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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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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원은 대한민국의 통화로, '원'은 스페인 달러에서 유래된 위안, 엔과 같은 어원을 가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엔으로 대체되었고, 해방 이후 분단으로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다른 통화가 사용되었다. 1945년 1달러당 15원으로 시작해 한국 전쟁을 거치며 가치가 하락했고, 1953년 환으로 대체되었다. 1962년, 1환을 10원으로 하는 두 번째 원이 도입되었으며,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변동환율제를 채택했다. 현재 1,000원, 5,000원, 10,000원, 50,000원 지폐와 10원, 50원, 100원, 500원 동전이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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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기본 정보
화폐들의 사진 (1원과 5원은 현재 통용되지 않음)
현지어 통화 이름대한민국 원
로마자 표기Daehanminguk won
ISO 코드KRW
사용 국가대한민국
기호
복수형N
보조 단위
보조 단위 비율1/100
보조 단위 이름전 (jeon)
보조 단위 요약이론적으로 존재하며, 사용되지 않음
화폐
자주 사용되는 동전₩10
₩50
₩100
₩500
드물게 사용되는 동전₩1
₩5
자주 사용되는 지폐₩1,000
₩5,000
₩10,000
₩50,000
드물게 사용되는 지폐₩2,000 (기념지폐)
발행 및 관리
발행 기관한국은행
발행 기관 웹사이트www.bok.or.kr
제조 기관한국조폐공사
제조 기관 웹사이트www.komsco.com
경제
인플레이션율2.4%
인플레이션 출처 날짜2024년 6월
인플레이션 방법CPI
기타
현재 환율1 USD = 1,390 KRW
각주

2. 어원

대한민국 원

==어원==

'원'은 위안이나 엔과 같은 동족어이며, 모두 스페인-아메리카 은화에서 유래했다. 이는 한자 ''圓'' (원, won)에서 유래했는데, 은화의 둥근 모양을 나타낸다. 원은 100 전(錢, jeon)으로 세분되었는데, 전은 중국 무게 단위인 의 동족어이며 일반적으로 돈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현재의 원(1962년부터 현재까지)은 한글로만 표기하며, 공식적으로 관련된 한자가 없다.[3][4] “원”은 “圓”의 한국어 읽기이지만, 공식적으로 한자 표기를 하지 않는다. 중국 “위안(元)”도 한국어로 “원”으로 읽히지만, 한자 문화권 사람들과 소통할 때 한국 원을 “원(元)”이라고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국어권에서는 한국 원을 번체로 “” 또는 “”, 간체로는 “” 또는 “”라고 표기한다. 한국에서는 일본 엔을 “엔”이라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안(元)은 “위안”이라고 표기한다.

==역사==

대한민국 원은 스페인 달러에서 유래했으며, 대한제국 원, 중국 위안, 일본 엔 등과 마찬가지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국제 무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5]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에는 원화가 일본 엔과 등가인 조선 엔으로 대체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한반도 분단으로 남한과 북한은 각각 '원'이라는 이름의 별도 통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남한의 원화와 북한의 원화는 모두 엔화를 대체했고, 최초의 남한 원화는 100전으로 세분화되었다. 초기 남한 원화는 미국 달러와 연동된 1달러당 15원의 고정 환율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1950~1953) 등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아래 표는 초기 고정 환율 변화를 보여준다.

최초의 대한민국 원화 고정 환율
시행일1달러당 원화 가치
1945년 10월15
1947년 7월 15일50
1948년 10월 1일450
1949년 6월 14일900 (비공식 거래만 해당)
1950년 5월 1일1,800
1950년 11월 1일2,500
1951년 4월 1일6,000



1945년 8월 당시 1원은 1엔으로 고정되었으나, 10월에는 1달러당 15원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지속적인 평가절하가 이뤄졌고,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1일에는 1달러당 6,000원이 되었다.[41] 최초의 남한 원화는 1953년 2월 15일, 1환=100원의 비율로 환으로 대체되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해체된 조선은행의 자산은 미소 군정청에 접수되어 한국은행과 조선중앙은행에 인계되었다. 미군에 접수된 남쪽의 조선은행은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전까지 최초의 남한 원을 발행하였다. 원 아래에는 1원=100전의 비율로 전이라는 보조화폐 단위가 존재했다. 초기에는 국립 인쇄국에서 제조한 원 지폐만 발행되었고, 주화는 일제 강점기의 1전 주화가 사용되었다. 1946년에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제작한 10원 및 100원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행권과 유사한 디자인이었으나, 일본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장 대신 무궁화로 변경되었다. 1949년에는 5원 및 10원 지폐가 발행되었고, 소액 지폐도 함께 발행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었으나,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대량 유출된 지폐를 대체하기 위해 일본 국립 인쇄국에서 제작된 한국은행권이 발행되고, 조선은행권과 교환되었다(제1차 긴급 통화 조치). 19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면서 지폐의 국내 제조가 재개되었다.

한국은행권 [42]
이미지액면너비(mm)색상앞면뒷면발행일인쇄
발행종료
111px111px100158 × 78갈색광화문액면1950년 7월 22일1953년
2월 17일
국립 인쇄국
102px102px500145 × 61청색이승만탑골공원1952년 10월 10일한국조폐공사
120px120px1000171 × 78녹색액면1950년 7월 22일국립 인쇄국
102px102px145 × 61청색탑골공원1952년 10월 10일한국조폐공사



1962년 6월 10일, 환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원이 1환=10원의 비율로 도입되었다. ISO 4217 코드는 KRW이다. 당시 1달러는 125원으로 고정되었다. 1975년 3월 22일, 마지막으로 유통되던 환 주화가 회수되면서 원은 유일한 법정통화가 되었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는 다음과 같은 고정환율제가 시행되었다.

