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플랜드 (운영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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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플랜드는 1994년 애플이 개발을 시작한 차세대 운영 체제 프로젝트로, 기존 맥 OS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자 했다. 1988년 시작된 Pink 프로젝트를 계승하여, 멀티태스킹, 메모리 보호 기능 등을 갖춘 새로운 OS를 목표로 했으나, 개발 과정에서 기술적 어려움, 경영진의 혼란, 개발 팀 간의 비협조, 과도한 요구, 외부 경쟁, 병행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1995년 발표 이후, 1996년 출시를 약속했지만, 개발 지연으로 인해 1996년 8월 공식적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코플랜드 개발 취소 이후, 애플은 NeXT를 인수하고 NeXTSTEP을 기반으로 한 Rhapsody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Rhapsody는 이후 맥 OS X로 발전했다. 코플랜드에서 개발되던 일부 기술은 Mac OS 8, 9 등에 통합되었고, 현재 macOS에도 그 유산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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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개발사 | 애플 컴퓨터 |
계열 | 맥킨토시 |
개발 상태 | 단종 |
소스 모델 | 클로즈드 소스 |
단종 | 1996년 8월 |
마케팅 대상 | 맥킨토시 사용자 |
개발 언어 | 영어 |
지원 플랫폼 | 파워 맥킨토시 |
커널 종류 | 마이크로커널 |
이전 운영 체제 | 시스템 7 |
이후 운영 체제 | Mac OS 8 |
관련 항목 | 탤리전트 A/UX |
2. 배경
1988년 3월, 애플의 기술 매니저들은 향후 맥 OS(Mac OS)의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컬러화와 같이 단기적으로 달성 가능한 아이디어를 파란 인덱스 카드에, 멀티태스킹과 같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분홍색 인덱스 카드에, 실현이 어려울 것 같은 것들을 빨간색 인덱스 카드에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OS를 개수하는 Blue팀과 신규 OS를 개발하는 Pink팀으로 나뉘어 각각 개발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1990년부터 1991년에 걸쳐 Blue팀이 기존 OS의 업데이트를 출시하고, 93년경에 Pink팀이 신규 OS를 출시할 예정이었다.
Blue팀은 1991년 5월 13일에 System 7을 발표했지만, 한편 Pink팀은 사양이 거대해져 수습이 불가능해지는, 이른바 세컨드 시스템 증후군에 의해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같은 해 10월 2일에 IBM과 애플의 제휴가 발표되었고, 그 계약 중 하나로 합작 회사 "Taligent"가 설립되어 Pink를 기반으로 객체 지향형 차세대 OS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제휴는 하드웨어적으로는 성공하여 RISC형 CPU인 PowerPC가 개발되어 새로운 매킨토시에 탑재되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실패하여 OS 개발이 정체되었다. 사실상 IBM이 주도하여 개발하게 되었고, 애플의 손을 떠난 Taligent OS는 프레임워크 CommonPoint로 변모해갔다. 1995년 12월에는 제휴가 해소되었다.
그 사이 System 7은 이미 기본 설계가 낡아 여러 부분에서 한계가 보였다. (Classic Mac OS의 초판 릴리스는 1984년).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메모리 보호의 결여", "선점형 멀티태스킹 기구의 결여", "서드 파티의 기간 부분에 대한 기능 확장으로 인한 시스템의 불안정화" 등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시스템은 매우 불안정하게 되어 크래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게다가 Power Macintosh 탑재 모델 등장 이후에도 OS 코어 부분에 남아있는 68K 시대의 코드에 의한 제약이 있어, PowerPC의 스펙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원인이 된 크래시도 다발했다.
구식 맥 OS(Mac OS) 기술이 진부해지고, 게다가 차세대 OS의 개발이 정체되는 동안,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NeXT에서 개발된 NeXTSTEP,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NT,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Solaris 등, 메모리 보호 기구와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갖춘 견고한 차세대 OS가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이상의 배경에서, 차세대 OS 개발의 필요성에 직면하여 당시 개발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네이글 수석 부사장을 중심으로 1994년에 정식으로 Copland 계획이 시작되었다.
