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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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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순왕후는 조선 예종의 비로, 한명회의 딸이다. 1460년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예종과 혼인하였으며, 이듬해 아들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16세에 사망했다. 예종 즉위 후 장순왕후로 추존되었으며, 능은 경기도 파주 공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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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장순왕후
한글장순왕후
한자章順王后
로마자 표기Jangsun Wanghu
본관청주 한씨
한냉이
한글 (휘)한냉이
한자 (휘)韓冷伊
로마자 표기 (휘)Han Naengi
생애
출생1445년 3월 3일
사망1462년 1월 14일
사망 장소조선 한성부 안기(安耆)의 사저
가족 관계
아버지한명회
어머니황려부부인 여흥 민씨
배우자예종
자녀1남: 인성대군 이분
작위
세자빈재위 기간: 1460년 4월 11일 ~ 1461년 12월 5일 (음력)
전임: 세자빈 한씨 (소혜왕후)
후임: 세자빈 신씨 (폐비 신씨)
왕비조선 예종의 정비 (사후 추존)
능묘
능묘공릉(恭陵)
위치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시호
시호휘인소덕장순(徽仁昭德章順)

2. 생애

1460년 한명회의 딸로 태어나 세자빈(世子嬪)으로 간택되어 당시 세자였던 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이때 나이가 15세였다. 정숙한 성품과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실의 적통인 원손(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산후병으로 16세에 요절했다.[1] 예종 즉위 후 "장순왕후(章順王后)"로 추봉되었다.

2. 1. 세자빈 간택과 혼인

1460년, 세조의 신하이자 실력자인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여흥 민씨의 딸로 태어난 한씨(韓氏)는 왕세자였던 예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이 되었다.[1] 당시 15세였던 한씨는 조용한 성격과 아름다운 외모로 시아버지인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2. 2. 세자빈 시절과 죽음

1460년 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世子嬪)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5세였다. 정숙한 성품과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실의 적통인 원손(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산후병으로 16세에 요절했다.[1]

세조는 자신의 며느리이자 매우 총애했던 장순빈의 죽음을 슬퍼했다. 시호 ‘장(章)’은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아름다웠던 성품을, ‘순(順)’은 온순하고 자애로웠던 성품을 나타낸다. 이로써 장순빈(章順嬪)이 되었다. 후에 시동생이자 의붓사위인 성종이 즉위하면서 장순왕후(章順王后)로 추존되었다.[1]

왕후로 추존됨에 따라, 어머니는 황려부부인(黃驪府夫人), 아버지는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이라는 봉작을 받았다. 한씨(한송이)가 왕비가 된 후에도 이러한 봉작은 그대로 유지되었다.[1]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삼릉에 있는 공릉이다. 예를 갖춘 장례를 치렀으며, 후대 왕후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전해진다.[1]

외아들 인성대군은 2년 후 사망했으나, 회옹군 이쟁의 아들 이옹(이옹 서성부정, 1487~1510)과, 귀성군 이준과 안순왕후의 여동생인 천안부부인의 아들 이석(적성군 이석, 1484~1539)이 인성대군의 양자로 추봉되어 대를 이었다.[1]

2. 3. 사후

세조는 며느리이자 총애했던 장순빈의 죽음을 슬퍼했다. 장순왕후는 생전에 장순옹주, 세자빈 장순빈으로 불렸다.[1]

그녀의 시호 ‘장(章)’은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아름다웠던 성품을, ‘순(順)’은 온순하고 자애로웠던 성품을 나타낸다. 사후 장순빈(章順嬪)으로 불렸다가, 시동생이자 의붓사위인 성종 즉위 후 장순왕후(章順王后)로 추존되었다.[1]

왕후로 추존되면서 어머니는 황려부부인(黃驪府夫人), 아버지는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봉해졌다. 이 봉작은 한씨(한송이)가 왕비가 된 후에도 유지되었다.[1]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삼릉에 있는 공릉이다. 예를 갖춘 장례를 치렀으며, 후대 왕후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전해진다.[1]

외아들 인성대군은 2년 후 사망했으나, 회옹군 이쟁의 아들 이옹(서성부정, 1487~1510)과 귀성군 이준과 안순왕후 여동생 천안부부인의 아들 이석(적성군, 1484~1539)이 인성대군의 양자로 추봉되어 대를 이었다.[1]

3. 가족 관계



장순왕후는 1445년 3월 3일 한명회와 그의 부인 여흥 민씨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정순왕후와는 이종사촌 간이고, 정현왕후와는 5촌 당고모뻘이 된다. 여동생은 공혜왕후이다.

4. 기타

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가 죽자 비통해하며,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장(章)'과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뜻하는 '순(順)'을 합쳐 세자빈 한씨에게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순빈으로 삼았다. 훗날, 장순빈의 제부이자 시조카인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장순왕후로 추존했다.

장순왕후의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이다. 장순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4. 1. 현덕왕후 저주 설화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덕종(의경세자), 남편 예종과 아들 인성대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세조에 대한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주의 첫 대상자로 알려진 덕종의 경우 단종보다도 먼저 사망했으며, 따라서 세조가 덕종의 죽음에 분노해 현덕왕후의 능묘를 파헤치고 폐서인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4. 2.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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