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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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고로 304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구조되었으며, 미흡한 초기 대응과 구조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사고 원인으로는 과적, 부실한 고박, 선체의 구조 변경, 급격한 변침 등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으며,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정보 은폐 의혹,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이 지적되었다. 이 사건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 구조 인력 등 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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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 |
---|---|
사건 개요 | |
사건 | 진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
영어 | Sinking of MV Sewol |
![]() | |
날짜 | 2014년 4월 16일 |
시간 | 오전 8시 48분 53초 (오전 8시 30분 ~ 오전 10시 30분, KST) |
위치 |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 |
원인 | 알 수 없음 (정보 미제공) |
최초 보고자 | 제주해양경찰서 |
참여자 | 알 수 없음 (정보 미제공) |
결과 | 침몰 |
인명 피해 | |
전체 인원 이름 | 탑승자 |
보고된 사망자 | 299명 |
보고된 실종자 | 5명 |
보고된 생존자 | 172명 |
사고 조사 및 수습 | |
매장지 | 알 수 없음 (정보 미제공) |
조사 | 진행됨 (구체적 내용 미제공) |
2. 배경
청해진해운은 1999년 2월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설립한 연안여객선사이다. 2012년 10월, 일본 마루에이 페리에서 '나미노우에호'를 중고로 들여와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었다.[17] 이후 전남 영암의 CC조선에서 여객실을 증·개축하여 최대 승선 인원이 956명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선박 자체 무게는 307톤 증가하고, 적재 가능 최대 중량은 307톤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빠르게 기울어져 침몰한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불법 개조·증축을 지적했지만,[22] 한국선급은 증축을 허가했고 두 차례 평가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위법성은 없었다고 한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여객선 운항 기준이 선령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18]된 것이 세월호 도입에 영향을 주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19] 개정 전인 2008년에도 여객선 선령기준은 25년[20]이었으므로, 침몰 당시 선령 20년이었던 세월호는 규제 완화와 관련이 없었다.
세월호 선원 대다수는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업 안정성이 낮아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22][23]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월 400만 원가량을 받는 정식 선장이었고,[24] 2013년 3월부터 8월까지 세월호의 정식 선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 연령이 넘어 계약직으로 전환된 후에도 계속 선장직을 수행했다.[25]
사고 해역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맹골수도라고 알려졌으나, 실제 사고는 맹골수도를 지나 병풍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45]
2. 1. 청해진해운
청해진해운은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둔 연안여객선사로, 1999년 2월에 창립되었다. 여객선 4척으로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의 3개 항로를 운항하였다. 2003년에는 마루에이 페리에서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를, 2012년 10월에는 세월호를 도입하여 운용하였다.[17]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남 영암의 CC조선에서 세월호의 증·개축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여객실을 증설하여 최대 승선 인원이 956명(여객 921명, 선원 35명)으로 늘어났다. 선박 자체 무게는 307톤 증가했고, 적재 가능 최대 중량은 307톤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빠르게 기울어져 침몰한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불법 개조·증축을 지적했지만[22], 한국선급은 세월호 증축을 허가했고 두 차례 평가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여 위법성은 없었다고 한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여객선 운항 기준이 선령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18]되면서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운용시한 약 18년(1994년 건조)이 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는 보도[19]가 있었으나, 개정 전인 2008년에도 여객선 선령기준은 25년[20]이었다. 따라서 침몰 당시 선령 20년이었던 세월호는 규제 완화와 관련이 없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으나[22], 사참위 조사 결과 차량 185대를 포함하여 총 화물량 2,213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으로 청해진해운은 2014년 5월 인천~제주 운항 면허가 취소되었다.[21]
2. 2. 선원
세월호 선원 대다수는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업 안정성이 낮아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22][23]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 역시 월 270만 원을 받는 1년 계약직이었다.[22][23]하지만 이준석 선장은 월 400만 원가량을 받는 정식 선장이었고,[24] 2013년 3월부터 8월까지 세월호의 정식 선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정년 퇴직 연령이 넘어 계약직으로 전환되었으나, 계속 선장직을 수행했다.[25]
청해진해운이 2013년 선원 교육 비용으로 54만 1천 원을 지출했다는 점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26] 선원 교육은 자체 교육과 법정 교육으로 나뉘는데, 자체 교육은 별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고, 법정 교육은 비용이 크지 않고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어 큰 비용 지출이 필요하지 않았다.[26]
2. 3. 세월호
청해진해운은 1999년 2월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두고 창립된 연안여객선사였다. 2012년 10월, 청해진해운은 일본 마루에이 페리에서 '나미노우에호'를 중고로 들여와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었다.[17]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들여온 직후인 2012년 10월 7일부터 이듬해 2월 16일까지 전남 영암에 있는 CC조선에서 배를 증·개축했다. 여객실을 늘려 최대 승선 인원은 956명(여객 921명, 선원 35명)이 되었다. 이 개조 작업으로 배 자체의 무게(경하중량)는 307톤 늘었고, 배가 실을 수 있는 최대 무게(재화중량)는 307톤 줄었다.
세월호가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한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불법 개조·증축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었다.[22] 그러나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을 허가했고, 두 차례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여 위법성은 없었다고 한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여객선 운항 기준이 선령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18]되었기 때문에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운용시한 약 18년(1994년 건조)이 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는 보도[19]가 있었다. 그러나 개정 전인 2008년에도 여객선 선령기준은 25년[20]이었기 때문에 침몰 당시 선령 20년이었던 세월호는 규제 완화와 관련이 없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으나,[22] 사참위 조사 결과 차량 185대를 포함하여 총 화물량 2,213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전체 화물 중량은 3,576톤으로 재화 중량인 3,794톤보다 적게 실렸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으로 2014년 5월 인천-제주 운항 면허가 취소되면서,[21] 인천-제주 항로 운항이 전면 중단되었다.[42][43]
2. 4. 사고 해역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조류가 센 맹골수도라고 알려진 경우도 있으나 실제 사고는 맹골수도를 지나서 파도가 잔잔했던 병풍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45]3. 사고 및 구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되었고,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어 36.1%의 낮은 생존율을 보였다.[46]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맹골수도를 통과했으며, 8시 48분경 병풍도 해상에서 급격히 좌현으로 기울어지며 'J'자 형태로 표류했다.[49] 이후 바닷물이 선체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9시 50분경에는 선수와 객실 중앙부까지 침수되었다. 결국 10시 30분경에는 뱃머리만 남기고 완전히 물에 잠겼다.[50][51]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한 학생의 신고 전화가 최초로 접수되었다.[52][53][54] 이후 세월호는 제주도관제센터(VTS)와 교신하여 침몰 사실을 알렸고(8시 55분), 제주해경(8시 56분)과 목포해경(8시 58분)이 사고를 접수했다. 진도관제센터(VTS)는 9시 6분에 세월호와 교신을 시작했다.[52][53][54]
9시 7분,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구조를 위해 접근했으나, 진도VTS는 세월호에 승객 탈출 여부를 묻고 "선장이 최종 판단하라"고 답변하며 탈출 명령을 지연시켰다.[56] 해양경찰은 사고 접수 후 출동했지만, 세월호와 교신하거나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57] 9시 46분경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했고, 10시 6분경에는 해경이 객실 유리창을 깨고 승객 5명을 구조한 후 현장에서 물러났다.[58][59]
민간 어선들은 적극적으로 구조에 참여하여 많은 승객을 구조했다.[61][62] 10시 30분까지 승무원,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을 포함하여 총 172명이 구조되었으나, 이후 추가 생존자는 없었다.[63]
3. 1. 출항
