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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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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회산군은 조선 성종의 서자이며 숙의 홍씨의 아들이다. 봉사 안방언의 딸과 혼인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중종 재위 기간 중 김안로의 간언을 꾸짖어 물리쳤으며, 후사가 없어 견성군의 차남 계산군 이수계가 대를 이었다. 시호는 정간이며, 부인은 죽산 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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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회산군
한자 표기檜山君
이염(李恬)
작위조선 성종의 왕자
부친성종
모친숙의 홍씨
출생일1482년 1월 2일 (양력)
사망일1512년
배우자영원군부인 죽산 안씨
자녀1녀
시호정간(貞簡)

2. 생애

숙의 홍씨(淑儀 洪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봉사(奉事) 안방언(安邦彦)의 딸과 혼인하였으나[1]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중종 재위 시절, 대신 김안로가 간사한 말로 임금에게 아뢰자 이를 면전에서 크게 꾸짖어 물리쳤다.[2] 1512년(중종 7) 병이 들자 중종이 어의를 보내 그의 건강을 살폈다.[3] 회산군은 후사가 없어, 중종의 명으로 견성군의 둘째 아들인 계산군 이수계(李壽誡)를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2]

3. 가족 관계


손자 : 풍성군 전(豊城君 銓, 1525 ~ ?)
손자 : 의성부정 강(義城副正 鋼, 1535 ~ ?)
손녀 : 이옥영(李玉英) - 순흥 안씨 안관(安寬)에게 출가(出嫁)
손녀 : 이옥경(李玉鏡, 1553 ~ ?) - 이경상(李慶祥)에게 출가(出嫁)
손자 : 단성군 진(丹城君 鎭, 1549 ~ ?)
손자 : 창성부수 명(昌城副守 銘, 1555 ~ ?)

참조

[1] 서적 조선왕조실록 성종대왕 묘지문
[2] 인물 회산군 한국학중앙연구원
[3] 서적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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