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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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경시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2읍 7면 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신라 시대에는 여러 현이 설치되었다. 후삼국 시대에는 견훤의 세력권에 속하기도 했으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문경현으로 존재했다. 1995년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현재의 문경시가 되었으며, 주요 산업은 석탄 광업에서 관광, 농업 등으로 변화했다. 문경새재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며,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북선 철도를 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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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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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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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문경시 |
한글 표기 | 문경시 |
한자 표기 | 聞慶市 |
로마자 표기 | Mungyeong-si |
매큔-라이샤워 표기 | Mun'gyŏng-si |
지역 | 영남 지방 |
방언 | 경상도 방언 |
행정 구역 | |
하위 행정 구역 | 2 읍, 7 면, 5 동 |
인구 | |
총 인구 | 67,544 (2024년 9월 기준) |
인구 밀도 | 84.79 명/km² |
남자 인구 | 33,775 (2023년) |
여자 인구 | 34,980 (2023년) |
총 세대수 | 37,069 (2021년) |
면적 | |
총 면적 | 911.73 km² |
정치 및 행정 | |
시장 | 신현국 (국민의힘) |
국회의원 | 임이자 (국민의힘, 상주시·문경시) |
시청 소재지 | 문경시 당교로 225 (모전동 220) |
행정 구역 분류 코드 | 37090 |
전화 지역 번호 | +82-54 |
상징 | |
시목 | 박달나무 |
시화 | 철쭉꽃 |
시조 | 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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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시간대 | 한국 표준시 (UTC+9) |
공식 홈페이지 | 문경시청 공식 홈페이지 |
2. 역사
청동기 시대 유물과 유적이 산북면, 호계면 등지에서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문경 지역에서 인간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문경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회 발전을 통해 진한의 근기국(勤耆國)으로 비정되는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다.[33] 156년(아달라왕 3) 신라에 의해 계립령로(鷄立嶺路)가 개통되었다.[33]
내물왕 대 이후 신라가 팽창하면서 문경 지역은 신라 영역에 편입되었고, 문경읍(관문현)과 호계면(호측현) 등이 설치되었다.[33]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으로 관산현(冠山縣), 가선현(嘉善縣), 호계현(虎溪縣)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산양면은 가유현(嘉猷縣)으로 예천군에 속했다.[33]
후삼국의 쟁패기에는 가은읍 출신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문경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으나, 후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왕건이 근암성(近巖城)을 함락하고 고사갈이성 성주 흥달(興達)이 귀부하면서 후백제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했다.[33]
고려 시대에 관산현은 문희군(聞喜郡)으로, 가선현은 가은현(加恩縣)으로 개명되었다. 1018년(현종 9) 문경 지역은 상주 속현으로 편입되었고, 문희군은 문경군으로 개명되었다. 산양현에 감무가 설치되었으나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고 가은현을 속현으로 하였다.[33]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호계현이 문경현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8도 체제 정비와 함께 경상도 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설치되었다. 당시 문경현은 토지가 척박하고 풍속은 검소했으며, 인구는 161호 2,564인이었다.[33]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 후, 새재를 통해 일본군이 진격해 왔다. 문경현감 신길원은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 순국하였다.[33] 임진왜란 이후 새재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1708년(숙종 34) 조령산성이 축조되었고, 1752년(영조 28)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守城將)을 겸하다가 별장(別將)을 두었다.[33]
1871년(고종 8) 이필제, 정기현 등의 지도하에 민중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했고, 1877년에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33] 1895년 지방제도 개편 시 문경은 군이 되지 못했으나, 이듬해 군으로 독립하였다.[33]
1906년 동로면과 화장면(化莊面)을 예천군에 넘겨주고,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1907년 이후 유지들이 신식학교를 설립했으나, 일진회의 도천학교(道川學校)가 민폐를 끼쳐 의병들이 소각했다. 이인영, 이강년 등 문경 출신 의병장들이 항일의병투쟁을 이끌었으며, 1919년 3·1 운동 때에는 4월 13일~15일 산북면 주민들이 갈평(葛平)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33]
