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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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학 혁명은 연금술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화학을 발전시킨 일련의 변화를 의미한다. 연금술 시대에는 비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과학 혁명 이후에는 화학 반응과 화합물을 재현 가능한 개념으로 정리하고 정량화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화학 원론'을 통해 화학의 명명법을 정립하고 질량 보존 법칙을 제시하며 화학 혁명을 이끌었다. 이후 험프리 데이비, 존 돌턴,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 등의 연구를 통해 원자론과 전기화학적 이론이 발전했으며, 이는 화학 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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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혁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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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혁명 | |
영향 받은 분야 | 화학 연금술 의학 물리학 광물학 |
주요 인물 | 로버트 보일 앙투안 라부아지에 존 돌턴 조제프 프루스트 칼 빌헬름 셸레 조지프 블랙 헨리 캐번디시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아메데오 아보가드로 존 메이오 스티븐 헤일스 게오르크 에른스트 슈탈 에밀리 뒤 샤틀레 |
주요 아이디어 |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의 거부 화학량론 원소와 화합물의 구별 정량적 방법 질량 보존 법칙 원자 이론 |
연대기 | |
1661년 | 로버트 보일의 《회의적 화학자》 출판 |
1718년 | 에티엔 프랑수아 조프루아의 친화력표 |
1754년 | 조지프 블랙이 이산화 탄소를 분리함 |
1766년 | 헨리 캐번디시가 수소를 분리함 |
1774년 |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분리함 |
1777년 | 칼 빌헬름 셸레가 산소가 연소에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함 |
1787년 |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화학 명명법 방법》 출판 자크 샤를의 샤를 법칙 |
1789년 |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화학 원론》 출판 |
1803년 | 존 돌턴의 원자 이론 |
1808년 |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의 기체 반응 법칙 |
1811년 |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아보가드로 법칙 |
2.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근대 이전에도 인류는 화약, 강철 등 여러 화학 지식을 이용했다.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되어[25] 이슬람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고[26], 강철은 세계 곳곳에서 독자적으로 제작되었다.[27] 그러나 이러한 화학 기술은 오랜 경험에 기반했지만, 일관된 설명이 없어 비과학적이었다. 중국에서는 도교의 영향으로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드는 연단술이 성행했고[28], 유럽에서는 금을 만들고 현자의 돌을 얻으려는 연금술이 있었다.[29]
화학 혁명은 새로운 사실 발견보다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한다. 1620년 네덜란드 출신 연금술사 코르넬리위스 드레벨은 자신이 발명한 잠수함을 템스강 아래로 3시간 동안 잠수시켰다. 그는 잠수함 안에서 숨을 쉬기 위해 초석을 가열하여 산소를 공급했다. 산소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200년 전에 이미 공기 속에 숨쉬기에 필요한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정립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량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화학 혁명 이후에나 가능했다.[36]
2. 1. 과학 혁명과 화학
16세기 이후 과학 혁명 과정에서 아이작 뉴턴[30], 티코 브라헤[31]와 같은 과학자들도 연금술에 관심을 가졌다. 근세 유럽에서 의학이나 약학에 관한 실험은 모두 연금술로 취급받았다.[31] 연금술의 실험 방법, 측량법 등은 현대 화학 형성에 기여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근세 유럽은 이슬람 세계의 과학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였으며, 이 과정에서 연금술의 방법과 기술도 도입되었다.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알코올, 알칼리(염기)와 같은 말은 아랍어에서 기원한 것이다.[32]2. 2. 과학적 방법론의 도입
16세기 이후 과학 혁명의 과정에서 엄밀한 과학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연금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이작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고[30], 티코 브라헤 역시 그의 천문대에 연금술 실험실을 마련하였다.[31] 근세 유럽에서 의학이나 약학에 관한 실험은 모두 연금술 취급을 받았다.[31]그러나, 과학적 방법의 도입으로 연금술은 점차 화학으로 변화해 갔다.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설 논쟁에서 보이듯 화학 반응과 화합물을 재현 가능한 경험론적 개념으로 정리하려 하였고, 측정하고자 하는 요소들을 특성화하고 정량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장앙드레 드뤽(:en:Jean-André Deluc)은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연소 이론을 강하게 거부하였고, 비는 공기가 물로 변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스스로 기압계를 들고 알프스산에 올라 고도에 따른 기압의 차이를 측정하는 경험론자였다.[33]
2. 3. 화학 혁명의 주도 세력
