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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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감찬 (드라마)는 993년 제1차 고려-거란 전쟁부터 1019년 귀주 대첩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강감찬을 중심으로 고려와 거란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이다. 성종, 목종, 현종 시대를 거치며,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권력 다툼, 강조의 반란, 거란의 침입 등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강감찬, 목종, 현종, 천추태후, 강조, 서희 등이 있으며, 총 78회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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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드라마)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방송명 | 강감찬 |
원제 | 姜邯贊 |
장르 | 사극 |
방송 시간 | 매주 월~토 오후 9시 30분 (1973년 10월 8일 ~ 11월 10일) 매주 월~토 오후 10시 (1973년 11월 11일 ~ 12월 1일) 매주 월~토 오후 9시 40분 (1973년 12월 3일 ~ 1974년 1월 9일) |
방송 분량 | 약 20분 |
방송 기간 | 1973년 10월 8일 ~ 1974년 1월 9일 |
방송 횟수 | 75회 |
방송 채널 | KBS TV |
연출 | 임학송 |
각본 | 이은성 |
출연자 | 주현, 박근형, 이선근, 이형구, 이효춘, 김자옥, 김성옥, 신구, 남성우 등 |
2. 시대적 배경
契丹|거란중국어은 907년 당나라가 멸망한 후, 야율아보기가 요나라를 건국하고 936년에는 후진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획득하여 만리장성 이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1] 이후 高麗|고려중국어가 건국되고, 거란은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 관계를 경계하였다.[1] 993년부터 1019년까지 고려와 거란 사이에 세 차례의 큰 전쟁이 벌어졌다.[1]
993년 1차 침입은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마무리되었고, 1010년에 발생한 2차 침입 때는 고려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다.[1] 1018년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이 귀주 대첩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 고려가 승리했다.[1] 이 전쟁 이후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평화 관계가 유지되었고,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재개했다.[1]
3. 주요 등장인물
드라마 《강감찬》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인물 역할 비고 강감찬 고려의 문신, 본작의 주인공 강감찬의 부친은 삼한벽상공신이었으며,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25] 성종 고려의 6대 왕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26] 목종 고려의 7대 왕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불륜,[41] 충신 한언공의 죽음에 충격받아[51] 강감찬과 함께 강조의 반란을 계획했다.[55] 현종 고려의 8대 왕 사수현에서 훗날의 원화왕후와 가난하게 지내던 중[29] 김치양에게 제거 위협에 시달렸다.[31][48] 천추태후 목종의 어머니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간통 대상인 김치양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31][33] 원화왕후 현종의 비 현종이 사수현에서 지내던 무렵부터 이미 부부였다.[29] 원정왕후 목종의 비 실제 역사에서는 현종의 제1비이나 편성표에서는 목종의 비로 언급된다.[44] 강조 고려의 무신 거란의 1차 침공 때 양규, 강감찬과 함께 강화론에 반대한다.[10] 양규 고려의 무신 거란의 1차 침공 때 문신들이 주장하는 강화론에 강감찬, 강조와 더불어 항의한다.[10] 정신용 고려의 무신 숭교사와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58][64] 정제 고려의 무신, 정신용의 아우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64] 서희 고려의 문신 탁월한 외교력으로 담판에서 거란의 침공을 저지하고 강동 6주 회복을 꾀한다.[18] 한언공 고려의 문신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에 맞서 목종에게 대량원군 축출 음모를 알리는 등 충언을 거듭하다가[40] 형틀에서 목숨을 잃는다.[52] 김치양 고려의 문신 천추태후와 간통을 일삼아 목종이 즉위하자 모후와의 관계를 이용해 권신으로 발돋움한다.[31][39] 소손녕 거란의 장수 거란 정병 17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서희와의 담판에서 설득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8][18] 소배압 거란의 장수 거란 측 지휘관으로 2차, 3차 침공에 참전하였다.
