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위장결혼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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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최규하 대통령 지명에 반대하며 재야 인사들이 대통령 직선제, 유신헌법 폐지 등을 요구하며 연세대에서 기획한 시위이다. 홍성엽과 윤정민의 결혼식으로 위장하여 계엄군의 감시를 피하려 했으나, 선언문 낭독 후 경찰이 투입되어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관련자들은 연행, 고문을 당했으며,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복권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신군부의 묵인 하에 진행된 자작극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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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 위장결혼식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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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 |
명칭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날짜 | 1979년 11월 24일 |
지역 | 대한민국 서울 YWCA 회관 |
원인 |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 간접선거 |
목적 | 대통령 직선제 요구 |
결과 | 경찰의 시위 해산 |
참여 세력 | |
시위대 | 재야 인사 |
관련 단체 | 통일주체국민회의 |
관련 인물 | |
주요 인물 | 미상 |
피해 규모 | |
체포자 | 140명 |
2. 전개 과정
1979년 10월 26일,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는 대의원 간선제로 최규하 국무총리를 후임 대통령으로 지명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재야 인사들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규탄하면서 대통령 직선제, 유신헌법 폐지, 양심수 석방 등을 골자로 한 문민정부 수립을 촉구하는 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윤보선은 전 대통령으로, 집회 참석자들의 형량 감경을 위해 노력했다. 함석헌은 재야 운동가로, 집회를 주도했다. 홍성엽은 연세대학교 복학생으로, 신랑 역할을 맡은 실제 인물이다. 윤정민은 신부 역할을 맡은 가상의 인물이다. (타계한 윤형중 신부의 성씨에 민주주의 정부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 박종태, 임채정, 백기완 등은 집회에 적극 참여한 주요 재야 인사들이다.
위장결혼식 사건 이후, 국민의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관련자들이 복권되었다. 주요 복권 인사로는 임채정, 박종태, 양순직, 이해동(2001년 10월 18일), 문동환(2002년 6월 12일), 김상현(2003년 9월 9일) 등이 있다.
직접적인 시위는 계엄 시의 군부와 경찰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하여 홍성엽과 윤정민의 결혼을 가장한 위장 청첩장을 돌려 사전 준비를 하였다.
윤보선, 함석헌, 박종태, 임채정, 백기완 등의 재야 인사들은 계엄군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대회장을 연세대 복학생인 신랑 홍성엽과 신부 윤정민의 결혼식으로 위장해 계엄군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중 연세대 복학생 홍성엽은 실존 인물이었으나, 신부인 윤정민(타계한 윤형중 신부의 성씨에 민주주의 정부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가상의 여성)은 가공의 인물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실내에서 신랑이 입장할 때 민주화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장내에는 환호성과 박수 갈채가 울려 퍼졌고 이내 윤보선과 함석헌 등을 각각 미행하던 경찰관들이 행사장에 난입하여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어 경찰관이 출동하였고 집회는 강제로 해산되었다. 집회 종료 후 경찰관에 의해 140명은 불구속 입건되었고, 주동 인물 중 윤보선, 함석헌 등은 소환조사 및 서면조사를 받았으며, 기타 주동자 14명은 용산구의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다.
3. 핵심 인물
4. 뒷 이야기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출신의 한 재야 인사는 보안사령부의 한 장성이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야 국민회의 측에서 대통령간선제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해 보안사에서는 집회를 묵인할 것이다"라는 말로 속임수를 썼다고 증언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NCCK의 몇몇 인사들은 집회를 반대했지만, 함석헌을 비롯한 지도부에 전달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4. 1. 민주화 운동 유공자 선정
국민의 정부 시절 설립된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관련자들이 복권되었다. 주요 복권 인사는 다음과 같다.
4. 2. 신군부의 자작극설
과거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한 재야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와 공화당 시절부터 친했던 보안사령부의 한 장성이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야 국민회의 측에서 대통령간선제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해 보안사에서는 집회를 묵인할 것이다"라는 말로 속임수를 썼다고 한다. 이 정보를 입수한 NCCK의 몇몇 인사들은 집회를 반대했지만, 이것이 함석헌을 비롯한 지도부에 전달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5. 기타
윤보선은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 참석자들의 형량을 낮춰줄 것을 탄원하여, 참석자들은 형량이 감경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 의지는 곧 민주화 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 국사편찬위원회 김용권 편저 『조선·한국 근현대사 사전 제2판』 일본평론사
- 제5공화국 (드라마) - MBC (문화방송) 제작의 텔레비전 드라마. 제5회 "12.12 군사 쿠데타 Ⅱ"에서 위장 결혼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6. 관련 작품
MBC 드라마 제5공화국 제5회 "12.12 군사 쿠데타 Ⅱ"에서 위장 결혼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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