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식 중전차 치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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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식 중전차 치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 육군이 개발한 중전차로, 1941년 개발을 목표로 했으나 1943년에야 완성되었다. 97식 중전차의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용접 차체, 강화된 장갑, 개선된 엔진과 47mm 전차포를 탑재하여 방어력과 기동성이 향상되었다. 총 170대가 생산되었지만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으며, 3식 중전차 치누, 카소 지휘 전차, 타-하 대공 전차, 2식 쿠-세 자주포 등의 파생형이 존재한다. M4 셔먼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으며, 본토 결전을 위해 일본 열도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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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식 중전차 치하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의 주력 전차로, 노후화된 89식 중전차 이고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디젤 엔진과 공랭 방식을 채택했고, 97식 57mm 전차포를 탑재했으나 이후 1식 47mm 전차포를 탑재한 신포탑 치하로 개량되어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중국 내전 등 다양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1식 중전차 치헤 | |
---|---|
개요 | |
![]() | |
유형 | 중형전차 |
원산지 | 일본 제국 |
설계 시기 | 1940년 |
생산 시기 | 1943년–1944년 |
생산량 | 170대 |
제원 | |
전장 | 5.5 m |
전폭 | 2.2 m |
전고 | 2.38 m |
중량 | 17.2 톤 |
현가 장치 | 벨 크랭크 |
속도 | 44 km/h |
항속 거리 | 210 km |
승무원 | 5명 |
무장 | |
주무장 | 1식 47 mm 전차포 (장갑 관통력: 100 m에서 55 mm, 500 m에서 40 mm, 1,000 m에서 30 mm) |
부무장 | 2 × 7.7mm 97식 중기관총 (차체, 동축) |
탄약 적재량 | 주포: 121발 기관총: 4,220발 |
장갑 | |
장갑 두께 | 20–50 mm |
차체 전면 | 50 mm |
차체 측면 | 25 mm |
차체 후면 | 20 mm |
엔진 | |
엔진 종류 | 미쓰비시 100식 공랭식 V-12 디젤 엔진 |
엔진 출력 | 240 마력 (179 kW) / 2,000 rpm / 21,700 cc |
2. 개발 배경 및 역사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은 자군 중전차들이 연합군 전차에 비해 대전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대전차 능력 강화를 목표로 개발된 전차가 1식 중전차 치헤이다. '치헤'라는 명칭은 개발 보안을 위한 암호명이었고, 정식 명칭은 1식 중전차이다. '1식'은 황기 2601년(1941년) 배치를 목표로 개발했기 때문에 붙여진 번호이지만, 실제 개발 완료는 1943년이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은 97식 중전차 치하의 것을 사용했다. 하지만 차체에 본격적으로 용접을 적용하고, 볼트 무게를 줄여 장갑을 강화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일본 전차 중 최초로 대전차포 장착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화력 면에서도 개선되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 후기형과 비교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차체 전면은 치하가 리벳으로 접합되었지만, 치헤는 용접과 평면 볼트로 접합되었다.
- 치하는 조명등이 차체 중앙에 1개였지만, 치헤는 양쪽 진흙받이 위에 2개가 탑재되었다.
- 치헤의 차체 길이가 치하보다 약간 길다.
- 엔진 출력이 170마력에서 240마력으로 향상되었다.
- 탑승 인원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 장비 운용 효율성이 높아졌다.
- 정면 장갑 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 탄약 탑재량이 약 20발 증가했다.
- 용접 구조와 장갑판 강화로 150mm 견인 곡사포 직격에도 치하는 파괴되었지만 치헤는 형태를 유지했다.[10]
1식 중전차 치헤는 신형 47mm 전차포를 탑재했지만, 이는 치하 개(改)형과 같은 무장이었다. 240마력의 미쓰비시 중공업 100식 엔진을 탑재하여 기동력을 높이고 장갑을 두 배 가까이 늘렸지만, 개발과 생산이 늦어져 양산 시점에는 이미 구형화된 상태였다.
일본 제국 육군은 1930년대에 설계된 97식 중전차가 1940년대 연합군의 M4 셔먼과 같은 전차에 비해 열세임을 인식했다. 97식 전차의 57mm 주포는 보병 지원용으로 설계되어 연합군 전차를 관통할 수 없었고, 자체 장갑도 얇아 대전차 능력을 갖춘 적에게 취약했다.
