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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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위는 적의 군대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군사 전술이다. 이 전술은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사용해 왔으며, 손자는 군대가 포위되기보다는 퇴각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위는 이중 포위, 단일 포위, 돌파 후 분기와 같은 다양한 유형으로 나뉜다. 포위의 위험성은 포위 부대가 보급로에서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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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엔티어링 - 돌출부
돌출부는 군사 전략에서 특정 전선이 튀어나온 형태로, 공격과 방어에 영향을 미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술적 요소였다. - 오리엔티어링 - 고립부
고립부는 군사 작전에서 적 부대를 포위하는 개념과 전술을 의미하며, 소련, 독일, 핀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각기 다른 용어와 전술을 사용하여 주요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기동 전술 - 기동전
기동전은 적의 군사력 파괴보다 기동을 통해 심리적 마비를 유도하여 최소한의 전투로 승리하는 전쟁 수행 방식으로, 특정 목표물 파괴, 적군 고립, 취약점 공략 등을 통해 효율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기동 전술 - 철수 (군사)
철수는 원래 은행 용어에서 유래되었으나, 군사 작전에서는 불리한 부대가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한 전략과 함께 기업의 사업 중단, 스포츠계의 포기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 포위전 - 메기도 전투 (기원전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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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포위전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보스니아 전쟁 중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스릅스카 공화국군에 의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현대 전쟁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중 하나로, 1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만 명의 부상자를 야기하고 도시의 인구 구조와 기반 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포위 | |
---|---|
군사 정보 | |
정의 | 적군에 의해 아군 부대 또는 목표물이 둘러싸인 전쟁 상황 |
관련 전술 | 포위 공격 양동 작전 섬멸전 |
역사적 중요 전투 | |
고대 | 칸나에 전투 (기원전 216년) |
중세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 1943년) 디엔비엔푸 전투 (1954년) |
전략적 중요성 | |
목표 | 적군 섬멸 항복 유도 자원 차단 |
2. 역사
포위는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드로스 3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 칸, 할리드 빈 왈리드, 한니발, 손자, 이순신, 샤카 줄루, 폰 발렌슈타인, 나데르 샤, 나폴레옹, 폰 몰트케, 하인츠 구데리안, 폰 룬트슈테트, 폰 만슈타인, 주코프, 패튼, 솔레이마니 등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해 온 전술이다.
손자와 같은 군사 사상가들은 적군을 완전히 포위하기보다는 퇴로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전히 포위된 적군은 사기가 올라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만, 퇴각할 가능성이 보이면 퇴각을 선택할 것이고, 아군은 적은 피해로 적을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섬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2]
포위 전투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전투명 | 연도 |
---|---|
테르모필레 전투 | 기원전 480년 |
칸나이 전투 | 기원전 216년 |
아바스 전투 | 기원전 65년 |
왈라자 전투 | 633년 |
모히 전투 | 1241년 |
에케렌 전투 | 1703년 |
프라우슈타트 전투 | 1706년 |
키르쿠크 전투 | 1733년 |
카르스 전투 | 1745년 |
메이묘 전투 | 1768년 |
울름 작전 | 1805년 |
오카냐 전투 | 1809년 |
섬터 요새 전투 | 1861년 |
이산들와나 전투 | 1879년 |
탄넨베르크 전투 | 1914년 |
마그다바 전투 | 1916년 |
라파 전투 | 1916년 |
제1차 가자 전투 | 1917년 |
브엘세바 전투 | 1917년 |
메기드도 전투 | 1918년 |
수오무살미 전투 | 1939년-1940년 |
키예프 전투 | 1941년 |
스몰렌스크 전투 | 1941년 |
비알리스토크-민스크 전투 | 1941년 |
벨리키예 루키 전투 | 1942년 |
홍콩 전투 | 1941년 |
스탈린그라드 전투 | 1942년-1943년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 1944년 |
카메네츠-포돌스키 포위전 | 1944년 |
