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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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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정호는 대한민국의 화가로, 계명대학교 미술공예학과를 졸업하고 프랫 대학교 대학원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72년부터 미술 교육자로 활동하며 대구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 회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작품은 추상, 개념 미술을 거쳐 사회적 사건과 개인적 고통을 주제로 다루며, 2024년 권정호미술관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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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호 (화가)
기본 정보
대구에서 주요 미술 행정가 및 작가로 활동하는 권정호.
이름권정호
한자 표기權正浩
로마자 표기Kwon Jungho
출생일1944년 4월 28일
출생지경상북도 칠곡군
국적대한민국
직업화가
조각가
교육자
대학교수
분야회화
조각
웹사이트권정호 작가 홈페이지
학력
대학교계명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석사 (졸업)
대학원프랫 인스티튜트
작품 활동
대표작해골들 87 (1987)
알려진 작품회화, 조각
참고 자료
도서Kwonjungho 1971-2019.

2. 학력

3. 생애 및 교육

권정호는 1944년 4월 28일 경상북도 칠곡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0][2] 해방 직전에 태어나 한국 전쟁과 그 이후 사회 혼란기를 겪으며 성장했다.[10] 1950년 수창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한국 전쟁으로 밀양(연정)으로 피난을 갔다.[10][2] 1956년 종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부터 1963년까지 계성고등학교에 재학했다.[10]

계성고등학교 시절 김태한과 허종중이 지도하던 사진반에서 사진 기술을 익혔지만, 예술가가 되려는 계획은 하지 않았다.[10] 이후 의대 진학에 실패하고, 1964년 사회적으로 유용했던 토목건축과(청구대학교)에 입학했다.[10] 그러나 1965년 자신의 적성에 맞는 길을 가고자 계명대학교 미술공예학과로 재입학하여 예술 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0]

계명대학교에서 조각가 남철, 공예가 김광현, 화가 서석규의 강의를 들었으며, 초기 작업에 영향을 준 정점식 교수와 서동균 서예가의 제자로 1972년 졸업했다.[10] 1975년 현재의 아내와 결혼하여 슬하에 1명의 자녀를 두었다.[10][2] 1973년부터 1982년까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0] 이후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유학길에 올라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코린 로빈스, 구라하라, 켈빈 알버트의 지도 아래 회화 전공으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0]

4. 경력

권정호는 1972년 안동 경안중학교와 대구 오성고등학교, 경명여자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효성여자대학교, 경주 동국대학교, 계명대학교, 계명전문대학교, 한사실업전문대학교, 신일전문대학교에서 강사 활동을 했고, 1982년 대구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2009년까지 재직하였다.[11]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 회장,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겸 전국지회 지회장을 역임했다. 1997년 지역 미술계, 학계, 언론계 및 문화계 등 24명과 함께 대구시립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명운동, 기금마련 전시 등 대구미술관 건립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였다.[11]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광역시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2022년 대구광역시 원로예술인 구술기록사업 화가로 선정되었으며, 2024년 대구 최초 사립 미술관인 권정호 미술관을 설립하며 현재까지도 지역 화단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12]

5. 작품 활동

권정호의 작품 활동은 시기별로 다양한 주제와 기법의 변화를 보여준다.

시기주요 특징주요 작품 및 활동
1970년대 - 1980년대추상미술에서 개념미술로 전환. 문자, 점, 선, 면 등을 활용한 추상 작품 제작. 미니멀, 모노크롬 화풍 비판.청목회(1971년 창립), 이집회, 신조회 등 활동. 바보의 미장(1981) 제작.
1980년대 - 1990년대신표현주의포스트모더니즘 영향.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발언을 주제로 작품 활동. 스피커, 해골 등을 소재로 사용.사운드 시리즈, 사고, , 분노, 공포, 죽음 등 주제의 작품 제작.
1990년대 - 2000년대선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 해골 해체, 감정과 의식 흐름 등을 선으로 표현. 구상적 표현에도 선 활용.선 시리즈, 인물, 삶의 장면, 정물, 산수 등 구상적 표현.
2000년대 - 2010년대사회적 사건에 대한 관심과 예술적 기록.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2·18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소재로 작품 제작.지하철 시리즈, 미래를 통하는 문(정화의 공간을 선회하다)(2013) 제작.


5. 1. 1970년대 - 1980년대: 추상에서 개념으로

1969년 군 복무를 마친 권정호는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1970년대 초 청목회(1971년 창립), 이집회, 신조회 등을 중심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스승 정점식 교수와 조각가 남관의 영향으로 문자와 점으로 구성된 추상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이 시기 그는 미공보원(USIS)이 들여오던 일본과 미국 등 서구의 잡지와 책을 통해 뒤샹과 제스퍼 존스 등 해외 작가와 작품들을 접했다. 새로운 것에 관한 관심과 갈증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 그 역시도 미술의 근원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창호지의 구멍 형태로 된 점을 그리거나 붙이는 식의 점 시리즈를 제작하였는데, 후에 말하기를 초기 점의 형식은 자신의 삶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하였다.[5] 초기의 앵포르멜적인 추상화에서 형식을 위한 문자, 이후 점, 선, 면으로 관심이 전환되며 1980년대엔 보다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첫 시도로 그는 서양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은 미니멀, 모노크롬 화풍이 지배적이던 당대 국내 미술의 자체적인 역사, 개념적 의미의 결핍을 비판하며 ‘바보의 미장’(1981)을 제작한다.[5]

