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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업야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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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실업야구연맹은 2011년 대한야구협회의 승인을 받아 창립된 성인 아마추어 야구 단체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2003년 폐지되었던 실업야구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선수들의 취업을 지원하고 지역 시민야구단 창단을 돕는 역할을 한다. 2008년 박영길 전 롯데 감독에 의해 재출범이 시도되었으나 실패한 후, 2010년 새로운 연맹이 결성되어 시범 운영을 거쳐 공식 출범했다. 2013년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이 추진되면서 연맹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설립 근거 및 창립

한국실업야구연맹(KABA: 초대 회장 남상현)은 2010년 9월 대한야구협회에서 탈퇴 처리된 KBBF(당시 회장: 박영길, 부회장: 김양경, 전무이사: 김용철)와 무관한 단체로, 강승규 당시 대한야구협회장의 취임 공약 중 하나인 실업야구 부활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선수 취업 활성화를 위해 승인된 산하 단체이다.[1]

2. 1. 설립 근거

대한야구협회는 2011년 1월 19일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한국실업야구연맹을 산하 준가맹 회원 단체로 공식 승인했다.[1] 당시 대한야구협회 회장은 강승규였다.[1]

2011년 당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산하에는 6개의 가맹단체가 있었는데, 한국리틀야구연맹, 한국여자야구연맹, 한국대학야구연맹은 정가맹 단체였고, 한국실업야구연맹, 티볼연맹, 연식야구연맹은 준가맹 단체였다.[1]

2. 2. 창립

한국실업야구연맹(KABA)은 2011년 1월 19일 대한야구협회(당시 회장: 강승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산하 준가맹 회원 단체로 공식 승인되었다.[1] 2011년 6월 17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리베라호텔에서 창립되었다.

한국실업야구연맹은 2010년 9월 대한야구협회에서 탈퇴 처리된 KBBF(당시 회장: 박영길, 부회장: 김양경, 전무이사: 김용철)와는 무관한 단체로, 당시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의 취임 공약 중 하나인 실업야구 부활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선수 취업 활성화를 위해 승인된 산하 단체이다.[1]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산하에는 6개의 가맹 단체가 있는데, 리틀야구연맹, 여자야구연맹, 대학야구연맹은 정가맹 단체이고, 실업야구연맹, 티볼연맹, 연식야구연맹은 준가맹 단체이다.[1]

3. 연혁

2012년 1월, 연맹 이사회가 개최되어(포스코빌딩) 연맹 자문위원으로 선수 취업에 기여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1] 5월에는 대전일보사장배 2012 실업야구 춘계리그가 개막했다.(일죽 인조잔디구장, 4개 팀 참가) 7월에는 연맹 2012년 임시 정기총회가 개최되었고(남산 하얏트호텔), 김종민 전 충남정무부지사가 축사를 했다. 10월에는 연맹 이사회 개최 예정이었다.(2012년 하반기 정기총회 안건 심의) 11월에는 충북 보은군 연고 신규 창단 보은제약 실업 야구단(감독: 김정택) 팀과 업무협의 요청을 받았지만, 팀 자체 방향성이 불투명하고 재정 방안과 전용구장이 없어 연맹 가입이 보류되었다. 같은 달, 충청남도지사배 제2회 종합야구선수권대회는 시즌 막판 우수 선수 불참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12월에는 독립리그 훈련구장으로 고려대학교가 낙찰되어 구장 사용 협약을 체결했다.(체육시설 임차료 및 시설 지원자금 12억 연맹 확보, 예산 집행)

2013년 1월, 연맹 이사회가 개최되었고(대한야구협회장 선거에 따라 임시 형태로 개최), 김은영(엘앤케이글로벌 대표/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의 대한야구협회장 출마 추천이 있었다. 2월에는 경기도청(문영근 팀장 외 실무진)과 협의하여 단일기업 실업 팀 창단계획을 발표, 2015년부터 독립리그를 출범하기로 계획했다. 3월에는 독립리그 출범을 위해 단일 기업 실업 팀 창단계획 및 고척돔구장 개장기념 독립리그 출범(2015년 3월~) 계획을 수립했다. 4월에는 시범운영 실업 팀 통합 훈련구장(고려대학교) 인조잔디 포설 및 전광판, 덕아웃, 안전망 등 공사가 시작되었다. 5월에는 고려대학교 야구장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되었다.(총 공사 규모: 부가세 포함 9.35억) 6월에는 논산시 소재 동양강철 그룹 현대알루미늄 신축공장 직원으로 10~20명 채용하여 논산시 또는 인근 공주시 연고 창단 검토에 착수했다. 같은 달, 포항야구장에서 시범운영 마지막 대회인 동양강철배 제3회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다.(울산시민야구단 VS 구미시민야구단) 7월에는 경기도청 초청으로 실업야구 시범운영 현황 브리핑 및 향후 독립리그 운영 시 수도권 및 영남권 2개 리그 우선 출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9월에는 독립리그 출범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했다. 10월에는 고려대 야구장에서 시범운영 마지막 대회인 동양강철배 제3회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12월에는 연맹 이사회 및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2014년 3월,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 공청회 참가 외 경기도청과 출범 단일주체 구성 및 구단 스폰서 기업 유치 관련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4월에는 경기도청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협동조합 형태 수도권 주요 구장을 보유한 클럽리그의 회원을 독립구단 주주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협의했다. 12월에는 제2기 회장단 선출 및 경기도청과 공동으로 경기도지사를 포함한 독립리그 운영 방안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2015년 2월, 고척돔구장 개장기념 실업야구 부활 리그 출범을 위한 각 주체 간 협의체 구성 등을 안건으로 정기총회가 개최되었다. 7월에는 연맹 사무실을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 개소했다. 11월에는 대한야구협회장(박상희)과의 실업야구 부활에 대한 논의 결과가 좋지 않자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