세월호는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어 사고 전날인 4월 15일 오후 9시에 인천항을 출항했다.[46] 세월호에는 일반 탑승객 70명, 화물기사 33명,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인솔자 1명, 그리고 선원 및 승무원 33명 등 모두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화물은 철근 약 410ton, 차량 185대 등 총 2213ton 정도가 실려 있었다.[46]참사 초기에는 세월호가 적재 한도를 초과하여 과적했다고 알려졌지만, 해사법상 만재흘수선[47]을 기준으로 과적을 판단하기 때문에 만재흘수선을 넘지 않은 세월호는 선박법상 과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개조 후 이루어진 복원성 검사 결과를 기준으로 1077ton만 실을 수 있는 세월호에 화물을 초과하여 실었기 때문에 '운용상 과적'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48]
3. 2. 사고 발생
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 물살이 빠르다고 하는 맹골수도로 진입했고, 맹골수도를 빠져나올 때까지 주목할 만한 이상 징후는 없었다.[49]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세월호는 8시 46분경 병풍도 해상에 진입했다. 8시 48분경 세월호가 10도 변침해야 하는 지점에 다다르자, 3등 항해사 박한결은 조타수 조준기에게 평소대로 5도씩 나누어 두 번 조타하도록 명령했다. 첫 번째 조타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조타에서는 조타를 멈췄음에도 우선회가 계속되었고, 세월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좌현으로 기울어지며 급선회로 이어졌다.[49] 이후 세월호는 'J'자를 그리며 왔던 길 방향으로 표류했다.8시 49분경 세월호가 45도가량 기울어지자, 갑판 외판의 루버 통풍구를 통해 기관 장비 구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실한 맨홀과 수밀문 관리는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지 101분 만에 전복되어 가라앉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9시 50분 무렵에는 선수와 객실 중앙부까지 침수가 시작되었고, 세월호의 기울기는 62.8도에 달했다.[50] 급선회가 시작된 지 101분이 지난 10시 30분 무렵에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51]
3. 3. 신고와 구조
KST 오전 8시 52분 32초,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한 학생이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최초로 신고 전화를 걸었다.[52][53][54] 이 학생은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알렸고, 전남소방본부는 목포해경에 신고 내용을 전달했다(8시 54분 7초). 그러나 목포해경은 최초 신고자에게 배의 위치를 묻는 데 시간을 지체했고, 3분 뒤에야 선박 이름을 확인하여 "세월호"임을 알게 되었다. 박진수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이러한 시간 지연에 대해 구조의 기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52][53][54]세월호는 최초 신고 3분 후, 진도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관제센터(VTS)에 교신하여 침몰 사실을 알렸다(8시 55분). 제주해경은 8시 56분에, 목포해경은 8시 58분에 사고를 접수했다. 진도관제센터(VTS)는 9시 6분에 세월호와 교신을 시작했고,[52][53][54] 9시 17분에는 세월호 선원으로부터 배가 50도 이상 기울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55]
9시 7분,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진도VTS와 교신 후 세월호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구조를 위해 접근했다. 진도VTS는 둘라에이스호로부터 "승객들이 탈출하면 구조하겠다"는 교신을 받았지만(9시 14분), 세월호가 승객 탈출 여부를 묻자 "선장이 최종 판단하라"고 답변하며 10분 내 경비정 도착을 알리며 해경 경비정을 기다리며 탈출 명령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는 승객 전원이 9분 28초 만에 탈출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결정이었다.[56]
해양경찰은 사고 접수 후 출동했지만,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57] 9시 44분경 헬기가 6명을 구조했고, 9시 46분경 선장과 선원들이 123정으로 탈출했다. 10시 6분경 123정은 세월호 3층 객실 유리창을 깨고 승객 5명을 구조한 후 세월호에서 물러났고, 구조를 위해 온 어선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해경은 구조정이 세월호 밑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당시에도 어선들은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었다.[58][59]
9시 58분경 현장 헬기 지휘 703호기는 해양경찰청장의 현장 방문 예정 소식을 알리며 안전을 당부했고, 10시 39분경에는 구조할 인원이 없다며 소방헬기의 복귀를 지시했다. 이는 우현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시점에서 더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방해했다.[60]
민간 어선들은 적극적으로 구조에 참여했다. 박영섭 선장은 조업을 마치고 귀항 준비 중 구조 요청 신호를 받고 뱃머리를 돌려 승객 27명을 구조했다.[61] 조도면 청년회원 김형오도 소형어선을 몰고 구조에 동참하여 25명을 구조했다. 조도면 어선 60여 척, 어민 150여 명이 초동 구조에 큰 역할을 했다.[62]
10시 30분까지 승무원 23명, 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71명 등 총 172명이 구조되었고, 이후 생존자는 없었다.[63]
4. 수색 및 인양
2014년 4월 16일, 한 유가족은 사고 당일 밤 10시가 넘도록 구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64] 중앙구조본부는 승객 300여 명이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인명 구조보다 청해진해운과 구난업체 언딘과의 계약 체결에 더 집중했다.[64]
해경은 수색 상황을 과장하여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라며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허위였으며, 대통령비서실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64] 4월 17일, 현장에서는 잠수 인력의 안전을 무시한 채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과 같은 무책임한 지시가 내려졌다.[66]
구조본부는 선내 공기 주입 계획을 발표했으나, 당시 선내 진입에 성공한 잠수사도 없었고 에어포켓 위치도 파악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다.[66] 수색 작업은 2014년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계속되었으나, 거센 조류, 탁한 시야, 낮은 수온, 선체 붕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5월 29일에는 4층 선체 일부를 절단하고 장애물 제거 작업을 병행하기도 했다.[67][68] 결국, 정부는 11월 11일 수색 종료를 선언했고, 실종자 9명을 남긴 채 참사 발생 210일째에 수중 수색은 마무리됐다.[68][69]
4. 1. 수습 방법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에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으나,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잠수요원들은 빠른 유속과 10~20cm에 불과한 가시거리에도 불구하고 선체까지 내려가 유도선(가이드라인)을 설치했다. 이 유도선은 잠수요원들이 안전하게 선체까지 이동하고, 꼬임 등의 문제를 해결하며 선체 진입을 시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70]
초기에는 스쿠버 다이빙 방식이 사용되었으나, 잠수 시간이 짧고 잠수병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더 오랜 시간 작업이 가능한 머구리 방식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는 이를 허가하여 22일부터 머구리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머구리 방식은 잠수병 확률이 높지만, 3시간까지 작업이 가능하여 선체 내부 진입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냈다.[71][72]
7월 11일에는 잠수 시간을 최대 6시간까지 늘리는 수중재호흡기 잠수 방식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미국 잠수팀과의 이견으로 무산되었다. 미국 잠수팀은 침몰 지점에 정박한 바지 때문에 잠수사 안전 확보가 어렵다며 바지가 없는 상태에서만 잠수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사고대책본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산소 농도를 높인 기체를 사용하는 나이트록스 잠수 방식이 도입되어 잠수 시간을 최대 60분까지 확보했다.[71]
공기주입은 선체 내 생존자들의 생존 시간을 늘리고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는 공기 주입 위치와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공기 주입이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 이루어져야 하며, 리프트백 설치 역시 부력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73][74]
선체 붕괴로 인해 잠수 수색이 불가능한 구역이 발생하자,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하는 방안이 합의되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유실 위험을 우려했지만, 정부의 유실 방지 대책 약속을 믿고 동의했다. 4층 선미 우현부터 절단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산소 아크 절단법 등이 사용되었다.[75][76]

4. 1. 1. 해상 및 공중
사고 초기, 해상에서는 경비함정, 민간어선, 관공선 등이 투입되어 광범위한 수색이 이루어졌고, 공중에서는 헬기를 이용한 수색이 병행되었다.[67] 그러나 초기 대응의 미흡으로 인해 구조 작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사고 당일(2014년 4월 16일) 오후 2시 36분경, 중앙구조본부는 승객 300여 명이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에 따르면, 해수 온도가 20도 미만일 때는 사고 발생 후 3일 이내에 집중 수색을 실시해야 했다. 그러나 중앙구조본부는 인명구조보다 청해진해운과 구난업체 언딘과의 구난 계약 체결에 더 신경을 썼다.[64]
해경은 수색 상황과 구조 동원 세력을 과장하여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허위 사실이었으며, 대통령비서실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문제 삼거나 수정 지시를 하지 않았다.[64]
4월 17일, 현장에서는 잠수 인력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지시가 내려졌다. 서해청 상황실은 3009함에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 들어가는 척이라도 하기 바람." 등의 지시를 반복했다.[66]
4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수색 작업이 계속되었다.[67]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해경, 해군, 소방대원, 민간잠수사로 합동구조팀을 꾸려 선체 수색과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거센 조류, 탁한 시야, 낮은 수온, 선체 붕괴 등으로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67][68] 결국 2014년 11월 11일, 정부는 수색 작업 종료를 선언했고, 실종자 9명을 남긴 채 수중 수색은 마무리되었다.[68][69]
4. 1. 2. 잠수요원