시행일1달러당 원화 가치
1962년 6월 10일125
1964년 5월 3일255
1972년 8월 3일400
1974년 12월 7일480
1980년 1월 12일580



1980년 2월 27일부터 변동환율제 도입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24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정 체결을 통해 완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7]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61년 5월 16일 발생한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1962년 1차 5개년 계획과 함께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이 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었으나,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1972년과 1974년에 원화가 평가절하되는 등 격변을 겪었다. 1원은 100전이었으나, 전은 현재 실제 거래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 발행된 10전과 50전 지폐는 법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실제 유통은 거의 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전자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카드 사회이지만, 포장마차 등 일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도 존재한다. [44]

===지폐===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지폐는 1,000원권, 5,000원권, 10,000원권, 50,000원권의 네 종류이다. 각 지폐에는 위조 방지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1962년에는 10전, 50전,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권 지폐가 처음 발행되었다. 초기 지폐들은 영국의 드 라 루(Thomas De La Rue)사에서 인쇄되었지만, 이후 한국조폐공사에서 국내 인쇄가 시작되었다. 1965년에는 위조 방지를 위해 100원권에 凹판 인쇄 기법이 처음 도입되었다. 1970년대에는 100원권과 50원권이 주화로 대체되었고, 5,000원권과 10,000원권이 새롭게 발행되었다. 이 고액권 지폐에는 워터마크, 보안 스레드, 자외선 반응 섬유 등 새로운 보안 기능이 추가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500원권과 1,000원권이 추가 발행되었다. 1983년에는 통화 체계 개선을 위해 새로운 지폐 시리즈가 발행되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식별 표시와 기계 판독 가능 언어가 추가되었고, 내구성이 강화된 고품질 용지가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는 컬러 프린터의 보급에 대응하여 위조 방지 기술이 강화된 5,000원권과 10,000원권이 발행되었다. 색상 변환 잉크, 미세 인쇄, 분할 금속 스레드, 모아레 무늬 등의 기술이 도입되었다. 최신 지폐에는 워터마크 아래에 "© 한국은행" 또는 "© The Bank of Korea" 저작권 정보와 발행 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5,000원권 지폐의 인쇄판은 일본에서, 1,000원권과 10,000원권의 인쇄판은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작되었다. 2006년부터 2009년에 걸쳐 새로운 디자인의 지폐(5차 시리즈)가 발행되었다. 위조 방지 기술이 더욱 강화되었고, 지폐의 크기가 작아졌으며,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개선되었다. 5만 원권에는 22종, 1만 원권에는 21종, 5천 원권에는 17종, 1천 원권에는 19종의 다양한 위조 방지 기술이 적용되었다. 주요 위조 방지 기술로는 홀로그램, 숨은 그림, 융기 인쇄, 보안 섬유, 변색 잉크, 유리온 등이 있다. 기호 번호는 2006년 이후 발행된 지폐는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로 구성되며, 2006년 이전 지폐는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로 구성된다. 또한, 지폐에는 한국은행 총재의 도장이 표기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지폐 손상 시 남은 면적에 따라 전액 또는 반액 교환 또는 무효 처리를 하고 있다. 1962년 이후 발행된 모든 지폐는 법적으로 유효하지만, 현재는 5차 시리즈 지폐가 주로 유통되고 있다.

===동전===

현재 유통되는 대한민국 원화 동전은 10원, 50원, 100원, 500원 동전이다. 1원과 5원 동전은 1992년 이후 거의 유통되지 않고 있으며, 소비재 가격은 10원 단위로 반올림된다. 다만, 한국은행의 연례 주화 세트를 위해 소량 생산되고 있다.[17] 1966년 8월 16일, 1원, 5원, 10원 동전이 처음 발행되었다. 1원 동전은 황동(구리 60%, 아연 40%)으로, 5원과 10원 동전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서기를 사용한 최초의 대한민국 동전이었다.[8] 1원 동전의 재료 가격이 액면가를 넘어서자, 1968년 8월 26일에는 재료를 알루미늄으로 변경했다. 5원과 10원 동전은 1970년에 소재 배합 비율이 변경되었고, 10원 동전은 2000년대 들어 다시 재료 가격이 액면가를 넘어 2006년 소재와 크기가 변경되었다. 500원 동전은 1982년에 처음 제작되었으며, 500원 동전을 제외한 모든 현행 동전은 1983년에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특히 1998년 발행된 500원짜리 동전은 IMF 구제금융 사건의 영향으로 극소량만 제작되어 희귀하다.[61] 10원 동전의 경우, 2006년 이전에는 황동으로 제작되었으나, 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구리 도금 알루미늄(구리 48%, 알루미늄 52%)으로 변경되어 크기와 무게가 줄었다. 이는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였다.[13] 1원과 5원 동전의 유통 감소와 더불어, 10원과 50원 동전의 유통 중단도 검토되고 있다. 이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동전 제작 및 유통 비용 대비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사회가 발전하면서 현금 사용이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현금만 사용 가능한 곳들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3. 대한민국 원의 역사

대한민국 원의 역사는 스페인 달러에서 유래한 여러 아시아 통화들과 마찬가지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국제 무역에서 널리 사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일본 엔과 등가인 조선 엔으로 대체되었다. 광복 후 분단으로 남한과 북한은 각각 '원'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통화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초기 남한 원화는 100전으로 세분화되었고, 미국 달러와 1달러당 15원의 고정 환율제를 통해 연동되었다. 하지만 한국 전쟁(1950~1953) 등의 영향으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여러 차례 평가절하를 거쳤다. 1950년 11월에는 1달러당 2,500원까지 치솟았다.