과학 혁명은 과학 주도권에 대한 "체제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근대 이전의 공식적인 과학 활동이 가톨릭이 소유한 대학의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면, 새로운 과학은 세속적이고 상업적인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34] 화학 혁명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젠트리 엘리트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로버트 보일이나 앙투안 라부아지에 등의 연구자들은 영국의 왕립학회나 프랑스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같은 새로운 과학 엘리트 집단의 구성원이었다.[35]3. 화학 혁명의 주요 요인
화학 혁명을 이끈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연금술에서 비롯된 중량 분석 형태와 의료 및 산업 분야에서 개발된 새로운 종류의 기기가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화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시한 가설에 점점 더 이의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화학자들은 모든 구조가 그리스의 4가지 원소 또는 중세 연금술사들의 8가지 원소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연금술사 로버트 보일은 연금술 세포설과 과학적 방법에 크게 의존하는 기계론적 입자 철학으로 화학 혁명의 토대를 마련했다.[6][7]
얀 바티스타 판 헬몬트와 같은 화학자들의 초기 연구는 공기가 단일 원소로 존재한다는 이론에서 공기가 별개의 가스 혼합물로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8] 판 헬몬트의 데이터 분석은 또한 그가 17세기에 질량 보존의 법칙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8] 17세기 초 장 레이 (의사)의 주석과 납과 같은 금속에 대한 연구와 공기 및 물의 존재 하에서의 산화는 산화 과정에서 산소의 기여와 존재를 정확히 지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9]
18세기 중반 조지프 블랙에 의한 '고정 공기'(이산화탄소)의 발견은 '공기'가 단 하나의 물질로 구성되지 않으며, '가스'를 중요한 실험 물질로 확립했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18세기 말에는 헨리 캐번디시와 조지프 프리스틀리의 실험을 통해 공기가 원소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가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더욱 입증되었다.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화학 물질의 이름을 19세기 과학자들에게 더 매력적인 새로운 명명법 언어로 번역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대중의 화학 학습 및 실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3. 1. 중량 분석과 새로운 실험 기법
연금술에서 비롯된 중량 분석 방식에 의학과 산업의 발달에서 비롯된 새로운 도구들이 도입되었다. 화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사대 원소설이나 중세 연금술사들의 팔대 원소설보다 더 많은 원소들이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아일랜드의 연금술사 로버트 보일은 기계론적 소립자 이론으로 화학 혁명의 기반을 닦았다. 보일의 소립자 이론은 여전히 연금술적 사상에 가까웠으나 실험에 있어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화학 연구의 길을 열게 되었다.[37]18세기 중반 조지프 블랙이 "굳은 공기"(이산화탄소)를 발견하면서 사용한 새로운 실험 기법도 화학 혁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 발견은 공기가 단일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써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그저 공기라고 부르던 대상은 이제 여러 가지 기체로 나뉘어 불리게 되었다. 18세기 말 헨리 캐번디시와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공기가 단일한 원소가 아닌 몇 가지 기체의 혼합물임을 증명하였다.[38]
3. 2. 기체 화학의 발전
얀 바티스타 판 헬몬트와 같은 화학자들의 초기 연구는 공기가 단일 원소가 아닌 별개의 기체 혼합물이라는 개념으로 변화하는 데 기여했다.[8] 조지프 블랙의 "굳은 공기"(이산화탄소) 발견은 공기가 단일 물질이 아님을 증명했다. 18세기 말 헨리 캐번디시와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실험을 통해 공기가 단일 원소가 아닌 여러 가지 기체의 혼합물임을 증명하였다.[38]3. 3. 정밀한 기구의 발전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화학 실험을 정량화하고 수학을 도입하여 화학을 "좀 더 엄밀한 과학"으로 발전시켰다.[39] 그는 연구에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평형표를 작성하고 화학종의 변화 전 과정에서 질량이 보존되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화학 연구 분야를 바꾸었다. 라부아지에는 온도계, 기압계뿐만 아니라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와 함께 제작한 열량계를 화학 반응 측정에 도입하였다.[39]화학 혁명의 과정에서 수많은 도구들이 개량되거나 새롭게 도입되었다. 어떤 도구들은 측정하고자 하는 특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온도계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온도계는 눈금의 단위와 온도의 표시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정량적 표현을 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1742년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물의 끓는점을 0 °C로, 어는 점을 100 °C로 정의한 섭씨 온도를 제안하였고,[40] 이후 1745년에 칼 리네우스(Carolus Linnaeus)는 물의 어는점을 0 °C로, 끓는 점이 100 °C로 바꾸어 정의하였다. 그러나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은 기압에 따라 달라졌고, 과냉각과 같이 어는점 아래에서도 얼음이 되지 않는 현상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41] 온도에 대한 정의와 측정 도구의 개발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교화되었다.
플로지스톤 이론을 해체하고 자신의 연소 이론을 구현하기 위해 라부아지에는 여러 장치를 활용했다. 여기에는 물을 통과시켜 분해하도록 설계된 붉게 달궈진 철제 총신과, 한쪽 끝에 공압조, 온도계 및 기압계를 설치한 장치의 변형이 포함되었다. 그의 측정의 정확성은 물을 화합물로 보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대 의견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이었으며, 이는 그가 직접 설계한 기기를 연구에 적용하면서 이루어졌다.