잠수요원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부터 수색 작업에 투입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색 작업 종료를 발표한 2014년 11월 11일까지 총 209일 동안 수색 작업을 계속했다.[67] 그러나 거센 조류, 탁한 시야, 낮은 수온 등으로 인해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작업 일정이 길어지면서 피로가 누적되었고, 그에 따른 사고도 발생했다.[68]사고 초기, 중앙구조본부는 잠수 인력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지시를 내렸다. 2014년 4월 17일, 서해청 상황실은 3009함에 "해수부 장관 상황실 임장. 바로 입수 바람. 조명탄 발사 바람"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 들어가는 척이라도 하기 바람. 청장 지시사항임" 등의 지시를 반복했다. 이에 3009함은 "위험한 상황에서 무조건 들어가라고만 지시하기가 힘듭니다. … 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안전 확보도 중요한 사항임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항의했다.[66]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해경, 해군, 소방대원, 민간잠수사로 합동구조팀을 꾸려 선체 수색과 구조 작업에 나섰다. 4월 18일에는 선체로 들어가는 통로를 확보하고 공기 주입을 시작했다. 4월 19일에는 선체 유리창을 깨고 선내에 진입하여 처음으로 시신을 수습했다. 이후 4월 29일까지 200구가 넘는 시신이 수습되었다. 그러나 선체 붕괴가 진행되면서 시신 수습 속도가 더뎌졌고, 사고 현장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실된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68]
2014년 10월 22일, 민간 잠수업체가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수색 중단 논의가 시작되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투표를 통해 수색 지속을 결정했고, 민간 잠수업체도 철수를 번복하고 수색을 재개했다. 10월 28일에는 102일 만에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수색 중단 논의가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11월 11일, 정부는 잠수사들의 위험과 수색 작업의 어려움을 이유로 수색 종료를 선언했다. 결국 실종자 9명을 찾지 못한 채 참사 발생 210일 만에 수중 수색은 마무리되었다.[68][69]
4. 1. 3. 공기주입 및 리프트백 설치
4월 17일, 구조본부는 선내 공기 주입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까지 선내 진입에 성공한 잠수사도 없었고, 에어포켓이 있을 만한 위치도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공기 주입의 실효성은 없었다.[66] 4월 18일, 선체로 들어가는 통로를 확보하고 공기 주입이 시작되었다.[68]사고 초기, 선체 내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선체에 구멍을 뚫어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이 논의되었다. 침몰 초기에는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공기 주입을 통해 생존 시간을 연장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내 진입 및 에어포켓 위치 파악의 어려움으로 인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66]
한편, 침몰하는 세월호를 물 위로 띄우기 위해 리프트백 설치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선체 인양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4. 1. 4. 선체 절단
2014년 5월 2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승객이 가장 많이 잔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선체 일부를 절단하고 장애물 제거 작업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일반인, 단원고 학생, 서비스직 승무원의 시신이 수습되기도 했다.[68] 그러나 이러한 선체 절단은 실종자 유실 우려 등으로 인해 논란을 빚었다.4. 1. 5. 선박 인양
세월호 선체는 침몰 사고 발생 직후 바로 인양되지 않고, 수색 작업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수색 작업 종료를 발표할 때까지 총 209일 동안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67] 그러나 거센 조류, 탁한 시야, 낮은 수온, 그리고 작업 기간 장기화로 인한 피로 누적과 그에 따른 사고 발생 등으로 인해 수색 작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67]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해경, 해군, 소방대원, 민간 잠수사로 구성된 합동 구조팀을 꾸려 선체 수색 및 구조 작업에 나섰고, 경비함정, 민간어선, 관공선, 헬기까지 동원하여 광범위한 해상 수색도 병행했다. 4월 18일에는 선체로 들어가는 통로를 확보하고 공기 주입을 시작했으며, 4월 19일에는 선체 유리창을 깨고 선내에 진입하여 처음으로 시신을 수습했다. 이후 4월 29일까지 200구가 넘는 시신이 수습되었지만, 선체 붕괴가 진행되면서 시신 수습이 되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수색 작업이 진척되지 않자 10월 22일 민간 잠수업체가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수색 중단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투표 결과 수색 지속이 결정되어 민간 잠수업체는 철수를 번복하고 수색을 재개했다. 10월 28일, 마지막 실종자가 발견된 지 102일 만에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수색 중단 논의는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11월 11일, 정부는 잠수사들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수색 종료를 선언했고, 결국 9명의 실종자를 남긴 채 참사 발생 210일 만에 수중 수색은 마무리되었다.[68][69]
4. 2. 수습 변수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 과정은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 초기, 중앙구조본부는 승객 300여 명이 탈출하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명 구조보다 선체 인양 작업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64] 또한, 수색 상황과 구조 동원 세력을 과장하여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라며 보도했다.[65]4월 17일, 현장에서는 잠수 인력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지시가 내려졌다. 서해청 상황실은 3009함에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 들어가는 척이라도 하기 바람. 청장님 지시사항임" 등의 지시를 반복했다.[66] 구조본부는 선내 공기 주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당시 선내 진입에 성공한 잠수사도 없었고 에어포켓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66]
수색 작업은 2014년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계속되었지만, 거센 조류, 탁한 시야, 낮은 수온, 선체 붕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5월 29일에는 4층 선체 일부를 절단하고 장애물 제거 작업을 병행하기도 했다.[67][68][69] 결국,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수색 종료를 선언했고, 실종자 9명을 남긴 채 참사 발생 210일째에 수중 수색은 마무리됐다.[68][69]
이 외에도 맹골수도의 빠른 조류와 낮은 가시거리, 낮은 수온으로 인한 저체온증 위험, 에어포켓 존재 여부, 격실 작동 여부 등 여러 요인이 구조 및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더했다.
4. 2. 1. 조류 및 가시거리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는 조류가 빠르고 가시거리가 10~20cm밖에 되지 않아 잠수요원들의 수색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77]4. 2. 2. 기상
사고 초기 수색 작업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 진행되었다. 맹골수도는 조류가 빠르고 가시거리가 10~20cm에 불과해 잠수요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웠다.[77] 또한, 4월 17일 오후에는 기상 상황 악화로 구조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78] 이러한 악천후는 구조 및 수색 작업을 지연시키는 요인이었다.4. 2. 3. 저체온증
사고 당시 수온은 낮아 생존자들의 저체온증 위험이 높았다. 박준범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0도에서 15도 사이의 물에 사람이 한두 시간 정도 있으면 의식을 잃는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한두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79] 저체온 상태에서는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맥박이 느려지는 서맥, 심방 및 심실세동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하면 심장 정지까지 올 수 있다. 또한, 구조 과정에서 작은 충격에도 심한 부정맥이나 출혈이 발생하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79] 이러한 저체온증의 위험은 구조 작업의 시급성을 더욱 높였다.4. 2. 4. 에어포켓
사고 초기 일부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었다. 정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명예교수는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이유에 대해 "컵을 물속에 엎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았고, 다행히 선수 부분은 손상이 없기 때문에 공기가 갇혀 있는, 소위 에어포켓이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포켓에 공기가 8m3가량 있다고 가정하면, 생존 가능 시간은 최대 72시간으로 계산된다.[80] 가라앉지 않은 부분에 의해 추산되는 선내 공기량은 500~1000 세제곱미터였다. 대서양에서는 선박 전복 사고 후, 선원이 에어포켓에서 60시간을 버티다가 구조된 사례가 있었기에, 에어포켓에 의한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많았다.[81][82] 정부는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고 세월호에 공기를 주입하기도 했다.[83] 그러나 결국 에어포켓에 의한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고, 에어포켓 관련 보도와 정부의 대응이 결과론적으로는 유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이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84]4. 2. 5. 격실
격실은 사고의 파급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시켜 만든 공간으로, 대부분의 선박은 이러한 격실을 갖추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공길영 교수는 "지금 상황은 천안함 피격 사건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며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으려면 수밀격실이 돼야 하는데, 배에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급격히 뒤집히는 대혼돈 속에서 문을 닫는 조치가 취해져 있을지 비관적이다"라고 말했다. 격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을 닫는 조치가 필요하며, 격실에 에어포켓이 있다면 이론적으로 48시간을 버틸 수 있다.[85]5. 사고 원인 및 책임자 수사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여러 논란과 의혹이 제기되었다.
