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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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라주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자치주로,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과 스페인 지지 정당 간의 정치적 경쟁이 특징이다. 로마 시대부터 바스크인이 거주했으며, 나바라 왕국을 거쳐 스페인에 병합되었다. 현재는 자치 정부를 운영하며, 세금 징수 권한을 갖는 등 강력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팜플로나가 주도이며, 에너지, 의료 서비스,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스페인어와 바스크어를 사용하며, 다양한 문화 유산과 축제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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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바라주 - 나바라 국왕
나바라 국왕은 824년부터 1620년까지 나바라 왕국을 통치한 군주로, 여러 왕조를 거쳐 1512년 아라곤 왕에 의해 남부가 정복된 후 하 나바라 지역만을 통치하다 1620년 프랑스에 합병되며 그 칭호가 프랑스 왕에게 넘어갔다.
나바라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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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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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나바라 자치 공동체 |
지역 유형 | 자치 공동체 및 주 |
위치 | 스페인 내 나바라 |
수도 | 팜플로나 |
면적 | 10,391 km² (스페인의 2.2%, 11위) |
인구 (2021년) | 661,537명 (스페인의 1.3%, 15위)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인구 통계 명칭 | |
인간 개발 지수 (2021년) | 0.926 (매우 높음, 3위) |
GDP (2022년) | 총액: 225억 9500만 유로 1인당: 33,798 유로 |
공식 언어 | 스페인어 바스크어 (바스크어 사용 지역에서 공동 공식어) |
자치 법령 | 1982년 8월 16일 |
의회 | 나바라 의회 |
스페인 하원 의석 | 5석 (총 350석 중) |
스페인 상원 의석 | 5석 (총 265석 중) |
ISO 3166-2 | ES-NA |
주지사 | 마리아 치비테 (PSN-PSOE) |
공식 웹사이트 | 스페인어 바스크어 |
일본어 정보 | |
명칭 | 나바라 주 |
행정 구역 | 나바라 주 |
정부 형태 | 입헌군주제 헌정 하의 자치권 위임 |
지도 기관 | 나바라 주 정부 |
주지사 소속 정당 | PSN |
면적 | 10,391 km² (스페인 전체의 2.2%, 11위) |
인구 (2018년) | 647,554명 (스페인 전체의 1.3%, 15위) |
인구 밀도 | 62명/km² |
주민 호칭 | 스페인어: navarro(남성), navarra(여성) 바스크어: nafar, napartar 영어: Navarrese |
자치 법령 | 1982년 8월 16일 |
공용어 | 비바스크어 지역: 스페인어 혼합 지역: 스페인어, 바스크어 바스크어 지역: 스페인어, 바스크어 |
스페인 하원 | 5석 (총 350석 중) |
스페인 상원 | 5석 (총 264석 중) |
공식 웹사이트 | 나바라 주 정부 (바스크어) |
2. 역사
로마 제국 이전과 당시에 바스크인들은 피레네 산맥 남쪽, 즉 훗날 나바라가 되는 지역에 거주했다. 바스크인들은 북부 산악 지대에서는 해안 지역과 남쪽 평야 지대를 제외하고 로마인들의 대규모 정착을 피했다. 이 지역들은 포도밭, 올리브 농장, 밀 농사와 같은 대규모 로마식 농업에 적합했다. 로마인과 바스크인 사이에 전투나 일반적인 적대감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그들은 같은 적을 가지고 있었다.[4]
서고트족과 프랑크족은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778년 샤를마뉴가 이끄는 프랑크족 군대는 팜플로나 성벽을 파괴했지만, 이에 분개한 바스크족과의 론세스발레스 전투에서 대패했다. 이 전투는 서사시 롤랑의 노래의 모델이 되었다. 824년 바스크족 족장 이니고 아리스타는 이슬람 세력과 연합하여 프랑크족을 격파하고 팜플로나 왕국(이후 나바라 왕국)을 세웠다.[59][60]
산초 3세 통치 시기 나바라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여 현재의 나바라주뿐만 아니라 바스크, 라리오하주, 칸타브리아주, 카스티야이레온주, 아라곤주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산초 3세 사후 왕국은 분열되었고, 이후 정치적 권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6]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상인과 순례자들이 유입되면서 상업적 중요성은 커졌다.
1212년 나바라 군대는 기독교 연합군과 함께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 참전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항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은 약화되었고, 나바라는 1513년 스페인 왕국에, 일부 지역은 프랑스에 복속되었다.
1512년 카스티야 섭정 페르난도 5세(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는 나바라 왕국을 침략하여 합병했고, 나바라 왕국은 카스티야 왕국의 부왕령이 되었지만, 입법, 행정, 사법 기관은 유지되었다.[68] 나바라 사람들은 프랑스 왕조의 종말을 아쉬워하지 않고, 카스티야 왕국 내 자치권 유지에 힘썼다.[74]
1839년 베르가라 협정 이후 축소된 자치권(''푸에로스'')이 통과되었다. 1841년 푸에로스 개정 법률(타협 법률)로 스페인 정부가 나바라 지방 의회 관리들과 타협을 맺은 후 나바라 왕국은 지방이 되었다. 같은 해 에브로 강에서 피레네 산맥으로 관세 지점이 이전되면서 나바라의 전통적인 피레네 산맥 횡단 무역은 붕괴되고 밀수가 성행했다.[64]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후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 정권이 스페인 민주화를 추진했다. 비스카이아주, 기푸스코아주, 아라바주의 바스크 3주는 1979년 바스크 자치 헌장을 제정하여 바스크 자치주를 발족했지만, 나바라주에서는 민주 중도 연합(UCD)과 나바라 주민 연합(UPN)이 바스크 주 편입에 반대했다. 1982년 나바라주는 단독으로 나바라 자치주로 승격되었고, 나바라 자치주와 바스크 자치주의 분리는 결정적이 되었다. 1987년 나바라 공립 대학교가 설립되었다.[72]
2. 1. 고대
로마 제국 이전과 로마 제국 시대 동안, 바스크인들은 피레네 산맥 남쪽 사면, 즉 나중에 나바라가 될 지역에 거주했다. 산악 지대인 북부에서는 바스크인들이 해안 지역과 남쪽의 평평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로마인들의 대규모 정착을 피했다. 이 지역들은 대규모 로마식 농업, 즉 포도밭, 올리브 농장, 밀 농사에 적합했다. 로마인과 바스크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거나 일반적인 적대감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그들은 같은 적을 가지고 있었다.[4]나바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는 후기 구석기 시대 마들렌 문화 시대(18,000년 전 - 11,000년 전)의 것이다. 북서부의 알랄라르 산맥에는 금속기 시대 초기의 거석 기념물(돌멘, 멘히르, 스톤 서클)이 있으며, 남부에서는 철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후 이 지역에 온 켈트족은 바스크 지방에 금속 가공 기술과 화장(火葬) 풍습을 전파했고, 기원전 3세기에는 카르타고인이 피레네 산록에 도달했다. 기원전 133년 고대 로마인이 켈트족을 패배시키자, 기원전 75년에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폼페이오(현재 팜플로나)를 건설했다.[66] 폼페이오에는 신전, 공중 목욕탕, 저택 등이 세워져 로마식 도시가 되었고, 포도, 올리브, 밀 등 로마식 작물의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었다. 동부의 상게사 등 아라고강과 알가강 강변 도시들은 로마화가 두드러졌지만, 반대로 산간 계곡 지역은 로마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바스크 지방에 정착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전승에 따르면 레이레 수도원 건설은 435년, 이라체 수도원 건설은 서고트 시대,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건설은 638년이라고 한다.
2. 2. 나바라 왕국
로마 제국 시대에 바스크인이 피레네 산맥 남쪽 비탈면에 거주했다. 바스크어와 전통은 로마 초기 부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과 서고트족에게 정복당해 오랫동안 영향을 받았으나, 778년 프랑크 왕국 군대가 바스크군에 패배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종결되었다. 824년 이니고 아리스타가 팜플로나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나바라 왕국이 설립되었다.[5]나바라 왕국은 산초 3세 통치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현재의 나바라주뿐만 아니라 바스크, 라리오하주, 칸타브리아주, 카스티야이레온주, 아라곤주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산초 3세 사후 왕국은 분열되었고, 이후 정치적 권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6] 비록 정치적 영향력은 감소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상인과 순례자들이 유입되면서 상업적 중요성은 커졌다.
