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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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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인돌은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린 형태의 거석 구조물로,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과 유럽, 중동,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며, 무덤, 제단, 묘표석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한반도 전역에 약 4만 기가 분포하며,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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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지도 정보
명칭
한국어고인돌, 지석묘
영어dolmen
일본어支石墓 (しせきぼ)
프랑스어dolmen
로마자 표기법goindol, jiseokmyo
분류
유형단실 거석 무덤
하위 유형개석식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특징
구조덮개돌 (상석)
지지돌 (굄돌)
형태주로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형태
덮개돌은 평평하거나 약간 경사진 형태
크기덮개돌의 크기는 다양하며, 작은 것은 1m 미만, 큰 것은 10m 이상
재료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사용
분포
주요 지역유럽 (특히 서유럽)
아시아 (특히 한반도, 중국)
북아프리카
한국전역에 걸쳐 분포
특히 전라북도 지역에 밀집
용도
주요 용도무덤 (주로 고위 계층)
부가적인 용도제의 장소
영역 표시
역사
축조 시기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청동기 시대
관련 문화거석 문화
한국의 고인돌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타
추가 정보고인돌의 종류와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함

2. 기원과 명칭

'고인돌'은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단어로,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린 형태를 묘사한다.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며, 북한에서는 '고인돌무덤'이라고 부른다.[27]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石蓋墓)'라고 부른다. 켈트어로는 탁자를 뜻하는 'Dol'과 돌을 뜻하는 'Men'이 합쳐져 '돌멘(Dolmen)'이라 하고, 영어로는 'Table Stone'이라고 한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고고학자 한흥수가 처음 사용했으며, 1984년 이후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27] 현재는 '지석묘'가 일본식 명칭이라는 인식과 고인돌이 무덤의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지적으로 인해 '고인돌'이라는 명칭이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28]

다른 언어에서도 고인돌은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명칭비고
갈리시아어
불가리아어
독일어
아프리칸스어, 네덜란드어
바스크어
아브하즈어
아디게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히브리어
포르투갈어, 갈리시아어Granja
카탈루냐어dolmencacovaca (동굴),[7] caixaca (상자 또는 ),[8] taulaca (탁자),[9] arcaca (상자),[7] cabanaca (오두막), barracaca (오두막), llosaca (판석), llosa de jaçaca (널빤지 판석),[10] rocaca (바위) 또는 pedraca () 등 다양한 민속 이름으로도 불림.


3. 동아시아의 고인돌

강화도의 남방식 고인돌


한국의 고인돌은 내부에 무덤방이 있는 경우가 많아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돌집’이라는 의미로 '''석붕'''(石棚)이라 한다. 제주도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과 일본 규슈 북서부, 인도네시아, 인도, 러시아 등지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된다.

한국의 고인돌은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영역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이용된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한반도만주 일대에 분포하며, 전남 화순, 전북 고창 및 인천 강화의 고인돌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중남부 고인돌은 대략 기원전 11세기 이후부터 철기 시대 이전인 기원전 3세기까지 만들어졌으며, 요동 지방의 고인돌은 이보다 연대가 앞선다.

3. 1. 분포

한국에는 약 4만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고인돌은 규모가 크고 구조도 다양하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마천령 이북의 함경북도 지역에서도 조사된 바가 있어, 남북한 모든 도에 고인돌이 있다고 추정된다. 고인돌은 서해 및 남해의 연안 지역과 큰 하천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특히 전라남도황해도 지역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250여 곳에서 무려 2만 기가 분포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고인돌의 단일 면적 밀집도가 가장 높다고 발표되었다. 주된 분포지는 서해 지역으로 들어가는 강줄기 근처로, 서해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17]

고인돌은 주로 서해안 지역과 중국 요녕성(요동반도)에서 전라남도에 이르는 대하천을 따라 분포한다. 북한에서는 대동강재령강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한강낙동강 유역과 서해안 지역(충청남도 보령, 전라북도 부안, 전라남도)에 고밀도로 분포한다.[17] 주로 충적평야에 위치하며, 강이나 하천 방향과 평행하게 줄지어 있는 경우가 많다.[17] 구릉지대에 있는 것은 구릉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17]

