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구대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구대성은 대한민국, 일본, 호주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이다. 대전고등학교 시절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고, 한양대학교 재학 중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93년 빙그레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1996년 다승왕, 구원왕, MVP를 석권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전 완투승으로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었으며, 2005년 뉴욕 메츠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006년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여 2007년 KBO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호주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활약하며 2010-11 시즌 구원왕을 차지했고, 2016년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2019년과 2023년 질롱 코리아에서 선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 프로 야구 200세이브 클럽 - 오승환
    오승환은 대한민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KBO, NPB, MLB에서 활약했으며, KBO 통산 300세이브를 최초로 달성하고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기록했다.
  • 한국 프로 야구 200세이브 클럽 - 김용수 (야구인)
    김용수는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하여 LG 트윈스에서 선발과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KBO 리그 통산 126승 227세이브를 기록하고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 LG 트윈스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로 지정된 후 해설위원과 코치,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한 야구인이다.
  • 시드니 블루삭스 선수 - 고창성
    고창성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였으며, 2008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 2010년 KBO 리그 2위에 오르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NC 다이노스, KT 위즈를 거쳐 호주 프로야구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8년에 은퇴했다.
  • 시드니 블루삭스 선수 - 크리스 옥스프링
    크리스 옥스프링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KBO 리그, NPB, MLB, ABL 등 여러 리그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호주 국가대표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 대전광역시 출신 야구 선수 - 가득염
    가득염은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2010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대한민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시즌 동안 투수로 활약하며 671경기에 출전하여 36승 49패 11세이브 78홀드를 기록했고 은퇴 후 여러 구단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2024년에 두산 베어스 코치로 복귀 예정이다.
  • 대전광역시 출신 야구 선수 - 한대화
    한대화는 1960년생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등에서 3루수로 활약하며 KBO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고 해태 타이거즈 4번 타자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과 코치를 역임했다.
구대성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로마자 표기Gu Dae-seong
한글구대성
한자具臺晟
출생지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생년월일1969년 8월 2일 (54세)
포지션투수
투구/타석좌투/좌타
선수 경력
KBO 리그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1993–2000)
한화 이글스 (2006–2010)
NPB오릭스 블루웨이브 (2001–2004)
MLB뉴욕 메츠 (2005)
ABL시드니 블루삭스 (2010-2015)
질롱 코리아 (2022-2023)
감독/코치 경력
코치시드니 블루삭스 (2016–2018)
감독질롱 코리아 (2018–2019)
KBO 리그 기록
승-패67승 71패
세이브214
평균 자책점2.85
탈삼진1,221
NPB 기록
승-패24승 34패
세이브10
평균 자책점3.86
탈삼진504
MLB 기록
승-패0승 0패
평균 자책점3.91
탈삼진23
수상 내역
KBO 리그 MVP1996년
KBO 리그 골든 글러브1996년
한국시리즈 우승1999년
한국시리즈 MVP1999년
국가대표 경력
올림픽2000 시드니 동메달
WBC2006년
프로 입단
KBO 리그1993년 / 1차 지명 (빙그레 이글스)
NPB2001년 3월 24일
MLB2005년 4월 4일
ABL2010년 11월 6일
최종 출장
KBO 리그2010년 9월 3일
NPB2004년 9월 27일
MLB2005년 8월 20일
ABL2023년 1월 22일
기타
해설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 (2024년~)

2. 선수 시절

대전고등학교한양대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좌완 투수로 주목받았으며, 한양대학교 재학 중에는 1년 선배인 정민태와 함께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좌대성 우민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활약했다.[11] 특히 국제 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여 '일본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 시작했다.[12][13]

1993년 KBO 리그의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8승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KBO 리그 정규 시즌 MVP골든 글러브(투수 부문)를 동시에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9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14]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둬 동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2]

2000 시즌 후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진출하여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시즌 동안 활동했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활약했으며, 특히 2002년에는 리그 평균자책점 2위(2.52)를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5년에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뉴욕 메츠와 계약하며 만 35세의 나이에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중간 계투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투수 랜디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치고 홈까지 파고들어 득점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기도 했다.