1212년 나바라 군대는 기독교 연합군과 함께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 참전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항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은 약화되었고, 나바라는 1513년 스페인 왕국에, 일부 지역은 프랑스에 복속되었다.



2. 3. 스페인 왕국 시대
로마 제국 시기 바스크인들은 현재 나바라주 지역에 살았으며, 로마 초기 부족이 피레네 산맥 남쪽 비탈면에 거주했다. 바스크어와 전통은 이들 로마 초기 사람들에게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과 서고트족에게 정복되어 오랜 기간 영향을 받았으나, 778년 프랑크 왕국 군대가 바스크군에 패배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종결되었다. 824년 이니고 아리스타가 팜플로나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나바라 왕국이 건국되었다.나바라 왕국은 산초 3세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현재 나바라주뿐만 아니라 바스크, 라리오하주, 칸타브리아주, 카스티야이레온주, 아라곤주 일부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후 분열을 겪으며 다시는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나바라 군대는 1212년 기독교 연합군과 함께 이슬람 대항 전쟁을 벌였다. 이후 이슬람 세력은 약화되었고, 나바라도 큰 발전 없이 1513년 스페인 왕국에 병합되었으며, 일부 지역은 프랑스에 귀속되었다.
1004년에 즉위한 산초 3세는 기독교 국가들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카스티야, 라 리오하, 아라곤, 바스크의 여러 지역과 동맹을 맺어 왕국의 지위를 굳건히 했다.[65] 피레네 산맥 이남(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권 대부분을 지배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66] 산초 3세는 서유럽과의 경제·문화적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비와 관리에 힘썼다.[67]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기독교 세력의 군사력이 이슬람 세력을 능가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68]
12세기 말, 카스티야 왕 알폰소 8세와 아라곤 왕 알폰소 2세는 연합하여 나바라 왕국을 공격했고, 1200년에는 비스케이 만 연안의 아라바, 비스카야, 기푸스코아 3개 지역을 빼앗겼다.[69] 나바라 왕국은 해안 지역을 잃고 내륙국이 되었으며, 피레네 산록의 작은 나라로 전락했다.[70] 1212년 가톨릭 국가 연합군이 무와히드 왕조에 맞선 나바스 데 토로사 전투에서 산초 7세가 이끄는 중장 기사단은 가톨릭 세력의 승리에 기여했다.[71] 이 전투는 레콩키스타의 전환점이었고, 무와히드 왕조 쇠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72]
1512년, 카스티야 섭정 페르난도 5세(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는 나바라 왕국을 침략하여 합병했고, 나바라 왕국은 카스티야 왕국의 부왕령이 되었지만, 입법, 행정, 사법 각 기관은 나바라 왕국에 남았다.[73] 나바라 사람들은 프랑스 왕조의 종말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카스티야 왕국 내에서의 자치권 유지에 힘썼다.[74]
2. 4. 현대
1839년 베르가라 협정(베르가라 협정) 이후, 축소된 형태의 자치권(''푸에로스'')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1841년 푸에로스 개정 법률(후에 "타협 법률"(''Ley Paccionada'')로 불림)로 스페인 정부가 나바라 지방 의회 관리들과 타협을 맺은 후 나바라 왕국은 지방이 되었다. 1841년 에브로 강에서 피레네 산맥으로 관세 지점을 이전하면서 나바라의 전통적인 피레네 산맥을 넘나드는 무역은 붕괴되고 밀수가 증가했다.[64]스페인의 불안정 속에서 카를리스트들이 나바라와 나머지 바스크 지방을 장악했다. 제3차 카를리스트 전쟁 기간 동안 에스텔라를 수도로 하는 실질적인 바스크 국가가 수립되었지만(1872~1876), 알폰소 12세 국왕이 스페인 왕위에 복위하고 반격이 시작되면서 카를리스트들은 패배했다. 제3차 카를리스트 전쟁의 종식은 나바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페인 중앙 집권화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왔다.
1893년~1894년에는 마드리드 정부의 결정이 1841년에 약정된 조항을 위반하는 것에 반대하는 팜플로나를 중심으로 ''가마자다''라는 대중 봉기가 일어났다. 소수파(소위 "알폰시노스")를 제외하고 나바라의 모든 정당은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인 ''라우라크 바트'' 내에서 자치권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 중에서 나바라 지방을 정치적으로 지배했던 카를리스트들은 마드리드에서 통과된 일련의 법령과 법률, 그리고 좌파 성향의 영향력에 반발했다. 비스카이아나 기푸스코아주와 달리 나바라에서는 이 기간 동안 제조업이 발전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농촌 경제가 유지되었다.
스페인 제2공화정(1931년~1936년) 아래 1931년에는 지역 자치를 인정하는 공화정 헌법이 의회에서 승인되었기 때문에, 바스크 지방에서는 1932년에 바스크 자치 헌장안이 각 자치체 대표자의 투표에 부쳐졌지만, 나바라에서의 지지율은 스페인 바스크 4개 지역 중 가장 낮은 50% 미만이었다. 1933년에는 나바라를 분리한 자치 헌장 초안이 공화국 의회에 제출되었다. 1933년 10월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부유한 지주의 토지를 점령하였고, 지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원한을 품었다.[70]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북부 방면 사령관이었던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장군의 지휘 아래 나바라 주는 즉시 국민군(Nationalist_faction_(Spanish_Civil_War))의 지배를 받았다. 초기에는 나쇼날리스트(국민주의자) 강경파에 의해 테러 활동이 잇따랐고, 공산주의자 등이 테러 대상이었다. 제2공화정 시대에는 반교권주의가 확산되었지만, 프랑코는 공화국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옹호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프랑코가 이끄는 나쇼날리스트를 “십자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나바라 남부 에브로 강변 지역에서 대규모 숙청이 이루어졌고, 성직자들은 자발적으로 음모에 가담하였다. 최소 2,857명이 살해되었고, 305명이 학대나 영양실조 등의 이유로 교도소에서 사망하였다. 사망자들은 집단 묘지에 매장되거나, 우르바사 산 등 중앙 구릉지대의 협곡에 버려졌다.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더 열악한 곳으로 쫓겨났고, 에스텔라 시장이자 CA 오사수나의 공동 창설자였던 포르투나토 아기레는 1936년 9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팜플로나는 1937년 4월 이후 북부 작전 시 반군의 작전 개시 지점이었다.
스페인 내전 후인 1939년, 프랑코 독재 정권이 수립되었고, 아라바와 나바라에는 내전 당시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후에로(fueros)를 연상시키는 여러 특권 유지가 허용되었다.[71] 내전 후에는 물자 부족, 기근, 밀수 등이 심화되었고, 경제는 밀, 포도, 올리브, 보리 등의 농업에 의존했으며, 인구 이동은 감소하는 방향으로 치우쳤다. 전쟁의 승자들은 카를리스트와 파랑히스타(파랑헤당 지지자)라는 두 개의 주요 파벌로 나뉘었다.[71]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단체인 오푸스 데이(Opus Dei)는 1952년 팜플로나에 나바라 대학교(Universidad de Navarra)를 설립했다. 오늘날 나바라 대학교는 더 이상 오푸스 데이의 소유물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오푸스 데이에게 있어 가장 큰 "자체" 대학교이다.