5. 2. 1980년대 - 1990년대: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발언

198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던 권정호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등장한 신표현주의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작품의 당위성을 탐구했다. 그는 몸이 체득한 것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잘 그리려는 의도보다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과정을 동양적 정신과 연결시켜 연구했다.[1]

이 시기 권정호는 길거리에 버려진 스피커에서 영감을 받아 '사운드'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스피커 형태의 오브제, 빠른 붓질,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당시 자신의 현실과 불안하고 신경증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했다.[1]

1980년대 후반, 그의 작품은 소리에서 해골로 주제가 확장되었다. 처음에는 사회적 억압을 표현하기 위해 해골을 사용했던 그는, '사고', '밤', '분노', '공포', '죽음'과 같은 주제를 통해 전쟁과 과도기적 사회에서 자라면서 겪은 개인적, 사회적 불안과 고통을 표현했다. 1990년대에는 강렬한 색채와 두드러지는 선을 사용한 다양한 표현의 변주를 보였다.[1]

5. 3. 1990년대 - 2000년대: 선의 확장과 구상적 표현

1990년대 권정호는 작품의 가장 큰 표현 수단으로 선을 사용했다. 이 시기엔 해골을 선으로 해체하고, 감정과 의식, 기 같은 흐름을 선으로 표현했다.[1]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선 시리즈는 동적인 흐름을 더 강하게 드러내며 단순한 선보다는 붓질이라는 행위의 측면이 강조되었다.[1] 후기의 선에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시도를 했다.[1] 2000년대엔 추상표현을 넘어, 인물, 삶의 장면, 정물, 산수와 같은 구상적인 표현에도 선을 자주 사용했다.[1]

권정호의 <시간의 거울> (2017 부산비엔날레)

5. 4. 2000년대 - 2010년대: 사회적 사건과 예술적 기록

2000년대 권정호의 작품은 실제 사건들의 영향을 받았다. 유학 시절부터 나타난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사고를 기점으로 작품에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13] 2000년대에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대구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역, 공항, 시내 등의 모습을 여행이라는 개념으로 담으며 일상, 고독과 같은 사회의 이야기를 선으로 단순화 또는 추상화하여 표현하였다.[13]

특히 2003년 2·18 대구 지하철 참사로 가까운 사람들과 작가의 제자가 세상을 떠나며 큰 충격에 빠진 그는, 한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사회적 증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하철 시리즈’를 제작한다.[13] 그는 참사의 흔적 뿐만 아니라 분노한 군중과 책임자들, 항거, 추모 속 종교의 모습 등 사고를 둘러싼 현장의 모습들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13] 이 시기 그는 날것의 현장을 관조하기 위해 종이죽과 같은 소재를 고안하고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3] 그는 관찰과 공감을 통해 지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하려 하였으며, 이후엔 ‘청년실업’, ‘개인주의’와 같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 시켜갔다.[13]

권정호의 닥종이 해골 설치 작품, <미래를 통하는 문(정화의 공간을 선회하다)>, 대구미술관 소장.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2013년 〈미래를 통하는 문(정화의 공간을 선회하다)〉를 제작하였으며, 홍순환 갤러리 쿤스트독 대표는 그의 작업을 이렇게 묘사하였다.[14]

"권정호는 이런 각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무려 2000개가 넘는 닥종이 해골을 만든다. 여기서 이 수공에 의지한 반복 조형은 죽음의 과정과 그 순환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 자체는 세계와 연관된 죽음의 방식을 이미지로 기술할 뿐 죽음 자체를 해명하거나 주체의 결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는 아니다. 일종의 존재론적 질문을 거듭하고 또 거듭할 뿐이다. 따라서 까다로운 공정을 따라 쉼없이 반복되는 이 제작과정은 결과적으로 해골이라는 죽음의 이미지를 낳지만 그 이미지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고찰의 이행일 뿐이다.”[14]

6. 작품 소장처

다음은 권정호 화가의 작품 소장처이다.[7]

