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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황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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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석산성은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소백산맥을 넘어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개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으며, 동, 서, 남, 북동쪽에 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시기, 이원익이 왜군에 맞서 성을 지키려 했으나 백사림의 배신으로 함락되었으며, 조종도와 곽준 등 많은 이들이 전사했다. 1987년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322호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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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황석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명칭
이름함양 황석산성 (咸陽 黃石山城)
일반 정보
유형사적
지정 번호322
지정일1987년 9월 18일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산153-2번지
시대고려시대
면적446,186m2
꼬리표함양 서하면 봉전리
추가 정보
문화재청 ID13,03220000,38
이전 지정 정보
국가 (이전)경상남도
유형 (이전)기념물
번호 (이전)12
지정일 (이전)1974년 2월 16일
해제일 (이전)1987년 9월 18일
문화재청 ID (이전)23,00120000,38
이미지
함양 황석산성

2. 역사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으로,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는 큰 전투가 있던 곳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체찰사 이원익은 황석산성이 호남영남을 잇는 요충지라 판단하여 왜군을 방어하고자 했다. 그러나 조방장 백사림이 도망가면서 성이 함락되었고, 함양군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전사하였다. 현재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아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2]

2. 1. 삼국시대 ~ 조선 초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때는 큰 전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성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으로 쌓은 부분으로 되어있고, 문은 동·서·남·북동쪽에 있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엔 성의 둘레가 29,240척(약 8.9km)이며, 성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2]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체찰사 이원익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으로 통하는 관방의 요새지인 이 성이 호남영남을 잇는 요새로 왜군이 반드시 이곳을 지날것으로 판단하고 인근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방장 백사림이 성을 넘어 도망하자 왜군이 난입하여 끝까지 싸우던 전 함양군조종도와 전 안의현감 곽준이 장렬히 전사하였고, 부녀자들은 절벽에 투신 자결하여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피바위가 남아있다. 돌로 쌓은 성벽은 둘레가 2.5km나 되고 높이가 3m이며 성내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흐르고 있다.[2]

2. 2.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당시 체찰사 이원익은 황석산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충지임을 알고 왜군이 반드시 이곳을 지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인근 주민들을 동원하여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2]

그러나 조방장 백사림이 성을 넘어 도주하는 바람에 왜군이 성 안으로 난입했고, 끝까지 싸우던 전 함양군조종도와 전 안의현감 곽준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부녀자들은 절벽에 투신하여 자결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피바위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2.5km, 높이가 3m나 되고, 성 안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흐르고 있다.[2]

3. 구조

황석산성은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때는 큰 전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성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으로 쌓은 부분으로 되어있고, 문은 동·서·남·북동쪽에 있었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성의 둘레는 8.9km이며, 성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2]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이 침입하자 이원익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판단해 주민들과 성을 지켰으나, 백사림이 도망가자 결국 함락되었다. 현재도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기에 전략적으로 가치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2]

이 성은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으로 통하는 관방의 요새지에 축조된 삼국시대부터의 고성이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수축한 바 있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때에 커다란 싸움이 있었던 유서 깊은 성터이다. 돌로 쌓은 성벽은 둘레가 2.5km이고 높이가 3m이며, 성 안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흐르고 있다.[2]

4. 기타

(섹션 제목, 요약, 하위 섹션 내용은 출력하지 않습니다.)

4. 1. 백사림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전투에서 조방장 백사림은 성을 넘어 도주했고, 이로 인해 왜군이 성 안으로 쳐들어오게 되었다.[2] 이 때 전 함양군수 조종도와 전 안의현감 곽준은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고, 부녀자들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2] 지금도 황석산성에는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피바위가 남아있다.[2]

4. 2. 조종도, 곽준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전투에서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인물들이다. 당시 조종도는 전 함양군수였고, 곽준은 전 안의현감이라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2] 왜군이 황석산성을 침입했을 때 조방장 백사림이 성을 넘어 도망쳤지만, 조종도와 곽준은 끝까지 남아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2]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1-07-28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3]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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