2016년 3월, 여의도 CBRE 빌딩에서 이사회가 개최되어, 대한야구협회 내분(대한체육회에서 관리단체로 지정)에 따른 연맹 방향성이 논의 및 의결되었다. 11월에는 현실성이 낮은 실업팀 창단보다 창단이 수월한 연천 미라클 등 독립야구단 4개 팀으로 2017년 시범 운영 리그를 출범하기로 조건부 협의했다. 12월에는 정기총회를 통해 신임 회장단 선출은 물론, 2017년 가을 첫 창단 추진 중인 실업팀에 대한 운영 방안이 발표될 예정이었다.

3. 1. 2008년 ~ 2009년: 실업야구 부활 시도와 좌절

2008년 12월, KBO 하일성 사무총장의 지원 속에 박영길(전 롯데 감독) 씨가 주도하는 실업야구연맹 출범 합의 및 지원이 확약되었다.[1] 같은 해 12월, 최주억(전 롯데자이언츠 수석코치,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이사) 씨는 실업야구연맹 출범 소식을 전하며 직장야구리그와 연계하여 발전시킬 것을 권고했다. 당시 최주억 씨의 제안을 높이 평가한 한국직장야구연맹(당시 회장: 표삼수/KT 사장)은 이를 수락했고,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의 회동이 성사되었다.

2009년 1월, 신사동 진동횟집에서 최주억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의 주선으로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영길 회장은 전국 주요 6개 도시 공단지역에서 개최 중인 직장야구리그에서 선수 출신을 연평균 20명 이상 취업시키던 상황을 협력하여, 전국 300개 참가 팀을 선수 출신 보유 숫자에 따라 K3, K2, K1 리그로 구성해 실업야구연맹을 출범시키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이는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2009년 2월, 대한야구협회 이상현 사무처장의 추천으로 박영길 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협회 관련 공인 대회 확인을 위해 이상현 처장과 면담했을 때, 박영길 회장이 주도하는 실업야구연맹에 가입하면 자동 회원사가 된다는 추천을 받았다.

2009년 3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 부활 추진 단체(대표: 박영길 / KBBF) 트라이아웃에 초청받아 관전했다. 신월야구장에 참석한 당시 실업야구연맹 고문으로 활동 중이던 하일 씨와 처음 만났고, 이후 연맹 부회장으로 영입 제안을 받아 수락했다.

2009년 5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 부활 추진 단체인 실업야구연맹(회장: 박영길 / KBBF)이 개최한 1차 대회에 참가했다. 25명을 긴급히 트라이아웃을 통해 모집된 선수로 구성한 광명전기라는 팀으로 참가했다.

2009년 6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 부활 추진 단체인 실업야구연맹(회장: 박영길 / KBBF)이 개최한 2차 대회 불참을 최종 결정했다. 개막식 후 배정된 첫 경기에서 선수 출신이 1명인 사회인 팀과 경기를 하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코칭스태프 등과 협의하여 몰수패로 정중히 거부했다.

2009년 9월,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박영길 회장과 김양경 부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연맹이 신월야구장 사용권을 놓고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와 분쟁하다 협회 감사 통해 등록 취소되었다.

3. 2. 2010년 ~ 2011년: 새로운 실업야구연맹 탄생

2008년 12월, KBO 하일성 사무총장의 지원 속에 박영길(전 롯데 감독) 씨가 주도하는 실업야구연맹 출범 합의 및 지원이 확약되었다.[1] 최주억(전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이사) 씨는 실업야구연맹 출범 소식을 전하며 직장야구리그와 연계하여 발전시킬 것을 권고했다.[1] 당시 한국직장야구연맹(회장: 표삼수/KT 사장)은 최주억 씨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 회동을 가졌다.[1]

2009년 1월, 신사동 진동횟집에서 최주억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 주선으로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 회동이 이루어졌다.[1] 이 자리에서 박영길 회장은 전국 주요 6개 도시 공단지역에서 개최 중인 직장야구리그에서 선수 출신을 연평균 20명 이상 취업시키던 상황을 협력하여, 전국 300개 참가 팀을 선수 출신 보유 숫자에 따라 K3, K2, K1 리그로 구성하여 실업야구연맹을 출범시키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1]