만주한반도, 일본 규슈 북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까지 분포가 확인된다.[21][22][23]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500년경(무문토기 시대)에 나타나며, 유구는 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약 4~6만 기로 추정). 세계 지석묘(支石墓)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북방식과 남방식의 대략적인 경계는 전라북도 부근으로 여겨진다. 또한 천정석이 바둑판 모양을 이루는 등 다양한 유형을 보이는 것도 한반도 지석묘의 특징이다. 기원 전후가 되면 세형동검이 부장품으로 출토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 분포가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반도 남서 지역과 반도 동남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곳에서 500~600기의 지석묘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지석묘는 한반도의 선사 시대를 크게 특징짓는 요소이며, 2000년에는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반도 남부에는 받침돌이 낮은 바둑판식 지석묘(남방식 지석묘)가, 북부에는 받침돌이 높은 탁자식 지석묘(북방식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중국 절강성의 석붕묘군과 매우 유사한 것이 조몬 시대 후기에 나가사키현에 나타나며(하라야마 지석묘군이나 오노다이 지석묘군 등), 나가사키현의 것에는 특징적인 굴장이나 상자식 석관을 수반한다. 일본의 지석묘는 야요이 시대 전기가 끝날 무렵 거의 소멸한다.

3. 2. 역할

1967년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완전한 사람 뼈가 발굴되면서 고인돌이 무덤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12]

그러나 고인돌이 무덤의 기능만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인돌은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무덤 이외에도 제단이나 묘표석(墓標石)의 기능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탁자식 고인돌은 어디서나 사람들이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받침돌 위에 큰 덮개돌을 얹어 외형적으로 웅장함을 나타낸다는 점과 무덤방을 형성하기 어려운 받침돌의 구조 등을 들어 무덤보다는 제단의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경우에 다른 고인돌에 비하여 유달리 크거나 받침돌의 방향이 다른 고인돌이 가끔 보이는데 이는 묘역의 기념물 내지는 묘역 조성 집단의 권위와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서 축조했거나 또는 묘역을 표시하는 단순한 기능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3. 3. 생성과 소멸

한반도 고인돌의 생성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자생설, 또는 시베리아만주에서 내려왔다는 북방기원설이 있다.

양평 양수리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었으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남한강 유역의 양평 양수리 고인돌 출토 유물을 방사능 연대 측정한 결과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뗀돌도끼와 빗살무늬토기가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에서는 연대 측정 방법에 차이는 있지만 지금부터 4,900여 년 전의 유물이 고인돌에서 출토된다고 주장한다.

고인돌이 사라지는 시기는 기원 전후, 기원전 2세기, 기원전 3세기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기원전 3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이는 철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많은 인력 동원과 노동력 손실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규모가 웅장하여 일반인의 무덤이 아닌 수장층(首長層) 계급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생산 활동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나무널무덤이나 움무덤으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3. 4. 주검과 신분

고인돌에서 사람 뼈가 출토된 예는 충북 제천 황석리, 강원 춘천 중도, 대구 달성 대구 진천동 유적, 경남 진양 대평리 등에서 확인되지만, 중국 길림 지역과 북한 지역에서도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는 다수의 보고가 있다. 이러한 사람 뼈 출토는 고인돌 축조 당시 묻기 방법(葬法), 머리 방향(頭向), 부장품이 놓인 위치를 통해 장례 풍습을 살필 수 있고, 아울러 그 당시의 사상과 신앙적인 측면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황석리 고인돌 사람 뼈는 거의 완벽한 형태로, 키는 176cm 정도이며 두개골의 형태는 장두형(長頭形)으로 오늘날의 한국인과는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 당시의 보편적인 형태인지, 개인적인 차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무덤방의 군집성이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고인돌에 묻힌 사람의 신분은 부족장과 같은 강력한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지배자와 그 가족의 무덤, 혈연체 공동집단의 공동무덤, 전공자(戰功者)의 무덤 등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3. 5. 고인돌이 축조된 사회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멀리까지 운반해야 하므로, 많은 인력이 동원될 수 있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지배층의 일부는 청동기를 사용하였고, 농기구로는 신석기 시대보다 발달한 반달돌칼 등의 도구를 사용하였다. 또한, 농기구를 이용하여 벼, 보리, 조, 콩 등 발달된 방법으로 다양한 곡물을 경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정착 생활에 들어가면서 소, 멧돼지, 사슴, 노루, 닭 등을 사냥보다는 집에서 길러서 먹는 비율이 높아졌다.

