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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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갈레온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대항해 시대에 사용된 범선으로, 스페인어 'galeón' 또는 고대 프랑스어 'galion'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갤리온은 캐러크의 장점을 개선하여 건조되었으며, 3~4개의 마스트와 사각형 돛을 갖추고, 군함 또는 무역선으로 사용되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 마닐라 갤리온 등이 대표적이며, 일본에서도 17세기 초 갤리온 선이 건조되었다. 갈레온은 대형 선박의 해상 교통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철제 증기선 등장 이전까지 대형 원양선의 주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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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갈레온은 1565년부터 1815년까지 스페인 제국이 마닐라와 아카풀코를 연결한 무역선과 무역을 지칭하며, 아시아 물품과 아메리카 은을 교환하며 세계 경제와 문화 교류에 기여했지만 필리핀 민중의 희생을 동반했다. - 갈레온 - 골든 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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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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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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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범선 |
역사 | |
기원 | 16세기 초 |
사용 국가 |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네덜란드 공화국 프랑스 |
주요 용도 | 화물 운송 군함 해적 퇴치 |
시대 | 대항해시대 |
디자인 | |
흘수 | 얕음 |
갑판 수 | 2 ~ 3개 |
돛대 수 | 3 ~ 5개 |
길이 | 40 ~ 60 미터 |
폭 | 10 ~ 12 미터 |
높이 | 30 미터 |
배수량 | 500 ~ 1000 톤 |
무장 | 20 ~ 60 문 |
승무원 | 150 ~ 300 명 |
특징 | |
특징 | 높은 선수루와 선미루 좁은 선폭 안정적인 항해 능력 강력한 화력 |
발전 | 카락에서 발전 전열함으로 발전 |
관련 용어 | |
관련 용어 | 갤리온 무역 스페인 무적함대 해적 사략선 |
기타 | |
참고 | 1502년 리스본의 '포랄' 문장(D. 마누엘 1세)에 유사한 형태의 배가 묘사되었으며, 1510년 포르투갈의 대양 '갤리온' 기록이 나타남. |
2. 어원
'갈레온'(galleon)이라는 단어는 "대형 선박"을 의미하며, 스페인어 ''galeón''(갈레온, "무장 상선")[7] 또는 고대 프랑스어 ''galion''("무장 운송선")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중세 그리스어 ''galea''(갤리선)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에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의 확대 접미사 '-on'이 붙었다.[8] 또 다른 기원은 고대 프랑스어 단어 ''galie''(갤리선)[9]로, 이 역시 중세 그리스어 ''galea''에서 유래되었다.[10] ''galea''는 비잔틴 제국 해군의 군함이었으며, 그 이름은 그리스어 단어 ''galeos''(상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11]
16세기 동안, 캐러크의 선수루를 낮추고 선체를 길게 늘리면서 대양 항해 선박은 안정성이 향상되었고, 정면에서 풍력 저항이 감소하여 더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난 선박이 되었다. 갤리온은 캐러크 및 기타 구형 선박과 주로 길고, 낮고, 좁으며 둥근 턱 대신 사각형 턱 선미를 가지고, 선수루 수준 아래 선수에서 앞으로 돌출된 주둥이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달랐다.[12][13]
제노바 연대기는 12세기와 13세기에 전투 및 탐험 임무에 사용된 60, 64, 80개의 노를 가진 갈레온을 언급한다. 16세기 초, 베네치아 ''갈레오니''는 지중해에서 해적을 사냥하는 데 사용된 새로운 종류의 갤리선이었다.
3. 역사
갤리온은 3개 또는 4개의 마스트에 매달린 돛을 사용하여 전적으로 바람의 힘으로 움직였으며, 마지막 (보통 세 번째 및 네 번째) 마스트에는 라틴 돛이 계속 사용되었다. 군사 및 무역 분야에서 모두 사용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예는 스페인 보물 함대와 마닐라 갤리온이었다. 갤리온은 250년 이상 동안 3개 이상의 마스트를 가진 모든 사각 돛 선박의 원형이었으며, 나중에 완전 장비 선박도 포함되었다.