2006년 친정팀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여 2010년까지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복귀 첫해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2007년에는 KBO 리그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10년 KBO 리그 은퇴 후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리그(ABL)의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하여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4] 2015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며 리그 세이브왕을 3차례 차지했고, 이후 팀의 투수 코치로도 활동했다.[5][8] 2019년2023년에는 질롱 코리아 소속으로 깜짝 복귀하여 마운드에 오르며 자신이 세운 ABL 최고령 선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1][9]

2. 1. 아마추어 시절

형이 야구를 시작하면서 야구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전신흥초등학교 3학년 때 가볍게 캐치볼을 하며 야구에 관심을 가졌고, 다음 해인 4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야구 선수가 되었다. 대전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1987년 열린 제4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소속 팀 대전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대한민국 고교 선발팀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오사카부 (오사카 스타디움)나 돗토리현 등지에서 열린 경기에 등판하기도 했다.

1989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시절에는 1년 선배인 정민태와 함께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좌대성 우민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11] 한양대학교 1학년이던 1989년에는 대륙간컵 대회에 참가하여 일본과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10회까지 던졌다. 비록 경기는 1점 차로 패배했지만, 이 경기를 계기로 '일본 킬러'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같은 해 열린 국제 야구 연맹(IBAF) 회장배 쟁탈 국제야구 대회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두 차례 완봉승을 거두며 아마추어 최고의 왼손 투수로서 명성을 쌓았다.[12][13]

구대성은 원래 오른손잡이였으나, 어린 시절 오른팔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 후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하여 왼손 투수가 되었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했다.

2. 2. 한국 프로야구 시절

1993년 KBO 리그한화 이글스(당시 빙그레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KBO 리그 정규 시즌 MVP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2]

2. 2. 1.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 시절 (1993-2000)

한양대학교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혹사당한 어깨 부상으로 인해 프로 데뷔 첫해에는 2승에 그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듬해인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클로저로 활약했다. 이 해 7승 8패,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6년은 구대성에게 최고의 해였다. 당시 팀 투수진은 장정순, 이상군, 김대중 등이 팀을 떠나거나 부상, 은퇴했고, 에이스 송진우한용덕마저 각각 하락세와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정민철만이 제 몫을 했고, 이상목도 부진했다. 이에 강병철 감독은 구대성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기용했다. 그는 시즌 중 부상을 입어 뜸으로 치료하기도 했지만, 139이닝을 소화하며 18승(2선발승)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 183탈삼진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이 활약으로 다승왕과 구원왕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며 KBO 리그 정규 시즌 MVP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다승왕과 구원왕 동시 석권은 KBO 리그 역사상 송진우, 신윤호와 더불어 단 세 명만이 달성한 대기록이다.

1999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창단 14년 만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총 5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3세이브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14] 1993년부터 1999년까지 7시즌 동안 통산 55승 50패, 129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국가대표로 참가했다. 특히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9이닝 완투승(3-1 승리)을 거두며 대한민국동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2] 이 경기에서 일본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그해 KBO 리그 정규 시즌에서는 6승 7패, 21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팀 마운드를 지켰다. 시즌 종료 후 일본 퍼시픽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2.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2001년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했다. 입단 초기에는 마무리 투수로 시작했으나 선발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기도 했으며, 2004년 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을 결정했다.

2. 3. 1.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2001-2004)

2001년,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시즌 초에는 시속 150km에 이르는 빠른 직구와 고속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여 1군 공식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클로저)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투구 내용이 다소 불안정하여 시즌 도중 선발 투수로 보직을 옮겼다. 2001년 시즌에는 총 51경기에 등판하여 7승 9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4.06을 기록했으며, 선발 투수로는 9경기에 등판해 3승 4패, 평균자책점 3.41의 성적을 남겼다.