2. 1. 핑크 프로젝트
1987년 3월, 애플의 기술 관리자들은 미래의 맥 OS 개발에 관해서 미팅을 가졌다. 아이디어는 색인 카드에 기록되었는데,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색깔을 입히는 것과 같은 간단한 변화는 파란색 카드에, 멀티태스킹, 객체 지향형 파일 시스템 같은 큰 변화는 분홍색 카드에 작성되었다. 두 카드에 작성된 아이디어는 동시에 진행되기로 했고, 파란색 아이디어는 1990년이나 1991년 경에 업데이트된 맥 OS에, 분홍색 아이디어는 1993년 경에 완전히 새로운 OS에 포함시키기로 했다.1988년 3월, 애플의 기술 관리자들은 맥 OS 개발의 미래 방향을 계획하기 위해 외부 회의를 열었다. 단기적 기능(예: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색상 추가)은 파란색, 장기적 목표(예: 선점형 멀티태스킹)는 분홍색, 장기적 아이디어(예: 객체 지향 파일 시스템)는 빨간색 카드에 적었다. 파란색과 분홍색 아이디어 개발은 병행되었으며, 처음에는 이 두 프로젝트를 단순히 "파랑"과 "분홍"이라고 불렀다. 애플은 파란색 팀이 1990~1991년에 기존 매킨토시 운영 체제의 업데이트 버전을, 분홍색 팀은 1993년경에 완전히 새로운 OS를 출시할 계획이었다.
"블루 미니"는 1991년 5월 13일에 시스템 7을 출시했지만, 분홍색 팀의 노력은 두 번째 시스템 효과로 출시일이 계속 연기되었다. 분홍색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엔지니어들이 파란색 프로젝트로 이동했고, 분홍색 팀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출시된 넥스트스텝의 영향으로, 원래 빨간색의 일부였던 기능들이 분홍색으로 통합되었고, 빨간색 프로젝트(일명 "랩터")는 결국 취소되었다. 중견 관리자들은 거의 감독 없이 프로젝트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여 기능 추가와 관련된 문제로 이어졌고, 분홍색 개발 속도가 느려져 프로젝트가 곧 중단될 것처럼 보였다.
2. 2. 탤리전트
1991년 4월 12일,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IBM PS/2에서 핑크 프로젝트를 시연했다.[6] 당시 시스템은 완전한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PC에서 구동되는 시스템 7처럼 보였다. IBM은 이 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였고, 두 회사는 협력 관계를 맺고 이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은 탤리전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스컬리는 "우리는 틈새 시장의 선두 주자가 아니라 컴퓨터 산업의 주요 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주요 주체와 협력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6]하지만, 새로운 합작 회사 내의 내부 갈등은 심각했으며, 애플 내의 핑크 문제도 이와 비교하면 사소한 문제로 보였다.[7] 애플 직원들은 결과가 IBM 전용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그래픽으로 표시한 티셔츠를 만들었다.[7] 실제로 1995년 12월 19일, 애플은 공식적으로 프로젝트에서 철수했다.[7] IBM은 탤리전트와 함께 단독으로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애플리케이션 개발 부분을 "커먼포인트"(CommonPoint)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시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프로젝트는 몇 달 안에 IBM의 카탈로그에서 사라졌다.
2. 3. 새로운 시도
1994년 당시 맥 OS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탤리전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애플은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어려웠다.[8] 몇몇 다른 프로젝트가 시도되었지만 모두 취소되었다. 많은 사용자들이 윈도우 95에 관심을 가지면서, 애플이 윈도우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8]이러한 압박과 탤리전트에서의 애플의 위상 약화, 그리고 기존 운영 체제의 문제점 증가로 인해 애플은 새로운 운영 체제를 개발해야 했다.[8] 사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새 프로젝트의 출시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기존 운영 체제의 많은 부분을 재작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애플은 새 커널 기반의 멀티태스킹과 보호된 메모리를 지원하는 운영 체제를 개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기존 라이브러리는 새로운 시스템에 맞게 재작성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새 커널이 안정화되고 업그레이드 버전이 출시되면, 이전 라이브러리를 새 커널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9][10][11][12]
시스템 7.5의 코드명이 모짜르트였기 때문에, 다음 운영 체제는 작곡가 애런 코플랜드의 이름을 따 코플랜드로 명명되었다. 그 다음 시스템은 거슈윈으로 코드네임을 정하고, 이를 통해 새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완료할 계획이었다.[13]
3. 디자인
코플랜드는 맥 OS를 누커널(Nukernel)이라는 작은 마이크로커널 위에서 구동하도록 설계되었다. 누커널은 메모리 관리, 프로그램 시작 등의 기본적인 작업만 수행하고, 다른 모든 작업은 '서버'라고 알려진 일련의 반전용 프로그램에 맡겼다. 예를 들어 네트워킹 및 파일 서비스는 커널 자체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간 통신을 통해 요청을 보내는 서버에서 제공되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코플랜드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누커널, 다양한 서버, 그리고 클래식 매킨토시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의 구현을 제공하는 일련의 응용 프로그램 지원 라이브러리로 구성되었다.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협력형 매킨토시 툴박스 환경"(보통 블루 박스로 불림)이라는 단일 프로그램이 담당했다. 