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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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하엽병은 독일 국방군의 공수부대로, 1936년 창설되어 제2차 세계 대전과 이후 독일 연방군에서 운용되었다. 1936년 독일 공군의 훈련생 24명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육군에서도 부대가 창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덴마크, 노르웨이, 크레타 등지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며, 특히 크레타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전후 동독에서는 국가인민군이, 서독에서는 독일 연방군이 강하엽병 부대를 운용했다. 현대 독일 연방군에서는 특수 작전 사단의 핵심 전력으로, 2개의 여단급 부대와 여러 대대 및 중대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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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엽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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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독일군 최초의 공수부대는 1936년 1월 2일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괴링연대 제1대대에서 모집한 24명의 훈련생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슈텐달에 있는 낙하산 강하 훈련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후 육군에서도 낙하산 부대가 편성되었고, 1939년에는 공군으로 이관되어 제1강하엽병 연대 제2대대로 재편되었다. 1938년에는 제7항공사단이 창설되어 강하엽병 전력이 확대되었다.
1940년 4월 9일 덴마크 침공에서 강하엽병 부대는 첫 실전을 경험했다. 올보르 공항을 점령하고, 노르웨이 침공 초기 소라 공항 탈취 작전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돔보스에서는 노르웨이 육군에게 패배하기도 했다(돔보스 전투).[1]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강하엽병은 서부 전선 등 여러 전선에서 활약했다. 1944년 중반 이후에는 강하 훈련이 중단되었지만, '강하엽병'이라는 명칭은 계속 사용되었다. 1945년 4월 베를린 전투에서는 제9강하엽병사단이 괴멸되기도 했다.
전후 동독과 서독은 각각 강하엽병 부대를 보유했다. 현대 독일 연방군에서 강하엽병은 육군 소속으로, 특수 작전 사단의 핵심 전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2. 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괴링연대 제1대대에서 선발된 훈련생 24명이 1936년 1월 2일 최초의 강하엽병 부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3월에 슈텐달에서 공군이 개설한 낙하산 강하 훈련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1] 1936년 10월, 육군에서도 중(重)낙하산 보병중대(Schwere-Fallschirminfanterie-Kompanie) 편제가 결정되어 1937년부터 공군 시설을 빌려 훈련을 시작했다.[1] 이 부대는 1938년 6월 1일 대대로 증강되었으나, 1939년 1월 1일 공군으로 이관되어 제1강하엽병 연대 제2대대로 재편되었다.[1] 1938년 9월 1일에는 2개 연대 기반의 제7항공사단(후의 제1강하엽병사단)이 편성되어 강하엽병 전력이 확대되었다.[1]2. 2.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4월 9일, 덴마크 침공에서 강하엽병 부대는 최초로 강하작전을 실시하여 올보르 공항 등을 점령했다.[1] 같은 날 노르웨이 침공 초기, 스타방에르 인근 소라 공항 탈취 작전에서 적과의 교전이 있었던 최초의 공수 공격을 수행했다.[1] 1940년 4월 14일, 돔보스에서 노르웨이 육군에 의해 강하엽병 최초의 패배(돔보스 전투)가 발생했다.[1]서부 전선에서 강하엽병 부대는 때때로 '소방대' 역할을 맡아 긴급 투입되었다. 1941년 5월, 크레타 전투에서 강하엽병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연합군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대규모 강하 작전에 대한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1943년 12월, 이탈리아 오르토나 전투에 제1강하엽병사단 제3연대 제3대대가 참가했다.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제1강하엽병사단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수도원 잔해를 요새 삼아 끈질기게 저항하여 '녹색 악마(Green Devil)'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카랑탕 방어전 등에서 활약했다.
1944년 중반 이후, 전황 변화로 강하 훈련은 중단되었으나, '강하엽병' 명칭은 유지되었다. 1945년 4월, 베를린 전투에서 제9강하엽병사단이 괴멸되었다.
2. 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독의 국가인민군 육군은 제40항공강습연대라는 유일한 강하엽병 부대를 보유했으며, 이 부대 설립에는 구 국방군 강하엽병 출신들이 관여했다.현대 독일 연방군에서 강하엽병은 육군 소속으로, 2개 여단급 부대와 여러 독립 대대 및 중대를 통해 특수 작전 사단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특수 작전 사단은 약 10,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특수 작전 사단 병사의 대부분은 낙하산 전개가 가능하며, 전원이 최소한 공중 기동이 가능하다. 이 특수 작전 사단 외에도 독일에서는 (독일식으로) 연대 규모의 공중 기동 또는 공중 강습 부대를 편성하고 있다.