2009년 2월, 대한야구협회 이상현 사무처장의 추천으로 박영길 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1] 3월에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부활 추진단체(대표: 박영길 / KBBF) 트라이아웃에 초청되어 관전했고, 신월야구장에서 당시 실업야구연맹 고문으로 활동 중이던 하일 씨와 첫 만남을 가졌다.[1] 이후 하일 씨는 연맹 부회장으로 영입 제안을 받았고, 이를 수락했다.[1]

2009년 5월, 당시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부활 추진단체인 실업야구연맹(회장: 박영길 / KBBF)이 개최한 1차 대회에 광명전기 팀으로 참가했다.[1] 그러나 6월에 열린 2차 대회에는 선수 출신이 1명인 사회인 팀과의 경기를 배정받자, 코칭스태프 등과 협의하여 몰수패로 정중히 거부하며 불참을 결정했다.[1]

2009년 9월,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박영길 회장과 김양경 부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연맹은 당시 신월야구장 사용권을 놓고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와 분쟁하다 협회 감사 결과 등록이 취소되었다.[1]

2009년 10월, 강승규 협회장의 새로운 구단 운영 및 운영단체인 연맹 출범 결정 후, 1차 트라이아웃을 개최하여 선수 40명을 선발했다.[1] (평가관: 故 조성민)[1] 11월에는 2010년 시즌 시범운영 실업팀 활동선수 선발 및 연맹/취업지원 협력업체 간 협약을 체결했다.[1]

2010년 1월, 가칭 한국실업야구연맹(KABA) 임시 사무실 개소식(영등포구 문래동)이 열렸다.[1] 3월에는 2차 트라이아웃(목동, 수원, 구리)을 통해 독자적으로 선수 40명을 선발했다.[1] (평가관: 조성민)[1] 4월에는 시범운영 대회 참가구단 이사회를 개최(대구 인터불고호텔)하여 신규 영입된 하일 부회장 등 8개 구단 관계자가 참석했다.[1]

2010년 5월, 첫 시범대회를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개최했다.[1] (8개 팀 참가)[1] 6월에는 대한야구협회 초청 시범운영 대회 추진보고회를 개최(여의도 메리어트호텔)하여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 등 협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1]

2010년 7월, 한국실업야구연맹 임원진은 조성민요미우리 관계자 추천으로 일본야구연맹(JABA)을 방문하여 일본 실업야구를 견학했다.[1] (방문단장: 故 조성민 육성위원장)[1] 10월에는 한국실업야구연맹 2010년 하반기 정기총회를 개최(영종도 하얏트호텔)하여 김재구 회장(원테크놀로지 회장) 대행 체제로 조직을 구성했다.[1]

2011년 1월, 대한야구협회 정기총회 및 이사회 의결을 통해 회원단체로 승인되었다.[1]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연맹 자문위원인 김종민충청남도 정무부지사 참석)[1] 2월에는 연맹 2010년 상반기 이사회를 개최하여 김종민충청남도 정무부지사의 추천으로 남재두 대전일보 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1] 같은 달, 시범운영 실업 팀 선수단 20명이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실업 선발팀)을 시행했다.[1] (원테크놀로지(회장: 김재구) 전액 후원)[1]

2011년 3월, 연맹 2011년 상반기 정기총회를 개최(여의도 HP 대강당)했다.[1] 4월에는 연맹 4개 구단 전용훈련 인조잔디 야구장을 개장 및 사용 시작했다.[1] (안성 소재)[1] 5월에는 연맹 본부 사무실을 강남구 논현동에 개소하고 충남도청과 업무제휴를 맺었다.[1] 같은 달, 아랍에미레이트 국영 에티하드 항공 2011 실업야구 춘계리그를 개최했다.[1]

2011년 6월, 연맹 이사회를 개최하여 남상현 대전일보 사장을 공식 회장으로 추대하고, 대전일보 남재두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1] (유성 리베라호텔)[1] 7월부터 9월까지는 동양강철회장배 2011 실업야구 하계리그를 개최했고,[1] 10월부터 11월까지는 대전일보사장배 2011 실업야구 추계리그를 개최했다.[1] 11월에는 충청남도지사배 제1회 종합야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1] (단국대, 건국대, 홍익대, 한민대 외 북일고 등 고교 6팀, 실업 2팀 참가, 우승: 건국대 & 북일고)[1]

3. 3. 2011년 ~ 2013년: 시범 운영 및 기반 다지기

2010년 한 해 동안 시범 운영과 야구계 내부 인사들의 가능성 확인을 거쳐, 2011년 1월 19일 대한야구협회 이사회 승인을 통해 현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공식 회원 단체로 인정받았다.[1] 이후 3월 서울에서 임시총회가 열렸고, 6월 17일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대전일보 사장인 남상현 회장이 임기 2년으로 추대되는 등 한국실업야구연맹이 공식 출범했다.

당시 충청남도 정무부지사였던 김종민 자문위원은 충남지역 규격 야구장 확보 지원 요청을 위해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한 충남 체육 관계자에게 야구 인프라 확충을 강조했고, 2011년 1월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 직접 참석하여 지자체 기반 실업야구 출범을 강조했다.