1950년대에는 기푸스코아주와 비스카이아주처럼 산업 유치를 실시하여, 화학 공업, 제지업, 제철업, 철강업 등의 기업들이 나바라주에 진출했다. 나바라주의 제1 산업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었고, 1950년부터 20년 동안 농업 종사자 비율은 55%에서 26%로 감소했다. 특히 팜플로나의 인구와 기업 증가가 컸고, 1978년에는 나바라주 전체 인구의 45%와 기업의 60%를 차지했다. 프랑코 정권 말기 민주화 준비 단계에서, 나바라주에서는 바스크 자유와 조국(ETA), 경찰, 주정부가 후원하는 민병 조직에 의한 폭력 활동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풍조는 1980년대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고,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 정권이 스페인의 민주화를 추진했다. 비스카이아주, 기푸스코아주, 아라바주의 바스크 3주는 1979년 바스크 자치 헌장을 제정하여 바스크 자치주를 발족시켰지만, 나바라주에서는 민주 중도 연합(UCD)과 나바라 주민 연합(UPN)이 나바라주의 바스크 주 편입에 반대했다. 1982년 나바라주는 단독으로 나바라 자치주로 승격되었고, 나바라 자치주와 바스크 자치주의 분리는 결정적이 되었다. 1987년에는 공공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나바라 공립 대학교(Universidad Pública de Navarra)가 설립되었다.[72]
3. 지리
나바라주는 이베리아반도 북동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프랑스, 동쪽으로는 아라곤, 남쪽으로는 라리오하, 서쪽으로는 바스크 지방과 접한다.
피레네산맥과 에브로강의 영향으로 다양한 소기후가 나타난다. 북쪽은 습하고 강수량이 많은 반면, 남쪽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다. 북쪽에는 칸타브리아 계곡 지대가 나타나며, 반건조 지대로 스텝 기후가 나타나는 곳도 있다.[90][91]
비스케이 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북서부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며, 바스탄 계곡과 비다소아 계곡은 연중 푸르다.[60] 겨울철 평균 기온은 12°C로 온화하고, 여름철 평균 기온은 22°C로 쾌적하다.[60] 피레네 산맥에 가까운 북동부는 산악 기후로, 나바라주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60]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고지대에는 눈이 쌓인다.[60] 팜플로나를 포함한 중앙 지역은 전이 지대로,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가 크다.[60] 겨울에는 맑은 날이 많지만 비가 내리기도 하며,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낮과 서늘한 밤이 이어진다.[60] 남부는 지중해성 기후를 띠며, 겨울에는 Cierzo|시에르소es라 불리는 북풍이 분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기온이 종종 40°C에 이르기도 한다.[60]
나바라주의 유일한 공식 기상 관측소는 팜플로나에 있으며, 팜플로나의 기후는 아래 표와 같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
최고 기온 기록 (°C) | 19.5 | 23.6 | 30 | 29.6 | 33.5 | 38.5 | 40.2 | 40.6 | 38.8 | 30 | 27 | 20 | 40.6 |
평균 최고 기온 (°C) | 9.1 | 10.9 | 14.6 | 16.4 | 20.2 | 25.2 | 28.2 | 28.3 | 24.5 | 19.3 | 13.1 | 9.7 | 18.4 |
평균 기온 (°C) | 5.2 | 6.3 | 9.1 | 10.9 | 14.7 | 18.6 | 21.2 | 21.4 | 18.2 | 14.1 | 9.0 | 6.0 | 12.9 |
평균 최저 기온 (°C) | 1.4 | 1.6 | 3.7 | 5.3 | 8.6 | 11.9 | 14.2 | 14.5 | 12.0 | 8.9 | 4.8 | 2.2 | 7.4 |
최저 기온 기록 (°C) | -12.4 | -15.2 | -9 | -2.2 | -0.2 | 3.8 | 7 | 4.8 | 3.4 | -1 | -6.6 | -14.2 | -15.2 |
강수량 (mm) | 57 | 50 | 54 | 74 | 60 | 46 | 33 | 38 | 44 | 68 | 75 | 72 | 674 |
상대 습도 (%) | 78 | 72 | 66 | 65 | 63 | 59 | 57 | 58 | 62 | 69 | 76 | 78 | 67 |
일조 시간 | 93 | 125 | 177 | 185 | 228 | 268 | 310 | 282 | 219 | 164 | 108 | 88 | 2240 |
3. 1. 지형
비교적 작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나바라는 피레네 산맥(Pyrenees)에서부터 남쪽 에브로 강 유역의 평원까지 다양한 지형을 보여준다. 나바라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메사 데 로스 트레스 레이예스(Mesa de los Tres Reyes)로, 해발 이다.다른 중요한 산으로는 차만초이아(Txamantxoia), 카르첼라(Kartxela), 라라-벨라구아 산맥(Larra-Belagua Massif), 시에라 데 알라이스(Sierra de Alaiz), 운츠에코 아리아(Untzueko Harria), 시에라 데 레이레(Sierra de Leyre), 시에라 델 페르돈(Sierra del Perdón), 몬테주라(Montejurra), 에스카바(Ezkaba), 몬테 오리(Monte Ori), 시에라 데 코데스(Sierra de Codés), 우르바사(Urbasa), 안디아(Andia), 아랄라 산맥(Aralar Range) 등이 있다.

지형 및 생물 기후학적 관점에서 나바라 주는 산악 지대, 중앙 지대, 하안 지대의 3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56]
- 산악 지대: 나바라 주 북부를 차지하며, 습윤 지대, 피레네 계곡, 피레네 전연 분지로 나뉜다.
- 북서부 습윤 지대는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 연 강수량이 약 1,400mm이며 활엽수, 목초, 고사리류 등이 보인다.
- 북동부 피레네 계곡은 격렬한 강설과 기온 변화가 특징인 피레네 산맥 산록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아대양성 기후로 변화한다. 피레네 계곡 북부에는 너도밤나무, 전나무, 유럽 적송 등이 보인다.
- 피레네 전연 분지의 식생은 상수리나무류나 떡갈나무류 등의 지중해 활엽수가 두드러진다.
- 나바라 주의 최고봉은 해발 2,428m의 메사 데 로스 트레스 레이예스(Mesa de los Tres Reyes)이며, 트레스 레예스 주변에는 해발 2,507m의 아니 산(Ani, 정상은 프랑스 영토)과 2,366m의 페트레체마(Petrechema) 등이 있다.[58]
- 중앙 지대: 산악 지대와 하안 지대의 중간에 있으며, 산지와 구릉 등이 보이는 북부에서 광대한 평야가 펼쳐지는 남부까지 완만하게 이어진다. 기후는 크게 변화하여 동쪽은 대륙성 기후이고, 북쪽은 서해안 해양성 기후, 남쪽은 대륙 지중해성 기후이다. 팜플로나(Pamplona)와 팜플로나 도시권이 있다.
- 하안 지대: 에브로 강(Ebro) 본류와 지류의 유역이며, 에스텔라(Estella)와 투델라(Tudela)라는 두 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 에스테야 하안에는 완만한 능선과 향사면곡이 보이고, 투델라 하안에는 구조 평원과 충적 저지가 펼쳐져 있다.
- 투델라 북쪽에는 반사막 지대인 바르데나스 레알레스(Bardenas Reales)가 펼쳐져 있으며, 유네스코(UNESCO)의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59]
- 연 강수량은 400mm가 채 되지 않으며, 산악 지대에 비해 일조 시간이 길고,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심하다.
나바라 주의 주요 하천은 모두 에브로 강(Ebro)의 지류이며 다음과 같다.
- 에스테야를 흐르는 에가 강(Río Ega)
- 팜플로나를 흐르는 알가 강(Arga)
- 상게사(Sangüesa)를 흐르는 아라곤 강(Aragón)
이들 하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에브로 강에 합류한 후 남동쪽으로 흘러 결국 지중해(Mediterráneo)로 흘러든다. 주 북서부 일부 지역에서는 우르메아 강(Urumea), 비다소아 강(Bidasoa)과 레이차란 강(Leitzaran)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대서양(Atlántico)으로 흘러든다.
북쪽은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서해안성 기후(쾨펜: Cfb)를 나타낸다. 나바라 최북단은 비스케이 만(Bay of Biscay)에서 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북쪽 가장자리는 산세바스티안과 유사하다. 나바라 중부에서는 여름 강수량이 감소하여 지중해성 기후(쾨펜: Csa 및 Csb)를 나타낸다. 나바라 최남단은 서늘한 반건조 기후(쾨펜: Bsk)를 보이며, 북부 대부분 지역에 비해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팜플로나보다 더욱 더운 여름을 보이며, 북부의 구릉지대와 산악지역은 더욱 그렇다.
