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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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은 친일 잔재 청산과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목표로 활동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모임이다. 2002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했으며, 이 명단에는 하판락이 포함되었다. 이 모임에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
일본 경찰보다 더 악랄했던 조선 순사 하판락은 1930년대 말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 수십 명을 집단 고문하면서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2] 같은 동족에게 잔혹한 고문을 서슴지 않았던 하판락은 이로 인해 승진했다.[2]
하판락은 해방 후에도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계속 경찰로 근무했다.[2] 그러면서 일본인 적산 처리에 관여하며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2] 또한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되었다.[2]
2. 하판락의 친일 행적
해방 후에도 하판락은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경찰로 계속 근무하며 일본인 적산 처리에 관여해 부를 축적했고,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했다.[2]
1949년 하판락은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는데, 이는 하판락에게 고문당해 사망한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그를 고발했기 때문이었다.[2] 당시 고원섭이 쓴 <반민자 죄상기>에는 하판락 체포 후, 서울 압송 전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부산시민들이 애원할 정도로 분노가 컸다고 기록되어 있다.[2]
하지만 서울로 압송된 하판락은 독립투사 살해 및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의 반민특위 사무실 습격 사건 이후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2] 이후 사업가로 변신하여 2003년 9월까지 9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많은 재산을 모았다.[2]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된 유일한 생존자였다.[2]
2. 1. 신사참배 거부 기독교인 탄압
1930년대 말, 하판락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 수십 명을 집단 고문하여 악명을 얻었다.[2] 같은 동족에게 심한 고문을 가한 하판락은 잔혹한 고문 덕에 승진했다.[2]
2. 2. 독립운동가 고문 및 살해
하판락은 1930년대 말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 수십 명을 집단 고문하면서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2] 같은 동족에게 잔혹한 고문을 서슴지 않았던 하판락은 이로 인해 승진했다.[2]
해방 후에도 하판락은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경찰로 계속 근무하며 일본인 적산 처리에 관여해 부를 축적했고,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했다.[2]
1949년 하판락은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는데, 이는 하판락에게 고문당해 사망한 독립투사 여경수의 어머니가 그를 고발했기 때문이었다.[2] 당시 고원섭이 쓴 <반민자 죄상기>에는 하판락 체포 후, 서울 압송 전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부산시민들이 애원할 정도로 분노가 컸다고 기록되어 있다.[2]
하지만 서울로 압송된 하판락은 독립투사 살해 및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의 반민특위 사무실 습격 사건 이후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2] 이후 사업가로 변신하여 2003년 9월까지 9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많은 재산을 모았다.[2] 2002년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된 유일한 생존자였다.[2]
3. 해방 이후 하판락의 행적
3. 1. 미 군정 하 경찰 재직
하판락은 해방 후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경찰로 계속 근무했다.[2] 일본인 적산 처리에 관여하며 더 많은 부를 축적했고,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했다.[2]
3. 2. 재산 축적
하판락은 해방 후 미 군정의 '일제 관리 재등용 정책'에 따라 경찰로 계속 근무하면서 일본인 적산 처리에 관여하며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2] 1946년 6월에는 경남 경찰청 수사과 차석으로 승진했다.[2]
4. 반민특위 체포와 좌절
하판락은 고원섭의 《반민자 죄상기》에 따르면, 부산 시민들이 그를 즉결 처분하겠다고 할 정도로 분노의 대상이었다.[2] 1949년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된 하판락을 서울로 압송하려 하자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부산시민들이 애원할 정도였다고 한다.[2]
하판락은 1949년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독립투사 살해 및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2]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2] 하판락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2]
4. 1. 반민특위 체포
하판락은 고원섭의 《반민자 죄상기》에 따르면, 부산 시민들이 그를 즉결 처분하겠다고 할 정도로 분노의 대상이었다.[2] 1949년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된 하판락을 서울로 압송하려 하자 "당장 여기서 우리들이 처리하겠으니 맡겨 달라"며 부산시민들이 애원할 정도였다고 한다.[2]4. 2. 반민특위 활동 방해와 석방
하판락은 1949년 부산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독립투사 살해 및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2] 1949년 6월 6일,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2] 하판락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2]5.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친일파 명단 발표
2002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하였다. 이 명단에는 하판락이 포함되었는데, 그는 명단 발표 당시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인물이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은 친일 잔재 청산과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3]
5. 1. 모임의 목적과 활동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은 친일 잔재 청산과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목표로 활동했다.[3]5. 2. 친일파 708인 명단 발표
2002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발표하였다. 이 명단에는 하판락이 포함되었는데, 그는 명단 발표 당시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인물이었다.5. 3. 참여 국회의원 명단 (제1기, 제2기)
김부겸, 김성호, 김영환, 김태홍, 김효석, 김희선, 남경필, 배기선, 박상희, 박시균, 서상섭, 설송웅, 설훈, 송광호, 송영길, 신기남, 심재권, 안영근, 원유철, 이상수, 이종걸, 이창복, 이호웅, 임종석, 전갑길,정동영, 정장선, 최용규 의원이 제1기 참여 명단이다.[3]
강성종, 강혜숙, 고진화, 권오을, 김낙순, 김부겸, 김영춘, 김충환, 김태년, 김태홍, 김효석, 김희선, 노웅래, 노현송, 문병호, 문석호, 문학진, 박기춘, 박명광, 박상돈, 박영선, 송영길, 신중식, 안영근, 양승조, 양형일, 오영식, 오제세, 우상호, 우원식, 원혜영, 유선호, 윤원호, 윤호중, 이강래, 이광재, 이목희, 이미경, 이용희, 이인영, 이종걸, 이화영, 임종석, 장향숙, 전병헌, 정동채, 정세균, 정장선, 정청래, 제종길, 천정배, 최규식, 최용규, 최철국, 홍미영, 홍창선 의원이 제2기 참여 명단이다.[3]
이들 명단에는 김부겸, 송영길 등 더불어민주당 계열 인사들과 남경필, 원유철 등 보수 계열 인사들이 함께 포함되어,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국회의원들이 두루 참여하였다.[3]
참조
[1]
서적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2]
뉴스
최후의 친일파, '고문귀신' 하판락을 아십니까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3-03-01
[3]
뉴스
제주 해협 北 개방..실상은?
http://www.newdaily.[...]
뉴데일리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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