 1999, 2005, 2007, 2011 |
7 | 페라리 | 1987,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 |
레드불 | 2009, 2010, 2012, 2013, 2022, 2023, 2024 | |
6 | 메르세데스 |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
3 | 베네통[98] | 1989, 1990, 1995 |
윌리엄스 | 1992, 1994, 1996 | |
2 | 로터스 | 1963, 1976 |
포르쉐 | 1964, 1967 | |
닛산 | 1968, 1969 | |
마치 | 1973, 1975 | |
르노 | 2006, 2008 |
- '''굵은 글씨'''는 2024년 F1 세계 선수권에 참가 중인 제조사.
엔진 제조사별 우승 횟수
횟수 | 제조사 | 우승 연도 |
---|---|---|
11 | 메르세데스 * | 1998, 1999, 2005, 2007, 2011,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
10 | 르노 | 1992, 1994, 1995, 1996, 2006, 2008, 2009, 2010, 2012, 2013 |
8 | 포드 | 1963, 1964, 1972, 1976[7], 1977, 1989, 1990, 1993 |
7 | 페라리 | 1987,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 |
3 | BMW | 1973, 1975, 1976 |
2 | 혼다 * | 1988, 1991 |
혼다·RBPT *** | 2023, 2024 |
- '''굵은 글씨'''는 2024년 F1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인 제조사.
- * 1998-2005년은 일모어가 제조.
- ** 코즈워스가 제조.
- *** 혼다 레이싱(HRC)이 제조하는 RBPT 및 혼다·RBPT와 기록은 별도 취급.





3. 1. 역대 우승자 목록 (표)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