2002년에는 슬로 커브 등을 섞어 던지며 완급을 조절하는 투구 스타일로 변화를 시도했다. 당시 팀 타율이 0.235에 머무르는 등 타선의 지원이 부족하여 5승을 거두는 데 그쳤으나, 평균자책점은 2.52를 기록하며 가네다 마사히코(2.50)에 이어 퍼시픽 리그 2위에 오르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2003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1군 공식 경기 등판 횟수가 19경기에 그쳤다.

2004년에는 새로 부임한 이하라 하루키 감독 및 구단 프런트와 선수 기용 방식을 두고 의견 대립을 겪었다. 시즌 막바지에는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를 흡수 합병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던 9월 27일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와의 경기(야후 BB 스타디움)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팀의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이 해에는 일본 진출 후 개인 최다인 3번의 완투를 포함하여 6승 10패, 평균자책점 4.32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구대성 본인이 메이저 리그 진출을 강하게 원하면서 오릭스와의 재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2. 4. 미국 프로야구 시절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활동한 후, 2005년 자유 계약 선수 신분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뉴욕 메츠와 계약하며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구원 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당시 만 35세의 나이와 한국, 일본에서의 12년 경력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리그에서는 루키로 분류되었다.

2005년 4월 4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8회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중간 계투 요원으로 활약했으나, 시즌 중반 부상 등의 이유로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고 시즌 종료 후 계약이 해지되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 4. 1. 뉴욕 메츠 시절 (2005)

2005년 뉴욕 메츠와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구원 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 시즌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당시 35세의 나이와 한국, 일본에서의 12년 경력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리그에서는 루키로 분류되었다. 원본 소스에 따르면 뉴욕 메츠와 스플릿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4월 4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8회에 등판하여 1이닝을 완벽하게 막고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주로 중간 계투로 활약했다.

메이저 리그 시절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05년 5월 21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 경기에서 나왔다. 이날 구대성은 랜디 존슨을 상대로 자신의 유일한 메이저 리그 안타인 2루타를 기록했다. 이 타석 직전, 폭스 TV 해설자 팀 맥카버는 구대성의 타격 자세를 보고 "가장 포기한 타석"이라고 평가했다. 구대성은 앞선 첫 타석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삼진을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1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구대성은 랜디 존슨의 공을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원바운드로 넘기는 큰 타구를 만들어냈다. 타구는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의 키를 넘겼다. 구대성이 2루에 안착하자 홈 관중과 덕아웃의 동료들은 "KOOOO!"를 외치며 열광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구대성은 "다른 사람들은 내가 눈을 감고 휘둘렀다고 말하지만, 물론 나는 공을 봤고 내가 쳤다. 고등학교 이후 18년 만에 타석에 선 것이다. 가끔 배팅 케이지에서 연습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타자 호세 레예스의 희생 번트 때, 발이 느린 구대성은 3루로 진루했다. 레예스가 1루에서 아웃되는 사이, 3루를 돌던 구대성은 비어있는 홈 플레이트를 향해 과감히 뛰었다. 양키스 포수 호르헤 포사다는 1루수의 송구를 받아 홈에서 구대성을 기다렸고, 구대성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포사다가 태그했지만, 홈 플레이트 심판 척 메리웨더는 구대성의 손이 먼저 홈 플레이트에 닿았다며 세이프를 선언했다. 이 득점으로 메츠는 3-0으로 앞서 나갔다. 홈 관중은 다시 한번 "KOOOO!"를 외쳤고, 덕아웃의 동료들은 유니폼의 흙을 털어주거나 더그 민트케비츠가 수건으로 부채질을 해주는 등 열렬히 환영했다. 구대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동료들이 많은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잘했다'는 의미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 경기가 그의 메이저 리그 마지막 타석이었다.

그러나 이 홈 슬라이딩 과정에서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부상은 그의 투구 성적에 영향을 미쳤고, 시즌 중반 부진으로 마이너 리그로 강등되었다. 시즌 종료 후 뉴욕 메츠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했고, 결국 구대성은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05년 시즌 최종 성적은 33경기에 등판하여 6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2. 5. 한국 프로야구 복귀

MLB 뉴욕 메츠에서 활동하던 구대성은 2006년 3월 2일, 메츠가 그의 계약을 한화 이글스에 판매하면서 KBO 리그로 복귀했다.