한 마을에 정착하는 사람 수가 많아지면서 주거지도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원형 움집보다는 집을 크게 짓는 데 유리한 직사각형의 움집을 많이 짓고 생활하였다. 움의 깊이도 집 짓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낮아지게 되어 반움집이 되었다. 농경지를 앞에 둔 산 바로 아래쪽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토기는 강가나 바닷가에서 주로 생활했을 때 사용했던 신석기 시대빗살무늬토기와 같이 아랫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납작한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미송리식토기 등을 이용하게 되었다.

3. 6. 유물

고인돌에서는 비파형동검, 청동도끼, 곱은옥, 대롱옥과 같이 특수 계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견된다. 또한, 붉은간토기, 가지무늬토기, 반달돌칼, 돌도끼, 돌자귀, 돌끌 등 생활 도구들도 발굴된다.[21][22][23]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 가락바퀴, 고기잡이에 사용된 그물추, 신분을 상징하는 간돌검도 출토되었다. 돌화살촉은 간돌검과 함께 여러 점이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21][22][23]

탁자식 고인돌은 무덤방이 지상에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물이 많이 사라져 발굴되는 유물이 적은 편이다.[21][22][23]

3. 7. 고인돌의 축조

고인돌은 다음과 같은 방법과 순서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장소 선정: 고인돌은 주로 덮개돌을 구하기 쉬운 바위나 암벽이 있는 산 주위나 강가, 평지, 구릉, 산기슭 등에 만들어졌다.

2. 돌감 떼기: 암벽에서 덮개돌을 떼어낼 때는 바위틈이나 암석의 결을 이용하여 인위적인 구멍을 파고, 이 구멍에 나무쐐기를 박아 물로 불려 떼어내는 방법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다.

3. 운반하기: 덮개돌이나 받침돌로 이용할 돌감은 끈, 지렛대, 통나무 바퀴 등을 이용하여 운반하였고, 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100kg 정도를 움직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고인돌 만들기(탁자식):

  • 받침돌 역할을 할 돌감을 판 구덩이 속에 밀어 넣은 다음 받침돌이 흔들리지 않게 작은 돌로 옆을 가득 채워 튼튼히 다진다.
  • 받침돌 2개를 똑같은 높이로 세운 후 받침돌이 파묻힐 만큼 흙으로 언덕을 만든다.
  • 언덕의 경사를 따라 둥근 나무를 밑에 깔고 덮개돌을 끌어 올린다.
  • 밀고 끌어서 올린 덮개돌을 받침돌 위에 놓은 다음 받침돌까지 파묻었던 흙을 치운다.
  • 주검을 받침돌 사이에 넣는다.
  • 막음돌로 받침돌의 양쪽을 막으면 고인돌이 완성된다.

4. 고인돌의 판별

평지나 산지에는 자연석이나 일반적인 거석 또는 괴석(塊石)이 많이 보이는데, 이를 고인돌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판별하기 쉬운 고인돌은 탁자 모습을 하고 있는 탁자식 고인돌(북방식) 고인돌과 받침돌을 덮개돌 밑에 바둑판 모양을 한 기반식 고인돌이다. 개석식 고인돌의 경우 고인돌 여부를 판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주변에 석재가 없으나 바위 같은 돌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열을 지어 있다거나 원을 이루고 있는 등 일정한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 덮개돌이 장방형이나 타원형으로 대개 3대 2정도의 길이와 폭을 가지고 있으며, 덮개돌 아랫부분이 흙 속에 묻혀 있지 않다.

# 덮개돌이 자연석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다듬은 돌이기 때문에 덮개돌의 가장자리를 일정한 형태로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 강가나 산 끝자락의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5. 분류

고인돌은 그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탁자식 고인돌: 굄돌을 세우고 그 위에 편평한 돌덮개를 얹은 형태이다. 주로 한강 이북에서 발견되어 북방식 고인돌이라고도 불리지만, 전남 지방에서도 발견되면서 현재는 북방식이라는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듬어진 판돌로 ㄷ자 또는 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판석 형태의 덮개돌을 얹는다.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나 있어 다른 형태의 고인돌보다 유물이 적은 편이다.[17]

탁자식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 기반식 고인돌: 판돌, 깬돌, 자연석 등으로 쌓은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받침돌을 놓은 뒤,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형태이다.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하여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불리지만, 북쪽에서도 발견되어 남방식이라는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17]