검찰은 2014년 10월 6일,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선박 증축, 과적, 평형수 부족, 부실 고박, 운항 과실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86] 그러나 법원은 검찰 주장을 일부 기각하며, 증축은 한국선급 허가를 받았으므로 위법성이 없고, 과적은 만재흘수선 기준으로 법적 과적이 아니며, 평형수는 운항 상황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에서는 선장의 조타실 직접 지휘 의무가 없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86]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주요 가설로는 안개 후 암초 충돌설, 구조결함설, 구조변경설, 변침설(항로변경설), 내부폭발설, 과적 및 선체결함설, 느슨한 결박설, 잠수함 충돌설 등이 있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이준석 선장 및 선원, 청해진해운, 박근혜 정부 등 다양한 주체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선장 및 선원들은 승객 안전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탈출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22][23] 청해진해운은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과적, 안전 불감증으로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22] 박근혜 정부는 초기 대응 실패, 구조 작업 지연, 정보 은폐 의혹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샀다.[52][53][54]
2022년 9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세월호 침몰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참위는 해경의 초동 대응 미흡,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역할 부재, 정보기관의 부당 개입 등을 지적했다.[122] 4.16연대는 사참위 조사 결과에 대해 침몰 원인 규명 실패 등 한계점을 지적하며 실망감을 표했다.[128]
5. 1. 침몰 원인 조사
검찰은 2014년 10월 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86]원인 | 검찰 측 주장 | 법원 판결 |
---|---|---|
선박 증축 | 일본에서 수입 후 증축으로 총톤수 증가(239톤), 좌우 불균형 | 한국선급 허가, 위법성 없음 |
과적 | 최대 적재량(1,077톤)의 2배(2,142톤) | 만재흘수선 기준, 법적 과적 아님 |
평형수 부족 |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 1,375.8톤 부족 | 운항 상황에 따라 조절 가능 |
부실 고박 | 관계 법규 미준수, 차량 컨테이너 부실 고박 | (별도 판결 내용 없음) |
운항 과실 | 선장 선실 이탈, 항해사·조타수 과도한 변침 | 1심: 선장 조타실 지휘 의무 없음 |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일부 기각하며, 증축은 한국선급의 허가를 받았으므로 위법성이 없고, 과적은 만재흘수선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법적으로 과적이 아니며, 평형수는 운항 상황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1심 재판에서는 선장이 조타실에서 직접 지휘할 의무가 없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86]
5. 1. 1. 가설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안개 후 암초 충돌설
세월호는 인천 해역의 안개 때문에 출발이 2시간 30분 늦어졌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사고 당시 시정거리가 1해리(1852m)에 불과했다고 밝혀[87] 안개로 인해 암초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88] 그러나 대한민국 기상청은 사고 당시 세월호 항해 해역의 시정이 나쁘지 않아 안개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89]
사고 초기 언론은 안개로 인한 암초 충돌 가능성을 집중 조명했다. 일부 생존자들이 '쿵'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과 당시 안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백점기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은 좌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90][91] 그러나 해당 해역에 암초가 없고, '쿵' 소리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이 가설은 유력한 사고 원인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102][103][92] 최근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세월호 선체 손상이 수중체 접촉에 의한 외부 충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는 아니어서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93]
; 구조결함설
세월호와 같은 RORO선은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자주 지적되었다(RORO선 사고 목록 참조).[94] 2009년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건조하여 마루에이 페리사가 운행하던 아리아케호가 침몰했다.[95] 이 선박은 과거 세월호가 나미노우에호로 운항하던 시절 같은 해운사가 운행했고 선박 디자인과 배수량이 유사한 RORO선이다.[96] 2009년 아리아케호 사고 직후, 마루에이 페리는 나미노우에호를 2012년 퇴역시켰고, 청해진해운이 이를 수입하여 1년간 개조, 2013년 3월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고 운행을 시작했으나 1년 1개월 만에 좌초되었다.[97] 한 해상전문가는 선박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98] 세월호 침몰에 대한 구조적 결함 주장은 참사 직후부터 제기되었고, 선사 임직원 대상 2심 재판에서 “조타기의 비정상 작동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났다. 그러나 최근 사참위 조사 결과보고서는 조타기 관련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의 급격한 우선회와 횡경사를 유발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여 조타기 고장설을 기각했다.[99]
; 구조변경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김길수 교수는 구조변경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된 뒤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을 증설했다. 3~5층에 객실이 증설되어 승선정원이 181명 추가된 921명이 되었고, 선박 무게도 239t 증가하여 무게중심이 높아졌다. 김 교수는 구조 변경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 충격에 배가 뒤집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객실 증설은 합법적 공사였고, 점검 결과 운항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100] 배 앞쪽 램프웨이도 철거되었는데, 출입구를 줄여 화물을 더 싣고 배 전체 무게를 가볍게 하여 객실 증축에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었다.[101]
; 변침설(항로변경설)
변침(變針)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 있다고 보았다. 침몰한 세월호가 좌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교수는 세월호 참사 원인이 암초가 아닌 급선회에 따른 외방경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속이 빠른 해역에서 선박이 회전하면 선체가 5~10도가량 기울고, 그 영향으로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선박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꽝' 소리가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선박에 부딪혀 발생한 소리로 보았다.[102][103] 이 설은 17일 해경 긴급 브리핑에서 잠정 결론으로 발표한 견해이기도 하다.[104]
그러나 세월호에 실려있던 차량 블랙박스를 통해, 선체가 10초 만에 52도까지 급격하게 기울고 난 뒤에 차량이 움직이는 장면이 확인되면서, 변침이나 화물 쏠림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속도로 선체가 기우는 것이 확인되었다.[105]
또한, 2014년 선박해양연구소의 모형항주실험을 통해, 2014년 당시 검찰이 주장했던 세월호 급변침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4년간 은폐되었다가 2018년 3월에야 연구사실이 밝혀졌다.[106] 2018년 1월, 네덜란드에서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을 수백 번 실행했으나, 어떤 경우의 수를 두더라도 정부가 발표한 항적을 그리지 않았다.[107]
; 내부폭발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는 변침은 침몰의 1차적 원인이 아니라며, 배가 이미 기운 상태에서 변침을 시도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그는 조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조타 장치를 작동해 봐야 소용없다는 의미이며, 내부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컨테이너에 무엇이 실렸는지 봐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암초설에 대해서는 해양 조사원들이 해도에 항로의 암초들을 기입하고 승무원들도 항로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며 암초에 의한 좌초 가능성을 일축했다.[108]
; 과적 및 선체결함설
이 견해는 2014년 4월 19일 부산일보와 JTBC에서 제기되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해운조합에 따르면 세월호는 출항 전 화물 657t,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보고했으나, 실제 확인 결과 화물 1,157t, 차량 180대를 싣고 있어 화물 500t, 차량 30대를 초과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화물과 차량을 초과한 상태에서 밧줄로 제대로 묶지도 않아 선박 하중조절 실패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견해이다.[109]
세월호에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기관사는 선박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양 측면의 스태빌라이저 결함을 증언했다. 스태빌라이저는 선박 측면에 날개 모양으로, 선체의 안과 밖을 왕복한다. 급회전 시 이 스태빌라이저가 작동하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화물 과적재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청해진해운 측은 과적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JTBC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세월호의 전체 중량은 6825ton인데, 이는 선박 자체, 화물, 승객, 연료 등의 무게를 모두 더한 수치다(만재배수톤수). 이 무게를 넘으면 과적이 돼 출항할 수 없다. 세월호 배 자체 무게는 3031ton, 선사 측이 밝힌 화물과 승객 무게는 3638ton이다. 모두 더하면 6825ton을 넘지 않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배의 연료와 평형수 등의 무게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세월호 연료로 쓰인 벙커C유와 경유를 환산한 무게는 약 160ton으로 이를 더하면 6825ton을 넘어선다. 윤종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모든 것을 실은 상태에서 화물, 연료, 물, 선용품, 음식 등이 다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평형수 문제 역시 선박의 동적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승객들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침몰되기 한 시간 전인 7시 40분경부터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평형수 탱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평형수 탱크는 선박 가장 아래에 있으며, 좌우 3개씩 총 6개의 물탱크로, 해수를 담아 배의 좌우 균형을 맞춘다. 그런데 최근까지 세월호에서 일했던 전직 선원은 물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한 번 물을 맞추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JTBC는 평형수 시설이 2월에 수리, 안전점검까지 통과했지만 그 이후에도 선원들은 전혀 고쳐진 바가 없다고 했으며, 스태빌라이저 역시 부품이 없어 수리받지 못했고, 적재된 컨테이너 역시 쇠줄이 아닌 밧줄로 묶였다는 점도 지적했다.[110][111]
그러나 네티즌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X'에 따르면 당시 세월호는 과적을 한 것이 사실이나 참사 당시보다 적게 실은 날이 단 4번뿐이었고, 3배 이상 과적하여 운항한 날도 있어 이 가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느슨한 결박설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112]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113]
그 외에도 잠수함 충돌설 등이 있다.[114]
5. 2. 책임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선장 및 선원, 청해진해운, 대한민국 정부 등 다양한 주체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선장 및 선원: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탈출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22][23] 특히, 선내 대기 방송만 반복하고 승객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탈출했다는 점이 공분을 샀다.[119]
- 청해진해운: 청해진해운은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과적, 그리고 안전 불감증으로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22] 한국선급의 허가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불법 개조·증축이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22] 또한, 청해진해운은 사고 이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 대한민국 정부: 박근혜 정부는 초기 대응 실패, 구조 작업 지연, 정보 은폐 의혹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샀다.[52][53][54] 특히, 해양경찰의 소극적인 구조 활동과 민간 어선의 구조 활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58][59]
5. 2. 1. 선장 및 선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 및 선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탈출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22][23]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은 월 270만 원을 받는 1년 계약직이어서 직업 안정성이 낮아 소속감이나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22][23]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월 400만 원을 받는 정식 선장이었고,[24] 2013년 3월부터 세월호의 정식 선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 후 계약직으로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25]
세월호 선원들은 침몰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119] 신고 전화가 접수된 8시 52분경부터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9시 45분경까지, 세월호에는 선내에 가만히 대기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선내 대기 방송만 계속 내보내다가 가장 먼저 탈출했다.
9시 46분경 조타실 선원과 선장이 123정으로 옮겨 타는 등 선원들을 포함해 52명이 123정으로 구조되었다.