2. 5. 1. 한화 이글스 복귀 (2006-2010)

2006년 3월 2일, 뉴욕 메츠가 그의 계약을 한화 이글스에 판매하면서 한화 이글스로 복귀했다. 복귀 직후인 3월에는 제1회 WBC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이 대회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2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2라운드 일본전에서는 9회에 등판했지만, 니시오카 츠요시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팀의 유일한 실점을 기록했다. 준결승전에서는 부상으로 등판하지 못했다.

KBO 리그 복귀 후에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2007년에는 KBO 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개인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2008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개막을 늦게 맞이하면서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했다. 2009년에는 중간 계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팀과 개인 모두 최다인 71경기에 등판했다. 그러나 팀이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전년 대비 1억 삭감된 2억에 계약을 갱신했다.

2010년 8월 15일, 해당 시즌을 끝으로 KBO 리그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8월 22일 열린 기자 회견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의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9월 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가 그의 KBO 리그 고별 경기가 되었다. 이날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 조동찬을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한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2. 6. 호주 프로야구 시절

한국 프로 야구에서 은퇴한 구대성은 2010년 8월,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리그(ABL)의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4] 그는 2010-11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 시드니 블루삭스 소속 선수로 활동하며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호주 리그 데뷔 첫해인 2010-11 시즌부터 12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세이브왕과 '올해의 구원 투수' 상을 받았고, 이후 2011-12 시즌과 2013-14 시즌에도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며 총 3번의 리그 세이브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ABL에서 활동한 주요 4시즌 동안 2.16의 평균자책점과 31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로스터에서 제외[7]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후, 2016년부터는 시드니 블루삭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5][8]

2. 6. 1. 시드니 블루삭스 시절 (2010-2015)

한국 리그에서 은퇴 후, 2010년 8월 22일 기자 회견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리그(ABL)의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4]

2010년 11월 6일, 캔버라 캐벌리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ABL 데뷔전을 치렀다. 팀이 1-0으로 앞선 상황에 등판하여 마지막 타자 닉 킴튼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는 ABL 역사상 첫 세이브였으며, 이로써 구대성은 한--오스트레일리아 3개국 리그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1.00의 평균자책점, 12세이브, .144의 피OPS(피출루율+피장타율)를 기록하며 리그 초대 세이브왕 타이틀과 함께 '올해의 구원 투수'로 선정되었다.

2011년 12월에는 리그 올스타전에 세계 올스타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1-12 시즌에는 8세이브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2012년 11월에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아 시리즈 2012에 참가했는데, 당시 소속팀 시드니 블루삭스가 아닌 퍼스 히트의 일원으로 출전했다.

2012-13 시즌에는 매튜 윌리엄스가 팀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가 되면서 중간 계투(셋업맨)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 시즌에는 18경기에 등판하여 승리나 세이브 없이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다.

2013-14 시즌을 앞두고 윌리엄스가 애들레이드 바이트로 이적하자, 구대성은 다시 팀의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 시즌 2.08의 뛰어난 평균자책점과 11세이브를 기록하며 2년 만에 개인 통산 3번째 ABL 세이브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4-15 시즌에는 15경기에 등판하여 0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했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로스터에서 제외되면서[7]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2016년부터[5] (또는 2016-17 시즌부터[8]) 시드니 블루삭스의 투수 코치를 맡았다.

2. 6. 2. 질롱 코리아 시절 (2019, 2023)

2018년-2019년 시즌,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리그에 참가하는 한국인 선수로 구성된 질롱 코리아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감독직을 수행하던 2019년 1월 19일, 브리즈번 밴디츠와의 경기에서 48세의 나이로 은퇴를 번복하고 마무리 투수로 깜짝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 등판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야구 리그 최고령 선수 기록을 세웠다.[1]

이후 2023년 1월 17일, 질롱 코리아 소속 선수로 다시 현역 복귀를 발표했다.[9] 이틀 뒤인 1월 19일,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7점 차로 뒤진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 동안 안타 없이 삼진 2개를 잡아내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53세의 나이로 마운드에 올라 자신이 2019년에 세웠던 리그 최고령 선수 기록을 스스로 경신했다.[1][9] 다음 날 경기에도 두 차례 더 등판하여 6명의 타자를 상대로 1안타 2볼넷 2비자책점을 기록했으며,[1] 시즌이 끝날 때까지 팀과 함께했다.[9]

3. 야구선수 은퇴 후

2016년부터 시드니 블루삭스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질롱 코리아의 감독으로 활동했다.