1953년 2월 15일, 1환=100원의 비율로 환(圜)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폭락한 구 원화를 대체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60환으로 고정되었다. 환은 100전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실제 거래에서는 전 단위는 사용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 인쇄국에서 인쇄된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 지폐와 1959년부터 발행된 환 동전이 유통되었다. 1959년 이후 지폐와 동전에서 한자 표기는 사라지고 영어와 한글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경제 혼란으로 인해 환의 가치도 꾸준히 하락하여, 1961년 2월 2일에는 1달러당 1250환까지 떨어졌다.

1962년 6월 10일, 1환=10원의 비율로 새로운 대한민국 원이 도입되었다. ISO 4217 코드는 KRW이다. 당시 1달러는 125원으로 고정되었다. 1975년 3월 22일, 마지막으로 유통되던 환 주화가 회수되면서 원은 유일한 법정 통화가 되었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는 고정환율제가 시행되었으나, 1980년 2월 27일부터 변동환율제 도입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1997년 12월 24일 IMF와의 협정 체결을 통해 완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 이는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 원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했다. 1원은 100전이었으나, 전은 현재 실제 거래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 발행된 10전과 50전 지폐는 법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실제 유통은 거의 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전자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카드 사회이지만, 포장마차 등 일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도 존재한다. 1961년 5월 16일의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1962년 1차 5개년 계획과 함께 이러한 통화 개혁을 단행했다. 이 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었으나,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1972년과 1974년에 원화가 평가절하되는 등 격변을 겪었다.

초기 원화 발행과 관련된 주요 사건 및 지폐, 동전 발행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10월 1달러당 15원으로 시작된 고정환율은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1951년 4월 1일에는 1달러당 6,000원이 되었다. 1946년 조선은행은 10원권과 100원권 지폐를 발행했고, 1949년에는 5원권과 1000원권 지폐가 추가로 발행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었고, 한국 전쟁으로 인해 일본 국립 인쇄국에서 제작된 한국은행권이 발행되어 조선은행권과 교환되었다. 19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면서 지폐의 국내 제조가 재개되었다. 1959년부터는 환 동전(10환, 50환, 100환)이 발행되었고, 1975년 3월 22일 마지막으로 유통되던 환 주화가 회수되었다. 현재 유통되는 대한민국 원화 동전은 10원, 50원, 100원, 500원 동전이며, 1원과 5원 동전은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현재 사용되는 지폐는 1,000원권, 5,000원권, 10,000원권, 50,000원권이다.

3. 1. 첫 번째 대한민국 원 (1945년~1953년)

해방 직후인 1945년, 조선은행이 해체되고 일본 제국의 자산은 미소군정청에 접수되었다. 이후 남한에는 한국은행이 설립되기 전까지 미군에 접수된 조선은행이 최초의 대한민국 원을 발행하였다. 원 아래 보조화폐 단위로는 전(錢, jeon)이 사용되었으며, 1원은 100전이었다. 초기에는 1원=1엔으로 고정환율제가 적용되었으나, 10월에는 15원=1달러로 변경되었고, 이후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원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1일에는 1달러=6,000원이 되었다.[41]

초기에는 조선은행이 국립 인쇄국에서 제조한 원 지폐만 발행하였고, 주화는 일제 강점기의 1전 주화를 계속 사용하였다. 1946년에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10원 및 100원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조선은행권과 유사한 디자인이었으나 오얏꽃 문장 대신 무궁화 꽃으로 변경되었다. 1949년에는 5원 및 10원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수로인의 초상 대신 독립문이 디자인으로 채택되었고, 5, 10, 50전 등의 소액 지폐도 함께 발행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발족하였으나,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예비로 보관 중이던 1000원 및 100원 지폐를 대량 유출시켰다. 이에 한국은 일본 국립 인쇄국에서 제조된 한국은행권 1000원, 100원 지폐를 발행하고, 기호에 따라 정규 발행된 조선은행권과 교환하는 제1차 긴급 통화 조치를 실시하였다. 1951년 10월에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어 지폐의 국내 제조가 재개되었다. 한국은행권은 100원, 500원, 1000원권이 발행되었으며, 100원권은 갈색, 500원권과 1000원권은 청색과 녹색으로 발행되었다. 100원권에는 광화문과 액면이, 500원권에는 이승만 초상과 탑골공원이, 1000원권에는 액면과 탑골공원이 각각 앞면과 뒷면에 인쇄되었다.[42] 이 지폐들은 1953년 2월 17일에 발행이 종료되었다.

3. 1. 1. 역사

대한민국 원은 스페인 달러에서 유래된 대한제국 원, 중국 위안, 일본 엔과 같은 아시아 통화들과 마찬가지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국제 무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5]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에는 원화가 일본 엔과 등가인 조선 엔으로 대체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한반도 분단으로 남한과 북한은 각각 '원'이라는 이름의 별도 통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남한의 원화와 북한의 원화는 모두 엔화를 대체하였다. 최초의 남한 원화는 100전으로 세분화되었다.

초기 남한 원화는 미국 달러와 연동된 1달러당 15원의 고정 환율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1950~1953) 등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아래 표는 초기 고정 환율 변화를 보여준다.

최초의 대한민국 원화 고정 환율
시행일1달러당 원화 가치
1945년 10월15
1947년 7월 15일50
1948년 10월 1일450
1949년 6월 14일900 (비공식 거래만 해당)
1950년 5월 1일1,800
1950년 11월 1일2,500
1951년 4월 1일6,000



1945년 8월 당시 1원은 1엔으로 고정되었으나, 10월에는 1달러당 15원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지속적인 평가절하가 이뤄졌고,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1일에는 1달러당 6,000원이 되었다.[41] 최초의 남한 원화는 1953년 2월 15일, 1환=100원의 비율로 환으로 대체되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해체된 조선은행의 자산은 미소 군정청에 접수되어 한국은행과 조선중앙은행에 인계되었다. 미군에 접수된 남쪽의 조선은행은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전까지 최초의 남한 원을 발행하였다. 원 아래에는 1원=100전의 비율로 전이라는 보조화폐 단위가 존재했다. 초기에는 국립 인쇄국에서 제조한 원 지폐만 발행되었고, 주화는 일제 강점기의 1전 주화가 사용되었다. 1946년에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제작한 10원 및 100원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행권과 유사한 디자인이었으나, 일본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장 대신 무궁화로 변경되었다. 1949년에는 5원 및 10원 지폐가 발행되었고, 소액 지폐도 함께 발행되었다.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었으나,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대량 유출된 지폐를 대체하기 위해 일본 국립 인쇄국에서 제작된 한국은행권이 발행되고, 조선은행권과 교환되었다(제1차 긴급 통화 조치). 19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면서 지폐의 국내 제조가 재개되었다.