3. 1. 고려
고려의 6대 왕 성종은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26] 목종은 성종에 의해 개령군으로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실권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쥐고 있었다.[31][33][39] 강감찬의 부친은 삼한벽상공신이었으며,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25]
3. 1. 1. 강감찬 가문
강감찬(주현 분)은 본작의 주인공이다. 강감찬의 부친은 궁진으로 삼한벽상공신이었다. 강감찬은 아버지와 함께 혼란스러운 고려의 국정을 한탄하였다.[25] 강감찬의 아우 강중찬은 강조에게 현혹되어 강감찬에게 지탄받았다.[46]
3. 1. 2. 고려 왕실
; 성종
: 演: 미상
: 고려의 6대 왕. 쇠약해지자 개령군(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26]
; 목종
: 演: 미상
: 고려의 7대 왕. 성종에 의해 개령군으로 책봉되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실권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쥐고 있었다.[31][33][39] 어머니와 김치양의 불륜,[41] 충신 한언공의 죽음에 충격받아[51] 강감찬과 함께 강조의 반란을 계획하여 김치양을 제거하고 대량원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55] 결국 강조에 의해 폐위된 후 적성현 촌가에서 생을 마감했다.[68]
; 현종
: 演: 미상
: 고려의 8대 왕. 작중 대부분 대량원군으로 불렸다. 기개가 있고 영민하다고 언급된다.[32] 사수현에서 훗날의 원화왕후와 가난하게 지내던 중[29] 김치양에게 위험인물로 주목받아 제거 위협에 시달렸다.[31][48] 강감찬에게 보호받아 암살을 모면하고, 강조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다.[65][66] 강조의 반란을 명분으로 거란이 침공하자, 강조가 붙잡히고 고려군이 패배하여 나주로 피난갔지만 척화론에 어려움을 겪었다.[83] 이후 강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했다.[80]
; 천추태후
: 演: 미상
: 목종의 어머니. 성종의 침소에서 소외당하는 굴욕도 겪었으나,[28]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간통 대상인 김치양과 함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31][33] 강감찬을 꺼렸다.[36] 김치양의 아들을 낳으면서 이러한 전횡은 더욱 심해졌다.[62] 강조의 반란으로 목종과 함께 행방불명이 되었다.[67] 목종은 죽음이 확실히 언급되는 반면 천추태후는 편성표상 언급이 끊겼다.
; 원화왕후
: 演: 미상
: 현종의 비. 현종이 사수현에서 지내던 무렵부터 이미 부부였다는 사실이 편성표에서 확인된다.[29]
; 원정왕후
: 演: 미상
: 실제 역사에서는 현종의 제1비이나 편성표에서는 목종의 비로 언급되며 임신했다는 소문에 대한 언급이 있다.[44] 드라마상 오류인지 편성표상 오류인지는 불확실하다.
3. 1. 3. 고려 무신
: 演: 남성우[5]
거란의 1차 침공 때 양규, 강감찬과 함께 강화론에 반대한다.[10] 목종의 밀서를 받아 당혹해하나 야심에 따라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옹립한다.[65] 강조의 반란을 명분으로 침공한 거란에 맞서 싸워 삼수진에서 승리하지만,[76] 소배압의 결사대에 의해 생포된다.[77] 역사대로 귀순을 제의받으나 거부한다.[78] 편성표에서는 언급이 없으나 실제 역사대로 처형된 것으로 예상된다.