나바라의 유일한 공식 기상 관측소는 북서쪽 구석에 있는 팜플로나에 위치하고 있다.




3. 2. 기후
피레네산맥과 에브로강의 영향으로 나바라주에는 다양한 소기후가 나타난다. 북쪽 지역은 습하고 강수량이 많은 반면, 남쪽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다. 북쪽에는 칸타브리아 계곡 지대가 나타나며, 반건조 지대로 스텝 기후가 나타나는 곳도 있다.[90][91]나바라주의 유일한 공식 기상 관측소는 팜플로나에 있으며, 팜플로나의 기후 자료는 다음과 같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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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기온 기록 (°C) | 19.5 | 23.6 | 30 | 29.6 | 33.5 | 38.5 | 40.2 | 40.6 | 38.8 | 30 | 27 | 20 | 40.6 |
평균 최고 기온 (°C) | 9.1 | 10.9 | 14.6 | 16.4 | 20.2 | 25.2 | 28.2 | 28.3 | 24.5 | 19.3 | 13.1 | 9.7 | 18.4 |
평균 기온 (°C) | 5.2 | 6.3 | 9.1 | 10.9 | 14.7 | 18.6 | 21.2 | 21.4 | 18.2 | 14.1 | 9.0 | 6.0 | 12.9 |
평균 최저 기온 (°C) | 1.4 | 1.6 | 3.7 | 5.3 | 8.6 | 11.9 | 14.2 | 14.5 | 12.0 | 8.9 | 4.8 | 2.2 | 7.4 |
최저 기온 기록 (°C) | -12.4 | -15.2 | -9 | -2.2 | -0.2 | 3.8 | 7 | 4.8 | 3.4 | -1 | -6.6 | -14.2 | -15.2 |
강수량 (mm) | 57 | 50 | 54 | 74 | 60 | 46 | 33 | 38 | 44 | 68 | 75 | 72 | 674 |
상대 습도 (%) | 78 | 72 | 66 | 65 | 63 | 59 | 57 | 58 | 62 | 69 | 76 | 78 | 67 |
일조 시간 | 93 | 125 | 177 | 185 | 228 | 268 | 310 | 282 | 219 | 164 | 108 | 88 | 2240 |
[31][32]
비스케이 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북서부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며, 바스탄 계곡과 비다소아 계곡은 연중 푸르다.[60] 겨울철 평균 기온은 12°C로 온화하고, 여름철 평균 기온은 22°C로 쾌적하다.[60] 피레네 산맥에 가까운 북동부는 산악 기후로, 나바라주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60]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고지대에는 눈이 쌓인다.[60] 팜플로나를 포함한 중앙 지역은 전이 지대로,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가 크다.[60] 겨울에는 맑은 날이 많지만 비가 내리기도 하며,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낮과 서늘한 밤이 이어진다.[60] 남부는 지중해성 기후를 띠며, 겨울에는 Cierzo|시에르소es라 불리는 북풍이 분다.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기온이 종종 40°C에 이르기도 한다.[60]
4. 행정
나바라는 이베리아반도 북동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프랑스, 동쪽으로 아라곤, 남쪽으로는 라리오하, 서쪽으로는 바스크 지방과 접한다. 자치 정부로서 국회와 각 부처가 존재하며 사회, 보건, 교육, 환경, 도시개발 등 모든 분야의 분과가 있다. 나바라 지방은 직접 세금을 걷으며, 이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지침을 상당부분 따른다.
나바라는 272개의 소단위로 나뉘며 2006년 기준 601,874명의 인구가 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팜플로나에, 절반은 팜플로나 인근의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 주요 도시로는 투델라(32,802명), 바라냐인(22,401명), 버르라다(18,388명), 에스타야 리사라(13,892명) 등이 있다.
프랑코 독재 정권 종식 후, 1982년 나바라 지방은 단일 지방으로 나바라 주로 승격되었다. 17개 자치주 중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País Vasco)는 각 지방에 징세권이 있으며, 그 일부가 국고에 귀속되는 강력한 재정적 자치권을 가진다.
다른 자치주와 마찬가지로, 나바라 주 의회는 4년마다 주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의회의 다수당이 나바라 주 정부 주석을 결정한다. 1979년 나바라 주민 연합(UPN)의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가 초대 주석으로 선출되었으나, 바스크 민족주의 좌파 정당도 일정한 강세를 보였다. 이후 민주중도연합(UCD),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의 나바라 지부인 Partido Socialista de Navarra|나바라 사회당es(PSN)에서 주석이 선출되었다. 1996년부터는 미겔 산스가 15년간 주석직을 수행했고,[73] 2011년에는 욜란다 바르시나가 여성 최초로 주석에 취임했다.[73]
우익의 나바라 주민 연합과 좌익의 나바라 사회당 외에, 바스크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일정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2015년에는 게로아 바이의 우슈에 바르코스가 주석에 취임하여,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바스크 민족주의를 내세운 정권이 탄생했다.[74] 2019년에는 나바라 사회당의 마리아 치비테가 주석에 취임하여, 3대 연속 여성이 주석을 역임하게 되었다.
나바라 주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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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제1대 | 1979-1980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나바라 지방 정부 수반 |
제2대 | 1980-1984 | 후안 마누엘 알사 무뉴슬리 | 민주중도연합(UCD) | 재임 중 나바라 주 설립 |
제3대 | 1984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4대 | 1984-1991 | 가브리엘 우라이블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5대 | 1991-1995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6대 | 1995-1996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7대 | 1996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민주주의자 통합(CDN) | |
제8대 | 1996-2011 | 미겔 산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9대 | 2011-2015 | 욜란다 바르시나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최초의 여성 주석 |
제10대 | 2015-2019 | 우슈에 바르코스 | 게로아 바이(GBai) | 여성 주석 |
제11대 | 2019- | 마리아 치비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주석 |
나바라 주 의회 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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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1979-1983 | 빅토르 마누엘 알베로아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나바라 주 설립 이전 | |
제1대 | 1983-1987 | 발비노 바도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2대 | 1987-1991 | 이그나시오 하비에르 고마라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3대 | 1991-1995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4대 | 1995-1999 | 마리아 돌로레스 에그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5대 | 1999-2003 | 호세 루이스 카스테혼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6대 | 2003-2007 | 라파엘 그레아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7대 | 2007-2011 | 엘레나 토레스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8대 | 2011-2015 | 알베르토 카탈란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
제9대 | 2015-2019 | 아이노아 아스나레스 | 포데모스(P) | 여성 의장 |
제10대 | 2019- | 우나이 우알데 | 게로아 바이(GBai) |
GBai 중심의 여당
UPN 중심의 야당
5. 정치
프랑코 독재 정권 종식 후, 1982년 나바라 지방이 단일 지방으로 나바라 주로 승격되었다. 17개 자치주 중 16개 자치주는 1978년 스페인 헌법 제143조 또는 제151조를 근거로 설치되었으나, 나바라 주만은 부칙 1을 근거로 하며, 「나바라의 포로스 제도 회복 및 조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다른 16개 자치주처럼 자치헌장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부터 이어져 온 포로스(fueros)를 부활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는 각 지방에 징세권이 있으며, 그 일부가 국고에 귀속되는 강력한 재정적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73]
나바라 주 의회는 4년마다 주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의회의 다수당이 나바라 주 정부 주석을 결정한다. 1979년 나바라 주민 연합(UPN)의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가 초대 주석으로 선출되었으나, 바스크 민족주의 좌파 정당도 일정한 강세를 보였다. 이후 민주중도연합(UCD), 나바라 사회당(PSN) 등에서 주석을 배출했다. 1996년부터는 나바라 주민 연합의 미겔 산스가 15년간 주석직을 수행했고,[73] 2011년에는 욜란다 바르시나가 여성 최초로 주석에 취임했다.[73]
우익의 나바라 주민 연합과 좌익의 나바라 사회당 외에, 바스크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일정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의 합병을 주장하지만, 나바라 주민 연합은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 2015년 게로아 바이의 우슈에 바르코스가 주석에 취임하여,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바스크 민족주의 정권이 탄생했다.[74] 2019년에는 나바라 사회당의 마리아 치비테가 주석에 취임하여, 3대 연속 여성이 주석을 역임하게 되었다.