한국은행권 [42]
이미지액면너비(mm)색상앞면뒷면발행일인쇄
발행종료
111px111px100158 × 78갈색광화문액면1950년 7월 22일1953년
2월 17일
국립 인쇄국
102px102px500145 × 61청색이승만탑골공원1952년 10월 10일한국조폐공사
120px120px1000171 × 78녹색액면1950년 7월 22일국립 인쇄국
102px102px145 × 61청색탑골공원1952년 10월 10일한국조폐공사


3. 1. 2. 지폐

1946년, 조선은행은 10원권과 100원권 지폐를 발행했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행권과 유사한 디자인이었으나, 일본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장 대신 무궁화 꽃으로 상부 문장이 변경되었다.[52] 1949년에는 5원권과 1,000원권 지폐가 추가로 발행되었는데, 5원 및 10원권 지폐에는 수로인의 초상 대신 독립문이 디자인되었다. 이 시기에 5전, 10전, 50전 등의 소액 지폐도 발행되었다.

1950년 6월 12일, 새로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6] 조선은행의 업무를 인수하고 5전, 10전, 50전, 100원, 1,000원권 지폐를 발행했다. 일부 지폐는 1949년 발행일자를 가지고 있었다. 500원권 지폐는 1952년에 발행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예비로 보관해 두었던 1,000원 및 100원 지폐를 대량으로 유출시켰다. 이에 한국은 일본 국립 인쇄국에서 제조된 한국은행권 1,000원, 100원 지폐를 새롭게 발행하고, 기호에 의해 정규로 발행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선은행권과 교환하는 제1차 긴급 통화 조치를 시행했다. 1951년 10월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면서 지폐의 국내 제조가 재개되었다. 1953년에는 영어로 '원(won)'이라는 액면가를 표기한 지폐 시리즈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최초의 발행이었다.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한국은행권 100원권 지폐는 갈색을 띠었고, 앞면에는 광화문, 뒷면에는 액면이 표기되었으며, 국립 인쇄국에서 인쇄되었다. 500원권과 1,000원권은 1952년 10월 10일에 발행되었는데, 500원권은 청색을 띠고 앞면에는 이승만 초상, 뒷면에는 탑골공원이 디자인되었으며, 1,000원권은 녹색과 청색으로 발행되었고, 앞면은 이승만 초상, 뒷면은 탑골공원 또는 액면이 표기되었다. 이 지폐들은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쇄되었다. 이들 지폐는 1953년 2월 17일까지 유통되었다.

3. 2. 환 (1953년~1962년)

한국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폭락한 구 원화를 대체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 새로운 통화 단위인 '''환(圜)'''이 도입되었다. 100구 원은 1환으로 교환되었고, 당시 환율은 1달러당 60환으로 고정되었다(제2차 긴급 통화 조치).[43] 이로써 조선은행권(10원, 5원, 1원, 50전, 20전, 10전, 5전)과 일본 시대의 잔재인 일본 발행 1전 동전 등의 유통은 중단되었고, 한국은행이 발행한 환 지폐가 유일한 법정 통화가 되었다. 미국 정부 인쇄국에서 인쇄된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 지폐가 유통되었으며, 1959년부터는 한국은행에서 환 동전(10환, 50환, 100환)도 발행되었다. 1959년 이후 지폐와 동전에서 한자 표기는 사라지고 영어와 한글만 사용하게 되었다. 환에는 보조 단위인 전(錢)이 있었지만, 전 단위의 동전이나 지폐는 발행되지 않았고 실제 거래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경제 혼란으로 인해 환의 가치도 꾸준히 하락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부정을 계기로 발생한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정치·경제 불안은 지속되었고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되었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이 심화되면서 1960년 가을 이후 환율은 급격히 하락하여, 1961년 1월 1일에는 1달러당 1000환, 2월 2일에는 1달러당 1250환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결국 환의 폐지로 이어졌다.

3. 2. 1. 역사

대한민국 원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국제 무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스페인 달러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위안과 일본 엔도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원화가 일본 엔으로 대체되어 등가로 사용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의 분단으로 남한과 북한 모두 '원'이라는 이름의 별도 통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남한의 1945년 원화와 북한의 원화는 모두 엔화를 등가로 대체했으며, 최초의 남한 원화는 100전으로 세분화되었다. 초기 남한 원화는 미국 달러와 1달러당 15원의 고정 환율제로 연동되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1950~1953)의 영향으로 인해 여러 차례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1945년 10월 1달러당 15원으로 시작된 고정환율은 1950년 11월에는 2,500원까지 폭등하였다. 이러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한국 전쟁의 혼란과 경제적 붕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결국, 1953년 2월 15일, 1환 = 100원의 비율로 환(South Korean hwan)이 도입되어 구 원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1달러는 60환으로 고정되었다.