블루 박스는 단일 프로세스 안에 시스템 7 운영 체제를 내장하고 있으며, 시스템 7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재진입 가능 툴박스 호출을 사용하는 협동 작업으로 실행되었다. 만약 블루 박스 안에 있는 한 애플리케이션이 충돌되면, 블루 박스 자체가 충돌되며 모든 프로그램이 작동을 멈추는 단점이 있었지만, 시스템 전체의 다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협동 프로그램 주소 공간 환경은 자동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코플랜드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시스템 서버와 직접 통신할 수 있어 성능과 확장성 면에서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커널과 통신하여 보호된 메모리에서 대부분의 최신 운영 체제와 같이 별도의 프로세스로 실행되는 별도의 응용 프로그램 또는 스레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5] 다만, 이러한 별도의 응용 프로그램은 QuickDraw와 같은 재진입 불가능한 호출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질 수 없었다. 애플은 더 큰 프로그램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일반 매킨토시 응용 프로그램에 배치한 다음 외부적으로 작업자 스레드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코플랜드는 완벽하게 PowerPC (PPC) 네이티브였다. 시스템 7은 PowerPC로 성공적으로 이식되었고,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PPC 코드로 실행되었지만, 여전히 모토로라 68000(68k) 프로세서용 코드를 시스템에 남겨두어야 했다. 특히, Mac OS에 대한 모든 호출은 68k와 PPC의 인터럽트 시스템 간에 매핑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매핑을 제거하면 전반적인 시스템 성능이 크게 향상될 것이었다. 1996년 WWDC에서 엔지니어들은 시스템 호출이 최대 50% 더 빠르게 실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플랜드는 또한 당시 최근에 정의된 공통 하드웨어 참조 플랫폼 (CHRP)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Mac 하드웨어를 여러 회사에서 제작할 수 있고 다른 운영 체제(Solaris 및 AIX 등)를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코플랜드 개발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모든 기능을 일반적인 Mac에 맞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코플랜드의 목표는 시스템 7.5보다 50% 정도만 커지는 것이었는데, 시스템 7.5는 이미 약 2.5메가바이트 (MB)의 RAM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코플랜드는 네이티브 기반이 완전한 시스템 7.5 사본이 있는 Blue Box를 호스팅한다는 점에서 두 시스템의 하이브리드였으며, Mach에서 영감을 받은 메모리 관리 시스템과 공유 라이브러리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3. 1. Mac OS 레거시
1984년에 출시된 매킨토시와 운영 체제는 처음부터 단일 사용자, 단일 작업 시스템으로 설계되어 하드웨어 개발을 크게 단순화할 수 있었다.[2] 이러한 제한 사항은 운영 체제와 응용 프로그램 코드를 모두 다시 작성하지 않고는 한 번에 둘 이상의 프로그램의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기존 하드웨어에서 시스템 속도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려질 것이다.[3]애플은 1987년에 멀티파인더라고 알려진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이 시스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행 중인 응용 프로그램이 컴퓨터를 제어하도록 유지하지만, 일반적으로 창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응용 프로그램을 다른 응용 프로그램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게 하였다. 전경에 있지 않은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실행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체 프로세스는 운영 체제가 아닌 응용 프로그램에 의해 제어된다. 운영 체제와 응용 프로그램이 모두 하나의 메모리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라도 버그가 있으면 전체 운영 체제가 손상되어 시스템이 충돌할 수 있다. 멀티파인더에서는 어디서든 충돌이 발생하면 실행 중인 모든 프로그램이 충돌한다.[3]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패치 메커니즘인데, 이는 운영 체제에 기능을 추가하는 데 사용되며 CDEV와 INIT 또는 제어판과 확장이 그것이다. 타사 개발자도 이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화면 보호기와 계층적 애플 메뉴를 포함한 기능을 추가한다. 이러한 타사 제어판 중 일부는 인기 있는 After Dark 화면 보호기 패키지와 같이 거의 보편적이 되었다.[4] 이러한 패치 사용에 대한 표준이 없었기 때문에, 애플 자체의 OS 추가 기능을 포함하여 이러한 추가 기능 중 일부가 동일한 패치를 사용하고 서로 간섭하여 더 많은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3. 2. 코플랜드 디자인