역대 나바라 주 주석과 나바라 주 의회 의장은 다음과 같다.
나바라 주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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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제1대 | 1979-1980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나바라 지방 정부 수반 |
제2대 | 1980-1984 | 후안 마누엘 알사 무뉴슬리 | 민주중도연합(UCD) | 재임 중 나바라 주 설립 |
제3대 | 1984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4대 | 1984-1991 | 가브리엘 우라이블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5대 | 1991-1995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6대 | 1995-1996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7대 | 1996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민주주의자 통합(CDN) | |
제8대 | 1996-2011 | 미겔 산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9대 | 2011-2015 | 욜란다 바르시나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최초의 여성 주석 |
제10대 | 2015-2019 | 우슈에 바르코스 | 게로아 바이(GBai) | 여성 주석 |
제11대 | 2019- | 마리아 치비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주석 |
나바라 주 의회 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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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1979-1983 | 빅토르 마누엘 알베로아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나바라 주 설립 이전 | |
제1대 | 1983-1987 | 발비노 바도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2대 | 1987-1991 | 이그나시오 하비에르 고마라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3대 | 1991-1995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4대 | 1995-1999 | 마리아 돌로레스 에그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5대 | 1999-2003 | 호세 루이스 카스테혼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6대 | 2003-2007 | 라파엘 그레아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7대 | 2007-2011 | 엘레나 토레스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8대 | 2011-2015 | 알베르토 카탈란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
제9대 | 2015-2019 | 아이노아 아스나레스 | 포데모스(P) | 여성 의장 |
제10대 | 2019- | 우나이 우알데 | 게로아 바이(GBai) |
5. 1. 현황
나바라의 정치는 나바라 사회의 일부인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을 대표하는 두 진영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특징지어진다. 한쪽에는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인 EH Bildu와 바스크 지지 정당인 Geroa Bai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스페인 지지 정당인 UPN, PP, PSN이 있다. 바스크 지지 정당들은 나바라 내부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자치권과 바스크 자치 지방 지역과의 더욱 긴밀한 관계를 요구한다.[15][16]1982년 나바라의 현재 지위(아메호라미엔토, '개선')가 확립된 이후, UPN과 PSN이 다스리는 연이은 지역 정부들은 빈번한 정치적 불안정과 부패 스캔들로 흔들렸다. UPN의 미겔 산스 집권기(2001년~2011년)가 가장 안정적이고 긴 기간이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지역 대표 욜란다 바르시나와 다른 지역 정부 관리들을 포함한 일련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는데, 여기에는 사익 추구, 횡령, 자금 유용 및 관리 부실로 인한 카하 나바라 파산이 포함되었다.[17][18]
2015년 5월 나바라 의회 선거에서 바스크 지지 정당들이 더 나은 결과를 얻어 연합을 구성했고, Geroa Bai의 우슈에 바르코스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나바라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 6월 선거에서 UPN, PP, 시우다다노스로 구성된 Navarra Suma 연합이 20명의 의원을 확보하며 나바라 의회 의석의 40%를 차지하면서 우파 세력이 승기를 잡았지만, Geroa Bai와 EH Bildu 모두 득표율을 높였다.[22][23] 선거 결과에 따라 PSN의 마리아 키비테가 진보 세력의 지지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24][25]
2017년 12월 나바라 의회는 주립 교육 네트워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교사들을 바스크어와 스페인어 자격을 갖춘 교사와 스페인어만 사용하는 교사의 두 가지 전문 분야로 나누는 법률을 통과시켰다.[26] 2018년 7월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2015년 나바라 의회가 통과시킨 극우와 공무원 희생자 법을 정지시켰다.[27] 2019년 10월 나바라 고등법원은 바스크어와 비바스크어 사용 지역에서 이중 언어 표지와 기관 발표의 공공 사용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리고, 엄격하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스크어를 직업 자리의 장점으로 간주하는 것을 금지했다.[29][30]
- EH Bildu (7석)
- Izquierda-Ezkerra (1석)
- 포데모스-아할 두구 (2석)
- Geroa Bai (9석)
- PSN (11석)
- Navarra Suma (20석)
프랑코 독재 정권 종식 후, 1982년 나바라 지방이 단일 지방으로 나바라 주로 승격되었다. 17개 자치주 중 16개 자치주는 1978년 스페인 헌법 제143조 또는 제151조를 근거로 자치주를 설치하였으나, 나바라 주만은 부칙 1을 근거로 하며, 「나바라의 포로스 제도 회복 및 조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다른 16개 자치주처럼 자치헌장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부터 이어져 온 포로스(fueros)를 부활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7개 자치주 중 15개 자치주에서는 중앙정부가 징수한 세금의 일부를 각 자치주에 배분하지만,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는 각 지방에 징세권이 있으며, 그 일부가 국고에 귀속되는 강력한 재정적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치주와 마찬가지로, 나바라 주 의회는 4년마다 주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의회의 다수당이 나바라 주 정부를 담당하는 주석을 결정한다. 역대 나바라 주 주석과 나바라 주 의회 의장은 다음과 같다.
나바라 주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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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제1대 | 1979-1980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나바라 지방 정부 수반 |
제2대 | 1980-1984 | 후안 마누엘 알사 무뉴슬리 | 민주중도연합(UCD) | 재임 중 나바라 주 설립 |
제3대 | 1984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4대 | 1984-1991 | 가브리엘 우라이블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5대 | 1991-1995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6대 | 1995-1996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7대 | 1996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민주주의자 통합(CDN) | |
제8대 | 1996-2011 | 미겔 산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9대 | 2011-2015 | 욜란다 바르시나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최초의 여성 주석 |
제10대 | 2015-2019 | 우슈에 바르코스 | 게로아 바이(GBai) | 여성 주석 |
제11대 | 2019- | 마리아 치비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주석 |
나바라 주 의회 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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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1979-1983 | 빅토르 마누엘 알베로아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나바라 주 설립 이전 | |
제1대 | 1983-1987 | 발비노 바도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2대 | 1987-1991 | 이그나시오 하비에르 고마라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3대 | 1991-1995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4대 | 1995-1999 | 마리아 돌로레스 에그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5대 | 1999-2003 | 호세 루이스 카스테혼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6대 | 2003-2007 | 라파엘 그레아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7대 | 2007-2011 | 엘레나 토레스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8대 | 2011-2015 | 알베르토 카탈란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
제9대 | 2015-2019 | 아이노아 아스나레스 | 포데모스(P) | 여성 의장 |
제10대 | 2019- | 우나이 우알데 | 게로아 바이(GBai) |
5. 2. 제도

프랑코 독재 종식 이후, 나바라는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하나가 되었다. 주 행사, 교육 및 사회 서비스와 함께 주택, 도시 개발 및 환경 보호 정책은 나바라의 정치 기관의 책임 하에 있다. 다른 자치주와 마찬가지로 나바라는 4년마다 선출되는 의회를 가지고 있으며, 의회의 다수당이 자치 정부를 이끌 대표를 결정한다. 스페인의 다른 대부분의 자치주와는 달리(바스크 자치주와 같이) 나바라는 세금 징수 및 관리에 대한 거의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스페인 정부가 설정한 전반적인 지침을 따라야 하지만 약간의 차이점을 가질 수 있다.