원양 항해가 각국의 중요한 산업이 되면서 해상 교통의 밀도와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경쟁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대결과 1589년 영국 무적함대의 대결에서 대립하는 영국과 스페인 함대의 주요 군함은 갤리온이었다. 존 호킨스가 개발한 개조된 영국 레이스 건조 갤리온은 전투에서 훌륭한 효용성을 증명했고, 수송선으로 주로 설계된 스페인 갤리온은 전투와 길고 폭풍우 치는 귀향에서 훌륭한 지구력을 보여주었다.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윌리엄 애덤스가 이즈 국이토의 마쓰카와 강 어귀에서 산 부에나 벤투라호(120톤)를 건조하였다. 이는 일본에서 최초로 건조된 서양식 대형 범선이었다. 필리핀 총독 돈 로드리고 일행이 마닐라에서 아카풀코로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보소의 오노야마 해안에서 조난당해 지역 주민들에게 구조되었고, 이후 돈 로드리고 일행이 아카풀코로 귀환할 때 이 배를 사용했다. 다나카 가쓰스케 등 일본인 22명이 동승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인이 되었다.[20]
1613년, 다테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루이스 소테로와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가 센다이 번이시노마키에서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500톤)를 건조하였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일본에서 산 부에나 벤투라호에 이어 건조된 초기 갤리온 선으로 여겨진다. 루이스 소테로 및 하세쿠라 쓰네나가 이하의 사절단이 로마 교황에게 파견되었을 때 태평양을 횡단하여 누에바 에스파냐의 아카풀코로 보내졌으며, 같은 사절단의 귀로에도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일본으로 데려왔다. 1630년대에 잇따른 쇄국령으로 국산 원양선의 역사는 끊어졌지만, 태평양을 두 번 왕복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시 세계 수준에 도달한 대형 갤리온 선이었다.[20]
갤리온 선의 돛 끝에 하세쿠라의 깃발(오렌지색 깃발에 빨간 갈고리 십자가 보인다)
대항해 시대를 지탱한 갤리온 선 자체가 일본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데다 센다이 번의 지역 장인의 손으로 건조된 사적은 귀중하며, 이 세계사에 남겨진 사업은 일본사뿐만 아니라 동서 교류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3. 1. 유럽의 갈레온선
16세기 동안, 캐러크의 포캐슬을 낮추고 선체를 길게 늘리면서 대양 항해 선박은 물 위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안정성을 갖게 되었고, 정면에서 풍력 저항이 감소하여 더 빠르고 기동성이 뛰어난 선박이 되었다. 갤리온은 캐러크 및 기타 구형 선박과 주로 길고, 낮고, 좁으며 둥근 턱 대신 사각형 턱 선미를 가지고, 포캐슬 수준 아래 선수에서 앞으로 돌출된 주둥이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달랐다.[12][13] 캐러크는 당시 매우 클 수 있었고, 일부 포르투갈 캐러크는 1000ton 이상이었지만, 갤리온은 일반적으로 더 작았고, 일반적으로 500ton 미만이었지만 일부 마닐라 갤리온은 2000ton의 배수량에 도달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인도 함대에 갤리온이 도입되면서,[12][13] 캐러크는 거의 전적으로 화물선이 되면서 무장이 감소했고(이것이 포르투갈 캐러크가 그렇게 큰 크기로 추진된 이유임), 모든 전투는 갤리온에게 맡겨졌다. 가장 크고 유명한 포르투갈 갤리온 중 하나는 1534년에 건조된 1000ton 갤리온인 ''상 주앙 바티스타''(별명 ''보타포고'', "스핏파이어")였으며 366문의 대포를 탑재했다고 한다. 프라이어 마누엘 호멤은 이 갤리온이 선미와 선수의 높은 성채를 지키는 대포를 포함하여 366문의 청동 포병을 장착했다고 말한다.[14]
