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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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수경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북한을 방문하여 '통일의 꽃'으로 불렸으나, 이후 정치 활동과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사회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중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방북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되었고,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탈북자 비하 발언 및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2012년 국회의원 임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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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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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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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임수경 |
로마자 표기 | Im Sugyeong |
출생일 | 1968년 11월 6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종교 | 천주교(세례명: 수산나) → 불교(법명: 공덕주) |
웹사이트 | 임수경-블로그 |
정치 | |
직책 | 대한민국 국회의원 |
선거구 | 비례대표 21번 |
임기 시작 | 2012년 5월 30일 |
임기 종료 | 2016년 5월 29일 |
학력 | |
대학교 | 한국외국어대학교 |
대학원 | 서강대학교 |
기타 | |
국회의원 임수경 | 국회의원 임수경 |
2. 생애
임수경은 1967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학과에 입학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198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문규현 신부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992년 가석방되었다.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복권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미국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오스트리아 빈 평화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사회운동가, 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탈북자 비하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되었다.
2. 1. 학창 시절 및 민주화 운동
임수경은 1967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어학과에 입학한 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1989년 대학교 4학년 재학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선발되었고, 전대협은 비밀리에 파견 계획을 세웠다. 임수경은 서울을 떠나 출국했는데, 출국 당시 행선지를 일본으로, 출국 목적을 관광으로 밝혔다. 이후 동독 동베를린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대한민국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귀환하였고,[29] 동시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임수경은 평양축전 참가가 반미투쟁과 대정부 투쟁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인했고, 판문점 귀환도 북한의 통일정책에 따른 지령이라고 진술했다. 체포 중 북한 당국자와 학생들을 만나 격려받고 조선학생위원회 간부들로부터 공동선언문 실천 투쟁 지시를 받은 사실, 전대협 등 남한 학생운동 동향을 말한 사실 등이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92년 12월 가석방되었다.
2. 2.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방북 사건)
1989년 3월, 황석영 작가와 문익환 목사는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임수경을 대표로 파견했다. 임수경은 북한 청년들과 통일 문제를 논의했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파견하여 임수경을 지원했다.[32]
임수경의 방북은 남북 관계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북한과 대한민국 정부, 유엔사 사령부 모두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여 주목받았다.
임수경은 귀환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3년 5개월간 복역 후 가석방되었으며, 1999년 3월 1일에 사면 복권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0년 8월 15일 임수경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으며,[35] 김일성종합대학은 1989년 10월 12일 임수경에게 명예졸업증을 수여했다.[36]
2001년 8월 15일, 임수경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했다.
임수경은 방북 당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보도와 관련하여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임 의원 측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47]
2. 2. 1. 방북 배경 및 준비 과정
1989년 7월, 북한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이 축전에 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이를 불허하였다.[2]노태우 정부는 대표단 파견을 불허했지만, 전대협은 국제 교류 경험이 많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에 방북 관련 업무를 맡겨 비밀리에 방북을 추진했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로 선발되었다. 임수경은 학생운동 지도자라기보다는 '메시지 전달자' 역할이었다.[2]
남한 정보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임수경은 일본과 동독을 경유하는 10일 간의 여정 끝에 북한에 도착했다.
2. 2. 2. 북한에서의 활동
임수경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전대협은 비밀리에 임수경을 파견했고, 임수경은 일본과 동독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9][10][11]북한에서 임수경은 통일 문제를 협의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임수경의 행동과 옷차림은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금지되었던 반팔 티셔츠가 다시 허용되는 계기가 되었다.[33][34] 특히, 임수경이 평양에서 소개한 한국 민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조선중앙방송의 단골 음악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임수경은 북한에서 '통일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89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임수경, 통일의 꽃》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1990년 8월 15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을 받았고,[35] 김일성종합대학은 임수경에게 명예학생 졸업증을 수여했다.[36]