기관명작품명
국립현대미술관소리 III, 하루밤, 해골 87, 1997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중국, 소주(Suzhou, China)'
대구미술관골고다 5(2013), 미래를 향한 문(2010), 인간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 한다(2009), 대구 지하철 참사(2006), 하늘(1991), 미국 교육(2000), 선에서 97(1997), 죽음의 행복(1996), 인간은...(1994), 해골(1989–1991), 해골 87-1(1987), 해골(1985), 세 개의 해골 85(1985), 사고(1984), 소리 85(1985), 구성 84-1(1984), 바보의 손질(1982), 점 80-7(1979), 시작 77-2(1977), 옛 성(1971), 자화상-84(1984)
부산시립미술관인간은 무엇이 되고 어디로 가는가? (1991)
시안미술관시간의 거울 (2014)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시간의 거울 6, 열망 2018 – 꽃에게 바치는 노래 (2018)
대구예술발전소소리 85-5 (1985), 예감 (1995), 동굴 (1991)
한국불교미술박물관 (2007)
대구대학교박물관정물 (2002)
대구시청오후의 낮잠 (2002)
대백플라자백화점숨결 – 하늘 (1997)
대구보건대학교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2009)
김대건 천주교회파스카 외 (2009)
대구오페라하우스관계 (2005)
불광사부처 (2009)
머레이 주립대학교해당사항 없음
상하이 시청상하이 이미지-1, 상하이 이미지-2 (2002)
아트 서밋 재단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2017)


7. 저서

제목발행년도비고
Works of Memory kwonjungho2023년
KWONJUNGHO2024년


8. 전시

권정호 작가 개인전
연도전시명 및 장소
2024낙원 : 낙원의 죽음, 권정호미술관 개관전, 대구, 한국
2019권정호 회고전(1971–2018), 대구문화예술회관 1, 2관, 대구
20191985 NY, 봉산문화센터, 대구
2019권정호, 시로타 갤러리, 도쿄, 일본
2017권정호, 고순 "고귀한 공간과 고귀한 흐름",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5권정호 "곡신", O's갤러리, 완주
2014권정호 사진전 "시프티드 타임", 대구사진비엔날레, 스페이스129, 대구
2013권정호 "삶에 비치는 죽음의 거울", 시안미술관, 영천
2013권정호 초대전, 쿤스트독 갤러리, 서울
2013권정호 초대전, 소헌 컨템포러리 갤러리, 대구



권정호 작가 단체전
연도전시명 및 장소
2023프로젝트 보더 온새미로 2023, 달서아트센터, 대구
20232023 국제교류전, 대구대학교, 대구
2022대구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사색의 계절, 대구미술관, 대구
20222022 왜관국제현대미술제, 갤러리 오목, 대구
2021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아카이브 전시, 첫 10년, 대구미술관, 대구
20212021 문명의 향연전, 성산아트홀, 창원
2021대구를 다시 읽다, 추상미술 신조미술협회 50주년, 대구미술 발전사,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20메이드 인 대구 II, 대구미술관, 대구
2020기억을 불러내다,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9미디어시티,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2019스타트업,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82018 평창 문화올림픽 화랑예술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릉
2018대구 현대미술 자화상(1997년 이후 21주년), 한여름밤의 꿈,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8제34회 대한민국 국제현대미술제 – 응집에서 운동성으로, 조이갤러리, 부산
2018대구 가톨릭 미술인 교류전, 드망스 갤러리, 대구
2017바다미술제, 부산비엔날레, 부산
2017대구의 몸,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7현대미술의 흐름을 보다, 여수엑스포아트갤러리, 여수
2017바코드,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2016대구 현대미술,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6삶을 그리는 화가들,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6오, 독불장군, 우정미술관, 보성
2015ICAPU "Between"_ 빈집 프로젝트, 울산문화거리, 울산
2014대구 현대미술제-"경상감영에서 종로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대구
2014CMCP_집단기억 집단의 힘, 봉산문화센터, 대구
2013대구 현대미술제, 창작발전소, 대구
2013패턴과 패션, 63스카이아트, 서울
2012대구문화상 수상자 초대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2011KIAF/11-시간의 거울&미래를 향한 문, 소헌갤러리, COEX, 서울
2011빛과 정신, 대구미술-지금 대구에서, 대구
2011강익중 권정호 전수천 초대전,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미디어홀, 대구
2011대구미술관 개관 2차 테마전(삶과 문화), 대구미술관, 대구
2010한국 원로작가 초대전-코리아 아트 페스티벌 2010, KINTEX, 일산
2010대구 아트페어 2010, 대구 EXCO, 대구


참조

[1]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2]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3] 서적 KWON JUNG HO. https://www.worldcat[...] SHANGHAI Art Museum
[4]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5]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6] 서적 KWONJUNGHO, The Mirror of Death Shining on a Life. https://www.worldcat[...] Cyan Museum of Art 2013
[7] 서적 KWONJUNGHO https://dcarchive.da[...] KwonJungHoMuseum
[8] 서적 MADE IN DAEGU II Daegu Art Museum
[9]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10]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11] 서적 KWON JUNG HO https://www.worldcat[...] SHANGHAI Art Museum 2005
[12]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13]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14] 서적 KWONJUNGHO, The Mirror of Death Shining on a Life https://www.worldcat[...] 시안미술관 2013
[15] 서적 MADE IN DAEGU Ⅱ Daegu Art Museum 2020
[16] 서적 MADE IN DAEGU Ⅱ Daegu Art Museum 2020
[17] 서적 kwonjungho 1971-2019. https://www.worldcat[...] Daegu Art Center(Daegu Gwangyeoksi Munhwa Yesul Hoegwa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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