2. 3. 1. 동독
국가인민군 육군은 유일한 강하엽병 부대로 제40항공강습연대를 보유했다. 이 연대의 설립에는 구 국방군의 전직 강하엽병 등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2. 3. 2. 서독 및 통일 독일
현대 독일 연방군에서 강하엽병은 육군 소속이며, 2개 여단급 부대와 여러 독립 대대 및 중대로 특수 작전 사단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특수 작전 사단은 약 10,000명의 병력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부대 | 설명 |
---|---|
특수 작전 사단(Division Spezielle Operationen; DSO) | |
사단 본부 중대 | 레겐스부르크 주둔 |
제300 군악대(Heeresmusikkorps 300) | 코블렌츠 |
사단 공정 통신 대대 | 슈타트알렌도르프 |
제100 공정 통신 중대 | 레겐스부르크 |
제200 공정 통신 중대 | 뒬링겐 |
제200 장거리 정찰 중대(Fernspählehrkompanie 200) | 푸레도르프 |
제100 공정 대공 미사일 중대 | 제도르프 |
제26 공수 여단 "자르란트"(Luftlandebrigade 26 „Saarland“; LLBrig 26) | 자르루이 |
여단 본부 및 본부 부속 중대 | 자르루이 |
제260 공정 정찰 중대 | 츠바이브뤼켄 |
제260 공정 공병 중대 | 자르루이 |
제261 강하엽병 대대 | 레바흐 |
제263 강하엽병 대대 | 츠바이브뤼켄 |
제262 공정 지원 대대 | 메르치히 |
제31 공수 여단 "올덴부르크"(Luftlandebrigade 31 „Oldenburg“; LLBrig 31) | 올덴부르크 |
여단 본부 및 본부 부속 중대 | 올덴부르크 |
제310 공정 정찰 중대 | 제도르프 |
제270 공정 공병 중대 | 제도르프 |
제313 강하엽병 대대 | 제도르프 |
제373 강하엽병 대대 | 제도르프 |
제272 공정 지원 대대 | 올덴부르크, 제도르프 |
특수 작전 사령부(Kommando Spezialkräfte; KSK) | 칼프 |
1940년 덴마크 침공에서 강하엽병 부대는 첫 강하 작전을 수행했다. 이른 아침, 올보르 공항을 공격, 점령하여 이후 노르웨이 침공에서 독일 공군의 연료 보급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했다. 또한 같은 공격으로 올보르 주변의 여러 교량도 점령했다. 이날은 마스네드 요새 공격 등 덴마크 국내에서 다른 강하 작전도 수행되었다.[1]
강하엽병은 독일군 내에서도 우수한 장비를 지급받았다. 자동소총, 무반동포, 겔릭포를 실전에서 최초로 사용한 부대 중 하나이다.[1] 슈탈헬름 M1935를 기반으로 제작된 강하엽병 전용 헬멧은 낙하산 줄에 걸리지 않도록 전방 차양과 측면에서 후면까지의 굴곡을 축소했고, 가죽제 안쪽머리받이와 턱끈도 전용 구조로 변경되었다.
독일 국방군 최초의 공수 부대는 1936년 1월 29일 독일 공군 게네랄 겡 연대 제1대대에서 선발된 24명의 훈련생들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슈텐달에 개설된 낙하산 강하 훈련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1936년 10월 육군에서도 중 낙하산 보병 중대 편성이 결정되어 1937년부터 공군 시설을 빌려 훈련을 시작했다. 이 부대는 1938년 6월 1일 대대로 증강되었지만, 1939년 1월 1일 공군으로 이관되어 제1강하엽병연대 제II대대로 배정되었다. 1938년 9월 1일에는 2개 연대 기반의 제7항공사단(후의 제1강하엽병사단)이 편성되었다.
특수 작전 사단 병사의 대부분은 낙하산 전개가 가능하며, 전원이 최소한 공중 기동이 가능하다. 이 특수 작전 사단 외에도 독일에서는 (독일식으로) 연대 규모의 공중 기동 또는 공중 강습 부대를 편성하고 있다.
3. 주요 작전
적과의 교전이 있었던 최초의 공수 공격은 북유럽 침공 초,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근처의 소라 공항을 탈취했을 때이다. 노르웨이 전투에서는 강하엽병 최초의 패배도 있었는데, 1940년 4월 14일 1개 중대가 돔보스의 마을과 철도 정션에 강하하여 노르웨이 육군에 의해 격파되었다(돔보스 전투).[1]
1940년 강하 작전에 따른 에반에마엘 요새 점령, 1944년 몬테카시노 전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의 카랑탕 방어전 등 많은 유명한 전투에 참여했다.