코플랜드는 누커널이라는 작은 마이크로커널 위에서 맥 OS를 구동하도록 설계되었다. 누커널은 메모리 관리, 프로그램 시작 등의 기본적인 작업만 수행하고, 다른 모든 작업은 '서버'라고 알려진 일련의 반전용 프로그램에 맡겼다. 예를 들어 네트워킹 및 파일 서비스는 커널 자체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간 통신을 통해 요청을 보내는 서버에서 제공되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코플랜드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누커널, 다양한 서버, 그리고 클래식 매킨토시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의 구현을 제공하는 일련의 응용 프로그램 지원 라이브러리로 구성되었다.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협력형 매킨토시 툴박스 환경"(보통 블루 박스로 불림)이라는 단일 프로그램이 담당했다. 블루 박스는 단일 프로세스 안에 시스템 7 운영 체제를 내장하고 있으며, 시스템 7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재진입 가능 툴박스 호출을 사용하는 협동 작업으로 실행되었다. 만약 블루 박스 안에 있는 한 애플리케이션이 충돌되면, 블루 박스 자체가 충돌되며 모든 프로그램이 작동을 멈추는 단점이 있었지만, 시스템 전체의 다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협동 프로그램 주소 공간 환경은 자동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코플랜드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시스템 서버와 직접 통신할 수 있어 성능과 확장성 면에서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커널과 통신하여 보호된 메모리에서 대부분의 최신 운영 체제와 같이 별도의 프로세스로 실행되는 별도의 응용 프로그램 또는 스레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5] 다만, 이러한 별도의 응용 프로그램은 QuickDraw와 같은 재진입 불가능한 호출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질 수 없었다. 애플은 더 큰 프로그램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일반 매킨토시 응용 프로그램에 배치한 다음 외부적으로 작업자 스레드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코플랜드는 완벽하게 PowerPC (PPC) 네이티브였다. 시스템 7은 PowerPC로 성공적으로 이식되었고,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PPC 코드로 실행되었지만, 여전히 모토로라 68000(68k) 프로세서용 코드를 시스템에 남겨두어야 했다. 특히, Mac OS에 대한 모든 호출은 68k와 PPC의 인터럽트 시스템 간에 매핑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매핑을 제거하면 전반적인 시스템 성능이 크게 향상될 것이었다. 1996년 WWDC에서 엔지니어들은 시스템 호출이 최대 50% 더 빠르게 실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플랜드는 또한 당시 최근에 정의된 공통 하드웨어 참조 플랫폼 (CHRP)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Mac 하드웨어를 여러 회사에서 제작할 수 있고 다른 운영 체제(Solaris 및 AIX 등)를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코플랜드 개발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모든 기능을 일반적인 Mac에 맞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코플랜드의 목표는 시스템 7.5보다 50% 정도만 커지는 것이었는데, 시스템 7.5는 이미 약 2.5메가바이트 (MB)의 RAM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코플랜드는 네이티브 기반이 완전한 시스템 7.5 사본이 있는 Blue Box를 호스팅한다는 점에서 두 시스템의 하이브리드였으며, Mach에서 영감을 받은 메모리 관리 시스템과 공유 라이브러리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4. 개발
코플랜드 프로젝트는 1995년 3월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38] 같은 해 5월에 있었던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코플랜드의 몇가지 기능들이 공개되었다. 애플은 1995년 말 즈음에 코플랜드의 베타를 출시하고, 1996년 초에 코플랜드를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38][17] 그러나 1995년이 끝날때까지도 개발자 릴리즈 조차 출시되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점점 새로운 운영 체제에서 멀어져 갔으며, 점점 코플랜드는 새로운 파일 관리 시스템과는 상관없는 QuickDraw GX, OpenDoc, 시스템 객체 모델 같은 새로운 기술의 집합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점점 코플랜드에 추가해야할 가능들은 많아져 갔다. 개발자들은 비관적이었으며, 1996년 릴리즈에 대해 "코플랜드가 1996년에 출시되는 일 따윈 없을 거다. 1997년에라도 출시가 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17]
4. 1. 개발 초기
1995년 3월, 애플은 공식적으로 코플랜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38] 같은 해 5월에 열린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코플랜드의 일부 기능이 공개되었다. 애플은 1995년 말에 코플랜드의 베타 버전을 출시하고, 1996년 초에 정식 버전을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38][17] 그러나 1995년이 끝날 때까지 개발자 릴리즈조차 출시되지 않았다.[38]코플랜드는 점차 새로운 운영 체제보다는 QuickDraw GX, OpenDoc, 시스템 객체 모델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의 집합처럼 되어갔다. 추가해야 할 기능 목록은 계속 늘어났고, 개발자들은 1996년 출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개발자는 "코플랜드가 1996년에 출시되는 일 따윈 없을 거다. 1997년에라도 출시가 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17]
4. 2. 개발자 릴리즈