2. 2. 3. 귀환, 체포 및 재판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 파견되었던 임수경은 1989년 8월 1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13][14][15][16] 대한민국 정부와 유엔사령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임수경은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13][14][15][16]재판 과정에서 임수경은 평양축전 참가가 반미투쟁과 대정부 투쟁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인했고, 검찰은 판문점 귀환 역시 북한의 통일정책에 따른 지령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체포 과정에서 임수경이 북한 당국자 및 학생들로부터 격려를 받고 공동선언문 실천을 위한 투쟁을 독려받은 사실이 지령수수를 입증한다고 보았다. 임수경이 전대협 등 남한 학생운동 동향을 언급한 것은 군사상 이익공여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990년 6월 11일, 법원은 임수경에게 국가보안법상의 탈출 및 잠입, 회합, 고무 찬양, 금품 수수 등 13가지 죄목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36] 임수경은 3년 5개월간 복역 후 1992년 12월 24일 가석방되었다.[36]
2. 3. 석방 후 사회 활동
1992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후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복권되었다. 같은 해 8월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뒤늦게 졸업했고,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공부했다.[30]이후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평화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2011년 4월 5일 함세웅, 고은, 윤민석 등과 함께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30] 서강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으며, 서울에서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지만, 미국 코넬대학교의 박사 과정에 유학하여 평화학을 연구했다. 또한, 월간지 ‘말’의 객원기자, 월간지 ‘해인’의 객원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강사 및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17]
2005년, 외아들이 필리핀에서 익사한 것과 관련하여 인터넷에 “북한의 앞잡이, 잘됐다”와 같은 악성 댓글이 게시되었고, 임수경은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작성자를 고소했다. 경찰 수사 결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행위가 아닌, 전 초등학교장, 은행원, 대학교수 등이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18][19] 임수경은 악성 댓글에 대해 “만약 제가 슬픔에 잠긴 눈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작성자는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20]
2. 4. 정치 활동
1992년 가석방된 후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복권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미국 코넬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오스트리아 빈 평화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2011년 4월 5일 함세웅, 고은, 윤민석 등과 함께 미 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김은숙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30]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황장엽의 국립묘지 안장에 반대하기 위해 정치 참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31]2. 4. 1. 제19대 국회의원 활동
2012년 5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탈북자인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했을 당시, 국립묘지 안장에 반대하기 위해 직접 정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31]2012년 4월, 제19대 국회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1번으로 당선되었다.[3] 같은 해 8월 23일 경비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임수경 의원 등 52명).[21]
2012년 6월, 한 술집에서 탈북자와 대립 과정에서 욕설을 하고 여당 의원인 하태경을 "개같은 배신자"라고 부르는 등 사건이 발생했다.[5][4] 이로 인해 대중 시위가 일어났으며,[5] 임 의원은 탈북자와 하태경 의원에게 사과하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나온 발언이라고 해명했다.[22]
2012년 초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대외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주장을 소개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임 의원의 “우리민족끼리” 리트윗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본 보수 성향 시민단체 고발을 받고 수사에 착수할 것을 밝혔다.[24]
2. 4. 2. 탈북자 비하 발언 및 논란
2012년 6월, 임수경은 한 술자리에서 탈북자 백요셉 씨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변절자'라고 비하하여 논란이 되었다.[38]임수경은 백요셉 씨에게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들아. 너 몸 조심해."라고 발언했고, 하태경 의원에 대해서는 "하태경 그 변절자 ××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하태경 그 개××, 진짜 변절자 ××야."라고 발언했다.[38]
이러한 발언은 백요셉 씨가 임수경과 함께 찍은 사진을 식당 종업원이 지우자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백 씨는 상황을 이해하고 농담으로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라고 말했고, 이에 임수경이 감정이 격해져 폭언을 하게 된 것이다.[38]
탈북자 단체들은 임수경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내려온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라며 "2만 4000명의 입국 탈북자와, 중국과 제3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사는 10만 탈북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항의했다.[39]
임수경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서 총살감'이라는 발언에 감정이 격해져 나온 발언이었다"고 해명하며 "변절자라는 표현 역시 학생운동, 통일운동을 했던 하태경 의원에 대한 표현이었을 뿐 탈북자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불찰이며, 부적절한 발언으로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드린다"라고 덧붙였다.[40]
이 사건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은 임수경을 출당 조치했다.