캐러크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무장되었고 다른 서유럽 국가의 모든 함대에서 화물을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갤리온은 더 강력하고 무장이 더 강화되었으며, 동일한 배수량에 대해 건설 비용도 저렴했기 때문에(갤리온 5척의 비용은 캐러크 3척과 거의 같을 수 있음) 중무장 화물선 또는 군함으로 사용하기 위한 훨씬 더 나은 투자였다. 갤리온의 디자인은 다양한 혁신의 적용을 통해 변경되고 개선되었으며, 특히 대서양 해상 강국의 군사적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1550년대에 결정적인 길고 비교적 좁은 선체 갤리온을 설계한 사람은 스페인 해군의 함장 페드로 메넨데스 데 아빌레스와 알바로 데 바잔이었다.[15][16]
갤리온은 3개 또는 4개의 마스트에 매달린 돛을 사용하여 전적으로 바람의 힘으로 움직였으며, 마지막 (보통 세 번째 및 네 번째) 마스트에는 라틴 돛이 계속 사용되었다. 군사 및 무역 분야에서 모두 사용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예는 스페인 보물 함대와 마닐라 갤리온이었다. 캐러크가 초기 세계 탐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반면, 갤리온도 16세기와 17세기에 역할을 했다. 실제로 갤리온은 매우 다재다능하여 한 척의 선박이 수명 동안 여러 번 전시 및 평시 역할에 맞게 개조될 수 있었다. 갤리온은 250년 이상 동안 3개 이상의 마스트를 가진 모든 사각 돛 선박의 원형이었으며, 나중에 완전 장비 선박도 포함되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대결과 1589년 영국 무적함대의 대결에서 대립하는 영국과 스페인 함대의 주요 군함은 갤리온이었다. 존 호킨스가 개발한 개조된 영국 레이스 건조 갤리온은 전투에서 훌륭한 효용성을 증명했고, 수송선으로 주로 설계된 스페인 갤리온은 전투와 길고 폭풍우 치는 귀향에서 훌륭한 지구력을 보여주었다.
스페인의 갈레온선은 3개의 마스트를 장착했으며, 선체는 500ton~600ton 정도였다. 이 배는 성능보다는 화려함을 중시했기 때문에 배의 성능은 좋지 않았고 속도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갈레온선은 더 빠른 슬루프선을 사용하던 해적의 습격에 취약했다. 스페인 갈레온선의 선명에는 "누에스트라 세뇨라"(우리 성모 마리아로 번역된다)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유럽 각국에서 앞다투어 군함·대형 상선으로 운용되었으며, 스페인은 이를 대형화하여 신대륙의 식민지의 부를 본국으로 호송하기 위해 사용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세계 일주에 사용한 골든 하인드호(305ton) 등은 유명한 갈레온선이다.
원양 항해가 각국의 중요한 산업이 되면서 해상 교통의 밀도와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경쟁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무적 함대의 기함이었던 산 마르틴호는 승무원 600명, 50문 정도의 대포를 갖추었으며 1000ton대였다고 한다. 이후 무적 함대를 격파한 영국 해군에 의해 갈레온으로 단종진을 구성한 함대에 의한 일제 포격 전술이 확립되었다. 이 단종진에서의 포격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갑판을 다층화하고 대포를 장비하는 등,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전투 전용함으로 발전한 것이 전열함이다.