자치주의 초대 대표 3명은 망해버린 민주 중심 연합(UCD)당 소속이었다. 1984년 이후 정부는 나바라 사회당(Socialist Party of Navarre)(PSN-PSOE, 스페인 주요 중도좌파 정당인 스페인 사회노동자당의 연합 구성원 중 하나) 또는 나바라 인민 연합(Navarrese People's Union)(UPN)(스페인 주요 우파 정당인 국민당과 오랜 동맹 관계를 맺은 나바라 정당) 중 하나가 다스렸다. 그러나 2015년 우슈에 바르코스(Uxue Barkos)(헤로아 바이(Geroa Bai))가 EH 빌두(EH Bildu), 포데모스, 이즈키에르다-에스케라(Izquierda-Ezkerra)의 지지로 대표가 되었다. 그녀는 나바라의 첫 번째 바스크 민족주의자 대표이다.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은 또한 상당한 표를 차지하며 (2015년 선거에서 약 31%), 북부 지역 대부분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들은 그들의 의제에서 핵심으로 나바라를 바스크 자치주에 합병하는 것]]을 국민투표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스페인 헌법에 예측된 대로). UPN과 PSN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역의 모든 정당은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한다.
프랑코 독재 정권 종식 후, 1982년 나바라 지방이 단일 지방으로 나바라 주로 승격되었다. 17개 자치주 중 16개 자치주는 1978년 스페인 헌법 제143조 또는 제151조를 근거로 자치주를 설치하였으나, 나바라 주만은 부칙 1을 근거로 하며, 「나바라의 포로스 제도 회복 및 조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다른 16개 자치주처럼 자치헌장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부터 이어져 온 포로스(fueros)를 부활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7개 자치주 중 15개 자치주에서는 중앙정부가 징수한 세금의 일부를 각 자치주에 배분하지만,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País Vasco)는 각 지방에 징세권이 있으며, 그 일부가 국고에 귀속되는 강력한 재정적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치주와 마찬가지로, 나바라 주 의회는 4년마다 주의원 선거를 실시하며, 의회의 다수당이 나바라 주 정부를 담당하는 주석을 결정한다. 1979년에는, 국민연합(AP, 인민당의 전신)과 제휴하는 지방 정당인 나바라 주민 연합(UPN)의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가 초대 주석으로 선출되었으나, 70석 중 9석을 획득한 바스크 민족주의 좌파 정당도 일정한 강세를 보였다. 1980년에는 민주중도연합(UCD, 후에 해산)에서, 1984년에는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의 나바라 지부인 Partido Socialista de Navarra|나바라 사회당es(PSN)에서 주석이 선출되었다. 나바라 사회당은 7년간 주석직을 유지했고, 1991년부터 4년간은 나바라 주민 연합이, 1995년부터 2년간은 나바라 사회당이 주석직을 맡았으나, 1996년에는 나바라 주민 연합이 주석직을 탈환하여 미겔 산스가 15년간 주석직을 수행했다. 2011년에는 산스를 대신하여 나바라 주민 연합의 욜란다 바르시나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주석에 취임했다.
우익의 나바라 주민 연합과 좌익의 나바라 사회당 외에, 바스크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일정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들 정당은 나바라 주와 바스크 주의 합병을 지침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나바라 주민 연합은 이러한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바스크 민족주의 급진 좌파가 불법화되었기 때문에,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은 일시적으로 의석 수를 줄였으나, 초당파 나파로아 바이에 의해 2007년 선거에서 제2 세력이 되었고, 2011년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 세력이 역대 최고 득표율 29%와 15석을 얻었다. 2015년에는 바스크 민족주의당을 중심으로 한 게로아 바이의 우슈에 바르코스가 주석에 취임하여,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바스크 민족주의를 내세운 정권이 탄생했다. 나바라 주민 연합은 4석 감소한 15석에 그쳤고, 나바라 국민당도 의석 수가 반감되었다. 2019년에는 나바라 사회당의 마리아 치비테가 주석에 취임하여, 3대 연속 여성이 주석을 역임하게 되었다.
나바라 주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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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제1대 | 1979-1980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나바라 지방 정부 수반 |
제2대 | 1980-1984 | 후안 마누엘 알사 무뉴슬리 | 민주중도연합(UCD) | 재임 중 나바라 주 설립 |
제3대 | 1984 | 하이메 이그나시오 델 부르고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4대 | 1984-1991 | 가브리엘 우라이블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5대 | 1991-1995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6대 | 1995-1996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7대 | 1996 | 후안 크루스 알리 | 나바라 민주주의자 통합(CDN) | |
제8대 | 1996-2011 | 미겔 산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9대 | 2011-2015 | 욜란다 바르시나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최초의 여성 주석 |
제10대 | 2015-2019 | 우슈에 바르코스 | 게로아 바이(GBai) | 여성 주석 |
제11대 | 2019- | 마리아 치비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주석 |
나바라 주 의회 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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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간 | 이름 | 소속 정당 | 비고 |
1979-1983 | 빅토르 마누엘 알베로아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나바라 주 설립 이전 | |
제1대 | 1983-1987 | 발비노 바도스 | 나바라 주민 연합(UPN-AP) | |
제2대 | 1987-1991 | 이그나시오 하비에르 고마라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3대 | 1991-1995 | 하비에르 오타뇨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4대 | 1995-1999 | 마리아 돌로레스 에그렌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5대 | 1999-2003 | 호세 루이스 카스테혼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
제6대 | 2003-2007 | 라파엘 그레아 | 나바라 주민 연합(UPN-PP) | |
제7대 | 2007-2011 | 엘레나 토레스 | 나바라 사회당(PSN-PSOE) | 여성 의장 |
제8대 | 2011-2015 | 알베르토 카탈란 | 나바라 주민 연합(UPN) | |
제9대 | 2015-2019 | 아이노아 아스나레스 | 포데모스(P) | 여성 의장 |
제10대 | 2019- | 우나이 우알데 | 게로아 바이(GBai) |
6. 경제
나바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이며, 에너지 부문, 의료 서비스, 제조업을 중심으로 다각화된 경제를 가지고 있다. 2018년 기준 자치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203억유로로 스페인 경제 생산량의 1.7%를 차지했다.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GDP는 같은 해 33700EUR였으며, EU27 평균의 112%에 달했다. 종업원 1인당 GDP는 EU 평균의 109%였다.[33]
2017년 실업률은 10.2%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34]
연도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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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 | 5.4% | 4.7% | 6.8% | 10.8% | 11.9% | 13.0% | 16.2% | 17.9% | 15.7% | 13.8% | 12.5% | 10.2% |
1960년대까지 나바라 지방의 경제는 1차 산업이 중심이었으나, 1960년대에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섬유업과 피혁업 등이 중심이었으나, 1973년에는 금속공업이 2차 산업 분야의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다. 금속공업에서는 폭스바겐 공장과 부품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 산업이 파생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자동차 산업이 우세해졌다.
2000년대에는 2차 산업 중에서 자동차 산업과 기계 광업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주요 도시의 공업 단지에 다른 산업의 공장들이 존재한다. 2차 산업은 지방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또한 2000년대에는 풍력 발전, 광전지, 태양광 발전 등의 에너지 산업이 현저하게 발전하여 재생 가능 에너지는 주내 전력 소비량의 60%를 충당하고 있다.
나바라 저축은행(Caja Navarra)과 팜플로나 저축은행이 합병하여 설립된 나바라 은행은 스페인 유수의 금융기관이었으나, 2012년에는 나바라 지방 정부 고위직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지출이 드러나면서, 저축은행으로서의 영업은 2013년에 중단되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나바라 지방은 1인당 지역총생산(GRP)에서 항상 스페인 평균을 상회했다. 1994년 시점에서 나바라 주는 풍부한 농업과 신흥 공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EU 평균 국내총생산을 100으로 했을 때 96이었다.
2010년 나바라 주의 지역총생산은 246억달러였으며,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14위에 불과하지만, 1인당 지역총생산은 38736USD/인으로 바스크 지방에 이어 스페인에서 2위였다. 2012년 1인당 지역총생산은 29071EUR/인으로 바스크 지방과 마드리드 지방에 이어 스페인에서 3위였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지역총생산 성장률은 스페인의 17개 주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나바라 주의 성장률은 -0.33%로 카스티야 이 레온 주에 이어 2위였다. 2015년 시점의 나바라 주 1인당 지역총생산은 EU 평균보다 약 5% 높은 수준이었다.
