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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브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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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칸타브리아주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자치 지방으로, 기원전 195년경 처음 언급되었다. 역사적으로 칸타브리아인들은 용병으로 활동했으며, 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겪었다. 중세 시대에는 칸타브리아 공국이 설치되었고, 아스투리아스 왕국과 연합하여 무어인의 침략에 맞섰다. 18세기에는 칸타브리아 주가 설립되었고, 1981년 자치권을 획득하여 산탄데르 주에서 칸타브리아 주로 이름을 변경했다. 지리적으로는 해안과 산악 지형을 가지며, 온대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경제는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으로 구성되며, 관광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칸타브리아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알타미라 동굴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과 박물관, 축제, 전통 요리, 스포츠 등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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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브리아주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미지 및 음성 정보
칸타브리아 깃발 (공식)
깃발
칸타브리아 문장
문장
정치
경제
기타 정보

2. 역사

칸타브리아es라는 이름은 19세기 스페인 자유주의 정권 시대에 산탄데르 주와 점점 더 관련되게 되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와 근대 문학에서 "칸타브리아(Cantabria)"와 "칸타브리아인(Cantabrians)"은 바스크 지방, 특히 비스카이 영지와 바스크인을 가리켰다.

라 록셸 해전. 네 도시의 형제회 출신 칸타브리아인들로 구성된 카스티야 군대는 잉글랜드 군대를 물리치고 잉글랜드 해협을 카스티야 왕관의 지배하에 두었다.


네 도시의 형제회(산탄데르, 라레도,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 산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를 중심으로 ''에르만다드 데 라스 마르스마스(습지의 형제회)''가 창설되어 아스투리아스 동쪽의 모든 중요한 항구 도시들을 하나로 묶었다. 레콩키스타 기간 동안, 네 도시는 안달루시아 재정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람과 배를 파견했다. 카디스와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에는 칸타브리아 해안 항구 도시 출신 가족들이 정착했다. 네 도시의 배들은 세비야 점령에 참여하여 트리아나와 세비야를 연결하는 배 다리를 파괴했는데, 이 승리는 산탄데르 문장, 칸타브리아 문장, 아빌레스 문장에 있는 카라크와 세비야의 오로탑으로 나타나 있다.

16세기에 "라 몬타냐(La Montaña, "산")라는 이름은 고대 칸타브리아를 가리키는 데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는 중앙 고원을 지칭하는 카스티야와 대조되는 개념이었다.

칸타브리아 지방의 전신이자 당시 주요 카스티야 항구였던 네 도시의 형제회


가톨릭 군주의 등장과 함께 늪지대의 형제회는 사라졌고, 네 도시의 공동 통치가 이를 이어받았다. 구체제 기간 동안 칸타브리아의 가장 큰 관할권 영지는 주로 스페인의 세 귀족 가문의 지배 아래 있었다. '''멘도사''' 가문(인판타도 공작, 산티야나 후작), '''만리케 데 라라''' 가문(아길라르 데 캄포 후작, 카스타녜다 백작), '''벨라스코''' 가문(프리아스 공작, 카스티야의 곤스타블레) 등이다.[26]

16세기부터 칸타브리아와 칸타브리인에 대한 연구, 특히 이들이 점유했던 영토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고대 칸타브리아의 위치와 규모에 대한 논쟁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사제이자 역사가인 엔리케 플로레스 데 세티엔(Enrique Flórez de Setién)의 저서 ''라 칸타브리아''[27]를 통해 18세기에 해결되었다.

1727년, 칸타브리아 주 통합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1778년, 푸엔테 산 미구엘에서 열린 회의에서 칸타브리아 주가 설립되었다. 여기에는 9개 계곡 외에도 리바데데바, 페냐멜레라, 리에바나 주, 페냐루비아, 라마손, 리오난사, 산 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 빌라, 코토 데 에스트라다, 발달리가, 산티야나 델 마르 빌라, 비에르놀레스 지역, 카르테스 빌라 및 주변 지역, 부엘나 계곡, 시에사 계곡, 산 비센테와 로스 야레스 빌라가 있는 이구냐 계곡, 푸하요 빌라, 피에 데 콩차 이 바르세나 빌라, 아니에바스 계곡, 토란소 계곡이 포함되었다.



1779년, 카를로스 3세는 칸타브리아 주 통합을 승인했다. 이후 산티야나 수도원, 투단카, 폴라시오네스, 에레리아스, 카스타녜다 계곡, 토렐라베가 빌라와 주변 지역, 발 데 산 비센테, 발레 데 카리에도, 트레스비소, 라 베가, 산 로케, 산 페드로의 파시에가 빌라, 그리고 그 수도원과 함께 산탄데르 시가 합류했다.

라레도와 산탄데르 간의 경쟁으로 인해, 산탄데르는 주의 이름으로 칸타브리아 대신 산탄데르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1821년, 산탄데르 자치구는 "이 주는 산탄데르라는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스페인 독립 전쟁의 영웅 페드로 벨라르데 이 산티야 (Pedro Velarde y Santillán)를 기리는 산탄데르의 동상


스페인 독립 전쟁(1808~1814) 동안 라파엘 토마스 메넨데스 데 루아르카 주교는 "칸타브리아의 통치자"로 자처하고 산탄데르에 "칸타브리아 무장대"를 설립했다. 이후 "칸타브리아 사단"이 편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칸타브리아 기병대"(기병) 또는 "칸타브리아 사수대"(보병)와 같은 부대가 포함되었다. 카를로스 전쟁 동안에는 "칸타브리아 여단"이 편성되었다.