: 演: 미상
거란의 1차 침공 때 문신들이 주장하는 강화론에 강감찬, 강조와 더불어 항의한다.[10] 거란의 2차 침공 때는 흥화진에서 유격대를 조직해 거란군의 후방을 농락하는 활약을 보인다.[74]
: 演: 미상
숭교사와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58][64] 이후 거란의 2차 침공 때 양규, 정제와 더불어 흥화진으로 출진한다.[71]
: 演: 미상
정신용의 아우. 신혈사에서 대량원군을 제거하려는 김치양의 자객과 맞서 싸운다.[64] 이후 거란의 2차 침공 때 양규, 정신용과 더불어 흥화진으로 출진한다.[71]
3. 1. 4. 고려 문신
: 탁월한 외교력으로 담판에서 거란의 침공을 저지하는 공을 세우고 조공로를 명분삼아 강동 6주 회복을 꾀한다.[18] 그러나 김치양의 난정으로 인해 어지러운 고려의 국정을 걱정하며 숨을 거둔다.[42] 강조의 야심을 경계한 것으로 묘사된다.[21]
: 창작이 많이 가해진 인물로, 병사한 실존인물과 달리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에 맞서 목종에게 대량원군 축출 음모를 알리는 등 충언을 거듭하다가[40] 결국 형틀에서 목숨을 잃는다.[52] 노신 한언공의 죽음에 목종은 충격을 받는다.[51]
: 천추태후와 간통을 일삼아 목종이 즉위하자 모후와의 관계를 이용해 조정 내 권신으로 발돋움한다.[31][39] 대량원군을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하려 하나 강감찬이 저지한다.[31] 천추태후와 낳은 아들이 커가며 더욱 권력이 강해지지만[62] 목종과 강감찬이 획책한 강조의 반란으로 인해서 제거당한다.[67] 성종 시대에도 승병을 조직해 서희 등에게 위험 요소로 여겨졌다는 내용이 있다.[24]
3. 2. 거란
4. 드라마 줄거리
편성표 줄거리에 따르면, 993년[8] 1차 침공부터 1019년 귀주대첩[85]까지의 역사를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993년 이전에는 강감찬의 탄생과 장원급제를 다룬 회차가 편성표에 언급된다.[9]
전체 78회 중 성종 치세는 1~26회, 목종 치세는 27~62회, 현종 치세는 62~75회에 걸쳐 방영된다. 거란의 1차 침공은 1~9회, 2차 침공은 64~74회, 3차 침공은 75회에서 다룬다. 이중 3차 침공은 극도로 간략하게 다뤄진다.
4. 1. 제1차 고려-거란 전쟁 (993년)
993년[8] 거란의 1차 침공은 1회부터 9회까지 다룬다.4. 2. 목종 시대 (997년 ~ 1009년)
드라마에서 목종 시대는 27~62회에 해당하며, 전체 78회 중 35회를 차지하여 작중 가장 세밀하게 다뤄진다. 이 시기에는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전횡, 대량원군(훗날 현종)의 등극 과정이 중심 내용이다.[85]4. 3. 제2차 고려-거란 전쟁 (1010년 ~ 1011년)
993년 거란의 1차 침공[8] 이후, 1010년부터 1011년까지 벌어진 거란의 재침, 고려의 항전, 현종의 나주 파천 등을 다룬다. 양규의 활약을 비중 있게 다루며, 드라마 상에서는 64~74회에 해당한다.[85]4. 4. 제3차 고려-거란 전쟁 (1018년 ~ 1019년)
1018년부터 1019년까지 벌어진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귀주대첩을 중심으로 극화된 것으로 추정된다.[85] 드라마 편성표상 78개의 회차 중 75회에서 3차 침공을 다루는데, 이는 매우 간략하게 다뤄진 것이다.5. 에피소드 목록
회차 | 방송일 | 편성표 줄거리 | 비고 |
---|---|---|---|
- | 1973.10.08 | 전야제[6] | |
1 | 1973.10.09 | 고려 성종 12년(993년) 10월 거란은 소손녕 정병 17만으로 고려를 침략하였다.[8] | |
2 | 1973.10.10 | 삼한벽상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난 강감찬은 983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9] | |