7. 에너지 정책
나바라 지방은 유럽을 통틀어 에너지 기술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100% 에너지 기술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4년까지 나바라주 에너지 사용량의 61%가 대체 에너지로 이뤄졌으며, 100여 개의 소규모 수력 터빈, 바이오매스 발전소, 바이오가스 처리시설을 통해 발전을 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서 가장 큰 바이오매스 발전소와 광발전소도 운영하고 있다.
나바라주는 201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발전을 달성할 계획이었다. 2004년 기준 나바라주 전력의 61%는 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되었는데, 세부적으로는 28개의 풍력발전단지 (43.6%), 100개 이상의 소규모 수력 터빈 (12%), 2개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및 2개의 바이오가스 발전소 (5.3%)로 구성되었다. 나바라주는 투델라 몬테스 데 시에르소에 당시 스페인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1.2 MWp 용량)를 보유했으며, 수백 개의 소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2004년 이후 라리온에 0.25 MWp 용량의 태양광 발전소[35]가 추가 건설되었고, 카스테혼에도 한때 스페인 최대 규모였던 2.44 MWp 용량의 태양광 발전소[36]가 건설되었다.
8. 인구
2006년 기준 601,874명의 인구가 나바라주에 거주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팜플로나에 살며, 절반은 팜플로나 인근의 도시 지역에 살고 있다. 투델라(32,802명), 바라냐인(22,401명), 부를라다(18,388명), 에스테야 리사라(13,892명) 등의 소도시가 있다.[63]
2018년 기준 나바라 주는 스페인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자치주로, 647,55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당시 인구밀도는 62.32명/km2이었다. 2010년 인구 피라미드 자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20세 미만: 전체 인구의 19.84%
- 20세에서 40세 사이: 29.39%
- 40세에서 60세 사이: 27.98%
- 60세 이상: 22.78%
순위 | 도시 | 인구 |
---|---|---|
1 | 팜플로나 | 253,093 |
2 | 투델라 | 37,008 |
3 | 에궤스 | 21,556 |
4 | 바라냐인 | 19,853 |
5 | 부를라다 | 19,723 |
6 | 시수르 마요르 | 15,198 |
7 | 에스테야 | 13,911 |
8 | 아랑구렌 | 11,726 |
9 | 안소아인 | 10,732 |
10 | 베리오사르 | 10,723 |
11 | 타팔라 | 10,582 |
12 | 비야바 | 10,131 |
13 | 노아인 | 8,354 |
14 | 코렐라 | 8,220 |
15 | 신트루에니고 | 8,051 |
1900년 당시 나바라 지방의 인구는 스페인 전체 인구의 1.7%였으나, 20세기 동안 점차 비율이 감소하여 1991년에는 1.3%가 되었다.[64] 1900년 인구는 307,669명이었으나, 2014년에는 약 2배인 640,356명이 되었다.[65] 인구 밀도는 1900년 29명/km2에서 2014년 61.4명/km2로 증가했지만, 스페인 평균 인구 밀도인 92명/km2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65]
2000년대에는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북아프리카 등에서 이민이 증가했으며 외국 출신 인구는 약 70,000명[65], 비율로는 약 11%로 추정된다.
연도 | 1900 | 1910 | 1920 | 1930 | 1940 | 1950 | 1960 | 1970 | 1981 | 1991 | 2001 | 2011 |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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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10,535 | 323,503 | 339,220 | 352,108 | 365,014 | 383,354 | 406,838 | 466,593 | 509,002 | 519,277 | 555,829 | 640,129 | 662,032 |
9. 문화
나바라는 바스크 전통,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문화, 에브로 강 유역에서 유래한 지중해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나바라의 모든 자치체에서는 수호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55] 사육제(카니발), 크리스마스의 Olentzero영어(술을 좋아하는 숯 굽는 일꾼), 산판찰 등도 계승되고 있으며, 축제 중의 엔시에로(투우)나 거대한 인형은 많은 마을의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요소이다.[55] 산악 지대에서는 Txistu영어(세 개의 구멍이 있는 세로피리)와 작은 북, 중앙부나 강가에서는 백파이프 등의 악기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55]
개별 축제로는 7월에 열리는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투우 축제), 란츠의 사육제, 레사카의 오렌체로 등이 유명하며, 산페르민 축제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55] 3월에는 주 내외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태어나고 자란 하비에르 성에 순례객들이 모이고, 성주간(이스터)에는 투델라나 팜플로나 등에서 축제가 열린다.[55]
나바라주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면해 있지 않지만, 피레네 산맥 산기슭의 하천에서 잡은 송어나 연어와 같은 민물고기가 요리에 사용되기도 하며[88][89], 나바라의 전통 요리로 "나바라식 송어구이"가 있다.[88][89] 육류 요리로는 칼데레테(양고기 또는 토끼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요리), 고린(구운 돼지고기) 등이 있으며, 산악 지대에서는 멧닭, 멧비둘기, 토끼 등의 사냥감이 식재료로 사용된다.[89]
나바라(D.O.), 리오하(D.O.C.)와 같은 원산지 명칭 와인, VP 프라도 데 이라체, VP 아린사노, VP 파고 데 오타스와 같은 포도밭 한정 원산지 명칭 와인, 아스파라거스, 피키요(빨간 피망), 론칼(치즈), 이디아사발(치즈), 파차란(과실주)에는 원산지 명칭 제도(DO)가 도입되어 있다. 하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코고리요(소형 상추), 아티초크, 완두콩, 풋콩 등도 나바라의 대표적인 채소이며, 또한 투델라의 복숭아, 에차우리의 체리 등의 과일도 있다. 가시가 많은 자두 열매를 아니스주에 절인 파차란은 가정에서도 만들어지며, 모스카텔(달콤한 와인)은 디저트로도 선택된다.
9. 1. 개요
나바라는 바스크 전통, 피레네 산맥을 넘나드는 사람들과 사상의 유입, 그리고 에브로 강에서 온 지중해의 영향이 혼합된 지역이다. 에브로 강 유역은 아라곤과 라 리오하와 마찬가지로 밀, 채소, 포도주, 심지어 올리브 나무까지 재배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바스콘족이 거주했고, 후에는 남쪽 변방은 이슬람 왕조인 바누 카시가 지배했으며, 그 권력은 11세기에 투델라의 타이파 왕국에 의해 계승되었다.레콩키스타 기간 동안 나바라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거의 영토를 확장하지 못했는데,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무렵에 이미 남쪽 경계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11세기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중요성을 더해갔다. 이 길은 북쪽에서 순례자, 상인, 그리고 기독교 군인들을 불러들였다. 피레네 산맥 너머에서 온 가스콘과 오크시타니아인(프랑크인이라고 불림)들은 나바라 도시에 정착을 장려하기 위해 자치권과 기타 특권을 받았으며, 그들은 자신의 기술, 문화, 그리고 로망스어를 가져왔다.
나바라의 북쪽과 남쪽 모두에서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박해를 받았으며, 대부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추방되었다. 이 왕국은 14세기와 15세기에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페르난도 2세(페르난도 5세)가 그의 아내 이사벨라 여왕 사후 나바라를 강제로 정복한 후에는, 1492년 conversoses와 mudejarses에게 적용된 카스티야의 추방 및 강제 통합 명령을 이전 왕국에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그러므로 특히 투델라는 종교재판관들이 허용된 후에는 더 이상 피난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 2. 언어
스페인어는 나바라주를 포함한 스페인 전역의 공용어이지만, 나바라주에서 바스크어가 사용되는 지역에서는 바스크어도 공용어 지위를 갖는다.[84] 1986년에는 나바라주를 언어에 따라 3개 지역(바스크어 사용 지역, 혼합 지역, 비바스크어 사용 지역)으로 나누는 법률이 제정되었다.2006년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11.1%가 바스크어 사용자, 7.6%가 수동적 바스크어 사용자, 81.3%가 스페인어 단일 사용자였다. 1991년(9.5%)에 비해 바스크어 사용자 비율이 증가했으며, 연령별로는 35세 이상에서 낮고 16-24세에서는 20% 이상이다.[85] 2011년 인구 조사에서는 바스크어 사용자가 11.7%(63,000명)로 소폭 증가했다.[85] 바스크 지방에서는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명칭을 스페인어에서 바스크어로 변경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나바라주에서는 272개 지방자치단체 중 110개가 명칭을 변경했다.