1914년 4월 1일 용궁군 서면(西面)을 편입하였다.[34] 1934년 4월 1일 신북면(身北面)을 문경면에 통합하였다.[35] 1949년 4월 27일 문경군청을 문경면에서 호서남면 점촌리로 이전하였고,[36] 같은 해 12월 24일 문경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37]
1956년 7월 8일 호서남면이 점촌읍으로 승격되었고,[38] 1963년 1월 1일 농암면 민지리를 가은읍으로, 삼송리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하였다.[39] 1968년 9월 3일 문경군청을 점촌읍 모전리(현 문경시의회)로 이전하였다. 1973년 7월 1일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호계면 봉정리가 산양면에 편입되었다.[40]
1986년 점촌읍이 호계면 일부를 편입해 점촌시로 승격되어 시군이 분리되었다. 석탄산업 쇠퇴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졌으며, 같은 해 상주시 함창읍 윤직리 일부가 중앙동에 편입되었고, 1994년 충현동이 점촌동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고, 1996년 산북면 거산출장소와 동로면 수평출장소가 폐지되었다.[42] 2004년 1월 1일 점촌동이 점촌1동~5동으로 분동되었다.[43]
2. 1. 고대
문경의 초기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산북면·호계면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 시기에는 인간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발전을 통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는데, 진한의 근기국(勤耆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33] 근기국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156년(아달라왕 3) 신라에 의해 계립령로(鷄立嶺路)가 개통되었다고 한다.[33]내물왕 대 이후 신라가 팽창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관문현(冠文縣, 또는 고사갈이성, 관현: 지금의 문경읍), 가해현(加害縣), 호측현(虎側縣 또는 배산성: 지금의 호계면) 등이 설치되었다.[33]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시 이들은 각기 관산현(冠山縣)·가선현(嘉善縣)·호계현(虎溪縣)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33] 이 때 산양면 일대는 가유현(嘉猷縣)으로 예천군에 속해 있었다.[33]
2. 2. 고려시대
927년(태조 10) 왕건이 친히 근암성(近巖城)을 함락시켰는데, 이때 고사갈이성 성주(城主) 흥달(興達)이 귀부해 오자 크게 우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하였다.[33]이후 고려의 지배체제에 들어가 관산현은 문희군(聞喜郡)으로, 가선현은 가은현(加恩縣)으로 개명되었다. 1018년(현종 9) 이들 지역은 모두 상주(尙州)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문희군은 뒷날 문경군으로 개명되었고, 산양현에는 감무가 설치되었으나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가은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2. 3.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상주 소속의 호계현이 문경현에 속하게 되었고, 8도 체제가 정비되면서 신구(新舊) 경상도 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이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33] 당시 문경현의 토지는 척박했으며, 풍속은 검소했고, 호구 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161호 2,564인이었다고 한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통하는 새재(鳥嶺)로 인해 적의 주력이 이곳으로 진격해 왔다.[33] 이때 이 곳의 관병(官兵)은 대구(大丘)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문경현감 신길원(申吉元)은 수십 명의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가 패배해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새재가 국방상 요새가 됨으로 인해 이곳이 계속 중요시되어서, 1708년(숙종 34) 조령산성(鳥嶺山城)이 축조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守城將)을 겸하다가 다음 해에 별장(別將)을 두었다.[33]
1871년(고종 8) 이필제(李弼濟)·정기현(鄭岐鉉) 등의 지도하에 민중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했고, 1877년에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33]
1895년 지방제도 개편 시 다른 군현과는 달리 군이 되지 못했으나, 다음 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군으로 독립하였다.[33]
2. 4. 일제강점기
1906년 동로면(東魯面)과 화장면(化莊面)을 예천군에 할양했고,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永順面)의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1907년 이래 이 곳 유지들에 의해 신식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일진회에 의해 만들어진 도천학교(道川學校)가 민폐를 많이 끼치자, 의병들이 이를 소각하기도 하였다. 또 항일의병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이인영 및 이강년 등 이 곳 출신 의병장들이 활약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4월 13∼15일 산북면 주민들이 갈평(葛平)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33]1914년 4월 1일 용궁군(龍宮郡) 서면(西面)을 편입하였다.[34] 같은 해 군면 폐합으로 문경군에는 문경면, 마성면, 가은면, 농암면, 호계면, 산양면, 영순면, 산북면, 호서남면, 동로면, 신북면의 11개 면이 설치되었다.[20]
구 행정구역 | 신 행정구역 |
---|---|
읍내면, 초곡면 | 문경군 문경면 |
신남면, 신동면 | 마성면 |
가동면, 가북면, 가현면 일부 | 가은면 |
가서면, 가남면, 가현면 일부 | 농암면 |
호현면, 산서면 | 호계면 |
산동면, 산남면 | 산양면 |
영순면 일부, 용궁군 서면 | 영순면 |
산북면, 화장면 | 산북면 |
호서면, 영순면 일부 | 호서면 |
동로면 | 동로면 |
신북면 | 신북면 |
1934년 4월 1일 신북면(身北面)을 문경면에 합면하였다.[35]
