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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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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원훈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인물로,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장, 조선체육회 이사장, 조선총독부 관료 등을 역임했다. 1911년 조선총독부 경부로 채용되어 중추원 참의, 도 참여관, 전라북도 도지사를 지냈다. 친일 행적으로 인해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5년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2. 일제강점기 이전 생애

2. 1. 초기 생애와 일본 유학

고원훈은 경상북도 문경군 산양면 신전리에서 태어났다.[1][2] 일본메이지 대학에서 유학하여 1910년 7월 동 대학 법과를 졸업했다.[1][2]

3. 일제강점기 활동

3. 1. 교육계 활동

고원훈은 1913년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20년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 보성법률상업학교는 1921년 전문학교 인가를 받고 보성전문학교로 승격했고, 그는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전문학교 교장이 되었다. 한편, 1920년 7월 조선체육회의 초대이사장으로 선출되었고, 1921년 같은 회의 회장이 되었다.

3. 2. 조선총독부 관료 활동

고원훈은 1911년 8월 조선총독부의 경부(警部, 경찰의 계급)로 채용되었다.[1][2]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고, 도 참여관으로 관료의 길을 걸었다. 전라남도(1924년 12월), 경상북도(1926년), 평안남도(1929년), 경기도, 평안북도(1930년 4월)에서 참여관을 역임하고 1932년 9월에는 전라북도 도지사가 되었다.[1][2]

3. 3. 친일 활동

3. 4. 기업 활동

4. 광복 이후

4. 1. 한국 전쟁 중 납북 및 사망

5. 논란 및 평가

5. 1. 친일 행적 논란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수록되었다.[5]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5. 2. 엇갈린 평가

참조

[1] 뉴스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https://web.archive.[...] 일요시사 2004-03-18
[2] 뉴스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https://web.archive.[...] 일요시사 2004-03-18
[3] 웹사이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납북인사 명록 http://www.korwarabd[...]
[4] 보고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5] 뉴스 고대 총학 ‘친일행적’ 10명 발표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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