5. 2. 2. 청해진해운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둔 청해진해운은 1999년 2월에 창립된 연안여객선사로, 4척의 여객선으로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의 3개 항로를 운항하였다. 2003년에는 마루에이 페리에서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를 들여와 운용하였고, 2012년 10월에 세월호를 들여왔다.[17]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들여온 직후인 2012년 10월 7일부터 이듬해 2월 16일까지 전남 영암에 있는 CC조선에서 여객실 증설 등의 증개축 작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최대 승선 인원은 956명(여객 921명, 선원 35명)이 되었다. 이러한 개조 작업으로 경하중량은 307톤 증가했고, 재화중량은 307톤 감소했다.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허가했고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여 위법성은 없었다고 하나, 세월호가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한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불법 개조·증축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22]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여객선 운항 기준이 선령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18]되었기 때문에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운용시한 약 18년이 된 세월호(1994년 건조)를 사들여와 운항할 수 있었다는 보도[19]가 있었으나, 개정 전인 2008년에도 여객선 선령기준은 25년[20]이었다. 따라서 침몰당시 선령 20년이었던 세월호는 규제 완화와 무관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의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으나,[22] 사참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차량 185대를 포함하여 총화물량 2,213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전체 화물중량은 3,576톤으로 재화중량인 3,794톤보다 적게 실렸다.
인천~제주 항로를 운항해 온 청해진해운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으로 2014년 5월 인천~제주 운항 면허가 취소되었다.[21]
2014년 4월 17일 오후 9시에 인천항에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120]
5. 2. 3.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구조 작업을 지연시켰으며, 정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국민들의 불신을 샀다.[52][53][54] 특히, 당시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과 책임 회피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고, 이후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사고 당일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최초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목포해경은 신고자에게 배의 위치를 반복해서 묻는 등 시간을 지체했다.[52][53][54] 세월호는 최초 신고 3분 후 제주관제센터(VTS)와 교신했고, 제주해경을 거쳐 8시 58분에야 목포해경이 사고를 접수했다.[52][53][54] 9시 6분, 진도관제센터(VTS)가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배가 50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였다.[55]
9시 7분,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세월호를 발견하고 구조를 시도했으나, 진도VTS는 세월호에게 "선장이 최종 판단"하라며 해경 경비정을 기다리도록 했다.[56] 이는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해양경찰은 사고 접수 후 출동했지만, 세월호와 교신조차 하지 않고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57] 9시 44분경 헬기가 6명을 구조하고, 9시 46분경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 123정으로 탈출하는 동안, 세월호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나왔다.[58][59]
해경은 구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구조에 나선 어선들을 통제하려 했다.[58][59] 10시 39분경에는 현장에 진입하려는 소방헬기에게 "구조할 인원이 없다"며 복귀를 지시하기도 했다.[60]
반면, 민간 어선들은 적극적으로 구조에 참여했다. 어선 선장 박영섭은 27명을, 조도면 청년회원 김형오는 25명을 구조하는 등 많은 어민들이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61][62]
10시 30분까지 승무원 23명, 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71명 등 총 172명이 구조되었으나, 이후 생존자는 없었다.[63]
5. 3. 최근 사참위 발표 내용
2022년 9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참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122]- 해경 등 초동대응의 적절성: 해경 지휘부는 세월호의 위급한 상황을 파악하고 승객들에게 퇴선을 유도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아 304명의 사망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123]
-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응의 적정성: 청와대는 국가위기상황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정권 비판 여론을 막기 위해 국민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나누고, 피해자들을 정치세력에 선동된 모습으로 낙인찍는 등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124]
- 정보기관(국정원, 기무사 등)의 세월호 참사 개입: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등 정보기관이 유병언 일가 수사 및 검거 작전에 위법·부당하게 지원한 사실 또는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를 '유병언 일가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참사'로 규정하며, 유병언 수사를 통해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국정원과 기무사는 이에 적극 부응했다고 밝혔다.[125] 기무사는 민간인 대상 감청, 개인정보 수집 등 위법한 활동을 했으며, 이러한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되었다고 한다.[126]
- 세월호 참사와 국가 범죄: 세월호특조위의 진상규명 방해는 계획적, 대량적, 체계적으로 자행된 국가 범죄라고 판단했다.[127]
4.16연대는 사참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실망하며, 침몰 원인 규명 실패, 진실 은폐 및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한 전모 규명 실패 등 4가지 한계점을 지적했다.[128]
사참위는 종합보고서와 80건의 권고를 국회와 대통령에 보고했으며, 국가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129] 그러나 4·16연대에 따르면, 2024년 4월 12일 현재 윤석열 정부는 권고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130]
6. 반응 및 여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여,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이 사고로 생존율은 36.1%에 불과했으며,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고, 다양한 사회적 반응과 후유증을 낳았다.
6. 1. 대한민국 내외의 반응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여,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생존율은 36.1%로 매우 낮았다.[1]6. 2. 여파
세월호 참사는 생존자, 유가족, 구조 인력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을 남겼다.
6. 2. 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구조된 생존자들 대부분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생존자를 진찰한 의사는 "이송된 환자들이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어 한동안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면서 "정신 검진과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해 치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존자뿐 아니라 주변인이나 구조 인력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사고 당일 5명으로 구성된 심리치료팀을 생존자들이 입원한 안산 구로병원에 보내 심리 지원을 시작했으며, 17일에는 여성가족부, 교육부, 소방방재청, 경기도 등이 함께 '중앙재해 심리지원단'을 꾸려 진도 사고 현장에 내려보냈다.[131]6. 2. 2. 자살
4월 18일 오후 4시 5분 경, 수학여행 인솔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교감이 전남 진도체육관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132] 교감의 지갑에서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며 시신은 화장한 뒤 사고 해역에 뿌려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내용도 있었다.[133] 강민규 교감은 학생들을 남겨두고 구조된 것에 대해 “나만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 괴롭다”고 호소했으며, 학부모들로부터 “왜 당신만 살아 돌아왔느냐”는 질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34] 강민규 교감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 후 1987년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도덕과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2012년 3월 교감으로 승진하였으며, 2014년 3월 1일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하였다.[135]5월 30일 오전 4시 57분께 화랑유원지 내 주차장에서 A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했다. A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은 아니었으며, 유서에는 ‘세월호로 숨진 학생들을 추모한다.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지갑에 든 돈(70만원)을 유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써달라. 시신은 기증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136]
7월 5일에는 전남 진도경찰서 소속 김모 경위의 시신이 진도군 군내면 신기리 무조리선착장 앞 해상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6월 26일 진도대교에서 투신했다. 김 경위는 참사 이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지원업무를 해 왔으며, 업무 피로와 승진 등의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137]
6. 2. 3. 자살 기도
4월 21일 오전 11시 40분경, 참고인 신분이었던 세월호 기관사 손모(58)가 자살을 기도했으나 동료와 모텔 직원의 신고로 구조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138]5월 9일 오후 5시 50분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가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고대 안산병원 관계자는 "A씨는 약물을 과다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행히 환자가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139] 5월 11일 새벽 1시 40분께 정부 합동분향소 유가족 대기실 인근에서 서모씨가 자살을 시도하려다 출동한 경찰이 발견해 무사히 가족에게 인계됐다. 경찰은 서씨가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을 벌이던 중 유가족 대기실 뒤편에서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려는 서씨를 발견했다. 서씨는 가족과 함께 귀가 조치됐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140]
6. 2. 4. 구조인력 인명피해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2014년 4월 27일, 수색 지점의 수심이 깊어짐에 따라 잠수병 증상을 호소하는 구조대원들이 늘고 있어 잠수사 1명당 하루 투입 횟수를 최소화하고 휴식을 보장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141]2014년 5월 1일, 민간 잠수사 김모(40)씨가 수중 수색작업을 마치고 감압챔버에서 의식을 잃어 경상남도 사천시의 삼천포서울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로 긴급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142] 이와 같은 잠수병 증상은 5월 2일, 14일, 17일에도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5월 6일에는 사고 해역에서 선체 수색작업을 벌이던 민간 잠수사 이모씨가 교신이 끊긴 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졌다.[143] 검찰은 현장 지휘를 맡았던 해경이 아닌, 민간 잠수사의 작업 배치를 담당했던 동료 민간 잠수사 공형우 씨를 기소하여 논란이 되었고, 결국 공형우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144]
5월 7일에는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대기 중이던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에서 해양경찰청 인천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쓰러져 의식 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 경사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다.[145]
잠수사들의 인명피해가 잇따르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5월 19일 바지선에 물리치료사를 추가 배치하고, 한의사 추가 배치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146]
5월 21일에는 수색 작업 중이던 이모 경장이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5월 30일에는 선체 절단작업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6월 17일에는 해경대원 진모씨가 해경 함정에서 단정으로 이동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 3개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7월 13일, 삼천포서울병원은 세월호 구조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 13명이 잠수병 증상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147]
2014년 7월 14일부터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지원하고 7월 17일에 강릉으로 복귀하던 강원도 특수구조단 소속 헬기가 광주광역시 도심 인근에 추락해 탑승한 소방공무원 5명이 모두 순직하였다.(광주광역시 소방 헬리콥터 추락 사고)[148]