한편, 연맹 초기 재정은 아마추어 야구 매니아로 알려진 LED 전문 기업 원테크놀로지와 군수용 금속표면처리제 석유제품을 유통하는 폴리트론 김재구 회장의 출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이규태 일광복지재단 이사장도 선수 취업에 나섰다. 그러나 시범운영 시작 단계부터 여러 변수가 발생했다.

  • 창원 덴소풍성 문제: 창원 소재 덴소풍성은 연맹의 지원 속에 재창단에 나섰지만, 창원에 프로야구단 9구단이 유치되면서 리그 참가 및 구단 창단을 포기했다.
  • 수원시민야구단 문제: 수원시민야구단은 수원야구장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고,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추진 분위기에 휩쓸려 김만수 시장의 부천시로 연고지를 옮기게 되었다.
  • 울산시민야구단 문제: 현대상운에 선수들을 채용하여 운영하던 울산시민야구단은 선수들의 주말 교대근무, 원거리 원정경기 부담, 교통사고 발생 등으로 리그 참여에 어려움을 겪었다.
  • 군산시민야구단 문제: 타타대우상용차에 선수들을 채용하여 운영한 군산시민야구단은 지역 통합 야구조직과의 협력 문제, 생활체육야구 대회 일정 등으로 지방 원정경기 불참으로 창단이 보류되었다.


3년간 실업야구 시범리그 운영을 통해 얻은 성과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분석된 자료와 운영 노하우였다. 선수 취업보다는 내실있는 팀 창단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충청권을 포함한 중부권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4개 구단 체제로 가기로 대한야구협회와 조율했다.

지원을 자처한 충남은 충청남도에 전국대회 개최 가능한 규격 야구장이 없는 현실을 감안, 대전일보 남재두 회장과 남상현 사장, 김종민 전 충청남도 정무부지사 등이 저비용 구조의 실업 팀 창단 필요성을 강조하고, 전국 지자체 초청 설명회 등을 통해 실업야구 참여를 유도했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프로축구팀이 없는 지역적 약점을 고려, 실업야구를 통해 저비용 지자체 스포츠구단 운영 가능성을 타진했다. 2016년 아산시 전국체전을 유치한 충남도청은 전국체전 준비와 함께 장기적으로 다양한 선진 마케팅을 활용하고자 내포신도시 개발을 연맹에 홍보 협조 요청했다.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충청남도를 우선하여 생활체육 여건 개선과 인프라 확충에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2년간 시범운영 기간 중 일부 선수들이 조기 퇴직했지만, 각 구단별 5~6명씩 약 30명의 선수들이 구미, 청주, 대전 및 수도권 기업체에 신규 취업했다. 특히 현대알루미늄은 논산 공장 건립 후 야구선수 출신을 채용하기로 했고, 인탑스 등 기업은 야구선수 출신 직원을 채용했다.

2009년 하반기부터 연맹 결성 준비, 트라이아웃을 통한 선수 선발, 초기 창단 팀 훈련에 조성민이 기여했다. 일본야구연맹(JABA) 방문, 국제교류 준비에도 힘썼으며, 진필중, 김경호, 유영준 등이 선수 취업 관련 우수선수 추천에 협조했고, 양상문, 이정훈, 송인식 등도 자문 지원했다.

3. 4. 2014년 ~ 현재: 독립리그와의 관계 모색 및 미래 준비

2014년,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을 위한 논의에 참여했다. 경기도청과 독립리그 운영 주체 구성 및 구단 스폰서 기업 유치 방안을 협의했고,[1] 4월에는 경기도청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협동조합 형태의 독립구단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1] 12월에는 제2기 회장단을 선출하고 경기도청과 공동으로 독립리그 운영 방안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1]

2015년 2월, 연맹은 고척돔구장 개장 기념 실업야구 부활 리그 출범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안건으로 정기총회를 개최했다.[1] 11월, 대한야구협회와의 실업야구 부활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연맹은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1]

2016년 3월, 연맹은 이사회를 통해 대한야구협회 내분 사태에 따른 연맹의 방향성을 논의했다.[1] 11월에는 실업팀 창단 대신 연천 미라클 등 독립야구단 4개 팀으로 2017년 시범 운영 리그를 출범하기로 조건부 협의했다.[1] 이는 실업팀 창단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KT가 수원시, 경기도와 함께 추진한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은 실업야구연맹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1] 수도권에는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독립리그 팀이, 지방에는 실업팀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두 리그를 통합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했다.[1]

그러나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은 실업야구에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1] 고양 원더스로 선수들이 몰리면서 실업야구팀의 전력이 약화되었고,[1] 독립리그 창단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에 협력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다.[1]

4. 조직 및 운영

한국실업야구연맹의 회장단은 기업 스폰서십 협약 기간이 일반적으로 4년 이상 불가능하여 임기가 조정되었다.

1기 회장단 및 임원진(2011년 6월 ~ 2015년 6월)은 다음과 같다.