2. 4. 3.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논란
임수경은 2012년 초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대외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주장을 소개했다.[23] 이는 해당 사이트 트위터에 게시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을 리트윗한 것으로, "일부러 국가보안법을 위반한다"는 코멘트를 덧붙여 해당 법의 폐지를 주장한 것이다.[23]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임수경이 북한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의 글을 리트위트하며, 북한이 '이명박 패당'이라고 한 것을 새해 덕담이라 칭찬하고, '이명박 역도의 망발...'이라는 문장을 리트윗하며 '고의 알티(리트위트)합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이야기한다고 비판했다. 트위터상에서는 임수경의 활동에 대해 "북한 대변인이냐", "섬뜩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41][42]
임수경은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리트윗한 것은 박정근이 북한 체제를 풍자·조롱할 목적으로[43][44]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데[45] 대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불복종운동 성격의 퍼포먼스에 동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46]
검찰은 임수경의 '우리민족끼리' 리트윗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본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고 수사에 착수할 것을 밝혔다.[24]
2. 4. 4. 신은미 & 황선 토크콘서트 깜짝 게스트 논란
북한 여행기를 펴낸 재미교포 신은미와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출신 황선의 토크콘서트에 임수경이 깜짝 게스트로 참가하여 논란이 되었다.[30]3. 사상 및 평가
임수경의 사상은 주로 통일관, 대북관, 미국관을 중심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그의 행동과 발언은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2]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임수경의 방북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이어져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북한에서는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영웅시되었다.[1]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임수경의 사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분단 현실과 이념 대립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1. 통일관 및 대북관
임수경은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가하면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방북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전대협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에 방북 작업을 맡겨 임수경을 파견했다.[2] 임수경은 일본과 독일을 경유하여 북한에 도착했고, 45일간 체류하며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2]임수경은 방북 당시 북한의 통일 정책에 따른 반미, 반정부 투쟁을 계속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시인했다.[29]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때도 북한 당국자 및 학생들로부터 공동선언문 실천을 위한 투쟁을 독려받는 등 지령 수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29]
임수경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온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3년 복역 후 가석방되었다.[1] 북한에서는 '통일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1]
3. 2. 미국관 및 반미주의
임수경은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필 진술로 밝혔다. 그는 미국이 "해방자, 구원자의 탈을 쓰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금까지 우리의 영원한 우방국가처럼 존재하고 있으나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며 해방자, 구원자는 더더욱 아닌 우리의 침략자라고 생각한다"라고 진술했다.[48]3. 3. 김일성 우상화 논란
임수경은 안기부 조사에서 김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논란이 되었다.- "일제시대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
-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
-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최고 지도자"[48]
- "북한 주민들은 그들 중심으로 단결, 생활하고 있으며", 김일성은 "지금의 생활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도자"[48]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보도에 대해, 임수경은 조선일보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방북 당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임 의원 측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결했다.[47]
이러한 임수경의 발언과 평가는 김일성과 북한 체제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임수경의 발언이 김일성 우상화와 북한 체제 찬양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3. 4. 부정적 평가
임수경의 행적은 한국 사회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한국 정부 당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비판과 북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평가가 공존한다. 한국에서는 가장 논란이 많은 북한 방문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진다.[2]- 국가보안법 위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했다. 한국 전쟁 이후 민간인 최초로 공개적으로 DMZ를 넘어 남한으로 돌아왔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3년간 복역 후 특별 사면되었다.[1] 1999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 북한에서의 평가: 북한에서는 임수경에게 '통일의 꽃'이라는 별명을 부여하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임수경, 통일의 꽃》을 제작하는 등 영웅으로 추앙했다.[1]
4. 기타
임수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문학상 소설 부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사월혁명회 사월혁명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참 좋다! 통일 세상》,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 림수경 항소리유서》가 있다.
2005년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아들이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37] 이와 관련해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18][19][20]
2012년에는 술자리에서 탈북자와의 대립 중 욕설을 하고, 자유한국당 의원 하태경을 "개 같은 배신자"라고 칭해 대중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5][4]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호세 루이스 가르시아는 1989년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임수경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라 치카 델 수르''(The Girl From the South, 남쪽 소녀)를 제작했다.[6] 이 영화는 임수경의 투쟁과 이후의 삶, 특히 아들의 죽음과 이혼 후의 변화를 보여준다.[7]
4. 1. 학력
-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불어불문학 학사[29]
- 1997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 석사[29]
- 200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과정 수료[29]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29]
4. 2. 수상 경력
연도 | 수상 내역 |
---|---|
1987년 | 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문학상 소설 부문 |
1990년 |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
1990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
1993년 | 사월혁명회 사월혁명상 |
4. 3. 저서
- 《참 좋다! 통일 세상》 (황소걸음, 2003년) 박재동 그림
-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돌베개, 1990년)
- 《어머니, 하나된 조국에 살고 싶어요 : 림수경 항소리유서》 (평양출판사, 1991년)
4. 4. 가족 관계
4. 5. 관련 사건 및 논란
2005년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초등학생 외아들이 현지에서 사고로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다.[37]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임수경의 방북 전력과 관련하여 악성 댓글이 달렸다. 이에 임수경은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였고, 이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18][19][20]2012년 6월에는 술자리에서 탈북자와의 대립 중 욕설을 하고, 자유한국당 의원인 하태경을 "개같은 배신자"라고 칭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중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5][4]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호세 루이스 가르시아는 1989년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임수경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라 치카 델 수르''(The Girl From the South, 남쪽 소녀)를 제작했다.[6] 이 영화는 1989년 통일된 한국을 위한 임수경의 투쟁과 2012년 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임수경과 가르시아 감독이 두 차례 더 만난 모습을 보여준다. ''라 치카 델 수르''는 수년간의 언론의 주목, 투옥,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이혼 후 그녀의 생각과 성격의 변화를 보여주려고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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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인터넷 '악플' 형사처벌 방침 “무분별한 인신공격 도 넘었다”는 판단 때문 임수경씨 아들 사망 관련기사에 '악플' 단 네티즌 사법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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