이에 따라 개선된 97식 설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차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첫 번째 전차가 1식 중전차 치헤였다. 설계는 1941년에 시작되었지만, 강철이 일본 제국 해군의 군함 건조에 우선 할당되어 생산은 1943년에 시작되었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총 170대가 제작되었지만,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2. 1. 개발 과정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은 자군 중전차들이 연합군 전차에 비해 대전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대전차 능력 강화를 목표로 개발된 전차가 1식 중전차 치헤이다. '치헤'라는 명칭은 개발 보안을 위한 암호명이었고, 정식 명칭은 1식 중전차이다. '1식'은 황기 2601년(1941년) 배치를 목표로 개발했기 때문에 붙여진 번호이지만, 실제 개발 완료는 1943년이었다.
개발을 서두르면서 주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은 97식 중전차 치하의 것을 사용했다. 하지만 차체에 본격적으로 용접을 적용하고, 볼트 무게를 줄여 장갑을 강화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일본 전차 중 최초로 대전차포 장착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화력 면에서도 개선되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47mm 포를 탑재한 치하 후기형과 비슷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 차체 전면이 치하는 리벳으로 접합되었지만, 치헤는 용접과 평면 볼트로 접합되었다.
- 조명등이 치하는 차체 중앙에 1개, 치헤는 양쪽 진흙받이 위에 2개가 탑재되었다.
- 치헤의 차체 길이가 치하보다 약간 길다.
- 엔진 출력이 170마력에서 240마력으로 향상되었다.
- 탑승 인원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 장비 운용 효율성이 높아졌다.
- 정면 장갑 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 탄약 탑재량이 약 20발 증가했다.
- 용접 구조와 장갑판 강화로 150mm 견인 곡사포 직격에도 치하는 파괴되었지만 치헤는 형태를 유지했다.[10]
1식 중전차 치헤는 신형 47mm 전차포를 탑재했지만, 이는 치하 개(改)형과 같은 무장이었다. 240마력의 미쓰비시 중공업 100식 엔진을 탑재하여 기동력을 높이고 장갑을 두 배 가까이 늘렸지만, 개발과 생산이 늦어져 양산 시점에는 이미 구형화된 상태였다.
1941년 이후, 일본 제국 육군은 1930년대에 설계된 97식 중전차가 1940년대 연합군의 M4 셔먼과 같은 전차에 비해 열세임을 인식했다. 97식 전차의 57mm 주포는 보병 지원용으로 설계되어 연합군 전차를 관통할 수 없었고, 자체 장갑도 얇아 대전차 능력을 갖춘 적에게 취약했다.
이에 따라 개선된 97식 설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차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첫 번째 전차가 1식 중전차 치헤였다. 설계는 1941년에 시작되었지만, 강철이 일본 제국 해군의 군함 건조에 우선 할당되어 생산은 1943년에 시작되었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총 170대가 제작되었지만,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1식 중전차보다 먼저 배치된 97식 중전차 치하는 97식 57mm 전차포를 탑재하고 있었는데, 이를 1식 중전차와 같은 1식 47mm 전차포와 신형 포탑으로 교체한 것이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이다.[6]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는 무장과 생산성 등 일부 면에서 발전했지만, 주행 및 기동성은 97식 중전차와 큰 차이가 없었다. 노몬한 사건을 통해 전투 능력 부족이 드러나면서 개발이 중단되었다.
1식 중전차는 97식 중전차의 방어력과 기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차체를 개량한 모델로, 1940년부터 '치헤'라는 계획명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7] 그러나 중일 전쟁 상황에서 기존 차량 양산이 우선이었고, 태평양 전쟁 (대동아 전쟁)을 앞두고 병기 생산은 항공기와 함정, 화포에 집중되었다. 또한 치헤는 유압 서보식 조향 장치 도입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신형 전차 개발과 생산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어, 시제 치헤 전차는 1942년 9월에 완성되었고(『사연사』에 따르면 8월), 각종 시험을 거쳐 1943년 6월에 개발이 완료되었다. 본격적인 생산은 태평양 전쟁 전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1944년에 이루어졌다.
