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넌 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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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넌 웰스는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된 야구 선수이다. 2002년 토론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2003년에는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골드 글러브를 3회 수상했으며, 2010년에는 브랜치 리키 상을 받았다. 2011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이적했고, 2013년에는 뉴욕 양키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웰스는 통산 270개의 홈런을 기록한 선수로, 5툴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텍사스주 북부의 노숙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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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넌 웰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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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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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중견수 |
타격 | 우타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978년 12월 8일 |
출생지 |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 |
프로 데뷔 | |
메이저 리그 | 1999년 8월 30일 |
데뷔팀 | 토론토 블루제이스 |
마지막 리그 | 메이저 리그 |
마지막 경기 | 2013년 9월 29일 |
마지막 팀 | 뉴욕 양키스 |
드래프트 | 1997년 1라운드 (전체 5위), 토론토 블루제이스 지명 |
기록 | |
타율 | .270 |
홈런 | 270 |
타점 | 958 |
소속팀 | |
선수 |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2010)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2011–2012) 뉴욕 양키스 (2013) |
수상 경력 | |
올스타 | 3회 (2003년, 2006년, 2010년) |
골드 글러브 | 3회 (2004–2006) |
실버 슬러거 | 2003년 |
기타 정보 | |
고등학교 | 제임스 보위 고등학교 |
국가대표 |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
WBC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연봉 (2013년) | 24,642,857 달러 |
2. 유년 시절
버넌 웰스는 1978년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났다.[45] 그의 아버지는 CFL 선수이자 화가였다.[3][45] 1988년 가족과 함께 텍사스주 알링턴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3][46]
웰스는 알링턴의 보위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쿼터백과 야구 외야수로 활약했다.[3] 4학년 때는 타율 .565, 7홈런, 20타점(RBI)을 기록하며 텍사스 주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참가 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 야구와 미식축구 선수로 진학하기로 의향서를 제출했다.[3] 7살에 야구를 시작하여 2루수로 뛰었지만, 텍사스로 이사온 직후 불규칙 바운드된 공에 얼굴을 맞는 사고를 당해 중견수로 전향했다.[46]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인 알링턴 스타디움의 원정팀 클럽하우스를 드나들며 리키 헨더슨등과 친해졌고, 특히 데이브 스튜어트는 웰스가 출전하는 리틀 리그 경기를 보러 올 정도로 각별했다.[46]
3. 프로 경력
3. 1. 마이너 리그 및 초기 경력
버넌 웰스는 1978년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났다.[45] 1988년 텍사스주 알링턴으로 이사했으며, 7살에 야구를 시작하여 2루수로 뛰었지만, 불규칙 바운드된 공에 얼굴을 맞는 사고를 당해 중견수로 전향했다.[46]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인 알링턴 스타디움의 원정팀 클럽하우스를 드나들며 리키 헨더슨, 데이브 파커, 데이브 스튜어트 (야구)와 친분을 쌓았다. 특히 스튜어트는 웰스의 리틀 리그 경기를 보러 올 정도로 각별했다.[46]
지역의 보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야구와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활약했다. 야구에서는 MLB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최종 학년 때 타율 .565, 7홈런, 24도루를 기록했고, USA 투데이로부터 텍사스 주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졸업 후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웰스를 1997년 MLB 드래프트에서 보위 고등학교 출신으로 전체 5순위로 지명했다.[4]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수년간 유망주로 활동했으며, 단기 시즌 뉴욕-펜 리그의 토론토 산하 A클래스 팀인 세인트 캐서린스 스토머스에서 시작했다. 1998년에는 해거스타운 선스에서 뛰었고,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 시즌 종료 올스타 팀의 유틸리티 외야수로 선정되었다. 1999년에는 호주 야구 리그에서 시드니 스톰에서 뛰었다.[5]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웰스는 정규 9월 콜업 선수였으며, 57번의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4]
3. 2.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2010)
2002년 웰스는 처음으로 매일 출전하는 선수가 될 기회를 얻었다. 신인상 후보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신인 자격을 얻기 위한 통산 타수 제한인 130타수를 초과했기 때문이었다.(이 상은 팀 동료 에릭 힌스케에게 돌아갔다.) 웰스는 스스로가 게임의 떠오르는 스타 중 한 명임을 증명했다. 그는 .275 타율에 23개의 홈런, 100 타점과 87득점을 기록했고, 게임 최고의 수비형 중견수 중 한 명이 되었다.[4]
2003년에 웰스는 .317의 타율, 33개의 홈런, 117타점, 118득점으로 시즌을 마쳤다.[4] 그는 215개의 안타, 49개의 2루타, 373루타로 리그를 이끌었고,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다.[4] 또한, 첫 올스타전에 참가했으며,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2003년 6월 23일에 코리 코스키와 함께 영광을 나누며 처음으로 AL 주간 선수로 선정되었다.[6]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연속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인정받았다.[4] 2004년 시즌 후에 열린 일미 야구에서는 MVP를 획득했다.