1936년, ''공화 연방당''은 칸타브리아-카스티야 연방 국가를 위한 자치 헌장을 발표했지만,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했다. 프랑코 정권 하에서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의 사용은 스포츠 협회에 국한되었다.

1963년, 산탄데르 주에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을 다시 적용하려는 제안이 있었지만, 산탄데르 시의회의 반대로 실패했다. 1981년, 칸타브리아는 스페인 헌법에 따라 자치권을 획득하고, "''역사적인 지역적 특징을 가진 주''"로서 역사적인 이름을 되찾았다. 1982년, 첫 번째 지역 의회가 구성되었고, 1983년 첫 자치 선거가 실시되었다. 1995년, 칸타브리아 자치 헌장의 첫 번째 대규모 개혁이 시행되었다.

2. 1. 고대

칸타브리아(Cantabria)라는 이름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왔다. 온라인 어원 사전에 따르면, "cant-"라는 어근은 켈트어에서 "바위" 또는 "바위투성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며,[11] "-abr"은 켈트 지역에서 흔히 사용되던 접미사였다. 따라서 "칸타브리아인(Cantabrian)"은 "바위에 사는 사람들" 또는 "고지대 주민(highlanders)"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칸타브리아의 가파르고 산악 지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은 "가장자리" 또는 "테두리"를 의미하는 켈트어 어근 "kant" 또는 "cant"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며, "해안 지방" 또는 "구석 땅", "가장자리에 있는 땅"을 의미하며, 영국 켄트(Kent) 주와 그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캔터베리(Canterbury)의 이름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12]

로마 이전 이베리아의 언어 집단


칸타브리아 전쟁 당시 칸타브리아. 이 지도는 현대 칸타브리아에 비례한 칸타브리아 영토의 경계와 그곳에 거주했던 여러 부족, 이웃 마을, 라틴어 이름이 붙은 지리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9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가 카토 대제가 그의 저서 ''원류''에서 칸타브리아인의 땅에 있는 에브로 강의 발원지에 대해 언급했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텍스트에는 칸타브리아 또는 칸타브리아인에 대한 약 150개의 언급이 있다. 칸타브리아인들은 이베리아 반도 내부와 다른 곳 모두에서 다양한 분쟁에서 용병으로 사용되었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22]호라티우스[23]의 언급을 통해 그들이 포에니 전쟁에 참여했음은 확실하다. C.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가 누만티아를 포위 공격했을 때, 그는 칸타브리아인과 바카이인이 그의 보조군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철수했다. 칸타브리아 전쟁은 기원전 29년에 시작되었다.[24] 그들은 기원전 19년에 아그리파에 의해 대량 학살을 당하며 패배했지만,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결코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다.

옛 지리학자들에게 칸타브리아라는 용어는 칸타브리아 해(비스케이 만), 아스투리아스의 셀라 강 서쪽, 부르고스의 페냐 아마야 요새, 그리고 아구에라 강을 따라 거의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가리켰다.[25] 따라서 이 지역에는 아스투리아스, 산탄데르, 비스카이아, 그리고 기푸스코아 지역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로마 정복 이후, 그것은 산탄데르와 동부 아스투리아스 지역으로 제한되었고, 히스파니아 타르라코넨시스("타라고나 스페인")의 일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주요 부족은 플레우타우리, 바르둘리, 아우트리고네스, 투이시, 그리고 말의 피를 먹는 것으로 알려진 코니스키 또는 콘카우이였다. 이 지역은 잘 정착되어 있었고, 가장 큰 도시는 율리오브리가였으며, 지역 산맥은 광산으로 개발되었다.

2. 2. 중세

서고트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칸타브리아는 독립을 되찾았다. 574년, 리우비길드 왕은 칸타브리아를 공격하여 아마야를 포함한 남부 지역을 점령하고 칸타브리아 공국을 설치했다. 이 공국은 칸타브리아인과 바스콘족을 억제하기 위한 국경 지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경계선 북쪽에서는 칸타브리아인들이 아랍 침략 때까지 독립적으로 생활했다.[40]

714년, 무슬림 무어인들이 에브로 강 상류 계곡을 침략하여 칸타브리아의 수도인 아마야를 함락시키고 칸타브리아인들을 아스투리아스 왕국과 연합하게 했다. 레콩키스타 초기 연대기에는 칸타브리아가 여전히 한 지역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알벤덴세 연대기''는 알폰소 1세에 대해 "그는 칸타브리아 공작인 칸타브리아의 페트로의 아들이었다"라고 언급한다.[40]

9세기에는 윌리에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울로지오가 산타 사카리아스 수도원을 아르가 강의 ''세부림''(나바라주 주비리)에 있다고 명시하여, 칸타브리아가 동쪽으로 멀리 뻗어나갔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부터 자료들은 칸타브리아라는 이름 대신 ''아스투리아스''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며, ''산티야나 데 엘마르'', ''트라스미에라 아스투리아스'', ''라레도 아스투리아스''와 같은 ''코마르카'' 이름에 등장한다.