4. 앙투안 라부아지에와 화학 혁명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화학 분야를 수학화하고 정밀한 실험 방법을 도입하여 화학 혁명을 이끌었다.[11] 그는 꼼꼼한 수지 계산과 정밀한 측정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으며,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와 협력하여 반응열을 측정하는 열량계를 발명했다.[11]
라부아지에는 플로지스톤 이론을 반박하고 자신의 연소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 장치를 사용했다. 물을 분해하는 실험 장치 등 정교한 기기를 직접 설계하여 연구에 활용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의 연구는 조지프 프리스틀리 등 플로지스톤 이론 지지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그들은 라부아지에의 실험이 단지 현상을 보여줄 뿐이며, 이론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11]
1789년 라부아지에의 ''화학 원론'' 출판은 화학 혁명의 후기 단계를 촉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종합하고 "산소"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라부아지에는 체계적인 무게 측정과 정밀성, 정확성을 강조했다.[12] 비록 질량 보존 법칙이 라부아지에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반박되었지만,[13] 그의 연구는 이 원리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라부아지에는 연소와 호흡을 이해하고 물의 조성을 증명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는 열소 이론을 제시하며 플로지스톤설에 이의를 제기했다. 라부아지에의 ''화학 원론''은 "새로운 화학"의 개념을 통합하고, 그의 결론으로 이어진 실험과 추론을 설명하며, 뉴턴의 ''프린키피아''처럼 화학 혁명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라부아지에의 연구는 즉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수십 년이 걸려 모멘텀을 얻었다.[14] 존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는 존 돌턴의 원자량 이론을 바탕으로 화학 화합물을 설명하기 위한 단순화된 약어를 고안하여 이러한 전환에 기여했다. 많은 사람들은 라부아지에와 그의 플로지스톤설 타파를 전통적인 화학 혁명으로 여기며, 라부아지에를 혁명의 시작, 존 돌턴을 그 절정으로 본다.
4. 1. 질량 보존 법칙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화학 반응 전후 물질의 총 질량이 보존된다는 질량 보존 법칙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다. 비록 마르셀랭 베르틀로에 의해 라부아지에가 질량 보존 법칙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반박되었지만, 라부아지에의 연구는 체계적인 무게 측정과 정밀성 및 정확성에 대한 강한 강조로 특징지어졌다.[12] 질량 보존 법칙에 대한 이전의 언급은 17세기 얀 반 헬몬트 등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라부아지에는 더 광범위한 실험을 통해 법칙을 확립했다.[13]4. 2. 연소 이론
18세기 유럽에서 연소에 대한 이론은 플로지스톤설이 주류였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실험을 통해 연소 후 물질의 질량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고 플로지스톤설을 폐기하였다. 그는 연소가 산소와 결합하는 화학 반응이라는 새로운 연소 이론을 수립하였다.[42] 라부아지에는 자신의 실험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온도계, 기압계, 열량계 등의 정밀한 측정 도구들을 사용하였다.라부아지에는 밀폐된 조건에서 연소가 일어나면 전체 질량이 보존되는 질량 보존 법칙 실험 결과를 제시하였고, 다른 과학자들의 반복된 재현 실험으로 검증되어 결국 플로지스톤설은 폐기되었다. 이로써 정량적 측정과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연구가 화학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었다.[43]
4. 3. 『화학 원론』과 화학 명명법
1789년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발간한 《화학 원론》은 화학 혁명의 중요한 이정표이다. 라부아지에는 이 책에서 산소, 질소, 수소, 인, 수은, 아연, 황과 같이 더 이상 화학적으로 분해할 수 없는 물질들을 원소로 정의하고, 당시까지 알려진 33개의 원소를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하였다.[44]그룹 | 원소 |
---|---|
동식물 및 광물계에 포함된 원소 | 산소, 수소, 질소, 빛, 열(칼로릭)[45] |
산을 만드는 원소 | 황, 인, 탄소, 염소, 플루오르, 붕산 |
염기를 만드는 원소 | 안티몬, 비소, 은, 구리, 주석, 아연, 철, 망간, 몰리브덴, 수은, 니켈, 금, 백금, 텅스텐 |
염을 만드는 원소 | 생석회(산화칼슘), 바라이트(산화바륨), 마그네시아(산화마그네슘), 알루미나(산화알루미늄), 실리카(이산화규소) |
라부아지에는 《화학 원론》에서 원소 분류와 함께 이전까지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물질명을 대체하는 새로운 화학 명명법을 제안하였다. 당시 화합물의 이름은 연금술에서 비롯된 것, 발견자의 이름을 붙인 것, 성질에서 유추한 것 등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황산칼륨은 그 형상이 버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안티몬의 버터'라고 불렸다. 라부아지에가 루이 베르나르 기통 드 모르보,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 앙투안 프랑수아 드 푸르크루아 백작과 함께 1787년에 출판한 『화학 명명법』(Méthode de nomenclature chimique)은 표준화된 용어, 새로운 원소 확립, 실험 연구에 중점을 둔 "새로운 화학"을 위한 용어를 확립했다.[15] 라부아지에의 화학 명명법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46]
라부아지에는 ''화학 원론''에서 "새로운 화학"에 대한 개념을 통합하고, 자신의 결론으로 이어진 실험과 추론을 설명하며, 플로지스톤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열소 이론을 제시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과학 혁명의 절정이었던 것처럼, 라부아지에의 ''화학 원론''은 화학 혁명의 정점으로 볼 수 있다.