6. 2. 5. 구조인력·장비 조정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장기 수색에 따른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7월 1일부터 투입 잠수사 수를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이고, 15일 이후에는 절반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149] 이 계획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해군 SSU 잠수사는 109명에서 70여 명으로, UDT 잠수사는 89명에서 60여 명으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7월 15일부터는 약 100여 명의 잠수사가 현장을 지킬 것으로 예상되었다.[149]또한, 물살이 거센 대조기, 중조기에는 잠수사들을 전원 철수시켜 휴식을 취하게 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장비 지원도 축소되어, 독도함은 정비 및 훈련 참가를 이유로 7월 15일경 진도 해역을 떠나 진해 지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실종자 감소로 현장구조지휘본부 역할이 감소함에 따라 지휘본부 인원도 28명에서 18명으로 줄여 해군 3함대 사령부로 이관할 계획이었다.[149]
6. 2. 6. 스미싱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를 가장한 스미싱이 발생하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세월호 사고를 사칭한 스미싱 문자가 발송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해당 문자와 연결된 악성 애플리케이션 유포지를 차단했다고 밝혔다.[150]6. 2. 7. 각 교육청 조치
경기도교육청은 2014학년도 1학기에 예정된 각급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을 보류하였다.[151]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시내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 현재 계획 중인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의 안전 상황을 다시 점검하고, 안전에 우려가 있으면 즉각 취소하라고 지시했다.[152]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4월 21일 실시 예정이었던 관내 6개 학교(초등학교 5곳, 고등학교 1곳)의 제주도 수학여행을 취소 및 보류하였다.[153] 대전광역시교육청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행사는 학교 구성원의 사전 협의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5월 중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서대전고등학교와 서일여자고등학교는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154]6. 2. 8. 기름 유출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는 벙커C유 120ton, 경유 50ton를 적재한 상태로 침몰하였다. 이로 인해 기름 유출이 발생하였다. 18일 오전까지 세월호 주변 100m 반경에 엷은 유막이 형성되었지만, 하루 만에 훨씬 짙은 기름띠로 변했다.[155]7. 세월호 희생자 명단
구분 | 이름 |
---|---|
단원고 학생 (총 250명) | 2학년 1반 (18명):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소현,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 |
2학년 2반 (25명):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성,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다윤, 허유림 | |
2학년 3반 (26명):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현,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 |
2학년 4반 (28명):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은,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무, 홍순영 | |
2학년 5반 (27명):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 |
2학년 6반 (25명):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남현철, 박세도, 박영인,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정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 |
2학년 7반 (32명): 곽수인, 국승혁,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 |
2학년 8반 (29명):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전준형, 전현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 |
2학년 9반 (20명): 고하영, 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 |
2학년 10반 (20명):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 |
단원고 교사 (11명): 고창석, 김응현, 김초원, 남윤철, 박육근, 양승진, 유니나, 이지혜, 이해봉, 전수영, 최혜정 | |
일반 승객 (33명): 권재근, 권혁규, 김순금, 김연혁, 李香浩|리샹하오중국어, 문인자, 박성미, 백평권, 서규석, 서순자, 신경순, 심숙자, 우점달, 윤춘연, 이광진, 이도남, 이세영, 이영숙, 이은창, 이제창, 인옥자, 전종현, 정명숙, 정원재, 정중훈, 조지훈, 조충환, 지혜진, 최순복, 최승호, 최창복, 한금희, 한윤지 | |
선원 (10명): 김문익, 박지영, 안현영, 양대홍, 이묘희, 정현선, 구춘미, 김기웅, 방현수, 이현우 |
8. 세월호의 의인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희생한 의인들의 이야기가 알려졌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22) 씨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왔고,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라고 말하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사망했다.[156]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6)은 마지막 통화에서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는 말을 남기고 승객 구조에 나섰다.[157] 결혼을 앞둔 사이였던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28) 씨와 사무직 승무원 정○○(28) 씨도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158][159]
단원고등학교 교사들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다. 2학년 6반 담임교사 남윤철은 비상구 근처에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구명조끼를 나눠주는 등 대피를 돕다 사망했고,[160] 최혜정 교사는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SNS 메시지를 보내며 학생들을 구출하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162]
단원고등학교 학생 정차웅 군은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주고, 물이 찬 선실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다 사망했다.[164] 양온유 양 역시 침몰 직후 갑판으로 나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선실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다시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들어갔고 끝내 나오지 못했다.[165]
배관 설비사 김○○(59)은 소방호스와 커튼을 묶어 학생 20여 명을 위층 난간으로 올려주었고, 화물 운전기사 김○○(50)은 호스와 밧줄을 던져 10여 명의 사람들을 구하는 등 일반인 의인들의 활약도 있었다.[168][169]
8. 1. 의사자 지정
보건복지부는 5월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여),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인정하였다.[158]인천광역시는 5월 23일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를 의사자로 지정해달라며, 유족의 동의를 얻은 뒤 목격자 진술, 필요 서류 등을 갖춰 이날 오후 보건복지부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인천광역시의 한 관계자는 "신청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두 갖췄다"며 "복지부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국민적 여론이나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의사자 인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대홍 사무장은 세월호 고위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탈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를 위해 배를 지키다가 끝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170]
사고 초기부터 이들 '살신성인' 교사들을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는 누리꾼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의사자' 신청은 유보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교사 유가족들은 '순직' 처리를 통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 숨졌다'는 점을 입증해 의사자로 등록하기 보다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공무 수행 중 희생당했다는 점을 인정받는 것이 용이해 이 같은 방향으로 추진 중으로 전해졌다. 모든 교사가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교원 12명 중 기간제 교사인 2명은 공무원이 아니며, 이들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공무상 사망'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못 된다. 한편 유가족 대책위는 '세월호 특별법'에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을 전원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또한 의견이 나뉘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171]
9. 관련 미디어
김지영 감독, 김어준 제작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프로젝트 부(Project 不)에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20.3억원의 시민 후원을 통해 3년간 제작되었다. 2018년 4월 12일 개봉되어 54만 명이 관람하였다. 세월호 항적 분석, 생존자 진술, 적재 차량 CCTV 분석자료 등의 교차 검증되는 사실을 근거로 가설을 제시하였다. 해당 영화가 주장한 'AIS(선박자동식별시스템) 조작 의혹'을 유가족이 검찰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에 수사 의뢰하여 국내 23개의 AIS 기지국 및 해외 AIS 수집업체, 민간 선박의 AIS 데이터 등을 분석하였다. 특수단은 참사 당시 제출된 자료의 조작은 없는 것으로 발표했으나, 세월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사참위)는 20일 “특수단이 AIS 의혹에 대해 결론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해수부 등의 기존 논거를 반복했다”는 입장을 냈다.[172][173]
일반인 신분인 네티즌 '자로'는 세월호 참사를 직접 수사하여 세월호에 대한 의문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세월X'를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공개하였다. 세월X는 8시간 49분짜리 필리버스터 다큐멘터리로, 현재 정부에서 공개한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해 반박하였다. 또한, 자로는 세월X를 통해 모든 과학적 증거를 이용해 세월호는 외력에 의해 침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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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세월호, 막판에 항로 급히 바뀌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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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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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세월호 사고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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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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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5명 찾는다 … 세월호 객실 2차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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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5명은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한 채 2017년 11월 20일 장례를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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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king of Sewol ferry 으로도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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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해군 조난 신고 접수...진도 병풍도 북쪽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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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0일] 침몰부터 수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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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종합3보]안일한 해경, 실종·구조 수치 또 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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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세월호 침몰 "해경보다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이 더 많이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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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뉴스
"[그래픽] 세월호 인양 과정"
https://www.newsis.c[...]
2017-03-22
[12]
뉴스
심상정 “국민들 마음속 ‘朴 파면 사유’는 세월호”
https://biz.heraldco[...]
2017-03-22
[13]
뉴스
세월호 인양 사실상 종료...세월호 침몰 3주기 전후 미수습자 수색 본격 시작
https://www.joongang[...]
2024-04-21
[14]
뉴스
세월호 특조위, 정부 훼방에 닻 내려…“진상규명은 계속”
https://www.khan.co.[...]
2024-04-21
[15]
뉴스
세월호 선조위 활동 종료…성과 있지만 명확한 결론 못 내 한계
https://www.yna.co.k[...]
