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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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비석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대를 거치며 활동한 소설가로, 본명은 정서죽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소설 《자유부인》으로 195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친일 문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으며, 《자유부인》은 음란성 시비로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다. 4·19 혁명 이후에는 역사 소설을 주로 집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초한지》, 《손자병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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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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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정비석 |
출생일 | 1911년 5월 21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주군 (현 평안북도 의주군) |
사망일 | 1991년 10월 19일 |
직업 | 작가, 언론인 |
장르 | 소설 |
2. 생애
평안북도 의주군 출신으로, 본명은 정서죽(鄭瑞竹)이다. 일본 니혼 대학에서 유학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여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초기에는 순수소설을 썼으나 이후 대중작가로 전향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기자로 활동하며 친일 작품을 발표하여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는 등 친일 행적 논란이 있다.[1]
광복 이후에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1954년 발표한 소설 《자유부인》은 전후 사회의 변화와 세태를 반영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내용의 음란성 시비로 이승만 정권 하에서 특무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등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표현의 자유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활동을 재개하여 《산유화》, 《손자병법》, 《삼국지연의》 등 다수의 역사 소설과 고전 번안 작품을 집필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민비》와 같은 일부 작품은 역사 왜곡 논란을 낳기도 했다.[2] 1991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2. 1. 초기 생애 및 등단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잠시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유아기를 보낸 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성장하였다. 본관은 하동이고, 본명은 '''정서죽'''(鄭瑞竹)이다.일본으로 유학하여 니혼 대학 문과에서 공부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여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졸곡제>가 입선하였고, 이듬해인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성황당>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처음에는 순수소설 작가로 출발했으나, 이후 대중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로 방향을 바꾸었다.
1936년 발표한 데뷔작 〈졸곡제(卒哭祭)〉와 이듬해 발표한 단편 〈성황당〉은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은 소박하고 친근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끄는 관능적인 묘사를 담고 있어, 이후 대중작가로서 성공하게 될 정비석의 작품 경향을 미리 보여준다.
일제강점기에는 《매일신보》와 《중앙신문》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발표한 친일 성향의 작품들로 인해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이름이 올랐다. 또한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간사를 지냈으며, 소설 3편을 포함하여 총 9편의 친일 작품이 확인되었다.[1]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 2. 문학 활동 및 친일 논란
일본에 유학하여 니혼 대학 문과에서 수학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여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졸곡제>가 입선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성황당>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졸곡제(卒哭祭)〉와 〈성황당〉은 소박하고 친근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도 대중의 시선을 끄는 관능성을 담아내어, 이후 대중작가로서 크게 성공하는 정비석의 작품 경향을 예고했다.일제강점기에는 《매일신보》와 《중앙신문》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간사를 지냈으며, 소설 3편을 포함하여 총 9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한 사실이 확인되었다.[1]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이름이 올랐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1948년 말에는 여수·순천 사건 현장 답사 문예단의 일원으로 전남 동부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많은 연재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1954년에 발표한 《자유부인》은 한국 전쟁 이후 일부 계층에 퍼진 퇴폐적인 서구 풍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195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은 큰 인기를 얻어 1956년 한형모 감독을 시작으로 강대진, 박호태, 박재호 감독에 의해 총 네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2. 3. 《자유부인》 필화 사건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퇴폐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특무대에 연행되기도 했다. 특무대의 경찰관들은 정비석에게 김일성의 지시로 대한민국을 음란하고 퇴폐적으로 묘사하여 적화를 기도한 것이 아니냐며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이 사건은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도 대서특필되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를 대한민국 자본주의 체제의 타락을 보여주는 사례로 선전하며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작품 《자유부인》은 이후 198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애마부인》, 《젖소부인 바람났네》 등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의 원조이자 효시가 되기도 했다.
2. 4. 4.19 혁명 이후의 활동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그의 작품은 금서(禁書)에서 해제되었다. 이후 초한지 등 역사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1959년 발표한 소설 산유화는 1987년 KBS 1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1970년대 이후로는 주로 역사물이나 중국 고전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썼다. 《이조여인 사화》(1977), 《민비》(1980), 《초한지》(1984), 《김삿갓 풍류기행》(1985) 등이 대표적이며, 《손자병법》 시리즈와 《삼국지연의》도 집필했다. 특히 1981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되어 1984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손자병법》은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1984년과 1986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민비》는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퍼뜨린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2] 예를 들어, 고종의 장남 완화군을 둘러싼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은 여러 사극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일본인 기쿠치 겐조( 菊池謙讓일본어 )가 명성황후를 왜곡하여 묘사한 것을 정비석이 그대로 따라 창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2] 《삼국지연의》의 경우, 부록으로 제갈량심서를 덧붙이고 직접 중국 현지를 답사하여 유비와 촉한 관련 인물들의 유적지 사진을 찍어 책 앞부분에 싣는 등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집필했다.
2. 5. 별세
1991년 10월 19일 새벽 5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였다.유족으로는 부인 박정순 여사와 장남 천수(중앙일보 이사) 등 3남 4녀가 있었다.
3. 작품 세계
(내용 없음)
3. 1. 초기 작품 경향
일본 유학 중 니혼 대학 문과를 중퇴하고 귀국하여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졸곡제(卒哭祭)〉가 입선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성황당〉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1936년 발표한 데뷔작 〈졸곡제〉와 이듬해 발표한 단편 〈성황당〉이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소박하고 친근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도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관능적인 묘사를 담고 있어, 이후 대중작가로 크게 성공하는 정비석의 작품 경향을 예고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3. 2. 《자유부인》과 사회적 논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발표 이후 내용이 퇴폐적이고 음란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논란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이어져, 정비석은 특무대에 연행되는 상황까지 겪게 되었다. 특무대 경찰관들은 그가 김일성의 지시를 받아 대한민국을 의도적으로 음란하고 퇴폐적으로 묘사하여 공산주의 혁명(적화)을 기도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며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이 사건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등 해외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사건을 대한민국 자본주의 체제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선전하며 체제 비판의 소재로 활용했다.
작품 《자유부인》은 시간이 흘러 1980년대에 들어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등장한 애마부인 시리즈나 젖소부인 바람났네와 같은 성인 영화들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3. 3. 역사 소설과 대중적 인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그의 작품은 금서에서 해제되었다. 이후 초한지와 같은 역사장편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1959년에 발표한 소설 산유화는 1987년 KBS 1TV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1970년대 이후로는 주로 역사물이나 중국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여 집필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조여인 사화》(1977), 《민비》(1980), 《초한지》(1984), 《김삿갓 풍류기행》(1985), 《손자병법》 시리즈, 《삼국지연의》 등이 있다. 특히 1981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되고 1984년에 3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손자병법》은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1984년과 1986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민비》는 명성황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킨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2] 예를 들어, 고종의 장남 완화군을 둘러싸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 벌어진 갈등 구조는 여러 사극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일본인 기구치 겐조(菊池謙讓일본어)가 명성황후를 왜곡하여 묘사한 내용을 정비석이 그대로 답습하여 창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삼국지연의》의 경우 부록으로 제갈량심서를 첨부하고, 직접 중국 현지를 답사하여 유비와 촉한 관련 인물들이 머물렀던 장소나 묘소 등을 촬영한 사진을 책 앞부분에 싣는 등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공을 들여 집필했다.
4. 평가 및 비판
(내용 없음)
5. 기타
참조
[1]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10-02
[2]
뉴스
정비석作 '소설 명성황후'는 폐기처분해야 - 국사학자 이태진 '한국사 시민강좌'서 주장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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