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701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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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C-701 백두산은 대한민국 해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하여 운용했던 초계함이다. 1950년 대한민국 해군은 미국 상선학교 훈련함인 PC-701을 백두산함으로 명명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대한해협 해전에서 승리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지원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59년 퇴역 후 돛대는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되어 해군 정신을 교육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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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701 백두산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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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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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 국가 | 미국 |
함선 이름 | PC-823 |
함선 건조 회사 | Leathem D. Smith Shipbuilding Company |
기공일 | 1943년 11월 8일 |
진수일 | 1944년 1월 15일 |
취역일 | 1944년 7월 24일 |
퇴역일 | 1946년 2월 11일 |
제적일 | 1948년 6월, 미국 해양 상선단 사관학교로 이관 |
함선 개명 | Ensign Whitehead |
함선 이관 | 1949년 9월, 대한민국으로 이관 |
대한민국 정보 | |
함선 국가 | 대한민국 |
함선 이름 | 박두산 |
함선 획득일 | 1949년 10월 17일 |
함선 취역일 | 1949년 12월 26일 |
함선 식별 번호 | 함번: PC-701 |
함선 퇴역일 | 1960년 8월 21일 |
함명 유래 | 백두산 |
함선 운명 | 해체된 것으로 추정 |
기타 정보 | 돛대는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됨 |
특징 | |
함급 | PC-461 |
배수량 | 280 톤 |
길이 | 53 미터 (173 피트 8 인치) |
폭 | 7 미터 (23 피트 0 인치) |
흘수선 | 3.3 미터 (10 피트 10 인치) |
속도 | 20 노트 |
승조원 | 65명 |
무장 | 1 × 76 mm/50 구경장 6 × .50 구경 기관총 4 × 폭뢰 투척기 2 × 폭뢰 트랙 2 x 폭뢰 발사기 (Mousetrap) |
군함 정보 (한국어) | |
함종 | 구잠함 |
함번 | PC-701 |
제작자 | Leathem D. Smith Shipbuilding Corp., Sturgeon Bay, Wisconsin |
운영자 | |
기공 | 1943년 11월 8일 |
진수 | 1944년 1월 15일 |
취역 | 1944년 7월 24일 1949년 9월 대한민국이 구입 |
퇴역 | 1946년 2월 11일 1948년 5월 18일 뉴욕 Kings Point, Long Island에 위치한 U.S. Merchant Marine Academy로 이전됨. Ensign Whitehead 이름으로 변경됨. 훈련함으로 사용됨 1960년 8월 21일 |
배수량 | 280 t(lt), 450 t(fl) |
전장 | 173 ft (53 m) |
선폭 | 23 ft (7.0 m) |
흘수 | 10 ft 10 in (3.3 m) |
추진 | 2축, 2 x 2,560bhp Hooven-Owen-Rentschler RB-99DA 디젤엔진 (Serial No. 7333, 7334), Westinghouse single reduction gear |
속력 | 20 노트 |
정원 | 59명 |
무장 | 1 × 3"/50 caliber dual purpose cannon 1 × Bofors 40 mm gun 3 × Oerlikon 20 mm cannons 2 x rocket launchers 4(total) x k guns and mousetraps 2 x depth charge racks |
2. 역사
1950년 대한민국 해군은 미국 상선학교 훈련함인 PC-701을 인수하여 백두산함으로 명명했다. 백두산함은 1949년 11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대한민국 해군에 인도되었고, 12월 15일 인수되어 대한민국 해군 함정으로 등록되었다. 인수한 백두산함은 수리를 거쳐 1950년 1월 11일 뉴욕을 출항하여, 진해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백두산함은 하와이에서 무장을 보강하고, 괌에서 추가 무장을 거친 후, 1950년 4월 10일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했다. 백두산함의 진해 도착은 대한민국 해군에게는 중요한 사건으로, 해군의 전력 증강과 함께 한국 전쟁 발발에 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1. 건조 배경
1945년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되었을 당시, 해군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해군은 제대로 된 함정조차 보유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군의 전력 증강과 신규 함정 확보는 시급한 과제였다.해군의 함정 건조를 위해 손원일 제독을 중심으로 한 노력이 기울여졌다. 손원일 제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해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함정 건조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또한, 함정건조 각출위원회를 조직하여 함정 건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각출위원회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기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해군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했다. 정부의 재정 상황이 열악했던 점도 있지만, 해군력 증강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 또한 문제였다. 이러한 정부의 미흡한 지원은 해군의 함정 건조 사업에 어려움을 더했다.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 해군은 자력으로 함정을 건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 2. 함정 획득
1950년 대한민국 해군은 미국 상선학교 훈련함인 PC-701을 인수하여 백두산함으로 명명했다. 백두산함은 1949년 11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대한민국 해군에 인도되었고, 12월 15일 인수되어 대한민국 해군 함정으로 등록되었다. 인수한 백두산함은 수리를 거쳐 1950년 1월 11일 뉴욕을 출항하여, 진해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백두산함은 하와이에서 무장을 보강하고, 괌에서 추가 무장을 거친 후, 1950년 4월 10일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했다. 백두산함의 진해 도착은 대한민국 해군에게는 중요한 사건으로, 해군의 전력 증강과 함께 한국 전쟁 발발에 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주요 전투 및 활약