산탄데르, 라레도,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 산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를 중심으로 네 도시의 형제회가 형성되었고, 이후 ''에르만다드 데 라스 마르스마스(습지의 형제회)''가 창설되어 아스투리아스 동쪽의 모든 중요한 항구 도시들을 하나로 묶었다. 레콩키스타 기간 동안, 네 도시는 안달루시아 재정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람과 배를 파견했다. 카디스와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에는 칸타브리아 해안 항구 도시 출신 가족들이 정착했다. 네 도시의 배들은 세비야 점령에 참여하여 트리아나와 세비야를 연결하는 배 다리를 파괴했는데, 이 승리는 산탄데르 문장, 칸타브리아 문장, 아빌레스 문장에 있는 카라크와 세비야의 오로탑으로 나타나 있다.

2. 3. 근대 ~ 현대



16세기에는 "라 몬타냐"(La Montaña, "산")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는 중앙 고원을 지칭하는 카스티야와 대조되는 개념이었다.[26] 가톨릭 군주의 등장과 함께 늪지대의 형제회는 사라졌고, 네 도시의 공동 통치가 이를 이어받았다. 구체제 기간 동안 칸타브리아의 가장 큰 관할권 영지는 주로 스페인의 세 귀족 가문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들은 '''멘도사''' 가문(인판타도 공작, 산티야나 후작), '''만리케 데 라라''' 가문(아길라르 데 캄포 후작, 카스타녜다 백작), 그리고 '''벨라스코''' 가문(프리아스 공작, 카스티야의 곤스타블레)이었다.[26]

16세기부터 칸타브리아와 칸타브리인에 대한 연구, 특히 이들이 점유했던 영토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고대 칸타브리아의 위치와 규모에 대한 논쟁은 18세기에 엔리케 플로레스 데 세티엔(Enrique Flórez de Setién)의 저서 ''라 칸타브리아''[27]를 통해 해결되었다.

1727년, 칸타브리아 주를 통합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칸타브리아의 분열된 영지들이 누렸던 높은 자치 수준과 자원 부족은 칸타브리아의 약점으로 남았고, 부르봉 왕가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1778년, 푸엔테 산 미구엘의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 칸타브리아 주가 설립되었다. 9개 계곡 외에도 리바데데바, 페냐멜레라, 리에바나 주, 페냐루비아, 라마손, 리오난사, 산 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 빌라, 코토 데 에스트라다, 발달리가, 산티야나 델 마르 빌라, 비에르놀레스 지역, 카르테스 빌라 및 주변 지역, 부엘나 계곡, 시에사 계곡, 산 비센테와 로스 야레스 빌라가 있는 이구냐 계곡, 푸하요 빌라, 피에 데 콩차 이 바르세나 빌라, 아니에바스 계곡, 토란소 계곡이 포함되었다.

1779년, 카를로스 3세는 칸타브리아 주 통합을 승인했다. 이후 산티야나 수도원, 투단카, 폴라시오네스, 에레리아스, 카스타녜다 계곡, 토렐라베가 빌라와 주변 지역, 발 데 산 비센테, 발레 데 카리에도, 트레스비소, 라 베가, 산 로케, 산 페드로의 파시에가 빌라, 그리고 그 수도원과 함께 산탄데르 시가 합류했다.

라레도와 산탄데르의 경쟁으로 인해, 산탄데르는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821년 주 의회가 헌법 코르테스에 주 경계와 법인에 대한 최종 계획을 제시했을 때, 산탄데르 자치구는 "이 주는 산탄데르라는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스페인 독립 전쟁(1808~1814) 동안 라파엘 토마스 메넨데스 데 루아르카 주교는 자신을 "칸타브리아의 통치자"로 자처하고 산탄데르에 "칸타브리아 무장대"를 설립했다. 이후 후안 디아스 포를리에르 장군의 지휘 아래 리에바나에서 "칸타브리아 사단"이 편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칸타브리아 기병대"(기병) 또는 "칸타브리아 사수대"(보병)와 같은 여러 연대와 대대가 포함되었다. 카를로스 전쟁 동안에는 "칸타브리아 여단"이 편성되었다.

1936년, ''공화 연방당(Republican Federal Party)''은 현재의 칸타브리아와 함께 카스티야와 아스투리아스의 인접 지역 중 합류를 원하는 곳을 포함하는 칸타브리아-카스티야 연방 국가를 위한 자치 헌장을 발표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했다. 프랑코 정권 하에서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의 사용은 줄어들었고, 스포츠 협회에 국한되었다.

1963년, 주 의회 의장 페드로 에스칼란테 이 우이도브로(Pedro Escalante y Huidobro)는 산탄데르 주에 칸타브리아라는 이름을 다시 적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산탄데르 시의회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1981년 12월 30일, 스페인 헌법 제143조에 명시된 칸타브리아의 자치권 부여로 종결되었다. 칸타브리아는 "''역사적인 지역적 특징을 가진 주''"에 대한 자치 정부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근거로 자치권을 주장했다.