  • 개석식 고인돌: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바로 덮개돌을 덮은 형태이다. 뚜껑식, 대석개묘 등으로도 불린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며, 요령 지방에도 많이 분포한다.[17]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개석식 고인돌

  • 위석식 고인돌: 무덤방이 지상에 있고, 덮개돌이 여러 개의 판석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제주도에만 있기 때문에 제주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17]

  • 기타: 탑파식(무덤 방 위에 두 개의 덮개돌이 겹쳐져 있는 형태), 굴석식(바위 안을 파내어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씌운 형태), 경사식(무덤 방을 덮는 덮개돌을 두동강내어 반쪽은 무덤방 위에 그대로 걸쳐놓고 나머지 반쪽은 무덤방 벽면에 기대어 놓거나 무덤방 옆으로 밀어놓은 형태), 묘표식(덮개돌 아래에 중앙무덤방이 있으며, 이 중앙무덤방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돌아가면서 4기의 무덤방이 '卍'자형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덮개돌 아래에 모두 5기의 무덤방이 이루어진 형태) 고인돌 등이 있다.

6. 구조

고인돌은 종류에 따라 구조가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 덮개돌: 가장 위에 있는 넓고 큰 돌이다. 탁자식 고인돌은 주로 판 형태로 인공적으로 다듬어져 있지만, 기반식 및 개석식 고인돌은 다양한 형태를 띠며 특별한 가공 없이 사용되기도 한다.
  • 받침돌(굄돌): 덮개돌을 받치는 돌로, 개석식 고인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탁자식 고인돌에서는 판 형태의 받침돌 자체가 무덤방이 되며, 기반식 고인돌에서는 여러 개의 받침돌이 덮개돌을 받친다.
  • 무덤방: 덮개돌과 받침돌 밑에 있는 석실로, 유골이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탁자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무덤방 역할을 하며, 기반식/개석식 등은 지하에 깬돌이나 판돌로 무덤방을 만든다.
  • 뚜껑돌: 무덤방을 덮는 돌로, 기반식 고인돌에만 있다. 개석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뚜껑돌 역할을 한다.
  • 묘역시설: 일부 고인돌은 자갈이나 깬돌을 깔아 묘역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묘역 표시 기능과 받침돌, 덮개돌이 밀려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덮개돌이나 뚜껑돌에는 별자리를 담은 '성혈(性穴)'이 새겨지기도 하였으며, 여수 오림동 고인돌에는 암각화(巖刻畵)가 그려져 있다.

7. 용도

고인돌은 그 용도에 따라 무덤, 묘표석, 제단 등으로 구분된다.


  • 무덤
  • 지배자의 무덤: 거대한 덮개돌과 청동기, 장신구 등 화려한 껴묻거리가 함께 발굴되는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돌널무덤(石棺墓)이나 널무덤(土壙墓)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고인돌이 가장 높은 격이고 돌널무덤, 널무덤 순으로 격이 낮아진다.[12]
  • 지배자 가족 또는 지배 계층의 집단 무덤: 많은 수의 고인돌이 묘역을 이루며 군집해 있는 경우 가족 무덤 또는 집단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군집은 일정한 열을 갖추고 있으며, 격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고인돌의 위치가 결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전사자의 집단 무덤: 고인돌 무덤방에서 발견되는 무기류의 형태나 위치로 볼 때, 일부 고인돌은 전사자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된다. 부러진 간돌검이나 화살촉이 머리, 가슴 쪽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전쟁 희생자를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전쟁 희생자 밑에 적의 머리를 함께 묻었던 흔적도 발견되었다.
  • 묘표석: 묘역을 표시하는 역할로, 군집을 이룬 고인돌 가운데 중앙이나 특정한 위치에 돋보이는 크기·형태를 가진 고인돌이 해당한다. 무덤방이 없으며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제단: 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규모가 웅장하고 가장 돋보이는 위치에 있는 고인돌이 해당한다. 무덤방은 없는 경우가 많다.


최초의 고인돌이 언제, 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고인돌은 서유럽에서 발견되며, 약 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8.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유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3개 지역에 나뉘어 위치해 있다.