1941년 5월의 크레타 전투는 강하엽병의 가장 유명한 강하 작전이다. 제7항공사단이 통째로 투입되었으나, 작전은 처음부터 삐끗거려 강하 중이나 착지 직후에 사격을 받아 전사하는 병사가 잇따랐다. 당시에는 소총이나 기관총 등 부피가 큰 장비는 컨테이너에 넣어 투하했는데, 병사와 떨어진 위치에 떨어져 회수할 때까지 강하엽병은 권총과 수류탄으로 싸워야 했다. 비행장을 점령하고 나서야 비로소 수송기로 제5산악엽병사단의 증원을 보낼 수 있었다. 격전 끝에 크레타 섬은 점령했지만, 강하엽병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1943년 12월 20일부터 28일에 걸쳐 제1강하엽병사단 제3연대 제3대대는 이탈리아 오르토나 전투에 참가했다.
몬테카시노 전투 중 제1강하엽병사단은 통상 보병으로 행동했다. 추축군이 건물을 이용하는 것을 두려워한 연합군이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폭격으로 파괴한 결과, 잔해로 된 견고한 "요새"가 생겨 버렸다. 그 때문에 남은 강하엽병은 잦은 돌격과 혹독한 포격에 견디며 수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4. 장비
강하엽병이 사용한 낙하산은 등 중앙의 끈 하나로 연결되어 강하 중 자세 제어가 거의 불가능했고, 비행기에서 앞으로 펼친 자세로 뛰어내려야 했다. 또한 무릎과 팔꿈치로만 착지해야 했기 때문에 패드를 장착해도 부상률이 높았다.
강하 시 휴대 가능한 장비는 권총, 수류탄, 단검 등으로 제한되었다.[1] 소총 등 기타 무기는 별도 컨테이너에 수납되어 투하되었기 때문에, 이를 회수하기 전까지는 무장이 빈약했다. 반면 연합군 공수부대는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휴대하고 강하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헤르만 괴링은 소총, 기관단총, 경기관총의 기능을 통합하고 경량화하여 강하 시 휴대가 가능한 범용 무기 개발을 지시했고, 그 결과 FG42 자동소총이 개발되어 1943년부터 종전까지 소수 배치되었다.[1]
5. 편제
1940년 4월 9일, 강하엽병 부대는 덴마크 침공에서 첫 강하 작전을 수행하여 올보르 공항과 주변의 여러 교량을 점령했다. 같은 날 마스네드 요새 공격 등 덴마크 국내에서 다른 강하 작전도 수행되었다. 북유럽 침공 초,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근처의 소라 공항을 탈취했으나, 돔보스 전투에서는 노르웨이 육군에 의해 격파되었다.[1]
1944년 중반 이후, 강하엽병은 전황 변화로 강하 훈련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강하엽병"이라는 호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대전 말기에는 12개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신설 사단은 훈련 부족으로 질이 저하되었다. 제9강하엽병사단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창설된 마지막 강하엽병 사단으로, 1945년 4월 베를린 전투 중에 괴멸되었다.
5. 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독일 국방군은 크게 육군과 공군으로 나뉘어 강하엽병 부대를 각각 보유했다.
육군은 1936년 10월 중낙하산 보병중대를 편성해 공군 시설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 부대는 1938년 6월 대대 규모로 커졌으나, 1939년 1월 공군으로 넘어가 제1강하엽병연대 제2대대로 편입되었다.
공군은 1936년 1월 괴링 연대 제1대대에서 24명의 훈련생을 선발해 최초의 공수부대를 창설했다. 이들은 슈텐달에서 낙하산 강하 훈련을 받았고, 1939년 1월 공군 소속 제1강하엽병연대 제2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제7항공사단(제1강하엽병사단의 전신)으로 발전했다.
1940년 4월 덴마크 침공에서 올보르 공항 점령, 노르웨이 침공에서 솔라 공항 탈취 등 초기 강하 작전은 성공적이었으나, 돔보스에서는 노르웨이 육군에게 패배하기도 했다.[1]
1944년 중반 이후 전황이 악화되면서 강하 훈련은 중단되었지만, '강하엽병'이라는 명칭은 계속 사용되었다. 대전 말기에는 12개 이상의 강하엽병 사단이 존재했으나, 신설 사단은 훈련 부족으로 질적 저하를 겪었다. 제9강하엽병사단은 독일에서 창설된 마지막 강하엽병 사단으로, 1945년 4월 베를린 전투에서 괴멸되었다.
54,449명 이상의 강하엽병이 전사했으며 8,000명 이상이 행방 불명되었다.[1]
5. 1. 1. 공군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최초의 공수부대는 1936년 1월 2일에 창설되었다. 괴링 연대 제1대대에서 모집한 24명의 훈련생들이 슈텐달에서 낙하산 강하 훈련을 받았다. 1938년 6월 1일부로 대대로 증강되었고, 1939년 1월 1일 공군으로 이관되어 제1팔쉬름예거 연대 제2대대로 재편되었다. 초기에는 몇 개 대대 규모였으나, 이후 3개 팔쉬름예거 연대에 지원 화기 및 항공기를 추가하여 사단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제7항공사단(제1팔쉬름예거사단의 전신)이다.