환은 100전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전 단위의 동전이나 지폐는 발행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 인쇄국에서 인쇄된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 지폐와 1959년부터 발행된 환 동전이 유통되었다. 1959년 이후부터는 지폐와 동전에서 한자 표기가 사라지고 영어와 한글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시절 제1공화국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환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였다. 특히, 1960년 대통령 선거 부정을 계기로 발생한 4.19 혁명은 제1공화국의 몰락을 가져왔고, 이후 제2공화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1960년 가을 이후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1961년 1월 1일에는 1달러=1000환, 2월 2일에는 1달러=1250환까지 환율이 폭락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독재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볼 때, 그 결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3. 2. 2. 동전

1959년부터는 환 동전이 발행되었다. 10환, 50환, 100환 세 종류의 동전이 발행되었으며, 디자인과 재질은 다음과 같다.

  • 10환 동전: 지름 19.1mm, 무게 2.46g. 구리 95%, 아연 5%의 재질로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무궁화와 액면, 은행명이, 뒷면에는 액면, 국명, 주조년도가 새겨져 있다. 48px 48px 1959년 10월 20일부터 1975년 3월 22일까지 유통되었다.

  • 50환 동전: 지름 22.86mm, 무게 3.69g. 구리 70%, 아연 18%, 니켈 12%의 재질로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거북선과 액면, 은행명이, 뒷면에는 액면, 국명, 주조년도가 새겨져 있다. 57px 57px 1959년 10월 20일부터 1975년 3월 22일까지 유통되었다.

  • 100환 동전: 지름 26.0mm, 무게 6.74g. 백동(아연 75%, 니켈 25%) 재질로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초상과 액면, 은행명이, 뒷면에는 액면, 국명, 주조년도가 새겨져 있다. 65px 65px 1959년 10월 30일부터 1962년 6월 10일까지 유통되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상이 새겨진 점은 당시 그의 독재적 권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43]


환에는 보조 단위로 전(錢)이 있었으나, 실제로 전 단위의 동전이나 지폐는 발행되지 않았다. [43]

3. 2. 3. 지폐

1946년 조선은행은 10원권과 100원권 지폐를 발행했다. 이후 1949년에는 5원권과 1,000원권 지폐가 발행되었다.[6]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어 조선은행의 업무를 인수하면서 5전, 10전, 50전, 100원, 1,000원권 지폐(일부는 1949년 발행일자를 가짐)를 발행했고, 500원권 지폐는 1952년에 발행되었다. 1953년에는 영어로 원화 단위를 표기한 지폐 시리즈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최초의 대한민국 환 발행이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가치가 하락한 구 대한민국 원은 1953년 2월 15일 신통화 '''환'''(圜, hwan)이 도입됨으로써 역할을 마쳤다. 100구 원은 1환으로 교환되었고, 1달러는 60환이 되었다(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조선은행권(10원, 5원, 1원, 50전, 20전, 10전, 5전의 7종류)과 일본에서 발행된 1전 동전 등의 유통은 중단되었고, 한국은행이 발행한 환 지폐만이 유일한 법정 통화가 되었다. 미국 정부 인쇄국에서 인쇄한 1환, 5환, 10환, 100환, 1000환 각 지폐가 유통되었고, 1959년부터는 환 동전도 발행되었다. 1959년 이후 한국의 지폐와 동전에서 한자 표기는 사라지고 영어와 한글만 사용하게 되었다. 환 아래에는 보조 단위 전(錢, jeon)이 있었고, 1환은 100전이었으나, 전의 동전이나 지폐는 발행되지 않았고, 전이 현금 단위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환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와 제1공화국 시대의 정치·경제 혼란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달러에 대한 가치가 하락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부정을 계기로 4·19 혁명이 일어나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으로 이행했지만, 정치와 경제 불안정성은 심화되었고, 1960년 가을 이후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1961년 1월 1일에는 1달러=1000환, 2월 2일에는 1달러=1250환으로 가치가 급락했다.

3. 3. 두 번째 대한민국 원 (1962년~현재)

1962년 6월 10일, 환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한민국 원이 1환=10원의 비율로 도입되었다. ISO 4217 코드는 KRW이다. 당시 1달러는 125원으로 고정되었다. 1975년 3월 22일, 마지막으로 유통되던 환 주화가 회수되면서 원은 유일한 법정통화가 되었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는 다음과 같은 고정환율제가 시행되었다.

시행일1달러당 원화 가치
1962년 6월 10일125
1964년 5월 3일255
1972년 8월 3일400
1974년 12월 7일480
1980년 1월 12일580



1980년 2월 27일부터 변동환율제 도입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고,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24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정 체결을 통해 완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7]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61년 5월 16일 발생한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1962년 1차 5개년 계획과 함께 통화개혁을 단행했다. 이 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었으나,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1972년과 1974년에 원화가 평가절하되는 등 격변을 겪었다. 1원은 100전이었으나, 전은 현재 실제 거래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 발행된 10전과 50전 지폐는 법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실제 유통은 거의 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전자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카드 사회이지만, 포장마차 등 일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도 존재한다. [44]

3. 3. 1. 역사

1962년 6월 10일, 1원 = 10환의 비율로 원화가 재도입되었다. 같은 해 1달러당 125원으로 고정 환율제가 시행되었고, 1975년 3월 22일 마지막 환 동전이 회수되면서 원화는 유일한 법정 통화가 되었다. ISO 4217 코드는 KRW이다. 1962년부터 1980년까지는 고정환율제가 유지되었으며, 1달러당 원화 가치는 여러 차례 조정되었다. 아래 표는 그 변화를 보여준다.

시행일1달러당 원화 가치
1962년 6월 10일125
1964년 5월 3일255
1972년 8월 3일400
1974년 12월 7일480
1980년 1월 12일580



1961년 5월 16일 발생한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은 경제 재건을 위해 1962년 1차 5개년 계획과 통화 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새로운 원화가 도입되었고, 1달러는 125원으로 고정되었다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1원은 100전이었으나, 현재 전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 통화 개혁은 인플레이션 완화에 기여했다.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1972년과 1974년 원화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1980년 1월 12일 1달러당 580원이 되었고, 같은 해 2월 27일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1997년 12월 24일,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정에 따라 완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7]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여 단기간에 절반 수준으로 평가절하되었다. 현재 한국은 전자 결제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포장마차 등 일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도 여전히 존재한다.