PC-701 백두산함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1950년 9월 15일 개시된 인천 상륙 작전에서 상륙함의 호위 임무를 수행하며 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 이 작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백두산함은 해상 방어를 강화하고 유엔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데 기여했으며, 해안 경비 및 수송 작전을 수행하며 전선의 보급을 지원했다. 백두산함의 활약은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에 크게 기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1. 대한해협 해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 전쟁은 대한민국의 존망을 가르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대한해협에서 중요한 해전을 치렀다. 이 해전은 대한민국 해군 함정 백두산함의 활약으로 빛을 발했다.백두산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부산항으로 향하던 북한 무장 수송선 2척을 발견하고 즉각적인 교전에 돌입했다. 북한 수송선은 병력과 물자를 싣고 남하하는 중이었으며, 이들의 부산 상륙을 막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백두산함은 뛰어난 기동력과 정확한 함포 사격으로 북한 수송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 수송선 2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적재된 병력과 물자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전투는 대한민국 해군이 북한의 남침에 맞서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용감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백두산함의 승리는 대한민국 해군의 우수한 전투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북한군의 해상 침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 이로 인해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대한민국이 전쟁 초기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해협 해전은 대한민국 해군에게 초전 박살의 신화를 안겨준 전투로 기록되었다. 이 승리는 대한민국 해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으며, 국군 전체의 전투 의지를 고취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대한해협 해전은 한국 전쟁 초기의 중요한 분기점으로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3. 2. 한국 전쟁 참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 전쟁에 참전한 PC-701 백두산함은 인천 상륙 작전을 비롯한 주요 작전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백두산함은 대한민국의 해상 방어를 강화하고 유엔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백두산함은 1950년 9월 15일 개시된 인천 상륙 작전에서 상륙함의 호위 임무를 수행하며 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 이 작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두산함은 또한 해안 경비 및 수송 작전을 수행하며 전선의 보급을 지원했다. 백두산함의 헌신적인 활약은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에 크게 기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4. 퇴역 및 보존
1950년 10월 12일 PC-701 백두산함은 진해항에서 퇴역했다. 퇴역 이후 백두산함의 돛대는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되어 있다. 이 돛대는 6.25 전쟁의 아픈 기억과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를 간직한 유물로서, 대한민국의 해양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해군 정신을 교육하는 자료로 활용되며, 방문객들에게는 잊혀져 가는 역사를 기억하고 나라 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4. 1. 퇴역
1959년 7월 1일, PC-701 백두산은 대한민국 해군에서 퇴역했다. 퇴역 후 백두산은 해체 과정을 거쳤다. 백두산은 한국 해군 초창기 시절, 대한민국 해군의 해상 방위 임무를 수행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백두산은 6.25 전쟁(한국 전쟁) 기간 동안, 연안 경비 및 수송 작전에 투입되어 군수 물자 수송, 해상 봉쇄, 상륙 작전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활약은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 증강과 해상 작전 수행 능력 향상에 기여했다. 백두산의 퇴역은 대한민국 해군에게 새로운 함정 도입과 현대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백두산의 역사적 가치는 대한민국 해군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으며, 해군 초창기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또한, 백두산은 한국 해군 장병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백두산의 활약과 퇴역 과정은 대한민국 해군 역사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4. 2. 돛대 보존
1950년 10월 12일 진해항에서 퇴역한 PC-701 백두산함의 돛대는 현재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에 보존되어 있다. 이 돛대는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6.25 전쟁의 뼈아픈 기억을 간직한 중요한 유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후세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백두산함 돛대의 보존은 단순한 물품 보관을 넘어, 대한민국의 해양 수호 의지를 되새기고,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돛대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해군 정신을 함양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며, 방문객들에게는 잊혀져 가는 역사를 기억하고 나라 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계기를 제공한다.5. 동급 함정
PC-701 백두산급은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으로, 동급 함정으로는 금강산함(PC-702), 지리산함(PC-703), 한라산함(PC-705)이 있다. 백두산함은 1950년 10월 16일에 미국에서 인수되어, 한국 해군에 인도되었다. 금강산함은 1950년 10월 24일, 지리산함은 1950년 11월 20일, 한라산함은 1951년 2월 28일에 각각 한국 해군에 인도되었다. 이들 함정은 한국 전쟁 시기 북한 해안 봉쇄 작전에 투입되어 활약했다. 특히, 백두산함은 1950년 11월 29일, 동해안에서 북한 해안 포격을 실시하여 적의 해상 활동을 방해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 함정은 이후에도 대한민국 영해 수호에 기여하였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초기 전력 증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6. 갤러리
백두산함 (PC-701)은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으로, 1950년 10월 22일에 취역하여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백두산함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해안을 봉쇄하고, 적의 해상 침투를 막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52년 1월에는 대한해협에서 좌초된 노르웨이 선박을 구조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백두산함은 1960년대 초반까지 대한해협과 동해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퇴역했다. 백두산함의 활약은 대한민국 해군의 초기 역사와 한국 전쟁의 해상 전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How a Lone $60,000 Patrol Boat and Its Single Deck Gun Changed the Course of the Korean War
https://nationalinte[...]
The National Interest
2020-10-19
[2]
웹사이트
ROK Navy Ships: ''Pak Tu San'' (PC-701, 1950–60)
http://www.history.n[...]
Naval History & Heritage Command
2010-11-20
[3]
웹사이트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아십니까?
http://m.monthly.cho[...]
2022-05-29
[4]
웹사이트
부산 남구신문
https://www.bsnamgu.[...]
2022-05-29
[5]
웹사이트
Photo
http://img.yonhapnew[...]
[6]
뉴스
한국 최초 군용기ㆍ전투함, 문화재로 등록
https://www.segye.co[...]
2010-06-2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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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한국전쟁 당시 최고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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