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중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갑중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광주화정초등학교, 광주진흥중학교,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를 거쳐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은퇴 후 대학 야구 코치로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광주화정초등학교 동문 - 임익준
임익준은 전 야구 선수로 내야수였으며, 2006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참가하고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현재는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광주화정초등학교 동문 - 정영일
정영일은 투수 포지션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미국, 한국, 일본 독립야구를 거쳐 한국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 광주진흥중학교 동문 - 김상진 (1977년)
해태 타이거즈의 전 야구 선수 김상진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지만, 위암으로 투병 중 1999년에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광주진흥중학교 동문 - 손주인
손주인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LG 트윈스에서 '2루의 주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전 2루수로 활약한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 임원을 거쳐 현재 코치로 재직 중이다. - 광주진흥고등학교 동문 - 이한열
이한열은 1987년 6월 항쟁을 격화시킨 연세대생 민주화 운동가로,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여 민주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연세대학교 명예 학사 학위가 추서되었으며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 광주진흥고등학교 동문 - 김상진 (1977년)
해태 타이거즈의 전 야구 선수 김상진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지만, 위암으로 투병 중 1999년에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갑중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선수명 | 김갑중 |
원어명 | 김갑중 (金甲中) |
영어 표기 | (제공된 정보 없음)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광주광역시 |
생년월일 | 1970년 8월 15일 () |
사망일 | (제공된 정보 없음) |
신장 | 174cm |
체중 | 75kg |
포지션 | 외야수 / 우익수 |
투구 | 우 |
타석 | 우 |
프로 입단 연도 | 1993년 |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2차 3순위 (태평양 돌핀스) |
첫 출장 | KBO / 1993년 |
마지막 경기 | KBO / 1999년 |
계약금 | (제공된 정보 없음) |
연봉 | (제공된 정보 없음) |
선수 경력 | |
소속팀 | 태평양 돌핀스 (1993년~1995년) 현대 유니콘스 (1996년~1998년) 쌍방울 레이더스 (1999년) |
감독 경력 | |
소속팀 | 화순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2~2003년) 송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4년) 광남고등학교 (전남) 야구부 감독 (2021년) |
2. 초중고 및 대학 시절
서재응이 다녔던 화정초등학교 야구부 창단 멤버로 야구를 시작했으며, 이민호 심판과 중, 고등학교, 한양대학교까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7번을 달았으나 이순철의 영향으로 14번으로 변경했다. 진흥고 시절 1번 타자와 3루수를 맡았으며, 광주일고 이종범, 광주상고 박충식 등과 동갑내기 선수였다. 한양대학교에서는 국가대표 3루수 황일권 선수 때문에 우익수로 전향, 2학년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4학년 때는 대통령배 대학야구 MVP 등 여러 상을 받았다. 당시 한양대에는 김동수, 정민태, 구대성, 유지현, 박찬호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1]
2. 1. 초등학교 시절
김갑중은 서재응이 다녔던 화정초등학교 야구부 창단 멤버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함께 야구했던 동기 중에 현재 KBO 심판인 이민호 심판이 있다. 김갑중은 이민호 심판과 중학교, 고등학교, 한양대학교까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다.[1]2. 2. 중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까지는 배번 7번을 달았으나,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스타 이순철 선수로부터 야구 센스가 뛰어나다는 칭찬과 지도를 받고 이후 이순철과 같은 배번인 14번을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 시절까지 달았다. 당시 해태는 비가 온 후에도 바로 연습을 할 수 있는 진흥고의 마사토 운동장에서 자주 연습을 했다.진흥고에서는 1번 타자와 3루수를 맡았다. 당시 광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야구를 했던 동갑 선수로는 광주일고 이종범(1번, 유격수),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 박충식(투수) 등이 있었다.