2. 5. 대한민국
문경의 초기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산북면·호계면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 시기에는 인간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발전을 통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는데, 진한의 근기국(勤耆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근기국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156년(아달라왕 3) 신라에 의해 계립령로(鷄立嶺路)가 개통되었다.[33]내물왕대 이후 신라가 팽창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관문현(冠文縣, 또는 高思曷伊城, 冠縣: 지금의 문경읍), 가해현(加害縣), 호측현(虎側縣 또는 拜山城: 지금의 호계면) 등이 설치되었다.[33]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이들은 각기 관산현(冠山縣)·가선현(嘉善縣)·호계현(虎溪縣)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이 때 산양면 일대는 가유현(嘉猷縣)으로 예천군에 속해 있었다.[33]
후삼국의 쟁패기에는 이 곳 가은읍 출신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자 이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으나, 뒤이은 후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왕건이 친히 근암성(近巖城)을 함락시켰는데, 이 때 고사갈이성 성주(城主) 흥달(興達)이 귀부해 오자 크게 우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다.[33]
이후 고려의 지배체제에 들어가 관산현은 문희군(聞喜郡)으로, 가선현은 가은현(加恩縣)으로 개명되었다. 1018년(현종 9) 이들 지역은 모두 상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문희군은 뒷날 문경군으로 개명되었고, 산양현에는 감무가 설치되었으나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가은현을 속현으로 하였다.[33]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상주 소속의 호계현이 내속하게 되었고, 8도체제가 정비되면서 신구(新舊) 경상도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이 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당시 문경현의 토지는 척박했으며, 풍속은 검솔(儉率)했다고 하며,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161호 2,564인이었다고 한다.[33]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통하는 새재로 인해 적의 주력이 이 곳으로 진격해 왔는데, 이 때 이 곳의 관병(官兵)은 대구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문경현감 신길원(申吉元)은 수십 명의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가 패배해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33]
임진왜란 뒤에 새재가 국방상 요새가 됨으로 인해 이곳이 계속 중시되어서, 1708년(숙종 34) 조령산성(鳥嶺山城)이 축조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守城將)을 겸하다가 다음 해에 별장(別將)을 두었다.[33]
1871년(고종 8) 이필제(李弼濟)·정기현(鄭岐鉉) 등의 지도하에 민중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했고, 1877년에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33]
1895년 지방제도 개편시 다른 군현과는 달리 군이 되지 못했으나, 다음 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군으로 독립하였다.[33]
1906년 동로면과 화장면(化莊面)을 예천군에 할양했고,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의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1907년 이래 이 곳 유지들에 의해 신식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일진회에 의해 만들어진 도천학교(道川學校)가 민폐를 많이 끼치자, 의병들이 이를 소각하기도 하였다. 또 항일의병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팔도의병총대장 이인영 및 의병대장 이강년 등은 이 곳 출신이었다. 1919년 3·1 운동 때에는 4월 13일~15일 산북면 주민들이 갈평(葛平)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33]
1914년 4월 1일 용궁군 서면(西面)을 편입하였다.[34]
1934년 4월 1일 신북면(身北面)을 문경면에 합면하였다.[35]
1949년 문경군의 군청 소재지가 문경면 하리에서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해 오자 이 지역의 발전은 급속화 되었고 그 결과 1956년 호서남면(戶西南面)이 점촌읍으로 개칭, 승격한 이래 관할 행정구역의 개편이 있었고, 1973년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4월 27일 문경군청을 문경면 상리에서 호서남면 점촌리로 이전하였다.[36]
1949년 12월 24일 문경 양민학살 사건.[37]
1956년 7월 8일 호서남면을 점촌읍으로 승격하였다.[38] (1읍 9면)
1963년 1월 1일 농암면 민지리를 가은읍으로, 삼송리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하였다.[39]
1968년 9월 3일 문경군청을 점촌읍 모전리(현 문경시의회)로 이전하였다.
1973년 7월 1일 문경면 일원이 문경읍으로, 가은면 일원과 상주시 이안면 저음리가 합하여 가은읍으로 각각 승격하였다. 호계면 봉정리를 산양면에 편입하였다.[40] (3읍 7면)
1986년 점촌읍이 호계면 오암리의 일부를 편입해 시로 승격되자 시군이 분리되었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석탄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자 지역의 경제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같은 해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가 중앙동에 편입되었고 1994년 충현동을 점촌동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으며 1996년 산북면 거산출장소와 동로면 수평출장소가 각각 폐지되었다.
