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장렬왕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렬왕후는 조선 인조의 계비이다. 1624년에 태어나 1638년 인조의 왕비로 간택되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고 인조와의 불화로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인조 사후 자의왕대비가 되었으며, 효종과 며느리 인선왕후의 상복 문제로 서인과 남인 간에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현종 때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숙종 때 창경궁에서 사망하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휘릉에 안장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선의 대왕대비 - 정희왕후
    정희왕후는 조선 세조의 왕비로서, 계유정난을 통해 남편의 왕위 등극을 도왔으며, 성종 대에 수렴청정을 실시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다.
  • 조선의 대왕대비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1688년 사망 - 효장문황후
    청나라 초기 세 황제를 섬긴 효장문황후는 순치제의 어머니이자 강희제의 할머니로서, 청나라 건국과 초기 안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적 영향력 행사와 문화 융합 정책 추진 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부 야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 1688년 사망 - 존 번연
    존 번연은 영국의 대장장이 출신 작가로, 옥중에서 기독교인의 천국 여정을 그린 우화 소설 《천로역정》을 집필하여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종교 서적을 남겼다.
  • 1624년 출생 - 메이쇼 천황
    메이쇼 천황은 1629년 즉위하여 1643년 퇴위한 일본의 109대 천황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지진, 조선 사절 방문, 시마바라의 난 등의 사건을 겪었고, 1696년 사망했다.
  • 1624년 출생 - 심재
    심재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좌의정 심희수의 후손이며, 문과 급제 후 여러 요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나 갑술환국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장렬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칭호조선 왕비
재위 기간숭덕 3년 음력 12월 2일 - 순치 6년 음력 5월 13일 ( 1639년 1월 5일 - 1649년 6월 22일)
시호자의공신휘헌강인숙목왕후 (慈懿恭慎徽獻康仁淑穆王后)
휘호정숙온혜장렬 (貞肅溫惠莊烈)
출생일천계 4년 음력 11월 7일 (1624년 12월 17일)
출생지충청도 직산현
사망일강희 27년 음력 8월 26일 (1688년 9월 20일)
사망지한성, 창경궁 내반원
능묘휘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신분
배우자인조
자녀없음
씨족양주 조씨
아버지조창원
어머니완산부부인 전주 최씨
왕대비 정보
왕대비 재위 기간1649년 5월 13일 ~ 1659년 5월 9일 (음력)
선임 왕대비소성왕대비 김씨
후임 왕대비효숙왕대비 장씨
대왕대비 정보
대왕대비 재위 기간1659년 5월 9일 ~ 1688년 8월 26일 (음력)
선임 대왕대비소성대왕대비 김씨
후임 대왕대비혜순대왕대비 김씨

2. 생애

1624년 12월 16일(음력 11월 7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양주이며,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어머니는 전주 최씨이다. 왕비의 이름에 대한 정보는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인조의 서자이자 폐귀인 조씨의 아들인 숭선군 이징(동평군 이항의 아버지)의 부인 영풍군부인 신씨는 장렬왕후의 조카이다.

1688년 9월 20일(음력 8월 26일])

2. 1. 왕비 책봉과 인조와의 관계

1638년 음력 12월 인렬왕후의 뒤를 이어 인조의 왕비로 책봉되었다.[1] 당시 인조는 44세였고, 왕비는 14세로, 의붓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보다 각각 12세, 5세 어렸다. 인조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으며, 인조의 후궁 조씨로 인해 인조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1645년 창덕궁을 떠나 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1]

2. 2. 대비, 대왕대비 시절과 예송 논쟁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대비가 되었으며, 이후 자의(慈懿)의 존호가 추상되어 '''자의왕대비'''(慈懿王大妃)가 되었다. 의붓아들인 효종이 승하한 1659년과 며느리인 효종비 인선왕후가 승하한 1674년에는 장렬왕후의 상복(喪服) 문제를 두고 서인남인 간에 두 차례의 예송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당쟁으로 기록된다.[1]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이 즉위하자 대왕대비가 되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증손자인 숙종 때인 1688년 9월 20일(음력 8월 26일)에 창경궁 내반원에서 65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1]

3. 가족 관계

관계이름출생 - 사망비고
친조부조존성1554년 ~ 1628년지돈녕부사, 증 영의정, 소민공
친조모용인 이씨? ~ ?이신충의 딸, 증 정경부인
외조부최철견? ~ ?대사간, 증 좌찬성
외조모진양 정씨? ~ ?정윤붕의 딸
아버지조창원1583년 ~ 1646년한원부원군
어머니전주 최씨1583년 ~ 1663년완산부부인
큰언니조수임1607년 ~ ?신익전의 처
형부신익전1605년 ~ 1660년신흠의 차남, 도승지 역임
오빠조윤석1615년 ~ 1664년승지[2]
작은언니조종임1623년 ~ ?청주 한씨 한정상의 처
형부한정상? ~ ?
남편인조1595년 ~ 1649년조선 제16대 왕, 재위 1623년 ~ 1649년
시아버지원종1580년 ~ 1619년
시어머니인헌왕후1578년 ~ 1626년능성 구씨
양자소현세자1612년 ~ 1645년
양자효종1619년 ~ 1659년조선 제17대 왕


4. 사후 평가 및 논란

효종과 며느리 효종비 인선왕후가 사망했을 때, 장렬왕후의 복상 문제로 두 차례 예송 논쟁이 있었다.[1] 이 외에 원문에서 장렬왕후에 대한 특별한 사후 평가나 논란은 찾아볼 수 없다.

4. 1. 예송 논쟁 관련 논란

효종이 붕어했을 때와 며느리인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가 사망했을 때 두 차례에 걸쳐 장렬왕후의 복상 문제로 예송 논쟁이 있었다.[1]

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참조

[1] 문헌 인조실록 인조 23년 11월 2일
[2] 문서 김광현 (조선)의 손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