1982년 2월 20일, 임시 지위를 가진 첫 번째 지역 의회(현 의회)가 구성되었다. 이때부터 이전의 산탄데르 주는 칸타브리아로 알려지게 되었고, 역사적인 이름을 되찾았다. 첫 번째 자치 선거는 1983년 5월에 실시되었다. 제4대 의회(1995~1999)는 칸타브리아 자치 헌장의 첫 번째 대규모 개혁을 시행했다.

3. 지리

칸타브리아 주는 산악 지대와 해안을 끼고 있어 천연 자원이 풍부하며, 크게 해안과 산악 지대로 구분된다.

해류의 영향으로 이 지역의 기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고도를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따뜻한 편이다. 습한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며 겨울과 여름 모두 온난하다. 평균 강수량은 1200mm이며 산지보다 해안에 더 많이 내린다. 보통 기온은 14°C이며 고산 지대에서는 눈이 자주 내린다. 가장 건조한 달은 7월과 8월이지만, 가뭄이 든 적은 거의 없다.

산악 지대의 영향으로 푄 현상이 나타나 특별한 기후 형태를 보인다. 남풍이 불면 건조해지며 해안으로 갈수록 습기가 많아진다. 남쪽 지역은 산악 지대가 많아 지역별로 차이가 나며, 바람 자체가 습기가 많아 비구름이 지나가면 비를 많이 뿌린다. 가을과 겨울에 이런 현상이 더 흔하며 기온은 거의 20°C를 넘나든다. 바람의 영향으로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데, 1941년 산탄데르 대화재로 산탄데르 시 대부분의 산이 유실되기도 했다.

칸타브리아의 강은 짧고 빠르며, 칸타브리아 산맥에서 발원하여 바다와 매우 가까워 가파르게 내려온다. 에브로 강을 제외하고는 해안선과 수직으로 흐른다. 끊임없는 강우로 연중 물이 흐르지만, 유량은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강에 비해 적은 편이다(연평균 20 m³/s). 가파른 경사로 인한 빠른 물살은 침식력을 강하게 하여 녹색 스페인의 특징인 좁고 V자 모양의 계곡을 만든다.

3. 1. 해안

낮고 평평한 계곡 및 산지가 분포하며 전체적으로 고도는 500m를 넘지 않는다. 강 하구가 있는 곳에는 절벽이 분포하며 해변과 산발적으로 리아스식 해안이 나타나기도 한다. 남쪽으로 가면 해안과 산악 지대가 만난다.[16]



해양 지역의 전형적인 언덕과 리아

3. 2. 산악

칸타브리아 지방은 산악 지대이며 해안을 끼고 있어 천연 자원이 풍부하다. 크게 해안과 산악 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 '''산악''' : 칸타브리아 지방의 산맥은 해안과 평행하게 솟아 있으며, 칸타브리아 산맥의 일부이다. 대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나며, 대부분 지역이 석회암질이다. 남북으로 깊은 계곡 지대도 있으며 600m 에서 1000m의 고도를 보인다.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산맥이 해안과 평행으로 마주보며 15km 에서 20km 뻗어있다. 이 산맥은 에스쿠도 산맥이라고 불린다. 남쪽으로 가면 더 높은 지대가 나타나며 에브로 강, 두에로 강의 유역 분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지역은 평균 고도가 1500m 이상으로 솟아 오른다. 페냐 라브라, 카스트로 발네라와 세호스, 엘 에스쿠도, 라 시아 고개 등이 있다. 푸에르토스 데 에우로파의 거대한 석회암 지대도 지역 남서쪽에 있으며, 대부분의 정상이 2500m를 넘어 빙하의 영향을 받은 지형을 보여준다.


라 에르미다

3. 3. 기후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칸타브리아주는 "녹색 스페인"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위도에 비해 훨씬 온화한 온대 기후를 보인다. 이 지역은 습윤 해양성 기후로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온화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해안 지역에서 약 1200mm이며, 산악 지역에서는 더 높다. 평균 기온은 약 14°C이다. 10월부터 3월 사이에 칸타브리아주의 고지대에서는 눈이 자주 내린다. 2,500미터가 넘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의 일부 지역은 눈이 연중 지속되는 고산 기후를 보인다. 가장 건조한 달은 7월과 8월이지만,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높지 않아 가뭄이 발생한 적은 없다.

칸타브리아주의 산악 지형은 지역 미기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소위 "수라다스"(아브레고(Ábrego) 바람)라고 불리는 특이한 기상 현상의 주요 원인이다. 이는 푄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남풍이 강하게 건조하게 불어 해안 가까이에서 기온을 높인다. 이로 인해 대기 습도와 강수량이 감소한다. 이러한 조건은 가을과 겨울에 더 빈번하며, 기온은 일반적으로 20°C보다 높다. 이러한 바람은 화재를 부채질하기도 하는데, 1941년 겨울 산탄데르시 일부를 파괴한 화재가 그 예이다. 칸타브리아산맥 남부의 특정 지역에서는 건조 단열 감률로 인해 지역의 다른 곳과는 다른 조건이 나타난다. 그곳의 바람은 더 신선하고 습하며 강수량도 더 많다.