1986년 1월 1일 호계면 별암2리를 점촌읍에 편입하여, 점촌읍을 관할로 점촌시가 설치되었다.[41] (2읍 7면)
1995년 1월 1일 점촌시 일원과 문경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문경시가 설치되었다.[42]
2004년 1월 1일 점촌동을 점촌1동으로, 중앙동을 점촌2동으로, 신흥동을 점촌3동으로, 신평동을 점촌4동으로, 모전동을 점촌5동으로 각각 개칭하였다.[43]
3. 지리
문경시는 소백산맥의 그림자 아래, 태백산맥 서쪽에 위치하여 온대 습윤 기후(쾨펜: ''Dwa'')에 속하지만, 등온선을 사용하면 경계적인 아열대 습윤 기후(쾨펜: ''Cwa'')로 간주될 수도 있다. 서리 없는 날의 수는 한국의 해안 지역보다 상당히 적다. 연평균 기온은 약 11°C이고, 연강수량은 약 1300mm이다. 연간 집중호우일수는 약 90일이며, 그중 약 30일은 7월과 8월의 장마 기간에 집중된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 |
---|---|---|---|---|---|---|---|---|---|---|---|---|---|
최고 기온 기록 (°C) | 13.8°C | 22.4°C | 26.2°C | 32.3°C | 35.2°C | 35.6°C | 37.8°C | 38.1°C | 34.4°C | 30.1°C | 27.1°C | 16.9°C | 38.1°C |
평균 최고 기온 (°C) | 3.4°C | 6.3°C | 12.1°C | 18.9°C | 24°C | 27.2°C | 28.8°C | 29.4°C | 25.3°C | 20°C | 12.4°C | 5.4°C | 17.8°C |
평균 기온 (°C) | -1.7°C | 0.6°C | 5.8°C | 12.2°C | 17.3°C | 21.3°C | 23.9°C | 24.2°C | 19.2°C | 13°C | 6.4°C | 0.1°C | 11.9°C |
평균 최저 기온 (°C) | -6.3°C | -4.7°C | -0.1°C | 5.4°C | 10.6°C | 15.9°C | 20.2°C | 20.3°C | 14.5°C | 7.3°C | 1.1°C | -4.7°C | 6.6°C |
최저 기온 기록 (°C) | -20°C | -17°C | -11°C | -4.2°C | 1.7°C | 4.6°C | 10.7°C | 10.4°C | 3.9°C | -4°C | -9.8°C | -16.7°C | -20°C |
강수량 (mm) | 18.9mm | 29.7mm | 48.7mm | 89.5mm | 108.1mm | 154.8mm | 309.5mm | 274.7mm | 138.4mm | 58.8mm | 40.9mm | 22.9mm | 1294.9mm |
평균 강수일수 (0.1 mm 이상) | 5.5 | 5.6 | 7.5 | 8.5 | 8.3 | 9.1 | 15.7 | 14.3 | 9.3 | 5.9 | 7.0 | 6.1 | 82.8 |
평균 강설일수 | 6.7 | 5.1 | 2.8 | 0.3 | 0.0 | 0.0 | 0.0 | 0.0 | 0.0 | 0.1 | 1.4 | 4.5 | 20.7 |
평균 상대 습도 (%) | 56.0 | 53.6 | 54.0 | 52.6 | 60.2 | 69.2 | 80.1 | 79.7 | 76.9 | 70.1 | 63.9 | 58.5 | 64.6 |
평균 일조시간 | 167.6 | 183.6 | 200.4 | 220.3 | 241.7 | 198.6 | 148.9 | 163.0 | 171.2 | 201.1 | 163.4 | 161.2 | 2221.0 |
일조율 | 58.5 | 60.4 | 56.7 | 59.8 | 57.5 | 49.6 | 37.3 | 44.8 | 50.2 | 61.5 | 55.5 | 55.5 | 53.3 |
- 자료: 기상청 (강설 및 일조율 1981–2010)[5][6][7]
3. 1. 지형
문경시는 행정구역상 대한민국의 동남부, 경상북도의 서북단 내륙에 자리 잡은 중산간 지역으로서 동쪽으로는 예천군, 남쪽으로는 상주시,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문경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40km, 남쪽에서 북쪽으로 약 37km에 걸쳐 있다. 대략적인 형태는 직각삼각형에 가까우며, 빗변은 소백산맥의 봉우리들에 해당한다. 북쪽 끝은 동로면에 위치하며, 북위 36°52'10''에 있다. 남쪽 끝은 농암면에 위치하며, 북위 36°41'40''에 있다. 문경시의 동쪽 끝 또한 동로면에 있으며, 동경 128°22'42''에 있다. 서쪽 끝은 가은읍에 있으며, 동경 127°52'48''에 있다.
문경시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북쪽과 서쪽 경계는 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 제천시, 충주시와, 북서쪽으로 괴산군과 접해 있다. 경상북도 내에서는 동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상주시와 접해 있다.
문경시의 지형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이 지배적이다. 시의 최고봉은 이 경계선상에 있는 동로면의 월악산 문수봉(1161m)이다. 수많은 계곡으로 갈라진 시의 지형은 소백산맥 봉우리에서 낙동강과 그 지류인 영강의 계곡 쪽으로 경사져 내려간다. 영순면에서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의 해발고도는 겨우 200m에 불과하다. 계곡 위쪽의 토양은 얇고, 화성암 또는 퇴적암의 기반암이 노출된 곳이 흔하다. 수백만 년 동안의 침식으로 인해 많은 지역에 깎아지른 절벽과 낭떠러지가 형성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지역 관광의 주요 명소가 되었다.
