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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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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평천은 용인시를 흐르는 하천으로, 과거 삼남대로가 지나던 풍덕천동 일대를 관통한다.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후 고향으로 이장되는 과정에서 명정이 떨어진 곳에 묘를 쓰면서 풍덕천, 혹은 풍덕래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는 택지 개발로 인해 옛 자연 마을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토월초등학교와 토월공원 등에서 옛 지명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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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천
개요
지리 유형
소속한강 수계
발원지형제봉
발원지 위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하구탄천 합류부
하구 위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길이5.15
유역 면적7.03
이름
한글풍덕천
한자豊德川
로마자 표기Pungdeokcheon
매큔-라이샤워 표기P'ungdŏkch'ŏn

2. 역사

원래 정평천 북서쪽 주변에는 해발 150m 내외의 신방지봉, 안산, 장구백이 등의 야산이 있고, 이 야산의 계곡에서 여러 하천이 발원하였다. 그리고 남동쪽은 저평한 평지로 정자들·무지니들·벌발들·새말들·안산넘어들·작은분숫골 등의 들판이 있었으나 현재는 택지개발로 옛 자취가 없어졌다.

정평천이 흐르는 풍덕천동(豐德川)은 과거 삼남대로에 속했으며 옛 수지면의 중심지였다. 원래 정평천 주변에는 풍덕내·문정·죽절·방축골·정자들·토월·새말·정평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수지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의해서 풍덕내(豐德來)의 옛 자취는 흔적도 없어졌다. 그나마 임진산성(壬辰山城) 주위로 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방축이 세워진 방축골 일대에 토월초등학교 토월정자(吐月亭子)가 있어 옛 지명의 일단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토월공원에는 수령 10~100년 된 느티나무 군이 있어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2. 1. 정몽주와 관련된 명칭 유래

포은 정몽주 선생이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피살된 뒤 경기도 풍덕군(현 개풍군 일부)에 일시 매장되었다가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천묘하는 과정에서 여러 설화가 전해진다.[2] 1411년 정몽주의 면례 행렬이 옛 수지읍 풍덕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려 떨어진 자리가 명당이라 하여 그곳에 무덤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2] 면례 행렬이 있었던 수지읍 풍덕리는 죽절(竹節)로도 불렸으며, 이후 '풍덕천(豐德川)'이라는 지명은 음운변화를 일으켜 '죽전(竹田)'으로 불리게 되었다.[2]

기록에는 삼남대로(三南大路)인 죽절(竹節)에 홀연히 명정이 하늘로 높이 날아가 이곳에 포은 정몽주의 면례 행렬이 처음 왔던 곳이라 하여 풍덕래(豐德來) 또는 이장하는 도중 명정이 날아오른 곳에서 풍덕(豐德), 풍덕천(豐德川)으로 표기되어 있다.[2] 지금의 묘소 자리는 모현읍 능원리 문수산 하단이라 하며, 명정이 날아오른 풍덕천(豐德川) 지역은 뒷날 죽절(竹節)이라 이름하였다.[2]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자 하면 포은의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할 수 없이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뜻이라 하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상여가 움직였고 그래서 죽절(竹節)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2] “풍덕에서 오신다”라고 하여 풍덕래(豐德來)라고 한 것을 1914년 지명 표기 작업을 할 때 ‘올 래(來)’자를 ‘내 천(川)’자로 음운변화가 일어나 풍덕천(豐德川)이라 하였다고 한다.[2] 하지만 풍덕천이 물이 깊어 명주 한 필이 다 들어갔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풍덩풍덩 빠져죽어 풍덩 내(川)라고 하던 것이 풍덕이 되었다는 구전이 존재한다.[2]

3. 현재

참조

[1] 간행물 한국하천일람 http://www.river.go.[...] 2014-12-31
[2] 웹사이트 디지털용인문화대전 풍덕천 http://yongin.gran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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