3. 2. 일본의 갈레온선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윌리엄 애덤스가 이즈 국이토의 마쓰카와 강 어귀에서 산 부에나 벤투라호(120톤)를 건조하였다. 이는 일본에서 최초로 건조된 서양식 대형 범선이었다. 필리핀 총독 돈 로드리고 일행이 마닐라에서 아카풀코로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보소의 오노야마 해안에서 조난당해 지역 주민들에게 구조되었고, 이후 돈 로드리고 일행이 아카풀코로 귀환할 때 이 배를 사용했다. 다나카 가쓰스케 등 일본인 22명이 동승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인이 되었다.[20]
돈 로드리고가 누에바 에스파냐로 귀국한 후, 답례 대사로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가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 루이스 데 베라스코에 의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비스카이노의 귀국 시 승선한 산 프란시스코 2세호가 대파되어, 비스카이노와 친교가 있던 다테 마사무네가 다른 갤리온 선 건조를 막부에 청원하여 승인되었다.[20]
1613년, 다테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프란치스코회 선교사 루이스 소테로와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가 센다이 번이시노마키에서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500톤)를 건조하였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일본에서 산 부에나 벤투라호에 이어 건조된 초기 갤리온 선으로 여겨진다. 루이스 소테로 및 하세쿠라 쓰네나가 이하의 사절단이 로마 교황에게 파견되었을 때 태평양을 횡단하여 누에바 에스파냐의 아카풀코로 보내졌으며, 같은 사절단의 귀로에도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일본으로 데려왔다. 1630년대에 잇따른 쇄국령으로 국산 원양선의 역사는 끊어졌지만, 태평양을 두 번 왕복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시 세계 수준에 도달한 대형 갤리온 선이었다.[20]
대항해 시대를 지탱한 갤리온 선 자체가 일본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데다 센다이 번의 지역 장인의 손으로 건조된 사적은 귀중하며, 이 세계사에 남겨진 사업은 일본사뿐만 아니라 동서 교류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역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전하는 것은 현내뿐만 아니라 일본에게도 중요하며, 뜻있는 단체나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단체에서 시작하여 미야기현에서의 전현적인 노력으로 이어져 재건 계획이 시작되었다.[20]
복원선은 남아 있던 치수도 등의 자료, 건조 당시에도 사용되었던 재래 공법의 전문가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조선소에서 높은 재현성을 목표로 한 목조선 공법으로 건조되었고, 1993년에 진수되어 이시노마키 시내의 항구에서 계류 전시가 시작되었다.[20]
재건 시, 이미 전통적인 목조선 건조 기술 자체가 소멸 직전이었기 때문에 갤리온 선 자체의 고증과 함께 당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을 가진 조선 장인의 소집 또한 난제였다. 이 때문에 동선은 희귀한 국산 갤리온 선의 복원선인 동시에, 당시 동선 건조 시에도 사용되었고, 끊임없이 계승되어 온 재래 공법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20]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계류되어 있는 항구도 쓰나미에 휩쓸려 주변 전시 시설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계류 상태의 동선은 쓰나미를 넘어서 큰 손상을 입지 않았고, 현재도 같은 장소에서 계류 전시되었지만, 선체의 휨이나 부식 등으로 승선이 금지되어 수리하려 해도 조선 장인의 고령화로 국내에서의 수리는 불가능하게 되어 해체가 결정되었다.[21]
선내에서는 갤리온 선의 당시 그대로의 선내와 구조를 견학할 수 있었다. 또한, 선내와 주변의 전시 시설에서는 당시의 선내 생활, 항해 용구와 항해술 및, 동선이 사용된 게이초 견구 사절에 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4. 구조
갈레온은 대항해 시대 전반기에 원양 항해의 기초를 다진 캐러크에서 발전한 선형으로, 캐러크보다 작은 선수루와 1~2층의 큰 선미루를 가지고 있었다. 4~5개의 마스트를 갖추고 1열 또는 2열의 포열을 갖추고 있었다. 캐러크에 비해 폭과 전장의 비율이 1:4로 길어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스마트하며 흘수가 얕아 더 속도가 난다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안정성이 떨어져 전복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었다.[19]
종종 오랜 기간 동안 바다에서 보내고 선상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많은 선원이 항해 중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출발 시 탑승했던 인원의 일부만으로도 선박을 집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진보된 장비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4. 1. 특징
• 보나벤처 미즌마스트, 일반적으로 라틴 돛을 사용하며 메인 미즌보다 짧다.• 미즌마스트, 일반적으로 포어마스트보다 짧고 라틴 돛을 사용한다.
• 메인마스트, 가장 높은 마스트이며, 3개 이상의 마스트를 가진 선박에서는 가장 중앙에 위치한다.