3. 2. 기후
문경시는 경상북도의 서북단 내륙에 자리 잡은 중산간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예천군, 남쪽으로는 상주시,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괴산군,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남 지역 서북부에 위치하여 산세가 아치형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산악기후의 영향을 받는다.[44]최근 수년간 연평균 기온은 10.9°C(1993년)에서 12.5°C(1994년) 사이를 오르내리며, 연평균 기온의 변화는 크지 않다. 연평균 강수량은 1,319.6mm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비가 내리는 지역에 속하며, 1998년에는 1,847.4mm의 최대 강수량을, 1994년에는 857.8mm의 최소 강수량을 기록했다.[44]
문경은 온대 습윤 기후(쾨펜: ''Dwa'')에 속하지만, -3°C 등온선을 사용하면 경계적인 아열대 습윤 기후(쾨펜: ''Cwa'')로 간주될 수도 있다. 서리 없는 날의 수는 한국의 해안 지역보다 상당히 적다. 연평균 기온은 약 11°C이고, 연강수량은 약 1300mm이다. 연간 집중호우일수는 약 90일이며, 그중 약 30일은 7월과 8월의 장마 기간에 집중된다.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평균 최고 기온 (°C) | 3.4°C | 6.3°C | 12.1°C | 18.9°C | 24°C | 27.2°C | 28.8°C | 29.4°C | 25.3°C | 20°C | 12.4°C | 5.4°C |
평균 기온 (°C) | -1.7°C | 0.6°C | 5.8°C | 12.2°C | 17.3°C | 21.3°C | 23.9°C | 24.2°C | 19.2°C | 13°C | 6.4°C | 0.1°C |
평균 최저 기온 (°C) | -6.3°C | -4.7°C | -0.1°C | 5.4°C | 10.6°C | 15.9°C | 20.2°C | 20.3°C | 14.5°C | 7.3°C | 1.1°C | -4.7°C |
강수량 (mm) | 18.9mm | 29.7mm | 48.7mm | 89.5mm | 108.1mm | 154.8mm | 309.5mm | 274.7mm | 138.4mm | 58.8mm | 40.9mm | 22.9mm |
평균 강수일수 (0.1 mm 이상) | 5.5 | 5.6 | 7.5 | 8.5 | 8.3 | 9.1 | 15.7 | 14.3 | 9.3 | 5.9 | 7.0 | 6.1 |
평균 상대 습도 (%) | 56.0 | 53.6 | 54.0 | 52.6 | 60.2 | 69.2 | 80.1 | 79.7 | 76.9 | 70.1 | 63.9 | 58.5 |
평균 일조시간 | 167.6 | 183.6 | 200.4 | 220.3 | 241.7 | 198.6 | 148.9 | 163.0 | 171.2 | 201.1 | 163.4 | 161.2 |
- 자료: 기상청 (평년값: 1991년~2020년, 극값: 1973년~현재)[45][46]
4. 행정 구역
문경시의 행정 구역은 2읍(문경읍, 가은읍), 7면(영순면, 산양면, 호계면, 산북면, 동로면, 마성면, 농암면), 5동(점촌1동, 점촌2동, 점촌3동, 점촌4동, 점촌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47] 1995년 1월 1일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문경시가 설치되었고,[18] 2004년 1월 1일에는 점촌동이 점촌1동으로, 중앙동이 점촌2동으로, 신흥동이 점촌3동으로, 신평동이 점촌4동으로, 초전동이 점촌5동으로 각각 이름이 변경되었다.[19]
문경시의 면적은 911.17km2이며,[47] 2013년 기준으로 인구는 33,161세대, 내국인 74,379명, 외국인 1,285명이다.[48]
읍·면·동 | 한자 | 세대 | 인구 | 면적(km²) |
---|---|---|---|---|
문경읍 | 聞慶邑 | 3,439 | 9,900 | 156.68km2 |
가은읍 | 加恩邑 | 2,921 | 6,296 | 152.42km2 |
영순면 | 永順面 | 1,342 | 2,976 | 38.54km2 |
산양면 | 山陽面 | 1,724 | 3,743 | 32.65km2 |
호계면 | 虎溪面 | 1,461 | 2,899 | 53.25km2 |
산북면 | 山北面 | 1,573 | 3,217 | 111.21km2 |
동로면 | 東魯面 | 921 | 1,844 | 150.6km2 |
마성면 | 麻城面 | 2,021 | 4,132 | 74.77km2 |
농암면 | 籠巖面 | 1,520 | 3,034 | 103.46km2 |
점촌1동 | 店村1洞 | 2,674 | 6,464 | 0.87km2 |
점촌2동 | 店村2洞 | 3,576 | 8,483 | 4.58km2 |
점촌3동 | 店村3洞 | 3,919 | 10,211 | 8.94km2 |
점촌4동 | 店村4洞 | 1,731 | 3,822 | 29.6km2 |
점촌5동 | 店村5洞 | 5,094 | 14,931 | 2.09km2 |
5. 인구
연도 | 총인구 |
---|---|
1975년 | 161,095명 |
1980년 | 147,242명 |
1985년 | 139,731명 |
1990년 | 119,416명 |
1995년 | 95,778명 |
2000년 | 89,900명 |
2005년 | 78,058명 |
2010년 | 77,391명 |
2015년 | 75,784명 |
2020년 | 71,406명 |
문경시의 인구는 대구광역시와 서울특별시와 같은 주요 도시 중심지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계속 감소하고 있다.[11] 도시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점촌 시가지의 건설은 상당히 확장되고 있다.