카보 마요르 등대와 산탄데르 항구 입구


칸타브리아주 리오투에르토(Riotuerto) 시의 알리사스(Alisas) 입구 파노라마

3. 4. 수계

칸타브리아의 강들은 짧고 빠르며, 칸타브리아 산맥의 강 상류가 바다와 매우 가까워 가파르게 내려온다. 에브로 강을 제외하고는 해안선과 수직으로 흐른다. 또한 끊임없는 강우로 인해 일반적으로 연중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량은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강들에 비해 적당하다(연평균 20m³/s). 가파른 경사로 인한 빠른 물살은 강력한 침식력을 가지고 있어 녹색 스페인의 특징인 좁고 V자 모양의 계곡을 만들어낸다. 계곡 인구 증가로 인한 인간 활동 증가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강의 환경 상태는 일반적으로 양호하다.[13]

아손 강의 발원지


유역별로 정렬된 주요 강은 다음과 같다.

유역
북부 유역[42] (칸타브리아 해로 흘러든다)
에브로 유역[43] (지중해로 흘러든다)
두에로 유역[44]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칸타브리아는 이베리아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바다(칸타브리아 해, 대서양, 지중해)로 강이 흘러드는 유일한 자치 공동체이다.

4. 경제

칸타브리아주는 전통적으로 목축업과 낙농업이 발달하였고, 옥수수, 감자, 채소 등을 재배하며 수산업도 활발하다. 아연 광산도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 활동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전체 인구 중 서비스 분야 종사자가 63.8%로 가장 많으며, 최근 관광업이 성장하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가 늘고 있다. 2007년 3월 기준 실업률은 8.11%로 스페인 전체 평균(9.44%)보다 낮았고, GDP 성장률은 4.1%로 스페인 평균(3.9%)보다 높았다. 2010년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소득은 25326EUR로 스페인 전체 및 EU 25개국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었다.[31]

4. 1. 1차 산업

칸타브리아의 경제는 쇠퇴하고 있는 1차 산업을 가지고 있으며, 활동 인구의 5.8%가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1차 산업의 주요 분야는 다음과 같다.

분야내용
축산업전통적인 유제품 생산 및 육류 생산
농업옥수수, 감자, 채소, 조사료 재배
어업해양 어업
광업아연 채굴 및 채석


4. 2. 2차 산업

칸타브리아의 2차 산업은 활동 인구의 30.3%를 고용하고 있으며, 최근 건설업 덕분에 생산성이 가장 높았다. 주요 산업은 다음과 같다.

산업 분야주요 내용
철공업레이노사가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식품 서비스우유, 고기, 채소, 해산물 등을 가공한다.
화학 산업솔베이, 스니아세 등의 기업이 있다.
제지 생산스니아세, 파펠레라 델 베사야(Papelera del Besaya) 등의 기업이 있다.
섬유 제조업카베손 데 라 살에 있는 텍스틸 산탄데리나(Textil Santanderina)가 대표적이다.
제약업레케하다(Requejada)의 모에스가 있다.
기타산업 그룹 및 운송 등이 있다.



산탄데르 파세오 데 페레다에 있는 산탄데르은행 본점


2018년 이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138억유로였다.[31]

4. 3. 3차 산업

칸타브리아의 3차 산업은 전체 인구 중 63.8%가 종사하며, 최근 관광업의 성장으로 도시 인근을 중심으로 관련 업계 종사자가 늘고 있다. 2007년 3월 기준 실업률은 8.11%로 스페인 전체 실업률(9.44%)보다 낮았으며, 같은 해 GDP 성장률은 4.1%로 스페인 전체 평균(3.9%)보다 높았다.[31] 2018년 칸타브리아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138억유로였으며,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GDP는 25500EUR로 EU 27개국 평균의 84% 수준이었다.[31]

5. 인구

칸타브리아주의 인구는 2009년 기준 591,886명[19]으로, 스페인 전체 인구의 1.29%를 차지한다. 인구 밀도는 1km²당 106.8명이다. 2017년에는 581,477명으로 감소했다. 남성의 평균 수명은 75세, 여성은 83세이다.

칸타브리아는 다른 스페인 지역에 비해 이민이 많지 않았으며, 2007년 기준 인구의 4.7%만이 이민자였다. 주요 이민자 출신 국가는 콜롬비아, 루마니아, 에콰도르, 페루, 몰도바, 모로코이다.[20]

대부분의 인구는 해안 지역에 거주하며, 특히 산탄데르(172,044명)와 토렐라베가(51,687명)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 두 도시는 산탄데르-토렐라베가 대도시권을 형성한다.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는 공식 인구는 31,977명[21]이지만, 빌바오 대도시권과의 근접성 때문에 실제 인구는 더 많을 수 있다.

2018년 기준 칸타브리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자체는 다음과 같다.