3 | 1973.10.11 | 어전회의에서 문신들은 강화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좌보궐 강감찬과 종당 용호군의 강조, 양규 등은 싸우자고 주장하였다.[10] | |
4 | 1973.10.12 | ||
5 | 1973.10.13 | ||
6 | 1973.10.15 | 소손녕의 강화봉서를 놓고 조정은 또 다시 격론이 벌어졌다.[12] | |
7 | 1973.10.16 | 서희는 막중한 국운을 걸고 적장과 강화담판을 벌이기 위해 적진으로 향했다.[13] | |
8 | 1973.10.17 | 기치창검이 정연한 거란 진영에서 단신으로 적장 소손녕과 대좌한 서희는 팽팽한 위압감을 무시하고, 땅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보였다.[14] | |
9 | 1973.10.18 | 서희가 담판을 계속하는 동안 조정은 초조와 긴장 속에 잠겨있었다. 거란의 진의를 간파한 서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15][16] | |
10 | 1973.10.19 | 거란에 조공을 바치는데 방해되는 여진땅을 토벌하고, 국로를 개설해야 한다는 서희의 묘책을 제시하였다.[17] | |
11 | 1973.10.20 | 담판을 성공시킨 서희는 서경에 돌아와 성종에게 거란 조공로를 명분삼아 철군하는 거란군을 따라 강동 6주를 정벌할 것을 진언하였다.[18] | |
12 | 1973.10.22 | 강동6주를 얻어 성을 쌓고 변방 국경경비를 단단히 대비하는 고려의 총력태세를 깨뜨리는 중국 일각의 음모가 있었다.[19] | |
13 | 1973.10.23 | 정월 보름 연등회에 변복하고 남경으로 오라는 김치양의 밀서에 천추태후는 그리움에 몸부림쳤다.[20] | |
14 | 1973.10.24 | 병부 개편에 강조가 물망에 오르자 그의 야심과 사조직을 꺼리는 서희는 반대하였다.[21] | |
15 | 1973.10.25 | ||
16 | 1973.10.26 | ||
17 | 1973.10.27 | 김치양이 승병을 키우는 사실을 알고 서희를 위시한 조정 충신들이 대책을 숙론하였다.[24] | |
18 | 1973.10.29 | 날로 시국은 어수선하고 강감찬 부자는 모여 앉아 탄식을 하였다.[25] | |
19 | 1973.10.30 | 성종은 만승의 자리를 개령군에게 양위할 뜻을 밝혔다.[26] | |
20 | 1973.10.31 | 심혈사 김치양의 무리를 감시하던 호신은 발각되어 칼을 맞고 쓰러졌다.[27] | |
21 | 1973.11.01 | 성종의 침소 만녕전 앞에서 소외당한 천추태후는 분통을 터뜨렸다.[28] | |
22 | 1973.11.02 | 사수현의 대량원군과 원화 젊은 부부는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의지하고 단란하게 살아갔다.[29] | |
23 | 1973.11.03 | 개령군의 등극 소문에 김치양의 야심은 불타오르고 사수현 대량원군에 적소한 강감찬은 근심하였다.[30] | |
24 | 1973.11.05 | 천추태후를 손아귀에 쥔 김치양에게 대량원군은 눈엣가시 같았다. 사수현에서 대량군 부부를 모시고 오던 강감찬은 고심하였다.[31] | |
25 | 1973.11.06 | 감찬의 집에 잠시 머문 대량원군, 감찬 일행은 그의 기개있고 영민한 모습에 흠모와 존경을 보냈다. 성종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32] | |
26 | 1973.11.07 | ||
27 | 1973.11.08 | 성종이 붕어하고 개령군이 즉위하여 고려 7대 목종이 되었다. 섭정을 맡은 천추태후 가슴은 복수와 야심에 불탔다.[33] | |
28 | 1973.11.09 | 천추태후는 실의를 쫓기 위한 무리와 함께 김치양을 추대하고 조정대신 숙청음모를 시작하였다.[34] | |
29 | 1973.11.10 | 감찬과 서희를 거세시키자는 태후의 청을 목종은 뿌리쳤다. 감찬은 천추전으로 태후를 알현하였다.[35] | |
30 | 1973.11.11 | 거란 사신을 맞은 영접절차를 아뢰는 강감찬에게 태후는 냉랭히 물러가라 외쳤다.[36] | |
31 | 1973.11.14 | 태후는 김치양을 합문사인의 벼슬에 앉히고 그 무리로 궁중인사를 개편하니 감찬은 삭탈관직을 당하였다.[37] | |