2024-04-21
[16]
뉴스
사참위, 오는 10일 공식 해산...3년9개월 활동 마침표
https://www.newsis.c[...]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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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여객선침몰> 사고 여객선사 청해진해운은"
https://www.yna.co.k[...]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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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해운법 시행규칙 [시행 2009. 7. 1.] [국토해양부령 제147호, 2009. 7. 1., 타법개정] 제5조 (여객선의 보유량 등) ② 법 제5조제1항제5호에 따른 해상여객운송사업의 여객선 선령(船齡)기준은 20년 이하로 한다. <개정 2008. 3. 14., 2009. 1. 13.> ③ 제2항에도 불구하고 선령이 20년을 초과한 여객선으로서 국토해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선박검사기준에 따라 선박을 검사한 결과 안전운항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여객선은 5년의 범위에서 1년 단위로 선령을 연장할 수 있고, 선령이 25년을 초과한 여객선[강화플라스틱(FRP) 재질의 선박은 제외한다]으로서 국토해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선박검사기준에 따라 선박을 검사한 결과 및 국토해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선박관리평가기준에 따라 선박을 평가한 결과 안전운항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여객선은 5년의 범위에서 1년 단위로 선령을 연장할 수 있다. <신설 2009.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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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https://news.mt.co.k[...]
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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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해운법 시행규칙 [시행 2008. 3. 14.] [국토해양부령 제4호, 2008. 3. 14., 타법개정] 제5조 (여객선의 보유량 등) ② 법 제5조제1항제5호에 따른 해상여객운송사업의 여객선 선령(船齡)기준은 20년 이하로 한다. 다만, 국토해양부장관이 정하는 선박검사 결과 안전운항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여객선은 5년의 범위에서 1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21]
뉴스
"[세월호 참사]청해진해운 '인천~제주' 항로 면허 취소"
https://www.newsis.c[...]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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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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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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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http://w3.sbs.co.kr/[...]
SBS
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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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방송 최초 세월호 유류품 창고 취재"
https://news.jtbc.co[...]
JTBC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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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이준석 피의자신문조서 중 "(문) 피의자가 세월호 선장으로 승선하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되나요 (답) 2013.3경 세월호가 새로이 취항하였는데, 그 때부터 신보식과 함께 세월호의 선장으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당시 신보식이 경험이 짧았기 때문에 제가 신보식을 트레이닝 시킨다는 의미로 책임 선장으로 근무하고 신보식은 견습으로 근무를 하게 된 것으로 2013.8.경까지 제가 정식 선장으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 (문) 신보식이 정식 선장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답) 당시 제가 정년(60살)이 넘어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청해진 해운에서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신보식은 정규직 선원이었기 때문에 신보식이 정식 선장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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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안전 포기?'…선원 10명 중 9명 재교육 면제"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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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하야시카네 선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 공장으로 다수의 조선인이 [[징용|강제동원]]되었던 [[:ja:川南工業|가와나미 공업]](川南工業) 후카호리 조선소(深堀造船所)를 전신으로 1965년 설립된 일본의 조선회사이다. 일본 조선업계의 불황에 따른 경영 악화로 1992년 [[타이완]]의 [[:zh:長榮集團|에버그린 그룹]](長榮集團)에 인수되어 초에이 조선(長栄造船)으로 개칭되었다가 2004년 다시 [[:ja:福岡造船|후쿠오카 조선]](福岡造船)에 인수되어 현재는 후쿠오카 조선 나가사키 공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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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전문가 "여객·화물 겸용선 위험취약...규정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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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ェリーなみのう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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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세월호 20년 된 노후선…재작년 日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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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구원파 교리 뜻 담아 세월호 이름지었다” 의혹…세월(歲月)호 아닌 세월(世越)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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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세월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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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침몰] 구명보트 작동 안했는데 ‘양호?’ 해경·해운조합 주먹구구식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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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제주 카페리 첫 운항/6일부터 주3회 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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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 '전신'(前身) 세모그룹 과거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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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신상품] 인천~제주 여객선 추가 .. 청해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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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제주 여객선 주 6일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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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세월호 후폭풍' 청해진해운 모든항로 멈췄다
https://www.inche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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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제주~인천 뱃길 면허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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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천 항로’ 운항 중단…선사 운항면허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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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벽에 매달린 엄마아빠들의 피울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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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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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만재흘수(full load draft)는 허용된 최대 적재량을 실은 선박이 물에 잠기는 깊이로, 만재흘수를 표시해둔 선이 만재흘수선(full load line)이다. 선박마다 개별적으로 지정되는데, 만약 선박이 만재흘수선을 넘어서 잠겨있다면 그 선박은 출항할 수 없다.
[48]
문서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 보고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분석 결과보고서) (2014.8.12. 발행) 51p "과적이라 함은 화물을 규정치보다 많이 싣는 것을 의미한다. 해사법상 의미로는 선박의 형상과 강고를 기준으로 산정한 해역별 만재흘수선(full load line)까지 여객이나 화물을 적재하게 함으로써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따라서 평수구역내의 항행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라도 선박은 이 선을 초과하여 화물을 적재해서는 안 된다.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세월호는 규정된 만재흘수선을 넘기지 않은 것 같으므로 해사법상 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규정된 만재흘수 상태에서 복원성을 확보하기 위해 요구되는 화물과 평형수의 적재기준보다 많은 화물을 적개하여 복원성을 상실하였으므로 선박운용상의 입장에서 '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49]
문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2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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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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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신고자 학생이었다…승무원보다 3분 먼저 '119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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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살려주세요" 신고 학생에…선박명 안 묻고 "위·경도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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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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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진도VTS로 신고만 했어도…잃어버린 '18분의 골든 타임'
http://news.jtbc.joi[...]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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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세월호-진도관제센터 31분간 교신 녹취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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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시뮬레이션 해보니 "5~9분 만에 전원탈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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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상한 해경 대처, 왜 안 구했나 ② 외력설 제기되는데, 침몰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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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대피했다던 해경…어선 3척만 숨가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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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공개된 세월호 구조 영상…"어선 퇴거시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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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27명 구조한 낚싯배선장 '만사제쳐놓고 달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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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월호 수색작업 종료'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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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명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 210일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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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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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요원, 선체 진입 어떻게?…"줄 하나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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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머구리' 대거투입…첨단장비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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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수색 머구리 위주로 전환…무인탐사 로봇은 철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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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49시간 만에…공기 주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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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공기 주입, 생존자 있을 만한 곳에 해야..조타실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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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실종자 가족 "4층 선체 일부 절단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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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4층 선미 창문 절단 곧 완료…선수 절단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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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현장 "잠수부는 500명…투입은 2명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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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기상 악화로 사실상 '수색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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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세월호' 실종자 저체온증·질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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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에 있다면 최대 72시간…객실에 산소 공급땐 시간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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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가라앉지 않나..'에어포켓'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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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에어포켓만이 희망…"공기주입에 온힘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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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후보자, 세월호 당시 발언 화제 "朴 전 대통령 눈치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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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뱃머리급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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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에 해양 전문가 "변침·암초 아닌 내부 폭발 가능성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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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쇼 판] 필리핀 로로선 위험성 경고…허술한 해상 안전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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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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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세월호 만든 日조선소의 다른 배도 2009년 ‘판박이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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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日 아리아케호 사고와 똑 닮은 '쌍둥이 사고' 같은 조선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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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참사] 사고 커진 이유, 미숙한 초기 대응이 참극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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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22a)
[100]
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이미 선체 손상 가능성.. 급선회하며 쏠림현상 겹친 듯"
https://news.v.daum.[...]
한국일보
[101]
뉴스
객실 증축만이 아니다? 화물 더 싣기 위해 선수도 개조
http://news.jtbc.joi[...]
JTBC 뉴스 9
2014-04-23
[102]
뉴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결론…'에어포켓만이 희망'
https://web.archive.[...]
Gvalley
2014-04-17
[103]
뉴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 결론 ... '에어포켓만이 희망'
http://news.khan.co.[...]
티브이이데일리
[104]
뉴스
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http://news.khan.co.[...]
경향신문
[105]
뉴스
블랙박스에 녹음된 세월호 침몰 순간 ‘급박한 음성’
http://news.kbs.co.k[...]
KBS
[106]
뉴스
"[세월호①][단독] \"참사 직후 모형 수조 실험\"…4년간 은폐"
http://news.sbs.co.k[...]
SBS
[107]
뉴스
"\"GPS 오차?\"…'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반론을 반문하다"
http://sbsfune.sbs.c[...]
SBS
[108]
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에 해양 전문가 "변침 · 암초 아닌 내부 폭발 가능성 있어"
http://news.sportsse[...]
스포츠서울
2014-04-17
[109]
뉴스
화물 차량 신고보다 더 실어
http://news20.busan.[...]
[110]
뉴스
침몰한 세월호 '과적' 의혹…'숨은 무게' 계산 안 했다
http://news.jtbc.joi[...]
JTBC
[111]
뉴스
흔들림 막는 균형장치 '스태빌라이저' 고장 났었나?
http://media.daum.ne[...]