바그라티온 작전 | 1944년 |
몽스 포위전 | 1944년 |
바스토뉴 포위전 | 1944년 |
루르 포위 전투 | 1945년 |
베를린 전투 | 1945년 |
6일 전쟁 | 1967년 |
호람샤르 전투 | 1980년 |
모가디슈 전투 | 1993년 |
미스라타 전투 | 2011년 |
알레포 전투 | 2012년–2016년 |
일로바이스크 전투 | 2014년 |
티크리트 2차 전투 | 2015년 |
아프린 전투 | 2018년 |
자바라 계곡 전투 | 2019년 |
마리우폴 포위전 | 2022년 |
2. 1. 고대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드로스 3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 칸, 할리드 빈 왈리드, 한니발, 손자, 이순신, 샤카 줄루 등 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고대부터 포위 전술을 사용해 왔다.손자는 군대가 완전히 포위되기보다는 도망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포위된" 군대는 사기를 높여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퇴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며, 적이 퇴각하면 추격군은 훨씬 적은 위험으로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2]
2. 2. 동아시아
손자는 군대가 완전히 포위되기보다는 도망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위된" 군대는 사기가 높아져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퇴각의 가능성을 고려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2] 적이 퇴각하면, 추격군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위험으로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2. 3. 중세 및 근대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드로스 3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 칸, 할리드 빈 왈리드, 한니발, 손자, 이순신, 샤카 줄루, 폰 발렌슈타인, 나데르 샤, 나폴레옹, 폰 몰트케, 하인츠 구데리안, 폰 룬트슈테트, 폰 만슈타인, 주코프, 패튼, 솔레이마니 등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수 세기 동안 포위 전술을 사용해 왔다.손자를 비롯한 군사 사상가들은 군대가 완전히 포위되는 것보다 도망갈 길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전히 포위된 군대는 사기가 높아져 죽을 때까지 싸우는 반면, 퇴각할 가능성이 있다면 병사들이 퇴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적군이 퇴각하면 아군은 훨씬 적은 위험으로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섬멸할 수 있다.
2. 4. 근현대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드로스 3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 칸, 할리드 빈 왈리드, 한니발, 손자, 이순신, 샤카 줄루, 폰 발렌슈타인, 나데르 샤, 나폴레옹, 폰 몰트케, 하인츠 구데리안, 폰 룬트슈테트, 폰 만슈타인, 주코프, 패튼, 솔레이마니 등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수 세기 동안 포위 전술을 사용해 왔다.손자를 비롯한 군사 사상가들은 군대가 완전히 포위되는 것보다 퇴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완전히 포위된 군대는 사기가 높아져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되지만, 퇴각할 가능성이 있다면 적은 훨씬 적은 위험으로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격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2]
2. 5. 현대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드로스 3세, 율리우스 카이사르, 칭기즈 칸, 할리드 빈 왈리드, 한니발, 손자, 이순신, 샤카 줄루, 폰 발렌슈타인, 나데르 샤, 나폴레옹, 폰 몰트케, 하인츠 구데리안, 폰 룬트슈테트, 폰 만슈타인, 주코프, 패튼, 솔레이마니 등 수많은 군사 지도자들이 포위 전술을 수 세기 동안 사용해 왔다.손자를 비롯한 군사 사상가들은 군대가 완전히 포위되는 것보다 도망갈 길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위된" 군대는 사기가 높아져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되지만, 퇴각할 가능성이 있다면 적은 더 적은 위험으로 추격하여 포획하거나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2]
3. 유형
포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이중 포위:''' 양 측면에서 적을 공격하여 후방으로 돌아 고리 모양으로 포위하는 방식이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제6군이 포위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3]
- '''단일 포위:''' 한쪽 측면만 공격하지만, 바다나 산과 같은 자연 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을 가두는 방식이다.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저지대 공격이 대표적인 예시이다.[4]
- '''돌파 후 분기:''' 적 전선의 한 지점을 뚫고 들어가 기동 부대를 활용,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몇 가지 사례가 나타났다.
