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라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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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벤 라구스는 핀란드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핀란드 내전, 겨울 전쟁, 계속 전쟁, 라플란드 전쟁 등 여러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예거 운동에 참여하여 독일 제국군에서 복무했으며,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으로 참전했다. 핀란드군에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등을 역임했으며, 제1 예거 여단과 핀란드 기갑 사단을 지휘했다. 1941년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전후에는 기업 최고 경영자로 활동하다 195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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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라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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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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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른스트 루벤 라구스 |
출생일 | 1896년 10월 12일 |
출생지 | 해멘코스키, 핀란드 대공국, 러시아 제국 |
사망일 | 1959년 7월 15일 |
사망지 | 로흐야, 핀란드 |
군사 경력 | |
소속 | (1915–1918) (1918–1947) |
군종 | 독일 제국 육군 핀란드 엽병 부대 핀란드 육군 |
복무 기간 | 1915–1947년 |
최종 계급 | 소장 (1941년) |
지휘 | 제1 엽병 여단 (1941–42) 제5사단 (1941) 핀란드 기갑 사단 (1942–44) 라구스 그룹 (1944) 제2사단 (1945–47) |
주요 전투 | 제1차 세계 대전 핀란드 내전 탐페레 전투 제2차 세계 대전 겨울 전쟁 계속 전쟁 라도가 카렐리아 침공 동카렐리아 침공 (1941)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 탈리-이한탈라 전투 라플란드 전쟁 |
훈장 | |
훈장 | 만네르헤임 십자장 자유 십자 훈장 백장미 훈장 철십자 훈장 검 훈장 |
2. 초기 생애 및 군 복무
에른스트 루벤 라구스는 1896년 10월 12일 핀란드 대공국 코스키 Hl에서 알렉산데르 가브리엘 라구스와 엠마 마틸다 벨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형을 따라 독일 제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예거 운동에 참여했다. 제27 로열 프로이센 예거 대대에서 복무하며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독일 제국 육군을 위해 싸웠으며, 미사, 리가 만, 리엘루페 지역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
1918년 2월 핀란드 내전에 백군 편으로 참전, 대대장과 연대 부관으로 탐페레 전투, 쿠옥칼라 전투, 올릴라 전투에 참여했다.
2. 1. 초기 생애
에른스트 루벤 라구스는 1896년 10월 12일 핀란드 대공국 코스키 Hl에서 알렉산데르 가브리엘 라구스와 엠마 마틸다 벨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핀란드 자원병들이 독일 제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예거 운동에 참여하여 형을 따라 독일로 갔다. 제27 로열 프로이센 예거 대대에서 복무하며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독일 제국 육군을 위해 싸웠으며, 미사, 리가 만, 리엘루페 지역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1918년 2월 25일 핀란드로 돌아와 핀란드 내전에 백군 편으로 참전했다. 대대장과 연대 부관으로 탐페레 전투, 쿠옥칼라 전투, 올릴라 전투에 참여했다.
2. 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에른스트 루벤 라구스는 1896년 10월 12일 핀란드 대공국 코스키 Hl에서 알렉산데르 가브리엘 라구스와 엠마 마틸다 벨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핀란드 자원병들이 독일 제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예거 운동에 참여하여 1915년 형을 따라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핀란드 자원병들은 제27 로열 프로이센 예거 대대를 결성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 독일 제국 육군을 위해 싸웠다. 이 기간 동안 라구스는 미사, 리가 만 및 리엘루페 지역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2. 3. 핀란드 내전 참전
루벤 라구스는 1918년 2월 25일 핀란드로 돌아와 핀란드 내전에 백군 편으로 참전했다. 그는 대대장과 연대 부관으로 탐페레 전투, 쿠옥칼라 전투 및 올릴라 전투에 참여했다.3. 핀란드군 복무 경력
루벤 라구스는 1918년 핀란드 내전 종전 후부터 1947년 군에서 사임할 때까지 핀란드군에서 복무했다.
겨울 전쟁 동안 지협 군대의 보급 참모로 복무했으며, 대령으로 진급하여 자전거 여단과 임시 평화 기간 동안 예거 여단을 지휘했다. 모스크바 휴전 이후, 라플란드 전쟁에서 라구스 그룹을 이끌었다. 1945년부터 제2 사단 지휘관으로 복무했으며, 1947년에 군에서 사임했다.