JTBC
2014-04-19
[112]
뉴스
세월호 전 항해사 "16번 채널 쓰면 문제 커져 사용 안 해"
http://news.jtbc.joi[...]
JTBC 뉴스 9
2014-04-21
[113]
뉴스
컨테이너 '결박 장치'…세월호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http://news.jtbc.joi[...]
JTBC 뉴스 9
20201027033929
[114]
뉴스
한겨레, 잠수함 충돌? 손가락 골절 시신 발견? ‘세월호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http://www.hani.co.k[...]
2014-05-13
[115]
뉴스
"[세월호 침몰사고] 세월호 선장 \"책임의식은 무면허, 탈출은 1등 항해사\""
http://sports.donga.[...]
동아닷컴
[116]
뉴스
사고 당시 선장·선원들, 승객 두고 먼저 탈출
https://news.v.daum.[...]
MBC
[117]
뉴스
세월호 선장 '승객 두고 먼저 탈출'…서해 훼리호 선장은 어땠나
http://tvdaily.asiae[...]
티브이이데일리
2014-04-17
[118]
웹인용
"::: 교회와신앙 :::"
http://www.amennews.[...]
2022-11-10
[119]
뉴스
세월호 선원들,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탈출
https://news.v.daum.[...]
경향신문
2014-04-21
[120]
뉴스
청해진해운 대표 "죽을 죄를 졌습니다"
http://news.kbs.co.k[...]
KBS 뉴스
2014-04-18
[121]
뉴스
"[기자수첩] 침몰하는 대한민국에는 선장이 없다"
https://news.v.daum.[...]
조선비즈
[122]
문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22a)
[123]
문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참사에서 해경 등 초동대응의 적정성 조사
https://drive.google[...]
[124]
문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참사에서 청와대 등 대응의 적정성 조사
https://drive.google[...]
[125]
문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22b)
[126]
문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정보기관(국정원·기무사 등)의 세월호참사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
https://drive.google[...]
[127]
문서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 방해 조사결과보고서
https://drive.google[...]
[128]
웹인용
"[보도자료] 사참위 활동 종료와 종합보고서 발간에 대한 입장 발표"
2022-09-04
[129]
뉴스
사참위, 가습기살균제·세월호 참사 조사활동 종료…3년 9개월만
https://www.hankyung[...]
한경
2022-09-08
[130]
웹인용
4.16연대 사참위 주요권고 이행 평가 발표
2024-04-14
[131]
웹인용
"[세월호 침몰] 생존자들 극도로 불안해…PTSD 우려"
http://www.asiae.co.[...]
아시아경제
2014-04-18
[132]
웹인용
"혼자 살아 미안"… 세월호 침몰 사고서 구조된 단원고 교감 자살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14-04-18
[133]
웹인용
숨진 단원고 교감 '유서' 발견…"저승에서도 선생을…"
http://www.mt.co.kr/[...]
머니투데이
2014-04-18
[134]
뉴스
구조된 단원고 교감 숨진채 발견
http://news.donga.co[...]
동아닷컴(동아일보)
2014-04-19
[135]
웹인용
구조된 단원고 교감, 야산서 숨진채 발견
http://www.hani.co.k[...]
2014-04-18
[136]
뉴스
"어른이어서 미안해" 안산 합동분향소서 50대 숨져
http://www.gobalnews[...]
고발뉴스닷컴
2014-05-30
[137]
뉴스
세월호참사 투신 경찰관 시신 9일 만에 발견
http://www.newsis.co[...]
뉴시스
20190915165143
[138]
웹인용
"<세월호참사> 세월호 기관사 자살 기도..생명 지장 없어(종합)"
http://media.daum.ne[...]
연합뉴스
2014-04-21
[139]
뉴스
“나도 갈게”…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 자살기도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4-05-09
[140]
뉴스
단원고 학부모 합동분향소 인근서 또 ‘자살 기도’
http://www.fnnews.co[...]
파이낸셜뉴스
2014-05-11
[141]
뉴스
<세월호참사> 기상악화로 투입 인원 급감…오늘도 난항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4-04-27
[142]
뉴스
<세월호참사> 민간 잠수사 사천 후송 치료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4-05-01
[143]
뉴스
수색작업 중 의식 잃고 쓰러진 ‘언딘’ 민간잠수사 사망
http://joongang.join[...]
중앙일보
2014-05-06
[144]
뉴스
덫에 걸린 민간잠수사 ‘무죄’
https://h21.hani.co.[...]
한겨레21
2015-12-15
[145]
뉴스
'세월' capsizing: a sudden turn is revealed to be the cause
http://www.yonhapnew[...]
2014-04-17
[146]
뉴스
<세월호참사> 잠수사 위해 물리치료사 충원·한의사 배치 검토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4-05-19
[147]
뉴스
세월호 수색 민간 잠수사 13명 입원 치료 중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4-07-13
[148]
뉴스
‘광주 헬기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조종사 추가피해 막기 위해 애썼다”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24-04-19
[149]
뉴스
세월호 수색 인력·장비 '7월부터 대폭 축소' 계획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4-06-29
[150]
뉴스
"해도해도 너무하네"…세월호 사칭 스미싱 추가 발견
http://www.dt.co.kr/[...]
디지털타임스
2014-04-18
[151]
웹인용
경기도교육청, 1학기 예정된 각 학교 현장 체험학습 보류
http://www.ken.go.kr[...]
경기도교육청
2014-04-17
[152]
웹인용
서울시교육청, "안전 우려 있는 수학여행 취소" 지시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14-04-17
[153]
웹인용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 관련
http://enews.sen.go.[...]
서울행복 교육소식
2014-04-18
[154]
뉴스
대전교육청, 수학여행 · 수련회 검토 권고
http://news1.kr/arti[...]
news1
2014-04-17
[155]
웹인용
사고 해역에 퍼진 '세월호 유출 기름띠'
http://www.wikitree.[...]
위키트리
2014-04-19
[156]
뉴스
"숨진 여승무원이 조끼를 양보했다"
https://news.v.daum.[...]
뉴시스
2014-04-17
[157]
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 / 안타까운 사연들]"우리 남편은 도망가지 않았어요"'
http://media.daum.ne[...]
조선일보
2014-04-18
[158]
뉴스
<세월호참사> '살신성인' 승무원 박지영씨 등 3명 의사자(종합)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4-05-12
[159]
뉴스
'[프리미엄 리포트]밤 꼬박 새우며 뱃멀미 승객 얼음찜질 해주던 ‘진짜 선원’'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14-05-19
[160]
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 / 안타까운 사연들] "달아나" 등떠민 선생님.. 돌아보니 안계셔'
http://media.daum.ne[...]
조선일보
2014-04-18
[161]
뉴스
<여객선침몰> 침몰순간에도 빛난 단원고 스승과 제자
http://media.daum.ne[...]
연합뉴스
2014-04-18
[162]
뉴스
'[세월호 실시간]故 최혜정 교사,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가"…\'첫 발인\''
http://mbn.mk.co.kr/[...]
MBN
2014-04-19
[163]
뉴스
“내 손 잡아” 탈출 돕던 그 아저씨가 교감이었다…
https://www.khan.co.[...]
경향신문
2014-04-21
[164]
뉴스
'우리들의 영웅' 고 정차웅군, 이승에서 18년 짧은 생 '마감'
http://news1.kr/arti[...]
뉴스1
2014-04-22
[165]
뉴스
'[세월호 침몰 참사-단독] 갑판까지 나왔다가 친구 구하러 선실로…단원고 양온유양 살신성인'
https://www.kmib.co.[...]
국민일보
2014-04-24
[166]
뉴스
긴박한 상황에도 구조에 힘써…목숨을 건 '살신성인'
http://www.obsnews.c[...]
OBS뉴스
2014-04-22
[167]
뉴스
<여객선침몰> 6살 여아 탈출시킨 단원고 박호진군
http://media.daum.ne[...]
연합뉴스
2014-04-17
[168]
뉴스
<여객선침몰> 20여명 구하고 마지막 탈출한 김홍경씨
http://media.daum.ne[...]
연합뉴스
2014-04-16
[169]
뉴스
'[진도여객선침몰]제주 화물차 기사 목숨 걸고 학생 등 생명 구해'
http://media.daum.ne[...]
뉴시스
2014-04-16
[170]
뉴스
인천시, 의인 양대홍 사무장 의사자 인정 신청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14-05-23
[171]
뉴스
세월호 희생 교사들 '의사자' 추진 안했다…속사정 뭐길래?
https://news.mt.co.k[...]
머니투데이
2014-06-13
[172]
웹인용
김어준, 근거 없는 ‘세월호 음모론’ 영화로 44억 매출
https://www.chosun.c[...]
2021-04-17
[173]
뉴스
“세월호 수사에 靑외압 없었다”…6년9개월만에 최종 결론
https://www.donga.co[...]
동아일보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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