32 | 1973.11.15 | 감찬은 담담히 낙향을 결심하는데 김치양은 거드름을 피며 입궐하였다. 문하시중 한언공은 산발하고 노구를 끌며 대궐로 향했다.[38] | |
33 | 1973.11.16 | 태후는 김치양에게 우복야 겸 판삼사사의 벼슬을 내리니 고려조의 인사권과 재정권은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39] | |
34 | 1973.11.17 | ||
35 | 1973.11.19 | 모후가 대량원군의 축출음모를 꾸민다는 한언공의 간언에 천추전으로 간 목종은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40] | |
36 | 1973.11.20 | 김치양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후의 추악한 광경을 목격한 목종은 분노가 폭발, 칼을 빼어들고 천추전으로 향했다.[41] | |
37 | 1973.11.21 | 어지러운 국사를 통탄하면서 서희는 눈을 감았다. 천추전에선 태후와 김치양이 태연히 주연을 베풀고 목종은 침식을 전폐하고 술로 날을 보냈다.[42] | |
38 | 1973.11.22 | 목종은 침식을 전폐하고 술로 날을 지새웠다.[43] | |
39 | 1973.11.23 | ||
40 | 1973.11.24 | ||
41 | 1973.11.26 | 목종비 원정이 포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44] | |
42 | 1973.11.27 | 강조에 현혹당한 동생을 책망하는 강감찬. 궁중에선 태후의 지령으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었다.[45][46] | |
43 | 1973.11.28 | ||
44 | 1973.11.29 | 태후가 김치양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놀라운 소문을 확인하고 강감찬은 등골이 오싹해졌다.[47] | |
45 | 1973.11.30 | 대량원군을 옹호하는 감찬의 집엔 불안과 긴장이 감도는데, 그날밤 김치양이 보낸 자객이 침입하였다.[48] | |
46 | 1973.12.01 | 숲속마다 김치양의 심복들이 잠복한 낡은 숭고사. 대량원군은 김치양의 속셈을 알아챘다.[50] | |
47 | 1973.12.03 | 다시 부월을 메고 천추전으로 들어간 한언공. 늙은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그 처참한 모습에 어린 목종의 가슴은 찢어질 듯했다.[51] | |
48 | 1973.12.04 | 형틀을 준비하고 독기를 품은 천추태후의 발치에서 원한과 통탄어린 눈빛으로 상소문을 울부짖던 한언공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52] | |
49 | 1973.12.05 | 형틀을 준비하고 독기를 품은 천추태후의 발치에서 원한과 통탄어린 눈빛으로 상소문을 울부짖던 한언공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한언공이 숨을 거두자 하늘도 우는 듯 천둥이 쳤다. 그날 밤 입궐하라는 칙지가 감찬에게 내려졌다.[53][54] | |
50 | 1973.12.06 | 아닌 밤중에 감찬을 불러들인 목종은 대량원군에게 양위할 뜻을 비췄다.[55] | |
51 | 1973.12.07 | 생모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불륜의 씨를 잉태한 기막힌 현실 속에 강감찬은 고뇌하였다.[57] | |
52 | 1973.12.08 | ||
53 | 1973.12.10 | 목종으로부터 은밀히 직첩을 받은 감찬은 정신용을 보내 숭교사 대량원군을 보호케 하고 한편으론 강조의 군사를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58][59] | |
54 | 1973.12.11 | 대량원군 독살 계략이 탄로나자 김치양의 자객과 정제는 필사의 혈투를 벌였다.[60] | |
55 | 1973.12.12 | 목종과 강감찬은 은밀히 강조의 군사를 일으킬 칙지를 내렸다.[61] | |
56 | 1973.12.13 | 김치양의 세력은 천추태후가 낳은 자식이 커가자 더욱 커졌고 목종은 더욱 몸이 쇠약해졌다.[62] | |
