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도 (방호순양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히라도는 1912년 취역한 일본 제국 해군의 치쿠마급 방호순양함이다. 러일 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영국 해군의 타운급 경순양함을 모델로 제작되었다. 15cm 함포 8문과 어뢰 발사기를 탑재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시베리아 출병, 중국 해역 경비 등에 투입되었다. 1940년 퇴역 후 연습선으로 사용되다 1945년 침몰했고, 선체는 이와쿠니 항 방파제로 활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지쿠마급 방호순양함 - 지쿠마 (방호순양함)
지쿠마는 일본 제국 해군이 건조한 지쿠마급 방호순양함의 1번함으로, 자매함 야하기, 히라도와 함께 일본 해군 순양함 중 처음으로 터빈 기관을 채용하여 각기 다른 타입의 기관 성능을 시험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여러 해역에서 작전에 참가 후 1935년경 격침 처분되었다. - 지쿠마급 방호순양함 - 야하기 (방호순양함)
야하기는 일본 제국 해군이 1912년 취역한 지쿠마급 경순양함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했으며, 중일 전쟁 이후 훈련선으로 사용되다 1940년 해군 함정 목록에서 제외되어 1947년에 해체되었다. - 1911년 선박 - RMS 타이타닉
RMS 타이타닉은 1912년 처녀 항해 중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호화 여객선으로, 당시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며 2,200명 이상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뉴욕으로 향하다 침몰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 1911년 선박 - 지쿠마 (방호순양함)
지쿠마는 일본 제국 해군이 건조한 지쿠마급 방호순양함의 1번함으로, 자매함 야하기, 히라도와 함께 일본 해군 순양함 중 처음으로 터빈 기관을 채용하여 각기 다른 타입의 기관 성능을 시험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여러 해역에서 작전에 참가 후 1935년경 격침 처분되었다. - 일본의 순양함 - 이쓰쿠시마 (방호순양함)
이쓰쿠시마는 1891년 일본 제국 해군에 인도되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했으며, 1912년 2등해방함으로 분류가 변경된 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 1926년 해체되었다. - 일본의 순양함 - 요시노 (방호순양함)
요시노는 1893년 영국에서 건조되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한 일본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군함이었으나 1904년 러일 전쟁 중 장갑순양함 가스가와 충돌하여 침몰했다.
히라도 (방호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함명 | 히라도 (平戸) |
함명 유래 | 히라도 |
함종 | 지쿠마급 방호순양함 |
함번 | 3 |
제원 | |
배수량 | 5,121톤 |
전장 | 144.8m |
선폭 | 14.2m |
흘수 | 5.1m |
추진 | 2축 커티스식 증기 터빈, 16개 캄폰 보일러 |
마력 | 22,500마력 (16,800kW) |
연료 | 석탄 1,128톤, 중유 300톤 |
속력 | 26노트 (시속 48km/h; 30mph) |
항속 거리 | 10노트(19km/h)로 19,000km |
장갑 | 수선장갑대: 50~89mm |
갑판 | 37-57mm |
사령탑 | 100mm |
승무원 | 414명 |
무장 | |
주포 | 8 x QF 150mm /45 41년형 포 |
부포 | 4 x QF 12 파운드 12cwt 함포 |
기관총 | 2 x 7.7mm 루이스포 |
어뢰 발사관 | 3 x 18인치 어뢰발사관 |
건조 및 취역 | |
발주 | 1907년 회계년도 |
기공 | 1910년 8월 10일 |
진수 | 1911년 6월 29일 |
취역 | 1912년 7월 17일 |
퇴역 | 1940년 4월 1일 |
최후 | 1947년 해체 |
건조 | 가와사키 조선소 |
함급 정보 | |
자매함 | 지쿠마 야하기 |
2. 건조 배경 및 설계
히라도는 1910년 고베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1912년 6월 17일에 준공되었고, 이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일본 해군 순양함으로는 처음으로 터빈 기관을 채용하였으며, 동급함 세 척에는 각각 다른 유형의 기관을 탑재했다.
2. 1. 건조 배경
러일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1907년 해군 확장 계획의 일환으로 치쿠마급 방호순양함이 건조되었다. ''히라도''는 대일본제국 해군을 위해 건조된 마지막 방호순양함이었다. 러일 전쟁 직후에 설계되었으며, 1910년 8월 10일 고베의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기공되었고, 1911년 6월 29일에 진수되었으며, 1912년 6월 17일에 취역했다.[1]2. 2. 설계 특징

치쿠마급 순양함의 기본 설계는 영국 해군의 Town|타운영어급 순양함을 모델로 하였으며, 몇 가지 수정을 거쳐 일본 해군의 톤급 순양함의 설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2] ''치쿠마''급의 선체 외형은 4개의 높은 굴뚝으로 쉽게 구별되었다.
''히라도''의 선체는 전체 길이 144.8m, 폭 14.2m이며, 통상 배수량 5040톤에 흘수 5.1m였다.