  • 명예회장 - 남재두(1939년생, 대전일보 회장, 前 3선 국회의원, 前 한국관광공사 이사장, 경기고-연세대 졸업)
  • 회장 - 남상현(1972년생, 대전일보 사장,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원 졸업)
  • 자문위원 - 김종민(1964년생, 現 국회 기재위 소속 국회의원, 前 충남정무부지사, 청와대 대변인, 서울대 국문과 졸업) / 지방자치단체 협력 자문
  • 상근 부회장 - 김재구(1943년생, 現 원테크놀로지 회장, 총신대 신학과(원) 졸업, 現 베이스볼코리아 대표)
  • 비상근 부회장 - 하일(1944년생, 前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 '한국야구100년사' 저자, 부산고-명지대 졸업, KBO 야구박물관 건립 시까지 활동 중단)
  • 비상근 부회장 - 박준호(1964년생, 現 열린기술 대표이사, 서울대 화학과 졸업)
  • 비상근 부회장 - 정석종(1963년생, 現 온고테크 대표이사, 항공대 경영학과 졸업)
  • 전무이사 - 정재호(1950년생, 前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장, 중동고-한양대 국문과 졸업)
  • 사무국장 - 오경삼(1941년생, 前 영락교회 총무팀장, 前 군산고 교사, 숭실대 영문과 졸업)


기술이사, 경기이사, 심판이사 등 실무 이사진은 2017년 공식적인 독립야구리그 출범 전에 야구계 인사 추천 후 결정될 예정이었다.

2기 회장단 및 임원진(2015년 6월 ~ 현재)은 박준호, 정석종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며, 상위 단체인 대한야구협회 내분 수습이 되는 2016년 12월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단이 선출될 예정이었다.

4. 1. 설립 목적

한국실업야구연맹의 설립 목적은 다음과 같다.

목적
저비용 고효율 실업스포츠 팀 운영 사례 전파
기초지자체 대상 시민야구단 창단, 볼거리 제공
향토 출신 야구선수 진로 개척 지원


4. 2. 주요 역할


  • 실업야구 대회 개최 및 운영 (정규 시즌 연간 5개 대회 개최)[1]
  • 실업야구 선수 취업 기회 부여 (각 구단별 매년 최소 5명 이상 신규 채용 의무화)[1]
  • 실업야구 선수 신인 선수 지명, 선발 및 채용 (추천서 평가, 비공개 테스트 포함)[1]
  • 실업야구 선수 오리엔테이션 및 기초 직무 교육 과정 개설 (동계 기간 중 주말 강좌)[1]
  • 연고 지자체와 협력을 통한 상호 업무 역할 분담 (지역 홍보대사 등)[1]
  • 학원 야구(초, 중, 고교 및 대학)를 제외한 성인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단체로서 순수 아마추어 정신에 따라 주로 아마야구 선수 진로 개척 지원을 위한 공익 사업 위주로 활동하며, 궁극적으로 대학 야구와 프로야구 리그와 별도로 지자체가 참여하여 지역민에게 수준 높은 세미프로 리그급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 지역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기능을 포함한다.[1]

4. 3. 조직 구조

한국실업야구연맹은 다음과 같은 조직 구조로 운영될 예정이다.

  • 지방 자치 단체장(구단주), 취업 등 후원 참여 기업, 지역 야구인(엘리트 및 생활 체육 구분 없는 통합 조직), 지역 기업 관련 단체 및 시민 단체가 참여한다.
  • 2012년부터 시의회를 통해 예산을 반영하여 신규 선수를 채용하고 우수한 코칭스탭을 영입하여, 실업야구리그에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별 최소 분담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감독 또는 우수 선수 2명 급료 규모)[1]


선수 취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구단 가입 및 입단 후 훈련 및 경기 출전.

2. 구단 내 추천 확정 후, 연맹 임원진 1차 면접.

3. 1차 면접 통과 후, 취업 대상 기업 임원진 2차 면접.

4. 최종 합격 통보 후, 기초 직무 교육 과정 이수.

5. 이후 취업 대상 기업 출근 (대체로 연초 1, 2월 및 추석 이후 취업 시기 집중).[1]

4. 4. 재정

한국실업야구연맹은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실업 야구 관련 예산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1] 2012년부터 김재구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스폰서십을 지원하고 있으며, 스폰서십의 대부분은 연맹 임원진 관계 법인으로부터 후원받고 있다.[1] 2014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참여 지자체에서 시민 야구단 지원금을 50% 이상 책정하여 재정 상황이 나아질 예정이었다.[1]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4개 구단 취업 선수 기준 21500000KRW, 4개 준회원 구단 취업 선수 포함 기준 24700000KRW이다.[1] 최저 연봉은 입사 2년 차 기준 16100000KRW, 최고 연봉은 생산직 10년 차 기준 47000000KRW이다.[1] 최근에는 18000000KRW 안팎의 연봉 수준으로 입사하며, 구미시의 경우 생산직은 20000000KRW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1]