57 | 1973.12.14 | 김치양 일당이 목종 침실에까지 침입, 협박하는 속에 감찬은 죽기를 결심하고 상감을 호위하였다.[63] | |
58 | 1973.12.15 | 대량원군이 피신한 신혈사에서 감찬이 보낸 정신용 형제와 김치양의 자객들은 필사의 혈투를 벌였다.[64] | |
59 | 1973.12.17 | 상감의 밀서를 받아쥔 강조는 당혹스러워했다. 목종 곁에 있는 강감찬을 의식한 강조는 대량원군을 옹립하여 새 조정을 꾸밀 야심을 품고 거병하였다.[65] | |
60 | 1973.12.18 | 강조의 군사가 개경에 돌입하니 궁중은 아비규환 수라장이 되었다. 발악이 극에 달한 김치양은 천추태후를 끌고 내전으로 가다 감찬에게 체포당했다.[66] | |
61 | 1973.12.19 | 난리통에 목종과 천추태후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감찬의 집에 피신했던 대량원군은 혼란스러워했다.[67] | |
62 | 1973.12.20 | ||
63 | 1973.12.21 | 강조에 날조된 서약에 목종은 적성현 촌가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68] | |
64 | 1973.12.22 | 거란이 40만 대군을 일으켜 강조의 죄를 물었다.[69] | |
65 | 1973.12.23 | 거란의 외침에 위급해진 궁중에서는 현종과 감찬이 강조의 처단을 뒤로 미루고 일치단결, 거란과 싸울 채비를 하였다.[70] | |
66 | 1973.12.25 | 고려는 마침내 현종의 단안으로 강조를 행영도홍사로 삼고 양규, 정신용, 정제 형제를 홍화진으로 파병하였다.[71] | |
67 | 1973.12.26 | 강감찬은 정4품 예부시랑으로 삼아 거란과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72] | |
68 | 1973.12.27 | 거란과 일전을 겨루는 강감찬의 모습이 그려졌다.[73] | |
69 | 1973.12.28 | 홍화진의 양규는 첩첩이 싸인 3만의 적진을 12번이나 야습을 감행, 13의 적장과 5천 3백의 적병을 베어 거란의 후진을 교란시켰다.[74] | |
70 | 1973.12.29 | 삼수진에서 거란군의 예봉을 꺾어 승전을 올렸다는 강조의 장계를 받고 현종은 기뻐하였다.[75] | |
71 | 1974.01.01 | 삼수진에서 거란의 예봉을 꺾고 2만이 넘는 적병을 무찔렀다는 강조의 장계에 궁중은 환희에 싸였다.[76] | |
72 | 1974.01.02 |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의 결사대에 강조가 생포되자 고려군은 무너지고 조정은 허탈감에 빠졌다.[77] | |
73 | 1974.01.03 | 거란 진영에서 강조는 귀순을 권유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78] | |
74 | 1974.01.04 | 감찬의 상주를 받아들여 현종은 나주로 피난가고 텅빈 성내에는 패잔병과 시체만 남았다.[79] | |
75 | 1974.01.05 | 나주에 피난간 현종은 거란 성종에게 친조하기를 약속하였다. 개경에 복위한 현종은 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임명하였다. 고려에 재침입한 거란은 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십만대군을 잃었다.[80][81] | |
- | 1974.01.07 | 마침내 거란군은 개경에 도달하였다. 나주로 피난간 현종은 척화론에 골치를 앓고 텅빈 개경 성내엔 파잔병과 백성들만 남았다.[83] | |
- | 1974.01.08 | 나주로 피난간 현종은 척화론에 골치를 썩이는데 텅빈 개경 성내엔 시체만이 즐비하였다.[84] | |
- | 1974.01.09 |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되고 거란군은 물러갔다. 현종은 강감찬을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삼아 북방경비를 강화하다가 거란의 재차 침입을 당하였다.[8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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