1996년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애플의 새로운 최고 경영자(CEO)인 길 아멜리오는 기조 연설에서 코플랜드, 즉 당시 '''시스템 8'''로 알려진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19] 그는 코플랜드가 애플 엔지니어링의 유일한 초점이며, 몇 달 안에 개발자에게 출시될 것이고, 1996년 말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컨퍼런스에서는 실행 중인 시스템의 데모가 거의 시연되지 않았다. 대신, 패키지에 포함될 기술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다양한 부분(예: 새로운 파일 관리 대화 상자)이 시연되었다. 핵심 시스템 기술은 거의 시연되지 않았고, 새로운 파일 시스템도 없었다.[19]새로운 운영 체제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개발자 랩에서 시간을 예약하는 것이었으나, 전반적인 경험은 끔찍했다. 텍스트 편집 기능이 없어 파일을 열고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텍스트를 넣을 수 조차 없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운영 체제는 충돌되었고, 주된 이유는 디스크에 있는 시스템 파일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이크로커널이 정교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20]
1996년 8월, "개발자 릴리즈 0"이 소수의 파트너에게 배포되었으나,[17] 향상된 안정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충돌 되기 일쑤였고, 이 환경에서 개발하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10월에 애플은 목표 출시일을 "언젠가"로 변경하며, 1997년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애플의 소프트웨어 품질 관리(QA) 팀원들은 현재의 리소스와 시스템의 버그 수를 고려할 때, 2030년쯤에나 프로그램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4. 3. 개발 취소
1996년 여름, 애플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최고경영자(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코플랜드에 대해 "각기 다른 팀에서 작업하고 있는 별개의 조각들의 집합일 뿐이며, 어떻게든 마법처럼 함께 결합될 것으로 예상되었다"고 불평했다.[21] 길 아멜리오는 취임 직후, 당시 애플에 있던 300개의 개발 과제를 정리 통합하여 50개로 줄이는 등, 당시 거의 제대로 관리되지 않던 애플의 개발 현장을 재건하려 했다. 1996년 2월 21일, MACWORLD Expo/Tokyo에서 개발 담당자인 데이비드 네이겔 수석 부사장이 일본어 환경 데모를 선보였지만[33], 그때도 개발 버전이 배포되지 않았고, 같은 해 4월에 그는 사임했다[34]。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아멜리오는 엘렌 핸콕을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영입하여 엔지니어링 팀을 맡기고 코플랜드 개발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려 했다. 1996년 5월, 애플은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Copland를 'Mac OS 8'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베타 버전 배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조 강연에서 아멜리오가 새로운 Finder의 데모를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 무렵, Copland는 각 모듈이 따로 개발되는 상태로, OS로 통합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또한, Gershwin은 이름과 컨셉만 언급되었을 뿐, 개발은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
엘렌 핸콕은 몇 달 동안 업무를 수행한 후, 현재의 개발 및 엔지니어링 상황을 고려할 때 코플랜드는 절대 출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7월에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영입한 엘렌 핸콕에게 CTO의 권한을 부여하고, 늪에 빠진 Copland 프로젝트를 수습하도록 했다. 그 결과, Copland의 멀티태스킹 환경은 임시적인 것으로, 선점형으로 동작하는 것은 백그라운드 태스크뿐이었다. 또한, 메모리 관리 기구도 System 7의 개량 버전에 머물러 현대적인 OS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을 조사한 CTO 겸 수석 부사장 엘렌 핸콕은 Copland가 완성될 전망이 없다고 일찍이 판단을 내렸다. IBM이나 노벨의 철수로 OpenDoc 계획도 중단되었다. 그리고 네이겔의 후임이었던 Copland 개발 담당자 아이크 나시 수석 부사장도 11월에 사임했다[35]。
대신, 그녀는 코플랜드의 다양한 사용자 대상 기술을 한 번의 대규모 출시 대신 일련의 단계적 릴리스로 출시할 것을 제안했다. 애플은 1996년 8월에 공식적으로 코플랜드를 취소했다.[15] 개발자용 릴리스의 CD 봉투는 인쇄되었지만, 디스크는 마스터링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의 노후화된 인프라를 해결하기 위해 아멜리오는 회사 외부에서 관련 없는 새로운 운영 체제를 찾는 것을 제안했다. 고려된 후보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솔라리스와 윈도우 NT였다. 핸콕은 솔라리스를 선호했고, 아멜리오는 윈도우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멜리오는 심지어 빌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 이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를 투입하여 퀵드로우를 NT로 포팅하겠다고 약속했다.[23]
Be와의 오랜 논의와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와의 합병 루머 이후, 많은 사람들은 애플이 1996년 12월에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자문 역할로 영입한다는 발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24] 아멜리오는 "Plan Be 대신 Plan A를 선택했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NeXTSTEP을 매킨토시 플랫폼으로 포팅하는 프로젝트는 랩소디로 명명되었으며, 애플의 크로스 플랫폼 운영 체제 전략의 핵심이 될 예정이었다. 이는 OpenStep의 기존 PowerPC, Intel x86, DEC Alpha CPU 아키텍처 지원과 윈도우 NT에서 실행되는 OpenStep 라이브러리 구현을 계승할 것이다. 이는 사실상 매킨토시 개발자들에게 윈도우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개방하는 것으로, 그들은 제품 배포를 위해 애플로부터 라이브러리를 라이선스하거나 기존 설치에 의존할 수 있었다.
