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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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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인존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선종, 헌종, 숙종 3대에 걸쳐 내시로 활동했다. 과거 급제 후 직한림원을 거쳐 내시로 3대 왕을 섬겼으며, 요나라 사신 접반사, 비서감,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했다. 여진족의 동북 9성 반환 요구에 대해 현실적인 외교 노선을 주장했고, 북송에 파견되어 환대를 받기도 했다. 요나라와 금나라의 전쟁 시기에는 판서북면병마사로 부임했으며, 예종 연회에서 '청연각기'를 지었다. 이자겸의 난 이후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왕의 자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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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존
기본 정보
이름김인존
한글 표기김인존
한자 표기金仁存
가타카나 표기기무 인존
로마자 표기Gim Injon
강릉 김씨
강릉 김씨(53)강릉 김씨

2. 생애

김인존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선종, 헌종, 숙종 3대에 걸쳐 내시로 섬겼다. 요나라북송에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여진족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자겸의 난 이후에는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에 올랐다.

2. 1. 관직 생활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을 거쳐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로 섬겼다. 1102년에 내조한 요나라 사신의 접반사를 맡았다. 여진족의 동북 9성 반환 요구에 대해서는 국방상의 난점과 북방 백성들의 부담을 우려하여 응낙할 것을 주장했다. 비서감·추밀원부사로서 북송에 파견되어 휘종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요나라금나라의 전쟁에 임하여 판서북면병마사로 부임했다. 1127년 예종이 청연각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명을 받아 「청연각기」를 지었다. 1125년에 의형제 이자겸이 일으킨 반란이 평정되자, 이듬해에는 문하시중이 되었다.

2. 2. 외교 활동

1102년요나라 사신의 접반사를 맡았으며, 비서감·추밀원부사로서 북송에 파견되어 휘종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1] 여진족의 동북 9성 반환 요구에 대해서는 국방상의 난점과 북방 백성들의 부담을 우려하여 응낙할 것을 주장했고, 요나라금나라의 전쟁에 임하여 판서북면병마사로 부임했다.[1]

2. 2. 1. 여진과의 관계

여진족의 동북 9성 반환 요구에 대해서는 국방상의 난점과 북방 백성들의 부담을 우려하여 응낙할 것을 주장했다.[1]

2. 2. 2. 송, 요와의 관계

1102년요나라 사신의 접반사를 맡았으며,[1] 비서감·추밀원부사로서 북송에 파견되어 휘종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1] 요나라금나라의 전쟁에 임하여 판서북면병마사로 부임했다.[1]

3. 평가

김인존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당대의 석학으로, 중요한 나랏일마다 왕의 자문을 받았다.[2]

참조

[1] 웹사이트 "(53)강릉 김씨" https://www.joongang[...] 1983-02-19
[2] 백과사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김인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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