구분내용
선수 취업률72% (군 미필 계약직 선수 포함)[1]
미취업 선수프로 입단 지망생 구단별 평균 4~5명[1]
프로 입단 배출시범 운영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고양 원더스에 총 6명 배출[1]



상임 임원 4인 및 사무국 스탭 4인의 급여, 사무실 운영비, 업무 추진비 등 인건비 예산은 소속 상위 단체의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절감 방안을 강구 중이었다.[1] 2013년부터 고려대학교 구장 일요일 대관을 통해 운영 경비 일부를 보조할 예정이었으나, 여의치 않아 2014년 이후 검토 중이다.[1]

각 구단 선수 관리, 훈련/용품 지원 관련 예산은 각 구단 운영진의 연맹 의존도가 높아, 향후 재정 자립을 하지 못할 경우 대회 출전 처리를 할 예정이다.[1]

각 시즌별 대회 개최비 및 구단 선수 지원 관련 예산은 현재 대회를 치르는 형식적인 예산만 지출되고 있다.[1] 관중 동원을 위한 추가 마케팅은 어려운 상황이며, 구단이나 대회(홈 경기) 홍보를 위해서는 각종 인쇄 매체나 언론 노출이 많은 지자체가 필요한 실정이다.[1]

4. 5. 선수 처우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처우를 제공한다.

  • 취업 희망자
  • 연중 수시 입사 기회를 부여한다. 단, 구단 가입 후 구단 운영진에서 추천할 경우에만 취업할 수 있다.
  • 군 미필자는 정규직 채용이 드물어 유통업체 등 계약직으로 입사 추천(1500만~2000만 수준)을 받는다. 군 필자로서 대학 졸업자는 최소 1800만 안팎부터 시작하며, 지방 생산직의 경우 초봉 2000만 이상인 경우가 많다.
  • 프로 지망생
  • 분기별 비공개 테스트를 거쳐 가입단 후 계약선수로 활동한다. 훈련 및 경기 활동일이 연간 240일 경우 1200만의 급여를 지급한다.
  • 유니폼 제공
  • 연습 구장 제공
  • 선수 회비 면제
  • 훈련비 지급 (구단 기여도에 따라 차등 적용 예정)
  • 경기 및 훈련 시 식음료 제공
  • 교통편 (전세버스 이용), 숙박처 (원정 숙박하는 경우 2인 1실) 제공
  • 야구 용품 제공 (나무 배트, 야구공, 가방 外)
  • TV CF 광고 출연 기회 부여 (광고 대행업체와 현재 협력 중)
  • 해외 전훈 기회 부여 (선발자 해당)
  • 가입단 후, 취업 기회 우선 부여
  • 동계 기초 직무 교육 강좌 개설 참여 기회 부여

5. 참가 야구단

2017년 상반기까지 4개 연고 지자체와 지역 연고 협약을 체결하고, 2017년 하반기 공식 실업/독립 리그 출범 시점에 정회원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었다.

5. 1. 2011년 ~ 2013년 시범경기 참가 구단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실업야구연맹 시범경기에 참가한 구단은 다음과 같다. 2017년 상반기까지 4개 연고 지자체와 지역 연고 협약을 체결한 후, 2017년 하반기 공식 실업/독립 리그 출범 시점에 정회원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었다.

권역구단명구성운영 주체
수도권부천시민야구단부천고 출신 및 경인 지역 고교/대학 출신 선수 20명장명진 이사 (폴리트론 소속)
충청권청주시민야구단청원 및 논산 소재 구 한민대 야구부, 단국대, 원광대 등 인근 연고 선수 20명배재섭 부장 (동양강철 소속)
영남권구미시민야구단구미 공단 내 기업체 근무자, 포철공고 및 대구, 경북 출신 선수 20명전수열 부장 (LS전선 소속)
영남권울산시민야구단현대 계열 현대상운 직원이 다수, 원거리 원정 경기 과다로 대회 참가 보류 후 활동 재개 (운영진 재구성 중)(운영진 재구성 중)
중부권원주시민야구단춘천고 야구부 재창단 등의 시도로 기존 원주고 출신 시민야구단을 연고 이전할 계획
호남권군산시민야구단타타대우상용차 근무 직원 10명, 지방 원정 경기 불가로 참가 제한


5. 2. 2017년 창단 예정 구단

2017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창단이 검토되었다.[1] 2018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 예정자 중에서 추가로 선수를 영입하고, 시범 운영 중인 4개 팀에서 선수를 선발하여 한국 대표팀으로 구성할 계획이었다.[1]

6. 실업야구 부활 노력과 과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실업야구 부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여러 과제에 직면했다. 2008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지원과 박영길 전 롯데 감독 주도로 연맹 출범이 추진되었으나,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와의 갈등, 재정 문제, 대한야구협회와의 관계 설정 등 난관에 부딪혔다.[1]