5. 개발 취소 이후
여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멜리오는 코플랜드가 "각각 다른 팀들이 개발한 몇가지 조각의 덩어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멜리오는 엘런 핸콕을 엔지니어링 팀에 투입하고, 코플랜드의 개발을 다시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고, 핸콕은 현재 상황은 희망이 없고, 다른 회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운영 체제를 사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애플은 코플랜드를 1996년 8월에 공식적으로 취소했다.
BeOS를 인수하거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합병한다는 루머가 도는 가운데, 애플은 예상을 깨고 1996년 12월 넥스트 사를 구매한다는 선언을 했다. 아멜리오는 "애플은 플랜 Be 대신 플랜 A를 선택했다"라고 선언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넥스트 사의 오픈스텝을 매킨토시 플랫폼으로 포팅하는 것이었고, 이름은 랩소디였다. 이 프로젝트는 2001년 맥 OS X라는 이름으로 릴리즈 됐다.
핸콕의 계획에 따라. 시스템 7.5의 개발은 계속되었다. 안정성과 성능은 맥 OS 7.6에서 많이 향상되었으며, 코플랜드에서 개발되던 새로운 파인더, 플래티넘 테마등은 맥 OS 7.7에 추가되었다. (후에 이름이 맥 OS 8로 바뀐다.) 그 후 맥 OS 8.1은 새로운 파일 시스템을 추가하고, 맥 OS 8.6은 나노커널을 추가했다. 또한 기존에 코플랜드의 향상된 검색 기능, 기본 웹 브라우저, 비디오 컨퍼런싱은 각각 스팟라이트. 사파리. iChat AV라는 이름으로 추가되었다. 대신 각 기능에 대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완전히 다르다.
예정되었던 코플랜드의 기능은 1년마다 "Tempo", "Allegro", "Sonata" (모두 개발 코드)로 조금씩 출시하고, 그 사이에 마이너 업데이트를 제공한다고 발표[36]했으며, 이듬해인 1997년 1월에는 "Mac OS"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공식 채택한 System 7.5의 마이너 업데이트 버전인 "Mac OS 7.6"이 발매되었다. 그동안 코플랜드 기술 중 전용이 가능한 부분은 순차적으로 Mac OS 8, 9 등에 응용되었다. 파일 시스템의 HFS+나 어피어런스 매니저(단, 플래티넘 이외의 어피어런스는 탑재되지 않았고, 어피어런스 전환 기능은 굳이 사용할 수 없게 했다), 키체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몇몇 기능은 현재의 macOS에도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들은 원래 코플랜드를 위한 새로운 개념을 위해 설계된 기술이었기에, Mac OS 8 / 9에서는 완전히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플랜드 계획을 백지화한 아멜리오와 핸콕은 차기 Mac OS가 될 새로운 OS를 외부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계획 중단 후, 애플은 NeXT를 인수하여 차세대 OS 계획을 "Rhapsody"로 이행시켰다[37] . 이후 "Rhapsody" 계획은 변경되었고, 대신 Mac OS X 계획이 발표되었다. "Rhapsody"는 잠정적으로 Mac OS X Server 1.0로 출시되었다.