포위하는 쪽은 병참 기지에서 차단될 위험이 있다. 포위된 쪽이 굳건히 버티거나 통신선을 유지하면 포위 쪽은 혼란에 빠지거나[3]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4]
3. 1. 이중 포위 (Double Envelopment)
'''이중 포위'''는 주요 포위 형태 중 하나로, 측면 공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전술은 경보병, 기병, 전차, 장갑차와 같은 기동 부대가 적의 측면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빠르게 진입, "고리"를 형성하는 동안 주력 적군은 탐색 공격에 묶이게 된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제6군이 포위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3]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는 소련에 대항하여 "모티"라고 불리는 ''주머니 전술''을 사용했다. ''모티''는 핀란드가 자신들보다 훨씬 큰 규모의 소련군을 무력화, 분할, 포위, 파괴하는 데 사용한 전술이었다.[3]
3. 2. 단일 포위 (Single Envelopment)
이중 포위와 달리, 전장 한쪽에 바다나 산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는 한쪽 측면에서의 공격, 즉 "단일 핀치"만으로도 포위가 가능하다.[4]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저지대 공격이 이러한 단일 포위의 전형적인 예이다.[4]3. 3. 돌파 후 분기 (Breakthrough and Exploitation)
주요 포위 형태인 이중 포위는 측면 공격으로 실행되며, 당시 시대의 경보병, 기병, 전차, 장갑차와 같은 기동 부대가 돌파를 시도하여 속도를 활용, 적 부대의 후방으로 진입하여 "고리"를 완성하는 동안 주력 적군은 탐색 공격에 의해 묶이게 된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제6군의 포위는 전형적인 예이다.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는 소련에 대항하여 "주머니 전술", 즉 ''모티''를 사용했다. 전쟁 상황에서 ''모티''는 핀란드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소련군을 무력화, 분할, 포위, 파괴하는 데 사용한 전술을 설명한다.[3]전장 한쪽에 바다나 산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있는 경우, 두 번째 팔의 기능을 자연적 장애물이 대신하기 때문에 한쪽 핀치만 필요하다("단일 핀치").[4]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저지대 공격이 이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세 번째이자 드문 형태의 포위는 적 전선의 한 지역에서 돌파가 발생하고, 기동 부대를 사용하여 이를 활용하여 적의 후방으로 두 방향 이상으로 분기될 수 있다. 완전한 포위가 드물게 이루어지지만, 포위의 위협은 방어자의 선택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이러한 유형의 공격 패턴은 전격전 작전의 핵심이다. 이러한 작전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공격 부대가 기술, 조직, 또는 단순한 병력 수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몇 가지 사례가 나타났다.
4. 포위의 위험성
이중 포위는 측면 공격으로 실행되며, 당시 시대의 경보병, 기병, 전차, 장갑차와 같은 기동 부대가 돌파를 시도하여 속도를 활용, 적 부대의 후방으로 진입하여 "고리"를 완성하는 동안 주력 적군은 탐색 공격에 의해 묶이게 된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 제6군의 포위가 전형적인 예이다.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는 소련에 대항하여 "주머니 전술", 즉 ''모티''를 사용했다. 전쟁 상황에서 ''모티''는 핀란드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소련군을 무력화, 분할, 포위, 파괴하는 데 사용한 전술을 설명한다.[3]
전장 한쪽에 바다나 산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있는 경우, 두 번째 팔의 기능을 자연적 장애물이 대신하기 때문에 한쪽 핀치만 필요하다("단일 핀치").[4] 1940년 독일군의 프랑스 저지대 공격이 이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세 번째이자 드문 형태의 포위는 적 전선의 한 지역에서 돌파가 발생하고, 기동 부대를 사용하여 이를 활용하여 적의 후방으로 두 방향 이상으로 분기될 수 있다. 완전한 포위가 드물게 이루어지지만, 포위의 위협은 방어자의 선택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이러한 유형의 공격 패턴은 전격전 작전의 핵심이다. 이러한 작전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공격 부대가 기술, 조직, 또는 단순한 병력 수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몇 가지 사례가 나타났다.
포위 부대의 위험은 그 자체가 병참 기지로부터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포위된 부대가 굳건히 버티거나 통신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포위 부대는 혼란에 빠지거나 (예: 1941년 롬멜의 "와이어로의 돌진" 및 1942년 데미얀스크 포위전)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예: 1944년 버마 전역에서).
참조
[1]
웹사이트
U.S. Army FM 3-90 Appendix D, Encirclement Operations
http://www.globalsec[...]
globalsecurity.org
2012-01-23
[2]
서적
The Art of War
[3]
웹사이트
How Finns used the 'motti' tactic to entrap Soviets in Winter War
https://www.foreigne[...]
[4]
웹사이트
U.S. Army FM 3-90 Appendix D-1 OFFENSIVE ENCIRCLEMENT OPERATIONS
http://www.globalsec[...]
globalsecurity.org
2012-01-23
[5]
서적
Operations of Encircled Forces: German Experiences in Russia (Pamphlet 20-234)
https://web.archive.[...]
U.S. Department of the Army
2013-01-23
[6]
뉴스
Iraqi forces seek to encircle IS fighters in Tikrit
https://www.bbc.co.u[...]
BBC
2015-03-04
[7]
웹인용
U.S. Army FM 3-90 Appendix D, Encirclement Operations
http://www.globalsec[...]
globalsecurity.org
201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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