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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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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계권은 조선 세종 시대의 인물로, 음보로 관직에 진출하여 세조 즉위에 기여하여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조산대부 한성부 판관을 역임했으며, 1458년에 사망했다. 그의 묘소는 안동에 위치해 있다. 김계권은 예천 권씨와 혼인하여 5남 6녀를 두었으며, 그의 가문은 신안동 김씨로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손이다. 김계권의 고조부 김득우 대에 이르러 가문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혼인을 통해 안동의 주요 가문들과 연계하며 기반을 다졌다. 그의 자손들은 승지, 관찰사, 판서 등을 역임하며 가문을 번성시켰다.

2. 생애

김계권은 세종 때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직장(直長), 주부(注簿)를 거쳐 1455년 겸주부(兼主簿) 때 세조 즉위에 기여한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조산대부(朝散大夫) 한성부 판관(漢城府 判官)을 역임하고 1458년(세조 4년)에 사망하였다. 묘소는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역골 건좌(乾坐)에 있다. 묘표(墓表)는 후손 이조참판(吏曹參判) 김응순(金應淳)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였을 때 고쳐 세우고 썼다. 부인 예천 권씨의 묘소는 김계권의 묘소 뒤편 건좌(乾坐)에 있고 묘표가 있다.

부인 영인(令人) 예천 권씨는 1409년(태종 9년) 2월 22일 태어나 1496년(연산군 2년) 겨울 88세로 사망하였다. 친정아버지는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제평공(齊平公) 권맹손(權孟孫:1390-1456)이고, 외조부는 종성부사(鐘城府使) 남적(南績)으로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권맹손은 의정부좌찬성 증영의정 남을경(南乙敬)의 손녀사위이고, 남적(南績)은 남을경의 아들이며, 남재(南在:1351-1419)의 사촌 형제이다.

김계권과 예천 권씨는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다.

구분이름관직 및 설명
장남학조(學祖)국사(國師), 도호(道號)는 등곡(燈谷) 또는 황악산인
차남영전(永銓)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3남영균(永鈞)진사(進士), 봉사(奉事)
4남영추(永錘)문과(文科), 수원부사(水原府使)
5남영수(永銖)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
장녀남편은 진주(晉州) 유씨(柳氏) 현감(縣監) 유유(柳牖)
차녀남편은 성주(星州) 이씨(李氏) 현감(縣監) 이장생(李長生)
3녀남편은 청주(淸州) 정씨(鄭氏) 주부(主簿) 정훈로(鄭勳老)
4녀남편은 평산(平山) 한씨(韓氏) 현령(縣令) 한영(韓穎)
5녀남편은 봉사(奉事) 김윤만(金允萬)
6녀남편은 안동(安東) 권씨(權氏) 화천군(花川君) 병조판서 좌참찬 권함(權瑊,1423-1487)



막내 아들 영수(永銖)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3. 가문의 성장 과정

신안동 김씨는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901~ ?)의 후손이나, 고려 시대에는 사환이나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향리직을 세습하는 데 만족하였다. 김선평김습돈 사이의 대수(약 250년, 7~8대)는 확인할 수 없고, 김상헌의 8대조 김득우 이전은 산소의 위치도 알 수 없다.

김계권의 고조부 김득우(1332~ ?) 대에 이르러 가문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득우는 유성룡의 8대조인 유난옥의 손녀사위가 되어 풍산 류씨와 대대로 사귀어 온 정(情)을 확보했다. 또한, 안동 권씨 권희정의 딸을 외아들 김혁의 아내로 삼고, 권희정의 아들이자 세종 때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낸 권진(1357~1435)을 사위로 삼아 안동 권씨와 연혼 및 중혼 관계를 맺었다. 당시 신안동 김씨는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비록 사위이기는 하지만 권진이 정승의 반열에 오르면서 가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김혁은 배상지, 이운후와 동서 관계를 맺었다. 배상지(1351~1414)는 고려 말의 은사로 유성룡이 "상설처럼 맑고 옥처럼 정갈하며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고절을 지킨 선비"로 평가한 인물이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안동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성장했다. 이운후는 이황의 고조부이자 진성 이씨 예안 입향조였다. 이처럼 안동 김씨는 혼인을 통해 안동의 주요 명가들과 연계하여 가문의 세력을 넓혔다.