3. 3. 2. 동전

현재 유통되는 대한민국 원화 동전은 10원, 50원, 100원, 500원 동전이다. 1원과 5원 동전은 1992년 이후 거의 유통되지 않고 있으며, 소비재 가격은 10원 단위로 반올림된다. 다만, 한국은행의 연례 주화 세트를 위해 소량 생산되고 있다.[17]

1966년 8월 16일, 1원, 5원, 10원 동전이 처음 발행되었다. 1원 동전은 황동(구리 60%, 아연 40%)으로, 5원과 10원 동전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서기를 사용한 최초의 대한민국 동전이었다.[8] 1원 동전의 재료 가격이 액면가를 넘어서자, 1968년 8월 26일에는 재료를 알루미늄으로 변경했다. 5원과 10원 동전은 1970년에 소재 배합 비율이 변경되었고, 10원 동전은 2000년대 들어 다시 재료 가격이 액면가를 넘어 2006년 소재와 크기가 변경되었다. 500원 동전은 1982년에 처음 제작되었으며, 500원 동전을 제외한 모든 현행 동전은 1983년에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특히 1998년 발행된 500원짜리 동전은 IMF 구제금융 사건의 영향으로 극소량만 제작되어 희귀하다.[61]

10원 동전의 경우, 2006년 이전에는 황동으로 제작되었으나, 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구리 도금 알루미늄(구리 48%, 알루미늄 52%)으로 변경되어 크기와 무게가 줄었다. 이는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였다.[13] 1원과 5원 동전의 유통 감소와 더불어, 10원과 50원 동전의 유통 중단도 검토되고 있다. 이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동전 제작 및 유통 비용 대비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사회가 발전하면서 현금 사용이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현금만 사용 가능한 곳들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3. 3. 3. 지폐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지폐는 1,000원권, 5,000원권, 10,000원권, 50,000원권의 네 종류이다. 각 지폐에는 위조 방지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1962년에는 10전, 50전,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권 지폐가 처음 발행되었다. 초기 지폐들은 영국의 드 라 루(Thomas De La Rue)사에서 인쇄되었지만, 이후 한국조폐공사에서 국내 인쇄가 시작되었다. 1965년에는 위조 방지를 위해 100원권에 凹판 인쇄 기법이 처음 도입되었다. 1970년대에는 100원권과 50원권이 주화로 대체되었고, 5,000원권과 10,000원권이 새롭게 발행되었다. 이 고액권 지폐에는 워터마크, 보안 스레드, 자외선 반응 섬유 등 새로운 보안 기능이 추가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500원권과 1,000원권이 추가 발행되었다.

1983년에는 통화 체계 개선을 위해 새로운 지폐 시리즈가 발행되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식별 표시와 기계 판독 가능 언어가 추가되었고, 내구성이 강화된 고품질 용지가 사용되었다. 1990년대에는 컬러 프린터의 보급에 대응하여 위조 방지 기술이 강화된 5,000원권과 10,000원권이 발행되었다. 색상 변환 잉크, 미세 인쇄, 분할 금속 스레드, 모아레 무늬 등의 기술이 도입되었다. 최신 지폐에는 워터마크 아래에 "© 한국은행" 또는 "© The Bank of Korea" 저작권 정보와 발행 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5,000원권 지폐의 인쇄판은 일본에서, 1,000원권과 10,000원권의 인쇄판은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작되었다.

2006년부터 2009년에 걸쳐 새로운 디자인의 지폐(5차 시리즈)가 발행되었다. 위조 방지 기술이 더욱 강화되었고, 지폐의 크기가 작아졌으며,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개선되었다. 5만 원권에는 22종, 1만 원권에는 21종, 5천 원권에는 17종, 1천 원권에는 19종의 다양한 위조 방지 기술이 적용되었다. 주요 위조 방지 기술로는 홀로그램, 숨은 그림, 융기 인쇄, 보안 섬유, 변색 잉크, 유리온 등이 있다. 기호 번호는 2006년 이후 발행된 지폐는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로 구성되며, 2006년 이전 지폐는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로 구성된다. 또한, 지폐에는 한국은행 총재의 도장이 표기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지폐 손상 시 남은 면적에 따라 전액 또는 반액 교환 또는 무효 처리를 하고 있다. 1962년 이후 발행된 모든 지폐는 법적으로 유효하지만, 현재는 5차 시리즈 지폐가 주로 유통되고 있다.

4. 대한민국의 역대 통화조치

1950년 8월 28일에는 조선은행권 원이 한국은행권 원으로 교체되었으며, 교환비율은 1:1이었다. 1953년 2월 17일에는 화폐 단위가 원에서 환으로 변경되었고, 교환비율은 100:1이었다. 이후 1962년 6월 10일에는 다시 환에서 원으로 환원되었으며, 이때의 교환비율은 10:1이었다. 기존의 환화는 1975년 3월 22일까지 유통되었다가 그 이후 유통이 정지되었다.