3. 1. 내전 이후 ~ 겨울 전쟁 이전
1918년 내전 종전 후부터 1927년까지 라구스는 여러 부대에서 중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19년에 대위로, 1924년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1927년과 1928년에는 제3 자전거 대대를 지휘했으며,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부사관 학교 지휘관, 1929년부터 1933년까지 핀란드 사관 학교에서 사관 후보생 중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1933년, 라구스는 보급 대대, 이후 연대의 지휘관이 되어 1939년 말 핀란드-소련 간의 겨울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그 직책을 맡았다.
3. 2. 겨울 전쟁
1933년, 라구스는 보급 대대, 이후 연대의 지휘관이 되어 1939년 말 핀란드-소련 간의 겨울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그 직책을 맡았다. 1940년 초에 끝난 전쟁 동안 그는 지협 군대의 보급 참모로 복무했다. 1940년에 대령으로 진급한 라구스는 자전거 여단과 임시 평화 기간 동안 예거 여단을 지휘하게 되었다.3. 3. 계속 전쟁
나치 독일과 함께 소련을 공격한 계속 전쟁에서 라구스는 처음에는 라도가 카렐리아 핀란드 침공에서 제1 예거 여단을 이끌었다. 이 부대는 핀란드군 역사상 의미 있는 규모의 최초의 기갑 부대였다. 그의 부대는 겨울 전쟁 전 핀-소련 국경을 처음으로 넘어 스비르와 페트로자보츠크까지 진격하여 동 카렐리아 핀란드 침공의 일환으로 진격했다. 초기 공세 단계에서 라구스는 잠시 제5 사단 지휘를 맡았지만, 핀란드 최고사령관 원수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선호한 일마리 카르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그는 1941년에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1941년 7월 22일 최초의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받았다.1942년부터 1944년 계속 전쟁이 끝날 때까지 라구스는 핀란드 기갑 사단을 지휘했으며, 제1 예거 여단이 배속되었다. 1944년 소련의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가 시작된 후, 그의 사단은 소련의 전략적 공세를 격퇴하고 핀란드의 전쟁 종결을 위한 길을 열어준 매우 중요한 탈리-이한탈라 전투에 참가했다.
3. 4. 라플란드 전쟁
핀란드와 소련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모스크바 휴전 이후, 라구스는 라플란드 전쟁에서 라구스 그룹으로 알려진 부대를 이끌었고, 이 전투에서 핀란드는 라플란드에서 남은 독일군을 몰아냈다.4. 전후 활동 및 사망
은퇴 후 라구스는 최고 경영자가 되어 로흐야 지역의 사회 주택을 건설하는 핀란드 유한 회사인 로흐얀 사토 오이(Lohjan Sato Oy)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또한 취미로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다. 라구스는 1959년 7월 15일 로흐야에서 사망했다.
라구스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올가 요한나(제인) 램지와 1921년부터 1927년까지였고, 1935년에는 케니 크리스틴 에밀리아 가드와 결혼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총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생전에 라구스는 여러 군사 훈장을 받았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41년에 받은 핀란드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이다. 그의 다른 주목할 만한 훈장으로는 핀란드 자유 십자 훈장과 백장미 훈장, 독일 철십자 훈장 (1급 및 2급), 스웨덴 검 훈장 등이 있다.
5. 가족 관계
라구스는 두 번 결혼했다. 1921년 올가 요한나 (제인) 램지와 첫 번째 결혼을 했고, 1927년에 헤어졌다. 이후 1935년 케니 크리스틴 에밀리아 가드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라구스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총 6명의 자녀를 두었다.
배우자 | 결혼 기간 | 자녀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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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요한나 (제인) 램지 | 1921년 ~ 1927년 | 총 6명 중 일부 |
케니 크리스틴 에밀리아 가드 | 1935년 ~ | 총 6명 중 일부 |
6. 훈장
라구스는 생전에 여러 군사 훈장을 받았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41년에 받은 핀란드 만네르헤임 십자 훈장이다. 그 외에도 자유 십자 훈장, 백장미 훈장, 독일 철십자 훈장 (1급 및 2급), 스웨덴 검 훈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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