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복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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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걸복국인은 선비족 걸복부 출신으로, 오호십육국 시대 서진을 건국한 인물이다. 그는 전진의 부견에 의해 남선우로 임명되었고, 비수대전 이후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385년 대도독, 대장군 등을 자칭하고 건의로 개원하여 서진을 건국했으며, 용사성에 수도를 두고 세력을 확장했다. 388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걸복공부와 걸복아시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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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복치반은 서진의 군주로, 후진과 남량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세력을 확장하여 즉위, 토욕혼, 남량, 후진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고 북량과의 전쟁을 치렀으며, 말년에는 북위에 신하를 자처했다. - 서진 (오호 십육국)의 군주 - 걸복건귀
걸복건귀는 오호십육국시대 서진의 창건자로, 선비족 걸복부 출신이며, 진왕을 자칭하며 외교와 군사적 능력을 통해 세력을 확장했지만, 후진에 투항 후 서진을 재건하고 아들에게 암살당했다. - 전진의 장군 - 왕맹
왕맹은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부견의 신임을 받아 전진의 국력 강화에 기여했으며, 동진 정벌을 유언했으나 부견이 따르지 않아 전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 전진의 장군 - 부견
부견은 오호십육국시대 전진의 천왕으로, 왕맹을 등용해 전진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비수대전에서 패배 후 몰락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걸복국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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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칭호 | 원천왕(苑川王) |
추증 칭호 | 서진 선렬왕(西秦宣烈王) |
시호 | 선렬왕(宣烈王, "책임감 있고 성취적인") |
묘호 | 열조(烈祖) |
봉호 | 원천왕(苑川王) |
재위 | |
서진 통치 | 385년 – 388년 |
연호 | |
건의 | 385년 – 388년 |
이름 | |
성 | 걸복(乞伏) |
이름 | 국인(國仁) |
생몰 | |
사망 | 388년 |
가계 | |
아버지 | 걸복사번(乞伏司繁) |
관직 | |
385년 ~ 387년 | 대도독, 대장군, 대선우, 영진하2주목(大都督 大將軍 大單于 領秦河二州牧) |
387년 ~ 388년 | 대도독, 도독잡이저군사, 대장군, 대선우, 원천왕(大都督 都督雜夷諸軍事 大將軍 大單于 苑川王) |
2. 생애
385년, 걸복국인은 대도독(大都督)·대장군(大將軍)·대선우(大單于)·영(領) 진(秦)·하(河) 2주목(州牧)을 자칭하고 연호를 건의(建義)라 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서진이 건국된 것으로 본다. 용사성(勇士城)에 수도를 두고 12개 군을 설치하여 농서군 일대에서 할거하였다. 걸복국인은 농서 일대의 흉노·강족 등과 대립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 387년에는 부등의 세력에 가담하여 원천왕(苑川王)에 책봉되었다. 388년 6월에 사망하였다.
아버지 | 걸복사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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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 1. 전진(前秦) 시기
걸복국인은 선비족 걸복부 출신으로 농서 지방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 걸복사번(乞伏司繁)은 전진의 부견에 의해 남(南)선우로 임명되었고, 376년에 아버지가 죽자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383년에 부견이 비수대전을 일으키자 걸복국인은 선봉장이 되어 종군하였는데, 출정하기 직전 숙부인 걸복보퇴(乞伏步頹)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부견은 걸복국인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였는데, 걸복보퇴는 걸복국인의 토벌군을 맞아들여 걸복국인을 수장으로 추대하였다.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대패하자 걸복국인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2. 2. 서진(西秦) 건국
걸복국인은 선비족 걸복부 출신으로 농서 지방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 걸복사번(乞伏司繁)은 전진의 부견에 의해 남(南)선우로 임명되었고, 376년에 아버지가 죽자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383년에 부견이 비수대전을 일으키자 걸복국인은 선봉장이 되어 종군하였는데 출정하기 직전 숙부인 걸복보퇴(乞伏步頹)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부견은 걸복국인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였는데, 걸복보퇴는 걸복국인의 토벌군을 맞아들여 걸복국인을 수장으로 추대하였다.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대패하자 걸복국인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385년, 걸복국인은 대도독·대장군·대선우·영(領) 진·하(河) 2주목을 자칭하고 건의(建義)로 개원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서진이 건국된 것으로 본다. 용사성(勇士城)에 수도를 두고 12개 군을 설치하여 농서군 일대에서 할거하였다. 걸복국인은 농서 일대의 흉노·강족 등과 대립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 387년에는 부등의 세력에 가담하여 원천왕(苑川王)에 책봉되었다. 388년 6월에 사망하였다.
2. 3. 사망
388년 6월에 사망하였다.3. 가계
- 아버지 : 걸복사번(376년 사망) - 걸복부 수장
- 본인 : '''걸복국인'''
- 아들 : 걸복공부(? ~ 412년) - 걸복국인 사망 당시에는 아직 어린 나이여서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후에 벼슬이 진위장군에 이르렀다. 412년 정변을 일으켜 걸복건귀를 시해하였으나, 걸복치반에 의해 평정되면서 주살되었다.
- 아들 : 걸복아시(? ~ 412년) - 걸복공부의 동생으로, 벼슬이 흥국(興國, 지금의 감숙성 임하회족자치주 임하현 동남) 태수에 이르렀다. 412년 정변을 일으킨 걸복공부가 그에게로 달아나 의지하였으나, 걸복공부 토벌에 나선 걸복지달에게 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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