문경시 인구의 대다수(약 99.7%)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를 가진 지역 가문 출신이다.
6. 산업
석탄을 나르던 철도길이 폐선되면서, 문경시는 이 길을 활용해 철로자전거를 최초로 개통하여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다른 지역의 철로자전거(레일바이크)와 달리, 문경의 철로자전거는 여러 노선을 가지고 있다.
6. 1. 경제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문경의 경제는 석탄 광업에 기반을 두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 광산들은 폐광되었고, 그 이후로 시정부는 지역의 관광, 농업 및 경공업 개발에 집중해 왔다.[1]
산악 지형 때문에 문경 토지의 대부분(약 75%)은 농업에 부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부문은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1] 일부 지역 농산물은 지역에서 직접 판매되지만 대부분은 한국의 주요 도시 중심지로 수출된다. 과수원 농업, 특히 사과 재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4.4km2의 면적이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1]
지방 정부는 농촌 지역 주변에 위치한 "농공 복합단지"를 포함하여 농업 및 산업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기관을 설립했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데,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과수원 재배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다.[1]
6. 2. 농업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문경의 경제는 석탄 광업에 기반을 두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 광산들은 폐광되었고, 그 이후로 시정부는 지역의 관광, 농업 및 경공업 개발에 집중해 왔다.산악 지형 때문에 문경 토지의 대부분(약 75%)은 농업에 부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부문은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일부 지역 농산물은 지역에서 직접 판매되지만 대부분은 한국의 주요 도시 중심지로 수출된다. 과수원 농업, 특히 사과 재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4.4km2의 면적이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방 정부는 농촌 지역 주변에 위치한 "농공 복합단지"를 포함하여 농업 및 산업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기관을 설립했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데,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과수원 재배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다.
6. 3. 축제
2015년 문경 세계 군인 체육 대회는 2015년 10월 경상북도 여러 지역에서 열렸으며, 문경에서는 국군체육부대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1]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는 일본의 골든위크 무렵에 개최된다.[1]7. 교통
문경은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교통망이 좋지 못했지만, 개통 후 급속도로 좋아졌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의 거리가 2시간으로 줄어들어 접근성이 좋아졌고, 서울 및 수도권 소재 기업, 대학 시설을 많이 유치하고 있다.
문경에는 공항이 없지만, 인근 예천에 여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공항이 있다.
7. 1. 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 이전에는 문경의 교통망이 좋지 못했지만, 개통 이후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의 거리가 2시간으로 줄어들어 접근성이 좋아졌고, 서울 및 수도권 소재 기업, 대학 시설을 많이 유치하고 있다. 수도권-충주-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철도가 복선전철-일부 단선전철로 건설될 계획이며, 완공시 경북선, 중부내륙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가 될 것이다.중부내륙고속도로의 점촌함창 나들목과 문경새재 나들목이 문경에 있다. 국도 제3호선과 제34호선이 문경을 관통하며, 한국철도공사 경북선이 문경을 지나면서 영주와 김천을 연결한다. 예로부터 문경 새재는 '조령'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조선 시대 주요 간선축이었던 영남대로의 관문으로 이용되었다.
문경 시민 대부분은 자동차를 가장 선호하는 교통 수단으로 이용한다. 지역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소유율이 매우 높아 총 21,687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도시의 인구 밀도가 낮아 교통 체증은 드물다. 국도는 점촌을 상주, 충주, 영주와 연결한다.