5. 화학 혁명의 전개와 영향
화학 혁명은 19세기 말부터 근대 화학 산업과 결합하였다. 인공 비료의 발명[47], 석유화학의 발달[48], 나일론과 같은 인조 섬유의 발명은 제2차 화학 혁명으로 불릴 만큼 인류 역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5. 1. 험프리 데이비의 전기화학 연구
험프리 데이비는 1800년대 초 런던의 왕립 연구소에서 활동한 영국의 화학자이자 화학 교수였다.[19] 그는 염산을 사용하여 산성도가 산소의 존재 때문이 아님을 증명하고, 옥시염산 화합물이 산소를 포함하지 않고 대신 염소라는 원소임을 증명했다.[19]데이비는 왕립 연구소에서 전기 배터리를 사용하여 염소와 1813년에는 원소 요오드를 분리했다.[19] 또한 배터리를 사용하여 나트륨과 칼륨 원소를 분리했다.[19] 이러한 실험을 통해 데이비는 화학 원소를 결합하는 힘이 본질적으로 전기적이라고 결론지었다.[19]
5. 2. 존 돌턴의 원자론
존 돌턴은 화학 원소의 원자론을 발전시킨 영국의 화학자였다. 돌턴의 화학 원소 원자론은 각 원소가 해당 원소에 고유하고 특정한 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19] 이는 화학자가 더 간단한 부분으로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라부아지에의 원소 정의와 반대되는 것이었다.[19] 돌턴의 아이디어는 또한 모든 원자가 동일하다고 믿었던 입자설과도 달랐으며, 이는 17세기부터 지지받는 이론이었다.[19]자신의 아이디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돌턴은 1808년에 출판된 저서인 ''화학 철학의 새로운 체계''에서 화학 물질의 원자 상대 질량을 정의하는 연구를 했다.[19] 그의 텍스트는 화학 결합에서 다양한 원소의 상대적인 양에 관한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라부아지에의 다양한 원소의 상대적인 원자 질량을 결정하기 위한 계산을 보여주었다.[19] 돌턴은 원소들이 가능한 가장 간단한 형태로 결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9] 물은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돌턴은 물이 수소 1개와 산소 1개를 포함하는 이원 화합물이라고 믿었다.[19]
5. 3.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의 전기화학적 원자 이론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는 스웨덴의 화학자이다. 웁살라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스톡홀름에서 화학 교수를 지냈다.[19] 그는 데이비와 존 돌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원소가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대한 전기화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베르셀리우스는 원소를 분해될 때 갈바니 전지의 어떤 극에서 방출되는지에 따라 음성 전기를 띠는 원소와 양성 전기를 띠는 원소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19] 그는 산소를 가장 음성적인 원소로, 칼륨을 가장 양성적인 원소로 하는 전하 척도를 만들었다.[19] 이 척도는 일부 원소에 양전하와 음전하가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이 척도에서 원소의 위치와 원소의 전하가 그 원소가 다른 원소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결정했다.[19]베르셀리우스의 전기화학적 원자 이론에 대한 연구는 1818년 ''Essai sur la théorie des proportions chimiques et sur l'influence chimique de l'électricité''(화학 비율 이론과 전기의 화학적 영향에 대한 에세이)로 출판되었다.[19] 그는 또한 원소를 나타내기 위해 O는 산소, Fe는 철과 같은 문자와 약어를 사용하여 화학에 새로운 화학 명명법을 도입했다. 원소의 조합은 이러한 기호의 시퀀스로 표시되었으며, 원자 수는 처음에는 위첨자로, 나중에는 아래첨자로 표시되었다.[19]
5. 4. 화학 산업의 발전
화학 혁명은 19세기 말부터 근대 화학 산업과 결합하였다. 인공 비료의 발명[47]과, 석유화학의 발달[48], 나일론[49]과 같은 인조 섬유의 발명은 제2차 화학 혁명으로 불릴 만큼 인류 역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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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타임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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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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