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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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욱진은 1917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난 한국의 화가로, 한국 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단순하고 순수한 화풍으로 표현하여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1939년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 등 여러 지역에서 자연, 사람, 불교적 주제를 담은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와 따뜻한 색감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냈으며, 주요 작품으로 '공기놀이', '보리밭', '까치', '집' 등이 있다. 장욱진은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양주시에 장욱진미술관이 건립되어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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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한글 이름 | 장욱진 |
한자 이름 | 張旭鎭 |
로마자 표기 | Jang Ukjin |
출생일 | 1918년 1월 8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연기군 연동면 송용리 |
사망일 | 1990년 12월 27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화가 수필가 도예가 판화가 조각가 |
분야 | 서양화 추상화 수필 도예 판화 조각 |
종교 | 불교 |
배우자 | 이순경 |
소속 | 前 서울대학교 교수 |
친척 | 이병도(장인) 이기령(손윗처남) 이춘녕(손윗처남) 이태령(손아랫처남) 이동녕(손아랫처남) 이장무(처질) 이건무(처질) 이어령(8촌 처남)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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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18년 1월 8일,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 무렵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으며, 1937년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하다 퇴학당했고, 1939년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진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유학 2세대군에 속하며, 일제 치하에서는 선전(鮮展) 및 재동경미술협회전(在東京美術協會展=白牛會)에 출품했다. 1944년부터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되었다가 해방을 맞고, 박물관 직원과 미술교사로 일하며 미술 활동을 재개했다.
1948년 이후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 2·9전 등에 동인(同人)으로 참가했고,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한국현대작가전, 동남아시아 문화교류전, 미네소타대학 미술학부 교환전에도 출품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앙가쥬망전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장욱진 탑비가 있으며, 198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거주한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404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외손녀 이승연이 SBS 드라마 은실이 주제가를 불렀다[24].
2. 1. 유년 시절과 학업
1917년 11월 26일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8세 무렵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으며, 1937년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2]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하다 퇴학당했다. 1939년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2]2. 2. 해방 이후의 활동
해방 후 1947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전통 한국 미술에 대해 배우고 전통 회화, 목공예, 공예에 영감을 받았다.[3]1948년부터 1952년까지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李揆祥, 1918–1964)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寫實派) 회원으로 단체전에 참여했다. 신사실파는 새로운 미학과 형식을 실험하고 새롭게 번역된 한국 전통을 현대적 요소에 통합함으로써 한국 현대 미술의 방향을 재검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4]
한국 전쟁 중과 그 이후, 장욱진은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자화상, '보리밭'(1951), '나룻배'(1951) 등 여러 중요 작품을 제작했다. 전쟁 후에는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나룻배'는 그가 아끼던 작품 '소녀'(1939) 뒤편에 그려졌다.[5][6] 전쟁 중 부산 피난 시절은 그의 그림에 도시 풍경이 등장하는 유일한 시기였다.[7] 예를 들어, '자동차가 있는 풍경'(1953)에서 도시의 집들과 자동차, 자전거, 서양식 주택을 그렸다.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1960년 전업 화가가 되기 위해 사직했다.
2. 3.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 시기
1963년부터 1975년까지 경기도 덕소에서 홀로 생활하며 자연, 동물, 사람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덕소 시대의 그림들은 자연과 자연에 둘러싸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반영하며, 더욱 강한 붓놀림과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8] 사람들은 단순화된 형태로 묘사되는데, 종종 막대 인형을 닮았거나 얼굴 특징 없이 표현되었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자유롭고, 장난기 넘치고, 순진한 자세로 그려졌다. 그는 아이들, 까치, 해, 달과 같이 모든 한국인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사물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에 담았다.[9] 그는 또한 불경을 읽은 아내에게 영감을 받아 아내의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여기에는 아내의 법명을 따서 제목을 지은 ''진진묘(眞眞妙, 1970)''가 포함되어 있다.[10][9]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 명륜동의 작업실에서 작업하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그림들은 이전 작품들처럼 캔버스 중앙에 집중하기보다는 대칭적인 구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1] 유화 외에도 마커 펜 드로잉, 중국 먹 그림, 도자기 그림, 실크스크린, 구리판화, 목판화 등 다양한 조형 실험을 시도했다.[12] 도자기 그림은 도예가 윤광조와 신상호와의 협업이었다. 1979년부터 많은 먹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전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둥글게 표현되던 나무의 묘사가 불규칙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형태, 패턴, 스타일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그의 모습을 반영했다.[13] 이 시기 그의 그림 중 일부는 덕소 시절의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사람과 아이들의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유머러스하고 어린아이 같은 방식으로 사람과 얼굴 표정을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인상」(1979)은 맨발의 큰 발을 땅에 딛고 수줍게 서 있는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14]
1980년, 충청북도 수안보로 작업실을 옮겼다. 60대 후반에서 70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예술적 스타일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1980년대부터 그의 작품들은 회화 스타일과 사용된 재료 모두에서 더욱 강한 동양적 영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는 전통적인 문인화와 민화의 요소를 사용했고, 심지어 유화붓 대신 먹붓을 사용하여 캔버스 위의 먹의 반투명한 외관을 강조했다.[17]
1986년부터 1990년 사망할 때까지 경기도 용인시 신갈에서 작업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는 민화의 영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으며, 더욱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를 사용했다.[19]
3. 작품 세계
장욱진은 일상적인 소재를 정감 있는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화폭에 담아냈다.[25] 파울 클레나 호안 미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킨 독보적인 화가로 인정받는다. 아동화를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으며, 간결한 색채와 평면적인 화면 처리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소품이며, 생활 주변의 소재인 마을, 가족, 가로수, 건물, 자전거, 어부 등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간략화된 표현법을 사용했다.