2004년 말 이전에 문경을 통과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구간이 완공되었다. 고속도로 분기점은 점촌과 문경읍에 있으며, 이는 지역 교통 패턴과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7. 2. 철도
문경은 경북선을 통해 여객 철도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점촌역에 정차한다.[1] 과거 문경선과 가은선은 점촌역에서 문경읍과 가은읍으로 연결되는 지선이었으나, 한국철도공사는 1995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여객 운송을 중단했다.[1] 경북선은 화물 수송 외에도 하루에 각 방향으로 3~5편의 여객 열차를 운행한다.[1]- 한국철도공사(KORAIL)
- * 경북선: 점촌역
- ** 하루 3회 왕복(토·휴일은 4회 왕복)하는 무궁화호 열차가 부산역 - 영주역 구간을 운행한다.[1]
- * 문경선(여객 영업 중지): 점촌역 - 주평역 - 진남역 - 문경역[1]
- * 중부내륙선: 문경역[1]
7. 3. 버스
문경 시민 대부분에게 자동차는 가장 선호하는 교통 수단이다. 지역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소유율이 매우 높아 총 21,687대의 자동차가 있다.[1] 하지만 도시의 인구 밀도가 낮기 때문에 교통 체증은 드물다.[1] 국도는 점촌을 상주, 충주, 영주와 연결한다.[1]도시의 대중교통 수요는 주로 버스가 담당한다.[1] 시내버스는 지역 내와 인근 상주, 예천을 운행하며, 시외버스는 더 먼 목적지로 승객을 운송한다.[1] 버스터미널은 문경읍과 점촌에 위치한다.[1] 승객 수가 적기 때문에 문경을 통과하는 대부분의 시외버스는 상주에도 정차한다.[1]
점촌시외버스터미널은 시청에서 동쪽으로 500m, 점촌역에서 남서쪽으로 1.5km 거리에 있다.[1] 고속버스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개 노선으로 1~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2시간이다.[1] 시외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 인천, 김천, 구미, 충주, 영주, 안동 등에서 오는 노선이 있다.[1]
문경읍(세제)버스터미널은 시외버스만 운행하며, 동서울종합터미널까지는 1~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소요 시간은 2시간이다.[1] 그 외 인천, 충주, 구미 등에서 오는 노선이 있다.[1]
8. 교육
문경의 신식 학교는 1912년 4월 12일 설립된 지금의 문경초등학교인 문경공립보통학교가 시작이다. 서당을 개량하여 농촌에 2년제 간이학교 6곳을 설치했다. 이들 간이학교는 신북간이학교→용흥국민학교, 화산간이학교→청화국민학교, 말응간이학교→영창국민학교, 유곡간이학교→유곡국민학교, 상괴간이학교→희양국민학교, 동로국민학교부설간이학교→수평국민학교로 각각 바뀌었다.
광복 후에는 한국인 교사들이 교육을 맡으면서 일제강점기 때의 차별이 사라져 교육열이 높아지고 취학 아동이 급증하여 1949년까지 초등학교가 31개로 늘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학교가 문을 닫고 많은 교실이 불에 타 노천수업을 하기도 했다. 1952년부터 1957년까지 9개 학교가 문을 열었다.
1960년대 이후 문경탄전의 석탄산업 발달로 많은 학교가 문을 열었으나, 1990년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구가 크게 줄면서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다.
현재 문경시에는 고등학교 4곳, 문경대학 1곳, 초등학교 17곳, 중학교 9곳이 운영 중이다.
문경시에 있는 초등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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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에 있는 중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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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에 있는 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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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포츠
2015년 문경 세계 군인 체육 대회(세계 군인 체육 대회|世界軍人體育大會한국어)가 개최되었다. 10월에 경상북도 여러 지역에서 경기가 열렸으며, 문경에서 개최된 경기는 국군체육부대 경기장에서 열렸다.
문경시는 상무 피닉스 야구단과 문경 상무 여자 축구단의 연고지이며, 육상 경기가 매우 인기가 많다. 점촌 시민운동장에서는 공개 육상 경기가 열리고 있으며, 그 외에도 타격 연습장과 같은 많은 사설 시설이 있다.
2015년 문경시는 제6회 국제군인스포츠위원회 (CISM) 세계 군인 체육대회를 개최했다.[15]
10. 정치 · 행정
문경시가 아직 군이었던 1986년 문경군의 일부였던 점촌읍이 시로 승격되어 점촌시가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과거 문경군청은 문경읍 상리에 있었으나 1949년 점촌읍으로 이전하면서 문경군의 중심지가 점촌으로 바뀌었다. 1995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원래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점촌시와 문경군을 통합하면서 통합 시의 명칭 문제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상당한 진통 끝에 원래의 이름인 '문경시'로 되었지만 문경시 안에 시청이 있는 구 점촌시와 문경읍이 공존하는 상황이 혼란을 가져왔다. 문경읍에 문경시청이 없고 옛 점촌시 지역인 동 지역에 시청이 있음으로써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현재 문경시 인근의 대부분의 교통 표지판에는 동 지역을 가리키는 표시로서 반드시 '점촌(문경시청)'[53]과 '문경읍'을 명확히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도 생활권이 문경(문경읍), 점촌(점촌1, 2, 3, 4, 5동), 가은(가은읍)으로 사실상 나뉜 상태이다.