고인돌은 한국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건설되었으며, 한반도 전역에 약 4만 기가 있다.[17] 2000년,[17] 고창군의 죽림리와 도산리, 화순군의 효산리와 대신리, 그리고 강화도의 부정리, 삼거리, 오상리의 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18]

9. 유럽의 고인돌

유럽에서는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발트해, 북해 연안과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등 각국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었다.[2] 유럽의 고인돌은 기원전 4천년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멘"이라는 단어는 테오필 코레 드 라 투르 도베르뉴가 그의 저서 Origines gauloises프랑스어 (1796)에서 거석 무덤을 묘사하며 "dolmin"이라는 철자로 사용하면서 고고학 분야에 등장했다.[2][3] 현재의 철자는 약 10년 후에 도입되었고, 1885년경에는 프랑스어에서 표준이 되었다.

최초의 고인돌이 언제, 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고인돌은 서유럽에서 발견되며, 약 7,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고인돌을 건설한 사람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아는 것도 어렵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모두 무덤이나 매장실로 간주된다.

유럽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초기 청동기 시대에 걸쳐 고인돌이 건설되었다. 그 건설 범위는 서유럽에 거의 한정되어 있으며, 주로 대서양, 북해, 발트해 연안에서 볼 수 있다. 기원전 4000년~3000년경 서유럽에서는 고인돌 등의 거석 건조물을 대표하는 거석문화가 번성했는데, 농경의 전파와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설이 유력하다.

기원전 6500년~4500년에 걸쳐 유럽 전역에 농경이 보급되었지만, 농경의 시작과 함께 특히 대서양 연안에서 인구 증가가 현저해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생겼다. 그리고 상류층의 매장 제도로서 먼저 흙을 쌓아 올린 소박한 무덤이 발생하고, 그중에서 거대한 고인돌로 발전했다고 생각된다. 그 후, 기원전 3500년경에 거대한 고인돌이 급감하고 소규모의 고인돌로 이행했는데, 이것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사회 구조가 붕괴하고 민주적인 공동체로 대체되었음을 시사한다. 최종적으로 기원전 2000년경, 서유럽의 고인돌은 소멸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유럽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은 브르타뉴어로 '''dolmen'''(돌멘)이라고 한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많이 보였기 때문에, 현지의 브르타뉴어로 "돌의 탁자"를 의미하는 ''dol men''을 어원으로 하고 있다. 독일어로는 '''Hünengräber''', 네덜란드어로는 '''Hunebed'''라고 하며, 모두 거인에 의한 건조를 암시하는 어휘이다.

Hunebed는 돌멘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석실묘로, 신석기 시대 중기(Funnelbeaker 문화) 무렵에 시작되었다. Hunebed는 먼저 직사각형의 석실이 있으며, 그 장변의 한쪽에 연도가 설치되고, 석실은 타원형의 봉토로 덮이는 동시에 그 주위에 둘레돌이 놓였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도 있다.

독일의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라니아에서는 도시나 마을의 건설 시에 건축이나 도로의 재료로 무덤의 거석이 사용되어 많은 돌멘이 사라졌다. 그래도 유럽에는 수천 기의 돌멘이 현존하고 있으며, 프랑스에 4000기, 영국에 2000기, 독일 뤼겐 섬에만 1000기 이상이 남아 있다.

10. 세계의 고인돌

인도 마라유르 지역에는 철기 시대의 다양한 형태의 돌멘들이 존재한다.[15] 무니야라스(Muniyaras)라고도 불리는 이 돌멘들은 네 개의 돌을 세워 놓고 다섯 번째 돌인 덮개돌로 덮어 만든 매장 시설이다. 이러한 돌멘 유사 구조물 중 일부는 여러 개의 매장 시설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다른 것들은 적철석을 파내어 만들고 측면에 화강암 판석을 댄 사각형 구조물이며 덮개돌로 덮여 있다.[15] 팜바르 강(River Pambar) 기슭 코빌카다부(Kovilkadavu)의 오래된 시바 사원(Thenkasinathan Temple) 주변과 피우스나가르(Pius nagar)라고 불리는 지역 주변의 수십 개의 돌멘과 고원의 남서쪽 사면에 있는 강을 내려다보는 바위 그림들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팜바르 강 왼쪽 지역에는 철기 시대 돌멘이 여러 개 있는데,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 판석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중 적어도 하나는 지하 석실 안에 직경 28cm의 완벽한 원형 구멍이 있다. 이 지역에는 여러 유형의 돌멘이 있는데, 수많은 돌멘은 지상에 있으며 높이가 약 70cm~90cm이다. 또 다른 유형은 높이가 140cm~170cm이다. 길이가 최대 350cm인 이중 길이의 지상 돌멘도 있다. 돌멘 근처 지역에서는 매장 항아리 조각도 발견되는데, 이는 높이가 70cm~90cm인 돌멘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유골 매장에 사용되었고, 매장 항아리는 일반인의 유골 매장에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지붕이 높은 돌멘은 사람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왜 어떤 사람들이 묘지에 살았는지는 아직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않았다.