''히라도''는 2개의 커티스 증기 터빈 엔진(총 22500shp 용량, 가와사키에서 생산)으로 구동되었으며, 이 엔진은 2개의 스크류를 구동했다. 이 엔진에는 16개의 캄폰 보일러가 있었다. 새로 개발된 이 엔진은 시험에서 당시로서는 놀라운 26.87kn 속도를 냈지만,[3] 새로운 엔진 기어의 재료 강도 문제로 유지 보수에 어려움이 생겨 ''히라도''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이 함정은 8문의 15 cm/45 41년식 함포를 탑재했는데, 함의 앞뒤에 각각 1문, 선체 양쪽에 3문씩의 스폰슨에 장착했다. ''치쿠마''급 함정은 측면 무장과 주포에 동일한 무기를 사용하는 특이한 경우였다. 이러한 함포는 4문의 QF 12파운더 12 cwt 해군 함포와 2정의 7.7 mm 루이스 기관총으로 보완되었다. 또한 457mm 어뢰를 장착한 3개의 어뢰 발사기를 탑재했다. 1919년 이후, 4번 굴뚝의 빔에 대공 방어를 위해 2문의 8 cm/40 3년식 해군 함포가 12파운더 함포 3문을 대체하여 추가되었다.[3]
3. 함생애
1910년 가와사키 조선소(고베)에서 기공하여, 1912년 6월 17일에 준공되었고, 이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일본 해군 순양함으로는 처음으로 터빈 기관을 채용하였고, 동급함 세 척에는 각각 다른 유형의 기관을 탑재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남양 군도 점령 작전에 참가, 남중국해, 남태평양 방면의 작전에 투입되었다.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주로 중국 해역의 경비 활동에 투입되었다.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때에는 열하 작전을 지원했다.
1940년 4월 1일에 제적되면서 폐함 제11호로 가칭되었다. 해군병학교에 계류하며 연습선으로 사용되었다. 1943년 12월 군사학교 이와쿠니 분교로 회항하여 종전을 맞이했다.
1945년 침수되어 침몰했다. 1947년 1월 5일부터 4월 20일까지 도쿄 샐비지에 의해 해체된 선체는 이와쿠니항 방파제가 되었다.
3. 1. 제1차 세계 대전
히라도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영일 동맹에 따라 연합국의 전쟁 노력에 일본이 기여하는 일환으로 활동했다. 1914년 막시밀리안 폰 스페 제독이 이끄는 독일 동아시아 순양함 전대를 추격한 일본 함대에 소속되었다. 히라도와 야하기는 전함 사쓰마|사쓰마일본어가 이끌고 마쓰무라 다쓰오 소장이 지휘하는 연합군 제2남부 전대에 소속되어 독일 순양함 SMS 엠덴|엠덴de을 찾아 수마트라 주변을 순찰했지만 실패했다.[4]1917년 3월 26일, 영국 해군성은 독일의 통상 파괴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치쿠마와 히라도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파견을 추가로 요청했다.[4]

전쟁이 끝난 후, 히라도는 일본이 볼셰비키 붉은 군대에 맞서 시베리아 출병하는 동안 시베리아에 있는 일본 육군에 보급품 호송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동해안에서 순찰 임무를 맡았다.[4]
3. 2. 전간기 및 제2차 중일 전쟁
1910년 가와사키 조선소(고베)에서 기공, 1912년 6월 17일에 준공되어 2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었다. 일본 해군 순양함으로는 처음으로 터빈 기관을 채용했으며, 동형함 3척에는 각각 다른 타입의 기관을 탑재하고 있다.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히라도''는 일본이 볼셰비키 붉은 군대에 맞서 시베리아 출병을 하는 동안 시베리아에 있는 일본 육군에 보급품 호송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동해안에서 순찰 임무를 맡았다. 1919년부터 1920년까지는 훗날 해군 원수 나가노 오사미가 ''히라도''의 함장이었고(그의 유일한 함선 지휘),[4] 1924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요시다 젠고 함장이었다.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주로 중국 해역의 경비 활동에 투입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동안 ''히라도''는 주로 일본 남쪽 접근로를 경비했으며, 마닐라와 마카오에 자주 기항했다.
1932년의 제1차 상하이 사변 때에는 열하 작전 지원을 했다. 같은 해 만주 사변 이후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면서 중국 북부 해안을 순찰하는 임무로 재배치되었으며, 관동주의 뤼순 경비구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엔진 문제로 인해 수리창에 자주 입고되었고, 제2차 중일 전쟁의 어떤 전투 작전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1933년 예비 선박으로 간주되어 그 이후 주로 훈련에 사용된 ''히라도''는 1940년 4월 1일에 공식적으로 해군 명부에서 삭제되었다. ''하이 칸 11호''로 재지정된 이 선박은 에타지마와 구레에 병영선으로 정박했다. 1943년 12월에는 이와쿠니로 예인되었다.
3. 3. 퇴역 및 최후
1940년 4월 1일 제적되어 폐함 제11호로 가칭되었고, 해군병학교에 계류하며 연습선으로 사용되었다.[4]1943년 12월 이와쿠니 군사학교 분교로 회항하여 종전을 맞이했다.
1945년 침수되어 침몰했다. 1947년 1월 5일부터 4월 20일까지 도쿄 샐비지에 의해 해체되었고, 선체는 이와쿠니항 방파제가 되었다.
4. 역대 함장
겸 구레 해군 공창 의장원 (1912년 6월 17일 -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