5. 1. 넥스트 인수와 랩소디
1996년 8월, 애플은 코플랜드 개발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15] 개발이 중단된 이후, 애플은 외부에서 새로운 운영 체제를 찾기 시작했다.[37] Be와의 오랜 논의와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와의 합병 루머 이후, 많은 사람들은 애플이 1996년 12월에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자문 역할로 영입한다는 발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24] 당시 애플의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Plan Be 대신 Plan A를 선택했다"고 말했다.[24]NeXT의 NeXTSTEP을 매킨토시 플랫폼으로 포팅하는 프로젝트는 랩소디로 명명되었으며, 애플의 크로스 플랫폼 운영 체제 전략의 핵심이 될 예정이었다.[37] 이는 OpenStep의 기존 PowerPC, Intel x86, DEC Alpha CPU 아키텍처 지원과 윈도우 NT에서 실행되는 OpenStep 라이브러리 구현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2001년 맥 OS X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한편, 핸콕의 계획에 따라 시스템 7.5의 개발은 계속되었다.[36] 안정성과 성능은 맥 OS 7.6에서 많이 향상되었으며, 코플랜드에서 개발되던 새로운 파인더, 플래티넘 테마등은 맥 OS 7.7에 추가되었다. (후에 이름이 맥 OS 8로 바뀐다.) 그 후 맥 OS 8.1은 새로운 파일 시스템을 추가하고, 맥 OS 8.6은 나노커널을 추가했다. 또한 기존에 코플랜드의 향상된 검색 기능, 기본 웹 브라우저, 비디오 컨퍼런싱은 각각 스팟라이트, 사파리, iChat AV라는 이름으로 추가되었다.
5. 2. 코플랜드의 유산
코플랜드 개발은 시스템 7.5로 이어졌고, 코플랜드의 여러 요소가 통합되었다. 시스템 7은 7.6 버전 출시와 함께 Mac OS 7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안정성과 성능이 향상되었다.[36] 새로운 멀티 스레드 파인더와 테마 지원(기본값 플래티넘)을 포함한 많은 코플랜드 기능이 출시되지 않은 Mac OS 7.7 베타 버전에 통합되었으며, 대신 Mac OS 8로 브랜드가 변경되어 출시되었다.[25]잡스가 복귀하면서 버전 8으로의 이 브랜드 변경을 통해 애플은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타사 제조업체의 시스템 7 라이선스를 종료하고 매킨토시 복제 시장을 효과적으로 폐쇄할 수 있었다.[26] 이후, Mac OS 8.1은 마침내 새로운 파일 시스템을 추가했고 Mac OS 8.6은 나노커널을 업데이트하여 선점형 멀티태스킹에 대한 제한적인 지원을 처리했다. 인터페이스는 멀티프로세싱 서비스 2.x 이상이지만, 프로세스 분리가 없으며 시스템은 여전히 프로세스 간 협력적 멀티태스킹을 사용한다. 멀티프로세싱 서비스를 인식하는 프로세스조차도 블루 박스에서 실행되는 부분이 있으며, 이 작업은 모든 단일 스레드 프로그램과 68k 코드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이기도 하다.
Rhapsody 프로젝트는 여러 개발자 미리 보기 릴리스 이후 취소되었고, 비 매킨토시 플랫폼에서 실행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었으며, 결국 Mac OS X Server 1.0으로 출시되었다. 2001년에 이 기반은 Carbon 라이브러리와 Aqua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결합되어 현대적인 Mac OS X 제품을 형성했다.[27] Mac OS X 10.4 (Tiger)의 인텔 출시 이전의 Mac OS X 버전은 이전 버전의 Mac OS용으로 작성된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클래식 형태로 루트리스 블루 박스 개념을 사용한다. 코플랜드 데모에서 처음 보였던 몇 가지 기능, 즉 고급 찾기 명령, 내장된 인터넷 브라우저, 폴더의 ''더미'', 화상 회의 지원 등은 Mac OS X의 후속 릴리스에서 각각 스포트라이트, 사파리, 스택, iChat AV로 다시 나타났지만, 각 기능의 구현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매우 다르다.
예정되었던 코플랜드의 기능은 1년마다 "Tempo", "Allegro", "Sonata" (모두 개발 코드)로 조금씩 출시하고, 그 사이에 마이너 업데이트를 제공한다고 발표[36]했으며, 이듬해인 1997년 1월에는 "Mac OS"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공식 채택한 System 7.5의 마이너 업데이트 버전인 "Mac OS 7.6"이 발매되었다. 그동안 코플랜드 기술 중 전용이 가능한 부분은 순차적으로 Mac OS 8, 9 등에 응용되었다. 파일 시스템의 HFS+나 어피어런스 매니저(단, 플래티넘 이외의 어피어런스는 탑재되지 않았고, 어피어런스 전환 기능은 굳이 사용할 수 없게 했다), 키체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몇몇 기능은 현재의 macOS에도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들은 원래 코플랜드를 위한 새로운 개념을 위해 설계된 기술이었기에, Mac OS 8 / 9에서는 완전히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플랜드 계획을 백지화한 아멜리오와 핸콕은 차기 Mac OS가 될 새로운 OS를 외부에서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계획 중단 후, 애플은 NeXT를 인수하여 차세대 OS 계획을 "Rhapsody"로 이행시켰다[37] . 이후 "Rhapsody" 계획은 변경되었고, 대신 Mac OS X 계획이 발표되었다. "Rhapsody"는 잠정적으로 Mac OS X Server 1.0로 출시되었다.
