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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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원군은 조선 시대, 임금이 아닌 왕의 아버지로서 왕위에 오른 아들을 보필하기 위해 존칭된 명칭이다. 덕흥대원군, 정원대원군, 전계대원군, 흥선대원군 4명이 있었으며, 이 중 흥선대원군만이 생전에 대원군으로 불렸다. 덕흥대원군은 선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은 인조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은 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이다. 정원대원군은 원종으로 추존되어 왕으로 대우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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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군 - 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대원군 - 덕흥대원군
덕흥대원군은 조선 중종의 아들이자 선조의 아버지로, 덕흥군 시절 사치와 노비 문제로 탄핵을 받았지만 선조 즉위 후 대원군으로 추존되었으며, 그의 삶은 왕권과 신권의 관계 및 성리학적 이념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문학적 업적도 남겼다. - 조선의 관직과 칭호 -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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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환국은 1680년 숙종 때 서인이 유악 사건과 삼복의 변을 계기로 남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서인이 요직을 차지하며 조선 정계가 서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대원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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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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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재황(載晃) → 병(昞) |
자 | 시백(時伯) |
호 | 석파(石坡), 묵재(默齋) |
시호 | 헌의(獻懿) |
본관 | 전주(全州) |
생몰 기간 | 1820년 12월 21일 ~ 1898년 2월 22일 (음력 1820년 11월 8일 ~ 1898년 1월 2일) |
묘소 | 운현묘(雲峴墓) |
가족 관계 | |
아버지 |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 |
어머니 | 군부인 여흥 민씨(郡夫人 驪興 閔氏) |
배우자 | 부대부인 여흥 민씨(府大夫人 驪興 閔氏) |
자녀 | 장남: 고종(高宗) 차남: 이재면(李載冕) |
관력 | |
작위 | 대원군(大院君) |
섭정 기간 | 1863년 ~ 1873년 |
2. 역대 대원군 목록
- 덕흥대원군: 조선 14대 임금 선조의 아버지로, 아들 선조가 즉위하면서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 되었다.
- 정원대원군: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아버지로, 아들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즉위하면서 정원대원군에 추존되었고, 1633년(인조 11년)에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 전계대원군: 조선 25대 임금 철종의 아버지로, 아들 철종이 즉위하면서 전계군으로 먼저 추존된 후, 전계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 흥선대원군: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아버지로,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으로 추존되어 조선의 마지막 대원군이 되었다. 사후에는 손자 순종이 흥선헌의대원왕으로 추존하였다.
2. 1. 덕흥대원군 (1530년 ~ 1559년)
1530년 중종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초(岹)이다. 1538년 덕흥군이 되었다. 1567년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14대 선조로 즉위한 후, 1570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다.[2] 부인은 정인지의 증손녀(정인지의 손자 정세호의 딸)인 하동부부인 정씨이다. 장남은 하원군(1545년 - 1597년), 차남은 하릉군(1546년 - 1592년)이며, 셋째 아들이 선조이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55호), 정식으로는 "묘"이지만, 선조의 명에 따라 왕의 무덤을 지칭하는 "능" 자를 사용한 "덕릉"이라는 별칭도 통용되고 있다.2. 2. 정원대원군 (추존, 추후 원종으로 추존)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불렸으나, 1633년(인조 11년) 원종으로 추존되었다.[2]2. 3. 전계대원군 (1785년 ~ 1841년)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서자였다. 1849년 셋째 아들인 덕완군이 25대 철종으로 즉위하면서, "전계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3]2. 4. 흥선대원군 (1820년 ~ 1898년)
(1820년 ~ 1898년)은 고종의 아버지로, 조선에서 생전에 대원군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으로 추존되었으며, 조선의 마지막 대원군이다. 사후에는 손자인 순종이 흥선헌의대원왕으로 추존하였다.[4] 조선 시대 말기(19세기 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대원군"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흥선대원군을 가리킨다.3. 사당
대원군의 사당은 대원군 신궁과 대원왕 신궁으로 나뉜다. 대원군 신궁에는 덕흥대원군, 정원대원군, 전계대원군의 사당이, 대원왕 신궁에는 흥선대원왕의 흥선궁이 있었다.[1]
3. 1. 대원군 신궁
- 덕흥궁(德興宮) - 덕흥대원군, 제14대 선조의 잠저인 도정궁(都正宮) 내에 있었다.
- 계운궁 - 정원대원군
- 전계궁(全溪宮) - 전계대원군, 전계대원군의 사손의 사저인 누동궁(樓洞宮) 내에 있었다.
3. 2. 대원왕 신궁
운현궁 내에 흥선대원왕의 흥선궁이 있었다.[1]참조
[1]
문서
대원군
표준국어사전
[2]
역사기록
상이 모화관에서 영칙례를 거행하다
http://sillok.histor[...]
인조 28권, 11년(1633 계유 / 명 숭정(崇禎) 6년) 5월 6일(정유) 1번째 기사
1633-05-06
[3]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의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http://sillok.histor[...]
[4]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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