1963년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장욱진은 경기도 덕소(德所)로 거처를 옮겨 홀로 생활하며 자연, 동물, 사람을 묘사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8] 덕소 시대 그림들은 자연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반영하며, 강한 붓놀림과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단순화된 형태, 막대 인형을 닮거나 얼굴 특징 없이 표현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고 순진한 자세로 그려졌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 자연과의 조화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사물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에 담았으며,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켰다. 불교 가정에서 자란 장욱진은 불교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간결한 선을 사용했다.[9] 또한 불경을 읽은 아내에게 영감을 받아 아내의 불교식 이름을 딴 '진진묘(眞眞妙, 1970)'를 포함한 아내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10][9]
서울 명륜동 작업실 시기에는 대칭적인 구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1] 유화 외에도 마커 펜 드로잉, 먹 그림, 도자기 그림, 실크스크린, 구리판화, 목판화 등 다양한 조형 실험을 시도했다.[12] 도자기 그림은 도예가 윤광조와 신상호와의 협업이었다. 1979년부터 많은 먹 그림을 제작했으며, 형태, 패턴, 스타일을 끊임없이 실험했다.[13] 이 시기 그의 그림 중 일부는 덕소 시절의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유머러스하고 어린아이 같은 방식으로 사람과 얼굴 표정을 묘사한다. 「여인상」(1979)은 맨발의 여자를 묘사하는데, 얼굴 특징은 과장되었지만 밝고 쾌활하며, 평화롭고 다채로운 배경과 흡사하다. 이는 사람, 자연, 목가적인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반영한다.[14]
장욱진은 신문과 잡지에 여러 단편 글을 썼고, 이를 모아 「강가의 아틀리에」(1976)라는 에세이집을 출판했다.[15]
3. 1. 주요 작품
파울 클레나 호안 미로의 영향력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욱진은 유아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추상화시킨 독보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아동화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기법으로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으며, 검소한 색채와 평면적인 화면 처리가 두드러진다. 그의 모든 작품은 소품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25] 그는 한결같이 마을, 가족, 가로수, 건물, 자전거, 어부 등 생활 주변의 동화적 이미지를 좇아 간략화된 표현법을 사용했다. 대표작으로는 〈들〉, 〈까치〉(1987), 〈두 아이〉, 〈집〉(1981) 등이 있다.한국 전쟁 중과 그 이후, 장욱진은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자화상, '보리밭'(1951), '나룻배'(1951) 등 여러 중요 작품을 제작했다.[5] 특히 '나룻배'는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그가 아끼던 작품 '소녀'(1939) 뒷면에 그려졌다.[6] 전쟁 후 부산 피난 시절은 그의 그림에 도시 풍경이 등장하는 유일한 시기였다.[7] '자동차가 있는 풍경'(1953)에서는 도시의 집들과 자동차, 자전거, 서양식 주택을 그렸다.
1963년, 장욱진은 서울 외곽의 경기도 덕소(德所)로 거처를 옮겨 홀로 생활하며 자연, 동물, 사람을 묘사한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덕소 시대의 그림들은 자연과 자연에 둘러싸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반영하며, 더욱 강한 붓놀림과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8]
그는 아이들, 까치, 해, 달과 같이 모든 한국인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사물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림에 담았다. 서구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켰다.
불교 가정에서 자란 장욱진은 영원한 불교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삶의 모든 것들의 본질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정교한 붓놀림보다는 간결한 선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하여 자신의 신념을 그림에 담았다.[9] 그는 또한 불경을 읽은 아내에게 영감을 받아 아내의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여기에는 아내의 불교식 이름을 따서 제목을 지은 ''진진묘(眞眞妙, 1970)''가 포함되어 있다.[10][9]
1979년에 제작된 「여인상」은 맨발의 큰 발을 땅에 딛고 수줍게 서 있는 여자를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 특징은 과장되어 있지만 밝고 쾌활하며, 마을로 이어지는 흙길, 하늘 중앙의 태양, 새와 개가 있는 평화롭고 다채로운 배경과 매우 흡사하다. 이 이미지는 장욱진의 사람, 자연, 그리고 목가적인 삶에 대한 애정을 반영한다.[14]
1980년, 장욱진은 충청도 수안보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 시기 그의 그림 주제는 그의 나이를 반영했고, '시골집'(1980)과 같은 그림에서는 자녀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그의 외로움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16]
4. 평가 및 유산
장욱진은 한국 현대 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사람의 상호 작용과 조화에 대한 그의 삶과 견해를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0] 독특한 화풍과 순수한 표현은 그를 20세기 한국 화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2014년 4월, 장욱진재단은 양주시와 협력하여 장욱진미술관을 개관했다.[21] 이 미술관에는 장욱진의 작품 362점이 소장되어 있다.[22]
5.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출생 | 사망 |
---|---|---|---|
배우자 | 이순경 | 1920년 | 2022년 8월 18일 |
외손녀 | 이승연 |
외손녀 이승연은 SBS 드라마 은실이 주제가를 불렀다[24].
6. 저서
- 정영목 저, ''장욱진 Catalogue Raisonne: 유화''. 학고재, 20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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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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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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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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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논문
The Concept of Abstraction in New Realism Group: New Interpretation on Geometric Abstraction from Its Own Point of View
2012-06
[5]
논문
A Trauma of the Korean War and the Artists'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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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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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낙원은 어디에' 그들이 꿈꾸던 이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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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용
장욱진화백 외손녀 이승연 SBS 드라마'은실이' 주제가 불러 화제
https://news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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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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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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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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