2006년 시즌을 뜨거운 페이스로 시작했고, 한 해 동안 꾸준히 좋은 타격을 이어가 시즌을 .303의 타율, 32개의 홈런, 106타점으로 마쳤다.[4] 웰스의 해는 5월 3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쳤고, 그 중 2개는 레드삭스 선발 조시 베켓을 상대로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7] 그는 7월 24일에 AL 주간 선수로 선정되었다.[8]
웰스는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의 예비 외야수로 선발되었고, 보스턴의 매니 라미레스의 부상으로 인해 리그 선발 라인업으로 승격되었다. 이는 그의 두 번째 올스타전 출전이었다. 시즌 종료 후 블루제이스와 7년 1억 26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12]
(2009년 5월 27일)
2007년 어깨 부상으로 부진했으나,[13] 2008년 타율 .300, 20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4]
|250px|thumb|2009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웰스]]
2009년 부상으로 고전하며 타율 .260, 15홈런, 66타점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4]
2010년 31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 세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4] 덴버 로터리 클럽으로부터 인도주의적 활동에 대한 브랜치 리키상을 받도록 선정되었다.[26]
3. 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11-2012)
2011년 1월 21일, 버넌 웰스는 포수 마이크 나폴리와 외야수 후안 리베라를 상대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27][28] 웰스는 2011년 시즌 처음 한 달 반 동안 멘도사 라인 아래의 타율을 기록하며 시작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때 .222로 타율을 향상시켰다.[29] 6월과 7월 동안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활약했고,[29] 8월 12일 토론토에서의 첫 경기에서 첫 타석 전에 기립 박수를 받았다.[30] 하지만 2011년 시즌 .218의 타율을 기록하며 512번 이상의 타석을 기록한 메이저 리그 선수들 중 가장 낮은 타율과 출루율(.248)을 기록했다.[31]
(2011년 7월 23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86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있던 웰스의 방출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트레이드가 성립되어 놀라움을 샀다.[56] ESPN은 "에인절스는 최악의 트레이드를 했다"[58], CBS 스포츠는 "웰스를 영입하느니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나았다"[59]고 혹평하는 등 거액의 계약 대부분[57]을 떠안게 된 에인절스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가 많았다. 2011년 타율 .218, 출루율 .248은 모두 메이저 리그 최저를 기록하였고, 예상대로 트레이드는 실패로 끝났다. 팀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2년 5월 21일에는 오른손 엄지 인대가 손상되어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60] 7월에 복귀한 후에는 마이크 트라웃의 부상과 마크 트럼보의 외야 전향으로 인해 백업 선수가 되었다.[61]
3. 4. 뉴욕 양키스 (2013)
2013년 3월 26일, 에인절스는 마이너리거 에시카르도 카요네스와 크레이머 스니드를 대가로 웰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했다. 양키스는 그의 계약에 남아 있는 4200만 달러 중 1390만 달러를 지불했다.[32][33] 웰스는 등번호 10번이 필 리주토에 의해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되었기 때문에 12번으로 변경했다. 2013년 5월 8일, 웰스는 선수 경력 처음으로 3루수 포지션을 소화했다.[34] 그는 5월 15일 처음으로 2루수 포지션을 소화했다.[35] 7월 26일, 웰스는 시카고 컵스에서 재영입된 알폰소 소리아노에게 등번호를 주기 위해 12번에서 22번으로 바꿨다. 8월 5일, 웰스는 1루수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하여 경기에 출장했다.[36] 2013년 양키스에서 130경기에 출전하여 웰스는 타율 0.233, 11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4]
2014년 1월 10일, 웰스는 양키스에서 지명 할당되었고, 1월 16일에 방출되었다.[37]
4. 선수로서의 특징
전성기에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5툴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꼽혔다.[65] 타격 면에서는 적극적인 타격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1타석당 투구수(P/PA)가 적은 것은 메이저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65] 그 때문에, 볼넷 수는 매년 50개 전후로 변화하며, 출루율은 그다지 좋지 않다.[65] 라인 드라이브 타구가 많은 라인 드라이브 히터이며, 전형적인 풀 히터이기도 하다.
수비 면에서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67] 도루 수는 적지만, 결코 발이 느린 것은 아니며, 수비와 주루에서 그 민첩함을 활용하고 있다.
5. 개인 생활
버넌 웰스는 2001년 고등학교 시절 연인 샬린 발렌티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고 있다.[41][42] 현재 텍사스주 웨스트레이크에 거주하고 있다.[41] 그의 아버지 버넌 웰스 주니어는 유명한 스포츠 예술가로, 어퍼 덱 야구 카드의 초기 기여자였다.[39][40] 마이클 영과는 마이너 리그 시절부터 친구이며, NFL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팬이다.[70] 웰스는 2008년 "버넌 웰스 퍼펙트 10 재단"을 설립하여 텍사스주 북부의 노숙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후보로 여러 차례 지명되었고,[68] 2010년에는 "브랜치 리키 상"을 수상했다.[69]
6. 사회 공헌 활동
웰스는 선수 시절 다양한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68] 2002년부터 토론토 토론토 커뮤니티 하우징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해 운영되는 광역 토론토 야구 리그인 토론토 루키 리그의 명예 커미셔너로 활동했다.[43] 2008년에는 "버넌 웰스 퍼펙트 10 재단"(Vernon Wells Perfect 10 Foundation)을 설립하여 텍사스주 북부의 노숙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다.[68]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지명되었으며, 2010년에는 사회 복지 활동에 공헌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브랜치 리키 상을 수상했다.[69]
7. 수상 및 타이틀 경력
버넌 웰스는 2003년에 실버 슬러거를 1회 수상했으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골드 글러브를 3회 연속 수상했다. 또한, 2003년, 2006년, 2010년에는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에 3회 선출되었다. 2003년 6월 22일과 2006년 7월 23일에는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10년에는 브랜치 리키상을 수상했다.
8.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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