• 포어마스트, 두 번째로 높은 마스트]]

갈레온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길고 눈에 띄는 부리(또는 뷰헤드)이며, 그 뒤로 포어마스트와 메인마스트가 있는데, 이 두 마스트는 경사진 라틴 돛의 돛대가 있는 하나 또는 두 개의 라틴 돛을 갖춘 미즌마스트보다 눈에 띄게 더 높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선미에 사각형 모양의 쿼터 갤러리가 있다. 평균적으로 세 개의 마스트를 가지고 있으며, 더 큰 갈레온에서는 네 번째 마스트가 추가되었는데, 보통 또 다른 라틴 돛을 갖춘 미즌마스트였으며, 이를 보나벤처 미즌이라고 불렀다.
갈레온은 대항해 시대 전반기에 원양 항해의 기초를 다진 캐러크에서 발전한 선형으로, 캐러크보다 작은 선수루와 1~2층의 큰 선미루를 가지고 있으며, 4~5개의 마스트를 갖추고 1열 또는 2열의 포열을 갖추고 있었다. 캐러크에 비해 폭과 전장의 비율이 1:4로 길어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스마트하며 흘수가 얕아 더 속도가 난다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안정성이 떨어져 전복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었다.[19]
5. 건조
갈레온은 참나무(용골용), 소나무(마스트용)와 다양한 활엽수(선체와 데크용)로 제작되었다. 선체는 일반적으로 캐벌 방식으로 건조되었다. 갈레온 건조에 드는 비용은 막대했다. 수백 명의 숙련된 장인(목수, 피치 멜터, 대장장이, 통 제조업자, 조선공 등)이 갈레온이 항해 가능해지기까지 수개월 동안 작업했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갈레온은 종종 새로운 배를 위해 자원을 모으는 부유한 사업가 그룹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갈레온은 원래 무역용으로 사용되었지만, 경쟁 국가에 의해 나포된 경우 군사용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갈레온에서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대포는 데미 컬버린이었지만, 데미 캐논까지 가능한 포도 있었다.
6. 주요 갈레온선
- 데인티: 리처드 호킨스 경의 함선으로, 사촌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 항해를 모방하려 했다. 1594년 아타카메스 만 해전에서 스페인에 나포되어 남아메리카 태평양에서 수년간 스페인 해군으로 복무했다.
- 레벤지: 1577년에 건조된 갤리온.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의 기함이었으며, 1591년 아조레스 제도 플로레스 해안에서 스페인 함대에 나포되어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에 침몰했다.
- 트라이엄프: 엘리자베스 시대 가장 큰 갤리온.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에서 마틴 프로비셔 경의 기함이었다.
- 갈레온 아달루시아: 2014년 스페인에서 건조된 갤리온 복제품.
- 골든 하인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1577년부터 1580년까지 세계 일주를 한 함선.
- "라 갈가": 1794년에 난파된 아사티그 섬 스페인 갤리온. 전설에 따르면 현재 유명한 칭코티그 포니의 조상들이 이 배의 짐칸에서 헤엄쳐 해안으로 나왔다고 한다.
-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콘셉시온: 스페인 갤리온. 승무원들은 강한 대포 때문에 ''카카푸에고''라고 불렀다.[18] 1578년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에게 나포되었고, 모든 보물은 잉글랜드로 옮겨졌다. 이 배에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1년 동안 채굴한 보물이 실려 있었다.
- 파드레 에테르노: 1663년에 진수된 포르투갈 갤리온. 144문의 대포를 탑재하고 2000ton의 배수량을 가진 당시 최대 규모의 함선으로 여겨졌다.
- 산 후안 바티스타 (원래 이름은 다테 마루, 伊達丸): 1614년 일본에서 누에바 에스파냐로 태평양을 건넜다. 일본에서는 난반센(南蛮船)으로 알려진 스페인 갤리온 유형의 배였다.
- 산 살바도르: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가 1542년 현재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탐험할 때 사용한 기함.
- 산타 루지아: 1650년 두 번이나 네덜란드 함대를 혼자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포르투갈 갤리온.
- 산타 테레사: 1639년 다운스 해전에서 로페 데 호세스 제독의 기함이었던 포르투갈 갤리온.