1940년 4월 9일, 강하엽병 부대는 덴마크 침공에서 최초로 강하작전을 실시하여 올보르 공항과 주변의 다리 여러 곳을 점거하였다. 노르웨이 침공에서는 스타방에르 인근의 소라 공항을 탈취하기도 했지만, 돔보스에서는 노르웨이 육군에 의해 격파되기도 했다.[1]
이후 제7항공사단의 강하엽병은 재편되어 새로운 공군 엘리트 보병사단군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 사단은 제1강하엽병사단부터 순서대로 번호가 붙여졌다. 각 사단은 기계화보병사단으로서의 편성과 장비를 갖추었고, 서부 전선에서 종종 "소방부대" 역할을 맡았다. 구성 부대는 임시 전투단 편성으로 있거나, 부족한 병력과 장비로 편성되기도 했다. 이들 부대는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예: 프랑스 전 때의 ‘에르트만 집단’, 북아프리카의 람케 강하엽병 여단)
1944년 중반 이후, 강하엽병은 전황 변화로 인해 강하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강하엽병'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대전 말기에는 강하엽병 사단이 12개 이상으로 늘었지만, 신설 사단은 훈련 부족으로 질이 떨어졌다. 제9강하엽병사단은 독일에서 창설된 마지막 강하엽병 사단이었으며, 1945년 4월 베를린 전투 중 괴멸되었다.
강하엽병 부대 편성은 다음과 같다:5. 1. 2. 육군
독일 육군 최초의 공수 부대는 1936년 10월에 편성된 중(重) 낙하산 보병 중대(Schwere-Fallschirminfanterie-Kompanie)이다.[1] 이들은 1937년부터 공군 시설을 빌려 훈련을 시작했다. 1938년 6월 1일부로 대대로 증강되었지만, 1939년 1월 1일을 기해 공군으로 이관되어 제1강하엽병 연대 제II대대로 배정되었다.[1]
육군 소속 강하엽병 부대는 다음과 같다:5. 1. 3. 무장친위대
제500SS 강하엽병대대와 제600SS 강하엽병대대가 있었다.[1]
5. 2. 현대 독일 연방군
현대 독일 연방군에서 강하엽병은 육군 소속이며, 2개 여단급 부대와 여러 독립 대대 및 중대로 구성되어 특수 작전 사단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1] 2010년에는 10,000명의 병력이 특수 작전 사단을 구성할 예정이었다.
부대 | 주둔지 | 비고 |
---|---|---|
특수 작전 사단(DSO) 본부 중대 | 레겐스부르크 | |
제300 군악대 | 코블렌츠 | |
사단 공정 통신 대대 | 슈타트알렌도르프 | |
* 제100 공정 통신 중대 | 레겐스부르크 | |
* 제200 공정 통신 중대 | 뒬링겐 | |
제200 장거리 정찰 중대 | 푸레도르프 | |
제100 공정 대공 미사일 중대 | 제도르프 | |
제26 공수 여단 "자르란트" | 자르루이 | |
* 여단 본부 및 본부 부속 중대 | 자르루이 | |
* 제260 공정 정찰 중대 | 츠바이브뤼켄 | |
* 제260 공정 공병 중대 | 자르루이 | |
* 제261 강하엽병 대대 | 레바흐 | |
* 제263 강하엽병 대대 | 츠바이브뤼켄 | |
* 제262 공정 지원 대대 | 메르치히 | |
제31 공수 여단 "올덴부르크" | 올덴부르크 | |
* 여단 본부 및 본부 부속 중대 | 올덴부르크 | |
* 제310 공정 정찰 중대 | 제도르프 | |
* 제270 공정 공병 중대 | 제도르프 | |
* 제313 강하엽병 대대 | 제도르프 | |
* 제373 강하엽병 대대 | 제도르프 | |
* 제272 공정 지원 대대 | 올덴부르크, 제도르프 | |
특수 작전 사령부 | 칼프 |
특수 작전 사단 병사의 대부분은 낙하산 전개가 가능하며, 전원이 최소한 공중 기동이 가능하다. 이 특수 작전 사단 외에도 독일에서는 (독일식으로) 연대 규모의 공중 기동 또는 공중 강습 부대를 편성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Fallschirmjäger Battle at Dombaas
http://www.nuav.net/[...]
[2]
웹사이트
Battaglione PARACADUTISTI NEMBO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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