1식 중전차는 1940년부터 개발되어 여러 시제 차량이 제작되었지만, 자료 부족으로 자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 1941년 8월 실물 크기 모형이 완성되어 심사가 진행되었다. 『사연사(四研史)』에 따르면, 1941년 치헤 전차의 장갑 두께는 35mm였다. 1942년 8월 시제차가 완성되었고, 1942년부터 1943년까지 개량이 이루어졌다.[8] 1942년 9월 작성된 『국군 기갑 차량 정비 체계표』에서는 치헤 전차의 중량을 16~17t으로 명시하고, 이 시점에서 '1식' 명칭이 부여되었다.[9]
1식 중전차는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와 외형이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개선점이 있다.
# 차체 전면이 97식 중전차는 리벳으로 접합되었지만, 1식 중전차는 용접과 평면 볼트로 접합되었다.
# 차체 및 포탑 정면 장갑 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포탑에는 25mm 추가 장갑판이 리벳으로 고정)
# 차체가 직선과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 차체 길이가 약간 길어졌다.
# 전조등은 97식 중전차는 차체 중앙에 1개, 1식 중전차는 양쪽 펜더 위에 2개 탑재되었다.
# 엔진이 SA 12200VD(170hp)에서 통제형 100식 발동기V형 12기통(240hp)으로 교체되었다.
# 승무원이 총 4명(차체 내 2명, 포탑 내 2명)에서 총 5명(차체 내 2명, 포탑 내 3명)으로 증가했다.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는 포탑 우측 차장이 장전수를 겸임했지만, 1식 중전차는 포탑 좌측 포수 뒤에 장전수를 배치하여 승무원 부담을 줄이고 효율을 높였다.)
# 주포는 1식 47mm 전차포 Ⅱ형으로, 1식 47mm 전차포에 전기식 격발 장치와 좌우 어깨 받침식 조준 기구가 추가되었다.
# 포탄 탑재량이 약 20발 증가했다.
이러한 개량으로 1식 중전차의 방어력과 기동력은 97식 중전차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주포의 위력은 부대 배치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미 뒤처진 상태였다.
1식 중전차의 조향 장치는 최종적으로 97식 중전차와 동일한 것이 탑재되었으며(쇼와 17년 5월 준공된 2식 포전차 호이 차체 유용 결과라는 설도 있다[7]), 유압 서보식 도입은 4식 중전차로 미뤄졌다.
1식 중전차의 차체를 활용한 1식 타하 자주대공포가 있다. 47mm 대신 37mm 대공포를 장비했으며, 시제품 하나만 제작되어 사진과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2. 2. 생산 및 배치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은 자군 중전차들이 연합군 전차에 비해 대전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대전차 능력 강화를 목표로 1식 중전차 치헤가 개발되었다. 치헤라는 이름은 개발 보안을 위한 암호명이었고, 정식 명칭은 1식 중전차였다. '1식'은 황기 2601년(1941년) 배치를 목표로 개발했기 때문에 붙여진 번호였지만, 실제 개발 완료는 1943년이었다.개발은 서둘러 진행되었기 때문에 주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은 97식 중전차 치하의 것을 사용했다. 하지만 차체에 본격적으로 용접을 적용하고, 볼트 무게를 줄여 장갑을 강화하는 등 방어 면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일본 전차 중 최초로 대전차포 장착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화력 면에서도 충실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 후기형과 비슷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 차체 전면부가 치하는 리벳으로 접합되었지만, 치헤는 용접과 평면 볼트로 접합되었다.
- 조명등이 치하는 차체 중앙에 1개, 치헤는 양쪽 진흙받이 위에 각각 2개가 탑재되었다.
- 차체 길이가 치헤가 치하보다 약간 길다.
- 엔진 출력이 170마력에서 240마력으로 향상되었다.
- 탑승 인원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나 장비 운용 효율성이 높아졌다.
- 정면 장갑 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 탄약 탑재량이 약 20발 증가했다.
- 용접 구조와 장갑판 강화로 인해 150mm 견인 곡사포 직격에도 형태를 유지했다.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를 활용한 자주대공포인 1식 타하가 있지만, 시제품 하나만 제작되어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식 중전차 치헤는 신형 47mm 전차포를 탑재했지만, 이는 치하 개(改)형과 같은 무장이었다. 240마력의 미쓰비시 중공업 100식 엔진을 탑재하여 기동력을 높이고 장갑을 두 배 가까이 강화했지만, 개발과 생산이 늦어져 양산 시점에는 이미 구형화된 상태였다.