순위지자체인구
1산탄데르172,044
2토렐라베가51,687
3카스트로-우르디알레스31,977
4카마르고30,263
5피엘라구스25,223
6엘 아스티예로18,108
7산타 크루스 데 베사나12,964
8라레도11,148
9산토냐11,050
10로스 코랄레스 데 부엘나10,910
11라이노사9,095


6. 언어

카스티야어(스페인어)칸타브리아의 공식 언어이다. 지역어로서 칸타브리아어가 있기는 하지만 서부 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공식적인 인식 및 절차조차 없기 때문에 거의 사장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52] 동부 지역의 경우에는 명백하게 카스티야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칸타브리아 동부는 중세 스페인어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부 지역에는 칸타브리아어(Montañés라고도 함)의 잔재가 남아 있으며, 동부 지역의 파스 계곡과 소바 계곡 일부에서도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다. 칸타브리아어는 더 넓은 아스투르레오네스어 연속체의 방언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인접한 아스투리아스의 방언들과 상호 이해 가능하다.[33]

7.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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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야어(스페인어)가 칸타브리아주의 공용어이다. EU에서는 지역 고유어인 칸타브리아어도 소수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칸타브리아어는 서부 지역에서는 현재도 사용되고 있지만, 동부에서는 파스 계곡과 소바 계곡에 소량만 남아있다. 칸타브리아어는 아스투리아스-레온어의 지역 변종으로 여겨지며, 공용어나 고유어로서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규범도 없는 상태이다.[52]

주요 문화 유산으로는 UNESCO 세계유산알타미라 동굴, 20세기 초에 지어진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왕궁이었던 마그달레나 궁전, 6세기에 창건되어 성십자가 조각을 봉안하고 있는 가톨릭교회 순례지인 산토 토리비오 데 리에바나 수도원 등이 있다.

칸타브리아는 정기적으로 대규모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특히 스페인 국내 가축시장인 헤수스 콜라도 소토의 토렐라베가 가축시장이 유명하다. 이 시장은 스페인에서 세 번째 규모로, 칸타브리아와 인근 지역의 소를 주요 거래 품목으로 한다. 칸타브리아 전역에서는 매주, 매달 또는 매년 소와 상품을 판매하는 전형적인 시장이 개최된다.

칸타브리아 주 내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데, 일부는 작은 마을에 국한되지만,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축제도 있다. 소 사육이 성행하는 칸타브리아는 ‘칸타브리아산 육류’(Carne de Cantabria)가 EU의 원산지명칭보호제도에 등록되어 있다. 알코올 음료로는 사과로 만드는 사과주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하여 만드는 오르호가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코시도 몬타녜스''': 콩과 양배추를 조린 요리로, 초리소, 베이컨, 소 갈비, 모르실라가 들어간다.
  • '''코시도 레바니에고''': 병아리콩, 감자, 양배추, 초리소, 모르실라, 뼈 있는 햄이 들어간 레바나식 스튜이다.
  • '''마르미타''' 또는 '''소로포툰''': 감자, 양파, 파프리카, 토마토, 참치를 넣고 끓인 스튜로, 바스크 지방 요리의 마르미타코와 비슷하다. 칸타브리아 해에서 참치잡이를 하는 어부들이 배 위에서 먹던 음식이다.
  • '''프리스에로스''': 아스투리아스 지방이 원산지인 크레페와 비슷한 디저트로, 밀가루, 달걀, 우유로 만들며, 표면에 설탕을 뿌린다.


코시도 몬타녜스


프리스에로스

7. 1. 유적 및 박물관

파시에가 동굴의 구석기 시대 벽화

  • '''동굴''': 알타미라 동굴, 엘 소플라오 동굴, 델 바예 동굴, 엘 펜도, 파시에가 동굴, 라스 모네다스, 엘 카스티요, 모린 등.
  • '''토목 건축''': 산탄데르의 마그달레나 궁전; 콤미야스의 카프리초, 콤미야스 교황청립 대학교와 소브레야노 궁전; 암푸에로의 바르세나 궁전; 캄푸의 아르구에소 성; 라스 프라구아스 델 베사야의 오르니요스 궁전 등.
  • '''종교 건축''': 산티야나 델 마르의 대학 교회, 카스타녜다의 산타 크루스 대학 교회, 산토 토리비오 데 리에바나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데 레베냐, 산타 마리아 데 피아스카, 산타 마리아 델 푸에르토, 산 로만 델 모로소, 산타 카탈리나 델 킨툴, 비르헨 데 라 펜야 성역, 산 시프리아노 예배당, 몬테 코로나 예배당 등.
  • '''박물관''': 칸타브리아 해양 박물관, 칸타브리아 민속 박물관, 산탄데르 미술관, 칸타브리아 고고학 및 선사 시대 지역 박물관, 칸타브리아 자연 박물관, 알타미라 국립 박물관 및 연구 센터 등.

7. 2. 축제

실리오(Silió)의 라 비하네라(La Vijanera)


칸타브리아 주에서는 정기적으로 대규모 상품 시장이 열리는데,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국립 축산 시장인 "헤수스 콜라도 소토(Jesús Collado Soto)"에서 열리는 "토렐라베가 가축 시장"이 대표적이다. 이 시장에서는 지역 및 인근 지역의 모든 종류의 가축, 특히 소를 주로 거래한다. 칸타브리아 전역에서는 소와 전통 제품을 사고파는 축제가 매주, 매달 또는 매년 열려 지역 주민들을 한데 모은다. 칸타브리아에는 다양한 축제가 있으며, 일부는 작은 마을에 한정되지만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축제도 있다. 주요 축제는 다음과 같다.