5. 위조 방지 기술

오만 원권에는 왼쪽 숨은 그림 옆에 띠 형태의 홀로그램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기존의 5천 원권, 1만 원권과 달리 크기가 크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태극, 한반도, 4괘 무늬가 상·중·하 3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무늬 사이에는 '50000'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다. 특히, 태극 무늬는 지폐를 좌우로 움직이면 상하로, 상하로 움직이면 좌우로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또한, 입체형 부분 노출 은선이 적용되었는데, 청회색 특수 필름 띠에 여러 개의 태극 무늬가 새겨져 지폐를 움직일 때 무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은선 부분의 틈새는 위조 방지 기술의 일부이며, 지폐 제작상의 결함이 아니다. 색 변환 잉크와 볼록 인쇄 기법도 강화되었고, 자외선이나 X선을 비추면 녹색 형광 색상이 나타나는 형광 잉크도 사용되었다.[64]

일련 번호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글자 크기가 커지며, 맹인을 위한 점자는 왼쪽과 오른쪽 절단면에 돌출된 다섯 가닥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요판 잠상이 위치하며, 지폐를 기울이면 '5'라는 숫자가 크게 나타난다. 숨은 그림 아래에는 돌출 은화가 있으며, 무궁화 무늬 바탕에 '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신사임당 초상화 옷깃 아래에는 한글 닿소리 14글자가 미세 문자로 인쇄되어 있고, 뒷면 매화나무 줄기에는 "BANK OF KOREA"라는 미세 문자가 숨겨져 있다. 각 권종에는 10개 이상의 보안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며, 5만 원권에는 22개, 1만 원권에는 21개, 5천 원권에는 17개, 2천 원권에는 10개, 1천 원권에는 19개의 보안 기능이 있다. 여기에는 홀로그램, 워터마크, 엠보싱 인쇄, 보안 스레드, 변색 잉크 등 다양한 기술이 사용되었다. 한국조폐공사는 위조 방지를 위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여 지폐에 삽입하였고, 이 기술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30]

6. 화폐 생산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에서 지폐를 인쇄하고 주화를 주조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다. 한국조폐공사(KOMSCO)가 한국은행의 지도하에 지폐와 주화를 생산한다. 새롭게 생산된 지폐와 주화는 다발 또는 롤로 묶어 한국은행 본점으로 배송된 후, 은행 금고에 보관되며 필요에 따라 시중은행에 배포된다. 설날과 추석과 같은 주요 명절을 전후하여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에 대량의 화폐를 공급하며, 시중은행은 고객 요청 시 이를 제공한다.

한국 경제의 전자결제 확산으로 현금, 특히 동전 사용이 줄어들면서 한국은행은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실시했다.[33] 이 사업은 거스름돈을 동전 대신 선불카드에 입금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2019년 기준으로 참여율은 저조했다.[34] 전자결제 시스템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이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을 중심으로 현금 사용 선호도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완전한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 접근성 향상과 다양한 계층을 위한 대안 마련 등 추가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회에서는 1,000원을 1새로운 원으로 하는 화폐 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제안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는 원화 가치를 1달러에 가깝게 설정하여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새로운 고액권 도입이 한국 경제의 강점을 부각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35] 대부분은 리디노미네이션에 반대한다. 반대 의견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 국민적 신뢰 저하 가능성, 물가 상승, 비용 절감 효과의 미미함, 그리고 더욱 시급한 경제 현안 등을 이유로 제기된다.[35]

7. 논란 및 미래

2007년 한국은행은 2009년 상반기 중 5만원권과 10만원권 발행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 10만원권에는 김구 초상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65] 5만원권은 예정대로 발행되었지만, 10만원권 발행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2014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2만원권 발행 논의가 있었으나, 당시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은 이를 부인했다.[66]

국회에서는 1,000원을 1 새로운 원으로 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이 여러 차례 제안되었다. 이는 원화 가치를 달러에 가깝게 설정하여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일각에서는 고액권 도입이 한국 경제의 강점을 부각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35] 대부분은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 국민적 신뢰 저하, 물가 상승, 비용 절감 효과 미미, 더욱 시급한 경제 현안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35]

7. 1.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

한국 경제의 전자 결제 확대에 따라 현금, 특히 동전 사용이 감소하는 추세를 반영하여 한국은행은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범 사업을 실시했다.[33] 이 사업은 소비자들이 거스름돈을 동전 대신 선불카드에 입금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2019년 기준, 시범 사업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34] 이는 전자 결제 시스템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비자들, 특히 고령층이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에서 현금 사용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향후 현금 없는 사회로의 완전한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 접근성 향상 및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을 위한 대안 마련 등 추가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7. 2. 화폐 액면 단위 변경 (리디노미네이션) 제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1,000원을 1 새로운 원으로 하는 화폐 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제안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는 새로운 원화 단위의 가치를 1달러에 가깝게 설정하여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표에서 비롯되었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고액 단위의 도입이 한국 경제의 강점을 부각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35] 대다수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 의견은 갑작스러운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 원화에 대한 국민적 신뢰 저하 가능성, 물가 상승 억제의 어려움, 비용 절감 효과의 미미함, 그리고 더욱 시급한 경제 현안의 존재 등을 이유로 제기되고 있다.[35]

8. 환율

대한민국 원의 환율은 공식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으며, 90년대 후반 이후 달러와 엔에 대해 큰 변동을 보였다. IMF 구제금융 극복 이후, 한동안 1엔 ≒ 10원 수준으로 안정을 유지했으나, 2005년경부터 원화 강세가 시작되어 2007년에는 1엔 당 약 7.5원까지 떨어졌다. 엔고와 달러 약세 경향으로 인해 8원대로 유지되던 환율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10원을 돌파하며 큰 폭으로 하락, 10월 7일에는 1엔 당 13원을 넘어섰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외환위기 당시 수준(1엔=14.85원)에 근접했고, 10월 27일에는 매도가·매입가 모두 15원을 돌파했으며, 12월 5일에는 일시적으로 16원까지 치솟았다. 2009년 2월 20일에는 16원대로 다시 진입, 엔화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 체결 이후 외환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아래 표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월별 100원당 엔화 환율을 나타낸다. 숫자가 클수록 원화 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JPY/100KRW(100원이 몇 엔인가. 숫자가 클수록 원화 가치가 높음)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04년9.039.319.119.389.449.419.569.59.649.459.849.96
2005년10.0910.4310.5410.5610.7610.7410.9410.7410.8811.0911.5411.71
2006년12.1211.9912.0512.1111.8512.0512.0212.1912.4612.4412.4912.78
2007년12.9212.6112.5212.8413.113.312.9312.3612.5512.7111.8912.09
2008년11.2711.1610.08






일본은행의 시계열 데이터([http://www.boj.or.jp/type/stat/dlong/fin_stat/rate/index.htm 현재 링크는 여기])를 기반으로 함. 뉴욕 연방 준비 은행의 [http://www.newyorkfed.org/markets/fxrates/historical/home.cfm 외환 환율 역사 검색] 자료도 참고.