일본 제국 육군은 1930년대에 설계된 97식 중전차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군의 M4 셔먼과 같은 장갑차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97식 전차의 57mm 주포는 보병 지원용으로 설계되어 연합군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고, 자체 장갑도 얇아 대전차 능력을 갖춘 적에게 취약했다.
이에 따라 개선된 97식 설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차 시리즈가 구상되었고, 그 첫 번째 전차가 1식 중전차 치헤였다. 설계는 1941년에 시작되었지만, 강철이 일본 제국 해군의 군함 건조에 우선 할당되어 생산은 1943년에 시작되었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총 170대가 제작되었지만,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11][12]
시기 | 생산 수 |
---|---|
1944년 2월 | 5 |
1944년 3월 | 10 |
쇼와 18년도 합계 | 15 |
1944년 4월 | 20 |
1944년 5월 | 10 |
1944년 6월 | 55 |
1944년 7월 | 0 |
1944년 8월 | 45 |
1944년 9~11월 | 0 |
1944년 12월 | 10 |
1945년 1월 | 10 |
1945년 2월 | 5 |
쇼와 19년도 합계 | 155 |
총 생산 수 | 170 |
1식 중전차는 본토 결전을 위해 대부분 내지에 머물렀고, 실제 전투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필리핀의 전차 제7연대에 1식 중전차가 배치되어 M4 중전차와 대결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에 대한 것이다.
3. 설계 및 특징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은 자군 전차의 대전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1식 중전차 치헤를 개발했다. 개발 당시 암호명은 '치헤'였고, 정식 명칭은 1식 중전차이다. 황기 2601년(1941년)에 실전 배치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1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개발이 완료된 것은 1943년이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의 부품을 많이 사용했지만, 차체에 용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무게를 줄이고, 그만큼 장갑을 강화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또한 일본 전차 중에서는 처음으로 대전차포를 장착하는 것을 고려하여 개발되었기 때문에 화력도 강화되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 후기형과 외형이 비슷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구분 97식 중전차 치하 1식 중전차 치헤 차체 전면 접합 방식 리벳 용접 및 평면 볼트 조명등 차체 중앙 1개 양쪽 진흙받이 위 2개 차체 길이 약간 짧음 약간 김 엔진 출력 170마력 240마력 탑승 인원 4명 5명 정면 장갑 두께 25mm 50mm 탄약 탑재량 약 100발 약 120발
1식 치헤는 97식 중전차에 비해 방어력과 기동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용접 구조와 강화된 장갑 덕분에 150mm 유탄포의 포탄을 맞아도 97식 중전차 치하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1식 치헤는 형태를 유지했다.[10]
1식 치헤의 차체를 활용한 자주대공포인 1식 타하 자주대공포가 있는데, 47mm 포 대신 37mm 대공포를 장착했다. 시제품 하나만 만들어져서 사진이나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3. 1. 장갑 및 방호력
97식 전차와 비교했을 때 1식 치헤는 약간 더 길고 높았다. 각지고 두꺼운 전면 장갑은 리벳 대신 용접되었다. 전면 장갑 추가와 다섯 번째 승무원 추가로 무게가 증가했지만, 차체의 "유선형화"로 인해 증가폭은 1.5톤에 불과했다.
1식 치헤는 차체 및 포탑 정면 장갑 두께가 50mm로 강화되었다. 포탑에는 25mm의 추가 장갑판이 리벳으로 고정되었다.[10] 차체 전면은 97식 전차가 다량의 리벳으로 접합된 것과 달리, 용접과 평면 볼트로 접합되었다. 차체는 직선과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개량으로 방어력이 97식 전차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용접 구조와 장갑 강화 덕분에 시험에서 구경 15cm급 중유탄포의 근접탄을 맞았을 때 97식 전차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1식 치헤는 견뎌냈다고 한다.[10]
3. 2. 무장
할힌골 전투를 통해 일본 육군은 대전차 능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식 중전차 치헤를 개발했다. 개발 당시 코드명은 '치헤'였고, 정식 명칭은 1식 중전차이다. 황기 2601년(1941년) 배치를 목표로 했기에 '1식'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나, 실제 개발 완료는 1943년이었다.