  • '''라 비하네라(La Vijanera)''' (겨울 카니발): 매년 1월 첫 번째 일요일 실리오(Silió)에서 개최. 짧은 겨울의 끝과 태양의 도래를 기념하며, 흰곰 사냥극이 펼쳐진다. 연극 속 인물들의 전통 의상인 트라파호네스(trapajones)와 자라마코스(zarramacos)가 주요 볼거리이다.
  • '''마리네로 카니발(Carnaval marinero)''' (선원 카니발): 2월 산토냐(Santoña)에서 개최. "북부의 카니발"로도 불리며, 1934년에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로 분장하여 참여하며, "바다 밑 재판"과 "베수고(besugo) 태우기" 행사가 핵심이다. (베수고(besugo)는 어류의 일종이자 어리석은 사람을 뜻한다.)
  • '''라 폴리아(La Folía)''': 4월 산 비센테 데 라 바르케라(San Vicente de la Barquera)에서 개최.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배를 따라 지역 어선들이 행렬을 이룬다.
  • '''코소 블랑코(Coso Blanco)''': 7월 첫 번째 금요일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Castro Urdiales)에서 개최. 수레가 등장하는 다채로운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 '''칸타브리아의 날(Cantabria Day)''': 8월 둘째 일요일 카베손 데 라 살(Cabezón de la Sal)에서 개최. 전통 칸타브리아 음악, 도자기 시장, 향토 음식, 볼로 팔마(bolo palma) 경연 대회, 소 끌기 대회, 공개 연설 등이 진행된다.
  • '''SAUGA 민속 음악 축제''': 8월 셋째 주말 콜린드레스(Colindres)에서 개최.
  • '''플로랄 갈라(Floral Gala)''': 8월 토렐라베가(Torrelavega)에서 개최. 꽃으로 장식된 수레가 등장하는, 국제적인 관광 축제이다.
  • '''꽃들의 전투(Battle of Flowers)''': 8월 라레도(Laredo)에서 개최. 꽃과 과일로 장식된 수레가 등장하며, 저녁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 '''캄푸의 날(Campoo Day)''': 9월 레오노사(Reinosa)에서 개최. 1977년부터 지역 관광 축제로 지정되었으며,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캄푸리아노스(Campurrians)의 관습과 전통을 보여준다. 가축 전시, 지역 상품 시장, 전통 의상 등이 주요 행사 내용이다.


현대 칸타브리아 문화에서 주목할 만한 축제로는 산탄데르 국제 축제(Santander International Festival)[34] (예술 축제), 산탄데르 여름 축제(Santander Summer Festival)[35] (음악 축제), 소토시네(Sotocine)[36] (영화제) 등이 있다.

7. 3. 칸타브리아 요리


  • '''대표 요리''': 강낭콩과 겨자잎을 사용한 코시도 몬타녜스(Highlander stew), 병아리콩과 마르미타(marmita)를 사용한 코시도 레바니에고(리에바나식 스튜).[1]
  • '''육류 요리''': 소고기, 쇠고기, 사슴고기, 노루고기 또는 멧돼지고기를 구이, 찜 또는 채소와 함께 요리한다.[1] 이 지역의 축산업 명성과 가축 사육에 유리한 기후 조건 덕분에 유럽 연합은 특정 토착 품종(투단카, 몬치나) 및 환경에 적응하거나 동화에 의해 통합된 다른 품종(브라운 알파인)의 쇠고기에 대해 "칸타브리아산 육류" 명칭을 지리적 표시 보호 품목으로 지정했다.[1]
  • '''해산물''': 멸치, 아귀, 밍크, 농어, 가자미, 정어리, 유럽산 멸치, 북부(스페인)산 다랑어, 도다리, 도미, 홍돔, 독가시고기와 송어, 연어와 같은 일부 민물고기가 있다.[1] 튀긴 오징어인 라바스(rabas)와 자체 먹물에 조리된 갑오징어 요리인 카촌 엔 수 틴타(cachón en su tinta)는 지역 특산물이다.[1] 조개, 홍합, 칼조개, 피조개, 털게, 킹크랩, 거위발 따개비, 달팽이, 바닷가재, 유럽 바닷가재도 있다.[1]
  • '''디저트''': 파스 계곡의 케사다(Quesada Pasiega)와 소바오(sobao); 운케라(Unquera)의 코르바타스와 토렐라베가(Torrelavega)의 폴카스(둘 다 기본적으로 퍼프 페이스트리); 카베손 데 라 살(Cabezón de la Sal)의 팔루코스; 레이노사(Reinosa)의 판토르티야스.[1]
  • '''치즈''': 리에바나(Liébana)의 케수코스(Quesucos).[1]
  • '''음료''': 차콜리(txakoli); 리에바나(Liébana)의 사과주와 포마스(pomace)로 만든 오루호(orujo); 포테스(Potes)의 토스타딜로.[1]


7. 4. 스포츠

칸타브리아의 전통 스포츠는 볼로스(bolos, 스커틀(skittles)) 게임으로, 볼로 팔마(bolo palma), 파사볼로 타블론(pasabolo tablón), 파사볼로 로사(pasabolo losa), 볼로 파시에고(bolo pasiego)의 네 가지 형태가 있다.[37] 그중 볼로 팔마가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경기 규칙도 가장 복잡하다. 볼레라스(boleras, 스커틀 경기장)는 칸타브리아의 모든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교회나 마을 술집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 후반부터 스커틀 학교가 강화되고 다양한 대회와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면서 스커틀 경기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산탄데르 만에서 열린 트라이네라(Trainera) 조정 경기