대한야구협회와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2009년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박영길 회장과 김양경 부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연맹은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와 신월야구장 사용권 분쟁을 벌였고, 협회 감사 결과 등록이 취소되었다.[1] 2015년 대한야구협회장(박상희)과의 실업야구 부활 논의가 결렬되면서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1]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은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KT수원시, 경기도의 독립리그 출범 발표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수도권 독립리그와 지방 공단 도시 시민야구단(실업팀) 통합 운영을 구상했다.[1] 그러나 고양 원더스로 인한 실업야구팀 선수 이탈로 전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고, 독립리그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1]

결국 한국실업야구연맹은 실업야구 부활을 위한 독자 노력과 함께, 독립리그와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6. 1. 실업야구 부활 과정

2008년 12월, 한국야구위원회(KBO) 하일성 사무총장의 지원 속에 박영길(전 롯데 감독)이 주도하는 실업야구연맹 출범 합의 및 지원이 확약되었다. 같은 달, 최주억(전 롯데자이안츠 수석코치,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이사)은 실업야구연맹 출범 소식을 전하며 직장야구리그와 연계하여 발전시킬 것을 권고했다. 당시 한국직장야구연맹(회장: 표삼수/KT 사장)은 최주억의 제안을 높이 평가하여 수락했고,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의 회동이 성사되었다.[1]

2009년 1월, 최주억 전 리틀야구연맹 전무의 주선으로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과 회동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박영길 회장은 전국 주요 6개 도시 공단지역에서 개최 중인 직장야구리그에서 선수 출신을 연평균 20명 이상 취업시키던 상황을 협력하여, 전국 300개 참가 팀을 선수 출신 보유 숫자에 따라 K3, K2, K1 리그로 구성하여 실업야구연맹을 출범시키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1]

2009년 2월, 대한야구협회 이상현 사무처장의 추천으로 박영길이 이끌던 실업야구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3월에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 부활 추진단체(대표: 박영길 / KBBF) 트라이아웃에 초청되어 관전했고, 하일성과 첫 만남을 가졌다. 하일성은 향후 연맹 부회장으로 영입 제안을 했고, 이는 수락되었다.[1]

2009년 5월, 대한야구협회 추천 실업야구 부활 추진단체인 실업야구연맹(회장: 박영길 / KBBF)이 개최한 1차 대회에 광명전기 팀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6월에 열린 2차 대회에는 불참을 결정했는데, 개막식 후 선수 출신이 1명인 사회인 팀과 경기를 하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거부했다.[1]

2009년 9월,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박영길 회장과 김양경 부회장이 이끌던 실업야구연맹은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와 신월야구장 사용권을 놓고 분쟁하다 협회 감사 결과 등록이 취소되었다.[1]

2009년 10월, 강승규 협회장의 새로운 구단 운영 및 운영 단체인 연맹 출범 결정 후, 1차 트라이아웃을 개최하여 선수 40명을 선발했다. 11월에는 2010년 시즌 시범 운영 실업팀 활동 선수 선발 및 연맹/취업 지원 협력 업체 간 협약을 체결했다.[1]

2010년 1월, 가칭 한국실업야구연맹(KABA) 임시 사무실 개소식이 열렸다. 3월에는 2차 트라이아웃을 개최하여 독자적으로 선수 40명을 선발했다. 4월에는 시범 운영 대회 참가 구단 이사회를 개최했고, 5월에는 첫 시범 대회를 개막했다.[1]

2010년 6월, 대한야구협회 초청 시범 운영 대회 추진 보고회를 개최했다. 7월에는 한국실업야구연맹 임원진이 일본야구연맹(JABA)을 방문하여 일본 실업야구를 견학했다. 10월에는 한국실업야구연맹 2010년 하반기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김재구 회장 대행 체제로 조직을 구성했다.[1]

2011년 1월, 대한야구협회 정기총회 및 이사회 의결을 통해 회원 단체로 승인되었다. 2월에는 연맹 2010년 상반기 이사회를 개최하고, 남재두 대전일보 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같은 달, 시범 운영 실업팀 선수단 20명이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을 시행했다.[1]

2011년 3월, 연맹 2011년 상반기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4월에는 연맹 4개 구단 전용 훈련 인조 잔디 야구장을 개장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연맹 본부 사무실을 강남구 논현동에 개소하고 충청남도청과 업무 제휴를 맺었다. 같은 달, 아랍에미레이트 국영 에티하드 항공 2011 실업야구 춘계리그를 개최했다.[1]

2011년 6월, 연맹 이사회를 개최하고 남상현 대전일보 사장을 공식 회장으로 추대했다. 7월부터 9월까지는 동양강철회장배 2011 실업야구 하계리그를 개최했고, 10월부터 11월까지는 대전일보사장배 2011 실업야구 추계리그를 개최했다. 11월에는 충청남도지사배 제1회 종합야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1]

2012년 1월, 연맹 이사회를 개최했다. 5월에는 대전일보사장배 2012 실업야구 춘계리그를 개막했다. 7월에는 연맹 2012년 임시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10월에는 연맹 이사회를 개최하여 2012년 하반기 정기총회 안건을 심의했다.[1]