레반트의 돌멘은 유럽의 것과는 다른, 무관한 전통에 속하지만, 종종 "토러스 산맥에서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는 초국가적 현상의 일부"로 취급된다.[15] 레반트에서는 신석기 후기가 아닌 초기 청동기 시대의 것이다.[15] 이들은 주로 요르단 협곡의 동쪽 절벽과 갈릴리 언덕에서, 초기 청동기 시대 I기 원시 도시 정착지(기원전 3700~3000년) 근처에 무리 지어 발견되며, 거대 석재 크기의 판석 채석이 가능한 지역으로 지질학적으로 제한된다.[15] 레반트에서는 지질학적 제약으로 인해 다양한 무덤 형태를 가진 지역 매장 전통이 생겨났으며, 돌멘은 그중 하나이다.[15]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남아메리카, 북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고인돌이 발견된다.

참조

[1] 논문 Aspects de la gestion des dolmens et des tombes collectives actuels dans les sociétés de l'île de Sumba (Indonésie) https://journals.ope[...] 2024-06-15
[2] 서적 Megalithic Research in the Netherlands, 1547–1911 https://archive.org/[...] Sidestone Press
[3] 서적 Origines gauloises. Celles des plus anciens peuples de l'Europe puisées dans leur vraie source ou recherche sur la langue, l'origine et les antiquités des Celto-bretons de l'Armorique, pour servir à l'histoire ancienne et moderne de ce peuple et à celle des Français
[4] 사전 Dolmen OED
[5] 웹사이트 Vandals threaten stone age monuments https://www.theguard[...] 1999-11-12
[6] 웹사이트 dolmen – Translation to Irish Gaelic with audio pronunciation of translations for dolmen by New English-Irish Dictionary https://www.focloir.[...] 2020-11-26
[7] GREC Dolmen
[8] 서적 Diccionari català-valencià-balear https://dcvb.iec.cat[...] Moll
[9] 서적 Diccionari català-valencià-balear https://dcvb.iec.cat[...] Moll
[10] 서적 Diccionari català-valencià-balear https://dcvb.iec.cat[...] Moll
[11] 서적 Diccionari català-valencià-balear https://dcvb.iec.cat[...] Moll
[12] 서적 Guide to the Menhirs and other Megaliths of Central Brittany Nezert Books
[13] 논문 68. The Origin of the Dolmen https://www.jstor.or[...] 2024-07-28
[14] 뉴스 Megalithic Structures in the Golan and the Galilee Reveal Rock Art of a Mysterious Ancient Culture https://www.friendso[...] Friends of the Israel Antiquities Authority 2020-07-12
[15] 서적 Dolmens in the Levant https://www.routledg[...] Routledge
[16] 서적 Approaching dolmens in the Levant http://dx.doi.org/10[...] Routledge 2021-12-22
[17] 웹사이트 고인돌 Dolmen https://encykorea.ak[...] 2023-11-10
[18] 웹사이트 Korean National Heritage Online http://www.heritage.[...] 2007-03-24
[19] 웹사이트 Eupedia1 http://www.eupedia.c[...]
[20] 웹사이트 Eupedia2 http://www.eupedia.c[...]
[21] 서적 日本国語大辞典 小学館
[22] 서적 大辞泉 小学館
[23] 서적 大辞林 三省堂
[24] 용어 석붕묘; 石棚墓
[25] 뉴스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08-11-19
[26] 웹페이지 고인돌은 왜 '고인돌'이라 하는 걸까?
[27] 웹인용 '고인돌'은 왜 '고인돌'이라 하는 걸까? http://www.ohmynews.[...] 2018-12-03
[28] 서적 고인돌 이야기, 세계유산 강화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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