- 상 주앙 바티스타: "보타포고"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포르투갈이 진수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함(1534)이었다. 튀니스 정복 (1535) 동안 유명해졌으며, 포르투갈 공작 루이스가 지휘했다.
- 상 마르티노: 스페인 무적함대의 사령관인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알론소 데 구스만 이 소토마요르의 기함이었던 포르투갈 갤리온.
- 바사: 유일하게 보존된 오리지널 갤리온. 1628년에 침몰했고, 1961년에 인양되어 박물관 선박으로 보존되었다.
- 아크 로열: 월터 롤리 경이 설계하고 건조했다. 후에 함대 제독인 로드 하워드가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투에서 영국 함대의 기함으로 선택되어 즉시 ''아크 로열''로 개명되었다.
- 산 펠라요: 906ton의 대형 갤리온. 페드로 메넨데스 데 아빌레스가 1565년 플로리다주 세인트 오거스틴을 건설하기 위한 원정에서 기함으로 사용되었다. 너무 커서 세인트 오거스틴 항구로 들어갈 수 없었고, 메넨데스는 짐을 내려 히스파니올라로 돌려보냈다. 나중에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유럽으로 향하던 중 덴마크 해안에서 난파되었다.
- 마닐라 갤리온: 필리핀의 마닐라와 누에바 에스파냐 (현재의 멕시코)의 아카풀코 사이를 1년에 한두 번 항해했던 스페인 무역선(1565–1815).
- 1607년, 산 부에나 벤투라호(120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윌리엄 애덤스에 의해 이즈 국이토의 마쓰카와 강 어귀에서 건조되었다. 일본에서 최초로 건조된 서양식 대형 범선이다. 당시 필리핀 총독돈 로드리고 등이 마닐라에서 아카풀코로 항해하던 중 태풍을 만나 보소의 오노야마 해안에서 조난당해 지역 주민들에게 구조되었다. 그 후 돈 로드리고 일행이 아카풀코로 귀환할 때 산 부에나 벤투라호를 사용했다. 본선에는 다나카 가쓰스케 등 일본인 22명이 동승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최초의 일본인이 되었다.
- 산 부에나 벤투라호에서 돈 로드리고가 누에바 에스파냐로 귀국하고, 답례 대사로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가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 루이스 데 베라스코에 의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비스카이노의 귀국 시 승선한 산 프란시스코 2세호가 대파되어 비스카이노와 친교가 있던 다테 마사무네가 다른 갤리온 선 건조를 막부에 청원하여 승인되었다.
- 1613년,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500톤)가 다테 마사무네의 명령으로 프란치스코회선교사루이스 소테로와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에 의해 센다이 번이시노마키에서 건조되었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일본에서는 산 부에나 벤투라호에 이어 건조된 초기 갤리온 선으로 여겨진다. 루이스 소테로 및 하세쿠라 쓰네나가 이하의 사절단이 로마 교황에게 파견되었을 때 태평양을 횡단하여 누에바 에스파냐의 아카풀코로 보내졌으며, 같은 사절단의 귀로에도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일본으로 데려왔다. 1630년대에 잇따른 쇄국령으로 국산 원양선의 역사는 끊어졌지만, 태평양을 두 번 왕복한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시 세계 수준에 도달한 대형 갤리온 선이었다.
- 복원선은 남아 있던 치수도 등의 자료, 건조 당시에도 사용되었던 재래 공법의 전문가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조선소에서 높은 재현성을 목표로 한 목조선 공법으로 건조되었고, 1993년에 진수되어 이시노마키 시내의 항구에서 계류 전시가 시작되었다.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계류되어 있는 항구도 쓰나미에 휩쓸려 주변 전시 시설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계류 상태의 동선은 쓰나미를 넘어서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현재도 같은 장소에서 계류 전시되었지만, 선체의 휨이나 부식 등으로 승선이 금지되어 수리하려 해도 조선 장인의 고령화로 국내에서의 수리는 불가능하게 되어 해체가 결정되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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