2024년부터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0]

4. 수상


  • 1989년 국제 야구연맹회장배 야구대회 최우수선수상
  • 1989년 백호기 춘계/추계리그 최우수 투수상 및 체육훈장 기린상
  • 1990년 IBA대회 최우수 선수
  • 199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 1991년 춘계, 추계리그 최우수 투수상
  • 1991년 스페인 대륙간배 국제 야구대회 최우수 투수상, 승률상
  • 1992년 대통령기 대학야구대회 최우수 투수상
  • KBO 리그 정규 리그 MVP: 1회 (1996년)
  • KBO 리그 골든글러브(투수): 1회 (1996년)
  • KBO 리그 다승왕: 1회 (1996년)
  •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2회 (1996년, 2000년)
  • KBO 리그 최우수 구원: 1회 (1996년)
  • KBO 리그 한국시리즈 MVP: 1회 (1999년)
  •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세이브 1위: 1회 (2010-2011 시즌)

5. 에피소드


  • 고교 시절 연습 경기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해 고의사구로 만루를 채운 다음 나머지 세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을 잡는 대담함을 보였다.[18]
  • 그가 일본 킬러로서의 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 4위 결정전이었다. 당시 일본의 선발 투수는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였고, 그는 주전 포수 박경완의 부상으로 당시 신인 포수였던 홍성흔과 호흡을 맞췄다. 경기 당일 팔에 담이 걸려 숨 쉬기 힘들 정도였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격려 속에 컨디션을 조절하며 15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9이닝 동안 단 1실점만 허용하고 11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일본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았고,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2005년 5월 21일, 뉴욕 메츠 소속으로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 나선 구대성은 프로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은 삼진이었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는 사이 영 상 수상자이자 전설적인 좌완 투수 랜디 존슨을 상대하게 되었다. 당시 폭스 TV 해설자 팀 맥카버가 구대성의 타석을 "가장 포기한 타석"이라고 언급한 직후, 그는 랜디 존슨의 공을 받아쳐 우중간 펜스를 맞히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고교 졸업 후 18년 만의 안타였다. 2루에 도달한 그에게 홈 관중과 동료들은 "KOOOO!"를 외치며 환호했다. 다음 타자 호세 레예스가 번트 희생을 성공시키자, 구대성은 3루를 돌아 홈까지 쇄도하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다. 양키스 포수 호르헤 포사다와의 홈 승부 끝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3-0 리드를 이끌었다. 마운드에서도 1.1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이날 경기의 '오늘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홈으로 슬라이딩하는 과정에서 어깨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은 그의 메이저 리그 경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2006년 제1회 WBC에서도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일본 킬러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특히 일본과의 예선 경기에서, 불펜 투수들에게 스즈키 이치로를 맞히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세 번째 투수 배영수가 이치로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고 내려가자, 구대성이 네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해당 이닝을 책임지고 다음 이닝까지 막아낸 후 박찬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특유의 공 숨기는 투구폼에서 나오는 낮게 제구된 직구와 좌타자 바깥쪽, 우타자 몸쪽으로 향하는 슬라이더, 체인지업으로 일본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며 일본 킬러임을 다시 증명했다.