1식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의 부품을 다수 활용했지만, 차체에 용접을 적극 도입하고 절약된 무게를 장갑 강화에 투자하여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또한, 일본 전차 중 최초로 대전차포 장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어 화력도 강화되었다.
1식 치헤는 97식 전차 치하 후기형과 유사하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인다.
97식 전차와 비교 시 1식 치헤는 약간 더 길고 높았다. 전면 장갑은 리벳 대신 용접으로 제작되었다. 전면 장갑과 5번째 승무원 추가로 무게가 증가했으나, 차체 유선형화로 증가폭은 1.5톤에 불과했다.
240마력(hp) 미쓰비시 100식 디젤 엔진은 97식 디젤 엔진보다 70마력 더 강력하여 추가된 장갑 무게를 상쇄했다.
1식 치헤의 47mm 고속포는 포신 길이 2,250mm, 포구 속도 810m/s로, 100m에서 55mm, 500m에서 40mm, 1,000m에서 30mm 관통 능력을 보유했다. 이는 97식 주포의 두 배가 넘는 성능이었다.[2] 포신에는 16개의 강선이 있었고, 발사 메커니즘도 개선되어 더욱 안정적이고 정확했다. 또한 앙각 기어가 설치되어 연합군 전차에 충분히 대항 가능했다.[1] 탄약은 대전차포 버전과 동일하게 철갑탄 및 철갑 고폭탄을 포함, 120발을 탑재했다.[1] 3인용 포탑에 전차장, 포수, 탄약수가 탑승하며, +20도에서 -15도 사이로 앙각 및 부각이 가능했다. 해당 포는 97식 신호토 치하 중전차 및 3식 카치 수륙양용 전차에도 사용되었다.
1식 치헤는 일본 전차 최초로 각 전차에 무전기를 표준 장비로 탑재했다.[1]
1식 치헤에 앞서 97식 중전차 치하에 1식 47mm 전차포 및 신형 포탑을 탑재한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가 배치되었다.
1식 치헤는 97식 중전차의 방어력 및 기동력 강화를 위해 차체를 변경한 개량형으로, 1940년부터 '치헤'라는 계획명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일 전쟁으로 인해 기존 차량 양산이 우선시되었고,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을 앞두고 병기 생산은 항공기, 함정, 화포에 집중되어 자원, 공장, 예산이 부족했다. 또한, 치헤는 유압 서보식 조향 장치 도입에 난항을 겪었다.[7] 결국 신형 전차 개발 및 생산은 지연되어 1943년에 개발이 완료되었고, 1944년에야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1식 치헤는 1940년부터 개발되어 여러 시제 차량이 제작되었으나, 자료 부족으로 상세 내용은 불분명하다. 1941년 8월 실물 크기 모형 심사가 진행되었고, 당시 장갑 두께는 35mm였다. 1942년 8월 시제 차량이 완성되었으며, 1942~1943년에 걸쳐 개량이 이루어졌다.[8]
1식 치헤는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와 외형이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개선 사항이 존재한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1식 치헤는 97식 중전차 대비 방어력 및 기동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용접 구조 및 장갑 강화로 구경 15cm급 중유탄포 근접탄에도 견딜 수 있었다.[10] 그러나 포 위력은 배치 시점에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였다.
1식 치헤의 조향 장치는 최종적으로 97식 중전차와 동일한 것이 탑재되었고(2식 포전차 호이 차체 유용 결과라는 설도 존재[7]), 유압 서보식 도입은 4식 중전차로 연기되었다.