김득우와 김혁 부자는 시조 이래 450년간 세거지인 안동 강정촌(현재 안동시 정상동 귀래정 부근)을 떠나 풍산현 불정촌(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으로 이주했다. 이들의 풍산 이거는 처가이자 외가인 풍산 류씨의 경제적 기반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김득우의 손자 김삼근(1390~1465) 대에 이르러 인근 소요산(원래 명칭 금산촌)으로 이주했고, 이후 소요산은 안동 김씨의 터전이 되었다.

4. 가족 관계

김계권은 권맹손의 딸 예천 권씨와 혼인하여 5남 6녀를 두었다. 부인 예천 권씨는 1409년(태종 9년) 2월 22일에 태어나 1496년(연산군 2년) 겨울에 88세로 사망하였다. 친정아버지는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권맹손이고, 할아버지는 성주목사 권상, 증조부는 영해부사 권군보이다. 외할아버지는 종성부사 남적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권맹손은 의정부좌찬성 증영의정 남을경의 손녀사위이고, 남적은 남을경의 아들이며, 남재의 사촌 형제이다.

4. 1. 직계 가족

관계이름비고
아버지김삼근(金三近)봉화현감, 비안현감 역임
어머니예천 권씨(醴泉 權氏)권맹손(權孟孫)의 딸
동생김계행(金係行)도승지,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역임, 증 이조판서, 대제학
부인예천 권씨(醴泉 權氏)1409년(태종 9년) 출생 ~ 1496년(연산군 2년) 사망, 권맹손(權孟孫)의 딸
장남학조(學祖) 김영형(金永衡)세조~연산군 국사(國師)
차남김영전(金永銓)사헌부 감찰
3남김영균(金永鈞)진사(進士), 봉사(奉事)
4남김영추(金永錘)문과(文科), 수원부사
5남김영수(金永銖)사헌부 장령
1녀유유(柳牖)현감(縣監), 진주인
2녀이장생(李長生)현감(縣監), 성주인
3녀정훈로(鄭勳老)주부(主簿), 청주인
4녀한영(韓穎)현령(縣令), 평산인
5녀김윤만(金允萬)봉사(奉事)
6녀권함(權瑊)화천군(花川君), 병조판서, 좌참찬, 안동인


4. 2. 자녀

김계권은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다.

순서이름주요 경력
장남학조세조~연산군 때 국사(國師)
차남김영전사헌부 감찰, 합천군수 역임
3남김영균진사, 봉사 역임
4남김영추합천군수, 수원부사 역임
5남김영수영천군수, 사헌부 장령 역임
순서이름혼인
장녀유유(진주인)
차녀이장생(성주인)
3녀정훈로(청주인)
4녀한영(평산인)
5녀김윤만
6녀권함(안동인)




4. 3. 기타 가족

김계권의 동생은 도승지, 성균관대사성, 사헌부대사헌, 증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낸 김계행(金係行)이다. 김계권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세조~연산군 때 국사(國師)를 지낸 학조(學祖) 김영형(金永衡), 둘째 아들은 사헌부감찰과 합천군수를 지낸 김영전(金永銓), 셋째 아들은 진사 봉사 김영균(金永鈞), 넷째 아들은 합천군수와 수원부사를 지낸 김영추(金永錘), 다섯째 아들은 영천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이다.

김계권의 조카로는 영릉참봉 김극인(金克仁), 진사 김극의(金克義), 생원 김극례(金克禮), 1490년에 21세로 요절한 김극지(金克智), 무과 문천군수 김극신(金克信)이 있다.

김계권의 손자 대에는 가문이 더욱 번성하였다. 김영수(金永銖)의 아들, 즉 김계권의 손자들은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김영(金瑛), 시강원문학, 평양서윤, 증이조판서를 지낸 김번(金璠), 찰방, 형조좌랑, 수군절도사를 지낸 김순(金珣)이다.

김계권의 증손자인 김생해(金生海)는 성종의 아들 경명군 이침의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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