레모(remo, 조정)는 해안 마을의 매우 전통적인 스포츠이다. 칸타브리아에서 조정의 기원은 여러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러 트라이네라(trainera, 전통 어선)들이 잡은 생선을 팔기 위해 경쟁했으며, 가장 먼저 어시장에 도착한 배가 판매권을 독점했다. 19세기 말에는 조정이 스포츠가 되었고, 칸타브리아 마을들 간에 조정 경기가 시작되었다. 칸타브리아의 스포츠 클럽 중 아스티예로(Astillero), 카스트로 우르디알레스(Castro Urdiales), 페드레냐(Pedreña)는 이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팀들 중 하나이다.

산탄데르 스포츠 궁전: 현지 팀인 칸타브리아 로보스(Cantabria Lobos, 늑대들)의 농구 경기


파시에간 점프는 이 지역의 뛰어난 농촌 스포츠 중 하나이다. 카나리아 목동 점프와 유사하게, 처음에는 파시에간 계곡에서 돌담, 울타리, 개울 또는 협곡을 건너는 데 사용되었다.

대중 스포츠와 관련하여 칸타브리아는 축구에서 레이싱 데 산탄데르, RS 짐나스티카 데 토렐라베가, 칸타브리아 자치 지역 축구팀과 같은 팀을 통해 국내외 대회에 참가한다. 핸드볼에서는 CB 칸타브리아가 리그와 국왕컵, IHF 슈퍼 글로브, EHF 챔피언스리그, EHF컵 위너스컵, EHF컵을 우승했고, 농구에서는 칸타브리아 발론세스토(칸타브리아 로보스)가 ACB에서 활동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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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Sub-national HDI - Area Database - Global Data Lab https://hdi.globalda[...] 2023-06-24
[3] 웹사이트 ISO 3166-2 NEWSLETTER Date issued: 2010-02-03 No II-1 Corrected and reissued 2010-02-19 http://www.iso.org/i[...] 2018-01-06
[4] 웹사이트 Cantabria https://www.collinsd[...] HarperCollins 2019-05-30
[5] 백과사전 Cantabria http://www.lexico.co[...]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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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World Heritage caves https://cantabriaspa[...] 2024-11-23
[10] 웹사이트 Sinopsis del Estatuto de Cantabria http://www.congreso.[...] congreso.es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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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서 Cantabria
[23] 문서 Cantabria
[24] 논문 Iconografía triunfal augustea y las guerras cántabras: algunas observaciones sobre escudos redondos y puntas de lanza representados en monumentos de la Península Ibérica e Italia http://aespa.revista[...] 20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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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웹사이트 Constitución española: Estatuto de Autonomía de Cantabria https://web.archive.[...] Congreso de los Diputados: España 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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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서적 El dialecto Leonés El Buho Viajero
[34] 웹사이트 Festival Internacional de Santander website http://www.festiv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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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웹사이트 Sotocine website http://www.sotocine.[...] 200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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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서적 Los cántabros Editorial Estudio
[39] 문서 에브로 강은 칸타브리아인의 땅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넓고 아름답고 물고기가 풍부하다
[40] 문서 그는 칸타브리아 공작 페드로의 아들이었다
[41] 서적 La Cantabria. Disertación sobre el sitio y extensión que tuvo en tiempos de los romanos la región de los cántabros, con noticia de las regiones cofinantes y de varias poblaciones Antiguas
[42] 웹사이트 Confederación Hidrográfica del Norte http://www.chnorte.e[...] 2007-06-09
[43] 웹사이트 Confederación Hidrográfica del Ebro http://www.chebro.es 2007-09-09
[44] 웹사이트 Confederación Hidrográfica del Duero http://www.chduero.e[...] 2007-06-09
[45] 문서 이 사건들은 칸타브리아 출신 감독 마누엘 구티에레스 아라곤의 영화 '너를 기다리는 삶'의 배경을 이룬다.
[46] 위키 유칼립투스#스페인의 유칼립투스를 이용한 재조림 :es:Eucalyptus#Refor[...]
[47] 웹사이트 http://www.mma.es/se[...]
[48] 웹사이트 국가 관개 계획의 환경 감시 프로그램 http://www.mapa.es/e[...] 2007-06-09
[49] 웹사이트 자치 지역 및 성별에 따른 2006년 1월 1일 인구 http://www.ine.es/in[...] 2007-06-11
[50] 웹사이트 국적 및 성별에 따른 외국인 인구 (2004-2006) http://www.icane.es/[...] 2007-06-09
[51] 웹사이트 칸타브리아: 시정촌 및 성별에 따른 인구. 2006년 1월 1일 인구 수치 http://www.ine.es/in[...] 2007-06-11
[52] 문서 같은 계열의 아스투리아스어는 아스투리아스주에서는 공용어는 아니지만, 고유 언어로 인정되어 보호 대상이 되고 있다. 통제 기관으로서 Academia de la Llingua Asturiana가 존재하며, 문법서, 사전이 출판되고, 아스투리아스어로 된 출판, 외국 문학 번역도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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