고밀도 저밀도
현재 스페인어는 바스크어가 주요 언어인 북동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어는 인구의 81.9%, 바스크어는 5.7%, 두 언어 모두 3.8%, 기타 언어는 6.1%의 모국어이다.[37] 최근 바스크어 사용 인구가 역사적으로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에서 증가하고 있다.[38] 2011년 기준 나바라 인구의 13.6%가 바스크어 사용자, 14.5%가 바스크어 반(半) 사용자로 나타났다.[39]
역사적으로 바스크어는 중세 시대 문서(예: 산초 4세 문서)에 나타나는 나바라의 언어(lingua navarrorum)였다.[40] 나바라 왕국은 주로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팜플로나와 그 주변에 뿌리를 두었다.[41] 나바라 작가 가르시아 데 곤고라(1626년)는 "왕국 전역에서 바스크어와 로망스어 두 가지 언어가 사용되었지만, 가장 적절하게는 칸타브리아[어] 바스크어, 즉 창조주 투발(Tubal) 족장이 가져온 원초적이고 가장 오래된 언어로, 다른 언어와 섞이지 않고 보존되어 왔다"고 말했다.
호세 모레트는 나바라와 인접 주들을 "바스크어 지역"이라 부르며 투발이 나바라 왕국을 세웠다고 주장했다.[42] 그러나 바스크어는 점진적으로 쇠퇴했고, 16세기 초 왕국 정복 이후 카스티야 당국의 동질화 압력과 엘리트들의 방치 등으로 가속화되었다.[43] 1778년에는 주민 22만 7천 명 중 12만 1천 명(53%)이 바스크어 사용자였으나, 19세기에는 급격히 감소하여 1936년에는 17%만이 바스크어를 사용했다.[54]
나바라-아라곤어(중세 에브로 강 유역 중앙부에서 사용), 오크어(11세기 후반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정착한 툴루즈 등 출신 순례자/개척자 유입으로 14세기 초까지 왕국 공식 언어), 에르로민첼라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 다른 언어들도 사용되었지만 사라졌다. 나바라-아라곤어는 1329년 공식 지위에 이르렀을 때 궁정과 왕실 행정의 서면 언어가 되었으나,[44] 15세기부터 카스티야어(스페인어)에 가까워져 합쳐졌다.[45]

1978년 스페인 헌법과 아메호라미엔토 델 후에로에 따르면, 스페인어는 나바라의 공식 언어이며, 바스크어는 바스크어 사용 지역에서도 공식 언어이다. 아메호라미엔토는 바스크어를 특정 민족의 언어 또는 나바라 유산으로 언급하지 않는다.[46]
1986년 바스크어 법률은 나바라 북동부 지역에 바스크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인 “바스크어 사용 지역”을 만들었다. 이 법은 포랄 법 18/1986에 따라 스페인어와 바스크어를 나바라의 ''lenguas propias''로 인정한다.[47] [48] 이 법은 나바라를 3개 지역(바스크어 사용, 혼용, 비바스크어 사용)으로 나눈다. 비바스크어 사용 지역에서는 공공 기관이 스페인어만 사용해야 하지만, 혼용 지역에서는 바스크어 사용이 특정 직책에 국한된다.
나바라 주 자치단체 및 마을의 공식 명칭은 바스크 포랄 법에 따라 규정되며,[48][52] 단일 명칭, 복합 명칭, 이중 명칭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 단일 명칭: 법률 문서에서 바스크어 사용은 스페인어 사용과 독립적으로 동일. (예: 란츠(Lantz), 베인차-라바이엔(Beintza-Labaien))
- 복합 명칭: 스페인어 및 바스크어 지명으로 구성, "-" 또는 "/"로 연결. 스페인어와 바스크어에서 모두 동일하게 사용. (예: 도네스테베/산테스테반(Doneztebe/Santesteban), 오레아가/롱세발레스(Orreaga/Roncesvalles), 에스텔라-리사라(Estella-Lizarra))
- 이중 명칭: 바스크어 또는 스페인어 지명은 사용 언어 및 텍스트에 따라 다름. (예: 팜플로나(Pamplona) <> 이루냐(Iruña), 비야바(Villava) <> 아타라비아(Atarrabia), 아이바르(Aibar) <> 오이바르(Oibar))
나바라의 바스크어는 다양한 방언을 가진다. 콜도 추아소의 분류에 따르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언은 상나바라 방언이다. 바사부루아 마요르, 이모스와 기푸스코아 접경 지역에서는 중앙 바스크 방언, 나바라 피레네 산맥 중앙부에서는 나바라-라푸르디 방언의 일종이 사용된다.
나바라 피레네 산맥 동쪽에서는 론칼 방언과 살라사르 방언이 론칼과 살라사르 계곡에서 사용되었지만, 20세기 말에 사라졌다. 론칼 방언의 마지막 사용자는 1991년에, 살라사르 방언의 마지막 유창한 화자는 21세기 초에 사망했다. 방언 외에도 바스크어의 하위 방언이 존재하며, 지역 언어 공동체 간 어휘에도 차이가 있다.
나바라 지방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에는 '-ico' 축소형의 압도적인 사용, 가정법 과거 대신 조건법 시제 사용(예: 'pudiera' 대신 'podría') 등 고유하거나 인접 지역(아라곤, 라 리오하)과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53] 나바라 출신 스페인어 화자들의 어휘에도 차이가 있으며,[54] 바스크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존재한다.
9. 3. 축제
나바라 주의 모든 자치체에서는 수호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사육제(카니발), 크리스마스의 Olentzero영어(술을 좋아하는 숯 굽는 일꾼), 산판찰 등도 계승되고 있으며, 축제 중의 엔시에로(투우)나 거대한 인형은 많은 마을의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산악 지대에서는 Txistu영어(세 개의 구멍이 있는 세로피리)와 작은 북, 중앙부나 강가에서는 백파이프 등의 악기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개별 축제로는 7월에 열리는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투우 축제), 란츠의 사육제, 레사카의 오렌체로 등이 유명하며, 산페르민 축제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3월에는 주 내외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태어나고 자란 하비에르 성에 순례객들이 모이고, 성주간(이스터)에는 투델라나 팜플로나 등에서 축제가 열린다.
9. 4. 요리
나바라는 전통 지중해 문화권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다. 에브로 계곡을 거쳐 밀과 포도주, 채소, 올리브 나무가 들어왔으며, 로마 제국의 일부로서 중세 시대에는 투델라 왕국의 중심지가 되어 그 유적이 산재하고 있다. 팜플로나에는 피레네 산맥의 환경 영향을 받은 특이한 고적도 나타난다.나바라주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면해 있지 않지만, 피레네 산맥 산기슭의 하천에서 잡은 송어나 연어와 같은 민물고기가 요리에 사용되기도 하며[88][89], 나바라의 전통 요리로 "나바라식 송어구이"가 있다[88][89]. 육류 요리로는 칼데레테(양고기 또는 토끼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요리), 고린(구운 돼지고기) 등이 있으며, 산악 지대에서는 멧닭, 멧비둘기, 토끼 등의 사냥감이 식재료로 사용된다[89].
나바라(D.O.), 리오하(D.O.C.)와 같은 원산지 명칭 와인, VP 프라도 데 이라체, VP 아린사노, VP 파고 데 오타스와 같은 포도밭 한정 원산지 명칭 와인, 아스파라거스, 피키요(빨간 피망), 론칼(치즈), 이디아사발(치즈), 파차란(과실주)에는 원산지 명칭 제도(DO)가 도입되어 있다. 하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코고리요(소형 상추), 아티초크, 완두콩, 풋콩 등도 나바라의 대표적인 채소이며, 또한 투델라의 복숭아, 에차우리의 체리 등의 과일도 있다. 가시가 많은 자두 열매를 아니스주에 절인 파차란은 가정에서도 만들어지며, 모스카텔(달콤한 와인)은 디저트로도 선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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