6. 迷走(미주)의 원인
Pink 프로젝트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시작되어 무려 6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발은 迷走(미주)를 거듭했다. 그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다.
- 잦은 최고 경영자의 해임 등 Apple(애플) 경영진의 혼란
- 기존 Toolbox API가 68000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어 상위 호환을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 개발 팀이나 ATG의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개별 팀이 제각각의 요소를 개발했다.
- *예를 들어, QuickDraw GX와 PostScript가 양립하지 않고, 나중에 만들어진 QuickDraw 3D를 넣으면 불안정해지는 등
- 영업 측의 과도한 요구를 받아들여 계획이 한없이 비대해졌다.
- 기술 매니저 측도 계획을 정밀 검토하지 않고, 잇따라 신기능 개발에 승인을 내주어 리소스가 분산되었다.
- 이미 메모리 보호 및 선점형을 탑재한 Windows NT가 출시된 시장에서의 압력
- Copland와는 별도로, IBM과 함께 Taligent나 Kaleida 프로젝트라는 별도의 OS 개발 계획을 병행하여 개발자와 경영진이 분산, 대립, 혼란했다.
- Newton이나 General Magic 등, 별도의 OS/디바이스 개발 계획을 병행하여 Mac의 주요 개발자가 이탈했다.
- 완전한 단일 태스크를 전제로 하여 재진입이 어려웠던 Toolbox API
6. 1. 경영진의 혼란
1990년대 초부터 Pink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코플랜드 개발은 6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迷走(미주)를 거듭했다. 잦은 최고 경영자 해임은 애플 경영진의 혼란을 야기했고, 이는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6. 2. 기술적 어려움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시작되어 6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되었음에도, 코플랜드 개발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Toolbox API가 68000 프로세서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어 상위 호환을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개발 팀과 ATG의 연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개별 팀이 제각각 요소를 개발하면서 QuickDraw GX와 PostScript가 양립하지 않고, 나중에 만들어진 QuickDraw 3D를 넣으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완전한 단일 태스크를 전제로 하여 재진입이 어려웠던 Toolbox API 문제도 있었다.6. 3. 개발 팀 간의 비협조
1990년대 초부터 Pink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코플랜드 개발은 6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난항을 겪었다. 개발 팀과 ATG 간의 협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각 팀이 개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QuickDraw GX와 PostScript가 양립하지 않았고, 나중에 개발된 QuickDraw 3D를 추가하면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6. 4. 과도한 요구와 계획 비대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시작되어 6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된 Pink 프로젝트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발이 미주를 거듭했다. 잦은 최고 경영자의 해임 등 Apple(애플) 경영진의 혼란, 기존 Toolbox API의 68000 의존성으로 인한 상위 호환 유지의 기술적 어려움, 개발 팀과 ATG 간 연계 부족으로 인한 개별 팀의 독자적 요소 개발 등의 문제가 있었다.특히, 영업 측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여 계획이 비대해졌고, 기술 매니저 측도 계획을 정밀 검토하지 않고 신기능 개발을 승인하여 리소스가 분산되었다. 이는 이미 메모리 보호 및 선점형을 탑재한 Windows NT가 출시된 시장에서의 압력과 맞물려 개발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6. 5. 외부 압력
1990년대 초, Pink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코플랜드 개발은 6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메모리 보호 및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탑재한 Windows NT가 출시되면서 시장에서의 압력이 가중되었다는 점이다.6. 6. 병행 프로젝트
1990년대 초부터 6년에 걸쳐 개발이 진행되었음에도, 코플랜드 개발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코플랜드와는 별도로 IBM과 함께 Taligent이나 Kaleida 프로젝트와 같은 별도의 OS 개발 계획을 병행하면서 개발자와 경영진이 분산, 대립, 혼란을 겪었다. 이는 개발 자원 분산으로 이어져 코플랜드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6. 7. 개발자 이탈
1990년대 초부터 개발이 시작된 코플랜드는 여러 문제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었다. 뉴턴이나 General Magic과 같은 별도 OS/디바이스 개발 계획으로 인해 Mac 주요 개발자들이 이탈하기도 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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