6. 주요 기록

역대 최연소 200세이브(37세 10개월 4일)2007년 7월 14일롯데대전9회초 3-4 상황에서 등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김용수 (539경기)
김용수 (38세 11개월 13일)


7. 국제대회 기록

wikitext

대회경기이닝상대 타자타수피안타사사구탈삼진자책점평균자책점
1999년 서울 아시아 야구 선수권213.2131320800.00
2000년 시드니 올림픽3119.175651172341.86
2006년 WBC518313061311.13


8. 통산 기록


도소





리패





책출





















4














W
H
I
P
1993빙그레2421.6672.5365000021.11801201100066891.411994한화2578.4672.6034920120121.089858812841342355001.22199526414.2223.54471260180155.012718726161110777616601.28199627183.8571.8855210240139.079727318360232295210.7619972888.5003.1647000250102.265741713480538364171.0319982987.5332.5559200240123.287552612951545355001.1219993089.4713.0955500260119.1951348513851544415031.2020003167.4622.7748700210133.1981347213680447415401.092001오릭스3279.4384.0651910100126.1581471314340358575441.3220023357.4172.5222221000146.11221347114430345416081.1620033468.4294.9919190000113.21312351011870272635221.60200435610.3754.3218183000116.2105244409980265565021.282005NYM3600----3.91330000623.02221312320012101061.522006한화3734.4291.825900037169.15641877650017142821.0720073816.1433.194300026042.14131213700217151731.2520083923.4003.48380000941.13921422920117161671.2820094000----3.72710001855.25451115630124232241.1720104101.0009.647100004.27230300065252.14시드니4121.6671.001800012027.01408130201431080.8220114203.0003.38140008018.2190621400176861.3420124302.0002.89180000718.2190621400176861.3420134411.5002.082110011026.020111123102661081.1920144501.0002.12150004217.0191702100044751.53KBO 통산 : 13년6771.4142.855694390214181128.2855874154812215733541235746011.13NPB 통산 : 4년2434.5833.881106850100503.04167421345042201024021721761.25MLB 통산 : 1년00----3.91330000623.02221312320012101061.52ABL 통산 : 5년38.2732.1586100359104.291438410720528254631.23

참조

[1] 웹사이트 Baseball Australia https://theabl.com.a[...] 2023-01-20
[2] 웹사이트 Gu Dae-Seong https://web.archive.[...]
[3] 웹사이트 구대성, 15일짜리 부상자 명단 등재(종합) http://sports.news.n[...] sports.news.naver.com 2005-06-03
[4] 웹사이트 Koo Dae-sung to Play for Australian Baseball League http://english.chosu[...] The Chosun Ilbo 2010-08-23
[5] 웹사이트 2016 Sydney Blue Sox Historical Roster http://web.theabl.co[...] 2017-12-31
[6] 뉴스 Aussies to pitch for and against countrymen http://wwos.ninemsn.[...] Ninemsn 2014-03-05
[7] 웹사이트 Sydney Blue Sox Roster for 2015 http://web.theabl.co[...] Sydney Blue Sox Official Site 2017-01-05
[8] 웹사이트 Sydney Blue Sox Roster for 2016 http://web.theabl.co[...] Sydney Blue Sox Official Site 2017-01-05
[9] 웹사이트 元オリ助っ人が53歳で現役復帰 豪州リーグ電撃加入「130キロくらいは投げられる」 https://full-count.j[...] Full-Count 2023-01-17
[10] 웹사이트 https://sports.chosu[...]
[11] 웹사이트 역사상 최고의 직구, 모질게 망가지다 - 쓸쓸하게 퇴장한 '현대 왕조'의 주역 정민태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8-12-21
[12] 뉴스 한국,美(미) 꺾고 파죽의 3연승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9-11-04
[13] 뉴스 한국,12년만에 國際(국제)야구 覇權(패권)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9-11-13
[14] 뉴스 9회 아직 구대성이 필요하다 스포츠 2.0 2007-08-13
[15] 뉴스 한화 구대성 한화 불펜진의 해결사 될까 http://sports.chosun[...] 스포츠조선 2009-04-29
[16] 웹인용 디시인사이드 구대성 인터뷰 영상 http://tvpot.daum.ne[...] 2019-04-08
[17] 웹사이트 ‘행복한 파이어볼러’ 구대성 https://news.naver.c[...]
[18] 웹사이트 구대성 이야기 http://www.sgnac.com[...]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