정부 청사는 점촌4동에 위치해 있다. 지방 정부는 의회 제도 하의 대의 민주주의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나 많은 지방 행정은 실제로 중앙 집권적인 도 또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다. 예를 들어, 교육 사무는 문경교육지원청이 담당하며, 이 기관은 시 정부가 아닌 경상북도교육청에 보고한다. 지역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문경시장은 1995년부터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었다. 현행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된다. 현 문경시장은 2022년 7월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신현국이다. 부시장은 2023년 1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백승모이다.[8]
문경시의회 의장은 라 선거구(호계, 점촌1·3동)에서 선출된 이정걸이다. 전체 의원 수는 13명이다.[9]
11. 문화
문경의 문화는 경상북도의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 유교적인 가치관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경새재 아리랑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민요가 이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문경의 전통 도자기 공예는 현재까지도 많은 도예 명장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경시는 1999년부터 전통 찻잔 축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14] 지역 음식으로는 찜닭과 춘천식 닭갈비 등이 유명하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한국 불교, 샤머니즘이 공존하는 특성을 보인다.
11. 1. 문화유산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조령산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1017m의 산이다.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하는데,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50]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뒤에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51][52] 1974년 지방기념물 제18호, 1981년 6월 4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학술연구용역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여 2007년 10월 18일 개장했다.
문경시에는 문경새재, 옛길박물관, 문경석탄박물관을 포함한 수많은 관광 명소가 조성되어 있다. 문경 주변에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진남교 지역이 있는데, 지역 신문인 ''영남일보''가 한때 "경상북도 8경 중 하나"라고 칭찬한 곳이다.
문경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을 공원이 차지하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은 남서쪽 가은읍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문경새재 자체도 문경읍의 상당한 지역을 포함하는 도립공원이다. 또한 문경읍 일부와 동로면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월악산국립공원이 있다.
- 속리산국립공원
- 문경새재도립공원
- 문경KBS촬영소(사극 드라마 촬영용 오픈 세트)
- 문경종합온천
- 문경석탄박물관
11. 2. 지역 특색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로,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했다.[50]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3개의 관문(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설치되어 국방의 요새 역할을 했다.[51][52] 1981년 6월 4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10월 18일에는 자연생태공원이 개장했다.폐선된 철도길은 철로자전거로 활용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진남역, 구랑리역, 문경역, 불정역, 가은역 출발 노선이 있다.
문경시는 서쪽은 화강암, 동쪽은 석회암(퇴적암)이 분포하는 지질학적 특성을 가지며, 백두대간의 영향으로 다양한 생물군이 서식한다.
매체 측면에서 문경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유사하게 안동 방송사의 영향을 받으며, 지역 주간지로는 ''새재신문''이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과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되었다.
9세기 후반, 가은읍 출신 아자개와 그의 아들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했다. 조선 시대에는 여러 문인들이 문경 출신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신길원, 의병장 이강년 등이 활약했다.
문경시는 문경새재 외에도 진남교, 옛길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문경석탄박물관, 온천, 사격장, 패러글라이딩 지역, 경천호 댐 등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월악산국립공원도 문경시의 일부를 포함한다.
문경시는 석탄 채굴의 전통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옛 가은선 철도는 자전거도로로 바뀌었다. 2020년 4월에는 문경 단산 관광 모노레일이 개통되었다.[12][13]
문경의 문화는 한국 유교적 가치관이 강하며, 문경새재 아리랑 등 다양한 한국 민요와 전통 도자기 공예가 전승되고 있다. 1999년부터 전통 찻잔 축제가 열리고 있다.[14]
지역 요리는 찜닭과 춘천식 닭갈비 등이 있으며, 기독교, 한국 불교, 샤머니즘이 공존한다.
- 속리산국립공원
- 문경새재도립공원
- 문경KBS촬영소(사극 드라마 촬영용 오픈 세트)
- 문경종합온천
- 문경석탄박물관
12. 자매 도시
문경시는 다음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Population statistics
https://jumin.mois.g[...]
2024-01-01
[2]
백과사전
문경시의 역사
http://100.nate.com/[...]
Nate
[3]
논문
Urban-Rural Integration Conflicts After 1994's Reform in Korea
http://kocer.re.kr/f[...]
Korea Center for City and Environment Research
1997-01-01
[4]
논문
A Study on Analysis of Mode Choice Characteristics and Travel Pattern in Urban-Rural Integrated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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