2. 3. 대학교 시절
한양대에서는 당시 국가대표 황일권 3루수가 있어 우익수로 전향하고 2학년부터 주전으로 뛰었다.[1]4학년 때는 대통령배 대학야구 MVP(한양대 우승, 조성민, 이상훈, 마해영, 심재학이 있던 고려대 준우승), 천마기 타점상(한양대 준우승, 타격 2위(결승전 연타석 홈런 등 타격 1위였으나 12회까지 경성대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다음날 재경기로 타석이 증가하여 4강 이전에 탈락한 건국대 이종범이 0.615(13타석 8안타)으로 타격 1위가 됨), 홈런 3위)을 받았다.[1]
당시 한양대 멤버로는 1년 선배 LG 포수 김동수, 태평양 투수 정민태, 동기 좌완 국보급 에이스 구대성(현 호주 프로팀 감독), 정기창(현 야구 미생을 위한 독립리그 신한대 감독), 손차훈(현 SK 스카우트 팀장), 1년 후배 LG 꾀돌이 유격수 유지현(현 LG 코치), 김현욱(현 LG 코치), 이원식(정민태, 구대성 졸업에 더해 새내기 박찬호 마저 1학년을 끝으로 LA다저스로 가는 바람에 93년부터 한양대에서 투수로 전향하고 해태에 지명됨)이 있었다. 1학년 새내기로는 룸메이트였던 박찬호(현 예능인? 전 LA다저스 투수), 차명주(현 서초에서 투수폼 분석, 부상 방지 재활센터 운영, 전 롯데, 두산, 한화 투수)가 있었다.[1]
3. 프로 선수 시절
1993년 태평양 돌핀스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은퇴하였다.
1993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여 29경기에 출전했고, 1994년에는 외야 백업으로 84경기에 출전하며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구대성을 상대로 홈런을 쳐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1] 시즌 후 군 복무를 하였고, 제대 후 팀에 복귀했지만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자유 계약을 요구했다. 구단은 이를 거부했지만, 3년 뒤인 1998년에 방출되었다.[2] 방출 직후 쌍방울 김성근 감독의 제안으로 쌍방울로 이적했으나, 친정팀 현대와의 경기 중 이재주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큰 부상을 입고 은퇴하였다.
3. 1.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3년 인천 연고의 태평양 돌핀스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구대성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했다.[1] LG 트윈스와의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이상훈을 상대로 3회 중전 안타, 5회 좌익수 김재현이 펜스 앞에서 잡아낸 홈런성 타구를 쳤다. 이 경기는 김선진의 연장 끝내기 안타로 LG가 승리했다.[1]시즌 후 군에 입대했고, 복귀 시점에는 정동진 감독이 경질되고 현대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팀명이 현대 유니콘스로 변경되었다.[2]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후 출장 횟수가 줄어들어 지속적으로 방출을 요구했고, 현대는 3년 후에 그를 방출했다.[2]
3. 2.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방출 직후,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쌍방울로 이적했다.[2]김성근표 오키나와 지옥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연습과 좋은 몸 상태를 만들어 시즌을 기다렸으나, 시즌 초 인천에서 친정팀 현대와의 경기 전 이재주의 연습 타구에 얼굴을 맞는 큰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아 1999년 은퇴하였다. 당시 쌍방울은 재정 위기에 몰려 선수 매각이 잦았고, 이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강도 높은 훈련과 선수 혹사 논란에 휩싸였다. 조원우(현 롯데 감독)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해체되었지만, 이는 SK가 구단 가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정 관리 중이던 쌍방울과 팀 매각 협의를 하지 않은 꼼수였다. SK는 쌍방울이 자동 해체될 때까지 야구에 대해 언급하지 않다가, 해체 직후 프로야구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SK 와이번스를 창단하고 쌍방울 선수단을 그대로 승계했다. 이 과정에서 쌍방울은 70억 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4. 은퇴 후
5. 출신 학교
6. 프로 선수 시절 등번호
연도 | 등번호 |
---|---|
1993년 - 1998년 | 14 |
1999년 | 4 |
참조
[1]
웹사이트
http://culture.joins[...]
[2]
웹인용
참가팀 소개 - 화순고등학교
http://culture.joins[...]
2017-12-1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