2012년 11월, 충청북도 보은군 연고 신규 창단 보은제약 실업 야구단과 업무 협의 요청을 받았지만, 팀 자체 방향성이 불투명하고 재정 방안과 전용 구장이 없어 연맹 가입을 보류했다. 같은 달, 충청남도지사배 제2회 종합야구선수권대회는 우수 선수 불참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12월에는 독립리그 훈련 구장으로 고려대학교가 낙찰되어 구장 사용 협약을 체결했다.[1]

2013년 1월, 연맹 이사회를 개최했다. 2월에는 경기도와 협의하여 단일 기업 실업팀 창단 계획을 발표하고, 2015년부터 독립리그를 출범하기로 계획을 수립했다. 3월에는 독립리그 출범을 위해 단일 기업 실업팀 창단 계획 및 고척동 돔구장 개장 기념 독립리그 출범(2015년 3월) 계획을 수립했다.[1]

2013년 4월, 시범 운영 실업팀 통합 훈련 구장(고려대학교) 인조 잔디 포설 및 전광판, 덕아웃, 안전망 등 공사를 착수했다. 5월에는 고려대학교 야구장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했다. 6월에는 논산시 소재 동양강철 그룹 현대알루미늄 신축 공장 직원으로 10~20명을 채용하여 논산시 또는 인근 시민 야구장이 건립된 공주시 연고 창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1]

2013년 6월, 포항야구장에서 시범 운영 마지막 대회인 동양강철배 제3회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를 시작했다. 7월에는 경기도청 초청으로 실업야구 시범 운영 현황 브리핑 및 향후 독립리그 운영 시 수도권 및 영남권 2개 리그 우선 출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9월에는 독립리그 출범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했다.[1]

2013년 10월, 고려대학교 야구장에서 시범 운영 마지막 대회인 동양강철배 제3회 전국실업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12월에는 연맹 이사회 및 정기총회를 개최했다.[1]

2014년 3월,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 공청회에 참가하고, 경기도청과 출범 단일 주체 구성 및 구단 스폰서 기업 유치 관련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4월에는 경기도청의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협동조합 형태 수도권 주요 구장을 보유한 클럽 리그 회원을 독립 구단 주주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협의했다. 12월에는 제2기 회장단 선출 및 경기도청과 공동으로 경기도지사를 포함한 독립리그 운영 방안에 대한 해당 지역 지자체 단체장과 간담회를 개최했다.[1]

2015년 2월, 고척동 돔구장 개장 기념 실업야구 부활 리그 출범을 위한 각 주체 간 협의체 구성 등을 포함한 안건으로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7월에는 연맹 사무실을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 개소했다. 11월에는 대한야구협회장(박상희)과의 실업야구 부활에 대한 논의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오자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1]

2016년 3월, 여의도 CBRE 빌딩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대한야구협회 내분에 따른 연맹 방향성을 논의하고 의결했다. 11월에는 현실성 떨어지는 실업팀 창단보다 창단이 수월한 연천 미라클 등 독립야구단 4개 팀으로 2017년 시범 운영 리그를 출범하기로 조건부 협의했다. 12월에는 정기총회를 통해 신임 회장단 선출은 물론, 2017년 가을 첫 창단 추진 중인 실업팀에 대한 운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1]

6. 2. 경기도 독립리그와의 관계

대한야구협회 산하단체로서 3년간 시범 운영을 거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2016년경 실업야구리그 출범을 계획했다. 이는 대한야구협회장 이병석 국회부의장의 협회 운영 방향과도 일치했다. 특히, 한국실업야구연맹의 추천으로 대한야구협회장 출마 시 독립리그 출범을 약속했던 김은영 대한야구협회 부회장과, 실업야구 부활을 강조한 박노준 기획이사의 선임은 실업야구 출범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1]

KT수원시, 경기도와 함께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을 발표하면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더욱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수도권에는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독립리그 팀(고양 원더스)이, 지방 공단 도시에는 시민야구단(실업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 리그를 통합 관리하여 특색 있게 운영하려는 구상을 했다.[1]

그러나 경기도의 독립리그 출범은 실업야구 출범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고양 원더스로 인해 실업야구팀에서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던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실업야구팀의 전력 유지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관중 확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이 필수적이었다.[1]

이에 따라 수도권에 독립리그가 출범하면 실업야구는 독립리그 방식으로 통합되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실업야구연맹은 독립리그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제기했다. 고양 원더스 수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독립구단이 추가로 창단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KT스포츠단의 핵심 임원은 한국실업야구연맹 관계자에게 독립리그에 대한 관심과 예산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1]

경기도청은 2013년 8월 독립리그 출범 연구용역 공고 전 한국실업야구연맹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실업야구연맹의 시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연간 12억대 규모의 저비용 독립구단 창단 구상을 수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경기도 독립야구리그 출범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특정 단체 위주의 야구인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2014년 3월 공청회에서 경기도가 출범 시점을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늦춘 점이 그 이유였다.[1]

결론적으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경기도 독립야구리그가 현 도지사의 치적을 위한 전시 행정으로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경기도 독립리그 출범을 위해 협력하고 지원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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