2019년과 2022년 기준 세계 외환시장의 일일 거래량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달러가 압도적인 1위(88% 이상)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로(2019년 32.3% → 2022년 30.5%), 일본 엔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 위안은 2019년 4.3%에서 2022년 7.0%로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5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원은 2019년 2.0%에서 2022년 1.9%로 소폭 감소하며 11위를 기록했다.[36][37] 이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주요 경제권의 규모를 반영하는 결과이다. 중국 위안의 비중 증가는 중국 경제 성장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대한민국 원의 비중 감소는 한국 경제의 국제 금융시장 영향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8. 1. 현재 환율

대한민국 원은 공식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으며,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 달러와 일본 엔에 대해 큰 변동을 보이고 있다. IMF 구제금융 극복 이후, 한때 1엔당 10원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2005년경부터 원화 강세가 시작되어 2007년에는 1엔당 약 7.5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엔고와 달러 약세 경향으로 8원대로 유지되던 환율은 2008년 1엔당 10원을 돌파했다.

같은 해 9월 말,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한국 외환 위기가 발생하여 원화 가치가 급락, 1엔당 12원을 넘어섰고, 10월 7일에는 13원을 돌파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외환 위기 당시 수준인 1엔당 14.85원에 근접했고, 10월 27일에는 매도가와 매입가 모두 15원을 돌파했다. 12월 5일에는 16원까지 치솟았으며, 2009년 2월 20일에는 다시 16원대로 진입하며 엔화 대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 도입 이후 외환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는 추세다.

아래 표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월별 100원당 엔화 환율(JPY/100KRW)을 나타낸다. 숫자가 클수록 원화 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일본은행의 시계열 데이터([http://www.boj.or.jp/type/stat/dlong/fin_stat/rate/index.htm 현재 링크는 여기])를 기반으로 한다.

JPY/100KRW(100원이 몇 엔인가. 숫자가 클수록 원화 가치가 높음)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2004년9.039.319.119.389.449.419.569.59.649.459.849.96
2005년10.0910.4310.5410.5610.7610.7410.9410.7410.8811.0911.5411.71
2006년12.1211.9912.0512.1111.8512.0512.0212.1912.4612.4412.4912.78
2007년12.9212.6112.5212.8413.113.312.9312.3612.5512.7111.8912.09
2008년11.2711.1610.08



뉴욕 연방 준비 은행의 [http://www.newyorkfed.org/markets/fxrates/historical/home.cfm 외환 환율 역사적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8. 2. 거래량 기준 주요 통화 순위

2019년 4월과 2022년 4월 기준 세계 외환시장에서의 일일 거래량 비중을 살펴보면, 미국 달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88%를 넘는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유로는 2위이나 2019년 32.3%에서 2022년 30.5%로 비중이 감소했다. 일본 엔은 3위를 차지했으며, 비중은 소폭 감소했다. 영국 파운드는 4위, 중국 위안은 2019년 4.3%에서 2022년 7.0%로 비중이 크게 증가하며 5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원은 2019년 2.0%에서 2022년 1.9%로 소폭 감소하며 11위를 기록했다. 그 외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당수 통화의 거래량 비중은 2% 미만이다. 이는 미국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와 유로존, 일본 경제의 규모를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 위안의 비중 증가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반면 대한민국 원의 거래량 비중 감소는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한국 경제 영향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36] [37]

9. 각국에서의 원화

2002년 FIFA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에서의 원화 환전 규제가 완화되어, 이전에는 한국계 은행에서만 가능했던 환전이 우체국과 일부 은행, 환전소 등에서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외국 동전과 마찬가지로 한국 원화 동전의 환전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일부 업체 제외). 특히, 일본에서 원화를 환전할 경우 한국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훨씬 불리한 환율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9. 1. 일본에서의 변조 500원 동전 문제

1999년 당시 대한민국의 500원 동전은 일본의 500엔 백동화(초대 500엔 동전)와 무게를 제외하고는 재질과 형태가 매우 유사했고, 당시 환율로 약 50엔의 가치를 지녔다. 이 때문에 1999년부터 한국에서 드릴로 구멍을 뚫어 500엔 동전과 무게를 맞춘 변조 500원 동전이 일본으로 대량 유입되어 자판기와 환전기에서 부정 사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6월에는 불법 체류 중이던 중국인 남성 3명과 일본인 남성 1명이 도야마현에서 변조된 500원 동전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들의 차량에서 약 2000개의 변조 동전이 발견되었다. 초기에는 자판기의 식별 기능 강화로 대응했으나, 끊임없는 숨바꼭질 양상이 지속되었고, 결국 많은 자판기에서 500엔 동전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일본 조폐국은 2000년에 재질을 변경하고 위조 방지 기능을 강화한 500엔 니켈 황동화(2대 500엔 동전)를 발행했다. 많은 자판기 또한 500엔 니켈 황동화만 사용하도록 변경되었고, 그 결과 일본 국내 자판기 파손 사건은 2000년 6706건에서 2001년 1061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는 한국에서 변조된 500원 동전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 사건은 양국 간의 통화 시스템 관리 및 위조 방지 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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