3. 3. 기동력
미쓰비시 100식 디젤 엔진(240마력(hp))은 미쓰비시 97식 디젤 엔진보다 70마력 더 많은 출력을 냈으며, 장갑의 추가 무게를 상쇄했다.[2] 엔진은 SA 12200VD(170hp)에서 통제형 100식 발동기V형 12기통(240hp)으로 교체되었다.[10]
3. 4. 승무원
1식 중전차 치헤는 승무원이 기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났다. 97식 중전차 치하에서는 차체 내 2명, 포탑 내 2명으로 총 4명이 탑승했지만, 치헤는 차체 내 2명, 포탑 내 3명으로 총 5명이 탑승했다.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에서는 포탑 오른쪽의 차장이 장전수를 겸임했지만, 1식 중전차 치헤에서는 포탑 왼쪽의 포수 뒤에 새로운 장전수를 배치하여 승무원의 부담이 줄고 효율이 좋아졌다.[10] 또한, 각 전차에 무전기를 표준 장비로 탑재하여 신호 깃발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2]
4. 파생형
할힌골 전투를 통해 일본 육군은 대전차 능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껴 1식 중전차 치헤를 개발했다. 1941년 배치를 목표로 했으나 1943년에 완료되었다. 97식 전차 치하의 부품을 유용했지만, 용접을 사용하여 장갑을 강화하고 대전차포 장비를 상정하여 화력을 높였다.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를 활용한 파생형은 다음과 같다.
- '''3식 중전차 치누''': 1식 치헤의 차체와 현가장치를 유지하고, 90식 75mm 야포를 기반으로 한 3식 75mm 전차포를 장착하여 화력을 강화했다.
- '''카소 지휘 전차''': 1식 치헤를 기반으로 포탑에 추가적인 무전기를 장착하고 나무로 만든 모형 주포를 장착했다.
- '''타하 대공 전차''': 1식 치헤 차체를 기반으로 37mm 대공포를 쌍열로 장착한 실험용 전차이다. 프로토타입 하나만 제작되었다.
- '''2식 쿠-세 자주포''': 1식 치헤 차체를 사용하고, 1식 호-니 I과 동일한 개방형 포방패에 75mm 포를 장착했다.
- '''1식 타하 자주대공포''':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를 활용하여 47mm 대신 37mm 대공포를 장비했다. 프로토타입 하나만 제작되었다.
4. 1. 3식 중전차 치누
3식 중전차 치누는 1식 치헤와 같은 차체와 현가장치를 사용했으며, 지휘관용 큐폴라가 있는 새로운 대형 육각형 포탑을 달기 위해 포탑 링을 확대했다.[3] 주무장으로는 90식 75mm 야포를 기반으로 한 3식 75mm 전차포를 장착하여 화력을 강화했다.[3]3식 중전차의 개발은 1944년 5월에 시작되어 같은 해 9월 시제 차량이 완성되었고, 10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4. 2. 카소 지휘 전차
카소 지휘 전차는 구형 시-키 지휘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카소는 1식 치헤를 기반으로 했으며, 포탑에 추가적인 무전기를 장착했다. 나무로 만든 모형 주포가 포탑에 장착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카소는 포탑에 기관총과 차체에 37mm 포를 장착했던 구형 시-키 모델과 달리 일반 전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3] 생산과 관련된 지휘 전차의 상태는 알려진 바가 없다.4. 3. 타하 대공 전차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를 활용한 1식 타하 자주대공포는 47mm 대신 37mm 대공포를 장비했다. 프로토타입 하나만 제작되어 사진과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4]실험용 대공 전차 '''타-하'''는 1944년에 1식 치헤 차체를 기반으로 계획된 대공 전차였다. 이 전차는 포탑을 방패 뒤에 쌍열로 장착된 회전 가능한 대공포로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종전 시 1대의 시제 전차가 제작 중이었다.[4]
4. 4. 2식 쿠-세 자주포
1944년에 설계된 파생형으로 '''2식 쿠-세''' 자주포 (SPG)가 있었다. 이 자주포는 1식 치헤 차체를 사용했으며, 얇은 전면 장갑만 갖춘 개방형 포방패에 75mm 포를 장착했다.[3] 이 개방형 포방패는 1식 호-니 I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형태였다.5. 평가 및 한계
1식 중전차 치헤는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육군이 자군 중전차의 대전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개발한 전차이다. 개발은 서둘렀지만, 주포를 제외한 대부분은 97식 전차 치하의 부품을 활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체에 본격적으로 용접을 사용하여 무게를 줄이고 장갑을 강화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또한 일본 전차 중 최초로 대전차포 장비를 상정하고 만들어 화력 면에서도 충실했다.
1식 중전차 치헤는 97식 중전차 치하 후기형과 비슷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 차체 전면 접합 방식: 치하는 리벳, 치헤는 용접 및 평면 볼트
- 조명등: 치하는 차체 중앙 1개, 치헤는 양쪽 진흙받이 위 2개
- 차체 길이: 치헤가 치하보다 약간 김
- 엔진 출력: 170마력에서 240마력으로 증가
- 탑승 인원: 4명에서 5명으로 증가
- 정면 장갑 두께: 50mm로 강화
- 탄약 탑재량: 약 20발 증가
- 용접 구조와 장갑판 강화로 150mm 견인 곡사포 직격에도 형태 유지
1식 중전차 치헤는 신형 47mm 전차포를 탑재했지만, 이는 97식 중전차 치하 개(改)와 같은 무장이었다. 240마력의 미쓰비시 중공업 100식 엔진을 탑재하여 기동력을 향상시키고 장갑을 두 배 가까이 늘렸지만, 개발과 생산이 늦어져 양산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미 구형화된 뒤였다.
1식 중전차는 장갑과 화력 면에서 97식 중전차보다 우수했지만, 미국의 M4 셔먼에 비해서는 여전히 성능이 떨어졌다. 모든 1식 중전차 치헤는 연합군 침공에 대비하여 일본 열도에 배치되었다. 이는 3식 중전차 치누 개발로 이어졌다.
1식 중전차 치헤는 1940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자원, 공장, 예산이 항공기, 함정, 화포 생산에 집중되어 개발이 지연되었다. 시제차는 1942년 9월에 완성되었지만, 개발 완료는 1943년 6월, 본격적인 생산은 1944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와 외관이 매우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개선점이 있다.
항목 | 97식 중전차 신포탑 치하 | 1식 중전차 치헤 |
---|---|---|
차체 전면 접합 | 리벳 | 용접, 평면 볼트 |
차체 및 포탑 정면 장갑 | 25mm | 50mm (포탑은 25mm 추가 장갑판 리벳 고정) |
차체 구성 | - | 직선과 평면 |
차체 길이 | - | 약간 더 김 |
전조등 | 차체 중앙 1개 | 양쪽 펜더 위 2개 |
엔진 | SA 12200VD (170hp) | 통제형 100식 발동기V형 12기통 (240hp) |
승무원 | 총 4명 (차체 내 2명 + 포탑 내 2명, 포탑 오른쪽 차장이 장전수 겸임) | 총 5명 (차체 내 2명 + 포탑 내 3명, 포탑 왼쪽에 장전수 추가) |
주포 | 1식 47mm 전차포 | 1식 47mm 전차포 Ⅱ형 (전기식 격발 장치 추가, 좌우 어깨 받침식 조준 기구 폐지) |
포탄 탑재량 | - | 약 20발 증가 |
이러한 개량으로 방어력과 기동력은 향상되었지만, 포의 위력은 부족했다.[10] 조향 장치는 97식 중전차와 동일한 것이 탑재되었고, 유압 서보식 도입은 4식 중전차로 미뤄졌다.
참조
[1]
웹사이트
History of War: Type 1 Chi-He Medium Tank
http://www.historyof[...]
[2]
웹사이트
Taki's Imperial Japanese Army: "Tank Guns"
http://www3.plala.or[...]
[3]
웹사이트
Taki's Imperial Japanese Army: Command Tank "Shi-Ki"
http://www3.plala.or[...]
[4]
서적
日本の戦車 (Japanese Tanks)
出版協同社 (Shuppan Kyodosha)
1978
[5]
서적
『機甲入門』
[6]
간행물
『丸 2012年12月号 No.800 特集本土決戦のMTB 三式中戦車』
2012-12-01
[7]
간행물
『丸』2012年12月号
2012-12-01
[8]
문서
『四研史』
[9]
문서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国軍機甲車輌整備体系表』
[10]
간행물
戦車マガジン4月号別冊 帝国陸海軍の戦闘用車両
N/A
[11]
문서
「昭和16~20年 月別兵器生産状況調査表 生産状況調査表綴(5)」
[12]
문서
「昭和16~20年 月別兵器生産状況調査表 生産状況調査表綴(6)」
[13]
서적
戦時造船史
今日の話題社
[14]
서적
輸送艦 給糧艦 測量艦 標的艦 他
[15]
웹사이트
Ropkey Armor Museum公式サイトギャラリー
http://www.ropkey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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